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두 金大斗 | Kim Dae Doo | |
<colbgcolor=#000><colcolor=#fff> 출생 | 1949년 11월 17일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은곡리 167[1] | |
사망 | 1976년 12월 28일 (향년 27세)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 사형집행장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60cm, 50kg, B형 |
종교 | 무종교 → 기독교 (개신교)[2] |
죄목 | 연쇄살인, 연속살인 |
범행 기간 | 1975년 8월 13일~1975년 10월 7일 |
피해자 수 | 17명[3] |
형량 | 사형 (교수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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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교도소에 있다가 사회에 나오니 누구도 받아주지 않았다. 친척과 친구들도 전과자라고 냉대했다. 남들보다 끗발나게 살고 싶었는데…"
대한민국 최초의 남성 연쇄살인범.[4]유영철 사건 발생 전까지 30년 동안 가장 많은 사람의 목숨을 뺏은 살인범으로 기록됐다. 이판능이나 우범곤은 대량살인 또는 연속살인으로 평가된다.
2. 생애
1949년 11월 17일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은곡리의 한 마을에서 3남 4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그는 명문 중학교 진학을 원하던 아버지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공부에 대한 의욕을 가지지 않은 채 탈선을 이어갔으며, 아버지는 그런 그를 광주로 보내 공부를 시켰지만 그럼에도 방황은 멈추지 않았다.
17세가 되던 해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다시 고향에서 농사를 돕던 그는 돌연 큰 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으로 목포에 위치한 한 가구점에 취업하여 일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둔 후 전라도 지역에서 머슴 일을 하거나 품삯을 받아 심부름을 하고 양복점의 직원으로 일하는 등 다양한 일을 전전했다.
몇 년 뒤 모든 일을 그만두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온 그는 집에서 며칠 머물다가 서울로 향했다. 이후 서울에 다다라 전셋집을 얻은 후 무직으로 떠돌이 생활을 이어갔는데, 이때 돈이 없어 군에 입대하려고 했으나 당시는 국방비 문제 등으로 개나소나 면제를 받던 시절인 데다, 왜소하고 허약한 체질로 인해 군대를 면제받았다.
하지만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폭력 사건에 휘말려 전과 2범의 범죄자가 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아 교도소에 2차례나 수감되었고 주변에서 좋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되었는데, 곤란한 생계로 인해 친척과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해도 이들은 그를 전과자라며 무시하였고, 점차 소외감과 사회에서의 불만을 가지게 된 그는 살기를 품기 시작했다.
3. 범죄
당시 막 출소해 돈이 없었던 그는 1975년 8월 12일 강도 목적으로 첫 살인을 저질렀으며, 같은 해 10월 8일 검거되기 전까지 55일 동안 마구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을 포함한 17명을 살해했다. 특히 1975년 9월 25일부터 1975년 10월 2일까지 경기도의 외딴집을 주요 범행 대상으로 삼아서 단 1주일 사이에 11명을 살해하고 2명에게 중상을 입히기도 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소위 야수의 짓이라고 불렀다고 한다.첫 살인 후 순천행 기차를 탔다가 우연히 만난 교도소 동기 김해운(29)[5]과 함께 돌아다니면서 또 살인을 저질렀다. 범행 후 이렇게 된 바에야 돈이 많은 서울에서 살인을 하자고 의기투합한 둘은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갔으나, 얼마 못 가 헤어졌다. 어쨌든 김대두는 계속해서 범행을 저질렀다.
검거되기 하루 전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청년에게 접근해 공범을 제의했지만 그 청년이 자신의 물건을 훔쳐 달아나자 살해한 후 그가 입고 있었던 청바지를 벗겨 가져갔는데, 이때 어리석게도 피해자의 청바지가 피범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청량리역 근처 세탁소에 맡겼다.
세탁소에 피 묻은 청바지를 맡기면서 김대두는 세탁소 주인에게 "친구랑 싸우다가 코피를 흘려서 그 코피가 바지에 묻었다."고 했다. 그러나 청바지에 묻은 피는 코피를 쏟았다고 하기엔 너무 많았고, 결국 세탁소 직원 하근배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 신고로 하근배는 포상금 100만원을 받았는데 이는 오늘날로 치면 대략 1,000만원에 해당한다. 정작 김대두가 강도살인 행각을 저지르면서 빼앗은 돈은 고작 26,800원에 불과했다. 이는 현재 기준으로도 29만원밖에 안 된다.
서울청량리경찰서 강력반 홍세호 형사에게 붙잡힌 김대두는 청바지에 묻은 피에 대해서 여러 차례 진술을 바꾸었는데 처음엔 세탁소 주인에게 말했던 것처럼 "친구랑 싸우다가 피를 흘렸다"고 주장했다가 이후에는 "동네 뒷골목에서 불량배들에게 구타를 당해서 피를 흘렸다"고 말을 바꾸었다. 당시 청량리역 주변에는 사창가가 있었고 사창가를 조폭들이 관리했던 만큼 충분히 그럴듯한 일이긴 했다.
홍세호 형사가 김대두가 언급한 동네로 가서 불량배들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벌였지만 김대두와 싸운 사람은 단 1명도 없었던 걸로 확인되었다. 이후 그는 "어제부터 3끼를 굶어 배고프다"며 홍세호 형사랑 함께 중국집에서 같이 탕수육과 고량주 한 잔을 먹다가 체념한 듯이 "형사님, 사실 한 놈을 깠습니다(죽였습니다)."라고 자백하면서 그동안 저질렀던 연쇄살인 행각을 털어놓았고 얼마 후 그의 진술로 공범 김해운도 체포되었다.[6] 이후 청량리서에서 대대적인 수사가 펼쳐지던 중 서울시경찰국 형사기동대에게 사건이 넘어갔고, 각 경찰서 강력반 형사들로 차출된 형사들로 수사팀이 차려졌다.
검거 당일 기자들이 몰려오고 박경원 내무장관과 참모부장이 청량리서를 찾았으며, 경찰서는 말 그대로 축제 분위기라고 할 정도로 바빴다고 한다. 홍세호 형사는 순경에서 경장으로 1계급 특진하였다.
1975년 8월 13일, 전라남도 광산군 임곡면(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에서 잠을 자고 있던 노부부를 습격하여 도망치려는 할아버지(62)를 낫으로 살해하고 절구의 공이로 부인인 할머니를 때려 중상을 입힌 뒤[7] 손전등 하나를 훔쳐 도주. |
1975년 8월 19일,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의 한 구멍가게에서 일가족을 습격하여 노부부와 7살 손자를 살해한 뒤 250원을 훔치고 가게의 과자와 음료수, 빵 등을 무전취식.[8] |
1975년 9월 7일,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면목동(현 중랑구 면목동)으로 올라와 친척 누나의 집에 머물던 중 근처에서 홀로 집[9]에 거주하던 할아버지(60)를 살해. |
1975년 9월 25일, 경기도 평택군 송탄읍[10](현 평택시)에서 할머니(71)와 딸(40), 손주들을 습격하여 5살, 7살, 11살 손주들을 포함한 일가족 5명을 살해. 11살 손녀는 집 밖의 나무에 묶여[11] 강간 시도 후 살해당한 상태로 발견되었으며 다른 4명의 희생자들은 망치로 살해당했는데 장도리의 손잡이가 부러질 정도로 내리쳐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함몰되었다.[12] |
1975년 9월 27일, 경기도 양주군 구리읍(현 구리시)에서 일가족을 습격하여 20대 부부와 자녀인 3살 아기 등 3명을 살해하고 아내의 모친과 할머니 등 2명에게 상해를 입힘 |
1975년 9월 30일, 경기도 시흥군 남면(현 군포시)에서 생후 3개월 된 여자아이와 그녀의 어머니(28)를 습격하여 어머니는 강간한 뒤 살해하였고 아이는 울음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둔기로 내리친 뒤 짓밟아 장 파열로 숨지게 하고 집에서 2,300원 가량을 훔쳐 도주. |
1975년 10월 2일, 경기도 수원시 우만동에서 30대 부부를 습격하여 남편(38)을 그 자리에서 둔기와 칼로 무차별적으로 공격하여 숨지게 하였으며 아내(37)는 옷을 벗겨 나체로 집 밖의 야산으로 끌고 나가 양 손을 결박한 뒤 살해하였다. |
1975년 10월 3일, 경기도 수원시에서 골프장 캐디로 일하던 여성(21)을 습격하여 강간을 시도하였으나 피해 여성이 지나가는 차량을 보고 도움을 요청해서 상해를 입히는 데 그침. |
1975년 10월 7일,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서 공범으로 포섭하려고 했던 남성 1명을 살해. |
김대두는 경찰 조사에서 모든 죄를 순순히 인정했으며 이틀 후 현장검증을 실시했는데 껌을 질겅질겅 씹어 대면서 히죽 웃어대는 모습에 전 국민이 경악했다는 이야기가 있다.[13] 범행 수법 자체도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그저 외딴집에 사는 일가족만을 몰살하고 얼마 안 되는 돈을 빼앗아 가는 일이 반복되었다. 돈이 정말 한 푼도 없어서 얻은 게 없거나 손전등 1개, 고추 15근을 들고 나오거나 습격한 구멍가게 안에 있던 먹을 것들로 배를 채운 뒤 250원을 훔쳐간 적도 있다.[14] 어찌 보면 단순 강도살인인데 중상류층을 주로 노리던 이전의 강도살인범들과 달라서 경찰이 제때 못 잡았다고 할 수도 있다. 표창원이 쓴 한국의 연쇄살인에서는 그가 배운 게 없어서 그저 자기가 살아온 삶과 유사한 곳에서의 강도살인의 형태로만 범죄를 저질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렇게 잔혹했던 김대두도 옥중에서는 기독교 신자가 되었고 수천 명에게 전도했다고 한다. 같이 수감됐던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조금이나마 잘못을 뉘우치는 기색이 있었던 것 같더라"는 얘기가 있기는 하다. 실미도의 저자 백동호도 김대두가 교회 예배에 출석하며 뉘우치는 기색을 보이기는 했다고 서술했다.
4. 재판
1심에서 서울형사지법은 김대두와 공범 김해운에게 둘 다 사형 선고를 내렸지만 2심에서 서울고법은 김대두에게만 사형을 선고하고 공범 김해운은 다수를 살해하긴 했지만 1건만 가담했고 김대두의 반 강요로 이뤄진 점을 참작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김해운은 1993년 12월 20일에 18년간의 복역을 끝으로 가석방된 후 고향인 순천시로 돌아갔다. 이후의 근황은 불명. 김대두는 상고를 포기하여 형이 확정되었다. 당시 죄질이 명백하고 다수가 살해된 사건의 주범은 판결 당해 혹은 다음 해 신속히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므로 사형 확정 9개월 후인 1976년 12월 28일을 기해 방영근과 다른 25명의 미집행 사형수들과 함께 처형되었다.그가 처형되기 직전에 정신적인 측면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후 벌어질 수 있는 사건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고 국선변호인이었던 이상혁 변호사도 감형을 청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제대로 된 연구는 30여 년 뒤 또 다른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잡힌 뒤에야 이뤄지기 시작했다.
사형당하기 직전에 전과자를 냉대하지 말 것과 잡범과 중범죄자, 초범과 재범을 분리 수감하여 초범이나 잡범이 범죄를 배우지 못하게 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사실 김대두 그 자신이 바로 전과자를 냉대한 탓에 다시 범죄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으며 분리 수감하지 않아 교도소 동기와 함께 살인을 시작하게 된 사람이었으니 꽤나 뼈 있는 말이었다. 이는 낙인 이론과 차별적 교제론의 사례가 될 수 있다.
5. 대중매체
5.1. 소설
실미도의 저자 백동호의 첫 작품이자 자전 소설인 대도(1994)에서 주인공 백동호와 같은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백동호와 시비가 붙었는데 키가 작고 만만한 탓에 백동호에게 얻어터지고는 죽여 버리겠다고 벼른다. 백동호는 나중에 와서야 그가 연쇄살인마라는 걸 알고 담배를 건네며 가까운 사이가 되었지만, 자신이 기대한 거물과 거리가 먼 약자만 골라 죽이는 데다 그걸 자랑스럽게 떠드는 저질[15]이라는 걸 알게 되자 손절한다. 상술했듯 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되자 주위 재소자들에게 베풀며 참회한 모습을 보이지만 자기 성깔은 버리지 못했다고 한다. 죽은 후에도 세상사가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걸 백동호에게 몸소 보여준 인물이다.1999년 북하우스에서 재판을 낸 걸 끝으로 절판되어 국립중앙도서관에 가지 않는 이상 원문을 읽기는 힘들어졌지만, 백동호 씨가 김복준 김윤희의 사건의뢰에 출연해서 자신이 만난 재소자들의 썰을 푸는 영상에서 간략하게나마 들을 수 있다.
5.2. 드라마
1995년 12월 15일 KBS2 <그때 그 사건>에서 재연극 형식으로 다룬 바 있으며 차룡이 연기했다. 영상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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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196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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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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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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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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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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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대두의 생가이자 형식상 거주지였으며, 사건 이후에는 집이 철거되었는지 지번 주소를 검색해 보면 경작지가 나온다.[2] 원래 무신론자였지만 감옥에 들어간 뒤 한 목사에게 복음을 듣고 귀의해 독실한 개신교 신자가 되었다.[3] 전원 사망[4] 이관규는 일제강점기에 사건을 저질렀으므로 논외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연쇄살인범 자체가 김대두가 최초인 줄 아는 사람이 많으나 실제로는 박분례가 최초다. 다만 김대두가 박분례보다 먼저 잡혔기 때문에 이러한 오해가 퍼진 것이다. 김대두는 남성으로 한정해야 최초가 된다.[5] 순천 출신이었다.[6] 김대두는 같이 탕수육을 먹던 홍 형사를 주방에 있던 칼로 살해하려고 생각하기도 했다고 한다.[7] 아내는 부상이 심했지만 극적으로 생존했다.[8] 7살 아이가 흉기로 공격당했음에도 죽지 않자 마구 밟아 살해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검거된 뒤 형사가 김대두에게 "어린애를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느냐"고 물었고 김대두는 '완전범죄를 위해서였다'고 답했다고 한다.[9] 말이 집이지 빗물과 폭풍, 태풍, 추위 등을 막아 주지 못하는 천막이었다고 한다.[10] 당시엔 정말 한적한 시골이었다고 한다.[11] 얼굴에 보자기가 씌워진 상태였다.[12] 5살, 7살짜리 남동생들과 할머니를 먼저 잔인하게 살해한 뒤 11살짜리 여아를 집 밖으로 끌고 나가 성폭행 (시도) 후 살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13] 그런데 현장검증 때 껌을 씹는다는 건 불가능하므로, 이 이야기는 도시전설이거나 김대두를 악마화하기 위해 경찰이 흘린 거짓으로 보인다는 의견도 있다.[14] 이때 살해된 가게 주인이 머물던 방의 이불 위에 현금 2만 6,000원이 있었지만 미처 훔치지 못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15] 갓난아기의 목을 밟아 비틀어 죽이는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