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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세기 초반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하여 1992년 한중수교가 이뤄질 때까지 양국 간 교류가 약 80여년간 단절되었기에 많은 한국인들은 중국의 현대 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 편이다. 더 멀리 보면 조선은 청나라를 내심 오랑캐 나라라고 무시했기 때문에[2] 과장 좀 보태 명나라 멸망 때부터 근 350여년간 단절 수준이 지속되어 왔다고 볼 수도 있다. 다만 중화권 문화는 한중수교 이전부터 제법 들어오긴 했는데, 무협물이나 홍콩 영화 등이 대표적이었다.중국 문화는 수천 년 간 인접한 대한민국, 일본, 베트남 등지에 한자문화권이라 하여 큰 영향을 미쳐왔다. 중국의 고전문화는 17세기부터 유럽에 시누아즈리라는 유행과 중국애호가(sinophile)라는 단어를 만들었을 정도고, 이에 기반한 여러 다양한 현대문화도 서서히 기지개를 펴고 있다. 허나 근현대 시기엔 많은 정치적 혼란들이 발생하면서 그간 쌓여온 역사와 문화가 많이 파괴되었고, 특히 과거의 봉건잔재라 하여[3] 문화대혁명 시절 많은 문화재들이 파손되었으나, 끝난 후에는 이에 대한 반성의 일환으로 중국 내에서도 전통문화 보존이 공식 담론이 되어 공자 등 옛 위인들이 재평가되고 취푸의 공묘가 복원되는 등 주요 유적지와 문화재는 복원되었지만, 2008 베이징 올림픽 땐 베이징의 후통이 철거되고 상당수 유적지를 관광회사가 운영하여 고택들을 호텔로 개조하는 일도 벌어지곤 했다.
의외라면 의외로 2000년대 이후 표현의 자유를 위한 중국 예술가들의 운동은 생각보다 활발하다. 그러나 일당독재라는 정치적 한계상 여전히 검열이 중국 문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때문에 중국이 소프트파워가 약하다는 시각이 있지만, 다른 신흥 개도국과는 달리 과거부터 축적된 문화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시 문화 대국에 등극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후진타오-원자바오 시기인 2010년대 초엔 검열을 완화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2015년에 들어와서는 시진핑 1인 독재 체제를 굳히기 위해 다시 검열을 빡세게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비록 드라마와 영화, 게임에 있어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기는 했지만 잠재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4] 중국/문화 검열 문서 참조.
중국 문화가 오늘날 세계에 전파되는덴, 화교 사회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동남아를 비롯하여 전세계에 뻗어있는 화교 네트워크는 그들의 개척 정신을 보여주며[5] 육로로는 이미 한나라 시절에 실크로드 개척 및 히말라야 너머의 인도랑 한반도까지 중국인들이 돌아다녔다. 후한서 등 여러 기록에도 한나라 원제의 명령으로 서역 개척에 나섰던 서역 부도호 천탕(陳湯)이 기원전 36년 골칫거리였던 흉노를 대파하는 가운데 머리가 노랗고 코가 우뚝한 이상한 모습의 병사 1천여 명을 포로로 사로잡았다는 내용이 있다. 지리적 위치 때문도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비교를 해도 개척에 사람들을 보내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던 한반도 국가나 일본 등과는 다르게 중국은 개척에 그리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다만 해로를 딱히 중시하지 않아서 바다로는 덜 나갔다는 약점은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비교적 그랬다는 것이고 이미 중세부터 동남아시아 일대로 진출한 중국인들은 꽤 있었다. 사실 중국 문화의 영향력이 강했던 역사가 있는 나라들은 중국 문화도 자기들의 문화와 꽤 많이 비슷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현재도 이런 오해[6]들이 있는 편이지만 나라마다 자연환경과 조건이 다른 것만큼 문화가 생각보다 꽤 다르다.
통일, 통합 같은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견도 있다. 중국은 다민족 국가다보니 주류민족인 한족 우월주의자들도 혈통적 민족 우월주의자들과 비교를 하자면 제법 다른 면모를 보이는데, 혈통보다는 "왜 너희는 한족 문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한족이 되려고 하지 않느냐?"라는 느낌이 있다는 것.[7] 물론 케바케라 사람마다 다를 순 있다.
중국 땅이 넓다보니 지역별로도 문화적 차이가 생각보다 심하게 나서 같은 중국인끼리도 컬쳐쇼크를 받는 경우가 많다. 한국도 제주도에서는 빵이 제사상에 올라간다든가, 어떤 지역은 직설적이라든가 돌려말한다는 식의 컬처쇼크가 있기도 한데 더 큰 나라인 중국은 말할 것도 없다.
한편, 한국과 비슷한 면도 찾아보면 제법 있다. 사실 가요와 드라마, 영화, 패션 등 중국의 현대 대중문화는 한국 대중문화의 영향도 많이 받았기 때문에[8] 보다보면 비슷한 면을 느낄 수 있다. 또 사회적으로도 중국에서 유래한 맹모삼천지교, 과거 제도, 사농공상같은 모습의 기반이 되는 사상은 사교육 및 0교시, 야간자율학습 등으로 대표되는 과도한 교육열의 모습으로 나타났고, 아파트 문화, 야근, 음주문화, 저출산 등 인구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그 외 알리페이, 위챗페이로 대표되는 핀테크 등에선 오히려 중국이 한국이나 특히 일본보다 대중 문화적으로 앞서나가는 분야들도 있다.
2. 전통 문화
양저우의 둥관 거리.
참고로 중국의 전통 문화는 중화민국, 홍콩, 마카오나 동남아를 비롯한 세계 각지 화교의 전통 문화기도 하며, 이들도 중화권인 만큼 같은 문화를 공유한다.
2.1. 의식주 문화
2.1.1. 식문화
중국에서는 의식주라는 말 대신 식의주(食衣住)라는 말이 쓰이기도 하는 등 음식을 중요하게 여긴다.악습으로 전통 시장에서 보양식이라며 야생동물 고기를 판매하는데 이것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뱀껍질, 박쥐껍질, 바퀴벌레를 상처 부위에 발라주는 등. 물론 한국에서 뱀탕을 먹는 것처럼 정력에 좋다면서 파는 경우와 비슷한 경우로, 중국 내에서도 문제거리로 지목되고 있으며, 결국 2020년 코로나19라는 대사건의 원인이 되면서 이후부턴 야생동물보호법을 세우고 식용을 금지시켰다.
2.1.1.1. 차
차의 근원지인 중국 아니랄까봐 술 못지 않게 차도 많이 마신다. 사실 거의 식수 대용으로 마실 정도이다. 화북지방의 경우, 특히 베이징의 경우엔, 물에 석회질이 녹아나오고 흙 냄새가 강하게 나는 경우가 많아서, 대개 물을 끓여서 차를 달여 마신다. 커피는 그다지 인기가 없었지만 21세기 들어 그나마 수요가 늘고 있다는 듯. 동네가 넓다보니 차를 마시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아래는 2005년까지 지역별로 차를 즐기는 방식이다.[9]- 베이징: 차를 마시면서 공연을 본다. 북송 시대부터 있어왔으며 경극이나 음악공연, 재담 등을 보여준다. 베이징의 라오서 차관이 유명하다.
- 쑤저우: 정원이나 풍경을 감상하면서 차를 마신다. 중국 내 명승지나 공원에서 이러한 모습을 자주 볼수 있다.
- 광저우: 차관과 식당이 결합되어 있다. 당송시대에 상인들이 상담을 목적으로 만들었는데, 현재는 시민들의 일상 생활이 되었다. 간단한 식사를 같이 하는데 종업원이 수레를 밀고 다니면 손님들이 음식을 집는 방식이다. 홍콩도 이 쪽 문화권에 속한다.
- 쓰촨: 이곳의 차관은 오락과 휴식의 기능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여기서 차를 마시면서 호박씨를 까먹거나, 신문을 보고, 장기를 두며, 하루종일 수다를 떤다. 한번 입장하면 하루 종일 있어도 돈을 안받는다.
더불어 중국에서는 결혼식을 할 때에도 서로의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려 차를 교환하며 마신다고도 한다.
2.1.2. 의복 문화
전통 의상은 한푸[10], 치파오 문서 참고.1920년대에서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중산복(한국에서 흔히 인민복이라 부르는 것)을 일상적으로 많이 입게 되었고, 특히 1949년에 중공이 대만을 제외한 나머지 중국을 통일한 이후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강화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인민복을 입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는 현대식 복식을 갖추어 입는 경우가 많아졌고, 또한 양복이나 티셔츠 같은 패션이 유행하기 시작하여 현재에도 선호된다. 2020년대에는 시골의 일부 노인층들을 제외하면 누구나 현대식 복장을 입고 있다.
2020년대 들어선 중국의 한복 왜곡 논란 등 한국의 전통복식인 한복을 자기들 전통 의상인냥 왜곡 주장하려는 움직임이 일부에서 있다.[11] 정작 한푸(漢服)가[12] 21세기 들어와서야 생겨난 신조어라는 것을 생각하면 재미난 부분이다. 이는 문화적으로 옛것에 대한 자부심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치파오 등 옛 청나라 시절 지배민족인 만주족이 쓰던 의상에 대한 애매한 반감이 한족 국수주의자들 중심으로 퍼지면서 한푸가 재조명되고, 중앙정부에서 보기에도 이들이 트롤러일지언정 일단은 애국주의적으로 보이니 적당선에서 설치도록 냅두고 있는 것인데, 한복이 한푸의 영향을 받은건 맞지만 같다는 건 엄연한 거짓이다. 다 떠나 그냥 시각적으로 봐도 다르다. 한복은 한푸라고 오늘날 일컬어지는 옛 중화권 의복에서도 영향을 받긴 했지만, 특히 영향을 많이 받은건 한푸보단 오히려 북방 유목민족들의 호복이었다. 치마류 대신 바지를 입는 것도 호복의 영향을 받은 것.
2.1.3. 주거 문화
좌식 생활을 하는 한국과 달리 입식 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본래 중국도 한나라때까진 좌식 생활권이었다. 유비가 돗자리 장수 출신이었다는 유명한 예도 있다. 그러나 위진남북조시대, 오호십육국시대를 거치며 입식생활을 하는 이민족들이 칩입해오고 그들의 입식문화가 보편화되면서 바뀐 것이다.그러나 현대화와 이촌향도 현상을 겪으면서 좁은 면적에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아파트가 널리 건축되었고, 인구수가 어느정도 되는 지역에서 아파트 건축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한국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고 단독주택의 수요가 없는 것은 아니고 시골이나 중소도시, 아직 재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아직도 단독주택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며 부자들의 경우에는 호화 단독주택을 짓고 살기도 한다. 이런 점은 한국과 비슷하다. 아파트의 형태는 가지각색이라서 서민아파트에서 초호화아파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지방정부와 건설회사들의 주수입원이라는 점도 한국과 같다. 다만 건축은 건설사에서 하지만 아파트 내부장식은 개개인이 알아서 해야 한다는 것이 한국과의 차이점으로, 아파트가 완공되었다해도 바로 입주하는 것이 아니고 도배나 창문 달기를 비롯한 갖가지 장식 공사를 해야 되기 때문에 1달 정도 늦게 입주하는 편이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돈 아낄려고 개인이 직접 도배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도 엄연히 짬이 있어야되는지라, 일반인들은 얌전히 기술자나 인테리어 회사를 불러서 따로 공사를 한다. 이러한 구조로 그래서 집집마다 집구조는 가지각색이다. 물론 다양한 아파트가 존재하는 만큼 처음부터 내부장식을 다 마친채로 분양하는 아파트가 있지만 이런 아파트는 흔하지 않다.
참고로 중국의 1인당 주거면적은 의외로 한국보다 넓은 수준으로 중국은 1인당 41평방제곱미터인데 반해 한국이 1인당 34평방제곱미터, 일본은 40평방제곱미터이다. 물론 처음부터 넓었던 것은 아니었다. 1950년대 이후로 대도시 지역에서 대규모 아파트가 건설되었기는 했지만, 가용 예산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가구당 주거면적은 비교적 좁았고,[13] 다자녀 가구도 많아서 대도시 주민들은 현재의 홍콩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좁게 살았던 편이었다. 그러나 건설붐이 일기 시작하면서 주거 면적이 크게 늘기 시작했고, 2000년대에 중국의 대도시와 중소도시 가릴 거 없이 대규모 건설 및 재개발, 재건축 작업에 들어가면서 수억채에 달하는 중대형 평수의 아파트들도 잇따라 건설되어 분양되었고 주거면적은 한국을 넘어서게 된다. 물론 집이 넓어진 대신에 사회초년생들은 비싸진 집값과 임대료로 골머리를 앓게 되었고, 자취생들이나 농민공같은 사람들은 넓은집에 들어갈 돈이 없거나 아까워서 좁은 면적의 쪽방이나 원룸에서 사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은 한국과 크게 다를바 없기는 하고, 실제 베이징이나 상하이같이 집값 비싸면서도 상경민들이 많은 대도시의 1인당 주거면적은 한국 서울보다 낮다는 통계 결과도 있다.
1949년부터 1998년까지는 집은 공기업과 기관, 지방정부로부터 배정받고, 개인은 싼 임대료를 내는 방식으로 주거했다. 다만 윗문단에 언급되듯이 가용예산이 많지 않아서 집 크기는 비교적 좁은 편이었다. 그러나 개혁개방정책이 추진되어 이촌향도 현상이 본격화됨에 따라 주택배분의 불균형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고, 또한 IMF 외환위기 발 경기침체를 경기부양으로 해결하려는 정책에 따라 1998년에 주택배분제를 폐지한 이후로 토박이나 빈민이 아니라면 집은 돈주고 사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게 되었다. 주택배분제 폐지 이후 20년의 기간 동안 중국의 집값은 큰 폭으로 증가했고, 자산가격의 상승으로 중국 도시민들이 대거 중산층으로 진입하여서 중국 경제성장과 인프라 확충에 도움이 되었고 특히 중국의 주식시장이 2007년에 고점을 찍은 이후로는 주가수준이 경제성장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등 침체를 못 면하다보니 부동산으로 투자가 더더욱 집중되었다, 이러한 건설붐으로 중국의 웬만한 대도시들이 한국의 대도시보다 세련된 모습을 지니게 되었지만 지나치게 부동산 의존적인 지방정부 재정에다가 지방정부 부채, 저출산, 유령도시, 소득대비 지나치게 비싼 대도시 집값으로 병폐도 많다. 다만 주택 자가보유율은 90%대를 차지하여 매우 높다. 이는 상술하듯이 주택배급제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예이다. 주거환경 개선도 이미 가지고 있던 집을 담보 삼아서 비싸게 팔아서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가거나 재개발 시켜서 더 넓고 큰집으로 만드는 식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부동산 법제와 관행의 경우에는 홍콩에서 유래된 경우가 많다. 개혁개방 과정에서 중국이 부동산의 상업적인 거래에 있어서 후발주자다 보니 홍콩의 부동산 법제들을 참고했기 때문이었다. 가령 땅을 국가의 소유로 인정하되, 토지임대권을 민간에게 70년간 임차해줄 수 있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 조항은 홍콩의 부동산 법제를 본뜬 것이고,[15] 주차장도 하나의 부동산으로 취급해서 거래하는 것도 홍콩에서 수입해온 개념이다. 또한 부동산에 있어서 상속세와 보유세같은 세금규정이 미비하다는 특징도 있는데 중국 당국에서 도입하려 했지만, 중국 공산당내 간부들이나 주요 대도시 집주인들이 부동산으로 이득 본 것이 많다 보니 반발이 많았고, 결국 흐지부지된 것. 시진핑도 공동부유 명목으로 부동산세를 도입하려다가 좌절했을 정도였다.
중국전통가옥
해외
2.2. 음악
- 중국의 전통악기 문서 참조.
중국의 전통 음악은 역사가 수천 년이며 얼후, 쟁, 적자 등 전통 악기들은 그 독특한 음색과 5음음계 특유의 아름다운 멜로디 덕분에 중국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애호가들이 꽤 있다. 전통 음악을 바탕으로 경극 등 극문화도 발달한 편. 1920년대 상해에서 활동한 음악인 뤼진훼이(黎锦晖)는 중국 전통음악과 서양 음악을 결합하는 노력을 시도했으며, 그 중 서양의 춤곡인 폭스트롯과 중국의 민요 음악을 결합시킨 마오마오위 (毛毛雨)를 작곡한다. 이 음악은 일본 엔카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한국 트로트의 형성에 기여한다. 현대 대중음악의 경우 아직 덜 알려진 편이고 발전이 다소 늦지만 중국 전통 악기를 사용, 전통 음악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음악과 가수들이 차츰 인지도를 쌓고 있다. 이런 쪽으로 유명한 그룹이 여자십이악방(女子十二乐坊). 한국에서는 한때 국악 현대화의 롤모델 쯤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중국 대중 음악 장르 중에 고풍곡(古風 혹은 古風曲 혹은 古風歌曲)이라는 장르가 있는데 중국 전통음악 멜로디를 발라드, 락, 일렉 등에 접목시킨 장르다. 개인의 창작곡도 있고 가요나 무협, 게임 OST 중에서도 고풍으로 분류되는 것도 있다.[16] 대만에서 작곡한 것들의 비중도 높고 간혹 일본의 음악을 리메이크, 표절한 것들도 있지만 중국 분위기가 물씬 풍기기 때문에 중국 뿐 아니라 동남아나 서구권에서도 고풍 음악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이 종종 있다.[17] 5음계와 서양음악을 접목시킨 트로트의 하위 범주이다.
예시
위의 고풍가곡이라는 특유의 장르가 생겨난데에는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반이 OST라는 점도 원인 중 한가지로 손꼽힌다. 중국 음악시장에서 팔리는 음원 중 3분의 1이 OST 음악이다.
음악시장은 2000년대에는 인구에 걸맞지 않게 굉장히 작은 편이었다. 애초에 검열 등으로 중국 문화 시장이 본격 성장한게 이때부터기도 하고, 개혁개방을 했다고는 하지만 마침 인터넷이 보급되는 과정에서 따오판이 워낙에 판을 쳤던 것도 음악시장 성장에 걸림돌이었다. 그래도 2000년대 후반 이후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고 이전보다 저작권 의식이 많이 개선되면서 음악시장이 인구 수준에 걸맞은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성장하는 추세이기는 하다.
2010년대 들어서 중국에선 K-POP처럼 대중성있는 음악인 C-POP을 주야장천 만들어내고 있으나 문제는 결과가 썩 좋지 않다. 차라리 J-pop처럼 본인만의 색채라도 뚜렷하다면 모르겠지만, 본인만의 색채가 없다는 게 문제점. 한국의 K-POP이 글로벌화되면서 BTS나 블랙핑크같은 그룹들이 미국에서 데뷔를 하니, K-POP 따라하기를 하고 있다.# 당장 유튜브에 C-POP이라고 치면 한국인에게 많이 익숙한 스타일과 안무의 노래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걸 보고 일부 중국인들이 몰라서인지 아님 알고도 그러는 건지 K-POP이 중국음악을 따라했다 드립을 치기도 했으나, 중국에서도 헛소리로 치부하는 경우가 압도적이다.
C-POP이 망한 이유는 중국인들이 대체로 나이트클럽 같은 감성의 음악 공연을 좋아하는 정도의 디자인 감각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중국 가요 시장은 21세기 들어서도 한국식으로 따지면 나이트클럽이나 트로트 비슷한 스탠스의 노래가 많다고 한다. 중국 공산당의 문화 탄압으로 인해 정체된 중국이라면 통할지 모르지만 그런 문화 탄압이 없는 한국은 음악 공연 기술이 중국보다 현대적으로 세련되게 발달해 있다. 당연히 현대 시대에 맞지 않는 뒷골목 나이트클럽 감성이 외국에 통할 리 없다. 일례로 한국인 안무가가 중국에 한 K-POP 아이돌 그룹의 공연을 준비하러 파견을 나갔는데 당시 중국인 투자자가 준비가 다 끝난 마당에 기존안을 뒤엎고 문제의 나이트클럽 같은 감성의 공연으로 다시 준비하라고 강요해 망쳤다고 호소하는 사례가 있었고 중국인들은 이를 받아들이긴커녕 비난글을 쏟아냈다고 한다.
중국의 도시 광장이나 공원같은 곳을 가보면 광장에서 단체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노인들이나 중장년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단체로 추는 춤을 광장무라고 한다. 지금은 덜하지만 20세기 중반에는 집단체조와 매스게임 등 단체 체조를 많이 할 정도로 단체로 뭘 하는 문화가 성행했고, 광장무도 이때부터 장려해서 성행해왔는데, 이는 재산 여부 상관없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여가활동이었고, 21세기 들어서도 그 나이대에선 사람들이 모여서 춤을 실컷 추면서 사교활동 및 취미생활도 하고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건 덤이다 보니 광장무를 긍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다만 젊은층들 사이에서는 광장무를 아저씨나 아줌마, 노인들의 문화라면서 고루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으며[18] 주택가 근처나 학교 운동장에서 광장무를 하다가 소음문제로 갈등을 빚는다거나 운동을 하려는 청소년들과 광장무를 즐기는 아재들간의 자리다툼을 하는 경우도 간간히 나온다. 어쨌든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이러한 광장춤 문화가 북한에서 성행하다 보니 북한에서 하는 것이란 이미지가 있지만 사실 중국도 만만친 않다는 것이다.
중국의 광장무는 문화대혁명 시절의 유산으로 광장무를 추는 아재들은 문화대혁명을 경험한 철부지 학생들이기도 했다. 마오쩌둥이 이들을 농촌으로 토사구팽한 뒤 특별히 농촌에서 여가활동으로 할 것은 없는 와중에 홍위병들의 불만이 터져나올 것을 우려하여 광장무를 장려한 것이다. 이들은 광장무를 하면서 서로 비슷한걸 겪은 사람들끼리 과거에 지식층들을 몰아낸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현재는 초졸 내지 잘해봐야 중졸인 사회적 소외층이 된걸 잠시나마 위로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나마 마오쩌둥의 권력이 조금이나마 있던 시절에는 나라에서 운영하는 기업에서 일하기라도 했지만 자본주의가 대대적으로 도입되자 민간인이 운용하는 기업은 선전용으로 쓰던 초졸 내지 중졸의 사람들이 필요 없었고 시대의 일회용품으로 사용된 이들은 직장도 취미생활도 없으며 배운거라곤 광장에서 으쌰으쌰하며 단체활동을 배운 것 뿐이라 자연스럽게 늘 하던대로 광장에 모였으며 현재 만나는 사람도 똑같은 이유로 광장에 모인 사람들 말곤 없다. 중국의 인구정책으로 인해 자식도 없으며 있다해도 광기의 시절을 보낸 사람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잘 없다. 그런 이들에게 광장에서 노래 들으며 춤추는 것은 유일한 구원이 되었다. 노래나 춤보다는 시대의 비극을 경험한 동지들이 자신과 같은 이유로 광장에 있어서 그렇다. 어차피 구차한 목숨말곤 잃을 것도 없다는 식이라 소음공해이나 길막에 문제를 제기해도 들어줄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이때문에 경찰들도 쩔쩔맨다.
대륙의 기상이란 말마따나 광장무를 즐기는 아재들의 숫자도 1억명이 넘을 정도로 엄청나다. 이 광대한 숫자와 들고 일어났던 경험 때문인지 중국정부도 이들을 함부로 건들지 못하며 가능한 한 유화적으로 대처한다고 한다.
2020년대 들어선 소음 등 문제로 규제에 들어간 상태인데 지방에서 규제하다가, 2021년에는 중앙 차원에서도 규제가 이뤄졌다.#
2.2.1. 나무위키에 등재된 중국 음악 목록
- 선전 음악
- 가요
2.3. 미술
중국 미술 문서 참조.2.4. 문학
고전문학은 한시와 고전소설, 근현대 문학은 문예사 관련 정보 문서 참조.
중국문학의 시대 구분 기준은 한국과 다르다. 청대까지의 문학을 고대문학, 1840년 아편전쟁부터 1919년 5.4운동까지의 문학을 근대문학, 5.4운동부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까지 30년간의 문학을 현대문학, 1949년 이후의 문학을 당대문학으로 분류한다. 일본의 가부키와 노가 서구로 일찍부터 번역되어 영향을 준것과 마찬가지로 서상기, 모란정, 도화선, 장생전 같은 중국 고전 희곡들도 동양의 셰익스피어란 찬사를 들으며 서구에 번역되어 읽혀졌다.
한국인들은 문화대혁명만보고 막연히 중국문학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 부침을 겪고도 여전히 높은 위상을 자랑하고 경제성장과 인터넷 보급에 따라서 장르문학 또한 크게 발달되어있다.
3. 생활
3.1. 교육
전반적인 교육풍토는 대만, 싱가포르, 홍콩을 비롯한 여타 중화권 국가 및 지역과 한국과 유사하며, 과도한 교육열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점도 비슷하다. 당국에서 주5일제나 학업부담 축소를 위한 조치는 반복적으로 시행하고는 있지만, 이러한 조치는 2020년대 이전에는 시행하더라도 중간에 흐지부지되는 것이 일상이었고, 이 때문에 아무리 당국에서 학업부담을 줄이는 조치를 내놓더라도 결국 유사 과거제로 귀결된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그나마 시골은 교육열이 덜하지만, 어느정도 규모가 되는 도시 지역은 교육열이 너무 높다보니 저출산 현상이 극심하여 인구문제에 악영향을 준다는 말까지 나올 지경이다. 대학진학률은 한국보다는 낮지만 인구가 많은데다가 평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대학입시(까오카오)는 물론이고 고입입시(중카오)까지 봐야하기 때문에 주요 대도시 지역의 체감 교육열은 한국보다도 세며, 사교육이 활성화되지 않은 지역의 경우에는 야간자율학습이 의무다보니 저녁 시간까지 학교에 있어야 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2020년대 이전에는 중고등학교는 0교시 수업을 받아야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2010년대 후반 이후로 학생들의 수면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0교시를 폐지하는 지역이 늘고, 사교육 단속조치를 취하면서 학생들의 부담이 줄어들기는 했다. 그러나 실업계 학교에 다니면 나중에 취직해도 임금이 낮다는 인식이 만연하여 인문계 선호현상은 여전하다보니 여전히 암암리에 사교육을 받는 학생들도 적은 수는 아니다. 또한 1980년대 개혁개방기부터 2021년 사교육 규제조치가 내려지기 이전에는 사교육이 대표적인 블루오션 취급을 받았으며 엄청난 교육열로 인해서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중산층 가정에서도 무리를 해가면서 영미권 명문대로 유학보내는 경우가 많아 영미권 대학들의 주 수입원이 중국인들이라는 말이 나오고, 아이들 성적은 후달리는데 돈만 많은 집안일 경우에는 한국이나 대만, 동남아 등지로 유학을 보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러다보니 학생들이 학업 성적 부담이나 가오카오 응시생이 가오카오에서 성적이 낮다는 이유로 자살하는 일은 중국언론에서 매년 반복적으로 보도되는 기사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일 지경이며 이러한 과도한 교육열로 인한 병폐는 1980년대 이래로 중국의 대표적인 사회문제 하면 지적되는 문제점으로 손꼽혔다. 또한 미국에서도 중국계 유학생들의 교육열이 심하기로 유명해서 타이거맘 하면 중국계를 떠오를정도이다. 거기에다가 촌지와 부정부패까지 결합해서 교사들이 촌지로 부수입을 올리고, 심지어 교사들이 학원을 지정해서 학원들 돈벌이까지 시켜주는 일까지 일어나서 과도한 사교육비로 부모들의 등골이이 빠진다는 말까지 나오자, 중국 당국에서도 2021년에 사교육 제한 및 학업부담 경감을 위한 시험 축소 등의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대학에 가야 고임금직 직장에 취직할 가능성이 높고, 대학에 못가면 저임금 제조업체에 취직한다는 인식이 워낙 확고하여 대졸자 취업난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손꼽히고 있음에도 대학진학률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며, 평균 올려치기 역시 중국도 큰 차이가 없어서, 사회구조와 인식, 산업계 풍토를 완전히 바꿔놓기 이전에는 중국의 교육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 주된 평이다. 다만 2020년대를 지나면서 청년실업률이 20%를 넘을 정도로 높아졌기 때문에, 대학졸업증이 있는 사람도 제조업 공장에 취업하거나 일용직같은 저임금 직종에 종사하는 경우가 부쩍 늘어났고, 그렇게 열심히 사교육과 야간자율학습을 죽도록 받아봐야 인생을 낭비했을뿐이라는 하소연과 좌절섞인 목소리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는 중이기는 하다.
한국과 다르게 9월 학기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미국, 호주, 프랑스 등 9월 학기제를 채택한 나라들이 그렇지만 여름방학이 2개월 안팎으로 길고 겨울방학은 1개월로 짧다.[19] 또한 소련의 영향을 받아서 학교 이름이 숫자 이름으로 되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국적으로 6-3-3-4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다만 지역에 따라서 학제가 다른 경우도 존재하기는 한다.
3.2. 종교
중국은 도교와 유교의 발생지이며, 불교를 동아시아 각국에 퍼뜨린 나라로 종교적 역사가 깊은 나라이다. 중국 인민들은 불교와 도교 등 전통적인 종교와 함께 갖가지 민간 신앙에 의지하며 살아왔다. 이후 외국 세력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이슬람교, 그리고 그리스도교가 널리 전파되었다.
현재 중국인들이 신봉하고 있는 종교는 주로 불교, 도교, 이슬람교, 그리스도교(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등이 있다.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현재 중국의 각종 신자는 총 1억여 명에 달하며, 종교 활동 장소는 8만 5천여 처, 종교교직 인원은 약 30만 명, 종교단체 3천여 개가 있다고 한다. 종교단체들은 또 종교 교직인원을 육성하는 74개의 종교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도교는 중국의 전통 민간 신앙과 불교와 결합하여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중국의 전국적인 종교단체에는 중국불교협회, 중국도교협회, 중국이슬람교협회, 중국천주교애국회, 중국기독교삼자(三自)애국운동위원회와 중국기독교협회 등이 있으며, 각 종교단체는 각자 단체의 규정의 의하여 지도자와 지도기구를 선거•구성한다.
중국의 국가종교사무국은 국무원이 종교사무를 관리하는 기능 부서이다.
워낙 땅이 넓고 민족 구성이 복잡하다 보니 중국의 종교는 민족 및 지역에 나뉘어져 집중되었으며, 동일한 종교 내에서도 교파가 많다. 예를 들면 현재 중국 불교는 크게 한전(대승불교), 장전(티베트불교), 남전(상좌부불교) 등 3개 종파로 나뉘어 졌으며, 그 밖에도 다양한 종파들이 존재한다.
민족별로 회족, 위구르족, 카자흐족, 타지크족 등의 민족이 거주하는 서북지역에는 주로 이슬람교를 신봉하며, 다이족, 부랑족, 덕앙족이 거주하는 운남지역에는 주로 남방 불교가 자리잡고 있다. 한족은 주로 도교를 믿고 그 다음이 대승불교였으나 공산화 직후 70%가 무종교으로 돌아서고 3%가 대승불교를 믿는다. 그렇다고 중국 민중 대부분이 공산당의 정책대로 무신론자인건 사실이 아니며, 중국의 뿌리깊은 민간 신앙에 기반한 도교가 생활속에 자리잡고 있다.
드물게 티베트의 영향도 있어서인지 티베트 불교를 믿는 한족들도 있다고 한다.[20][21]
3.2.1. 국가 무신론과 반종교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면서 종교는 아편과 같다고 해서 배척되었다. 특히 문화대혁명 때는 수천년 동안 내려오던 종교적 유물들이 파괴되고 또 공자와 맹자와 같은 전통적 사상들까지 외면당해야 했다.[22]이러한 영향으로 현재 중국은 종교가 사회에 큰 영향을 못 미치는 비종교적 국가이다. 중국의 2016년 공식 인구 조사 中国家庭追踪调查 (CFPS, China Family Panel Studies) 에서는 무종교와 중국 전통 민간신앙을 구분하지 않고 73.56%, 불교 15.87%, 민간신앙과 결합된 도교는 약 7.6% 로 보고 있다.#
현재 중국은 공식적으로 공산주의에 입각한 국가 무신론을 추구하고 있다.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는 존재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중국공산당은 공산주의 이론과 모순되는 과거의 반동과 타도 대상인 자본가들에겐 입당 문호를 열었음에도, 무신론을 지향하므로 당원은 종교를 가져서는 안 된다. 단순히 종교를 가지는 정도가 아니라 종교에 관한 신념도 금지한다.
법적으로는 공산당원이 아니면 종교를 갖는데 문제가 없으나, 실제로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말하기에는 정부의 통제가 심한 편이다.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 종교에 대한 관용 정책을 실시하여 왔지만, 이는 정부 통제를 통한 제한된 신앙의 자유만을 의미하는 것이다. 1982년 헌법을 통해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으나, 이것은 1982년 중국공산당에 의해 제정된 ‘제19호 문서’와 1991년 공표된 ‘제6호 문서’, 그리고 1994년 반포된 ‘종교활동 장소 관리조례’ 등을 통해 정부의 정책과 통제에 협조하는 종교만이 종교활동을 인정받는 엄격한 통제성을 갖추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는 1999년 제정된 ‘사교조직 해체 및 사교활동 방지와 처벌에 관한 규정’과 '반사교 법률’ 등을 통해 조직을 갖춘 종교단체가 정부에 등록을 하지 않으면, 사교로 간주하여 조직을 해체하거나 벌금 부과 및 노동교화 등을 강제 집행할 수 있는 엄격한 통제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외국의 종교 관련 웹사이트 역시 대부분 차단되고 있고, 정부는 인터넷망을 통해서 종교 관련 콘텐츠가 중국인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감시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8년부터 이러한 성향은 강해지는 추세이며, 종교장소에 중국 국기를 의무적으로 설치, 미성년자의 종교장소 출입금지 등의 조치들도 새로 시행되는 중이다. 2022년 3월부터는 외국 단체나 개인이 주관하는 예배, 미사, 법회 등 종교의식의 인터넷 중계를 금지한다.#
현재 중국의 국가 지도 사상과 연관되어 유치원 때부터 국가무신론에 기반해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교육을 받기 때문이고, 성인이 되어서도 종교를 가진다고 공개적으로 표방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종교 신자는 공산당에 가입할 수 없고, 이는 사회적으로 출세는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일반인들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도교와 민간 신앙, 기복신앙에 있어서도 공산당원의 경우 큰 문제가 된다. 시진핑 시대 들어서는 당간부들이 점을 치거나 종교 행사에 참석하는 정도로도 숙청이 될 정도. TV 사극에서도 도사나 승려는 나오지만 염불이나 종교적인 제례의 모습은 거의 예외없이 검열 당한다.
한편, 중국엔 한인교회와 한인사찰도 있어 예배/미사나 예불이 가능하다. 당연히 외국인의 종교활동은 자유라 교회 및 절에 다니는 데 제약이 없다. 대신 이런 활동에 중국인을 끌어들일 수는 없고[23], 외국인의 종교 활동 역시 허용된 장소에서만 가능하며, 포교가 금지되어 공공장소에서 포교활동을 하면 추방당하기도 하고, 승려나 사제, 목사 등의 종교인은 비자가 발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공산당의 국가무신론에 기반하여 이상이 반종교적이라는 것이고, 중국인의 비종교성이 중국인들이 미신을 완강히 거부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국에도 12지, 사주, 운세, 궁합, 점, 풍수, 음양오행, 달마도, 재물신, 관우상 같은 것들이 있고 여전히 널리 행해진다. 과거에는 미신적인 단어의 사용을 금지하거나[24] 그런 경향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탄압했고, 지금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위에 오르려 할 때 종교인이라는 점은 분명 감점 요인이 되다보니 공공연히 드러내기 어려울 뿐이다. 공산당 내에서도 당원이 1억명이 넘다보니 기독교 같은 외래 종교에는 강경하나[25] 미신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편이다.
사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면서 심화되긴 했지만, 태평도의 황건적이나 태평천국 같은 종교적 운동이 중앙정부를 적대하여 반란이 일어난 역사 때문에 그 동안 은근슬쩍 종교탄압을 이루기도 했다.
3.2.2. 불교
중국에서 불자의 수는 보통 전체 인구의 10~16%[26]로 보고 있지만 불교계에서는 6억 6,000만명으로 보기도 한다.또한 과거 중국 왕조 중에서는 북위나 당나라 등 정식으로 선포하지는 않았어도 거의 국교 수준으로 불교를 지원하는 국가가 상당히 많았다. 특히 한족의 중화주의를 억누르고 유목민과 한족의 융화를 추구하던 유목 정복 왕조에서 이런 경향이 강했다.
중국의 불교 신자수는 조사 방법에 따라 천차만별로 나타나기 때문에 정확히 계산하기는 힘들며, 중국 불교 신자 수가 전세계 불교 신자 수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전세계 불교 인구 수도 조사방법에 따라 천양지차로 나타난다. 2000년대 이후 젊은 층을 중심으로 신자가 증가하고 있으며 중국에서도 기독교나 이슬람교보다는 긍정적으로 인식하면서 은근히 불교를 밀어주는 편이다. 중국의 젊은 층이 종교를 찾으며 기독교와 불교가 둘 다 늘고 있는데 북중국은 대승 불교 그 중에서도 중국의 불교 인구 대다수가 믿는 정토종이 최대 종파이고, 그 다음으로 선종, 티베트 불교 순으로 많이 믿는다. 참고로 같은 북중국에서도 지역별로 우세한 종파가 다른데 동북3성쪽이나 내몽골에선 티베트 불교가 허베이성, 산둥성, 산시성 등 화북지역에선 정토종이나 선종이 우세하다. 사실상 일상 문화로 자리잡고 종교적인 세 자체는 잦아든 도교 신자들 또한 동아시아 전통 유불선 삼교 원칙에 따라 서로를 배타적으로 보는 경우는 없으며 사실 중국 불교는 중국 민간 신앙을 흡수한 도교에 지대한 영향을 받아 한국- 일본 불교와 차별되는 독특한 형태의 모습이다.
화남 지방에서는 불교를 무시하고 화북 지방에서는 불교가 건재한 상황은 송나라와 요나라 때부터 이어진 현상이다. 요나라는 한족과 거란족들의 융화를 추구하며 불교를 지원한 반면, 송나라에서는 성리학이 나오며 지식인들이 불교를 멀리하게 되었다. 화북 지방과 화남 지방 지식인들의 불교에 대한 인식은 청나라 때면 더욱 심각하게 갈라지는데 화남 지방의 한족 지식인 상당수는 불교를 무지한 대중이 믿는 기복신앙 쯤으로 매우 괄시하였다.
근대 서구 열강의 진출과 함께 서양의 종교분류학도 들어왔다. 양문회 거사 같은 이는 국제적 유명 인사들과 교류에 힘썼다.
중국 정부의 중화민족 전통문화 진흥 목적으로 현재 중국 내 불교 신자는 최소 2억 명이 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며 최근 몇 년간의 증가세를 감안하면 최소 몇 년 내에 4억 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 중국을 제외한 세계 불교 신자가 3~4억 명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향후 국제 사회에서 중국 불교의 위상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적극 지원 속에 외형의 대부분을 문혁 이전 상태로 복원한 중국 불교는 출가 승려로 운영주체를 완전히 전환한 중국불교협회를 중심으로 교육, 포교, 신행, 학문 등에서도 밀도 높은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다.
중국 불교는 중국불교협회를 중심으로 문화대혁명 시기에 잃어버린 옛 영광을 재현하는데 성공하면서 동남아는 물론 세계 불교계에서의 주도권 쟁취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세계불교포럼을 주최하면서 중국 불교의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현재 세계적인 불교 단체는 태국의 세계불교도우회와 대만의 세계불교승가회가 있다. 중국이 세계불교포럼을 창설하려는 것은 대만을 견제하고, 세계 불교계를 중국이 주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 결과 2009년 세계불교포럼에는 전세계 50여개국에서 1,500여명의 승려들과 불교학자들이 참석했다. 따라서 “중국 불교의 패권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 불교의 이러한 움직임은 1966년부터 1977년까지 10여년 동안 이어진 문화대혁명 때 파괴된 절을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적극적 지원 아래 대부분 복원하면서 얻은 자신감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불교를 이끄는 중국불교협회의 중심 인물이 공산당의 신뢰를 받으며 활동해온 재가자에서 출가 승려로 전환됐고, 정부와의 공조에 기반해 몸집을 불리고 있다. 물론 외형적 성장과 함께 내적 역량을 강화하면서 종교로서의 역할까지 확대하고 있다.
중국 불교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한국 불교계는 아직까지 뚜렷한 대응이 없는 편이다. 중국 측이 매 2년마다 세계불교포럼을 개최하겠다고 선언하고 불교가 급격하게 부흥하는데 오랜 탄압으로 명맥이 끊긴 중국 불교라서 한국 불교에서는 양적인 팽창에 대해서는 주목하지만 대만불교에 비해 대륙 불교 출가자들의 수준이 매우 낮다고 보는 편이다.
그러나 계율 무시, 금전향락주의 등 문화대혁명 당시 불교 탄압의 빌미가 됐던 현세 이익 추구의 병폐도 생겨나고 있다. 또한 개방 정책에 따라 사찰재산이 인정되면서 발생하는 절 관리의 문제를 비롯해 문화대혁명 당시 수많은 승려들이 환속하면서 생겨난 장년층 승려의 공백, 전국적으로 30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불학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가불자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점 등은 중국 불교가 남북조 시대부터 당나라 시대 수준의 전성기를 회복하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3.2.3. 그리스도교
중국에는 최소 4,400만에서 1억 3천만 사이의 그리스도교인이 있다. 통계폭이 매우 큰건 중국공산당 산하 어용 교회만을 공식 통계로 냈을 때는 2012년 공산당이 인정한 개신교 조직의 삼자애국운동(三自爱国运动)와 중국기독교협회(中國基督敎協會)는 약 2,000만, 중국천주교애국회(中国天主教爱国会) 600만이고, 2018년 중국 공식 통계상으론 약 4,400만이다. 그러나 중국의 종교 정책에 반발한 지하교회 교세가 2~3배에 달한다는 추정이 많고, 낮에는 공식교회, 밤에는 지하교회를 오가는 신자의 수도 상당하기에 현재 중국 그리스도인의 숫자는 추정치일 뿐 정확하게 측정하기 어렵다.영국 정부 2019년 11월 미국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 통계를 보면 지하교회 포함 기독교 신자는 최대 1억명에서 1억 3천만명에 달하며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더군다나 복음주의 개신교는 허난성 저장성 안후이성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성장중이다. 특히나 2012년 China Family Panel Studies(CFPS)조사에 따르면 허난성은 개신교가 5.6% 가톨릭 0.5% 총 6% 이상의 인구가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답할 정도.과거 20세기 초 까지 서양 선교사들의 사역은 대체로 실패했으며 대체로 1978년 개혁개방이후 허난성을 중심으로 복음주의 교회 증가세와 연결된다. 20세기 초중반 까지 선교사들의 교파는 가톨릭 성공회 감리회 장로회가 주도 했으나 현재 중국서 폭발적인 교인수 증가는 오순절 교회 계통의 복음주의 교회가 주도한다. 그래서 북중국의 경제력이 열악한 허난성이 기독교인 비율이 중국 평균(2.1%)의 세배인 6.1% 이다. 현재 중국 기독교는 허난성등 저소득층 사회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한 복음주의 교파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인 선교사들의 지원이 상당히 크다. 중국의 국가 무신론의 영향으로 중국 공산당 산하의 기독교 단체에 속하지 않으면 종교가 불법인데다가 공산당 산하의 합법 교회마저도 중국인 전용이라 외국 선교사들은 중국인 교회에 참가할 수 없고, 적발시 강제 추방되기에 한국 목사들의 무슨무슨 협회 회장이니 임원이니 사장으로 파견되어 한국인 교회를 운영하는 척하면서 중국인 사역자를 키워내는 방식이다.
과거 중국의 기독교는 16세기부터 예수회 수도자들의 전래로 가톨릭이 처음에 들어왔으나, 예수회에서 상층 엘리트를 상대로 포교하는 전략을 펴다 전례문제와 함께 교황청에서 조상제사를 금지하는 조치와 함께 쫓겨나고, 청나라 중기부터 19세기 중반 아편전쟁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서양 열강들의 조약으로 포교의 자유는 인정 받았으나 실질적으로 지방에서는 금지되었으며, 여러차례의 서양 열강들의 개입으로 그나마 외국인 조차 지역과 항국 지역에 수만명의 기독교인 신자가 생겨났지만 1900년 의화단 폭동때 서양인과 외국인 중국인 기독교인들이 강간 고문 등 인간 살처분이 되면서 교세가 타격을 입었다. 중화민국 시대에 들어 다시 교세를 회복하려고 했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면서 극심하게 탄압받았다. 덩샤오핑 시대부터는 어느 정도 탄압이 완화되어 공산당 통제하에 공인교회안에서의 종교의 자유를 허용한다. 그러나 공인교회는 중국공산당에 충성을 맹세하고 통제에 순종을 해야하기 때문에 교회 조직부터 설교 내용까지 공산당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공산당 유물론과 배치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은 내용은 애초에 검열로 설교가 불가하다.[27] 더군다나 종교를 술이나 담배 같은 해악으로 보기 때문에 미성년자는 합법 교회마저 같이 출석할 수 없다.[28] 단순히 설교 뿐만 아니라 사전에 허가 받지 않은 설교, 강의, 모임은 불법이며, 코로나 사태로 봉쇄시에도 온라인 설교마저 불가능하다. 이는 시진핑 집권 후 코로나 이후 공산당 허가를 받은 합법 교회 마저도 설교 검열이 심해져서 성경대신 시진핑 사상 학습을 예배 설교에 넣으라고 할 정도다. 공산당 허가 밖의 가정 교회는 급습하여 영장없이 체포하여 강제 구금이 다반사이며 인터넷 예배나 성경공부 역시 불법으로 차단된다.
사실상 불교, 도교와 같은 전통 종교보다 20세기 초반까지 서구 열강과 함께 침입한 앞잡이 시각으로 교육하는 경우가 많아서 공식교회는 공산당 어용 조직이라는 한계와 더불어 지하 교회 신도가 적게는 2~3배에서 5~6배까지 달한다는 추정이다.
가톨릭의 경우, 주교 서임은 교황의 정식 승인을 받고 나서야 이루어져야 하지만 중국공산당은 자기들이 자체적으로 주교를 뽑아 임명해놓고 주교라고 우긴다. 본디 주교 서임은 교리상 교황의 고유한 권한이기 때문에 이러한 행위는 교회 입장에서는 도저히 용납하기 어렵다. 또한 사제들도 '중국천주교애국회(中国天主教爱国会)'라는 것을 만들어서 여기에 가입하는 걸 거부하는 사제들은 감옥에 가거나 가택 연금된다. 1957년에 정부 주도로 세워진 '중국천주교애국회'의 선언문을 보면 애국회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바티칸은 미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세계를 위하여 일하며 사회주의 제도를 원수로 여긴다. 따라서 바티칸에서 오는 명령은 그것이 정치적인 것인지 종교적인 것인지 분명하게 구분해야 하며, 종교 형식으로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그런 명령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 애국은 천직이므로 (바티칸을 포함해) 어떤 사람이라도 우리나라를 반대하면 우리도 그를 반대할 것이다.
- 김원철, "애국회, 불가피한 역사적 산물인가?", 평화신문, 2008. 11. 30.
- 김원철, "애국회, 불가피한 역사적 산물인가?", 평화신문, 2008. 11. 30.
바티칸에서는 중국공산당이 자체적으로 임명한 주교들을 정식 주교로 인정치 않고 있으며, 중국 정부와도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고 대만과 수교하고 있다. 최근에는 베트남처럼 공산당이 주교들을 추천하면 바티칸에서 임명하는 방식으로 중국 정부와 조율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합의가 된 것은 아니다.
물론 중국 정부의 통제 하에 있는 관제 가톨릭교회에 귀의하는 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교리에서 굉장히 제약이 많아서, 가톨릭인데도 교황을 언급할 수 없고, 공산주의 사상과 배치되는 예수의 재림 역시 언급되지 않는다. 예수의 재림은 대표적인 일례일 뿐이고, 크고 작은 기독교 교리 중에 공산당의 입지에 불리하게 작용할 만한 내용들을 수시로 제한받는다.
이러한 공산당의 정책에 반발하여, 교황의 수위권을 따르는 중국의 가톨릭 신자들은 중국천주교애국회 교회에는 나가지 않고 지하에서 자체적으로 종교활동이나 모임을 가지고 있다. 이런 지하교회는 중국 정부의 탄압의 대상이며, 적발될 경우 바로 감옥행이다.
개신교에 대해서도 국가 통제가 강하기는 마찬가지. 역시 삼자교회라는 관제교회 산하이다. 이것 역시 기독교 교리와 교회 운영에 꽤 많은 부분을 수시로 간섭당하는 절름발이 신세이다.[29] 개신교에서도 관제교회 신자는 비교적 소수이며 대부분이 지하교회를 다니고, 이들 역시 탄압 대상이다. 역시 외국인 선교사들은 경고없이 추방되기에 한국인 목사들은 무슨 사장이나 협회장으로 명함을 파서 활동을 하고 공산당에서는 관제교회가 아닌곳에서 예배나 집회가 이뤄지면 불도저로 건물을 밀어버리는 등 가시적인 탄압이 이뤄지고 있다.
지하교회 중 처소교회라 불리는 곳들은 예배나 미사를 몰래 드린다. 경찰에 걸리면 당연히 체포이며, 2008 베이징 올림픽과 2010 상하이 엑스포 때 단속이 특히 극심하였다.
정교회에 대해서는 아직 중국 정부 차원에서 분명하게 인정하는 조직이 없이 본당별로 암묵적 인정하는 식으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러시아 정교회 산하 자치교회인 중국 정교회의 특성을 고려해 중국 정부가 타 그리스도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외국인 선교사와 성직자의 활동을 금지하고, 성직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 설립이나 유학도 금지하고 있어 보이지 않는 철저한 내부 통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국가공인종교에 들어가 있지 않은 종교라 새로이 예배 처소를 건립하는 등에 있어 애로사항이 많다. 지금은 신자 수가 거의 남지 않고 단지 중국 주재 러시아인들을 중심으로 사목하고 있다. 중국 정교회 재건을 위해 모스크바 총대주교는 중국 정부에 교회 등록을 촉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는 한편 세계 총대주교(콘스탄티노폴리스)는 1996년에 홍콩에 대만과 남아시아, 극동 지역을 관장하는 교구를 설립했다. 최근 중러 협의를 통해 중국의 정교회 성소자(신학생)들이 러시아 정교회 신학교에서 유학 가는 것이 허용되어 중국에서의 장래 사목활동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홍콩/마카오에는 식민모국의 영향[30]으로 기독교의 영향력이 중국 전체에서 볼 때 유별나게 강했다. 현재는 무종교 내진 무신론자와 기독교인이 절반씩을 나눠 갖는 모양새이다. 홍콩 그리스도인과 마카오 그리스도인의 역사는 포르투갈 정복자가 중국 남부 광둥성에 온 17세기 대항해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한국보다도 오래됐다. 홍콩이나 마카오 교회는 한국과 달리 아파트에 달랑 십자가 세우고 天主敎堂이라고 쓴 게 전부라, 대형교회에 익숙한 한국인은 잘 못 알아본다. 땅이 좁아 오래된 교회가 아닌 바엔 대개 그렇게 아파트에 교회가 입주했다. 중국 본토의 공인교회는 교황을 언급하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할 수 없게 되어 있는 등 제약이 많아, 이게 싫은 사람들이 홍콩/마카오로 건너가기도 한다. 2014년 우산 혁명에서도 젊은 기독교인들이 한 축을 담당했다.
중국의 위인 중 기독교를 믿는 위인이 꽤 많다. 양안 공통의 국부 쑨원과 그의 친구인 쑹쯔원 일가 등이 대표적인 예이며, 대륙에서 쫓겨나기는 했지만 장제스도 그리스도인이고[31] 쑨원의 부인 쑹칭링 역시[32] 그리스도인이다. 생각보다 기독교의 영향력이 강했던 셈. 중국어에는 礼拜 즉 예배에서 온 礼一, 礼二 등의 요일 표현도 있는데 몇몇 유럽권 언어처럼 예배를 드리는 일요일을 기준으로 요일을 나눈 것이다. 오늘날에도 홍콩 등 그리스도인이 많은 곳에서 구어로 쓰기도 한다.
중국 내에서는 기독교(가톨릭, 개신교 포함)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는 상황을 두고 중국 정부가 고심 중이라고 한다. 특히 기독교는 마오쩌둥 사망 이후 종교의 자유가 제한적으로 보장되면서 매년 10%의 성장을 기록해왔다. 퍼듀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펜강 양(Fenggang Yang) 교수는 최근 영국 텔레그래프(The Telegraph)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곧 세계에서 가장 기독교 인구가 많은 나라가 될 것”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중국 내 종교: 공산주의 지배 아래 생존과 부흥’(Religion in China: Survival and Revival under Communist Rule)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양 교수는 2010년 퓨 리서치 센터의 연구 결과 약 5,800만 명을 넘었던 기독교 인구가 2025년에는 1억 6천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중국 내 개신교 인구가 미국을 앞지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 교수는 “가톨릭을 포함해서 중국 내 전체 기독교 인구는 2030년까지 약 2억 4,7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마오쩌둥은 종교를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완벽하게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공산주의자들이 집권한 1949년 당시, 마오쩌둥은 교회를 정부 아래 두고 기독교 선교사들을 추방했다. 중국 기독교인들은 문화혁명기인 1960년대와 마오쩌둥의 집권기인 1970년대 극심한 핍박에 직면하기도 했으나, 불과 같이 계속해서 성장해 나갔다.
중국이 이를 두고 고심하는 이유는 중국공산당은 "마르크스 주의를 따르는 제1당으로서 과학의 대중화를 통해 인민들이 출생, 노화, 질병, 죽음, 행운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며 "종교의 영향력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키려면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힌 중국 국가종교사무국 국장 왕쭤안(Wang Zuoan)의 인터뷰에서 보듯 중국이 공식적으로 과학적인 무신론을 이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 기독교가 공산당을 효과적으로 견제한 경우도 있었고, 중국 내 기독교인들은 속세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불교인과 달리 고학력자들의 사회적인 활동이 왕성한 탓에 공산당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기독교의 서구색 역시 중국에서 문제를 삼는 요소다. 중국은 아편전쟁 이후는 서구 열강의 각축의 역사이며,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에도 냉전을 겪으면서 서방에 대한 의식이 기본적으로 부정적이다. 하여 중국에서 기독교는 언제나 '서양 종교'라는 딱지를 달고 다니며, 근현대사 등을 다룰 때에도 과학의 발전에 역행하는 꼰대세력, 제국주의의 앞잡이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여하는 편이다. 불교 역시 외래종교이지만 이미 충분히 중국화가 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인식도 옅은 편이고, 중국을 홍보하는 문화적 콘텐츠[33]로 써먹을 수도 있기 때문에 대접이 좋은 편이다.
2010년대는 중국 종교계, 특히 기독교계의 혹한기라 할 수 있는데, 시진핑 정권이 자국 내 중국공산당 권위주의 체제를 강화해나가는 정책을 펴면서, 기독교 종파들에 대한 종교탄압 강도가 극심해지고 있다. 특히나 집권 2기인 2016년때 위기 이후 코로나 사태이후에 더 정교해지고 있다.. 미성년자는 종교시설에 출입할 수 없게 하였으며, 가톨릭과 개신교의 종교시설 철거나 교회 행사 방해, 또는 공산당 입맛에만 맞는 교리를 강요하는 등 각종 탄압의 정도가 극심하였다.
- 종교: 중국의 기독교 탄압이 보다 거세지고 있다 (BBC 뉴스 코리아 2018년 12월 19일)
- 종교 통제 강화하는 중국…이유는? (KBS 2019년 1월 22일)
- ‘디지털 박해’가 시작됐다…중국, 온라인교회 금지령(국민일보 2023년 3월 4일)
3.2.4. 이슬람
이슬람교도 소수인 편이지만 정착 역사가 오래되었다. 그리고 사실 이슬람을 믿는 한족인 회족들만 봐도 인구가 천만여 명에 달해서 이슬람이 극소수라 말하긴 힘들다. 회족들은 중국 전 지역은 물론 해외 차이나타운까지 퍼져 있으며, 돼지고기 금식 등 자신들만의 풍속을 유지하지만 겉모습도 영락없는 한족이고 언어도 보통화나 지역 방언을 써서 본인이 회족이라 말 안 하면 모른다.중국 무슬림은 한족 중 이슬람을 받아들여 별도 종족화된 회족.[34] 튀르크 혈통의 소수민족들로 북방 황인종 모습을 한 카자흐 및 키르기즈, 유럽인과 동아시아인이 섞인 모습인 우즈베크, 위구르인, 타타르인 역시 전형적인 북방 황인종인 살라르인[35] 등이 있으며 특이하게 백인종 계열로 페르시아계 혈통과 비슷한 이란계 혈통인 타지크인(정확히는 와키인, 사리콜리인)들도 있다. 신강에서 인종적으로 완전 백인종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거진 이 타지크인들로 이들은 이란인이나 북인도인과 관련이 더 있으며 언어도 파슈툰어(여기서는 페르시아어가 아닌 이란계 민족들의 언어) 방언인 중국의 타지크어로 알려진 사리콜리어와 와키어를 쓴다.
당나라 시절 장안, 광저우 등으로 유입된 아랍 출신 무슬림들이 중국 이슬람의 시초라 할 수 있다. 그 이후로도 한족 중 이슬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회족이라는 별도의 소수민족을 이루고 있으며, 그 외에도 현재 중국령인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위구르인들 역시 인구 대다수가 이슬람이다.
현재 중국에서도 이슬람은 합법 종교이지만 국가무신론을 추구하는 나라답게 이런저런 통제가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대 들어서 시진핑 정권에서는 이런 추세가 더 가속화되고 있다. 성지 순례를 최대한 제한하는 정책을 펴거나 테러리즘 방지라는 미명 하에 반이슬람+친공산주의적 강제교육을 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유명 모스크를 철거하려는 시도를 하려다 무산되기도 하였다.
중국 내에서 한족과 동화를 가장 많이 반대하고[36] 독립 열기가 높은 위구르인들의 경우, 독립운동이 종종 이슬람 극단주의와 얽히는 경우가 있다. 다만 다에쉬가 팔레스타인 독립 운동에 부정적인[37] 것과 마찬가지로 위구르인 극단주의 테러 단체는 여타 위구르 민족주의 단체와는 서로 선을 그은 상태이다.
3.2.5. 신흥종교 및 사이비 종교
사이비 종교들도 판을 치며 동방번개라는 신종 사이비와 중생파라는 요상한 교리의 기독교 이단 사이비가 존재한다. 민폐 급의 사이비는 바로 전능신교[38]로 1973년생의 양항빈이라는 여자를 재림예수라고 주장하며 신으로 숭배한다. 또한 파룬궁도 중국에서는 금지 종교이다. 파룬궁의 ㅍ자라도 언급하는 순간 살해당할 수 있다고 한다.3.3. 생활 리듬
- 중국의 모든 지역은 베이징 인근을 통과하는 동경 120도선을 자오선으로 하는 단일 시간대로 통합되어 전 국토가 같은 표준시를 쓴다. 즉 베이징에서 오전 7시면 머나먼 티베트 지역에서도 오전 7시. 시간까지도 통일하고 조종하는 중국 정부의 무서움을 알 수 있다. 동부 지역이라면 문제없는데 서부로 갈수록 표준시와 일출몰 시각과의 '시차'로 애로사항이 꽃핀다. 같은 시각이라도 베이징에는 날이 샜는데 티벳은 아직 꼭두새벽인 등. 비슷한 크기의 미국이 (알래스카와 하와이와 이외 속령의 시간대를 제외하더라도!) 4개의 시간대를 가지고 있는 것과는 대조된다. 이런 식으로 시간대가 실제와 다르기에 중국 최서단 지점에서는 오차가 3.1시간이나 난다. 실제 시간과 2시간 이상의 오차가 나게 법정 시간대를 정해 놓는 경우도 그리 많지 않은데 3시간이나 차이 나는 곳은 사실 없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티베트의 경우는 실제로는 UTC+6으로 카자흐스탄 및 우즈베키스탄과 같고, 쓰촨성이나 윈난성은 원래는 UTC+7이 맞긴 하다. 그리고 만주는 UTC+9를 쓰는 게 맞다. 하지만 UTC+7,9의 경우 어차피 1시간 차이 밖에는 나지 않아서 그렇게까지 문제가 제기되는 편은 사실 아니다. 당장 태국-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싱가포르도 1시간 씩 시차가 있으나 문제없이 교류한다. 아무튼 넓은 국토에도 불구하고 표준시가 같기 때문에 실제 시간에 따른 생활패턴이 다르다. 가령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는 11시가 공식 출근시간이다. 때문에 중국에 연락해야 될 일이 있을 경우 해당 지역 시간대를 확인하는 편이 좋다.
- 중국인들은 한국인들보다 아침을 일찍 시작하고 일찍 잠든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2시간 정도의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저녁 9시 뉴스에 해당하는 종합 뉴스는 7시에 방송되며, 지역이나 학교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아침 7시 정도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등교를 끝마친다. 밤 10시는 상당히 늦은 시각이므로, 이 시간 이후에 시끄럽게 떠들거나 전화를 하거나 하는 건 큰 실례다.
- 중국 직장인들은 하루 2번 출근한다. 보통 점심시간이 여름에는 2시간(12:00~14:00)이고 겨울에는 2시간 반(12:00~14:30)으로 길어, 집이 가까우면 귀가해 식사를 하고 잠깐 잠을 자기도 한다. 한국과 같은 야근은 없다.[39] 그런데 오전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것도 '퇴근한다'고 표현하고, 오후 근무를 하러 직장으로 갈 때도 '출근한다'고 표현한다. 이러한 특이한 직장문화 덕에 해외에서 일하는 중국인들이 불편을 겪기도 한다.
3.4. 해음과 금기
중국에서는 글자의 발음이 비슷하거나 같은 것을 해음(谐音)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특정한 것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물론 시대에 따라 많은 부분이 변하기 마련이기때문에 개인차나 세대간 차이도 어느정도 존재한다.3.4.1. 숫자
- 중국인들이 8을 선호하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 아래에 나온 것처럼 다른 선호되는 숫자들도 있지만 8은 그 중에서도 특히나 선호된다. '부자가 된다'라는 단어인 发财(파차이)와 八이라는 글자의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40]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중국의 8 사랑은 여전해서 개막식을 8월 8일 오후 8시에 했을 정도.[41][42]
- 9도 선호하는 숫자인데, 영구적이다, 장수하다라는 뜻의 '久'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jiǔ)
- 서양 문화의 영향을 받아 7을 행운의 숫자로 여기는 한국·일본과는 반대로, 중국인들에게는 7은 기피하는 숫자이니 주의. 7은 장례식과 관련된 숫자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사람이 죽은 다음 7일 후에 지전을 태우는 소칠을 지내고, 49일째는 칠칠제(七七祭)를 지낸다. 물론 젊은 중국인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한국 일본과 마찬가지로 외국의 영향을 받아서 7을 선호하는 사람도 많다.
- 6 역시 선호하는 숫자이며, 이는 6(六)의 중국어 발음 'liù'가 '매끄럽다'(일을 매끄럽게 잘한다)는 의미의 한자 溜와 같기 때문이다. 위의 8과 더불어 가장 선호하는 숫자이기도 하다. 이 것이 이유인지 중국 인터넷 방송 등에서 BJ의 (게임 등에서의) 슈퍼플레이가 나오면 채팅창이 666으로 도배된다.
- 한국과 일본과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4는 死(sǐ)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기피숫자이다. 중국은 엘리베이터에도 4층 표시가 없다.[43] 어떤 한국택배업체가 중국에 진출하면서 한국에서처럼 끝자리가 2424라는 전화번호를 받아서 영업했는데 이 숫자는 儿死儿死(아이가 죽어요)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기피하는 번호인데도 용감하게 썼다가 결국 진출한지 얼마 안 가 폐업 크리.[44]
3.4.2. 선물
- 중국인에게는 시계를 선물하지 않는 게 좋다. "시계를 선물한다"는 뜻의 송종(送钟)은 장례를 치르다는 뜻의 송종(送终)과 발음이 같기 때문에 특히 나이가 많은 어른에게는 최악의 선물로 꼽히기도 한다. 다만 손목시계는 钟으로 칭하는 않기 때문에 괜찮을지도...?[45] 2017년 차이잉원 총통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텍사스 주지사 애벗으로부터 시계를 선물받아서 대만 내부에서 논란이 되었다.[46] 여담으로 장제스 와 장쉐량 의 일화 중, 장쉐량이 시안 사건 후 연금되고 대만에서도 연금 되었을 때 장제스의 생일에 시계를 보낸적이 있다. 어차피 이빨 다 빠지고 나약한 노인이 됐으니 좀 풀어줘도 되지 않냐는 뜻을 큰 결례를 범하면서 까지 내비친건데 장제스는 거기에 낚싯대로 답례했다 한다. 조용히 시간이나 낚으라는 소리.
- 녹색의 모자(绿帽子)역시 중국인들이 기피하는 요소다. "아내가 남편 몰래 바람을 핀다"는 의미의 은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는 써도 별 문제가 없지만, 남자가 녹색 모자를 쓰는 경우는 없다.
3.5. 시민문화
- 중국 사람과 사업상/개인적으로 친해지려면 호걸(?)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47] 유방(한고제) / 유비가 괜히 중국식 영웅의 대표가 아니라는 것. 다들 배포가 크고 정말 친해지면 위에 서술된 것처럼 국적, 나이 그런 거 없이 따거(형님)이라고 부르며 의형제를 맺고 가족보다도 잘해준다. 따거 말만 믿고 서류도 안 쓰고 몇 만달러치 외상/선입금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일단 친한 사이라면 의심은 내보이지 않는 게 좋다. 정 거절할 일이 있으면 내가 이 돈을 당신에게 빌려주고는 싶지만 나도 가족의 일원이어서 보탬이 돼야 하고 물론 당신은 나의 형제고 당신을 위해서라면 내 목숨도 아깝지 않지만 등등...당신 개인의 사정보다는 가족이나 동료 등 다른 사람을 내세우며 거절하자. 호쾌한 동네이면서도 아부가 잘 통하기 때문이다. 따거 되기도 쉽다. 관광 가서 야밤에 가이드랑 동네 술집 주인 셋이 술 먹고 마음 잘 맞으면 그냥 도원결의 맺는다. 게다가 1, 2년 후에 찾아가도 기억 한다. 물론 그렇게 의리 실컷 나눈 사이라도 더 큰 사업, 더 부자 손님을 위해서는 배신하거나 이용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대의를 위해서 그런 것이라면서 그 사실에 당당하다. 요약하면 자기에게 심각한 손해가 되지 않는 한에서는 어떤 부탁이든지 다 해주지만 자신에게 심각한 손해가 될 것 같으면 쉽게 들어주지 않는다.
- 위의 내용에 더해 만약 중국인을 사업이든 그냥 사적이든 대접 할 일이 생긴다면 가능한 최대한으로 하는 것이 좋다. 영웅호걸은 호방하고 통이 커야한다는 관념이 있어 검소한 방식은 쩨쩨하다 못해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순식간에 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 특히 식사나 음주의 경우 절반도 못먹을 양과 종류의 음식과 술을 시켜 먹게 될 상황이 빈번한데 주로 장년층 이상이 큰 사이즈로 즐기며 젊은세대는 좀 덜하지만 한국 기준으로는 상당한 크기이다. 반대로 중국인에게 대접을 받게된다면 그렇게 가깝거나 오래 안 사이가 아닌데도 호사를 누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 한국에서도 똑같지만, 안면만 알고 친한 사이가 아니면 "시간이 생기면 자기 집에 놀러와"고 말한다거나, 방문객이 돌아갈 때 "언제든지 다시 와", "방학이 되면 같이 고향에 가자" 등의 말은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므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안된다. 정 헷갈리면 직접적으로 물어보자.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애초에 진짜로 상대방이 친구를 집에 초대할 생각이라면 저런 말을 쓰지 않고 제대로 약속을 잡으려 한다.
- 안방에 들어갈 때도 신발을 신은 채로 들어간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입식생활권이었고, 정부 주도로 아직 많이 남아있는 전통 가옥들의 경우[48] 그냥 돌 타일 깔아놓은 맨바닥이라 잘 때 외에는 신발을 벗을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현대에는 일부 서구권 국가들의 문화처럼 신발을 신더라도 실내화로 갈아신는 등 타협을 본다는 듯.[49] 여담으로, 이것 때문에 고시원이나 전세, 월세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중국인들의 이러한 습관에 질색한다. 안 해도 되는 청소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 남자의 경우 동아시아 치곤 상의탈의에 관대한 편이다. 대도시에서는 덜하지만 조금만 시골, 혹은 도시 속에서도 전통 가옥이 밀집해 있는 구역에서는 아저씨들이 좀만 더우면 상의탈의를 하거나 배만 내놓는 일명 베이징 비키니 패션을 선보이기도 한다. 물론 젊은층이거나 대도시일수록 상의탈의를 혐오하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고 있긴 하며 2019년부터 일부 도시에서는 아예 법적으로 금지시켰다.
- 중국에서는 허리나 머리를 굽혀 인사하는 건 대단한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만 하는 것이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컬처 쇼크 중 하나가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허리를 꼿꼿히 세우고 인사하는 것. 물론 한국 사람 입장에서 한족식 인사가 너무 건방지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한국에서 하는 것처럼 하면 어색하게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한국식으로 인사를 하지 않는 편이 좋다.
- 이런 점 때문인지 "중국인들은 예의가 없다"라는 인식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는 중국인의 문화 자체가 원래부터 집단보다는 개인에(?) 치중되어 있는 것에서 기인한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케바케겠지만 배금주의 및 개인주의 성향도 있으며, 일부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것도 '남을 신경쓰는 사람은 소인(!)이다'라는 인식이 있고 이에 대해 큰 신경을 쓰지 않는 시민 의식이 아직도 남아있어 이를 문제삼는 당국의 지속적인 계도 시도가 벌어지고 있다.[50] 그렇기에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떠든다거나, 쓰레기를 아무 곳에나 버린다든가 하는 일이 한국과 비교하면 상당히 흔하게 벌어진다. 반대로 자신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사람에게는 깍듯이 예의를 지키는 경우가 많다.[51] 물론 공공장소 에티켓의 경우에는 점점 나아지고 있기는 하다. 1990년대 초중반에는 기차에 쓰레기를 그냥 바닥에 버리는 것이 일상적인 모습이었으나 시민 의식 개선으로 인해 21세기엔 흔한 풍경은 아니다. 특히 교육받은 젊은층이 많은 도시권에서는 시민의식이 꽤 높은 편이라서, 쓰레기 무단투기나 고성방가같은 행위를 자제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 나이를 먹은 세대일 수록 따바, 따마라고 불리는 특유의 생존주의가 만연해 있다. 이들은 중국의 다양한 격변을 보고 생존본능을 자극받은 세대라 그런지 이기주의 성향이 강하다. 덕분에 세대갈등이 모든 나라 중에서도 탑급인 수준이다.
- 옛날 악습으로 인근 주민집단들끼리 싸우는 계투란 것이 있다.
- 상술한 대로 중국은 남 눈치를 잘 안 보며 상당히 자유롭고 외향적으로 행동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는데, 이러한 문화를 러나오(热闹)라고 부른다. 유교의 탄생지라 예법에 엄할 것 같은 느낌과는 다르게 중국에서 봉건시대에도 예법은 사대부 이상만 지키는 것으로 보았기에 주자성리학에 빠진 조선과 달리 보통사람들은 유교의 영향이 크지 않았다. 현대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에 더해 너무 빠른 산업화 속도까지 맞물려 타인에 대한 무관심 및 보신주의, 더 나아가 이기주의적 성향까지도 보이며,[52] 특히 '자기가 하고 싶은 행동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 앞이기 때문에 하면 안된다.'는 개념이 별로 없기에[53] 이런 불문율이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꽤 쇼크를 준다. 일단 어른 앞에서의 예의범절이 한국과 크게 다르기도 하고 중국 본토는 아직 교육 수준이 선진국에 다다르지 않은, 특히 지방에서는 단순히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수준을 넘어서 심각할 정도로 에티켓을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선진지역인 홍콩 및 마카오는 보편적인 에티켓이 발달해 있으며, 앞서 서술한 대로 중국 본토도 교육수준이 높은 대도시권은 나름 괜찮은 에티켓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 한족의 경우 남에게 무관심한 문화가 고대부터 어느 정도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에 한국식으로 단체 정신이나 생활을 강제로 강요하다가는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친한 친구라고 해서 남의 사생활이나 개인 정보에 대해 너무 세세하게 알려고 하면 그리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정말 엄청 친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정도까지는 괜찮지만, 심지어 험담을 해도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서 많이 아는 것 같으면 정말로 싫어하는지 의심하기도 한다. 특히 싫어하는 사람을 잘 기억하는 한국과 다르게 잘 기억하지 않는 편이니 대화를 나눌 때 주의하는 게 좋다.
- 중국에서는 담배 권유가 친근감의 표시라 담배를 권유받았을 경우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我不抽烟了)"라고 이야기하거나 일단 담배는 받지만 피우지 않거나 한다. 비흡연자라도 피우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이 예의일 정도로 담배가 일상에 녹아 있어 한 때는 담배를 딱 잘라 거절하는 건 심각한 결례인 시절도 있었고 아직도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존재한다. 거기다가 중국 자체가 흡연에 관대한 문화를 가지기 때문에 중국 내에서는 흡연자를 한국보다 훨씬 더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2000년대를 전후하여 정부주도로 금연 분위기를 만들고 있고, 2010년대 들어서 담배 자체에 대한 해악이 꽤 많이 알려졌으며 중국에서도 금연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적어도 버스나 기차 안에서 거리낌없이 담배를 피우는 수준은 아니며, 가끔 무식한 사람들이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우면 기사가 당장 버스를 세우고 담배를 끄도록 지시한다. 그러나 여전히 애연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홍콩 MTR에서는 승강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중국인들 때문에 홍콩인들과의 마찰이 있기도 하다. 현재는 베이징 지하철도 역사 전체가 금연구역이 되었고, 공항에서는 흡연자를 발견하면 신고하라는 공안부의 광고 스티커를 볼 수 있다.
- 윗사람이 칭찬을 하면 감사의 말 외에도 '평소의 가르침 덕분입니다.'나 '항상 배려하시고 키워주셔서' 같은 겸손한 말도 해야 한다. 한국이나 일본식으로 '감사합니다'라는 대답만 하면 건방지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시상식 수상소감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부모, 스승 등에 대한 감사인사를 붙여야 하며, 국제대회처럼 좀 규모가 있는 행사에서는 국가에 감사한다는 말도 붙인다.
- 폭죽의 개발국이니만큼 폭죽이 상당히 흔하다. 특히 중국에서 무척 기쁘고 경사스러운 일이 생기면 거의 필수적으로 폭죽을 터트리는데, 이 폭죽 소리가 클수록 액운을 가져오는 잡귀들을 쫓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폭죽 소리를 상당히 크게 낸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때를 맞춰 한꺼번에 폭죽을 터뜨리는데, 이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은 폭죽 소리에 불편을 느끼기도 한다. 다행히 외국인들을 배려한 중국 정부의 정책으로 베이징에서는 춘절(중국 최대의 명절)에만 폭죽을 터트릴 수 있지만 다른 지방에서는 개인적으로 축하할 일이 있으면 맘놓고 쏘기 때문에 폭죽 소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나름의 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베이징에서는 2018년부터 5환로 이내에 있는 지역은 미세먼지 절감을 이유로 폭죽이 전면 금지되었다.
- 중국 결혼식에는 주례가 없는 경우도 있다. 한국도 주례 없는 결혼식이 있기야 하지만 드문 반면에 중국은 자주 보인다.
- 핸드폰으로 전화를 받으면 한국과는 다르게 수신자도 돈을 낸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전화를 가려서 받는다. 그래서인지 2010년대 이후 들어서는 정말로 전화 통화를 해야 하는 게 아닌 이상 카카오톡이나 라인에 대응하는 위챗으로 연락을 주고 받는 경우가 많다.
- 야진(押金)이라고 하는 보증금 문화가 굉장히 발달되어 있다. 한국처럼 집을 살 때는 물론, 호텔에 투숙하거나, 물건을 대여할 때 등등 훨씬 넓은 범위에서 사용된다. 아직은 신용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중국에서 숙박시설을 잡으면 투숙료 외에도 일정 금액의 보증금을 추가로 걷으며, 퇴실 시 환급받는다.
- 어느 나라를 가도 마찬가지지만, 민감한 정치적 문제는 가급적이면 화제로 꺼내지 않도록 하자. 비록 세월이 지나면서 어느정도는 변하고 있으나 중국은 여전히 통제가 심한 독재 국가라서, 정치적인 문제로 대화해 봤자 모든걸 허물없이 나눌 정도로 친해지지 않은 이상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 그대로 답변이 돌아올 확률이 높다.[54]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고 교육받은 대학생이나 유학생들의 경우 중국인이 이렇게 말해도 되나 싶을 정도 수위의 발언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한다. 또 해외 거주 중국인이나 화교의 경우 본국보다 자유로운 사회에서 있어서인지 공산당이나 중국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모습도 보일 때가 있다. 한편, 자국의 역사적 입장 때문에 한국인들과 의견차가 나오는 부분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한국 전쟁의 경우 거두절미 하고 '중국은 조선 인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자원해서 참전했다'(항미원조)라며 자기들 입장에서는 좋은 일을 하러 참전했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3.6. 꽌시
[ruby(人, ruby=rén)][ruby(人, ruby=rén)][ruby(生, ruby=shēng)][ruby(而, ruby=ér)][ruby(自, ruby=zì)][ruby(由, ruby=yóu)],[ruby(在, ruby=zài)][ruby(尊, ruby=zūn)][ruby(严, ruby=yán)][ruby(和, ruby=hé)][ruby(权, ruby=quán)][ruby(利, ruby=lì)][ruby(上, ruby=shàng)][ruby(一, ruby=yí)][ruby(律, ruby=lǜ)][ruby(平, ruby=píng)][ruby(等, ruby=děng)]。[ruby(他, ruby=tā)][ruby(们, ruby=men)][ruby(赋, ruby=fù)][ruby(有, ruby=yǒu)][ruby(理, ruby=lǐ)][ruby(性, ruby=xìng)][ruby(和, ruby=hé)][ruby(良, ruby=liáng)][ruby(心, ruby=xīn)],[ruby(并, ruby=bìng)][ruby(应, ruby=yīng)][ruby(以, ruby=yǐ)][ruby(兄, ruby=xiong)][ruby(弟, ruby=dì)][ruby(关, ruby=guān)][ruby(系, ruby=xi)][ruby(的, ruby=de)][ruby(精, ruby=jīng)][ruby(神, ruby=shén)][ruby(相, ruby=xiāng)][ruby(对, ruby=duì)][ruby(待, ruby=dài)]。
인간은 천부적으로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행동하여야 한다.
표준 중국어와 간체로 작성된 세계인권선언
인간은 천부적으로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행동하여야 한다.
표준 중국어와 간체로 작성된 세계인권선언
꽌시(关系, 올바른 표기는 '관시')는 한국말 관계(關係)의 현대중국어 발음으로, 삼국지와 같은 중국 소설에서 자주 나오는 의(義)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받은 게 있으면 갚아야 하고, 한번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사람에게는 공과 사를 불문하고 끝까지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은 본인의 체면에 관계된 것이며, 이런 일을 무시하면 체면이 손상된다고 여기는 등 무협지스러운 생활상이 남아 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서는 이런 봉건사회의 미덕이 연고주의로 변질되어 부패의 온상이 되었기 때문에, 꽌시라는 말은 부정적인 어감이 강해졌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빽, 연줄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볼 수 있다.[55]
대중문화에서 볼 수 있는 꽌시의 예는 정말 다양하다. 수호전같은 고전이나 무협물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의협 개념은 꽌시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작품이라면 어지간해선 알게 모르게 녹아들어있으며, 사실상 중국인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지나치게 땅은 넓고 사람은 많으며, 스스로를 중화와 일치시키는 자아중심주의 세계관을 가진 중국인들은 나 외에는 누구도 믿지 않으며, 나를 중심으로 철저하게 인간관계도 권위주의적 서열화를 시킨다. 그때문에 중국인들은 나와 혈연인 가족정도를 뺀 타인은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에 따라 서열화하여 관계를 설정하고 차별대우한다. 이런 행동원리를 가진 사람들만 모여있으니, 중국인들 스스로도 남을 못믿고 모르는 사람에게 눈뜬채 코베일 정도로 적은 많고 믿을 만 한 사람은 적으니 그만큼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끝까지 챙긴다는 개념에 가깝다. 서강대 이욱연 교수의 설명.
꽌시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점이 있는데, 중국인은 자신과 관계없는 남에게는 무신경하지만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면 철저히 예의를 지킨다는 점이다. 인간관계가 철저히 나와 가족 그리고 아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거(큰형님)’라는 호칭이 많이 등장하는데, 사실 한국도 형님이라는 표현을 일상생활에서 잘 안 쓰듯이 일반적인 중국인 사이에서는 그렇게 많이 쓰지 않는 표현이고 일반인들은 보통 ‘거거(형)’라는 표현을 쓴다.
중국에서의 친구란 나이가 거의 같으면서 친밀하게 오래 사귄 사람이 아니라 사회생활 중에 만나서 알게 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꽌시에 따라 단계가 있어서 친구라고 불린다고 남이 아닌 게 아니다. 친구를 부를 때의 호칭도 다 따로 있다.
- 신펑유(新朋友, 신붕우[56][57])는 남, 심지어 적과도 별로 다를 바가 없는 단계로서 단순히 새로 알게 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냥 지나가다 이름만 알고 얼굴만 안 사람들도 친구라 부르는 것. 경쟁자나 적으로 출발할 게 뻔해도 처음 알면 신펑요우다. 직역하면 새친구, 의역하면 지인 정도.
- 하오펑유(好朋友, 호붕우[58])는 좀 신펑요우에서 진전되어, 주고 받는 우호적인 단계에 이른 친구를 말한다. 직역하면 좋은 친구.
- 라오펑유(老朋友, 노붕우[59])는 친구 관계의 정점으로 자신의 주변 사람들까지 소개하고 꽌시를 맺게하는 단계로서 여간한 물건을 허락받지 않고 써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등 일반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이다.[60] 정치인들이나 기업가들 사이에서 꽌시를 맺었다고 하면 최소한 이 수준의 관계를 유지했다고 볼 수 있다.
- 슝디(兄弟, 형제)는 최종적인 단계다. 형제라는 한자어 의미 그대로 의형제 관계의 꽌시로서 친구를 넘어서 가족, 한 몸처럼 여기는 단계이다. 당연히 서로 한 몸이나 다름이 없으니 사기나 배신 등은 이 단계에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만에 했다가는 상대방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비난과 멸시를 받을 것이다. 이 단계에서 더 나아가면 첸슝디(干兄弟, 간형제) 아예 서로 가족을 책임지겠다고 하거나 서로의 가족끼리 한 가족을 맺기도 한다.
4. 스포츠
소위 중국 3대 스포츠로 알려진 탁구, 농구, 배드민턴은 중국 스포츠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이다. 당장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을 살펴보더라도 이 3대 종목의 인기를 금방 실감할 수 있다. 농구의 결승전 티켓은 15만 원, 배드민턴도 15만 원, 탁구 A등급은 10만 원에 육박하였다. 이러한 3대 종목의 결승전 티켓은 부리나케 매진되었다. 중국에서 열리는 3대 종목 리그는 각 시즌마다 수많은 중국인들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그 외에도 역도, 다이빙, 체조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올림픽의 경우 대만과의 국호 문제 때문에 동계대회는 1980년부터, 하계대회는 1984년부터 참가했다. 특히 하계대회에서는 10억이 넘는 인적 자원에서 나오는 우수한 인재풀을 앞세워 1984년부터 금메달 15개를 따내며 황색돌풍(첫 출전에 4위)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다만 1988년에는 금메달 5개를 따내며 부진했다가 1992년부터 꾸준히 TOP 4 안에 들더니 2008년에는 금메달 48개를 따내며 1위를 차지했다. 2000년대 이후부턴 꾸준히 미국과 1,2위 경쟁을 하는 중이다. 대부분 콩라인인게 함정이지만.. 동계대회에서는 계속해서 진전이 없다가 2002년 쇼트트랙의 전설인 양양이 우승한 이후부터 금맥이 터지기 시작했다.
#(역대 하계올림픽 메달 집계순위 : 1984년 4위, 1988년 11위, 1992년 4위, 1996년 4위, 2000년 3위, 2004년 2위, 2008년 1위, 2012년 2위, 2016년 3위, 2020년 2위)
21세기엔 여러 종목에서 세계적인 선수들을 배출하며 스포츠 강대국으로 우뚝 선 중국이지만, 사실 중국이 선전하고 있는 올림픽 종목들은 중국이 1980년 이후에나 적극적으로 올림픽에 참가했다는 걸 생각했을 때 의외로 휩쓴 기간이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순에서는 1개 차이로 영국한테 밀려 3위를 했고 총메달 합계순에서는 2위를 했다. 사실 총메달순으로 따지면 1위한 2008년도 미국한테 밀려 2위한 것으로 된다. 2020 도쿄 올림픽 때는 줄곧 선두를 달리다가 마지막날 미국의 금메달 러쉬로 인해 종합우승을 놓치고 말았는데, 이렇게 되자 그동안 별개로 취급하던 홍콩과 대만의 메달까지 합치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4.1. 탁구
탁구는 명실상부 중국 스포츠의 제 1순위 자랑거리이자 중국 스포츠를 대표하는 종목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인 실력과 인프라를 자랑한다. 사실상 브라질에 축구가, 대한민국에 e스포츠가 있다면 중국에는 탁구가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생활스포츠로써, 프로스포츠로써의 인프라 모두 그 어떠한 다른 국가의 추종을 불허한다.중국에서 탁구는 생활 스포츠를 넘어 그냥 생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61], 올림픽에서도 결승전에 중국선수 두명이 오르는 경우는 흔할 정도다. 당연히 탁구 세계 랭킹 1위는 으레 중국 선수이며, 중국 탁구 국가대표팀에 들어가는 난이도는 한국 양궁 국대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거나 어떻게 보면 훨씬 어려울 정도라 중국인들이 타국에 귀화하는 사례까지 나올 정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탁구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것도 한국의 양궁 급으로 어려워서 국가대표로 나서기 위해 다른 나라로 귀화하는 선수들도 많다.[62]
올림픽 탁구에서 중국 외의 나라가 금메달을 딴 사례가 1988 서울 올림픽 때의 유남규, 현정화-양영자,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얀오베 발드네르, 2004 아테네 올림픽 때의 유승민,[63] 2020 도쿄 올림픽 때의 미즈타니 준-이토 미마 정도에 불과하다.
4.2. 농구
중국 프로농구 리그인 CBA는 오늘날에도 중국 스포츠 중에서 관람 스포츠로서 가장 많은 인기를 자랑하는 종목이다. 중국의 엄청난 농구 열기와 막강한 자본력이 더해져서 아시아에선 최고의 프로 농구 리그로 평가받고 있다.이 중국 시장 덕분에 NBA가 전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스포츠 리그 2위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NBA 드래프트 최초로 1위 지명을 받은 아시아 선수인 야오밍의 입지는 중국에서 엄청나다. 가능성을 본 NBA에서도 중국에 특별 이벤트 경기를 벌이러 NBA 에이스들을 데려가기도 한다. 이런 농구 붐에 자국 농구화 업체들도 돈을 많이 벌어서 그런지 NBA 스타들과 계약하기도 한다.[64] CBA의 경우 결승전 최고 시청률 30%를 찍는 경우도 종종 있다. 덕분에 중국에서 운동 좀 한다는 사람들도 농구는 기본적으로 깔고 들어간다.[65] 아시아권에선 단연 원탑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데 아시아 농구선수권 대회만 하더라도 무려 15회 우승이라는 놀라운 실적을 거두고 있다. 2위인 필리핀이 5번 우승, 3위인 이란이 3번, 한국과 일본이 2번 우승한 다른 아시아권 국가들의 우승기록을 합치더라도 중국을 따라가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세계무대에서는 다른 아시아 팀들과 같이 약체라 FIBA 농구 월드컵 조별리그 통과도 어려운 국가들 중 한팀에 불과하다. 2019년에는 자국에서 농구 월드컵을 개최하기도 했지만, 홈 텃세를 살리지 못하고 예선 1라운드에서 폴란드, 베네수엘라에 패배하며 순위결정전으로 추락, 이후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승리했지만, 나이지리아에게 또다시 패배하며 올림픽 직행 좌절과 동시에 최종예선으로 추락, 농구판 미네이랑의 비극을 거하게 경험하며 씁쓸하게 마무리했다.[66]
중국 농구 국가대표팀 항목도 참조.
4.3. 축구
미국과 더불어 하계 스포츠 최강자인 중국에게 있어서 아주 치명적인 약점이자 아킬레스건이 바로 축구이다.[67] 중국은 스포츠 인재나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들 중 축구를 고르는 사람은 거의 없고, 다 탁구[68]나 다이빙, 배드민턴, 수영, 쇼트트랙 등 다른 종목으로 간다. 심지어 "중국에는 메시급 재능이 농사짓고 있거나 탁구치고 있을거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다. 전세계에서 하계 올림픽과 월드컵에서의 성적이 가장 극과극 으로 정반대인 나라 이다.하지만 메시 급의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말과 메시 급의 선수가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소리다. 축구 자체를 즐겨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 많은 사람 가운데에서 인재를 키워서 뽑는 일은 별개의 일인데 중국의 현 축구 인프라는 메시 급의 재능을 가진 사람을 메시 급 실력을 지닌 선수로 키우기에 부족하다. 특히 유소년 축구의 경우에는 기반이 너무도 취약하여 축구를 즐겨하는 사람들이나 축구를 즐겨보는 사람들이 엘리트 선수층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10년대 후반에서야 유소년 축구 육성을 시작했지만 아직도 멀었다. 즉 중국의 축구는 엘리트 선수층도 많이 부족하고 생활스포츠화도 되어있지 않으며 인프라도 구리다. 중국 축구가 부진하는 원인을 묻는 사람들에게 '브라질이 왜 탁구를 못하는가?'라고 되묻는 것과 똑같다.
미국이나 러시아 등도 축구가 다른 종목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긴 하지만, 두 나라 다 FIFA 월드컵 준결승에 진출한 적도 있을 정도로[69] 단 한 번이라도 강력했던 적이 있었던 반면 중국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만 유일하게 지역예선을 통과했을 뿐이며[70] 그나마도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이 득점도 못하고 3전 전패한 유이한 팀이었다.[71] 재미있게도 중국이 속한 C조는 중국을 몇 골 차이로 이겼느냐에 따라 순위가 갈렸다. 사실 아시아 기준에서 보면 한국, 일본, 호주나 사우디, 이란보다는 못해도 중상은 가는 수준으로 아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봐야 아시아권에서의 얘기고 타 종목들이 세계 정상급 팀과 겨루고 올림픽 메달도 따는 동안, 중국 축구는 올림픽 메달이나 월드컵 우승은 커녕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도 밀려 탈락하는 수준이니 욕 나오는 것은 당연해서 중국축구협회는 중국 내에서 무능의 대명사로 욕을 쳐먹는 단체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에는 중국에서 떠오르는 스포츠로 중국의 인기 있는 스포츠 중 하나였다. 축구굴기로 일단 중국 슈퍼리그에 투자자가 많이 모여서 쇼미더머니로 무장하고 있다. 쇼미더머니에 힘입어 광저우 헝다가 2013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거두기도 했다.[72] 중국의 막대한 시장성 덕분에 FIFA에서 밀어주는 것도 있어서 FIFA 월드컵을 개최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월드컵 개최에 따른 효과를 알면서도 그동안 자신감이 없어서 망설였으나 자신감이 갑자기 폭발했는지 2026년에 월드컵 개최를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앞서 말한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문제점 때문에 FIFA 관계자들로부터 호감을 살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FIFA가 월드컵 개최를 할 때 중요시하는 부분이 개최국의 축구 인프라 확대라는 것을 생각하면 중국이 월드컵 개최에 성공하면 상당한 발전을 이룩할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으나 연이어 터지는 축구협회의 엄청난 병크에 결국 2026 월드컵 개최를 스스로 포기했다. 한편 2010년대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중국의 슈퍼머니가 유럽 축구계에도 큰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는데, 특히 2016년에는 중국의 거대 기업들이 AC 밀란 인수[73]나 인테르의 소지분 확보[74] 등 유럽 구단의 운영에도 큰 관심을 보이는 모습이다. 그러나, 2020년대 터진 자국리그 구단의 연이은 해산으로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구단주인 쑤닝 그룹이 소유하던 장쑤 쑤닝은 중국 리그를 우승하고 다음 해, 갑자기 구단을 해산버렸다. 어쨌든 축구에 돈을 쏟아부은것이 축구장같은 인프라 확충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정작 선수를 육성하는 것보다 현질이 우선시되면서 정작 기초적인 선수육성시스템은 여전히 허약하다는 평을 들었고, 2022 월드컵 예선에조차 베트남에게까지 3-1로 패하여 동남아 사상 첫 월드컵 최종예선 1승 제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축구선수 육성 시스템부터 손을 보자는 목소리가 높다.
국대에 대한 건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조.
4.4. 바둑
바둑의 경우 오랜 전통 문화니 예전부터 즐기던 놀이였으나, 프로기사는 201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중국에서도 PC 게임 보급 등으로 바둑 인기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비율이 줄어도 압도적인 인구와 내수 덕분에 즐기는 인구 절대치는 여전히 기본 수천만명은 되기 때문에, 세계 대회 16강쯤만 되어도 중국 기사들이 절반 이상을 포진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중국 기업이 스폰서가 되는 세계 기전도 많이 열리며, 바둑리그도 활성화되어 있어서 주 라이벌이기도 한 한국의 정상급 기사들이 중국 바둑리그에 용병으로 출전하기도 한다.인구가 많다 보니까 국민 인기 스포츠라는 오해도 있지만, 2013년 기준 중국에서 바둑을 둘 줄 안다고 응답한 비율을 환산하여 추산한 바둑인구는 8,800만 명 수준이다. 이것도 한반도 인구보다 많은 엄청난 수지만, 중국 인구에 비하면 6%밖에 안 된다. 한국갤럽에서 2013년 조사한 바둑 둘 줄 아는 혹은 관심이 있는 한국인들을 물은 조사에서 25% 정도가 긍정한 것과 비교해보면 꽤 차이가 난다. 한국 역시 연성층이나마 바둑 인구가 약 1,000만명은 된다는 소리지만, 남성과 중노년층에 비율이 몰려있다는 약점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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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국민 스포츠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위상 때문인지, 중국 바둑 기전은 엘리트 스포츠인 국제 기전은 많지만 국내 기전은 일본 바둑 기전보다 적다. 다만 중국바둑갑조리그의 위상이 넘사벽이라 개인기전의 부족을 리그전으로 어느정도 만회하고 있다.
4.5. 그 외의 스포츠
역도에서 세계적 강국이다. 올림픽 역도에서 현재는 없어진 소련 다음으로 역대 메달 집계 2위이며, 남성 세계 신기록의 절반, 여성 세계 신기록의 대다수가 중국 소유다. 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해외 유튜브권에서 올라오는 스퀏 데드리프트 혹은 역도 하이라이트에 중국 선수가 굉장히 많이 등장하기에 그 위상을 대충 짐작 가능하다. 항우장사, 역발산기개세 같은 역사들의 괴력을 좋아하던 문화가 있어서 그런지도.올림픽 메달 수도 중국이 압도적으로 가고 있다. 중국의 무솽솽과 탕궁훙은 장미란의 라이벌이기도 하다.배드민턴 역시 강세를 보이는 종목으로 역대 올림픽에서 가장 메달을 많이 따고 있는 나라가 중국이다. 실제 남/여 단식, 복식, 혼성 모두에서 세계 최상위권 랭킹 선수단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외에도 제2세계가 체조에서 강세를 보이는데 여기에 중국이 빠질 수 없다. 이미 트램펄린에서 둥둥 등의 스타 선수를 배출한 바 있다.
올림픽 사격, 다이빙, 태권도, 쇼트트랙에서 역대 메달 집계 2위이다. 특히 여자 쇼트트랙의 경우 양양(A)[75], 왕멍, 저우양 등이 세계무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사례.
육상의 경우에도 꽤 강한 면모를 보인다. 쑤빙톈의 100m 최고 기록은 9.83초로, 2016 리우 올림픽 기준 금메달이었던 우사인 볼트와 겨우 0.02초 차이. 이는 비흑인계 인종 중 최강이며, 현재 중국 한 국가가 백인 선수 전체의 역대 10초 미만 선수 숫자인 3명보다 딱 한명 더 적은 2명의 선수풀을 보유 중이다. 같은 동아시아의 일본은 현재 100m 10초대 미만 선수를 3명 보유중. 비록 도핑 문제로 시끌시끌 했지만 1980년대 말~1990년대를 주름잡았던 육상팀 '마군단'이 있었고, 2000년대에는 110m 허들의 류상이 유명하다. 여자 중장거리 종목에선 왕쥔샤를 포함한 선수들이 오랜기간 세계기록을 독식해왔다. 이 중에, 3000m기록은 아직도 왕쥔샤가 가지고 있다.
피겨 스케이팅 페어 종목도 유명하다. 2000년대부터 국제대회를 휩쓸고 다녔고 밴쿠버 때 쉔 슈에/자오 홍보 조가 우승을 하며 50년 만에 올림픽 단상에서 러시아를 끌어내렸다.
여자 테니스의 경우 리나 같은 선수가 세계 대회 우승하면서 개인 구기 종목은 확실히 무시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 외에도 필드 하키 등의 여러 종목에 막대한 투자를 하면서 상당한 발전을 하고 있지만 아직 강호라고 불리기는 조금 거리가 있다.
수영에서도 세계 정상급 선수를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 2000년대부터 2004 아테네 올림픽 여자 평영 금메달리스트 뤄쉐줸을 필두로 2007 멜버른 세계선수권 남자 접영 200m 은메달리스트 우펑, 2008 베이징 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 은메달리스트 장린 등의 선수가 나왔으며[76] 2010년대 들어서는 간판스타 쑨양을 비롯해 예스원(2012 런던 올림픽 여자 개인혼영 2관왕), 자오류양(2012 런던 올림픽 여자 접영 200m 금), 쉬지아위(2016 리우 올림픽 남자 배영 100m 은), 푸위안후이(2016 리우 올림픽 여자 배영 100m 동), 왕순(2016 리우 올림픽 남자 개인혼영 200m 동) 등의 유명 선수들이 계속 배출되고 있다.
러시아의 삼보, 태국의 무에타이 영향을 받은 현대적 군용무술 산타가 있다.
2010년대 들어서 종합격투기 종목에도 꽤 진출하고 있다. 장웨이리가 UFC 여성부 전 챔피언이었고 송야동 , 아오르꺼러 등등. 인구나 올림픽 성적에 비하면 아직 세계 정상급은 아니지만 아시아에서는 좀 잘 하는편이다.
아이스하키는 여자부는 비교적 강세인 편으로 우리나라가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이긴것[77]을 제외하면 실력차가 넘사벽이다. 반면 남자부는 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에 참가하던 시절 노르딕 바이킹스 팀이 05-06 시즌 한 시즌만 참가 한후 탈퇴, 차이나 드래곤팀이 2007에서 2017까지 참여했으나 팀 자체가 국가대표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2010~2014 사이에 있던 4시즌에서 무려 182연패[78]라는 초라한 성적과 승점자판기라는 별명을 남긴채 팀이 해체하여 현재 아시아리그에는 중국팀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현재는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출전을 고려해 2016년부터 KHL에 참가 중인 쿤룬 레드스타가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고있다.[79] 2022 베이징 동계패럴림픽에서 파라 아이스하키가 대한민국을 꺽고 패럴림픽 사상 첫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여자 배구도 꽤 한다. 중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 참조.
야구는 축구와 마찬가지로 철저한 비인기 비주류 스포츠다. 중국의 인기 스포츠 20위 안에도 들지 못할 만큼 야구의 인지도는 정말 상당히 낮아 당연히 실력 또한 전세계 최약체 국가 중 하나로 애초에 야구의 룰과 규칙들조차 제대로 모르는 중국인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체 야구 하는 나라가 드물다 보니 아시아권에선 격차는 좀 심하게 나지만 한국, 일본, 대만 다음가는 나라 정도엔 속하기 때문에 WBC를 비롯한 국제대회에 자주 참가하고 생각보다 선전하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이 인프라나 관심도에 비해서 좋은 성적을 낸다기엔 아시아에서는 이러한 중국 야구보다도 여건이 나은 나라가 일본, 한국, 대만 외에는 없다. 즉, 중국의 야구 인프라는 그래도 아시아에서는 4등이고 세계적으로 봐도 15위 정도는 하는 수준이다. 또한 2016년부터 국가체육총국에서 야구 프로화를 추진하면서 2025년에 프로리그를 창설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어 차후 야구 발전이 기대되는 국가이고 실제로 한국인 코치와 심판들을 중국에 초청한다고 했지만, 사실 언제든지 엎어질 수 있는 현재까지 뚜렷한 실체가 없는 상황이다. 중국 야구 국가대표팀 항목도 참조하면 중국 야구 이해에 도움이 된다.
그나마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로 인해 어느정도 관심이 생기긴 했지만 여전히 인지도나 규모면에서 빈약하며 중국야구리그도 발족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2년간 쉴 정도로 협소한 편이었지만, 2014년부터 베이징 소재의 종합스포츠그룹인 헝다그룹[80]의 스폰서로 지원 받아 재개되어서 선수들에게 일괄적으로 지급되는 월급이 한화 17만원(1,000위안)에서 34만원으로(2,000위안) 2배로 늘어나 대우가 개선되었다. 그러나 다시 2016년부로 중지되었고 2019년에 다시 재개 되었으나 여전히 선수들의 급여는 한화로 17만원(1,000위안) 수준으로 이마저도 시즌 중인 2달간만 지급받기 때문에 선수들의 연봉은 500만원이 아닌 50만원도 채 되질 않고 그렇기에 99% 투잡을 병행하고 있다.
모터스포츠 또한 점차 발전해가고 있다. 게다가 2022년, 중국 최초의 포뮬러 1 드라이버인 저우관위[81]를 배출해냈다.[82] 또한 중국 그랑프리는 2000년대부터 코로나 19 전까지 꾸준히 F1 캘린더에 추가되던 그랑프리였다. 이후 2024 시즌부터 다시 개최중이다.
e스포츠의 경우 한국에 완벽히 밀렸으나, 중국 특유의 압도적인 자본력과 선수층으로 2018년부터는 한국과 1위를 다툰다.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83], 클래시 로얄 월드 파이널에서 우승하고, 아직 한국이 건재한 오버워치 월드컵에서도 준우승하면서 맹추격중이다. 그 외에 많은 e스포츠 대회 게임들로도 한국과 막상막하로 박빙을 겨루는 수준이 되었지만 스타리그 만큼은 전혀 한국 발뒤꿈치지도 쫓아오지 못한다.
5. 문화 콘텐츠
5.1. 동만(动漫: 애니메이션(动画片)&만화)
5.2. 게임
한국과 마찬가지로 e스포츠에서 나름 인지도를 구축하고 있는 나라다. 특히 한국이 스타크래프트를 시발점으로 e스포츠 생태계를 구축해나가기 시작했다면, 중국은 워크래프트3를 시작으로 e스포츠 문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국 워크래프트가 보여준 행보는 가히 파격적인데, 중국 오크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FLY100%, 루 웨이량은 전성기 당시 팬카페 가입자수 100만을 찍으며 국민적인 스타에 오르기도 했다.플라이 이외에도 인피, TH000, 스카이 등의 슈퍼스타들이 있었지만, 단연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선수는 한국 출신의 Moon, 장재호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에 외국인 프로게이머로 초대되었을 정도로 높은 인지도를 가질 정도였으니 당시 워크래프트가 중국에 미쳤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한류스타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인기와 함께 중국은 세계 최대 e스포츠 시장으로 성장했고, 중국 당국의 게임에 대한 가혹한 규제와 다르게 e스포츠 산업은 공산당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주며[84] 각 지역의 홈구장이 생기는 등 점점 메이저한 스포츠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17년 10월에는 서버를 닫은 테일즈런너 중국 서버를 2023년에 재서비스를 하는 등 부활 시도를 보이고 있다.
2024년 8월, 3인칭 액션 RPG인 검은 신화: 오공을 출시하여 세계적인 관심과 화제를 모았다.
5.2.1. 모바일 게임
2010년대 들어 중국산 모바일 게임이 한국에도 수입되어 들어 오고 있다. 또한 만화/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하거나 2D~2.5D 풍의 일러스트를 사용한 이차원 게임이 많아지기도 했다.#한국,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루팅, 커스텀롬, 에뮬레이터에 대해 관대한 편인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85] 현재까지 이 게임들처럼 단순 루팅조차 차단하는 사례가 아직 없고,[86] 본가에서는 단순 루팅조차 차단하는 일본 게임들도 중국에 와서는 단순 루팅 정도는 허용하는 쪽으로 바뀌며, 중국산의 경우 아예 에뮬레이터를 공식 지원하는 경우도 흔하다.[87] 이런 환경이 조성된 배경은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88]
특히 2020년대 등장한 모바일 게임 원신은 본국인 중국을 넘어서 한국, 일본을 넘어 미국 등의 해외 국가들로 부터 엄청난 인기를 얻은 이후로 모바일 게임에서 중국의 위상은 높아졌다. 다만 17년대 이후 다수의 모바일 게임이 미소녀 수집형 장르로 양산화 되는 상황인데, 소위 가챠라고 불리는 캐릭터 랜덤박스 시스템을 통해 지나치게 사행성을 조장하거나 퀄리티 높은 소수 모바일 게임들을 제외한 나머지 다수의 게임들은 미소녀 일러스트를 내세운 것 외에는 게임성이 떨어지는 양산형 모바일 게임들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 중국 모바일 게임이 타 게임의 컨텐츠나 일러스트 등을 표절하거나, 중국공산당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으로 게임 내 검열이 존재하는 것도 중국 모바일 게임에서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한정으로 샤이닝니키 한복 사태, Sky - 빛의 아이들 한국문화 갓 왜곡사건 등등. 중국의 한국 문화 예속화 시도에 동의하거나, 중국 시장 및 중국 유저들의 눈치를 보기 위해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게임회사 증가로 큰 논란들이 일어났다.
특히 중화사상에 심취한 중국인들의 민폐와 이기주의, 배타적인 중국의 외교적 행보, 미세먼지 및 코로나 19로 급격하게 높아진 혐중감정이 제대로 맞물려 게임성이 아무리 좋더라도 해당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을 제외하고 다른 게이머들에게 낮은 평가를 받는 것이 흔해지고 있다. 중국 모바일 게임에 대한 리뷰에 적힌 의견글 다수가 중국 게임에 대한 규제 또는 게임 자체를 정부가 금지시켜야 한다거나, 일본 불매운동처럼 게이머들이 중국 모바일 게임을 하지 않아야 된다는 의견들로 팽배해지고 있으며, 극단적인 경우는 해당 게임을 옹호하는 유저들을 짱개, 조선족, 매국노 등으로 해당 게임을 즐기는 국내유저를 비난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5.2.1.1. 목록
- Cheetah Mobile의 게임들: 해당 항목 참조
- Phigros
- The Pascal's Wager: Annunciation: 중국어 타이틀은 帕斯卡契约. TipsWorks[89] 개발, 자이언트 네트워크[90] 유통. 다크 소울 시리즈와 장르적 유사성이 있다. 출시일 미정. 한국어로는 대체로 '파스칼 웨이저'라고 표기하지만 공식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
- 강철의 왈츠
- 기적의 검
- 넷이즈의 게임들: 해당 항목 참조
- 검지영요: 한국에서는 '시그널'이라는 타이틀로 서비스중. 사람에 따라서는 이 게임을 중국 게임이라기보다는 한국, 중국, 일본 3국 합작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 권황98종극지전OL: 한국에서는 핑거팁스라는 곳에서 '더 킹 오브 파이터즈'98 UM온라인 for Kakao'라는 타이틀로 서비스중.
- 기동전대:아이언사가
- 기적난난: 한국에서는 파티게임즈에서 '아이러브니키 for Kakao'라는 타이틀로 서비스중.
- 몽환모의전: 중국에서 랑그릿사 시리즈의 IP를 활용해 만든 모바일 게임.
- 명일방주
- 벽람항로
- 붕괴3rd
- 붕괴학원 2: 위의 붕괴3rd의 전작. 한국에서는 '카와이 헌터'라는 타이틀로 서비스된 적이 있다.
- 빵집소녀: 아래 소녀전선의 프리퀄. 다만 줄거리의 시간 순서대로는 이쪽이 나중이다.
- 소녀전선
- 왕자영요: 한국에서는 넷마블에서 '펜타스톰'라는 타이틀로 서비스중. 단, 한국판의 베이스는 왕자영요 자체가 아니라 왕자영요의 대만판 및 글로벌판인 전설대결(傳說對決, Arena of Valor)이다.
- 원신
- 전함소녀
- 창람경계: 한국에서는 플레이위드에서 '아홉번째 하늘: 약속과 배신의 이야기'라는 타이틀로 서비스한 적이 있다.
-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
5.3. 영화
5.4. 중국 드라마
줄여서 중드라고 한다.5.5. 중국의 방송
아무리 검열이 심하고 국영방송이 주류를 이룬다고 하지만 각 지역별로 방송사들이 존재하는데다가 각 지역 방송사들 중 메이저급 방송사들은 대륙급의 규모를 자랑하기 때문에 경쟁이 매우 치열하며 중국의 인구수를 반영하듯 세계 2위 급의 방송시장을 자랑한다. 중국의 방송 항목 참조.5.5.1. 중국인이 한국 드라마에서 발견한 독특한 점?
한류가 중국인들에게 소개된 초창기엔 한국 드라마를 보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다른 지역 사람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고, 중국에서도 아닌 경우도 있어서 케바케긴 하다.- 라면을 삶아 냄비 뚜껑에 건져서 먹는다.[91]
- 소주를 마시고 나서는 꼭 "캬~" 하는 소리를 낸다.
- 노래방 장면이 자주 나오고 빈 술병에 숟가락을 꽂아 마이크 대용으로 사용한다.
- 온 가족이 찜질방에 자주 간다. 그리고 항상 그곳에서 삶은계란을 먹는다.
- 체했을 때는 손가락을 딴다.
- 치킨을 시키면 항상 맥주를 같이 먹는다.[92]
- 짜장면 등 현지화된 한국식 중화 요리를 중식으로 인식 못하다 보니, 한국 요리라며 신기해하고 먹어보고 싶어한다.
6. 성문화
과거에 비해 현재의 중국은 성혁명이라고 부를 정도로 성문화의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과 보수주의자들은 이러한 성 개방을 딱히 반기지는 않는다. 매춘과 포르노는 금지되며 공식적으로 경찰의 검열을 받는다. 다만 포르노의 경우에는 검열을 뚫고 엄청나게 범람하고 있고 고위직들이나 돈 많은 기업인들이 개혁개방과 함께 첩을 두는 것도 예삿일이 아닌 취급을 받는다.덧붙여서 2010년대 중국의 소득 수준이 크게 늘어난 영향으로 해외 여행객들도 늘어나며 해외 성매매도 상당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중. 한국에서 포르노가 법적으로는 금지돼 있지만 볼 사람은 어떻게든 다 보는 것과 똑같다. 또한 성교육과 성문화에 대한 인식도 나이 많은 세대와 젊은 세대가 큰 차이를 보인다. 동성애를 비롯한 성소수자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부정적이나 홍콩, 대만의 개방된 동성애 문화의 영향도 있고 인구 비율에 따라 동성애자 숫자가 워낙 많기 때문에 동성애자들의 목소리도 점점 나오고 있다. 양성평등 역시 점차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실, 중국은 정치적으로 너무 경직된 동네라 중국 공산당에 위협이 되지 않는 사람들의 사생활까지 일일이 간섭하려 하면 너무 과정이 번거롭고 반발이 심하게 나오면서 사회 불만이 커지기 때문에 그냥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언론이나 방송 같은 것만 탄압하면서 현실은 암암리로 막지 않는 것에 더 가깝다. "이런 것까지 막아서 뭐하나?" 같은 태도다.
그리고 중국 지역별로 성문화 편차가 심한편인데 상하이, 베이징 같은 해안 1선 도시와 주변지역, 2, 3선 도시들은 성에 개방적이지만, 내륙과 농어촌 지역 등 낙후지역에 가면 성에 보수적이며 여성들의 혼전순결 의식이 높은 편이다. 중국은 공산화 이전부터 성문화가 유연한 편이었다. 중국은 한국처럼 유교가 교조화 되지도 않았고 도교와 불교가 어느정도 유교를 견제했었다. 도교의 음양오행설을 받아들여서 성관계은 음과 양의 조화로 생각을 했었고 배고프면 밥먹고 똥싸고 싶으면 똥싸는 것처럼 성관계는 자연의 이치라고 생각했었다. 중국 황실과 지배계층은 소녀경, 현녀경 이라는 성교육 교재가 있을 정도로 성에 대해 대체로 유연한 편이였다.
그렇지만 성에 대해 마냥 관대했냐면 그런것도 아닌것이, 1950년대에서부터 1980년대까지는 대중매체에서 성에 대해서 보수적으로 다루었고, 엄타 시기에는 빨간비디오를 봤다가 감방에 갔다는 웃지못할 일들이 벌어졌다. 사실 성에 대해서 관대해진 것은 2000년대 이후의 일이라고 봐야된다.
중국은 혼전 동거가 한국처럼 많은 반대를 받지 않으며 어릴 때부터 남녀와 어울리는 것을 터부시하지는 않았다. 중국인들은 타지 출신이 많아 부모의 영향이 대체로 적기 때문에 이성교제 하기에 우리보다 훨씬 좋은 편이며, 고향에 애인, 약혼자가 있는 상태에서 타지에서 다른 여자와 사귀거나 동거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고 한다.[93]
7. 문화 검열
중국/문화 검열 문서 참조. 역사적인 사건으로 문화대혁명이 있으며,[94] 시진핑 시대 이후로 주변국이 체감을 할 정도로 심화되고 있다.8. 기타
- 중국 시장, 독특한 현지 특징부터 인정하라! 네오위즈차이나 신동원 지사장
- 중국도 여성이 가느다란 허리를 인증하는 게 유행일 정도로 날씬한 여자를 선호한다.
- 중국 영화계를 휩쓸고있는 인민해방군 소재 작품들. 중국에서 군대 위상을 알 수 있다. 노컷뉴스
- 중국 베이징 스차하이 뒷골목 징산공원에 가면 중국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 중국에서는 주변 사람을 돕지 않는 웨이관 문화가 있다고한다. 연합뉴스 사실 이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도와주었다가 누명을 쓴 사례가 보도되면서 그 영향으로 확산된 것이다. 이건 중국에서도 큰 사회문제로 자리잡고 있어서 당국도 골치를 썩는 중이다.
- 중화사상
- 팬 서비스 문화가 좋지 않기로 유명하다. 유명 인사들의 팬 서비스는 물론 팬 에티켓도 상당히 떨어진다.
9. 외부 링크
[1] 상단에서 왼쪽부터 시계방향 순서로 수호전, 홍루몽, 서유기, 삼국지연의이다. 중국사대기서라고 하면 홍루몽대신 금병매가 들어간다.[2] 명이 망한 이후부턴 본인들이 유교 문명을 대표한다는 이른바 소중화 사상이 강화된다. 물론 그럼에도 청이 강희제 등 명군들이 나오며 원체 기세를 올리다보니 "쟤들 오랑캐긴 한데 그래도 유학도 배우고 능력은 좀 있는듯?"이란 식의 현실적 교류는 이어왔다. 어찌보면 정신승리였지만, 그나마 한족과 달리 조상들의 의/복식이나마 지켜냈다는 처절한 울부짖음이기도 했다.[3] 쉽게 말해 지배층의 피지배층 수탈 결과물.[4] 내수시장이 크다보니 시장 파이는 커지지만 아무래도 해외에선 정치 제도의 후진성으로 인해 은근히 무시당하는 경향이 있다. 근현대 이전 시절로 치면 문명화되지 못한 오랑캐 비슷한 취급 당하는 셈.[5] 사실 간쑤성과 랴오닝성 등 일부 지역들도 과거에는 이민족들의 영향력이 더 강한 지역들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중국 땅이 다 되어버렸다. 심지어 사나운 유목민이 있는 지역도 그들의 극딜을 버텨가며 개척을 상당히 잘 했다.[6] '중국어에도 존댓말의 영향이 강하다.', '중국도 수시로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낼 것이다.' 등. 실제로 중국은 문어체에서는 존댓말이 거의 다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며 제사도 한국처럼 시시때때로, 또는 큰 스케일로 지내는 것이 아니라 정말 가끔 단촐하게만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물론 이는 정복왕조 등 여러 이민족들의 지배기가 있기도 했고, 공산당 체제를 거치며 다시 한번 이전 풍습에 대한 재고가 이뤄졌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7] 애초에 한족 구성원들 다수가 실제 과거 조상들은 이민족이었다 동화된 케이스가 많을 것이다. 애초에 춘추전국시대부터 월나라, 초나라 등은 이민족 취급받다 한화된 케이스다.[8] 2016년 한한령 이후 표면적으론 줄었지만, 내부적으론 여전히 팬들이 있다. 그리고 90년대부터 2016년까지 중국 문화에서 한류는 외국 문화 중엔 (미국 헐리웃 특히 마블 영화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유일한 메이저 문화였다.[9] 서성, '한권으로 읽는 중국문화', 넥서스, 2005, p229.[10] 물론 항목에도 있지만 한푸는 원래 쓰던 단어가 아니라 21세기 들어 만들어진 신조어다.[11] 엄밀히 따지면 정부에서 주장하는 게 아니라, 중국내 분청 등 열렬(배타적) 그들 기준 애국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한국내 환빠들처럼 들어보면 논리가 엉성한게 많다. 항목도 참조.[12] 한푸(漢服)와 한복(韓服)에서의 한은 한자도 다르다. 이는 한족과 한민족의 한이 다른 것과도 같긴 하다.[13] 그래서 이 당시에는 중국인이 북한에 방문하면 집크기가 컸다고 느꼈다고들 한다. 사실 북한도 전후기때인 1950~60년대에 지었던 집들의 크기가 10평 이하로 좁았던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1970년대에는 소련 브레즈네프카 아파트의 영향을 받아 층수와 집 면적을 늘렸기 때문에 북한의 평균 주거면적이 중국보다 크게 넓었다.[14] 비슷하게 구소련권 국가들이나 동유럽 국가들도 공산권 시절에 집을 싸게 임대시켜놓았고, 공산권 붕괴 이후로는 이런 임대주택들을 싼값에 기존 임대인에게 불하시켜놓았기 때문에 주택 자가보유율이 높은 편이다.[15] 홍콩의 부동산이 세계적으로 비싸기로 악명 높은 것과 정반대로 홍콩의 모든 땅은 홍콩 정부의 소유다. 단지 세금 확충용으로 토지를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보니 부동산 가격이 세계적으로 비싸졌을 뿐이다.[16] 게임이나 만화 등의 서브컬처 쪽과 연계되어있는 음악이 많아서 중국 내에서는 고풍곡이 약간 오타쿠스러운 장르로 여겨지는 듯하다.[17] 유튜브에 古風으로 검색하면 많이 나온다. 동영상에 중국풍 일러스트 나오면 100%다.[18] 한국으로 치면 등산카페에서 활동하는 것과 비슷하게 취급된다 보면 된다.[19] 겨울이 춥기로 유명한 러시아에서도 겨울방학은 1개월 안팎으로 매우짧고 여름방학은 3개월로 긴 편이다.[20] 현재 중국이 티베트를 지배하다보니 반대로 티베트인들의 영향으로 인한 여파도 있겠지만, 몽골인의 원나라, 만주족의 청나라도 티베트 불교를 믿기도 했었다.[21] 티베트 불교를 신봉하는 한족 인물로는 장위안이 있다.[22] 다만 유교가 나라 망쳤다는 얘기는 아편전쟁 등으로 청나라가 휘청인 19세기부터 나오던 소리긴 했다.[23] 종교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일', 예를 들자면 집이 먼 사람들을 위한 차량 기사 - 師父(시푸)라 하며, 한자가 무술하는 그 '사부' 맞다 - 로 "고용"하는 것은 가능하며 실제로도 그렇게 한다.[24] 지금도 귀신이나 유령을 다룬 매체들이 종종 검열된다. 이에 대해 중국에서는 "중국에는 귀신이 없다. 공산당이 다 잡아갔기 때문"이라 비꼬기도 한다.[25] 불교는 외래 종교임에도 워낙 역사가 오래 돼서 자국 종교 비슷한 취급을 받긴 한다. 실제 대승불교화 되기도 했고.[26] 중국의 어마어마한 인구를 감안하면 이 정도도 매우 많은 거다.[27] 다만 부활절도 기리는 등 예수 부활도 다 설교하는 교회도 많은 거 같다.[28] 이것도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종종 보인다.[29] 물론 그렇다고 삼자교회가 이단, 사이비는 아니며 부활, 재림을 포함하여 제대로 된 교리를 전하는 삼자교회도 많다.[30] 영국령이었던 홍콩에는 성공회를 비롯한 개신교 / 포르투갈령이었던 마카오에는 가톨릭[31] 이 사람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미군의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성경의 구절을 읊으며 소감을 표현했다(...)[32] 이 분은 중국공산당의 요직에 있었다. 1981년 타계.[33] 예를 들어 소림사 등.[34] 전술했듯 겉모습은 다른 한족들과 전혀 다를 바 없어 자기가 말 안하면 모른다. 류시시가 대표적인 회족 여배우인데 이름도 그렇고 배경지식이 없으면 회족이라고 생각이 안들 것이다.[35] 칭하이성과 간쑤성, 쓰촨성 그리고 티베트 북부 등에 정착한 튀르크계 민족으로 겉모습은 역시 한족이나 회족과 별 다를바 없고 종교와 언어로 구분한다.[36] 물론 한족으로 동화된 위구르인들도 적지 않은 편이다. 특히 베이징, 상하이등 신장에서 떨어진 대도시에 사는 위구르인들은 한족처럼 꽤 동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37] 심지어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인 하마스에 다에쉬가 자살 폭탄 테러를 일으켜서 비웃음을 산 적이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민족주의에 부정적이기 때문에 민족주의 성향의 독립 운동 계열과 충돌하는 것이다.[38] 전능하신 하나님의 교회의 약자로 서울 구로구에 교회가 있다. 이들의 교회는 정통교회와 달리 십자가상이 없어 구분 가능하며 집회 풍경도 평균적인 예배나 미사와는 다르게 괴이하다! 맥도날드 살인사건이라는 끔찍한 사건으로 국내에 알려져 있다.[39] 물론 버는 돈이 하도 적다보니 별수없이 야근하는 사례도 없지는...아니 상당히 많다. 특히 임금수준이 오르기 이전에 공장에서 일할 때는 더더욱 그랬고, 악덕기업들이 이를 악용했다.[40] 八이 부채꼴,즉 뻗어나가는 모양이어서 사업이 잘 풀린다는 의미도 있다.[41] 어지간히 좋아했던지 무려 2008년 8월 8일 8시 8분 8초에 개막식을 했었다.[42] 이 때문에 한국의 광복절은 2004 아테네 올림픽에 이어 2번 연속으로 올림픽 기간에 끼게 되었다.[43] 4층표시를 하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4로 끝나는 층수를 전부 건너뛰고, 13층마저도 건너뛴다.14층은 G로쓰기도 한다.[44] 이렇게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대부분 망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중국을 잘 모르고 한국식으로 덤볐기 때문이다.[45] 손목시계는 手表라고 한다.[46] 정치이념과 구조, 지역과 기후 등 대륙과 여러모로 다른점이 많지만 대만도 한족이 주류이니만큼 상당수의 관습과 문화를 대륙과 공유하고 있다.[47] 물론 이는 문화 차이라기보단 개인차일 수도 있긴 하다. 애초에 친분이 생기면 어느 나라 사람이든 나쁠건 없으니..[48] 그냥 모양만 남겨놓은 게 아니라 실제로 사람이 생활한다.[49] 최근에는 일부 서구권 국가들의 문화에서도 아예 실내화건 뭐건 벗고 사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50] 공공장소에서 누군가 대놓고 폭행이나 살인을 당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가는 사건이 여러차례 벌어져 사회문제가 되었을 정도이다. 물론 이 사건의 경우에는 단순히 무관심해서라기 보다는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었다가 오히려 뒷통수를 당해서 처벌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기사로 널리 퍼지면서, 사람들이 남을 도와주었다가 오히려 처벌받을까봐 외면하는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애초에 중국 문제라고만 하기도 뭐한게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기사는 종종 생산된다. 물론 특이한 일이기에 기사화된다는 점은 고려하자.[51] 만약 원청업체 직원이 하청업체 직원에게 욕설과 갑질을 한다면, 중국업체는 참지 않고 계약을 파기할 가능성이 높다.[52] 이러한 점은 중국에 공산당이 들어선 이후 현대 중국에서만 이렇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고사성어, 사자성어, 속담만 봐도 이게 오늘날의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한족은 원래 충과 효 등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으며 개개인의 야심적 성향이 강했다. 오히려 한국은 신라 골품제부터 시작해서(고구려, 백제도 비슷한 단계적 신분제가 있었다 한다.) 조선까지 계급, 나이, 신분 등에서 철저하였으나 중국은 사람들이 숭배하는 영웅들부터가 출신이 노예라도 주인이 선을 넘어서 기분에 거슬리게 말하면 대륙의 기상으로 죽이거나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황제나 왕, 혹은 번왕까지도 해먹었다. 반대로 생각하자면 하도 중국인들이 그러니 좀 억제해 안정성을 찾으려 각 왕조들이 유가적인 정책을 폈다고 볼 수 있으며, 유가사상이 국가적 사상이 되기 전에 채택된 사상이 법가인 데에도 이러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53] 문화상 과거부터 남의 눈치나 보는 행동을 소인들이나 하는 일로 생각해서 대인이라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는 게 당연하다는 사상이 있다. 그러나 교육 수준이 높은 홍콩, 마카오, 대만 등에서는 이러한 문화가 많이 희석되어 개방적이고 자유로우면서도 기본 에티켓은 잘 지킨다.[54] 진짜 공산당의 입장에 동조하는 경우도 있고(이는 어릴 때부터 친중공적 교육을 세뇌 받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소리다. 이는 사실상 거의 전세계 모든 국가 교육 시스템의 맹점이기도 하다.), 함부로 개인적 생각을 꺼냈다가 뒷감당이 안 될까봐 그러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국민성 개그에서 정치에 관련된 질문을 할 경우 중국인들은 "난 고국에 가족이 있소"라는 답변을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55] 물론 중국에서도 꽌시로 넘어가는데에는 일선이 있고, 그걸 넘어버리면 가차없다. 톈진 취안젠의 모기업인 취안젠 그룹이 어쩌다 망했는지 생각하면 쉽다.[56] '붕우유신('친구 사이의 도리는 믿음에 있다' 라는 삼강오륜의 한 인륜)' 할 때 그 '붕우' 다.[57] 번역하자면 '새 친구'[58] 번역하자면 '좋은 친구'[59] 번역하자면 '오랜 친구'[60] 단, 개방 이후 다른 나라 문화의 영향으로 이 단계에서도 물건을 쓸 때 허락받는 걸 예의로 여기는 새로운 문화가 생기기도 하고 있으니 약간 주의할 필요가 있다.[61] 오죽하면 외국 대학생들이 중국으로 유학이나 교환학생을 갔을 때, 전공을 불문하고 탁구 정도는 마스터해와서 고국에서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상대로 양학을 펼친다는 우스갯소리가 과언이 아닐 정도.[62] 201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대한민국 여자 탁구 간판 국가대표로 나서고 있는 전지희가 그런 케이스며, 전지희 외에도 당예서, 최효주, 이은혜, 주천희 등 많은 중국 선수들이 한국으로 넘어오고 있다. 유럽 쪽으로 귀화하거나 이민을 가 선수 생활을 이어가며 국가대표로 나오는 선수들도 많다. 니 시아리안처럼 60대에도 룩셈부르크 국가대표로 나오는 선수가 있을 정도. 유럽 국적 탁구 선수 중 중국 성을 쓰는 선수가 상당히 많은 이유도 이 때문.[63] 무려 중국의 왕하오를 꺾었다.[64]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클레이 탐슨은 ANTA와 계약했는데 이 때문에 NBA 갤러리에서는 오프시즌에 중국에 놀러간다고 놀린다.[65] NBA가 공식 웨이보를 개설하고, 공식경기와 프리시즌 투어 등을 중국에서 하면서 지속적으로 중국을 관리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66] 농구 월드컵에 참가한 아시아 국가대표팀 중 가장 성적이 좋은 1팀이 올림픽 본선에 직행한다. 이란이 필리핀을 여유있게 꺾으며, 올림픽 직행 티켓을 따냈다.[67] 중국이 그나마 잘하는 농구는 높이의 스포츠이기 때문에 약팀의 선수들이 미치지 않는 이상 큰 이변이 없는 종목이다. 하지만 축구는 '공은 둥글다'라는 축구 격언에서처럼 얼마든지 약팀이 강팀을 잡을 수 있는 이변이 속출하는 종목으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중국은 태국에게 1:5로 참패하는 등 축구에 있어서는 여전히 못한다는 말을 듣고 있는 중이다. 같은 동북아 계열인 한국이나 일본은 아시아에서 강호인데다 국제대회에 나가서도 선전하고 있는데 중국도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음에도 저러니 희한한 일.[68] 특히 탁구는 거의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생활스포츠로 즐기는 종목이며 그 인프라도 어마어마한 수준이다.[69] 미국은 첫 대회인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에서, 러시아는 소련 시절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에서 각각 준결승에 진출했다. 그런데 둘 다 공통점이 있었던 게 둘 다 그 대회 준우승국에게 패해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다는 거다.[70] 아시아 강팀들인 대한민국, 일본이 개최국이라, 지역예선에 참가하지 않아서 가능성이 좀 더 높아졌던 덕분인 것도 있다.[71] 중국은 3전 3패 무득점 9실점, 사우디아라비아는 3전 3패 무득점 12실점.[72] 하지만 중국 스포츠의 병폐인 승부조작과 매수가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으며 축구시장에 점점 많은 돈이 쏟아져 들어옴에 따라 더욱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는데 2011년에는 중국 축구협회 간부까지 매수에 얽혀 구속되기도 했다.[73] 그러나 AC 밀란은 2018년 구단주가 빚을 갚지 못해 구단이 파산나버렸다. 결국 다시 팔아야했다.[74] 쑤닝전기가 소지분을 확보했다.[75]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까지 IOC 선수위원을 역임했다. 양양(A)에서 A는 그녀가 태어난 달인 8월(August)에서 따 온 것이다. 양양(S)의 S는 9월(September)에서 따 온 것.[76] 당시 금메달리스트는 박태환[77] 그나마도 승부치기였다.[78] 연장패 및 슛아웃패를 포함한 비공식기록이며, 공식연패는 13-14 시즌 42경기 전패로 최소 42연패다.[79] 허나 이 레드스타팀도 주전은 중국인이 많은 편은 아니다.[80] 광저우 헝다의 모기업인 부동산재벌 헝다그룹이 아니다. 베이징 소재의 소규모 기업이다.[81] 저우관위는 현재 노포인트권에서 루키치고는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82] 이로써 동아시아 3국중 포뮬러 1 드라이버를 배출하지 못한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83] 하지만 한국인 용병 없이는 한번도 이긴적이 없다[84] https://www.yna.co.kr/view/AKR20200818109000009[85]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요즘은 Xposed 정도는 검사해서 차단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앞서 말한 것들에 대해 관대하다고 해서 부정행위에까지 관대한 것은 절대 아니다.[86] 중국 밖에서 서비스하는 경우는 여기에 포함하지 않는다.[87] 주로 앱플레이어에 게임을 끼워넣은 형태로 배포한다.[88] 다만 이 문서(원문은 여기)대로라면 기술적으로 단순 루팅까지 차단은 가능하나 중국에서 루팅이 많이 보편화되어 있어 실제로 시행할 경우 득보다 실이 더 크다고 게임사들이 판단했기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89] 중국 회사다.[90] 정식 사명은 上海巨人网络科技有限公司. 줄여서 巨人网络.[91] 중국의 식사예절은 덜어 먹을 땐 밥 위에다가 덜어먹기 때문이다.[92] 한류의 영향을 받아서 치맥을 즐기는 중국인도 늘어났다. 맥주를 못 마시는 경우는 보통 콜라 등 음료수를 곁들인다.[93] 의외로 사회주의 국가들은 전 인민들의 노동 참여를 독려하고자 남녀가 모두 노동을 하고 남녀 지위가 비교적 평등한 편이다. 그래서 공산 진영이 국영 탁아소는 오히려 더욱 활성화돼 있고 서방 진영인 한국, 일본이 탁아소 부족난을 겪고 있다. 그리고 그중에는 너무 적나라하지만 않다면 남녀 문화는 개방적인 곳도 있다. 당장 독일도 동독은 낙태가 합법이었고 누드비치도 활성화되는 등 성문화도 개방적이었으며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율도 높았고 남녀 지위가 동등한 편이었다. 오히려 서방 진영인 서독이 낙태를 불법화했고 성문화도 동독보다 훨씬 보수적이었으며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율도 낮았다. 그래서 독일 재통일 당시 적지 않은 수의 동독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이 서독과의 통일을 반대했으며 통일 후에는 통일 독일도 동독처럼 낙태를 합법화할 것을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은 지금까지도 낙태가 불법이다. 사실 영국, 미국, 독일은 청교도 문화권의 영향으로 의외로 프랑스 쪽에 비해 성문화에 보수적인 편이며 서방 진영이 공산 진영보다도 여성 지위 향상에 보수적인 면이 남아 있는 편이라 일본도 서방 진영이지만 아직도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유리 천장이 남아 있을 정도로 보수적인 국가다.[94] 이름 때문에 문화 쪽으로 먼저 생각하게 되지만, 사실 문화대혁명은 권력싸움이 본 의도였다. 문화쪽도 피를 많이 보고 검열도 있었지만 핵심은 그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