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유영철 柳永哲 | |
출생 | 1970년 4월 18일 ([age(1970-04-18)]세) |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1] | |
출신 | 서울특별시 마포구 공덕동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전주 류씨 (全州 柳氏) |
종교 | 개신교 → 무신론 → 불교(?) → 개신교(?)[2] |
거주지 | 서울특별시 마포구 노고산동 54-96 (검거 당시)[3] |
범죄유형 | 연쇄살인, 사체 훼손(식인), 방화[4], 성폭행[5], 주거침입, 절도[6], 공무원자격사칭[7], 공문서 위조, 동물 학대[8] |
범행기간 | 1988년 8월 23일[9]~2004년 7월 15일 |
인명피해 | 20명 살해 |
신체 | 170cm, O형 |
학력 | 서울공덕초등학교 (졸업) 경서중학교 (졸업) 국제공업고등학교 중퇴 |
가족 | 3남 1녀 중 3남, 아들(1994년 10월 26일생) |
최종 형량 | 사형 (형집행 무기한대기) |
수감처 | 서울구치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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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리나라의 범죄자는 유영철의 등장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그 전까지는 사이코패스라는 개념 자체가 대한민국에 없었다.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이 한국에서 소개된 계기가 바로 유영철 사건이고, 돈이 아닌 살인 자체가 목적인 연쇄살인이 처음 등장한 것이다.
이수정
이수정
과거에는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의 전통적인 수사기법은 면식범을 대상으로 수사하는 거였다. 또는 관내에 있는 우범자가 인근 지역에서 돈을 노리고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가지고 수사를 했다. 이러한 전통적 수사기법의 공식을 깨뜨린 게 바로 유영철 사건이었다.
표창원
대한민국의 범죄자.표창원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사람 20명을 살해한 대한민국 최악의 연쇄살인범이다.[10][11] 연쇄살인 이전에도 절도, 강간, 폭력 등 수많은 범죄를 저질러 검거 당시 전과 14범이었으며, 대한민국의 연쇄살인범 중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자로 유명하다.[12]
유영철의 엽기적인 범죄 행각으로 인해 사이코패스의 개념이 대중에게 알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영철이 체포되기 30여년 전 김대두의 경우 범죄자의 정신적인 측면을 연구함으로써, 이후의 사건들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단 지적이 일부 있었지만 사형이 집행됨으로써 이뤄지지 못했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4차례 (276회, 304회, 499회, 1038회) 유영철에 대해 다룬 바 있다.
2019년 10월 27일 <그것이 알고싶다> 1188회에서 유영철의 얼굴이 공개되었다. "나 사이코인 것 몰라?", "(교도관에게)너 하나 죽여도 난 어차피 (이미) 사형이야." 같은 말을 하면서 물을 끓여 오라고 하거나 교도관을 폭행하고 교도관 앞에서 자해하는 등 교도소에서도 교도관들을 상대로 가학적인 행위를 일삼고 있다고 전해졌다.
2. 생애
중학교 졸업사진 |
유영철의 가정은 찢어지게 가난했으며, 알코올 의존증으로 인한 아버지의 폭력과 외도가 심했다고 한다. 유영철은 고창에 있는 무당이었던 할머니 집에서 자라다, 6세가 되던 해부터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계모 슬하에서 형제들과 자랐다. 유영철의 아버지와 계모는 밤만 되면 유영철에게 폭력을 행사했다.[15] 이후 거주지를 옮겨 어머니와 같이 살게 되면서 초등학교에 다시 입학하게 된다. 결국 초등학교를 2번 입학한 셈이 되며 만 7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초·중·고등학교 시절을 서울특별시 마포구 공덕동 일대에서 보냈다. 중학교 1학년 무렵 아버지가 사망하고 유영철과 형제들은 생모와 결합했다. 유영철의 어머니가 아이들을 돌보는 보모로 살림을 꾸렸으며 그는 계모 밑에 살던 시절보다 행색이 훨씬 나아 보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유영철은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생활기록부에는 말이 없고 '애어른' 같았다는 말이 남겨져 있다. 그림과 운동에 소질을 보이던 아이였으나, 나중에 펼쳐질 삶을 예고하듯 유난히 개구리를 잡아 목을 비틀고 해부하는 것을 좋아했다. 동물에 관심이 많던 유영철은 친구들한테 의사가 되겠다고 자랑했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친엄마와 가정을 꾸려 전보다 밝아진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싸움을 잘 하던 유영철은 주변 고등학교의 폭력조직과 싸움을 벌이고 선도부 반장을 맡아 담배를 피우는 학생을 보면 선배라도 무릎을 꿇게 했다. 교사 대신 교사한테 혼나고 있던 학생을 폭행하는 등 폭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세운상가에서 불법 LP판을 훔치고 나서는 친구들한테는 '어차피 불법이니 절도가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후 화가를 꿈꾸던 유영철은 예술고등학교에 지원했으나 색약 때문에 낙방하자 좌절하였고[16][17] 이후 국제 공업고등학교[18]에 입학하였지만 2학년이었던 1988년 8월 23일 절도로 구속되어 소년원에 들어간 뒤 결국 자퇴하였다.
1991년 수차례 절도죄로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잡범이 된 유영철은 1993년 황씨라는 여자와 결혼했지만 결혼한 지 몇 달 만에 또 절도죄로 교도소에 들어갔다.
출소한 유영철은 1994년 10월 아들(현재 [age(1994-10-26)]세)을 득남한 이후, 아침에는 웨딩숍 사진관에서 일하고 밤에는 불법퇴폐 업주들을 상대로 경찰관을 사칭하면서 금품갈취를 하였다. 1994년 11월 그의 둘째 형이 한강에서 투신자살을 하였다고 기자에게 이야기한 바 있다.[19] 그러다가 1998년 공무원 사칭하고 2000년에는 보다 못한 아내의 신고로, 사창가에서 일하던 15살 여성을 강간한 혐의로 교도소에서 장기간 복역하게 되면서 2000년 12월 이혼당했다. 최종 선고받은 형량은 3년 6개월로 2003년 9월 11일까지 교도소에서 복역했다.
유영철의 인생
2000년 미성년자 성폭행으로 구속되어 현장검증을 하던 모습 |
3. 범죄
자세한 내용은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4. 근황
유영철은 법정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재판에 나와 '재판에 나오기 싫다'고 주장하던 유영철한테 보다 못한 판사가 '출석 여부는 피고인이 결정할 수 없다'고 말하자 분노한 유영철이 '생각하고 말고가 안 나온다고요'라는 말을 내뱉고 피고인석을 뛰어넘어 판사한테 돌진하다가 법정경위와 교도관 20명이 유영철을 법정 밖으로 끌고 나갔다. 법정에는 유영철이 사용했던 망치까지 진열돼 있었기에 아찔한 상황이었는데 속기사와 방청객까지 대피하는 일이 벌어졌다. #
유영철은 월간조선 이은영 기자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기사를 쓴 것이 계기가 되어 약 1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그 편지는 2005년 '살인중독'이라는 책으로 발간되었다. 하지만 발간과 동시에 잔인성을 이유로 판매금지 처분을 당해 2023년 기준으로 희귀 도서로 20만원이 넘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그 외에도 전국의 23개의 도서관에서도 '살인중독'을 빌려볼 수 있으나 도서관의 개수가 극히 한정적이라 빌려 보기 쉽지 않다. 살인중독 보유 도서관 목록
유영철이 감옥에 들어간 후 교도관과 동료 수감자들을 상대로 행패를 부려 온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교도관의 목을 졸라서 독방에 수감된 적도 있으며 교도관을 통해 야설을 밀반입한 것은 이미 유명한 사건이다. 그 외에도 꾸준히 교화 불능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며 살고 있다고 한다. 어차피 지금 판결받은 형벌보다 더 무거운 것이 없기 때문에 잃을 게 없다는 심보로 나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감옥에서도 유영철은 교화되지 않았다.
2019년 그것이 알고싶다와 김복준 위원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된 근황을 보면 더 가관인데[20] 유영철이 걸핏하면 꾀병을 부려서 혈세를 낭비하게 하며 사실상 교도소에서 교도관들 머리 꼭대기 위에 군림하며 희희낙락하고 있다고 한다.# 선술된 야설 밀반입 사건에 대해서도 김복준 위원은 해당 교도관이 뇌물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유영철에게 하도 시달린 나머지 타협의 의도로 '이거라도 먹고 떨어져서 조용히 있으라'는 뜻에서 준 것일 거라고 해석하였다. 그 정도로 유영철은 현재 형 집행법을 모조리 어기면서 반성 따윈 없는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21]
유영철은 닭고기를 먹을 때 제일 큰 부분이나 맛있는 부분은 자기가 먹고 남들은 몸통이나 날개를 먹게 하는 특혜 같은 것을 누렸으며 "야! 나 누군지 몰라? 나야 나, 사이코야. 문 열어. 너 하나 죽여도 나는 어차피 사형이야." 라고 말하며 한밤중에 난동을 부리거나 "아 뜨거운 물 좀 줘봐. 커피 한 잔 마시게." 라고 하면 교도관이 뜨거운 물을 끓여서 줄 정도다. 유영철의 감방이 무섭다는 이유로 교도관이 못 들어갈 정도로 그 정도가 매우 심하다고 전해졌다. 한 교도소 관계자는 직원이 들어오면 물거나 침을 뱉으려고 하고 수형자라는 법적 지위와 신분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 위에 산다."고 한탄했다.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한 표창원, 박지선, 이수정 등 범죄 심리 분석가들 역시 이에 한탄하였으며 표창원은 “여전히 유영철은 어떤 반성이나 후회, 참회나 이런 것들을 전혀 느끼고 있지 않다”고 단언했고 그를 통제하기 위해선 교도관들에게 보다 넓은 재량권을 줄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교도관들의 목을 조르면서 "나 싸이코인 거 모르냐!"라고 소리치며 난동을 부렸다가 제압당해 독방으로 끌려가기도 했다. 지금도 구치소에 적응을 못 해 교도관들의 가발을 벗겨 망신을 주거나 화단을 손괴하는 등 일탈 행위를 자꾸 저지른다고 한다.[23]
위에 알려진 이야기들은 대부분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던 복역 초기 시절의 이야기고 대구교도소로 이송된 뒤에는 서울에서 하듯이 행동하다가 절차대로 조사 수용되어 보호장비 착용을 오랫동안 당해 수용태도가 상당히 우수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24] 대구권에서 근무하는 교정직들은 대부분이 청송교도소에 장기간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당연히 이들은 흉악범들을 다루는 데는 아주 도가 튼 사람들이다. 교정직군들은 대부분 자신의 연고지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고 청송이 대구 및 경북권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25] 이런 탓에 대구교도소는 규율이 상당히 엄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연히 유영철한테는 견디기 어려운 환경이며, 현재는 서울 기관으로 재이송을 매우 희망한다는 소문이 있다. 2021년 방영된 KBS2의 교양 프로그램 표리부동 10회에도 유영철이 표창원에게 "여죄를 알려줄테니 서울구치소로 이송시켜 달라"는 제안을 했다는 언급이 있다고 하니 대구에 수감된 것이 어지간히 답답한 모양이다. 물론 유영철의 죄질을 생각하면 자업자득이겠지만.
2023년 9월 다시 서울구치소로 이감되었다. # 그런데 그 이유가 '유영철의 희망을 들어주기 위해' 따위가 아니라 사형 집행 시설을 보유한 4개 교정기관(서울구치소·부산구치소·대구교도소·대전교도소)에 시설 점검을 지시했는데 실질적으로 사용 가능한 시설을 갖춘 곳은 서울구치소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소원대로 서울로 이감되었지만 놀랄 만큼 얌전히 지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26]
유영철이 수감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밤마다 피해자들 환상이 나타나 피곤하다고 토로한 사실이 알려졌다. # 밤에 잠을 잘 못잔다며 "피해자들이 밤마다 귀신으로 나타난다" "독거실 내 화장실 쪽 천장 밑에서 자꾸 환상이 보인다. 3명에서 4명 정도가 계속 귀신으로 나타난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5. 대중매체에서의 언급
- 유영철에 의해 가정이 파괴된 유가족들은 이후에도 고통 속에서 살게 되었는데 2007년 12월 23일 <SBS 스페셜> '용서... 그 먼길 끝에 당신이 있습니까?' 편[27]에서 피해자 유족들의 애환과 근황이 처음 소개되었고 2010년 동아일보 기사, 2011년 7월 13일 조선일보 기사에서도 다루어졌다. 2011년 7월 31일 <SBS 스페셜> '화내는 당신에게' 2부에도 피해자 유족 1명의 근황이 또 나왔다. 특히 피해자 유족 고XX은 어머니, 아내, 아들을 잃고도 용서하는 마음을 내비치면서 사형을 반대하는 탄원서를 냈다. 또 다른 유족인 안XX은 유영철에게 큰형이 살해당하자 둘째 형과 남동생이 차례로 자살했으며 2011년 <SBS 스페셜>, 2022년 <레인코트 킬러> 등을 토대로 하면 유영철을 향한 분노를 잊지 못해 술에 의지하며 집기를 부수거나 집 벽에 칼을 꽂는 행동을 보였다. 자신도 자살까지 시도했으나 박스에 버려진 강아지를 보고 마음을 바꾸기도 했다고 한다.
-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는 원래 이 인간을 모티브로 한 등장인물이 나올 계획이었지만 세간의 비판을 인식하여 그만두었다는 작가 본인의 언급이 있었다. 대신 '여러 해만에 사형집행 재개 여론을 들끓게 만든 희대의 살인마'라고 에필로그에서 살짝 언급만 된다. 공지영 본인은 사형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유영철을 보면서 '저런 인간은 죽여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느꼈다고. 다만, 공지영은 유영철을 보고서 "그 사람 눈이 되게 예쁘게 생겼어요."라는 둥, 피해자와 유가족의 아픔을 전혀 고려치 않고 망언에 가깝게 범죄자 미화를 하여 많은 비판이 뒤따랐다. 심지어 공지영은 연쇄 살인을 저지른 책임이 유영철 본인이 아니라, '눈도 예쁘고 글씨도 예쁜' 사람의 일탈적 범행을 초기에 못 잡아 싸이코패스로 키운 사회에 있다는 뉘앙스로 해석할 여지까지 남겼다. 공지영이 간과하는 게, 유영철은 첫 살인 행각인 신사동 노교수 부부 살해부터 싸이코패스 그 자체였고 잔인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래 이미지 참조.
- 귀귀의 웹툰 뉴 바이블에서는 8~9화에서 주인공 제이에 의해 8인의 사형수 중 한 명으로 살인범 토너먼트를 하게 되었고 자신의 우상과 대결하게 되었다. 허나 정두영의 기술인 '쓰러지는 척 하며 뒷축 후리기'를 자신도 카피하여 계속 서로 이 기술만 시전하며 싸움이 재미없어지자 교도소장에 의해 정두영과 함께 즉결 총살당하는 최후를 맞았다.
- SBS 드라마 《모범택시》에서 장성철의 부모와 김도기의 어머니를 살인한 연쇄살인범(오철영)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다.
- 저지른 사건의 추적 과정 등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넷플릭스에서 《레인코트 킬러: 유영철을 추격하다》라는 제목으로 전세계에 공개되었다.
- 권일용의 르포와 이를 원작으로 하는 동명의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 프로파일링을 통해 연쇄살인범을 잡는 스토리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다. 배우 한준우가 연기했다.
- 2024년 10월 31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 나왔다.[30]
6. 여담
- 유영철은 구치소에 들어가서도 얌전히 있지 않았다. 우선 감방에 들어와서 동료 수감자들을 훑어보더니 "이 중에서 조폭 수감자 한 명과 경제사범 수감자 한 명을 반드시 데리고 가겠다[31]"고 선포해서 구치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러나 정작 조폭들은 이 말을 전해듣고 코웃음을 치면서 “감히 누구를 건드리겠다는 것이냐. 유영철을 한 번 혼내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고 전해졌다. 이에 교도소 측은 유영철에게 4~5명의 교도관을 상시 붙여 놨으며 조폭과 유영철에 대한 상호접근을 막았다.[32] 그럼에도 결국은 '아주 안하무인인 데다 남들 머리 위에 있으려고 하는' 모습에 화가 난 조폭들에 의해 어느 날 다구리를 당하자 ‘밖에서 깡패 새X 하나 못 죽이고 들어온 게 한’이라고 비명을 질렀다고 한다(...) 재소자 시절 유영철과 같은 방을 썼던 전직 조폭의 증언
- 2004년에는 기자에게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은 이미 죽었거나 교도소에 수감 중일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이유는 "연쇄살인범은 그런 식의 제재가 없으면 결코 살인을 멈추지 못한다"는 것. # 그리고 그 말대로 미궁 속에 빠진 진범 이춘재가 다른 범죄 1건으로 무기징역[33]을 살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 유영철의 판결문 전문이다. 보면 알겠지만 다른 범죄자에 비해 판결문이 엄청나게 길다. 사람을 한두 명도 아니고 밝혀진 것만 20명이나 살해했으며, 살인 행각 과정에서 잡다한 다른 범죄들도 많이 저질렀기 때문이다.[34]
- 유영철의 PCL-R[35]이 만점에 근접한 만큼 해외에서도 유명한 살인마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사진잡지 <라이프>에서 세계 30대 살인마에도 올랐으며 연쇄살인자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면 어지간한 곳에서는 다 그의 이름을 거론한다. 심지어 유영철이 한국에서 1997년 이래 8년만에 사형을 선고받은 경우라는 잘못된 정보도 돌아다니는데 그의 악명이 얼마나 높은가를 말해주는 사례다.
- 위에서 언급했듯 PCL-R이 만점에 근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영철은 스스로 '사이코패스 관련 서적으로 공부를 정말 많이 해 보니 난 사이코패스가 아닌, 소시오패스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비전문가인 그의 일방적이고 오만한 주장일 뿐 전혀 신빙성이 없는 허위사실이다.
- 프로파일러 권일용이 프로파일러로서 처음 투입된 사건이 그의 살인사건이다. 권일용의 말에 의하면 유영철이 말이 너무 많아 그의 말을 중간에 끊지 않으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유영철은 권일용 등의 프로파일러는 만나 본 적도 없다고 주장했는데 권일용은 이를 두고 '거짓말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혼동을 주려 하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적인 행동'이라고 분석했으며 '경계선 성격장애' 기질이 있다고도 분석하였다. 물론 의학적 진단은 전문의가 할 수 있으니 본인이 진단 내린 것은 아니라는 것도 덧붙였다. 권일용이 그를 경계선 성격장애 기질이 있다고 한 이유는 첫 번째는 비정상적으로 고독함을 느낀다는 점이다. 유영철은 실제로 '내가 죽인 시체 옆에 있고 싶을 정도로 외롭다.'고 말했다. 두 번째 이유는 감정이 비정상적으로 순식간에 변동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유영철은 아침에 기분 좋게 집을 나서자마자 본인 앞을 위험하게 지나간 오토바이 때문에 갑자기 살인 충동을 느낄 정도의 분노를 느꼈다고 한다.
- 조용히 있어도 모자랄 판에 구치소에서 난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결국 독방으로 직행했고 '콩밥도 아깝다, 닥치고 사형시켜라' 등의 비난 여론이 폭발했으며 현재도 사형 집행 이야기가 나오면 강호순, 정두영, 박한상 등과 더불어서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 슬하에 아들이 하나 있다. 1994년 10월 26일생으로 현재 만 [age(1994-10-26)]세. 사이코패스는 가족에게도 매우 폭력적일 거라는 통념과 다르게 아들을 지극하게 아꼈다고.[36] 전처 황모 씨는 레이디경향과 인터뷰할 때 "유영철의 아내로 지낸 생활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고 말했지만, 의외로 단 한 번도 유영철이 자신에게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인터뷰 내용을 보면 유영철에게 엄청난 적개심을 품은 상태였는데도 폭력을 당하지 않았다고 단호하게 답변했다. #1 #2[37] 비록 인터뷰에 응했다고는 하지만 전처는 "이미 몇 년 전 이혼했고 할 말이 없으니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는 입장을 일관적으로 견지했다. 가정폭력이 실제로 있었는지와는 별개로 아들을 나름대로 아끼는 마음은 있었음을 기사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이문동 여성 살인사건에 대해 경찰이 "아들의 대학교 진학까지 뒷바라지를 해주겠다"고 회유하자 거짓 진술을 했고 감옥에서 기자와 나눈 편지에서 아들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러한 영향인지 연쇄살인 피해자 중에 10대는 없었다. 연쇄살인 진행 중 맞닥뜨린 어린 남아를 직접 공격하진 않았던 이유를 아들과의 연관성에서 찾기도 한다. 이후 아들은 평범하게 성인으로 자라 여느 사람들처럼 군대에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하여 직장생활도 하는 등 일반적인 사회인으로 살고 있으며 놀랍게도 자기 아버지가 '그 유영철'이라는 건 전혀 모른다고 한다. 전처 황 씨가 아들이 모르게 하려고 실로 처절한 노력을 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유씨가 아니라 황씨로 살고 있을 가능성도 높다. 황 씨는 아들이 자립한 후인 2013년경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어서 전 남편에게 살해된 피해자들의 명복을 빌면서 살고 있다. 기사
- 자신의 범행 소식을 전하는 인터넷 뉴스의 댓글에 답글을 작성한 적이 있다. 내용은 '아닐걸?ㅎㅎ'.
- 각종 괴담에 등장하기도 했다. 살인마에 관련된 괴담 문서 참조. 해당 문서에 나온 괴담은 전부 거짓이며 칼을 전혀 쓰지 않았다는 말도 사실은 아니다. 사실 유영철이 칼을 흉기로 사용한 적이 있었는데 황학동에서 남자를 상대로 살인했을 때는 얼굴 부위를 칼로 20차례 찌르고 나서 해머로 마무리했다. 이렇듯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는 열등감과 두려움을 나타내는 성향을 보이기도 하였다.[38] 하지만 대부분은 전부 자신의 손에 알맞게 제작한 손망치로, 속칭 '오함마'의 손잡이를 개조한 것을 써서 피해자를 살해하였다. 판결문에도 나오지만 칼로 죽이면 사람이 느리게 죽는다는 이유로 쓰지 않았다.[39] 애초에 살인범 중에서 칼을 순수하게 살인의 목적으로 쓰는 경우는 살인 경험이 전무한 사람이 우발적으로 칼을 쓰거나 전문적으로 칼을 잘 다루는 사람이 계획적으로 사용하는 두 경우밖에 없다. 통념과는 달리 칼은 사람을 단번에 죽이는데 좋은 흉기가 아니다. 대개 칼로 살해된 사람의 경우, 손, 팔 등에 방어흔이 많이 보이는 것이 그 증거. 출혈이 생기긴 하나 즉사는 어렵고 죽기 직전까지 계속 저항한다는 뜻이다.[40] 또 유영철은 아파트에서 살인을 한 적이 없다.
- 2004년 7월 26일 유영철을 이송하던 기동수사대 1계 2반 소속 이용길 형사가 유영철에게 달려들던 피해자 유가족[41]을 발로 걷어차 유가족이 계단에서 굴러 넘어진 사건이 있었다.# 논란이 된 이용길 형사는 "유족인 줄 몰랐으며 달려든 유족이 들고 있던 우산을 순간적으로 흉기로 보았다"고 해명했고, 이 형사 본인이 피해자 남편에게 찾아가 사과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유가족이 달려든 것은 방송사가 사주한 것"이라고 주장해서 공분을 사기도 했다. # 이후 전출 징계로 마무리되었고 당시 발길질한 이용길은 진급에 아무 문제없이 잘 올라가, 2022년 기준으로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경감으로 재직하고 있다.
- 표창원은 <한국의 연쇄살인>에서 이 사건을 다루면서 범죄 피해자 보호와 지원 측면에서 큰 문제를 드러낸 경우라고 서술했다. 다만 해당 경찰에 대해서는 실드를 좀 쳐 주기도 했다.언론에서는 경찰이 살인마 유영철을 보호하기 위해 비탄에 잠겨 이성을 잃은 연약한 피해자 유가족을 발로 차는 과잉 행동을 했다고 강하게 비난했고, 여론 역시 분개했다. 하지만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경찰관이나 사회복지사가 전혀 없는[42] 우리 제도가 문제의 원인이지, 해당 경찰관 역시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 월간조선의 이은영 기자가 유영철과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그 일부가 이은영 기자의 기사로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다. 공개된 편지를 보면 유영철은 글씨를 굉장히 잘 쓰고 간단한 주소와 이름 등은 한자까지 섞어서 썼으며[43] 그림 실력도 수준급이다. 행간•자간 등이 매우 일정한 점이 눈에 띄기도 한다. 이 편지들은 훗날 <살인중독>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는데 당연히 유영철의 행각이 행각인지라 19세 미만 구독불가 서적이다. 참고로 이 편지들을 읽은 이은영 기자와 경기대학교 이수정 교수 등은 몸서리가 쳐지고 편지들을 몇 번이나 내던져 버렸다고. 《그것이 알고싶다》 1038회에서 이 책이 잠깐 언급되었다 한다. 살인 중독자의 처절한 告白 - 연쇄살인犯 유영철이 보내온 50여 통의 편지[44]
- 비록 예술고등학교에 색맹으로 불합격 했으나 본인이 의지만 있었다면 충분히 그림으로 먹고살만큼 재능이 있었다. 사회성 결여와 폭력성으로 스스로 파멸한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 범행의 냉각기 때엔 컴퓨터로 야동을 시청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 듯하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8/0000441558?sid=102
- 2014년 11월에는 교도관에게 뒷돈을 주고 일본 만화나 성인 화보집, 야설을 밀반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 이 일로 인해 감시가 엄격한 대구교도소로 이감된 후에는 그나마 좀 나아졌다고 한다.
- 경찰 신분증을 위조하기도 했다.[45] 이게 유영철의 연쇄살인 전후 주 범죄 수법이었다. 잔인하게 살해된 황학동 노점상 희생자 또한 유영철이 가짜 경찰이라는 걸 눈치챘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 생계 유지를 위해 경찰을 위장해 사기 행각을 저지르고 다녀 공문서 위조 및 공무원 자격 사칭 죄목도 판결문에 기록되어 있다. 직접 제작한 위조 경찰 신분증은 영화 《공공의 적》을 즐겨 보고 작중에 나온 경찰 신분증을 보고 제작에 써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그러한 위조를 막기 위해 실제와는 다른 소품을 썼는데 그것이 위의 황학동 노점상 희생자에게 가짜 신분증이 들통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 유영철의 경우도 대다수의 흉악범들과 마찬가지로 첫 범행은 절도였는데 이것이 흉악범으로 이어졌다. 그의 생애 첫 범죄는 10대였던 1988년[46]에 이웃집 누나의 방에 침입해서 기타와 현금 23만 원을 훔쳤다가 소년원에 다녀온 것이다.
- 진위 여부는 불명이지만, 디시인사이드의 어느 유저가 중학생 시절에 유영철 사건으로 시끄러울 당시 유영철의 현상수배서에 적힌 주민번호를 도용하여 성인사이트에 들어갔다가 경찰이 출동하게 만든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썰들이 으레 그렇듯 진실은 저 너머에. 2000년대 초반까지는 실제로 현상수배서에 범인들의 주민번호가 적혀있었고, 실제로 한 초등학생이 이학만의 주민번호를 도용하여 인터넷 사이트에 회원가입 했다가 경찰 특공대까지 동원된 적이 있었다. #
- 2007년 1월 당시 법무부의 강력한 사형 집행 의지로 사형 집행이 검토되었다. 당시 노무현 정권의 청와대가 반대해 무산되었지만 만일 청와대의 반대가 없었다면 그의 교수형이 집행되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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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現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 유영철에 대해 다룬 '살인중독' 책 참조. 책에는 외하리라고 적혀 있으나, '외화리'의 오타로 보임.[2] 살해 기간 동안 주위에 교회가 있는 집만 찾아 신은 없다는 메세지를 전하려고 범행을 저지르면서도 불교에 의지해 법당을 찾아 자신의 미친 행각을 멈추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고 하며, 구치소에서는 목사 등에게 자신의 가석방을 부탁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전해졌다.[3] 현재 주소 신촌로12다길 29.[4] 혜화동 사건 당시 손을 다쳐 피가 떨어지자 그 핏자국을 비롯한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현장에 방화를 저지른 적이 있으며, 전처에게 괴로운 말을 들었을 때 주변 쓰레기나 타이어에 불을 붙였다고 기자에게 털어놓은 바 있다.[5] 2000년 미성년자 강간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윤락여성 상대로 성접대를 받다 살해했다.[6] 1988년에 이웃집에 들어가 기타를 훔쳐 보호 처분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7] 성매매 포주들에게 경찰이라고 속이고 돈을 뜯어내 생계를 이어갔다.[8] 살인을 하기 전, 개를 여러 차례 죽였다고 진술했다.[9] 첫 살인은 2003년 9월 24일[10] 연쇄살인은 2003년 9월 ~ 2004년 7월 사이에 이루어졌으며, 범죄는 1988년 8월에 처음으로 저질렀다.[11] 피해자가 이문동 사건 피해자를 포함한 21명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20명이다. 이는 본래 정남규가 저지른 범행인 이문동 살인사건이 2004년에 유영철의 범행으로 인정되었고 현장검증까지 했기 때문인데 유영철이 진술을 번복해 이 건은 무죄로 판결되었다.[12] 직접적인 고의의 대량살인(한 사건으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범죄)으로는 대구 지하철 참사의 범인인 김대한이 최다이다. 총 198명이 사망했다.(사망 192명 + 실종 6명) 허나 그런 것과 관계없이 (부작위 포함)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대량살인을 한 사람은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의 선장 이준석으로 총 304명이 사망했다.(사망 299명 + 실종 5명)[13] 유영철 대법원 판결 전문.[14] 일본이나 태국 등 불교세가 강하고 환생을 널리 믿는 국가들에서 남매 이란성 쌍둥이는 전생에 이뤄지지 못한 연인/부부가 환생한 것이라는 미신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남매 쌍둥이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존재해왔는데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 시기 그 영향을 받았는지 노인 세대에서는 남매 쌍둥이를 좋지 않게 보는 풍토가 있었다. 이 경우 편견을 피하기 위해서 남아를 먼저 출생신고 하고 여아는 나중에 출생신고해서 호적상 쌍둥이가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집들도 일부 존재하였다.[15] 형제들 중 유일하게 계모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체포된 뒤 기자한테 보낸 편지에서도 계모를 '첩'이라고 표현했다.[16] 적록색맹이다. 유영철과 편지를 주고받은 월간조선 이은영 기자가 그의 예술고 입학지를 찾아본 바, 적록색맹으로 인해 불합격되었다고 한다.[17] 이런 일화를 들은 사람들은 미대 입시 실패이후 군인과 정치인을 거쳐, 희대의 독재자이자 전쟁 전범이 된 히틀러와 비슷하다고 여기기도 한다.[18]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공업고등학교가 아니라 학력인정을 받지 못하는 각종학교였다고 한다.[19] 월간일보 2004년 12월호[20] 49분 06초부터 나온다.[21] 반면 강호순은 의외로 비교적 조용하게 수감 생활 중이라고 한다.[22] 물론 재벌, 정치인 등 권력층 출신 범털이라도 이딴 짓거리들을 하면 CRPT에게 가차없이 제압당한다. 사실 이 정도 범털쯤 되면 교도소장 포함 교도관들이 온갖 편의를 봐주는데 굳이 이런 짓들을 할 이유가 없다.[23] 만약 미국이나 러시아였다면 유영철이 더욱 불리해질 수 있다. 특히 러시아에서 가장 악명높은 교도소에서 저러면 기본으로 교도견들에게 물어뜯기거나 교도관들에게 총으로 맞아 벌집이 될 수도 있고 미국은 교도관들에게 극딜을 당하는 건 기본이며 바로 가장 악명높은 깨끗한 지옥의 교도소에 전신구속복 입고 독방으로 프리패스 시켜준다. 참고로 유영철 같은 범죄자는 최고 USP 등급으로 들어가며 한국에서도 그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면 청송으로 갔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가 사형집행 대기 신분이라 청송에 못 갈 뿐이다. 한때 유영철이 청송교도소로 이감됐다는 잘못된 소문이 돌기도 했다.[24] 교정시설에선 질서 유지를 위해 보호장비를 사용한다. '수감자를' 보호하는 장비가 아니라, 수감자의 난동으로부터 다른 사람을 보호하는 장비인 셈이다. 수갑, 족쇄, 헬멧, 보호대(사슬형과 벨트형이 있음), 보호의자, 보호침대, 보호복, 포승(밧줄형과 벨트형이 있음) 등이 있는데# 장비들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보호라고 쓰고 구속이라고 읽으면 된다. 참고로 제대로 묶으면 3시간만 있어도 풀어달라고 빌 정도로 고통스럽다. 지나치게 남용했다가 재소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드물게 발생할 정도다.[25] 대구 및 경북권이 연고지가 아닌 경우 대부분 최소 근무년수만 채우고 고충처리를 통해 자신의 연고지로 전출을 신청한다. 청송에 있으면 진급도 잘 되는 편이고 관사도 나오는 데다 2일 휴무도 잘 지켜지는 편이라 대구 및 경북권이 연고지인 경우, 청송에 있는 것이 마냥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한다. 이런 인력들이 어느 정도 진급을 마친 후 전출을 신청하면 당연히 자신들의 연고지 중에서 가장 큰 도시인 대구 쪽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26] 사형의 위하력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그에 반대되는 사례도 충분히 있다. 사형이 활발하게 집행되던 시절 사형수들은 더 잃을 것이 없어서 오히려 통제 불능이었고 '최고수'라 불리며 죄수들 사이에서 최고 계급으로 취급받으면서 군림하다가 집행이 멈추고 나서야 통제가 좀 가능해졌다고 하는데 당장 수감 초기의 유영철 본인만 해도 어차피 사형이라며 난동을 부리고 개판으로 활동한 전적이 있다. 더욱이 유영철이 체포된 때(2004년 7월 15일)는 아직 사형 집행이 멈춘 지 7년도 채 안 되던 시점이다.[27] 2008년 11월 6일 전국 영화관에 상영되기도 했다.[28] 하정우가 이 역을 맡았다.[29] J의 경우 그외에도 영국의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도 모티브로 삼은 캐릭터다. 사족으로 잭 더 리퍼 역시 유영철처럼 윤락녀들을 죽인 연쇄살인마다.[30] 노린 것인지는 몰라도 위의 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에서 J가 붙잡히는 에피소드가 방영된 지 얼마되지 않아 다뤄진 것이다.[31] 이들을 반드시 죽이고 사형당하겠다[32] 어째 경제사범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33] 1심, 2심에서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감형되었다.[34] 서울중앙지방법원 2004.12.13 선고 2004고합972 2004고합973 2004고합1023 판결 【살인·현주 건조물 방화·사체손괴·공문서위조·위조공문서행사·공무원 자격 사칭·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야간·공동공갈)(일부 인정된 죄명 : 공갈)·사체유기·도주·일반자동차방화·사체은닉·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절도)】[35] 일반인에게는 '사이코패스 테스트'로 알려 있다.[36] 유영철은 "가장 무서웠던 순간은 잘린 머리가 수건걸이에서 떨어졌던 순간도, 머리 없는 몸뚱아리가 나에게 달려들었던 순간도 아니었다. 그 순간 걸려온 "'아빠의 감기가 아직 안 나았느냐'는 아들의 전화가 가장 무서웠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37] 이혼한 이후에도 황씨는 아들은 유영철이 직접 연락할 수 있도록 허락했는데 유영철이 출소 후(한창 연쇄살인을 저지르던 시기)에도 찾아왔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만난 건 2004년 초였다고.[38] 사실 구기동에서 가족과 함께 살해당한 남성은 자폐성 장애인이었고 유영철이 지시하였지만 잘 따르지 않자 화가 나서 오버킬을 했다는 분석도 있다.[39] 어머니 집에서 키우던 개에게 실험을 해 보았더니 한 번에 죽지 않았고 노점상 살인 때에도 한 번에 죽지 않아 범행도구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40] 급소에 제대로 공격해서 대동맥을 끊어내거나 최중요 장기들에 큰 손상을 입히면 수 초 내로 절명하기는 한다. 특수부대도 이런 식으로 기습했기 때문에 나이프를 근접전 무성무기로 활용 가능했다. 하지만 거꾸로 말하면, 급소를 공격하지 않는 막공격으로는 별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뜻이고 따라서 수련을 빡쎄게 한 칼잡이 정도는 되어야 이런 게 가능하다는 소리이므로, 유영철 같은 일반인이 그런 기술을 보유하는 건 어렵다.[41] 이문동 살인사건의 유가족으로, 이 사건의 진범은 정남규였다. 당시에는 유영철이 진범이라고 보도되었다.[42] 범죄피해자 보호법이 만들어진 것이 2011년이다. 유영철 사건은 2004년에 일어났고 이 책은 2005년에 나왔다.[43] 흔히 말하는 백강고시체라 해서,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등 고시 준비를 하는 학생들이 빠르면서도 깔끔하고 큼직해 알아보기 쉽다는 이유로 배우는 필기체이기도 하다. 또한 한자 역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사자성어도 자주 섞어 사용했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난 지 약 19년 후인 2023년, 이 사건을 담당했던 권일용 프로파일러가 출연한 <블랙: 악마를 보았다> 프로그램 제작진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이은영 기자에게 보냈던 편지처럼 큼직한 고시체로 중간중간 한자성어나 격언을 섞어 쓴 것이 보이기도 했다. 글씨를 본 패널들은 타자기로 친 것처럼 너무 반듯하게 써서 오히려 더 섬뜩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참고로 그 편지의 내용은 자신은 권일용 프로파일러를 만난 적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이를 듣고 있던 패널들과 권일용 프러파일러는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44] 편지에서 《살인의 추억》 영화를 보고 "그렇게 막나가는 범인이 아직까지 안 잡히는 것은 중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썼는데 이게 예언처럼 보이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45] 미 육군 헌병 뱃지가 부착된 케이스에 휴대하고 다녔다. 프로파일러 권일용은 여기서 유영철의 '무식함'을 지적했다. 참고로 해당 흉장은 관련 규정이 없어 대한민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46] 당시는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등 악명높은 살인사건이 많았던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