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2-05 11:55:41

국제원자력기구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bel_Prize.png 노벨평화상 수상자
{{{#!folding 20세기
{{{#!wiki style="margin: -11px; margin-top: -6px; margin-bottom: -16px"
1901년 1902년 1903년 1904년 1905년
장 앙리 뒤낭
프레데리크 파시
엘리 뒤코묑
샤를 알베르 고바
윌리엄 크리머 국제법학회 베르타 폰 주트너
1906년 1907년 1908년 1909년 1910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르네스토 모네타
루이 르노
클라스 아르놀드손
프레드리크 바예르
데스투르넬 드 콩스탕
오귀스트 베르나르트
국제평화국
1911년 1912년 1913년 1914년 1915년
토비아스 아서르
알프레트 프리트
일라이휴 루트 앙리 라퐁텐 수상자 없음
1916년 1917년 1918년 1919년 1920년
수상자 없음 국제적십자사 수상자 없음 우드로 윌슨 레옹 부르주아
1921년 1922년 1923년 1924년 1925년
칼 브란팅
크리스티안 랑에
프리드쇼프 난센 수상자 없음 오스틴 체임벌린
찰스 도스
1926년 1927년 1928년 1929년 1930년
아리스티드 브리앙
구스타프 슈트레제만
페르디낭 뷔송
루트비히 크비데
수상자 없음 프랭크 켈로그 나탄 쇠데르블룸
1931년 1932년 1933년 1934년 1935년
제인 애덤스
니컬러스 머리 버틀러
수상자 없음 노먼 에인절 아서 헨더슨 카를 폰 오시에츠키
1936년 1937년 1938년 1939년 1940년
카를로스 사베드라 라마스 로버트 개스코인 세실 난센국제난민 사무국 수상자 없음
1941년 1942년 1943년 1944년 1945년
수상자 없음 국제적십자사 코델 헐
1946년 1947년 1948년 1949년 1950년
에밀리 그린 볼치
존 모트
미국 퀘이커 봉사위원회
영국 퀘이커 봉사협회
수상자 없음 보이드 오어 랠프 번치
1951년 1952년 1953년 1954년 1955년
레옹 주오 알베르트 슈바이처 조지 C. 마셜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 수상자 없음
1956년 1957년 1958년 1959년 1960년
수상자 없음 레스터 B. 피어슨 도미니크 조르주 피르 필립 노엘 베이커 앨버트 루툴리
1961년 1962년 1963년 1964년 1965년
다그 함마르셸드 라이너스 폴링 국제적십자사 마틴 루터 킹 유엔아동기금
1966년 1967년 1968년 1969년 1970년
수상자 없음 르네 카생 국제 노동 기구 노먼 볼로그
1971년 1972년 1973년 1974년 1975년
빌리 브란트 수상자 없음 헨리 키신저
레득토 (수상 거부)
숀 맥브라이드
사토 에이사쿠
안드레이 사하로프
1976년 1977년 1978년 1979년 1980년
베티 윌리엄스
마레드 코리건
국제앰네스티 안와르 사다트
메나헴 베긴
마더 테레사 아돌포 페레스 에스키벨
1981년 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 알바 뮈르달
알폰소 가르시아
레흐 바웬사 데즈먼드 투투 핵전쟁방지국제의사회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엘리 비젤 오스카 아리아스 유엔 평화유지군 달라이 라마 14세 미하일 고르바초프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아웅산수지 리고베르타 멘추 넬슨 만델라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
이츠하크 라빈
시몬 페레스
야세르 아라파트
조지프 로트블랫
퍼그워시 회의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카를루스 벨루
조제 하무스 오르타
지뢰금지국제운동
조디 윌리엄스
존 흄
데이비드 트림블
국경없는의사회 김대중 }}}}}}
{{{#!folding 21세기
{{{#!wiki style="margin: -6px -11px"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유엔
코피 아난
지미 카터 시린 에바디 왕가리 마타이 국제원자력기구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그라민 은행
무함마드 유누스
앨 고어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
마르티 아흐티사리 버락 오바마 류샤오보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엘런 존슨 설리프
리마 보위
타우왁쿨 카르만
유럽연합 화학무기금지기구 말랄라 유사프자이
카일라시 사티아르티
튀니지 국민4자대화기구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후안 마누엘 산토스 핵무기 폐기 국제운동 드니 무퀘게
나디아 무라드
아비 아흐메드 알리 }}}}}}

국제 방사선 방호기준 권고기관
ICRPICRUUNSCEARIAEA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國際原子力機構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Flag_of_IAEA.svg.png 파일:iaea 엠블럼.png
깃발 엠블럼
한국어 명칭 국제원자력기구
가입국 170개국[1]
설립 1957년 7월 29일
본부 오스트리아
공용어 영어, 아랍어, 중국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사무총장 공석
홈페이지
파일:1920px-IAEA_members.svg.png
가입국
파일:iaeahome.jpg
본부
1. 개요2. 상세3. 비판4. 그 외


1. 개요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UN에서 '평화를 위한 원자력'을 언급한 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연구와 군사적 목적의 이용을 막기 위한 국제적 협력을 위해 1957년 설립된 UN 휘하의 국제기구이다. 핵물질의 군사적 이용을 막고 안전시설의 설치와 관리를 지원하며 안전기준을 마련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NPT에 가입된 모든 핵무기 비보유국은 NPT(핵 확산 금지 조약)에 의거하여 IAEA에게 평화적인 목적으로만 핵을 이용하겠다는 협약을 맺어야 한다. 그 외 개발도상국의 핵 발전을 돕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본부는 에 있다.

2. 상세

핵무기 보유를 감시하는 것은 전 세계 질서와 관련된 문제이므로 국제 기구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중요한 일을 하는 기구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IAEA의 사찰을 거부한다면 일단 신문 1면기사로 뜰 가능성이 높다.

대한민국도 예전에 한국 원자력 연구소에서 핵연료 재처리를 몰래 연구한다는 의혹을 받고 특별사찰을 받은 적이 있었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은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으나 과학기술부에서는 "핵 연료 국산화 연구 차원에서 동위원소 분리 레이저 연구장치에서 가돌리늄, 탈륨, 사마륨 등을 분리하는 연구를 했고, 그 과정에서 극소량(0.2g)의 우라늄 분리 연구가 실시됐다" 라고 밝혔다. 원칙적으로 실험에서 나온 핵물질은 IAEA에 신고해야 하지만 워낙 극소량이라 미처 신고할 생각을 못 했던 것이다. 특별사찰은 "관련 핵물질의 양은 의미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나 실험활동들의 성격과 핵안전조치협정상 의무사항인 IAEA에의 보고를 하지 않은 것은 심각한 우려 사항이다" 라는 결론을 내고 2004년에 종료되었다. 그리고 2008년 IAEA에서 우리나라의 핵 투명성에 대한 포괄적 결론을 승인함으로 한국의 핵투명성을 인정받았다. 이는 IAEA 검사 횟수가 연간 104회에서 36회로 66% 감소하는 등 IAEA의 간섭이 줄어들고 원자력 활동의 자율성이 확대된다는 뜻이다.

빈에 앉아계신 분들이 어떻게 그런 걸 귀신같이 알아냈나 싶지만 몇 가지 확인 방법이 있다. 방사능 물질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곳이 원자력 발전소인데 의무적으로 IAEA로 영상을 보내는 사진기가 설치되어있다.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이상행동을 하면 사찰을 하는 것.[2] 그 밖에도 주변의 물, 토양, 먼지, 대기 샘플을 분석하는 방법이 널리 쓰인다. 거창한 건 아니고 근처의 하수원에서 물 떠다가 지퍼백에 담고 원전 시설에 부직포 같은 천쪼가리 쓱 문지르고 담고 이런 식이다.

보통은 007 가방 같은 간편 분석키트로 즉석에서 검사하는데, 좀 애매하다 싶으면 IAEA의 용역을 받는 연구소로 샘플을 보내서 정밀 분석에 들어간다.

이미 IAEA의 분석 수준은 피코그램 이하 크기의 입자 하나까지 추적 가능할 정도로 발전해 있기에 아무리 꽁꽁 숨기려고 해도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 미국은 비행기 한 번 띄워서 24일이나 지난 이란의 핵 활동을 감지한 바 있다. 북한이 핵실험하면 대기 포집하러 미군 비행기가 뜬다고 뉴스도 나오는 마당에 감시 방식이 기밀이랄 것도 없다.

본부는 오스트리아에 있다. 2009년 12월 까지는 2011 이집트 혁명 당시 야당 지도자로 알려진 모하메드 엘바라데이가 사무총장을 맡았고,[3] 2009년 12월부터 현재까지 일본인 아마노 유키야(天野之弥)가 사무총장으로 재직하고 있었으나 2018년부터 몸 상태가 안 좋아서 3기 임기(2017년~2021년) 도중에 사퇴하려고 했으나 2019년 7월 22일 병치료 도중 향년 72세로 사망한 상태이다.

대한민국을 포함한 대다수 UN 회원국가들이 IAEA의 회원국이나, IAEA 체제에 반발한 북한은 IAEA에서 탈퇴하였다.

핵안보정상회의에 IAEA 사무총장이 참가하여 핵무기 및 핵물질의 감축 및 운송과 보관에 대한 방호 등에 대한 문제에 대해 논의한다. 2012년 제 2차 회의를 위해 아마노 사무총장이 방한하여 회의에 참석했다. 2016년 핵안보정상회의가 종료된 이후에는 각국 외교장관을 주축으로 3년마다 개최하는 핵안보 국제회의 (International Conference on Nuclear Security)를 통해 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논의한다.

3. 비판

비판을 받는 면이 없지 않은데, 핵의 확산을 막는 데는 열심이면서 핵의 보유를 막는 데는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이미 핵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은 핵을 가지고 버티고, 주로 미국의 동맹국들은 새로 핵을 만드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핵을 어거지로 만들려면 국제 관계에서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반면에 또다른 NPT의 관리자 중국, 러시아의 동맹국들은 핵개발을 하는데 중러의 지원을 받고 있어 핵개발이 수월한 편이다.

또 하나의 비판은 위의 각주에도 나와 있듯이 그냥 국제 관계를 죄다 포기해 버리고 핵을 만들어버리면 어디까지나 '국제 기구'인 IAEA는 가능한 제재를 가하는 것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일반 국가라면 UN과 IAEA가 연계되어 가하는 제재가 두려워 핵 개발을 그만두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NPT의 또다른 관리자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으로 핵개발을 성공한 북한, 파키스탄, 개발 중인 이란이나 과거 시도했던 시리아같은 경우 미국아 엿먹아라식으로 핵을 올리는 모습을 보여준 바가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국가는 핵개발이 가능한 반면, 미국 편에 선 나라들은 미국의 위계질서 속에 (영국과 이스라엘을 제외한 나머지 동맹국) 핵재처리조차 금지당하거나 일본처럼 각종 간섭을 당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아무리 핵확산을 시도하고 북한의 핵개발을 지원해도, (진짜 자신들이 정말 두려워하는) 한국, 일본, 대만 같은 국가의 핵개발은 어차피 미국이 막아주거나 북한 비핵화에 실패한 미국이 엉뚱하게 동맹국들에게 신경질 내며 무장해제를 시키는 이이제이 효과를 얻고 있는 것이다.

4. 그 외

IAEA PRIS(Power Reactor Information System)라고, 전 세계의 원자력 발전소 현황도 볼 수 있다.[4]#


[1] 2018년 기준[2] 북한은 이 CCTV를 돌려놓는 식으로 방해를 하면서 사찰까지 거부했었다.[3] 이 사람은 북핵 위기 당시 한국 언론에 여러 번 이름이 오르내려서 한국에서는 이집트 혁명 이전에도 IAEA 사무총장으로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었다.[4] NFCIS(Nuclear Fuel Cycle Information System)라는 핵연료 주기 시설(핵연료 농축, 성형, 중간 저장, 재처리)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도 있으나, PRIS보다 업데이트가 늦고 회원 가입을 해야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