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 게임즈에서 만든 공식 라이선스 비디오 게임에 대한 내용은 Beijing 2008 - The Official Video Game of the Olympic Games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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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왕국|]] | [[프랑스 제3공화국|]] | [[미국|]] | [[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 | [[스웨덴|]] | |
1896 아테네 | 1900 파리 | 1908 런던 | |||
<rowcolor=#202020,#DFDFDF> 6회 | 7회 | 8회 | 9회 | 10회 | |
[[벨기에|]] | [[프랑스 제3공화국|]] | [[네덜란드|]] | [[미국|]] | ||
1924 파리 | |||||
<rowcolor=#202020,#DFDFDF> 11회 | 12회 | 13회 | 14회 | 15회 | |
[[나치 독일|]] | [[영국|]] | [[핀란드|]] | |||
1936 베를린 | 1948 런던 | 1952 헬싱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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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자치령|]] | [[이탈리아|]] | [[일본|]] | [[멕시코|]] | [[서독|]] | |
1956 멜버른 | 1960 로마 | 1964 도쿄 | 1972 뮌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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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자치령|]] | [[소련|]] | [[미국|]] | [[대한민국|]] | [[스페인|]] | |
1988 서울 | |||||
<rowcolor=#202020,#DFDFDF> 26회 | 27회 | 28회 | 29회 | 30회 | |
[[미국|]] | [[호주|]] | [[그리스|]] | [[중국|]] | [[영국|]] | |
2000 시드니 | 2004 아테네 | 2008 베이징 | 2012 런던 | ||
31회 | 32회 | 33회 | 34회 | 35회 | |
[[브라질|]] | [[일본|]] | [[프랑스|]] | [[미국|]] | [[호주|]] | |
2020 도쿄(연기) | 2024 파리 | ||||
<rowcolor=#202020,#DFDFDF> 36회 | 37회 | 38회 | 39회 | 40회 | |
2036 미정 | 2040 미정 | 2044 미정 | 2048 미정 | 2052 미정 | |
역대 동계올림픽 / 역대 하계패럴림픽 / 역대 동계패럴림픽 | |||||
Citius, Altius, Fortius! - Communiter 더 빠르게, 더 높게, 더 힘차게! - 다 함께 | }}}}}}}}} |
<colbgcolor=#d71921><colcolor=#fff> 2008 베이징 올림픽 | |
제29회 베이징 올림픽 대회 第29届奥林匹克运动会 北京2008年奥运会 Jeux de la XXIIXe Olympiade™ Beijing 2008 Games of the XXIIX Olympiad™ Beijing 2008 | |
대회 기간 | 2008년 8월 8일 ~ 24일 |
개최지 | [[중국| ]][[틀:국기| ]][[틀:국기| ]] 베이징시 |
슬로건 | 同一个世界 同一个梦想 One World, One Dream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 |
마스코트 | 푸와(베이베이, 징징, 환환, 잉잉, 니니) |
주제가 | You and me(我和你)[1] |
참가국 | 204개국 |
참가 선수 | 11,028명 남 6,305명/여 4,637명 |
경기 종목 | 28개 종목 - 302개 세부 종목 |
개회 선언 | 후진타오 중국 주석 |
선수 선서 | 장이닝[2] |
심판 선서 | 황리핑 |
성화 점화 | 리닝 |
개·폐회식장 | 베이징국가체육장 |
유치 확정일 | 2001년 7월 13일 |
[clearfix]
1. 개요
개회식 영상[3] |
개최전부터 중국 개최라서 말이 많았던 대회이다. 중국이 그간 죽의 장막 아래 있는 낙후된 국가, 19년 전의 천안문 6.4 항쟁(천안문 사태)로 인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씻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 대회이기도 하며, 이런저런 말이 많기는 해도 중국이 세계 강국으로 부상했음을 전 세계에 과시하려는 대회로 1964 도쿄 올림픽이 일본에 끼친 영향이나 1988 서울 올림픽이 대한민국에 끼친 영향 만큼이나 중국에게 있어서 끼친 영향과 의미가 깊은 대회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개막식 날에 러시아가 남오세티야 전쟁을 일으켜서 신냉전의 시작을 알리는 대회이기도 하다.
대회 주제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One world, One dream)\'[5]이다. 여기에는 평화와 진보, 조화로운 발전, 우호적 생활, 협력, 상호 이익, 행복한 삶의 향유 등 전세계 모든 나라의 시민들이 공통적으로 꿈꾸는 이상을 실현하고 평화롭고 밝은 세계를 건설하는 데 이바지하고자 하는 13억 중국인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고 한다.
중국은 이 베이징 올림픽에 건 기대가 굉장히 컸던지라, 개최 확정 이후 시민의식 상승운동 및 시설 재정비에 들어갔다.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 등 주요 인프라가 보수되고, 국제화 규격과 맞지 않은 게시판들도 교체가 있었다.[6]
불행히도, 2008년 중국에는 자연재해가 많았다. 새해부터 남부 지역에 눈보라 사태가 발생했고, 날이 풀릴만 하니까 2008년 쓰촨성 대지진으로 7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7] 중국 정부, 그리고 중국인이 이 올림픽에 목숨을 건 이유는 ‘이러한 재난에서도 우리는 결코 굴하지 않는다’라는 절박한 심리도 있었다.
그 결과, 실제로도 중국이 올림픽에 건 기대에 걸맞게 대회 이후 2010 상하이 엑스포와 함께 중국이 세계적으로 정치적, 경제적에서 크게 부상하기 시작하는 계기를 만들게 되었다. 올림픽이 가져다 준 최대의 긍정적인 효과의 좋은 예 중 하나.[8]
2. 대회 상징
2.1. 엠블럼
<rowcolor=#ffffff> 2008 베이징 올림픽 엠블럼 | 2008 베이징 패럴림픽 엠블럼 |
해당 엠블럼은 베이징 올림픽 조직위원회 측에서 2002년 7월부터 10월까지 개최한 ‘국제 디자인 대회’의 당선작이다. 당시 1,994개의 작품 중 가장 호평을 받았던 이 작품은 궈춘닝(郭春寧)[9]이 제작했다.
2003년 8월 3일, 베이징의 천단 공원에서 공식 발표된 이 엠블럼의 제목은 <중국의 인장, 춤추는 베이징>으로, 한자 ‘京’을 기본으로 제작되었다.[10]
색은 빨강으로, 빨강을 좋아하는 중국인의 기호를 나타냄과 동시에, 몇 천 년 동안 중국인의 일상에 녹아든 도장 문화를 표현하고 있다.[11][12]
수많은 한자의 모양 중 시초격이라 할 수 있는 갑골문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때문에 여타 한자 로고보다도 곡선이 중점적으로 묘사돼 있는데, 특이하게도 이 곡선은 용을 상징하기도 한다. 용은 중국 문화에서 고귀한 동시에 강력한 존재였는데, 이는 올림픽이 추구하는 이념[13]과도 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조직위원회는 보았다.
두 팔을 크게 벌린 사람 모양과도 유사하다. <베이징 환잉니>라는 주제곡과 마스코트의 이름처럼, 베이징이 전 세계의 사람들을 환영함을 보여준다. 또한, 정적인 환영뿐만 아니라 밝은 미래를 향해 주도적으로 달려가는 모습까지도 담고 있다.
2.2. 마스코트
<rowcolor=#ffffff> 2008 베이징 올림픽 마스코트 |
차례대로 1음절씩만 떼어서 발음하면 베이징 환잉니(北京欢迎你, 베이징은 당신을 환영합니다.)가 된다. 여담이지만 역대 올림픽 마스코트 중에서도 가장 많이 구성된 것이다.
<rowcolor=#ffffff> 이름 | 베이베이(贝贝) | 징징(晶晶) | 환환(欢欢) | 잉잉(迎迎) | 니니(妮妮) |
색깔 | 파랑 | 검정 | 빨강 | 노랑 | 초록 |
성별 | 여 | 남 | 남 | 남 | 여 |
상징물 | 물고기 | 판다 | 성화 | 티베트 영양 | 북경 제비 |
자연 | 나무(木) | 숲(森) | 불(火) | 흙(土) | 하늘(天) |
축원 | 번영 | 환영 | 격정 | 건강 | 행운 |
스포츠 | 수영 | 힘 | 구기 | 육상 | 체조 |
2.3. 메달 디자인
<rowcolor=#ffffff> 2008 베이징 올림픽 메달 |
3. 유치 과정
2008년 올림픽 유치 투표 과정 | ||||
국가 | 도시 | 1차투표 | 2차투표 | 결과 |
중국 | 베이징시 | 44 | 56 | 유치 선정 |
캐나다 | 토론토 | 20 | 22 | 유치 탈락 |
프랑스 | 파리 | 15 | 18 | 유치 탈락 |
터키 | 이스탄불 | 17 | 9 | 유치 탈락 |
일본 | 오사카 | 6 | 유치 탈락 |
4. 경기 종목
- 근대 5종
- 농구
- 레슬링 - 그레코로만형, 자유형
- 배구 - 배구, 비치발리볼
- 배드민턴
- 복싱
- 사격
- 사이클 - 도로, 트랙, 산악 자전거
- 소프트볼
- 수영 - 경영, 다이빙, 수구,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 승마 - 마장마술, 장애물, 종합마술
- 야구
- 양궁
- 역도
- 요트
- 유도
- 육상
- 조정
- 체조 - 기계체조, 리듬체조
- 축구
- 카누 - 스프린트
- 탁구
- 태권도
- 테니스
- 트라이애슬론
- 펜싱
- 필드 하키
- 핸드볼
5. 개막식
6. 대회
2000년대 들어서 오랜만에 기인에 가까운 선수들이 제법 많이 나왔던 올림픽으로써, 숱한 명승부와 명장면들이 펼쳐진 대회였음은 부정할 수 없다. 마이클 펠프스는 수영에서 무려 8관왕[17]으로 마크 스피츠를 넘어 역사상 한 대회 최다 금메달리스트라는 기록을 세웠고[18] 육상에서는 우사인 볼트가 100m, 200m, 4×100m에서 3번 연속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미국 육상을 압도했다. 반대로 미국 육상계는 단거리 부분에서 남자나 여자나 모두 털리면서 제대로 망했다. 장미란은 다른 선수들이 모두 메달을 가린 후에 혼자 역기를 들며 세계신기록을 경신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야구에서는 김경문호가 최종 예선을 뚫고 올림픽 참가했고, 불안한 시작과는 달리 남자 구기종목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또한 금메달뿐만 아니라 전승으로 우승한 기록을 세우게 되었는데 이것은 야구가 올림픽 종목으로 진입한 후 최초의 기록이었다. 결승전에서는 야구 최강국 쿠바를 상대로 마지막에 정대현이 극적인 더블플레이를 유도하여 최종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 펜싱에서는 여자 플뢰레 개인전에서 발렌티나 베찰리가 한국의 남현희를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펜싱 역사상 유일하게 단일 종목 3연패를 기록한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도 명승부가 나왔다. 결승전은 한국의 오은석을 이기고 올라간 니콜라 로페즈와 홈팀 중국의 중만간의 대결이었다. 초반에 먼저 8득점을 올리며 전반전을 리드로 끝낸 쪽은 로페즈였으나, 중만은 단 1점만 실점하고 무려 9득점을 올리며 15-9의 완승을 거두고 중국의 역대 2번째 올림픽 펜싱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첫 금메달은 이보다 24년 전에 여자 플뢰레 개인전에서 우승한 루안지제였다. 그러나 중만의 전성기는 대한민국이 남자 사브르에서 구본길을 발굴하면서 금세 끝났다.[19]
- 남자 축구의 경우 리오넬 메시가 출전해서 화제가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만나는 팀마다 죄다 승리를 거두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무시무시한 당시 아르헨티나 스쿼드를 처음 접한 축구 커뮤니티는 모두 "이 새키들 월드컵 나가냐?"며 경악. 후안 로만 리켈메,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세르히오 아궤로, 앙헬 디마리아, 에세키엘 라베시, 리오넬 메시 등을 자랑했다. 참고로 아르헨티나는 결승전에서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승리를 거둬 이전 대회에 이어 올림픽 본선 12연승을 기록했다. 이 올림픽 축구종목은 앙헬 디 마리아라는 새로운 스타 플레이어를 발굴했다. 이 당시 아르헨티나의 무시무시한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매경기 2실점 이상 기록하지 않았고 전승 금메달도 기록이지만 브라질을 일방적으로 이긴것이 압권이었다.
- 조별리그
- VS 코트디부아르 2-1 승
- VS 호주 1-0 승
- VS 세르비아 2-0 승
- 8강 VS 네덜란드 2-1(연장) 승
- 4강 VS 브라질 3-0 승
- 결승 VS 나이지리아 1-0 승
참고로 이 대회의 축구는 20년 전인 1988 서울 올림픽 축구와 굉장히 겹치는 점이 많았다.[26]
여담으로 호나우지뉴 또한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하여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 양궁은 중국인들의 시민의식이 아직 갈 길이 얼마나 먼지 보여주었다. 특히 악천후 속에서 치러진 여자 개인전에서 중국의 장쥐안쥐안은 8강에서 주현정, 4강에서 윤옥희, 결승에서 박성현마저 이겨 한국인 올킬을 달성했는데, 중국 관중들은 장쥐안쥐안의 경기에서 한국 선수들이 조준할 때마다 호루라기를 불고 페트병까지 두드리며 경기를 방해했다.[27] 아무리 국내에서 이런 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했다고 하지만, 한발 한발 집중해서 쏘아도 10점에 들어갈까 말까인데 잡다한 소음이 들리니, 아무리 담이 큰 한국 선수들이라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이 대회 뒤 한국 양궁 대표팀은 전보다 훨씬 더 강도가 센 훈련을 강행했는데, 바로 소음하면 둘째가는 야구 경기장에서 야구 경기가 시작되기 전 훈련을 한 것. 물론 관중들에게는 조용히 하라는 제지는 하지 않았고, 야구팬들이 평소처럼 분위기를 띄우며 쿵짝쿵짝 엄청난 소음[28]을 유발하는 상황 속에서 귀도 안 막고 훈련했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보다 더한 광적인 응원 클래스를 보여주었다.
- 남자 역도 105kg 초과급에서는 수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집고 독일의 마티아스 슈타이너가 용상 인상 도합 461kg을 들어올리며 금메달을 거머쥐었다.[29] 슈타이너는 2007년에 아내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며 선수 생활을 그만둘 위기에 처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선수생활을 계속해 올림픽에 출전했다.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오스트리아 대표로 출전해 7위에 그쳤던 슈타이너는, 올림픽 전초전 격이었던 2008년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아내의 조국인 독일을 대표로 출전해 은메달을 거머쥐며 가파른 상승세를 탔고, 결국 베이징 올림픽에서 자신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금메달을 거머쥐게 된다. 정작 본인은 워밍업을 하던 당시 용상과 인상 모두 실전에서만큼의 무게를 들어올리지 못했고, 러시아 선수의 컨디션이 좋아 자신이 금메달을 획득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저 같은 날 독일이 트라이애슬론에서 깜짝 금메달을 획득한 것 정도가 자신에게는 큰 힘이었다고. 인상에서 4위에 그쳤던 슈타이너는 용상 마지막 시기에 10kg을 추가하는 승부수를 두었고, 기어코 그 무게를 들어올려 두 계단을 한번에 뛰어올라 1kg 차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금메달이 확정된 직후 슈타이너는 바벨 위에 엎드려 오열했고, 시상식에서는 아내가 항상 곁에 있었음을 알리기 위해 세상을 떠난 아내의 사진을 금메달과 함께 들어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이 장면은 경기를 시청한 수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고, 지금까지도 베이징 올림픽을 넘어 100년이 넘는 올림픽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로 회자되곤 한다.마티아스 슈타이너의 회상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로 자신의 전 아내에게 작별인사를 고한 슈타이너는, 뉴스앵커를 만나 2010년 재혼한 후 2012 런던 올림픽까지 출전한 뒤 2013년 은퇴했다.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은퇴 후 40kg을 감량한지라 예전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웬 훈남이 인터뷰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호주의 다이빙 선수 매슈 미첨이 커밍아웃 이후 최초로 금메달을 건 선수가 되어 화제가 되었다. 게다가 중국이 독주하는 다이빙 종목에서 딴 금메달이라 더욱더 화제가 되었다. 금메달 획득 이후 미첨은 호주의 국민영웅 중 한 명이 됐으며, 성소수자 올림픽 선수들에게도 큰 용기를 준 선수로 귀감이 되고 있다.
- 육상 여자 장대높이뛰기 결승에서는 브라질의 '파비아나 무레르'의 장대가 주최측의 실수로 분실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브라질로서는 직전 대회 남자 마라톤에서 선두를 달렸던 반데를레이 리마가 관중의 습격으로 3위로 밀려난 데 이어 2개 대회 연속으로 육상 경기에서 피해를 입은 것이다.
- 태권도 남자 +80kg급 경기에서 불상사가 발생했다. 동메달 결정전에 출전한 쿠바의 '앙헬 마토스'가 경기 도중 발가락 부상을 당해 1분간의 치료 시간을 얻었다. 규정상 1분이 경과하면 주심에게 추가 시간을 요청할 수 있는데, 쿠바 코치진이 이를 모르고 추가 시간 요청 없이 치료를 계속하여 마토스에게 기권패가 선언되었다. 이에 격분한 마토스가 언제 발가락을 다쳤냐는 듯 일어서서 심판진에게 거칠게 항의했고, 스웨덴인 주심 '샤키르 첼바트'가 오른손을 들며 "청 승!"을 외치기가 무섭게 왼발로 첼바트 주심의 얼굴을 가격했다. 결국 세계태권도연맹은 마토스와 코치에게 영구제명과 동시에 올림픽 5위 기록을 말소하는 중징계를 내렸다.
헤르초크 & 드 뫼롱이 중국의 건축가이자 영화 감독인 아이웨이웨이[30]와 공동으로 설계한 '새둥지' 주 경기장 등 걸작 건축들도 한몫 했다. 운영자체는 막장이었어도 볼 건 많았다고 해야되나. 이런 말 저런 말이 나왔지만 그래도 큰 사고는 없이 끝난 대회였다.
베이징 올림픽 종합 우승은 중국에 돌아갔다. 중국은 개최국의 이점으로 금 48개 은 22개 동 30개로 종합순위 1위에 랭크되며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대회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종합 메달은 미국이 1위)
7. 대한민국 하계올림픽 성적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한민국 금메달리스트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순서 | 종목 | 세부 종목 | 선수 |
<colcolor=black> 1 | 유도 | <colcolor=black> 남자 -60kg급 | 최민호 | |
2 | 수영 | 남자 자유형 400m | 박태환 | |
3 | 양궁 | 여자 단체 | 박성현 윤옥희 주현정 | |
4 | 양궁 | 남자 단체 | 박경모 이창환 임동현 | |
5 | 사격 | 남자 50m 권총 | 진종오 | |
6 | 역도 | 남자 -77kg급 | 사재혁 | |
7 | 역도 | 여자 무제한급 | 장미란 | |
8 | 배드민턴 | 혼합 복식 | 이용대 이효정 | |
9 | 태권도 | 여자 -57kg 급 | 임수정 | |
10 | 태권도 | 남자 -68kg급 | 손태진 | |
11 | 태권도 | 여자 -67kg급 | 황경선 | |
12 | 태권도 | 남자 +80kg급 | 차동민 | |
13 | 야구 | 남자 대표팀 | 이승엽 외 23명 |
한국은 이 올림픽에서 금 13개 은 11개 동 8개로 역대 최다 금메달을 따내어[31] 총 7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직후의 동계올림픽, 다음 하계 올림픽과 함께 명실상부한 한국 스포츠의 최전성기를 상징하는 올림픽이다. 박태환의 수영 금메달, 장미란의 역도 금메달, 이용대/이효정의 배드민턴 금메달, 야구 금메달 등 여러 종목에서 다시는 나오기 힘든 기적같은 금메달들이 쏟아져 나왔다.
참고로 당시 여자 역도에서 장미란이 금메달, 임정화가 4위를 차지했는데 그 당시 은메달을 차지했던 터키의 시벨 오스칸의 소변에서 금지약물 양성이 나와 은메달이 박탈당하면서 당시 동메달을 딴 선수는 은메달로 승격되어 4위였던 임정화 역시 8년이 지난 후에 3위로 올라섬으로써 늦게나마 동메달을 받게되었으며 또다시 그 메달을 땄던 중국 선수마저 메달이 박탈됨에 따라 은메달을 따게 되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에 메달이 총 32개로 하나가 더 늘었으며 순위는 전과 동일하다. 남자 단체 종목으로는 사상 최초로 구기 종목에서 금메달이 나왔다. 자세한 사항은 2008 베이징 올림픽/야구 문서 참조. 그 동안 메달이 없었던 제주특별자치도 역시 지역 출신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배출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메달이 나오기 힘든 수영 자유형 종목에서 박태환이 만 18세의 나이로 아시아 신기록을 경신하며 수영 불모지인 한국 사상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는 기적을 연출했다. 당시 박태환이 따낸 금메달은 무려 72년만에 아시아에서 나온 자유형 종목 금메달이었기에 매우 의미가 있는 메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장미란은 상대 선수들과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며 금메달과 함께 세계 신기록을 경신했다. 같은 역도에서 사재혁이 금메달을 수상했고, 배드민턴에선 이용대와 이효정이, 유도에선 최민호가 금메달을 수상하며 국민 영웅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진종오는 자신의 첫번째 금메달을 따냈고 양궁에서 금메달 2개, 태권도에서 4개, 여기에 야구[32]까지 더해 총 13개의 금메달이 나왔다.
한국은 메달 종합순위 7위를 차지해서 시드니와 아테네에서의 부진을 만회했다. 아무래도 이웃나라에서 열린 올림픽이다 보니 현지적응 부분에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 유리했기 때문에 호성적을 거뒀다고 할 수 있겠다.[33]
그런데 선수들의 귀국 문제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모든 경기가 끝나고 더 이상 중국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는 선수들의 귀국을 체육회가 막아버렸다. 이를 두고 "정권의 홍보를 위하여 선수들의 단체 귀국 차량 퍼레이드에 동원하기 위하여 막은 거 아니냐"는 비난이 속출하자[34] "선수들의 상업적 이용을 막기 위해서"라는 변명을 했고, 결국 차량 퍼레이드가 아닌 선수들의 단체 귀국 걷기 퍼레이드를 보였으나 몇몇 선수들은 불쾌한 얼굴을 보이며 걷기도 했다.[35] 중계도 당연히 되지 않았고, 중앙일보 계열인 일간스포츠는 1면으로 "시대를 역행한 국제적 망신거리"라고 비판했다.[36]
그리고 이런 계획은 2012 런던 올림픽 때에도 쭉 써먹으려다가 호된 비난을 받고 강제적인 면을 없애 몇몇 선수가 한국에 먼저 왔는데, (양학선 같은 경우) 그래도 말이 많았었다.
8. 메달 집계
2008 베이징 올림픽 메달 집계 최종 집계 | |||||||||||
<rowcolor=#d71921,#ffffff> 순위 | 국가 | 메달 | 합계 | ||||||||
금 | 은 | 동 | |||||||||
1 | [[중국|]] 중국 | 48 | 22 | 30 | 100 | ||||||
2 | [[미국|]] 미국 | 36 | 39 | 37 | 113 | ||||||
3 | [[러시아|]] 러시아 | 24 | 13 | 23 | 60 | ||||||
4 | [[영국|]] 영국 | 19 | 13 | 19 | 51 | ||||||
5 | [[독일|]] 독일 | 16 | 11 | 14 | 41 | ||||||
6 | [[호주|]] 호주 | 14 | 15 | 17 | 46 | ||||||
7 | [[대한민국|]] 대한민국 | 13 | 11 | 8 | 32 | ||||||
8 | [[일본|]] 일본 | 9 | 8 | 8 | 25 | ||||||
9 | [[이탈리아|]] 이탈리아 | 8 | 9 | 10 | 27 | ||||||
10 | [[프랑스|]] 프랑스 | 7 | 16 | 20 | 43 | ||||||
11 | [[네덜란드|]] 네덜란드 | 7 | 5 | 4 | 16 | ||||||
12 |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 7 | 4 | 11 | 22 | ||||||
13 | [[케냐|]] 케냐 | 6 | 4 | 6 | 16 | ||||||
14 | [[스페인|]] 스페인 | 5 | 11 | 3 | 19 | ||||||
15 | [[자메이카|]] 자메이카 | 5 | 4 | 2 | 11 | ||||||
16 | [[폴란드|]] 폴란드 | 4 | 5 | 2 | 11 | ||||||
17 | [[에티오피아|]] 에티오피아 | 4 | 2 | 1 | 7 | ||||||
18 | [[루마니아|]] 루마니아 | 4 | 1 | 4 | 9 | ||||||
19 | [[쿠바|]] 쿠바 | 3 | 10 | 17 | 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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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셔스, 사모아, 세르비아, 수단,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 토고는 이 대회에서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획득했으며 몽골, 파나마는 첫 금메달을 따는데 성공했다.
90년대까지 종합 10위권 안을 지켜낸 헝가리는 1996년부터 종합 순위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더니, 이번에는 종합 순위 21위로 사상 처음으로 2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8.1. 대한민국 하계 올림픽 성적
■ 2008년 29회 베이징 올림픽 (2008 Summer Beijing Olympics)- 기간 : 8월 8일 ~ 8월 24일
- 규모 : 204개국 16,000(여)명 참가.
- 종목 : 근대5종, 농구, 레슬링, 배구, 배드민턴, 복싱, 사격, 사이클, 소프트볼, 수영, 승마, 야구, 양궁, 역도, 요트, 유도, 육상, 조정, 체조, 축구, 카누, 탁구, 태권도, 테니스, 트라이애슬론, 펜싱, 하키, 핸드볼
- ▶대한민국 참가 현황 : 임원 122명, 선수 267명 참가.(근대5종, 농구, 레슬링, 배드민턴, 복싱, 사격, 사이클, 소프트볼, 수영, 승마, 야구, 양궁, 역도, 요트, 유도, 육상, 조정, 체조, 축구, 카누, 탁구, 태권도, 테니스, 트라이애슬론, 펜싱, 하키, 핸드볼)
- ▶대한민국 참가 성적 : 금메달 13개, 은메달 11개, 동메달 8개 획득. 종합순위 7위.
- 금메달
- 배드민턴(혼합복식) 이용대, 이효정
- 남자 사격(50m 공기권총) 진종오
- 남자 수영(자유형 400m) 박태환
- 남자 야구 김경문호
- 여자 양궁(단체) 박성현, 윤옥희, 주현정
- 남자 양궁(단체) 박경모, 이창환, 임동현
- 남자 역도(77kg) 사재혁
- 여자 역도(75kg) 장미란
- 남자 유도(60kg) 최민호
- 여자 태권도(57kg) 임수정
- 여자 태권도(67kg) 황경선
- 남자 태권도(68kg) 손태진
- 남자 태권도(80kg) 차동민
- 은메달
- 여자 배드민턴(복식) 이효정, 이경원
- 남자 사격(10m 공기권총) 진종오
- 남자 수영(자유형 200m) 박태환
- 여자 양궁(개인) 박성현
- 남자 양궁(개인) 박경모
- 여자 역도(48kg) 임정화
- 여자 역도(53kg) 윤진희
- 남자 유도(73kg) 왕기춘
- 남자 유도(81kg) 김재범
- 남자 체조(평행봉) 유원철
- 여자 펜싱(플뢰레) 남현희
- 동메달
9. 기타 참가국 관련
카리브해에 자리한 네덜란드령 안틸레스가 마지막으로 참가한 올림픽이기도 하다. 2년 후인 2010년에 네덜란드령 안틸레스는 행정 구역 개편으로 여러 곳으로 분할되어 해체되었으며, 당시 선수들은 차기 올림픽에서 무소속 선수단으로 출전한다.리비아는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기에 쓰였던 대리비아 아랍 사회주의 인민 자마히리야라는 국호와 초록색 단색 국기를 쓰는 마지막 올림픽으로 기록되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는 1년 전 카다피의 자마히리야 정권이 멸망하면서 국호를 리비아로 바꾸고 국기도 초록색 단색 국기 대신 리비아 왕국 시절 국기로 교체하였다.
10. 한국측 중계진
KBS와 MBC의 치열한 1위 경쟁 끝에 KBS가 1위를 차지한 반면, SBS는 꼴찌를 차지하고 말았다.10.1. KBS
- 슬로건: 올림픽 대표방송 KBS
- 캐스터/진행자: 김현태(야구/농구), 서기철(개막식/축구/육상), 최승돈(펜싱/핸드볼), 유지철(폐막식/유도/야구/수영), 장웅(체조/다이빙), 조건진(레슬링/태권도/사이클), 김성수(수영), 이재후(양궁)
- 스튜디오 진행: 한석준, 이정민
- 해설위원: 이용수(축구), 이용철(야구), 안재형&자오즈민(탁구), 이원희&김병주(유도), 이은경(양궁), 김광선(복싱), 유영주(농구), 여홍철(체조), 전병관(역도)
10.2. MBC
- 슬로건: 올림픽도 승리의 MBC다!
- 캐스터/진행자: 임경진(축구/수영/핸드볼), 김창옥(축구/육상/하키), 한광섭(야구/유도/양궁/태권도), 강재형, 김완태(개막식), 박경추(역도/체조/육상), 허일후, 김정근
- 스튜디오 진행: 나경은, 방현주
- <니하오 베이징> MC: 김범도, 나경은
- 해설위원: 허구연(야구), 강신우(축구), 현정화(탁구), 임오경(핸드볼), 김수녕(양궁), 방수현(배드민턴), 장지원(태권도), 김동화(기계체조)
- 특별 해설위원: 정형돈, 노홍철(핸드볼), 유재석(평행봉)
10.3. SBS
- 슬로건: 감동의 현장 올림픽채널 SBS
- 캐스터/진행자: 최기환, 최영아, 박은경, 손범규, 정미선, 김정일, 박영만, 배기완, 박찬민, 이현경, 유협, 배성재
- 해설위원: 박문성&유상철(축구), 김성근&김상훈(야구), 문대성(태권도), 심권호(레슬링), 김경욱(양궁), 황영조(마라톤), 장재근(육상), 전주원(농구), 조용철(유도), 김봉조(수영)
11. 사건사고
-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베이징시 시내와 근교지역을 재개발하는 작업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후통 상당수가 도시미관 정화를 명목으로 철거당하고 고택들 상당수도 헐어졌으며, 약 125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철거민으로 전락하여 시 외곽이나 타지역으로 쫓겨났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부동산값 상승으로 이득을 본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37] 이는 70만여명의 철거민이 발생한 서울 올림픽의 경우를 아득히 뛰어넘는 수치이며, 그 후로도 빈민촌 철거문제는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 성화 봉송 중 티베트 독립운동 문제와 겹치면서 한국에 온 성화 봉송 도중에 중국 유학생들이 폭동을 일으킨 사건이 일어났다.
- 올림픽 개막식 날 러시아와 조지아의 남오세티야 전쟁이 발발하며, 원래 올림픽의 취지였던 '부디 이 시기 만큼은 싸우지 말자'는 것이 무색하게 되었다. 결국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신냉전이 시작되었고, 약 14년 후 또 다른 베이징 올림픽 전후에 러시아는 또다시 전쟁을 일으켰다.[38]
- 개막송 가창조국을 부른 9살 소녀 린먀오커[39]는 귀엽고 깜찍한 모습과 훌륭한 노래 실력으로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진짜 노래를 부른 사람은 양페이이(楊沛宜)[40]라는 7살 여자아이였고, 린먀오커는 양페이이가 부르는 노래에 맞추어 입만 벙긋거렸을 뿐이라고 한다.
- 여자 체조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딴 중국 선수 허커신(何可欣)에 대해, "나이를 속였다"는 의혹이 있다.# 올림픽에는 만 16세부터 출전할 수 있고, 허커신은 당시 만 16세(1992년생, 현재 [age(1992-01-01)]세)라고 했는데, 사실 그녀가 만 14세(1994년생, 현재 [age(1994-01-01)]세)라는 설이다. 체조는 몸이 가볍고 작은 어린 선수들에게 유리하기에, 14세의 허커신을 16세라고 속여 올림픽에 출전시켰다는 것. 물론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허커신은 1992년생이 맞고, 그러므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만 16세였다. 서양인에 비해 동양인은 체구가 작고 나이가 어려보여서 그런 오해를 받은 것이다."라는 것이고, 허커신 본인도 "나는 1992년생이 맞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의심스러운 구석들이 많다. 만약 허커신이 1994년생이 맞다면, 그녀의 금메달은 무효가 된다.[41]
- 육상 여자 장대높이뛰기 결승에서 조직위원회 측이 브라질의 '파비아나 무레르' 선수의 장대를 분실하는 사고가 터지기도 했다.
- 폐막식에서도 안 좋은 모습들이 좀 있었는데, 1부 공연 도중 띄워진 세계지도 영상에서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되면서 한국의 여론이 들끓었고, 이틀 후 친강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일본해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명칭"이라면서 더욱 논란을 키웠다.
3부 공연 '축제'에서 한국 가수 비가 중국의 한쉬에, 대만계 미국인 왕리훙, 홍콩의 천후이린과 함께 <베이징, 베이징, 사랑해 베이징>을 불렀는데, 한국 네티즌들 사이에선 비가 중국계 가수로 취급되었다며 비난을 가한 반면, 중국인들 사이에선 비가 나왔다는 점에 대해서 기뻐하는 경우도 있었다.
12. 기타
- 존 티토는 이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되지 않으리라 예언했지만, 결국 성공리에 개최되면서 그의 예언은 빗나갔다.[42]
- MBC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은 2008년 3월 15~22일 및 8월 23~30일 방영분을 올림픽 특집으로 꾸몄다.
- 홍스구락부의 플래시 애니 <고파리>도 올림픽 특집 에피소드를 만들어 포털사이트 '파란'에 게재했다.
- 한국의 워크래프트 3 프로게이머 장재호가 성화봉송을 하기도 했다.
- 이 베이징 올림픽 때 세계급 스포츠마다 꼭 털리는 세븐 갤러리의 사망전대 전설이 시작되었다.
- 중국에서는 이 올림픽을 앞두고 천안문광장 등에 일반 경찰 및 사복경찰을 배치하는 등 치안에 엄청나게 신경을 썼다. 짐을 많이 들고 있는 등 수상해 보이는 경우 불심검문을 당할 수도 있었으며, 위구르족이나 티베트인 등 분쟁 지역에서 온 사람으로 보일 경우에도 불심검문 대상이었다.
- 대만은 국제대회에서 항상 그렇듯 중화 타이베이로 참가했다. 중국 본토에서 이루어진 올림픽이었지만 딱히 별 말은 나오지 않았다. 이 때는 중국국민당의 마잉주가 정권을 잡은 때였으며 양안관계가 좋았던 시기여서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 본토 관중들의 큰 환대를 받았다. 해당 영상
- 올림픽 이전 베이징에는 큰 비가 왔으나 대회일에는 쭉 맑은 날씨를 유지했는데, 이에 대해서 중국 정부에서 기술을 동원하여 인공강우를 유도하였다는 말이 퍼지기도 했다. 쉽게 말해서 미리 비를 다 내려버려 대회일 중에 비가 내리는 것을 방지했다는 것. 베이징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꽤 퍼졌던 이야기이지만 공식적으로는 인정되지 않았다. 베이징은 원래부터 건조한 도시라 큰 걱정은 없었지만 개최 시기가 여름이다 보니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결국 양궁 여자 단체전 및 개인전 결승전이 열리는 날 비가 내리면서 큰 변수로 작용했고, 단체전 결승에서는 대한민국이 중국을 꺾었지만 개인전에서는 8강에서 주현정, 준결승에서 윤옥희, 결승에서 박성현이 중국인 관중들의 비매너 소음응원을 등에 업은 장쥐안쥐안에게 올킬을 당해 대한민국 여자 양궁의 올림픽 도전사에 옥에 티를 만들고 말았다.
- 베이징의 대기오염이 심하기에 논란이 있었지만 올림픽 전체 기간 동안 중국 전역의 산업시설 가동을 중단시키는 방식으로 공산주의 국가 특성을 보여주었다. 그 기간동안에는 모든 공장이 가동을 중단하고 직원들에게 유급 휴가를 줘야 했다.
- 개막식의 시작은 정확히 2008년 8월 8일 오후 8시 8분 8초로 예정되어 있었다. 이는 중국에서는 8을 길한 숫자로 여기기 때문.[43] 실제로는 운영 사정 때문에 8시 정각에 시작하는 것으로 변경.[44] (마찬가지 이유로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또한 8시 정각에 국기가 입장하며 시작됐다.) 또한 이 시기를 기념하여 베이징 지하철에 올림픽 경기장 쪽으로 이어지는 8호선을 개통했다.
- 1956 멜버른 올림픽과 비슷하게, 승마는 중국 본토가 아닌 홍콩에서 열렸다. 홍콩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특별행정구로, 행정과 경제 면에서 (명목상) 본토와 별개이며, 올림픽에서는 별개의 국가올림픽위원회로 참가하고 있기 때문에 타국이라고 봐야 한다.
- 당시 "베이징 올림픽 4대신"이란 농담이 유행했다. 문자 그대로 초인적인 기록을 보여준 선수 4명을 기리는 말로서, 전승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보통은 다음을 의미한다.
- 수많은 나라들이 올림픽 전 훈련 베이스 캠프를 중국이 아닌 대한민국에 많이 차렸다. 이유는 시차, 지리, 기후상의 이점과 하계 올림픽, FIFA 월드컵, 아시안 게임 등을 개최하면서 구축한 뛰어난 체육 시설, 수준급 훈련 파트너까지 갖추고 있으며, 여기에 각 지자체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하였다. 미국 같은 경우는 베이징시의 공해 때문에 우리나라에 베이스 캠프를 차렸다. 베이징 올림픽, 한국 어부지리 현실화되나, 한국은 베이징올림픽 '베이스캠프'
- 이 올림픽에서는 메달에 옥을 넣은 옥메달을 선보였지만 그다지 알려지지 못했다.
- 흑역사로, 레슬링 자유형 74kg급에 아제르바이잔 대표로 출전했던 (16강전 진출) 참술바라 참술바라예프는 후에 IS(IL)의 전투원으로 2016년 9월 28일 모술에서 죽었다.
- 모리셔스와 아프가니스탄, 토고 등이 이 대회에서 첫 올림픽 메달을 땄다.
- SBS는 개막 10일 전인 2008년 7월 29일자 8시 뉴스를 통해 개막식 리허설 장면을 무단으로 단독 보도하면서[45] 물의를 빚어 취재를 제한당했고, 중계권만 지켰다. MBC도 개막식 당시 여러 국가들을 민감한 소재[46]로 소개해 중징계를 먹었다. 그리고 13년 뒤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함으로서 당시의 방송사고가 재조명되기도 하였다.
- 한국 야구 대표팀이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강민호는 최초의 제주도 출신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 이 대회를 마지막으로 전신수영복은 올림픽 무대에서 사라졌다. 따라서 그 이후 대회에서는 남성은 허리에서 무릎 위까지만, 여성은 신체적으로 상체를 깔 수는 없는 노릇이라 어깨에서 무릎 위까지만 수영복 착용이 허용되며, 수영복 재질도 직물로 제한되어 100% 폴리우레탄 수영복도 함께 사라졌다.
여기에 더해 불의 신으로 한기주를 거론하거나 *신으로 호시노 센이치 일본 야구팀 감독을 넣어 5대신으로 꼽기도 하며, 둘 다 넣고 6대신으로 꼽는 경우도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한기주와 호시노를 까기 위한 농담일 뿐이며, 나머지 4대신에 대해서는 한치의 가감 없는 담백한 직설적 묘사이므로 주의.
1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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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그레이트 게임 | 세계 대전 | 대침체 | 대봉쇄 ※탈냉전 종식 및 신냉전 시작 시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
14. 관련 문서
[1] 처음에 Foerver Friends라는 노래를 주제가로 정했으나 You and me로 변경되었다는 기사가 존재한다. # 작곡가는 1988 서울 올림픽의 주제가 〈손에 손 잡고〉를 작곡한 조르조 모르더.[2] 2004 아테네 올림픽 탁구 금메달리스트.[3] 한국은 영상 2시간 58분 52초(2:58:52) 즈음에 행진한다.[4] 공교롭게도 아시아에서 동아시아 3국이 순차적으로 하계 올림픽을 유치했다.[5] 이 주제에서 중국의 본심이 보이기도 한다. 자세한 건 하나의 중국 참조.[6] 이는 1988 서울 올림픽도 마찬가지였다.[7] 중국인들의 숫자 8 사랑은 지극히 유명해, 일부러 개회식 일시까지 2008년 8월 8일 오후 8시로 맞춰놓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개회식 88일 전에 대지진이 터지는 바람에 다른 의미로 절망한 중국인들도 많았다.[8] KBS의 2015년 다큐 <슈퍼차이나>에 따르면, 이 당시 홍콩에서조차 올림픽을 보며 “나는 중국인입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갑자기 급증했다고 한다.[9] 중앙공예미술학원(현 칭화대 미술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서양화 전공이지만 중국의 전통 전각 미술에도 조예가 깊었다. 졸업 후 중국일보 광고디자인부에서 일하다, 1991년 대학 친구들과 AICI를 창업했다. 특이하게도, 조선일보 인터뷰에 따르면 1988 서울 올림픽 때 '88호돌이'를 그린 김현과 친구 사이라고 한다.[10] 人과 文의 조합을 상징한다는 설도 있으나 작가 본인이 부정했다.[11] “중국인들은 기쁜 날 붉은색 옷을 입고 홍등(紅燈)을 올린다. 희경(喜慶, 기쁨)의 의미도 있고, 귀신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도 있고, 자기 띠가 돌아오는 해에는 1년 내내 빨간 속옷을 입기도 한다. 붉은색을 싫어하는 민족이나 국가도 도장에 찍힌 붉은색은 받아들인다.”[12] 도장은 문서의 신용을 보장하는 ‘약속’과도 비슷한 상징이다.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베이징이 역사상 최고의 올림픽을 개최하겠다.”(举办历史上最出色之一届奥运会)라는 약속과도 같다고 한다.[13] 맥락상 ‘더 빨리, 더 높게, 더 강하게’라는 쿠베르탱이 만든 표어에서 영감을 얻은 듯하다.[14] 2022년 코로나 19로 숨졌다. 기사[15] 복 인형[16] 하계올림픽 메달 앞면에 반드시 들어가는 국룰이다.[17] 200m 자유형, 100m 접영, 200m 접영, 200m 개인혼영, 400m 개인혼영, 4x100m 계영, 4x200m 계영, 4x100m 혼계영.[18] 그는 자유형에서만 전신수영복을 입고 접영과 개인혼영에서는 반신 수영복을 입었다.[19] 그리고 2018년 현재, 아시아 남자 사브르는 한국의 절대적 우위 속에 이란이 2인자 위치를 굳히고 있다.[20] 사실 축구계 트렌드가 어린 선수라도 능력만 검증되면 바로 바로 프로 데뷔를 시키는 것으로 바뀌었고 그만큼 어린 나이에도 괴물급 기량을 보유한 선수가 늘고, 그 결과로 예전에 비해 프로에서도 주전 선수인 경우에도 와일드 카드가 아니라 U-23 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리고 아무리 축구계에서 올림픽이 언더 타이틀 붙은 대회라고 해도 올림픽이라는 이름값이 어디가서 빠질 만한 대회가 아니므로 정말로 올림픽 메달을 원해서 출전을 감행하는 경우도 많이 늘어난 편이었다.[21] 첫 경기에서 카메룬을 상대로 동점골을 얻어맞아 1대 1로 비긴 것이 치명타였다.[22] 그리고 4년 뒤 두 팀은 카디프에서 만나게 된다.[23] 그 1무마저도 뉴질랜드에게 0대 1로 끌려다니다가 경기 종료 직전에 동점골을 넣은 것이었다.[24] 단 북중미, 오세아니아 팀도 함께 전멸했다.[25] 이 시기 축구 대표팀이 부진해 우스갯소리로 축구장에 물 채워 여름에 박태환 겨울에 김연아가 훈련 할 수 있게하라는 이야기도 있었다.[26] 개최국이 C조에 배정받은 점, 개최국이 조 3위로 무승탈락했으며 조 4위와 같은 전적이지만 득실차가 앞서서 3위인 점, A조에 들어간 아시아 팀이 1무2패로 탈락한 점, 아시아 팀 중에서 딱 한 팀만 1승을 거둔 점, 유일하게 1승을 거둔 아시아 팀이 이탈리아-아프리카-북중미와 같은 조를 배정받았으며 아프리카와 무승부-이탈리아에게 패배-북중미에게 승리해서 결과가 1승1무1패 조 3위인 점(다만 경기 순서는 다르다.), 아시아 팀에게 패배한 북중미 팀이 3전 전패 조 4위에 최종 순위 꼴찌를 기록한 점, 아시아 팀과 북중미 팀이 전멸한 점(88년 당시 호주는 오세아니아 팀이었으며 조 2위로 8강 진출), 아프리카 팀이 A/B/D조에 배정받은 점, 아시아 팀 중에서 한 팀만 조 4위로 탈락한 점, 중국이 본선에 진출한 점, 아시아 팀에게 패배해서 조 꼴찌 및 최종 꼴찌를 기록한 북중미 팀이 중국과 수교를 맺지 않고 대만과 수교를 맺은 국가다.[27] 14년 후 중국이 동계올림픽을 개최했는데, 쇼트트랙 선수 황대헌과 이준서, 박장혁이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전에서 중국 관중들의 비매너 행위와 심판의 편파판정으로 탈락하고 말았다.[28] 양궁 선수들 입장에서는 소음이라고 볼 수 있다.[29] 여담이지만, 슈타이너의 금메달 기록은 애틀랜타 올림픽 남자 105kg+ 급 금메달리스트 안드레이 셰메르킨이 들어올린 457kg 다음으로 낮은 기록이다. 하지만 슈타이너는 도핑 대란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편법 없이 금메달을 지켜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30] 근데 이 사람, 반체제 성향으로 중국공산당에게 단단히 찍힌 사람이다. 실제로 베이징 올림픽이 끝난 직후부터 꾸준히 중국공산당의 반인륜적 폭정에 대해 비판하는 발언을 해오다가, 2010년에 가택연금에 처해지기도 했다. 중국 정부가 자국의 우월함을 과시하고자 세운 경기장의 설계자가, 이런 정부의 행태를 비판하는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31] 최다 메달은 1988 서울 올림픽의 33개다.[32] 이 메달로 강민호는 제주도 출신으로는 최초로 금메달을 따게 되었다.[33] 다만, 일본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과 중국이 두 번째로 개최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경우 코로나19 변수나 편파판정으로 베이징 올림픽 때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했다.[34] 선수 몇몇은 '한국에 가서 부모님 보고 싶은데'라며 불쾌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이런 반응을 보이던 박태환은 4년 뒤 2012 런던 올림픽에선 아예 부모님이 런던에 머물렀다.[35] 여자 태권도 67kg급 금메달리스트 황경선은 당시 8강전에서 왼쪽 무릎 연골 파열, 전방 내측 십자 인대 파열 부상을 당해 급히 귀국해야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어코 윗선의 입김 때문에 선수단 전체가 귀국할 때 같이 귀국해야 했으며, 퍼레이드에서도 어쩔 수 없이 절뚝거리며 걸을 수 밖에 없었다.[36] 여담으로 최후의 올림픽 대표 차량 퍼레이드는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였다. 당시 노태우 정권이었다는 점, 손기정 이후 56년 만에 황영조의 마라톤 금메달 획득 등 호성적을 냈다는 점, 그리고 당시 차량 퍼레이드를 할 때 오늘날에 비해 차량 통제가 비교적 쉬웠다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37] 1988 서울 올림픽 때도 수십만명 이상의 시민들이 재개발을 명분으로 철거민이 되어 타지로 강제로 이주당하다시피 했다. (이 사건을 다룬 영화가 상계동 올림픽이다.) 브라질도 2016 리우 올림픽 때 리우의 파벨라 상당수가 강제철거를 당했다.[38] 다만 남오세티야 전쟁 문서에도 나와 있듯이 2008년 당시의 전쟁은 미국만 믿고 있던 조지아가 먼저 공격을 한 거긴 했다.[39] 1999년 7월 1일생. 현재 [age(1999-07-01)]세.[40] 2001년 7월 8일생. 현재 [age(2001-07-08)]세.[41] 이후 밝혀진 사실 중에 나이 조작으로 올림픽 메달이 박탈된 사례가 있다. 2000 시드니 올림픽 여자 체조 단체전에서 중국이 동메달을 받았다. 단체전에 출전한 선수 중 덩핑샤오라는 선수가 그 당시 1983년생으로 출전하였으나 10년 후 본인의 블로그에 소띠라고 소개글을 올린 증거 및 베이징 올림픽 시즌에 체조 자문위원으로 덩핑샤오가 있었는데 실제 나이로 기재가 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나이 조작을 한게 발각되어 결국 중국 여자 체조팀은 기록 삭제 및 메달도 박탈되었다.동메달은 당시 4위를 한 미국팀한테로 돌아갔다.[42] 티베트 사태 등 여러가지 불안요소들이 많아 개최되지 않으리라는 관측도 있었다.[43] 중국어로 8(ba)이 돈을 번다는 뜻의 發財(fa cai)와 비슷하다는 이유. 실제로 한 경매에서 8888번 번호판이 중국에서 무려 몇억에 팔리기도 했다.[44] 중국 CCTV는 매 30분마다 디지털 시보를 내보내는데 당시 영상을 유튜브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45] 해당 영상은 다음날 IOC 측의 요청으로 홈페이지에서 삭제되었다.[46] 예를 들면 나우루는 경제가 파탄났다는 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