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2 20:01:27

닉 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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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닉 버그
Nicholas Evan Berg[1]
파일:8741946_108449753321.jpg
출생 1978년 4월 2일
펜실베이니아 주 체스터
사망 2004년 5월 7일 (향년 26세)
이라크 바그다드
직업 타워 수리공
학력 헨더슨 고등학교, 드렉셀 대학교 (중퇴), 코넬 대학교 (중퇴)
가족 父 마이클 버그, 母 수잔 버그, 형제자매 데이빗 버그, 사라 버그
종교 불명

1. 개요2. 사건 이전의 생애3. 사건의 경위4. 피살
4.1. 음모론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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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My name is Nick Berg, my father's name is Michael, my mother's name is Suzanne. I have a brother and sister, David and Sarah. I live in West Chester, Pennsylvania, near Philadelphia."[2]
"제 이름은 닉 버그, 아버지 이름은 마이클, 어머니 이름은 수잔입니다. 저에게는 데이비드와 세라라는 남매가 있습니다. 저는 필라델피아 근처에 있는 펜실베이니아 웨스트체스터에 삽니다."

이라크 무장 테러세력 유일신과 성전에 의한, 미디어 테러의 첫 최초 희생자.

김선일 살해 전 참살 되는 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공개 되어 엄청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2. 사건 이전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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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버그의 고등학교 졸업 사진
닉 버그의 고향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이며 유대계 미국인이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 후, 코넬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얼마 안 가 자퇴했다. 이후 드렉셀 대학교를 입학하는 등 여러 대학교를 전전하였으나 학위는 따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버그의 친구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색소폰 연주를 굉장히 좋아했으며, 학교의 마칭 밴드에 가입해 활동하기도 했다.

대학교 중퇴 이후, 닉 버그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통신 회사의 관리자로 일하면서 우간다케냐에도 출장을 나갔으며, 그곳의 빈민들을 위해 무상으로 라디오 탑을 수리하고 식량과 돈을 제공하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기도 했다.

3. 사건의 경위

닉 버그는 2003년 12월, 아버지가 대표인 통신 시설 회사의 관리자로 이라크에 처음으로 입국했으며, 이라크인과 결혼한 이모의 집을 찾기도 했다. 이때는 별 문제 없었고 2004년 2월에 이라크를 떠났다.

하지만 그는 2004년 3월 업무상의 이유로 다시 이라크를 찾았다. 후에 원래 일찍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수상한 행동을 보인다는 이유로 이라크 경찰한테 잡혀서 13일 간 구금된 바람에 귀국이 늦어졌다. FBI에서 비무장한 미국인에게 이라크는 너무 위험하니 빨리 떠날 것을 권고받았으나 거절하고 바그다드를 여행하다가 결국 유일신과 성전에게 납치되고 말았다.

4. 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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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he_Death_of_an_American.png
참수당하기 직전의 닉 버그.

그를 납치한 유일신과 성전은 닉 버그를 무참히 살해하여 그의 목 없는 시신을 고속도로에 유기했고, 그 해 5월 8일 미군에 의해 시신이 발견되었다.

이후 5월 11일, 유일신과 성전은 테러 단체의 성명과 잔혹한 참수 장면이 담긴 5분 가량의 비디오를 그대로 공개하며, 이는 인터넷 통신망으로 퍼져 나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도 엄청난 충격과 파장을 안겨 주었다.

영상에서 그들은 성명을 통해 미군에게 버그를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의 이라크군 포로와 교환하는 것을 제시했으나 미군이 이를 거절했다고 주장했으며, 또한 조지 워커 부시이라크 침략에 대해서 맹렬하게 비난하고 부시를 개라고 부르며 비난하고 독설을 퍼부었다. 그리고 미군의 포로 학대 행위에 의해 모욕을 당한 이라크 포로들을 언급하며 '무슬림 전사들의 더럽혀진 명예는 인명(人命)을 거두어야만 치유될 수 있다'라고 주장하여, 버그의 참수 살인을 정당화하며 그 책임이 미국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아랍 언론들은 조직의 수장인 알 자르카위가 그를 직접 참수했다고 보도했고, 참수 동영상의 원 제목도 "알 자르카위가 미국인의 목을 벤다" 였다.
파일:1205050221176316.jpg
닉 버그의 죽음으로 미국 전역은 엄청난 충격과 슬픔에 빠졌으며 부시는 이를 "야만적인 테러 행위" 라며 비판 했다. 이에 반해 닉 버그의 아버지인 마이클 버그는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한 때 충격으로 주저앉아 오열하기도 했다. 이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는 슬픔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닉의 죽음은 이라크인들의 잘못이 아니라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킨 부시와 도널드 럼즈펠드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잘못이 있다고 인터뷰했으며 "이라크인을 돕기 위해 이라크에 간 닉이 부시와 럼즈펠드의 죄로 죽었다." 며 분노와 안타까움을 표했다.

4.1. 음모론

다만 석방일과 납치에 이르기까지 2주 이상 시간 공백이 있는데다 그 사이의 행적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아 음모론의 논란이 더욱 크게 일기도 했다. 이름 그대로 유대계 미국인인데다 이라크 입국 직전에 이스라엘을 경유했다는 점,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3]에서 일했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테러범들의 아랍어 억양이 이라크인이 아니고 체격이 이라크인 치고는 매우 크다는 등,[4]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 있던 의자와 주황색 죄수복이 참수 비디오에 등장했다는 등의 근거로 인해 사건의 극 초기에는 미국의 자작극이라는 주장과 의혹도 제기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단체에 의해 세 번째 희생자로 김선일 사건이 터지면서 이런 음모론들은 사실상 전부 다 묻혔다.[5]

5. 여담

  • 버그의 생전 사진을 보면 그는 항상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녔는데, 참수 직전 머리와 수염이 상당히 덥수룩 해진 것을 보면 꽤 오랜 기간 동안 피랍당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 김선일과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단순 무장단체에 억류되었다가 유일신과 성전에 넘겨져 참수당했다.
  • 공개된 영상 길이가 김선일 영상보다는 긴 편인데, 김선일 영상과의 차이점을 말하자면 김선일은 빨간 색 안대를 쓰고 희생당했지만 닉 버그는 유일하게 안대를 안 쓴 상태로 참수당했다. 사복 차림으로 참수당한 일본인 인질이었던 코다 쇼세이를 제외하고, 그와 마찬가지로 추후에 희생된 폴 존슨, 유진 암스트롱, 잭 헨슬리, 케네스 비글리는 모두 참살하기 전에 안대를 씌우고 오렌지색 죄수복을 입히는 짓을 하였다.
  • 평화주의자보이스카웃 시절, 사격술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보이스카웃을 관뒀다고 한다.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라크 전쟁에는 찬성하는 모순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의 아버지는 반전주의자로 극우 세력의 공격의 표적이었고, 자신의 아들의 죽음 이후 부시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서한을 썼고 반전단체의 초청으로 한국에도 방문하기도 했으며 같은 해에 참수당했던 김선일의 부모를 만나 위로하는 모습이 생중계되었다.
  • 시신은 그의 고향인 펜실베이니아의 몬테피오레 묘지에 안장되었다.
  • 파일:1205050438625691.jpg
    닉 버그의 아버지와 김선일의 부모들이 서로 만나서 양 국의 아들이 살아있었던 생전의 사진을 교환하고 이라크에서 같은 아들을 잃어버린 고통의 슬픔을 나누면서 위로를 하는 장면이 뉴스에 방영 되기도 했다.
  • 한국 뉴스에 보도될 때는 그가 참수당할 때 지르는 약간의 비명 소리가 살짝 들리며, 참수 동영상이 편집되어 모자이크만 씌운 채로 방영된 적이 있다.
  • 버그가 피살된 뒤, 그의 고등학교 동창들이 만든 추모 사이트인데 그의 친구들과 많은 이들의 후원 덕에 2004년 경에 만들어진 사이트가 2023년인 현재까지도 문제 없이 운영 중이다. 해당 사이트에는 버그가 생전에 썼던 이메일과 그와 관련된 일화가 가득하며 버그를 기억하던 이들 대부분은 그가 "선량하고, 남을 돕길 좋아하고, 모험심이 강하고 관대한 사람"으로 묘사하며 그의 죽음을 상당히 안타까워하고 추모하고 있다. #
  • 2004년 5월, 미국 오리건주의 라디오 방송국인 포틀랜드 KNRK-FM에서 두 명의 DJ가 참수당하는 닉 버그의 비명 소리를 그대로 라디오 방송에 내보내고는 이를 듣고 웃음을 터트리거나 조롱을 하는 등의 고인을 모독하는 몰지각한 행동을 하여 엄청난 질타를 받은 적이 있었다. 결국 문제의 DJ들은 해고되었고 이후 사과문을 발표했다.#1#2

[1] 니콜라스 이반 버그[2] 김선일과 비슷하게 참수 직전 유언을 남겼다.[3] 미군에 의한 이라크 포로에 대한 성추행 및 학대 사건인,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 포로 학대사건'이 2003년에 터졌다.[4] 다에쉬 대원들은 아랍인들만 구성되어지 않았고 서양의 네오나치 회원, 백인 무슬림도 종종 있었다.[5] 엄밀히 말하면, 추후의 추가되는 인질들과는 달리 테러 단체가 버그의 몸값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인질극을 자체적으로 벌이지 않고 자신들만의 낭독문을 읽으면서 끝난 뒤, 그를 바로 살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