최근 수정 시각 : 2019-09-22 17:32:59

김대건 안드레아, 정하상 바오로와 101위 동료 순교자

언어별 명칭
라틴어 Martyres Corea CIII
영어 Korean Martyrs
Andrew Kim Taegon, Paul Chong Hasang and 101 Companions[1]
프랑스어 103 martyrs de Corée
독일어 103 Koreanische Märtyrer und Märtyrerinnen
이탈리아어 Martiri Coreani
스페인어 Mártires Coreanos
한국 가톨릭 교회의 순교자
김대건 안드레아, 정하상 바오로와 101위 동료 순교자 (1984년 5월 6일 시성)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 (2014년 8월 16일 시복)
파일:attachment/김대건 안드레아, 정하상 바오로와 101위 동료 순교자/103martyr.jpg
103위 순교 성인화[2], 문학진, 1976년 ~ 1977년, 천주교 서울대교구 혜화동 성당

1. 개요2. 연혁
2.1. 시복2.2. 시성
2.2.1. 기적 심사 면제2.2.2. 성인명 변경2.2.3. 시성식 장소
3. 103위 성인4. 참고 사이트

1. 개요

'김대건 안드레아, 정하상 바오로와 101위 동료 순교자'는 조선 왕조가 가톨릭을 탄압한 기해박해(1839년), 병오박해(1846년), 병인박해(1866년) 때 순교한 103위의 성인이다. 한국인 93인과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프랑스인 성직자 10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1984년 5월 3일에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5월 6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시성식을 거행했으며, 축일은 9월 20일이다.

성인명이 길기 때문에 줄여서 한국 103위 순교성인(韓國103位殉敎聖人)이라고도 칭하며, 이것도 이 문서로 리다이렉트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103위 성인의 탄생 이야기>(2009년, 푸른역사, 천주교 수원교구 윤민구 도미니코 신부 저)를 참고하기 바란다.

2. 연혁

2.1. 시복

기해박해 순교자 70위와 병오박해 순교자 9위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병인박해 순교자 24위는 1968년 10월 6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되었다. 1925년, 1968년 2차례의 시복은 모두 기적 심사 면제령이 내려졌으며, 시복식로마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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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79위 시복화. 프랑스인 화가 쥬스타니안이 그렸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명동대성당 좌측벽에 있는 소제대에서 볼 수 있다. 위의 성인화와 달리 앵베르 주교가 중앙에 있고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가 양 옆에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 옆에 영대를 매고 꿇어앉는 이가 김대건 신부. 참고로 채색 버전은 이들 위에 있는 예수가 빠저 있다. 그 이유에 대해 아시는 분이 이에 대해서 첨언해주길 바람.

파일:aXzJCt9.jpg
1968년 시복식에서는 행사 때 사용하기 위해 성인들의 모습을 담은 상본을 이탈리아인 화가가 그렸는데, 한국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상투촌마게처럼 표현하는 등 일본인과 유사한 모습으로 그리는 바람에, 상본이 공개되자 시복식에 참석한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한국 순례단이 매우 당황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시복식이 끝난 후 상본을 한국으로 가져가야 함에도 우리 복자님은 그러지 않아 한국 순례단은 상본을 수령하지 않았다. 나중에 시성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교황청을 방문한 한국 관계자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당시 관계자는, 자신이 본의 아니게 실수해 한국의 신자들을 실망시켰다며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2.2. 시성

한국 가톨릭은 1968년 시복식 이후 기해·병오박해 79위 순교 복자와 병인박해 24위 순교 복자의 시성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1978년 4월 13일 한국 103위 순교 복자에 대한 시성 청원이 시성성에 접수되어 교황 바오로 6세의 윤허를 받아 본격적인 시성 절차가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시성 사례에서는 찾기 힘든 우대가 여러 차례 있었다. 또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역할도 상당히 컸는데, 다른 사람들은 한참을 기다려야 만날 수 있는 시성성 고위 관료와 교황청 관계자들이 김수환 추기경이 로마에 왔다는 소식에[3] '멀리서 오셨으니 김수환 추기경께서 편한 시간에 저희가 일정을 맞춰드려야 한다'며 편의를 제공했고 김수환 추기경은 요한 바오로 2세를 알현해 한국 천주교가 원하는 바를 교황에게 직접 말하기도 했다.

2.2.1. 기적 심사 면제

일반적으로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2가지의 기적 사례 보고가 요구된다. 복자로 인정되는데 하나, 성인으로 인정되는데 또 하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단 순교는 기적으로 간주되기에, 순교자는 1건의 기적 사례만 보고되더라도 시성을 받는 것이 이론상 가능하다.

다만 순교자가 시복되면서 기적 심사를 면제받았더라도 시성되기 위해서는 기적 심사를 받아야 한다. 실제로 1982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기적 관면을 시성성에 요청했지만 시복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기적 심사가 필요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렇지만 1983년 시성성 장관 피에트로 팔라치니 추기경(Pietro Palazzini, 1912년 5월 19일 ~ 2000년 10월 11일)의 조언에 따라[4] 한국 주교단이 기적 관면 청원서가 아니라 기적 심사 관면 청원서를 교황청에 제출했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를 받아들여 기적 심사를 면제함에 따라 기적 사례의 보고 없이 성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선교사가 아니라 평신도 중심으로 자체적으로 신앙이 퍼져나간 소위 '신앙의 기적'이 높게 평가되었기 때문이다.[5]

2.2.2. 성인명 변경

당초 한국 103위 순교 복자의 시성 청원서 제목에는 기해박해 때 순교한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사제들의 이름이 선두에 있었다.

이에 대해 한국 주교단은 한국의 성인들이 아니라 프랑스의 성인들을 연상시킨다 하여 시성 청원서 제목을 '복자 김대건 안드레아와 102위 동료 한국 순교자들'로 변경해줄 것을 청원했다.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기림과 동시에, 정하상 바오로를 통해 한국 천주교에서 평신도의 비중이 컸음을 나타내려는 의도였다.

이에 대해 시성성에서 나왔던 반대 의견으로는 비록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사제들이 프랑스인일지라도 조선 땅에서 순교했으므로 한국의 성인이기에 제목을 바꾸지 않아도 되며, 이미 정한 제목을 바꾸었을 때 파리 외방전교회의 입장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 등이 있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한국 주교단의 청원이 받아들여져 축일 명칭을 '김대건 안드레아, 정하상 바오로와 101위 동료 순교자'로 결정했음을 시성성이 통보했다.

2.2.3. 시성식 장소

어떤 의미에서는 기적 심사 면제나 성인명 변경보다도 더 큰 파격이었다. 시성식교황이 직접 주재하는 것이어서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만 거행하는 것이 수세기 동안 이어진 원칙이었는데, 아비뇽 유수 때를 제외하고 이 원칙이 깨진 첫 번째 사례가 바로 한국 103위 순교복자 시성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 가톨릭에서는 "교황 방한에 맞춰 시성식을 한국에서 열 수 없겠느냐"고 교황청 시성성에 청원했지만, 한국 103위 순교 복자 시성에 매우 협조적인 태도를 보여준 시성성도 시성식 장소에 대해서만큼은 '성 베드로 대성당 이외의 장소에서 시성식이 열릴 경우 다른 지역 교회들과의 형평성 문제 때문에 그 상징성이 퇴색할 수 있다'며 완강한 입장을 견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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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03위성인시성식_전경-1984-0435-001.jpg

그런데 시성성의 입장과 상관없이 교황이 한국 방문 때 시성식을 열겠다고 친히 결정하면서 '한국에서 거행된 시성식은 어디까지나 1984년 교황 방한 때의 부대 행사이지 주된 행사가 아니고, 시성성의 동의 없이 교황의 의지로 관철한 극히 예외적인 사례이므로 이는 시성식이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대한 변경이 아니며, 다른 나라 가톨릭 교회가 한국 가톨릭을 전례로 들어 자국에서 시성식을 거행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구조가 정립되었다. 실제로 시성성 장관 피에트로 팔라치니 추기경과 차관 트라이안 크리샨 대주교(Traian Crișan, 1918년 5월 21일 ~ 1990년 11월 6일), 차관보 파비얀 페라야 주교(Fabijan Veraja, 1923년 1월 20일 ~ 2014년 10월 28일)는 한국에서 열린 시성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3. 103위 성인

기해박해(1839년) 순교자 병오박해(1846년) 순교자 병인박해(1866년) 순교자
  성인 신분 출생 사망 나이 순교 사적 비고
1 성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 순교자 1821년 8월 21일 1846년 9월 16일 26세 군문 효수형 최초의 한국인 사제, 41의 아들
2 성 정하상(丁夏祥) 바오로 신학생, 순교자 1795년 1839년 9월 22일 45세 참수형 복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의 차남, 복자 정철상의 동생, 49의 아들, 54의 오빠
3 성 이호영(李――) 베드로 회장, 순교자 1803년 1838년 11월 25일 36세 옥사 7의 남동생
4 성 정국보(丁――) 프로타시오 상인, 순교자 1799년 1839년 5월 20일 41세 옥사
5 성녀 김아기(金阿只) 아가타 과부, 순교자 1787년 1839년 5월 24일 53세 참수형
6 성녀 박아기(朴阿只) 안나 부인, 순교자 1783년 1839년 5월 24일 57세 참수형
7 성녀 이소사(李召史) 아가타 과부, 순교자 1784년 1839년 5월 24일 56세 참수형 3의 누나
8 성녀 김업이(金業伊) 막달레나 과부, 순교자 1774년 1839년 5월 24일 66세 참수형
9 성 이광헌(李光獻) 아우구스티노 회장, 순교자 1787년 1839년 5월 24일 53세 참수형 26의 남편, 58의 아버지, 21의 형
10 성녀 한아기(韓阿只) 바르바라 과부, 순교자 1792년 1839년 5월 24일 48세 참수형
11 성녀 박희순(朴喜順) 루치아 동정 궁녀, 순교자 1801년 1839년 5월 24일 39세 참수형 25의 여동생
12 성 남명혁(南明赫) 다미아노 회장, 순교자 1802년 1839년 5월 24일 38세 참수형 29의 남편
13 성 권득인(權得仁) 베드로 상인, 순교자 1805년 1839년 5월 24일 35세 참수형
14 성 장성집(張――) 요셉 순교자 1786년 1839년 5월 26일 54세 옥사
15 성녀 김(金) 바르바라 과부, 순교자 1805년 1839년 5월 27일 35세 옥사
16 성녀 이(李) 바르바라 동정 순교자 1825년 1839년 5월 27일 15세 옥사
17 성녀 김노사(金老沙) 로사 동정 순교자 1784년 1839년 7월 20일 56세 참수형
18 성녀 김성임(金成任) 마르타 과부, 순교자 1790년 1839년 7월 20일 50세 참수형
19 성녀 이매임(李梅任) 데레사 부인, 순교자 1788년 1839년 7월 20일 52세 참수형
20 성녀 김장금(金長金) 안나 과부, 순교자 1789년 1839년 7월 20일 51세 참수형
21 성 이광렬(李光烈) 요한 동정 순교자 1795년 1839년 7월 20일 45세 참수형 9의 남동생
22 성녀 이영희(李英喜) 막달레나 동정 순교자 1809년 1839년 7월 20일 31세 참수형
23 성녀 김누시아(金累時阿) 루치아 동정 순교자 1818년 1839년 7월 20일 22세 참수형
24 성녀 원귀임(元貴任) 마리아 동정 순교자 1818년 1839년 7월 20일 22세 참수형
25 성녀 박큰아기(朴大阿只) 마리아부인, 순교자 1786년 1839년 9월 3일 54세 참수형 11의 언니
26 성녀 권희(權喜) 바르바라 부인, 순교자 1794년 1839년 9월 3일 46세 참수형 9의 아내
27 성 박후재(朴厚載) 요한 상인, 순교자 1799년 1839년 9월 3일 41세 참수형
28 성녀 이정희(李貞喜) 바르바라 과부, 순교자 1799년 1839년 9월 3일 41세 참수형
29 성녀 이연희(李連熙) 마리아 부인, 순교자 1804년 1839년 9월 3일 36세 참수형 12의 아내
30 성녀 김효주(金孝珠) 아녜스 동정 순교자 1816년 1839년 9월 3일 24세 참수형 44의 여동생
31 성 최경환(崔京煥) 프란치스코 회장, 순교자 1805년 1839년 9월 12일 35세 옥사
32 성 앵베르 라우렌시오
(Imbert Laurent)
주교, 순교자 1796년 3월 23일 1839년 9월 21일 43세 군문 효수형 한국 이름 범세형(范世亨),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2대 교구장
33 모방 베드로
(Maubant Pierre)[6]
신부, 순교자 1803년 9월 20일 1839년 9월 21일 35세 군문 효수형 한국 이름 나백다록(羅伯多祿)
34 성 샤스탕 야고보
(Chastan Jacques)
신부, 순교자 1803년 10월 7일 1839년 9월 21일 35세 군문 효수형 한국 이름 정아각백(鄭牙各伯)
35 성 유진길(劉進吉) 아우구스티노 역관, 순교자 1791년 1839년 9월 22일 49세 참수형 48의 아버지
36 성녀 허계임(許季任) 막달레나 부인, 순교자 1773년 1839년 9월 26일 67세 참수형
37 성 남이관(南履灌) 세바스티아노 회장, 순교자 1780년 1839년 9월 26일 60세 참수형
38 성녀 김유리대(金琉璃代) 율리에타 궁녀, 순교자 1784년 1839년 9월 26일 56세 참수형
39 성녀 전경협(全敬俠) 아가타 궁녀, 순교자 1787년 1839년 9월 26일 51세 참수형
40 성 조신철(趙信喆) 가롤로 복사, 순교자 1795년 1839년 9월 26일 45세 참수형 70의 남편
41 성 김제준(金濟俊) 이냐시오 회장, 순교자 1796년 1839년 9월 26일 44세 참수형 1의 아버지
42 성녀 박봉손(朴鳳孫) 막달레나 과부, 순교자 1796년 1839년 9월 26일 44세 참수형
43 성녀 홍금주(洪今珠) 페르페투아 과부, 순교자 1804년 1839년 9월 26일 36세 참수형
44 성녀 김효임(金孝任) 골룸바 동정 순교자 1814년 1839년 9월 26일 26세 참수형 30의 언니
45 성녀 김(金) 루치아 과부, 순교자 1769년 1839년 7월 71세 옥사
46 성녀 이(李) 가타리나 과부, 순교자 1783년 1839년 9월 57세 옥사
47 성녀 조(趙) 막달레나 동정 순교자 1807년 1839년 9월 33세 옥사
48 성 유대철(劉大喆)[7] 베드로 소년, 순교자 1827년 1839년 10월 31일 13세 교살 35의 아들
49 성녀 유(柳) 체칠리아 과부, 순교자 1761년 1839년 11월 23일 79세 옥사 복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의 아내,복자 정철상과 2, 54의 어머니
50 성 최창흡(崔昌洽) 베드로 회장, 순교자 1787년 1839년 12월 29일 53세 참수형
51 성녀 조증이(趙曾伊) 바르바라 부인, 순교자 1782년 1839년 12월 29일 58세 참수형
52 성녀 한영이(韓榮伊) 막달레나 과부, 순교자 1784년 1839년12월 29일 56세 참수형
53 성녀 현경련(玄敬連) 베네딕타 회장, 순교자 1794년 1839년 12월 29일 46세 참수형 72의 누나
54 성녀 정정혜(丁情惠) 엘리사벳 동정 순교자 1797년 1839년 12월 29일 43세 참수형 복자 정약종과 49의 딸, 복자 정철상과 2의 여동생
55 성녀 고순이(高順伊) 바르바라 부인, 순교자 1798년 1839년 12월 29일 42세 참수형
56 성녀 이영덕(李榮德) 막달레나 동정 순교자 1812년 1839년 12월 29일 28세 참수형
57 성녀 김(金) 데레사 과부, 순교자 1796년 1840년 1월 9일 44세 교수형
58 성녀 이(李) 아가타 동정 순교자 1823년 1840년 1월 9일 17세 교수형 9의 딸
59 성 민극가(閔克可) 스테파노 회장, 순교자 1787년 1840년 1월 30일 53세 교수형
60 성 정화경(鄭――) 안드레아 회장, 순교자 1807년 1840년 1월 23일 33세 교수형
61 성 허(許) 바오로 군인, 순교자 1795년 1840년 1월 30일 45세 옥사
62 성 박종원(朴宗源) 아우구스티노 회장, 순교자 1792년 1840년 1월 31일 48세 참수형
63 성 홍병주(洪秉周) 베드로 회장, 순교자 1798년 1840년 1월 31일 42세 참수형
64 성녀 손소벽(孫小碧) 막달레나 부인, 순교자 1801년 1840년 1월 31일 39세 참수형
65 성녀 이경이(李瓊伊) 아가타 부인, 순교자 1813년 1840년 1월 31일 27세 참수형
66 성녀 이인덕(李仁德) 마리아 동정 순교자 1818년 1840년 1월 31일 22세 참수형
67 성녀 권진이(權珍伊) 아가타 부인, 순교자 1819년 1840년 1월 31일 21세 참수형
68 성 홍영주(洪永周) 바오로 회장, 순교자 1801년 1840년 2월 1일 39세 참수형
69 성 이문우(李文祐) 요한 신학생, 순교자 1809년 1840년 2월 1일 31세 참수형
70 성녀 최영이(崔榮伊) 바르바라 부인, 순교자 1818년 1840년 2월 1일 22세 참수형 40의 아내
71 성 김성우(金星禹) 안토니오 회장, 순교자 1795년 1841년 4월 29일 47세 교수형
72 성 현석문(玄錫文) 가롤로 회장, 순교자 1797년 1846년 9월 19일 50세 군문 효수형 53의 남동생
73 성 남경문(南景文) 베드로 회장, 순교자 1796년 1846년 9월 20일 51세 교수형
74 성 한이형(韓履亨) 라우렌시오 회장, 순교자 1799년 1846년 9월 20일 48세 교수형
75 성녀 우술임(禹述任) 수산나 과부, 순교자 1803년 1846년 9월 20일 44세 교수형
76 성 임치백(林致百) 요셉 포졸, 순교자 1804년 1846년 9월 20일 43세 교수형
77 성녀 김임이(金任伊) 데레사 동정 순교자 1811년 1846년 9월 20일 36세 교수형
78 성녀 이간난(李干蘭) 아가타 동정 순교자 1814년 1846년 9월 20일 33세 교수형
79 성녀 정철염(鄭鐵艶) 가타리나 부인, 순교자 1817년 1846년 9월 20일 30세 교수형
80 성 유정률(劉正律) 베드로 회장, 순교자 1837년 1866년 2월 17일 30세 장살
81 성 베르뇌 시메온
(Berneux Simeon)
주교, 순교자 1814년 5월 14일 1866년 3월 7일 52세 참수형 한국 이름 장경일(張敬一),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4대 교구장
82 성 브르트니에르 유스토
(Bretenieres Justus)
신부, 순교자 1838년 2월 28일 1866년 3월 7일 28세 참수형 한국 성 백(白)
83 성 도리 베드로 헨리코[8]
(Dorie Pierre Henri)
신부, 순교자 1839년 9월 23일 1866년 3월 7일 27세 참수형 한국 성 김(金)
84 성 볼리외 베르나르도 루도비코
(Beaulieu Bernard Louis)
신부, 순교자 1840년 10월 8일 1866년 3월 7일 26세 참수형 한국 이름 서몰례(徐沒禮)
85 성 남종삼(南鍾三) 세례자요한 승지, 순교자 1817년 1866년 3월 7일 50세 참수형
86 성 전장운(全長雲) 세례자요한 상인, 순교자 1811년 1866년 3월 9일 56세 참수형
87 성 최형(崔炯) 베드로 회장, 순교자 1814년 1866년 3월 9일 53세 참수형
88 성 정의배(丁義培) 마르코 회장, 순교자 1795년 1866년 3월 11일 72세 군문 효수형
89 성 우세영(禹世英) 알렉시오 번역가, 순교자 1845년 1866년 3월 11일 22세 군문 효수형
90 성 다블뤼 안토니오
(Daveluy Antoine)
주교, 순교자 1818년 3월 16일 1866년 3월 30일 49세 군문 효수형 한국 이름 안돈이(安敦伊),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5대 교구장
91 성 위앵 마르티노 루카
(Huin Martin Luc)
신부, 순교자 1836년 10월 20일 1866년 3월 30일 30세 군문 효수형 한국 성 민(閔)
92 성 오매트르 베드로
(Aumaitre Pierre)
신부, 순교자 1837년 4월 8일 1866년 3월 30일 29세 군문 효수형 한국 성 오(吳)
93 성 장주기(張周基) 요셉 회장, 순교자 1803년 1866년 3월 30일 64세 군문 효수형
94 성 황석두(黃錫斗) 루카 회장, 순교자 1813년 1866년 3월 30일 54세 군문 효수형
95 성 손자선(孫――) 토마스 농부, 순교자 1844년 1866년 5월 18일 23세 교수형
96 성 정문호(鄭――) 바르톨로메오 원님, 순교자 1801년 1866년 12월 13일 66세 참수형
97 성 조화서(趙――) 베드로 농부, 순교자 1815년 1866년 12월 13일 52세 참수형 102의 아버지
98 성 손선지(孫――) 베드로 회장, 순교자 1820년 1866년 12월 13일 47세 참수형
99 성 이명서(李――) 베드로 농부, 순교자 1821년 1866년 12월 13일 46세 참수형
100 성 한재권(韓――) 요셉 회장, 순교자 1836년 1866년 12월 13일 31세 참수형
101 성 정원지(鄭――) 베드로 농부, 순교자 1846년 1866년 12월 13일 21세 참수형
102 성 조윤호(趙――) 요셉 농부, 순교자 1848년 1866년 12월 23일 19세 참수형 97의 아들
103 성 이윤일(李尹一) 요한 회장, 순교자 1823년 1867년 1월 21일 45세 참수형

4. 참고 사이트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1] Kim Taegon과 Chong Hasang이라는 철자는 '김대건'과 '정하상'의 매큔-라이샤워 표기법 표기 Kim Taegŏn과 Chŏng Hasang에서 반달표(˘)만 제거한 것이다.[2] 사진에서 보이는 기도하고 있는 푸른 도령모를 쓴 소년은 최연소 성인인 유대철 베드로 성인으로 순교 당시 13세였다.[3] 당시 김수환 추기경은 시성 문제가 아니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행사 준비 때문에 교황청을 찾았다.[4] 한국 103위 순교자는 시복되면서 이미 기적을 면제받았는데 또 다시 기적을 면제받을 경우 다른 나라 천주교회들과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으므로 기적 관면이 아니라 기적 심사 관면을 내세우라고 조언했다. 마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시복 시성에 있어서 지역 교회의 편의를 최대한 봐주도록 할 것을 골자로 한 지시를 내렸기 때문에 한국 천주교에 유리하게 작용했다.[5] 다만 '소위'라 표현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자체가 기적으로 인정된 것이 아니라 기적 심사가 면제된 것일 뿐이다.[6] 김대건 안드레아, 최양업 토마스, 최방제 프란치스코를 신학생으로 선발하여 유학보냈다. 최방제는 도중에 죽었지만, 김대건최양업은 무사히 자라나 신부가 되었다.[7] 천주교 서울대교구 청담동 본당의 주보 성인이다.[8] 프랑스 뤼송 교구 출신. 리슐리외 추기경이 사목하던 교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