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03 15:12:52

짐바브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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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 공화국
Republic of Zimbab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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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파일:짐바브웨 국장.png
국장
통합, 자유, 노동
(영어: Unity, Freedom, Work)
면적 390,757km2
인구 16,817,038명
수도 하라레
국가 짐바브웨의 대지에 축복을
(쇼나어: Simudzai Mureza wedu WeZimbabwe)
공용어 영어 외 토착어[1]
정부형태 대통령중심제, 공화제
대통령 에머슨 음낭가과 (Emmerson Mnangagwa)
제1부통령 콘스탄티노 치웽가 (Constantino Chiwenga) [2]
제2부통령 켐보 모하디 (Kembo Mohadi)
외무장관 시부시소 모요 (Sibusiso Moyo)[3]
민족구성 쇼나족 87%, 은데벨레족 12%,
백인 0.2%
종교 기독교계 80%, 토착신앙 1.2%
UN가입년도 1980년 8월 25일
남북수교현황 대한민국: 1994년 11월 18일
북한: 1980년 4월 18일
교민 수 104명
여행경보 없음
국가코드 도메인 .zw
짐바브웨 지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Zimbabwe_on_the_globe_%28Zambia_centered%29.svg.png

1. 개요2. 역사3. 자연4. 정치5. 경제6. 사회7. 문화8. 외교 관계9. 창작물에서
9.1. 짐바브웨 국적 가상 인물
10. 이야깃거리11. 지도

1. 개요

아프리카 중남부의 내륙국가. 수도하라레(Harare). 국토면적은 약 391,000㎢으로 일본과 비슷하다. 그리고 로버트 무가베가 임기 후반기 들어 정책을 개판으로 진행하기 시작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졌고 2017년까지 37년 213일간 로버트 무가베에 의한 무자비한 폭압정치가 자행되었으며 2017년 11월 15일 짐바브웨 군부의 쿠데타로 독재자 무가베가 축출됨으로써 국가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어쩌면 차기 정부의 향방에 따라 막장국가의 이미지를 벗고 개선될지, 아니면 무가베 때보다 더 나빠질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2. 역사

11세기 무슬림 상인들에 의해 처음으로 해상 무역을 통해 이슬람 세계에 알려졌다. 이 지역은 발굴품으로 미루어보아 청동기시대없이, 석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특별한 문명이라서 그렇다기보다는 주변에 청동을 만들 광물이 없었으니 청동을 만들 수 없었다.

이 무렵, 쇼나족에 의하여 짐바브웨 왕국이 성립되었다. 11세기 무렵, 국력이 상당히 강해진 모양인지 당시 아랍상인들에게 자금을 지원받아 '그레이트 짐바브웨(Great Zimbabwe)'를 비롯하여 여러 개의 거대한 석조 도시를 만들었다. 물론 이 가운데 도시 규모로는 당시 수도였던 '그레이트 짐바브웨'가 당연 으뜸. 하지만 짐바브웨 왕국이 멸망하면서 이 석조 도시들은 버려졌다. '짐바브웨 문명'이라고 하면 이 시기를 가리키며, 이전 기록은 많지 않은지라 대부분 발굴에 의존하고 있다.

참고로 짐바브웨란 말은 이 나라의 주요 부족인 쇼나(Shona)족 말로 'dzimba'(큰 집, 여러 개의 집), 'mabwe'(돌)이란 뜻이다. 즉, '돌로 된 큰 집'. 조상들의 위대한 유산이기 때문에 건국 후 국명으로 선정한 것이다.

이후 15세기경 무타파[4] 왕국이 세워졌다. 농경과 목축을 주 산업으로 모잠비크 지역까지 지배했고 막대한 황금이 산출되었다고 한다. 대항해시대와 함께 포르투갈이 이 지역에 진출하였고, 여러 차례 정복하고자 시도하였지만 실패하였다. 하지만 결국 포르투갈 세력과 주변 아프리카 왕국들에 의하여 17세기 무렵 무타파 왕국은 분열되었고, 이후 로즈위 왕국이 세워졌다. 흔히들 짐바브웨 왕국부터 이 시기까지 모두 쇼나족에 의한 국가였기에 쇼나 왕조라고 부르곤 한다. 그러던 가운데 19세기 초 마테벨레족들이 로즈위 왕국을 공격하여 남쪽 지역을 장악하고 마테벨레란드 왕국을 세웠다.

19세기 중반, 탐험가 데이비드 리빙스턴에 의해 해당 지역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이후 세실 로즈가 진출하여, 이 지역의 채굴권을 획득하고 대영제국 남아프리카 회사(BSAC)를 세웠다. 그리곤 이 지역의 왕국들을 영국의 보호령으로 만들면서 식민지화했다. 1898년 세실 로즈잠비아와 짐바브웨 지역을, 자신의 이름을 따서 로디지아라고 명명하였고, 이것이 식민지 명칭으로 채택되었다. 이후 말라위가 영국령이 되면서 말라위, 잠비아와 함께 '영국령 중앙 아프리카'라고 불렸다. 1923년에는 자치 식민지가 되었다. 비록 자치권이 법적으로는 보장되었으나 백인들이 정치,경제부분을 완전히 장악한 탓에 토착민들은 가혹한 생활을 계속 이어갔다.

1960년대에 들어오면서 아프리카의 식민지 국가들이 대거 독립하기 시작하였고, 이 가운데 짐바브웨도 독립할 뻔 했었다. 하지만 당시 영국 노동당 정부의 방침은 소수 백인에 의한 독립이 아닌 흑인 대다수가 원하는 독립을 허용하자였고, 이에 로디지아의 기득권층이었던 백인들과 그들을 이끌던 총리 이안 스미스가 반발하면서 1965년 11월 11일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남로디지아 공화국이 성립되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로디지아 문서와 이안 스미스 참고.

국제 사회는 남로디지아 정부를 비난하며 경제 봉쇄를 가했다. 동시에 극단적 백인 우월주의 정권에 불복하여 로디지아-부시 전쟁으로 알려진 짐바브웨 해방 전쟁이 터졌다.(사실 무장봉기는 로디지아가 독립을 선포하기 전인 1964년부터 시작되었으나, 본격적으로 불이 붙은 것은 독립 선포 이후이다.) 22만에 불과한 백인 인구로 인한 병력 부족과 경제봉쇄로 대규모 정규군을 무장시킬 수 없어 용병을 긁어모은 로디지아군과, 흑인 민족주의 무장단체간의 대결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 흑인 민족주의 무장단체에서도 분화가 벌어져 이들끼리도 서로 총질을 해댔고, 전쟁은 3자대결의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흑인 무장단체는 로버트 무가베가 이끌며 마오주의를 이념으로 채택하고 중국이 지원한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해방군(ZANLA)'와 소련의 지원을 받으며 마르크스-레닌 주의 이념을 채택한 '짐바브웨 인민혁명군(ZIPRA)'로 크게 분화되었다.

초기에는 훈련도가 높은 로디지아군이 크게 우세하였으나, 지속되는 경제봉쇄와 국제사회의 압력 등으로 인해 전황이 불리해져 나중가면 60세 노인도 징집하는 막장상황까지 이르렀다. 당시 아프리카 민족주의 단체들은 중국, 소련 등의 열강의 지원을 받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본거지를 잠비아, 모잠비크 등 해외에 두고 있는데다 인구의 95%에 달하는 흑인들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아무리 로디지아군이 날고 기어도 이들을 모두 일소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1978년 3월 남로디지아 소수 백인 정부와 평화협상이 타결되었고 1979년 총선거를 통해 흑백연립정권(짐바브웨-로디지아)이 구성되었으나 로버트 무가베는 이 정부를 백인들의 괴뢰정부라고 규정하고 무장투쟁을 계속하였다. 1980년 다시 열린 총선거에 로버트 무가베가 이끄는 정치조직인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연합(ZANU)'이 대승하여 남로디지아는 문을 닫고 백인들은 본국으로 돌아감으로써 오늘날의 짐바브웨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이 기나긴 독립투쟁 끝에 다 잘 될 줄 알았으나 무가베가 독재자로 흑화해 마르크스-레닌주의 단체인 '짐바브웨 아프리카 인민연합(ZAPU)'(위에서 언급한 ZIPRA의 정치조직)를 탄압하면서 막장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경제는 괜찮았기에 90년대까지만 해도 무가베에 대한 지지율은 괜찮았으나, 2000년대 들면서 경제도 막장이 되며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지금의 악명높은 초인플레이션은 2000년대 들어서 시작되었다.). 2009년에는 실패국가지수에서 120점 만점에 114.0점이라는 극악한 점수를 기록한 바 있다. 당시[5] 114.7점인 소말리아 다음인 2위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초인플레이션이 끝난 게 반영되었는지 경제 제재도 일부 풀리는 등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 그래서 실패국가지수도 2009년 이후 4년 연속으로 빠르게 개선되고 있고 2013년에는 105.2점으로 10위에 그쳤(?)다. 하지만 실패국가지수 세계 10위가 보여주듯 아직도 상황은 아주 나쁘며, 인권 문제도 여전히 매우 심각하다. 즉, 아직도 갈 길이 멀다.

3. 자연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빅토리아 폭포가 있는 나라이기도 하며, '그레이트 짐바브웨' 석조 유적군도 유명하다. 이 유적은 쇼나족이 건설한 것이지만 과거에 짐바브웨를 식민지로 삼았던 백인들은 열등한 흑인들이 이런 것을 만들 수 없다고 믿고 이 곳을 '솔로몬 왕의 금광 유적' 이라 생각해 도굴꾼이 유적을 싹 쓸어갔으며, 그 뒤로도 시바 여왕의 궁전이라거나 아랍인이 지은 것이라는 등 근거 없는 주장을 하며 체계적으로 연구하려는 학자들을 방해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발견된 새(鳥) 조각상이 짐바브웨 국기에 그려져 있다.

자연 상태 자체는 무척이나 잘 보존되어 있는데, 짐바브웨 특성상 미개발지역이 많고 동물들이 서식하기에 좋은 사바나 평원이 전국적으로 펼쳐져 있어 많은 동물학자들의 로망 국가가 되고 있다. 한때 킹치타가 발견되었다고 난리 법석을 떨었던 곳도 이 곳이다. 물론 전세계적으로 겪는 문제인 만큼 환경오염도 문젯거리가 안 되는 건 아니다.

4. 정치

1980년 독립 당시에는 총리제였으나, 1987년 대통령 중심제로 바뀌었다. 대통령 임기는 5년으로 국민직선제로 선출된다. 의회는 상원과 하원 의회를 가진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정상적인 듯 보이지만 1980년 독립한 이래로 로버트 무가베가 쭈욱 장기집권하고 있었다. 2008년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를 거두었으며, 대선 1차 투표에서도 야당 대표인 창기라이(Tsvangirai)가 승리하는 등[6], 정권 교체가 이루어질 뻔 했다. 하지만 창기라이 측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면서 선거 무효를 주장[7]하였고, 무가베측에서는 이를 무시하고 혼자 결선투표를 진행하여 85%의 득표로 당선된다. 이에 따라 야당 지지세력의 반발과 유혈충돌이 벌어졌다. 결국 남부아프리카개발공동체(SADC)의 중재로, 무가베가 대통령을, 창기라이가 총리를 수행하는 식으로 합의를 보았다. 이후 2013년 대선에서는 무가베가 61.9%로 여유롭게 당선되었다. #

그래서인지 2009년 워싱턴 포스트지 주말 매거진 퍼레이드에서 세계 최악의 독재자에서 당당하게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8] 무가베에 대해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부정부패가 널리 알려져 있는 독재자인 만큼 짐바브웨 사람들 모두가 부정적으로 생각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무가베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장 대선에서 무가베를 찍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 봐도. 이에 대해서 짐바브웨의 후진성을 지적하는 경우도 있지만, 무가베가 독립영웅이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최근에는 민주화를 주장하는, 모건 창기라이가 지도자인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야당 민주변화운동(Movement for Democratic Change)이 급속도로 성장했다. 모건 창기라이는 본래 노동운동가로서 짐바브웨 노총의 위원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는 노총 위원장 재임 당시에 이전까지 집권 여당의 입김을 강하게 받던 노총을 개혁하여 노동조합 민주화를 이루었으며,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지지를 바탕으로 민주변화운동을 조직했다.

아래 경제 부분에서 서술하겠지만, 극심한 경제난과 가뭄이 지속되면서 2016년 8월 현재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야당세력들도 적극 동참하여 선거개혁을 요구하고 있으며, 과거 무가베를 지지하던 세력들도 일부 동참하고 있다. 수도 하라레에서 벌어지는 시위만 해도 20만 명[9] 가까이 운집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사실상 수도의 기능이 마비된 상태라고 한다.

이에 대해 무가베는 시위대에게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라고 말하면서, 최루탄과 물대포로 무력진압하고 있다. 이 시위의 진압과 관련하여, 짐바브웨 인권위원회에서는 경찰에 의한 인권유린이 벌어지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

2017년 11월 15일, 군부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났고 쿠데타군은 무가베 대통령과 가족, 측근들을 체포하는데 성공했다. 올해 93세의 무가베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영부인인 그레이스 여사에게 넘기려고 했으며 이를 위해 유력한 대선후보인 에머슨 음낭가과 전 부통령을 파면하고 내쫓은 일이 이번 쿠데타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라고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결국 11월 21일 전격 사임하면서 무가베의 37년간의 독재는 종식되었지만#, 음낭가과 역시 무가베의 측근으로서 은데벨레 족 학살에 관여하며 그의 장기 독재를 도운 전력이 있는 만큼 완전 민주화 이룩까지는 여전히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가베 축출 뒤 새로 출범한 음낭가과 정부는 무가베 독재정권 시절 무가베가 망친 정책들을 폐기하며 무가베 정부와는 차별되는 노선을 펼치고 있다.

#짐바브웨는 2018년 7월 30일에 총선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2018년 대선에서 창기라이와 음낭가과가 경합을 벌일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유력 대권주자로 손꼽히던 창기라이[10]가 결장암으로 남아공 병원에서 결국 숨을 거두었다[11]. 야권에서 창기라이의 입지가 위낙 두터웠던 데다가 대체 후보로 지명된 차미사 후보가 야권 전체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나마 무가베와 반대의 정책을 펴고 있는 음낭가과의 당선이 유력했고 결국 2018년 7월 30일 대선에서 음낭가과가 50.8%의 득표율로 대통령이 되었다.

5. 경제

잘 알다시피 경제 사정도 좋지 않다. 이 때문(?)에 짐바브웨의 인지도를 알리는 데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 짐바브웨가 주변 이웃들에 비해 네임드가 된 것은 다름아닌 인류 역사상 3위의(헝가리,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다음 가는) 초인플레이션을 겪으면서이다. 너무 물가가 빨리 올라가서 그날 새로 뽑은 지폐가 하루만에 휴지조각으로 변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졌었다. 공식 집계로는 연간 물가 상승률이 무려 2억 3천만% 이것도 2008년 1월~7월까지만의 통계만이다. 2008년 공식적으로 발표된 인플레율은 6억%인데, 이것도 축소되어서 발표된거다. 자세한 이야기는 짐바브웨 달러를 참고하자.

막장이 되기 전까지는 "아프리카의 빵바구니"라 불릴정도로 건실한 국가였다. 독립 초기에는 1달러가 0.68짐바브웨 달러에 거래될 정도로 국가상태가 양호했다. 기후도 좋고 국토의 50%가 비옥한 경작지로, 남부 아프리카 지역 최대의 농산물 수출국가였다. 또한 금, 백금, 크롬 등을 비롯하여 다양한 광물자원들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으며, 경제적 인프라나 국민 교육수준도 아프리카에사서는 상위권에 속한다. 이를 토대로 한 독립직후~90년대초반까지의 경제개발정책도 성공적으로 추진되어 연 4%대의 경제성장률을 보였다. 하지만 경제 개발 자체가 본래 잘나갔던 1차산업(농업, 광업)에 편중되어 있었고, 부의 분배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터라, 1992년과 1995년에 닥친 역대 최악의 가뭄으로 경제상황이 악화되었다.

무가베 정권은 경제를 살리고, 고정환율제도를 도입하여 물가를 통제하였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암시장을 활성화시켰고,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환율은 미친듯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물가 통제 정책은 실패로 돌아갔고, 이로 인하여 경제가 더욱더 악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던진 정부가 한 행동이 바로 대규모 화폐 발행. 열심히 돈을 찍어내어 부족한 세수를 메꾸자는 발상이었다. 가뜩이나 경제상황이 악화되어 연 20%대의 인플레이션을 보이던 상황에 돈을 더 찍어냈으니... 결국 또다시 짐바브웨 달러의 가치는 급락했고, 세수가 더욱더 부족해지자 이를 메우기 위하여 다시 더 많은 돈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경제파탄의 길을 걸어갔다. 전형적인 하이퍼 인플레이션 과정을 밟은 셈이다.

90년대 중반이후 무가베 정권은 강제적으로 토지개혁을 실시했다. 식민지 시절에는 모든 농지가 전체 인구의 1% 수준의 백인들이 소유하고 있었으며, 이들이 사실상 짐바브웨 경제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랬던 것이 독립하면서 자유매입, 자유분배의 원칙에 따라 유상분배 형식으로 토지개혁이 이루어졌고, 일정량의 토지가 흑인들에게 재분배되었다.

본래에는 토지몰수 후 무상분배 형식으로 토지개혁이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영국에서 자신들이 토지 구입비용을 제공할테니 유상 구입할 것을 요청했다. 당시 짐바브웨 정부는 국제 지지문제와 국가 통합을 위해서 이에 동의하였고, 이에 따라 토지 분배가 순조롭게 진행되어갔다. 그런데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영국은 자신들에게 책임이 없다며 지원금 지원을 거부한다. 결국 유상분배의 토지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게 된 상황.

그리고 당시 장기화된 경제난과 식량난으로 인하여 무가베 정권은 위기에 놓여 있었다. 이에 따라 정권의 위기를 무마할 카드가 필요했고, 토지 문제를 적극적으로 쟁점화시킨 측면도 있다.

이러한 점들이 겹치면서 독립전쟁에 참전했던 군인들을 중심으로, 현 상황에 반발하여 백인 농장주의 토지를 점거하는 운동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백인농장주가 살해당하거나 토지를 빼앗기고 쫓겨났다. 무가베 정권은 이를 막기보다는 이에 동조하여, 백인들의 토지를 모두 강제 몰수하여 분배하는 토지개혁을 추진한다.

이로 인하여 짐바브웨는 서방국가와 외교적 갈등을 빚었으며, 무가베의 독재가 지속됨에 따라 서방국가들은 '인권 유린, 법치주의 부재, 언론 탄압' 등의 이유로 짐바브웨에 대한 무상원조를 중단시키거나 경제적 제재를 가했다.

더군다나 무계획적으로 농지를 분배하다보니 농사를 지을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분배가 되었으며, 분배받은 다수의 사람들이 농장을 운영하거나 농사를 지을 줄 몰랐다. 또한 무상원조 중단과 경제 제재로 비료나 농기구 등이 부족하였는데... 결국 국가경제의 근간이었던 농업이 파탄나고, 식량수출국가가 졸지에 최악의 식량부족국가가 된다.

한편 이 무상압수 덕분에 서방 언론들은 흑인 정권이 불쌍한 백인들을 탄압한다고 열심히 비판했지만, 생산성과는 별개로 저임금 노동과 고용주의 혹사에 시달리는 흑인들의 불만을 농장주가 동원한 백인 민병대가 가혹하게 탄압하는 등 백인의 흑인에 대한 횡포도 문제였다.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대대적으로 일어난 토지점거운동도 가장 악랄하게 흑인들을 대우했던 백인 지주들의 땅에서 제일 먼저 시작되었다. 재산인 토지를 빼앗기고 쫓겨난 백인들은 처음에는 무가베가 물러날 때를 기다렸지만 지금은 대부분 원래 자신의 토지로 돌아가는 것은 포기하고 현금으로 보상을 받을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무가베를 지지했든 안 했든 거의 대다수 짐바브웨 흑인은 토지에 대한 반환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다만 백인에게 현금 보상을 해주어야 하느냐 마느냐로 의견이 나뉘는 정도이다. 백인이 숫적으로 많이 남아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과는 달리 토지점거 사태와 함께 대부분의 짐바브웨 백인은 국외로 도피했고, 백인이 다시 돌아와서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하며 짐바브웨 사회 속에 살아남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 상황이다. 얼마 남아있지 않은 백인의 대부분은 의사, 변호사 등 농장과는 무관한 전문직 종사자이거나 해외에서 흑인선교를 위해 입국한 백인 선교사들이다.

영국의 폴 서루(Paul Theroux)라는 여행작가가 짐바브웨를 방문하여 본 백인 농장주들이 놔두고 달아난 농장들 현실을 보면, 농기계는 죄다 녹슬고 고장나 방치되어 있으며 농장도 대다수가 황무지같이 방치하고 있고 겨우 먹고 살 정도인 농작물도 현지인들이 농장 일부에서 재배하고 있는 게 대부분이라고 한다. 눈치빠르게 농장 대부분을 재배하여 파는 이들은 극소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방치한 농장이라도 거기 흑인들은 "당연히 여기는 내 땅이다. 무가베 대통령에게서 받은 땅인데 누가 빼앗는다고? 백인들이 나타나 되돌려달라고 하면 죽여 버릴 것이다"고 살기어린 반응을 보였다고 전하고 있다. 땅을 분배받은 흑인 뿐 아니라 무가베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흑인의 대부분도 백인에게 토지를 반환하는 것에는 반대하고 있다. 대다수 흑인이 토지 반환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데다가 이미 거의 20여년이 흐른 뒤라서 혹시라도 토지를 반환하려는 조치가 취해질 경우 엄청난 혼란은 불가피할 것이다.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국외로 도피한 옛 농장주 대부분은 토지를 반환 받는 것은 포기하고 현금 보상을 바라고 있다. 대부분이 다른 나라에서 농업을 하고 있거나 다른 직업에 종사하고 있기도 하고.

2009년부터 사실상 짐바브웨 달러는 화폐로써 가치를 상실했다. 법적 통화로 미국의 달러와, 남아공랜드 그리고 유럽연합의 유로를 쓰고 있다.

2013년 1월 29일, 재무장관이 국고에 23만원 밖에 없다는 기자회견을 해 정부가 파산 위기에 몰렸음을 사실상 시인했다. 곧 디폴트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어느 전직 대통령은 29만원 있는데 그보다도 적다

2015년 12월, 위안화를 공식 통화 가운데 하나로 삼았다. 대가로 2015년 만기되는 부채 탕감을 받기로 했다고.

2015년 6월 12일, 그나마 시장에서 근근히 유통되고 있으며, 공무원들 월급으로 지급되고 있었던 짐바브웨 달러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짐바브웨 중앙은행에서 자국화폐 포기선언을 하였다. 근데 미국 달러를 대체할 방안으로 다시 짐바브웨 달러를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사실상 국가 경제가 파탄난 상태인지라, 경찰이나 치안부대가 아니면 공무원조차도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2016년 7월, 월급 지급을 요구하는 공무원들의 대규모 파업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100여명이 체포되었다.

더군다나 심각한 가뭄이 찾아와 400만 명이 아사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런 와중에 2016년 7월부터 6개월간 기본 식품 및 생필품에 대한 수입제한조치를 시행했다. 자국기업들의 생산 촉진을 통하여 경제를 살리기 위한 조치라고는 하지만, 가뭄으로 식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단행한 조치라 반발이 심하다. 더군다나 짐바브웨의 기업 생산능력은 짐바브웨 전체의 생필품을 생산할 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결국 이로 인하여 수입상들이 반발하여 시위를 벌였고, 이것이 규모가 커지고 공무원들의 시위와 결합되면서 아예 무가베의 독재와 실정에 비판하는 반정부시위로 나아갔다.

무가베가 2017년 쿠데타로 하야한 후 음낭가과가 집권하면서 국내외 언론사의 덩샤오핑식 경제개혁에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비옥한 토지나 풍부한 자원, 비교적 양호한 인프라와 인적자본 때문에 짐바브웨에 경제적인 잠재력이 크다고 보는 전망이 많다.

6. 사회

2008년에는 국가적으로 콜레라가 창궐해서 많은 이들이 죽어나갔다. 그러나 무가베는 미국의 생물병기가 살포된 거지,미친콜레라가 돈 건 아니라고 주장했다. 당연히 국민들은 "여기가 무슨 이라크도 아니고 미국이 쓸데없이 우리나라에 생물병기 같은 귀한 걸 풀 리가 있냐"고 코웃음을 쳤다. 미국이 짐바브웨 같은 아프리카의 오지 중의 오지에 인류의 공적이 되기를 감수하면서까지 생물무기 쓸 일도 없고 당연히 콜레라의 원인은 식수원의 오염. 상수도 시설 및 하천, 우물들이 배설물 등으로 오염되었다 한다. 역시 상하수도 관리 및 염소처리방법 같은 수돗물 처리방법은 중요하다. 독재, 초인플레이션, 에이즈, 콜레라가 만연한 상황을 보면 아예 헬게이트 그 자체다. 물론 이런 현상은 전쟁이 갓 종식된 국가 등 최빈국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는 자산만 날아가고 사회 시스템과 인재는 살아 있는 반면 짐바브웨는 처음부터 인프라가 없었기 때문.

평균 수명 43.5세로 전세계 최하위권이었다.[12] 밑으로 기껏해야 잠비아, 에스와티니 등 몇 나라 없다. 보통 여자의 평균 수명이 더 긴데 이 나라는 특이하게도 남자 수명이 더 길다. 남자 평균 44.1세, 여자 평균 42.6세. 2011년 CIA 보고서로는 남자 46.36, 여자 45.16세. 대체로 이렇게 괴이한데다 아무리 최빈국이라지만 납득이 안 갈 정도로 지나치게 짧은 평균수명이 나타나는 이유로는 이 나라가 에이즈가 만연했기 때문이라는게 일반적인 분석.[13] 그나마 2000년대 후반 들어서 다소 회복되었는데 현재는 60대 정도로까지는 회복되었다.

에이즈가 발병하면 보통 제대로 된 치료를 장기간에 걸쳐 받아 바이러스로 인한 면역체계 파괴를 최소화해야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얼마 가지 않아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하게 된다. 에이즈에 걸리지 않은 짐바브웨인들이야 아무리 의료 수준이 나쁘다고 해도 50대 후반에서 60대 중반 정도의 수명은 보장받겠지만 이렇게 에이즈에 걸려 빠르면 20, 30, 40대에 일찍 죽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전체적인 평균수명은 떨어져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에이즈가 만연한 아프리카를 제외하고 소득수준이 비슷하거나 더 낮은 최빈국들은 대부분 평균수명이 50대 중반 이상이고 그나마도 영유아 사망률[14]이 높아서 까이는 게 많은지라 실제 성인까지 성장한 이들의 평균수명은 그보다도 높다.

그나마 자랑할 거리라면 문맹률은 10%대로,아프리카에서 가장 문맹률이 낮은 국가 중에 하나라는 점이다.짐바브웨의 마지막 양심 2012년 기준으로 문자해독률은 84% 정도이며, 청소년의 문자해독률은 약 90% 정도이다.

독립 이전에는 흑인에게는 의무교육이 제공되지 않았다. 그래서 흑인의 초등학교 입학률은 50%수준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문맹률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독립 이후 초등교육은 의무화되었고 무상으로 실시되었으며, 학교 건립과 교육 투자에 힘을 쏟았다. 이로 인하여 초등학교 입학률이 93%에 달하게 되었다.

하지만 중등교육기관 입학률은 50%도 채 되지 않는다. 이는 경제적인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학비가 비싸다. 평균적으로 학비가 짐바브웨 1인당 GDP의 60% 수준에 해당한다.

어쨌든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남아프리카 지역에서 남아공과 함께 교육강국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경제 파탄으로 인하여 이것도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교사 월급도 제대로 지급 안 될 정도로 국가적인 지원이 전무한 실정이며, 우수한 인재들은 이 헬게이트를 탈출하고 있다.

교육 수준이 좋은 또 다른 아프리카 나라로는 가나가 있다. 이쪽은 다른 아프리카들 국가에 비하면 굉장히 양호한 국가이긴 하지만.

7.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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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에 비해 문화 수준은 상당하다. 고층 빌딩들이 수도인 하라레에 상당히 많으며 휴대폰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아프리카 국가 중에선 많은 편이다. 또 국민들의 성격상 문화를 즐기는 경향이 좀 있다. 문제는 그럴 돈이 없다는 거(...). 짐바브웨의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앞뒤가 안 맞는다.

이런 을씨년스러운 국가 상황속에서 한국의 드라마 '대장금'이 2008년 엄청나게 대박이 났다. 당시 크리스마스 이벤트로 내건 대장금 이벤트엔 국민의 4분의 1이 응모하는 사상 초유의 이벤트가 되었고, 베이징 올림픽 때 짐바브웨 공영방송에서 대장금 정규방송 대신 올림픽 중계했다고 항의전화로 업무 마비가 될 정도...짐바브웨 사람들은 장금이의 인생 역정을 보면서 자기 위로를 하는 듯...대부분의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는 이런건 상상도 못할 일이니 이런 걸로 위안을 삼자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장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국가이기도 하다. 제목은 The Legend of the Sky Kingdom(하늘왕국의 전설). 제작 년도는 2003년. 평도 좋은 편으로 SICAF와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장편 경쟁부문에도 진출했다.

8. 외교 관계

짐바브웨/외교

9. 창작물에서

화폐와 관련된 드립으로 짐바브웨 달러가 대표적으로 쓰인다(...).

폴란드공에선 화폐가 너무나도 가벼워 두둥실 날아가 나무에 걸린 고양이를 구하는 선량한 행동을 하나 내려오질 못한다(...). 다른 에피소드에선 본인 의도는 아니지만 지구공에서 자연스럽게 추방되서 명왕성까지 날아가 뉴 호라이즌스 호랑 만나는 개그신으로 나온다. 당연하지만 우주끝까지 날아간 뒤로는 그 누구도 잠바브웨 달러를 보지 못 하였다. 안습

밥 말리의 대표곡 중 'Zimbabwe'는 바로 로디지아 시절 흑인들이 백인들의 학정을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었던 노래다.

소설 테메레르 4권에 나오는 아프리카 원주민 국가의 중심지가 짐바브웨이다. 원주민 국가의 수도로 알려진 모시 오아 툰야는 빅토리아 폭포를 현지 통가언어로 일컫는 명칭(천둥소리 나는 연기라는 뜻).

슈퍼파워2에서는 동네북이라 카더라

9.1. 짐바브웨 국적 가상 인물

※해당 국가 작품 내 등장인물은 제외한다.

10. 이야깃거리

한때 닉 프라이스 등 미국 PGA 골프투어에서 활약하는 몇몇 A급 선수들의 국적이 여기로 되어 있던 것이 실상은 세금 안 내기 위한 꼼수였다는 얘기가 돌았다. 국적만 짐바브웨이지 실제 거주나 생활은 영국이나 미국에서 하는 영국인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닉 프라이스는 원래부터 짐바브웨인이고 짐바브웨에서 학교에 다닐 때 골프를 시작했다(물론 그가 젊은 시절에는 로디지아). 사실 미국 골프투어에서 활약하는 선수들 상당수가 미국에 집을 두고 있다.[15] 한국 출신 선수[16]들도 마찬가지.

국가명이 'Zi...'로 시작하기 때문에 하계 올림픽에서 영어 알파벳 순서대로 입장할 경우 입장 순서가 맨 마지막으로 고정되어 있는 개최국 바로 전에 입장하게 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반대로 영어 알파벳 순서 상 가장 먼저 오는 나라는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이다.

자연관광이 아닌 유적관광하기 좋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라면 십중팔구 짐바브웨를 꼽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가장 유명한 유적지는 옛날 짐바브웨 왕국의 수도였다 지금은 폐허가 된 도시인 그레이트 짐바브웨가 있다. 다른 아프리카에 비해 치안도 양호한 편인 건 덤.

11.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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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쇼나어, 은데벨레어, 벤다어, 남뱌어, 샹간어, 칼랑가어, 수투어, 퉁가어[2] 2017년 11월 6일부터 제2부통령으로 재임 중이던 펠레케젤라 음포코*가 음낭가과 해임 후 제1부통령직을 역임했고, 2017년 11월 21일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의 사임으로 해당 일자부터 대통령직도 겸임하게 되었다. 2017년 11월 24일 음낭가과 전 부통령이 임시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면서 대통령 권한대행과 제1부통령 등 자신이 맡고 있던 모든 자리를 내려놓고 물러났다. 이후 12월 27일 음낭가과 대통령은 무가베 축출에 공헌한 전 군사령관 콘스탄티노 치웽가를 부통령으로 임명했다.*[3] 무가베 축출 당시 짐바브웨 군부의 대변인으로서 국영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4] 쇼나어로 '정복지'라는 의미[5] 2013년 현재 소말리아는 113.9점을 기록하고 있으니, 2013년에 짐바브웨가 이 점수를 기록했다면 근소한 차이로 1위가 되었을 것이다.[6] 과반을 획득해야 하는데, 당시 창기라이는 47.9%였고, 무가베는 42.3%였다. 그래서 결선투표를 치루었다.[7] 총선결과가 예정보다 늦게 공개되면서 이런 의혹이 제기되었다.[8] 여기에서 김정일이 오마르 알 바시르에 이어 3위에 불과하다는 걸 보면 얼마나 문제 많은 동네인지 짐작이 갈 듯.[9] 참고로 하라레의 인구는 2012년 기준으로 148만 명.[10] 한국으로 치면 민주화 운동 시절의 김대중+김영삼 급의 거물 정치인으로 무가베에 맞서서 투쟁한 경력이 있는 데다가, 2008년 대선 때 무가베가 공작을 가하지 않았다면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높았던 인물이었다.[11] 이미 2016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서 병치료받고 있었던 처지였었다.[12] 다만 짐바브웨가 막장화되기 이전부터 평균 수명이 급속히 하락했는데 이것도 역시 에이즈의 영향이다.[13] 실제로 주변국 통계를 보면 대체적으로 1980년대까지는 평균수명이 어느정도 상승하는 추세였다. 그런데 90년대 중후반 들어서 평균수명이 갑자기 확 줄어드는데 정부차원에서의 에이즈에 대한 대처가 미비한데다가 돌팔이들이 예방법이랍시고 괴상한 처방을 내놓다보니 에이즈가 계속해서 번졌기 때문이라는게 대체적인 평이다.[14]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아직 영아사망률이 높은 편이다. 주지하듯이 현대 이전의 아시아는 물론이고 산업사회에 들어선 유럽까지, 공중보건이 미비한 단계에서 평균수명을 깎아먹는 주된 원인은 높은 영아사망률이다. 영아사망률만 낮춰도평균수명은 확 올라간다. 이것도 일종의 평균의 함정.[15] PGA 투어에서 우승하면 미국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 그린자켓 그린카드 일타쌍피[16] 배상문 선수가 이렇게 받은 영주권으로 병역 연기를 했다가 낭패를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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