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고등학교에 있는 정규 수업보다 먼저 실시하는 비 정규 수업시간. 등교 시간 자체가 0교시에 맞게 정해진 학교는 0교시 시작 후에 등교하면 1교시 시작이 한참 남았는데 지각으로 처리된다.[1]1교시 시작은 8~9시 정도지만 그 전인 6~7시 정도부터 학생들을 교실에 모아 놓고 자습이라던지 영어듣기 평가 수업, 독서 등을 시키는 걸 말한다.[2] 이 때문에 집이 먼 학생은 심하면 5시나 4시에 기상해야 하기도 했다.[3] 이로 인해 아침밥도 못 먹은 채 등교하는 학생도 있었다.[4] 다만 운영주체의 마음에 따라 0교시를 언제부터 시작하는지 제각각 다른 데다 교육 제도가 몇 년 지나면 시도 때도 없이 바뀌었으며 0교시를 없애는 대신 8교시를 신설하는 경우도 있었다. 최악으로는 0교시와 함께 8교시가 있는 경우도 있었고 0교시를 아침 8시부터 시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미국에도 존재한다. 고등학교 학생이 듣는 대학수업 몇몇은(특히 과학 쪽) 2교시 동안 가르쳐야 한다. 물론 대부분인 과학 관련 수업들은 그 추가 시간 동안 실험을 하기도 한다. 0교시의 또 다른 활용법은 몇몇 유연성 좋은 시간표를 제공해 주는 학교들에서 학교를 일찍 하교하기 위해 하거나 듣고 싶은 수업은 많은데 6교시가 부족하면 0교시나 7교시를 듣는다. 어느 한 수업에 0교시 듣는 학생이 적으면 그냥 어찌어찌 수업을 하거나 아예 그 0교시 수업을 없앤다. 즉, "하고 싶으면 해라"는 심정인 셈이다. 서머 스쿨을 모면하기 위한 방법일 수도 있다. 하여튼 자신의 진로 계획에 따라 마음대로 정하는 거다.
일본에서는 주로 '아침 과외'([ruby(朝課外,ruby=あさかがい)])라고 부른다. 전국적으로 일률적으로 시행된 것은 아니며 주로 규슈 지방, 특히 후쿠오카현의 고등학교에서 실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략 1970년대에 법제화되었으며 명목은 교육비 절감이었지만 강제참석인 경우가 많았으며 심지어 야간자율학습이나 보충학습까지 시행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0교시 강요, 학생들의 수면 부족 등이 문제가 되면서 폐지되는 추세다.#
중국에는 2020년대 이전에는 0교시를 하는 학교들이 많았다. 당시의 명목상 등교시간은 초등학교는 7시 30분, 중고등학교는 7시이지만 학교장 재량에 따라 아침에 따로 자습시간을 두는것은 허용했기 때문에 많은 중고등학교에서는 성적향상을 이유로 등교시간을 6시 30분으로 두면서 많은 학생들은 새벽 5시대, 집이 멀리 있으면 새벽 4시대 정도에 일어났어야 했다. 다만 이 때문에 학생들의 수면시간이 부족해지고 학생들의 성적향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표면으로 올라오자 2010년대 후반에는 일부 지역에서 등교시간을 늦추었고 2021년에는 쌍감정책의 일환으로 등교시간이 늦춰져서 초등학교는 8시 20분, 중고등학교는 8시에 등교하게 됨에 따라 대부분의 지역에서 0교시는 폐지되었고 0교시가 존속 중인 학교에서도 낮잠시간을 늘렸다.
2. 현황
1990년대에는 일반계 고등학교는 7시 이전에 등교해서[5] 0교시를 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지만 이해찬 세대를 계기로 폐지하기 시작했으며 남아 있는 곳도 예전처럼 8시 이전에 등교 시각을 잡아 놓는 학교는 드물어졌다.2002년 MBC에서 방영했던 느낌표의 "하자하자!" 코너 중 김영희 PD의 '아침밥을 먹자'에서 0교시로 인해 아침밥을 먹지 못하는 고등학생들의 모습을 보여준 적도 있다. 이 덕분에 2002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고등학교를 다닌 세대는 0교시가 실제로 폐지되는 것을 경험하기도 했다. 지방마다 폐지는 제각각이었기 때문에 한날 한시에 폐지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2002년에는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다. 그러나 1~2년 후부터 슬금슬금 다시 원복하는 사례도 늘어났다.
시행 여부는 학교마다 다르지만 21세기에는 없어지는 학교가 늘어나는 추세다. 공부 시간은 성적과 정비례한다는 편견 및 고정관념에 찌들어 있는 보수적인 사립학교에서는 0교시 폐지를 대비해 교사 보조 아침 자율 학습이라는 꼼수를 쓰기도 한다. 대체로 지방 학교들이 0교시나 야간자율학습을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경기도교육감 임태희는 0교시 시행 여부를 학교의 재량에 맡기겠다고 했다. 다만 경기도 소재 고등학교에서 0교시를 시행하는 경우는 드물다.
3. 실효성 논란
그렇다고 힘들게 시간 내서 할 만한 가치가 있냐고 물어본다면 정말 학구열이 뛰어난 명문 고등학교가 아닌 이상 0교시에 공부하는 학생들은 정규 수업시간에 비해 적을 수밖에 없다.애초에 0교시를 하는 고등학생만 해도 공부를 포기한 학생을 제외하면 야간자율학습이나 학원 등으로 밤에 늦게 자기 때문에 0교시 때 학교에 앉아 있으면 대다수는 수면이 부족하다. 거기다 아직 성인도 아니고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시키면 순순히 들어줄 것 같은가? 이것 때문에 웬만큼 잠이 없는 학생 아니면 잠이 덜 깬 채 문제집을 보며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공부를 억지로 하려고 하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니 뚜껑 닫힌 독에 물 묻히기다. 졸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다가 교사 앞에서 혼나면 서로 손해일 뿐이다. 야간자율학습까지 존재한다면 웬만한 학교의 0교시부터 2교시까지는 학생들 전원이 졸다가 끝난다.
일부 교장 혹은 빡센 류의 교사는 자기 학교 학생은 당연히 안 자고 공부할 것이라고 믿지만 사람이 아닌 기계도 하루종일 굴리면 고장이 나는데 하물며 인간이라면 어떨런지 눈에 보인다.[6] 결국은 애꿎은 교사들만 낭패를 본다.[7] 깨우자니 불쌍하고 안 깨우자니 갈굼이 발생한다. 결국 학생들은 학생들 대로 체력 안배에 실패해서 0교시 때문에 정규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졸고 교사들은 교사들대로 힘들다.[8] 물론 일부 교사들은 이유 불문하고 정규 수업 시간에 졸고 있는 학생들을 갈구기도 한다. 다만 이래도 계속 졸면 결국 교사도 갈구는 걸 포기한다.
이 때문에 야자 감독 관리와 함께 시건방진 초임교사들 군기 잡을 때 써먹기도 하는데 다소 불량해 보이는 초임 교사가 있을 경우 0교시 관리부터 야자 감독관리까지 한두 달 가량 맡기면 훌륭하게 길들일 수 있다고 한다. 초임 교사도 아닌데 0교시와 야자 관리 감독에 자주 투입되는 교사가 있다고 느끼면 더 불쌍한 사람이 사실상 전무하다고 봐야 하는데 그들은 어떤 이유로든 학교 운영진의 눈 밖에 난 인물이기 때문이다. 아침 7시까지 출근해서 빨라봐야 밤 9시, 늦으면 밤 11시에야 퇴근한다.[9]
이런 경우도 있는데 담임 교사가 엄격할 경우 학교 운영진과는 무관하게 멋대로 강제로 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0교시 시행 당시의 학교 고위층과 교육부 공무원들은 연간 노동시간 3,000시간은 당연시되던 시대인 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 학창시절 내지는 청년기를 지냈기 때문에 새벽별을 보고 출근하고 저녁별을 보며 돌아오는 생활패턴에 익숙해져 있고, 새벽에 하는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가 중고생 및 대학생들의 대표적인 알바거리였다.[10] 새벽부터 일을 나가는 노동자나 등교하는 학생들을 무척 대견하게 보므로 0교시는 전시행정으로써 그 효과가 대단하다. 모 고교가 '0교시부터 야간자율학습까지 학생들의 향학열 고취에 힘쓴다 카더라!'는 평가를 얻으면 교육청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고 보수교육감들이 한창 재직했을때는 사실이었다. 학생들이나 교사진이나 힘든 일이지만 윗분들이 보기에는 좋은 일이다. 이 당시는 경제성장을 위해 인력을 갈아야 된다는 개념이 진리였던 시절이었고 산업고도화 이전에는 그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에[11] 노동자들의 과로를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이었고 학생들도 그러한 분위기에 본의 아니게 피해를 본 것이다.
물론 0교시와 야간자율학습이 효율적인지에 대해서는 그 군사정권 당시에조차 상당한 논란이 들끓던 문제였다. 수출증진을 명목으로 연간 3천 시간 노동을 강요하면서 노동자들을 험하게 다루는 것을 권장한 군사정권에서조차도 학생부담 완화를 명목으로 중학교, 고등학교를 평준화시키거나 학생들 대상으로 과외금지까지 시킬 정도로 학생들을 그렇게 빡세게 굴리려고 들지는 않았다.[12] 이는 우선 대도시와 그 근교지역에서 학생 인원 대비 교실 수가 크게 부족하다 보니 한 한급당 학생수가 평균 50명을 훌쩍 넘을 정도로 과밀했던 데다 1990년대 이전에는 알바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아 야간학교 수요까지 상당히 있었으며 학생들이 밤 늦도록 길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것이 좋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연히 당대의 학교 임직원들도 교육부에게 감사를 당하면서 지적받거나, 학부모들에게 항의를 듣거나, 아니면 교사시절부터 내리갈굼을 당하던 사람들이던 만큼 이 사실을 모를 리는 전혀 없었다.
다만 1970년대 이래 명문대에 얼마나 많은 학생들을 진학시키는가가 학교의 위신과 직결된 문제가 된 데다 대략 90년대생들이 학교에 다녔을때까지는 학생수에 비해 교사수가 크게 부족했기 때문에 학생들 하나 하나에게 일일히 신경쓰면서까지 성적을 올리기는 쉽지 않았고 그래서 당대의 학교 임직원들이 학생들의 성적을 올리는 쉬워보이는 방법으로 0교시와 야간자율학습을 실시하는것을 선택했으며 군사정권에서도 그렇게 중고교평준화 및 과외금지를 해도 교육열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야간자율학습을 용인했던 것이기도 했다. 물론 0교시와 야간자율학습 시행으로 학생들의 공부시간이 늘어난다고 한들 일선 교사 입장에서는 안해도 될 야근까지 해야된다는 빡치는 결과가 나오지만[13] 교장이나 교감을 비롯한 임원진들은 어차피 자기네들도 그런 곳에서도 수업 잘만 했다면서 꼰대짓을 시전하기 일쑤였고 문제가 있더라도 교사들을 오래 부려먹으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0교시가 오랜 기간 존속될 수 있었다. 교사들의 업무환경을 생각했으면 0교시가 존재하지 않아야 하지만 사회 전반의 노동관념이 시궁창이라 0교시 시행이 오랜 기간 동안 당연시되었다.
사실 이건 북한에서 1970년대에 협동농장을 중심으로 진행했던 별 보기 운동[14]과 개념도 비슷하고 흡사한 광경이기도 하다. 1990년대까지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는 아주 당연했지만 2000년대 들어와서는 폐지된 경우가 늘었으며 2020년대 기준으로 거의 자취를 감췄고 아직 있는 곳도 예전처럼 7시 30분 이전에 등교시키는 짓거리는 거의 하지 않는다. 많은 분량을 달달 외워서 그대로 옮겨서 문제를 푸는 암기 위주의 학력고사에서 머리를 상시 굴려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대입고사가 바뀐 것도 한몫한다.[15] 인터넷 강의 등의 확대와 그리고 수시 확대와 학종 확대는 더더욱 더 한몫한다. 2020년대부터는 대부분 고등학교에서 이러한 점을 싸그리 무시하고 무조건 양과 체력만 밀어붙이는 것은 바보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도 하고...
상당수의 학부모들은 학생이 집에서 빨리 나가서 늦게 들어오면 그만큼 가사, 여가, 노동에 들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므로[16] 막상 폐지하겠다고 하면 항의전화가 빗발치기도 하며 야간자율학습을 강제로 왜 안 시키냐고 항의하는 성격과 비슷한 경우도 있다. 한편 0교시 하나 때문에 아이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엄마가 일찍 일어나는 것도 편한 일은 아니기도 하며, 0교시를 하면 학부모도 그 만큼 일찍 일어나야된다 경기도에서 0교시 시행여부를 학교장 재량에 맡겨놓았음에도, 0교시가 재확산되지 않은것도 이 때문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다음과 같이 한국의 교육 행태를 꼬집었다. 하루 15시간 중에 0교시와 야간자율학습의 비중이 절대 적지 않다.
한국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교육이 퇴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서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The most incomprehensible thing about Korea is that their education is going backward. Korean students spend 15 hours at school and hagwon to learn knowledge that won’t be necessary in the future or for jobs that don’t even exist. They are wasting precious time.) |
4. 중학교의 경우
설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0교시를 시행하는 중학교도 있다. 영어 듣기평가를 일주일에 한 번씩 실시하고 수행평가에 반영하거나 수학 시험지를 배부해 수행평가에 반영하는 동시에 시험 출제를 거기서 한다. 과거에 실시하던 한 학교는 독서 같은 걸 시키는 것도 아니고 국어, 영어, 수학 등 각 과목의 문제집으로 선생들이 수업을 진행했는데 심지어 음악조차 문제집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과학고등학교나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을 많이 시키는 입시 명문 중학교가 아닌 이상 일반적인 중학교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가는 학부모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칠지도 모른다.5. 초등학교의 경우
일부 사립 초등학교에는 고학년부터 0교시가 있다. 등교 시간은 고등학교와 비슷하다. 그냥 수업한다.일부 초등학교는 아침 자습 시간이 있는데 8시 30~40분 정도에 등교하는 것인데 그동안 독서나 전날 못 했던 것을 한다. 일반적인 초등학교가 8시 50분까지 등교고 9시에 수업을 시작하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지만 초등학생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피곤한 일. 사실 대부분의 초등학교에서도 의무가 아닐 뿐 10분 일찍 등교해 자습하는 습관을 가지도록 지도하고 있다.
6. 여담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들어오면 '0교시가 없다'는 건 물론 '공강'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쁘다고 한다.경기도, 인천광역시는 교육청 지침에 의해 9시 등교제로 빨라도 8시 30분 이전에 등교시키는 학교는 거의 없다.[17][18]
특성화고등학교는 0교시가 있는 학교가 매우 드물고 중학교처럼 8시 20분~50분 등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과거 지방에서는 특성화고등학교도 예외없이 0교시 수업을 시키는 곳이 많았다. 실제로 0교시에 수업을 시키고 6교시 이후로는 기능경기 대회 준비를 시키는 고등학교도 꽤 많았다.
서울 상문고등학교는 1990년대에 학년당 20반, 약 1,000명이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학교에 3,000여명의 학생이 있었는데 가까이 있는 서울고등학교도 학생이 약 3,000명이었다. 등/하교 시간에 교통난이 상당히 컸다고 한다. 이에 시민들이 민원을 제기했는데 상문고와 서울고는 머리를 맞대고 등하교 시간을 조정했다. 본래 두 학교의 등교 시간은 오전 7시였는데, 상문고는 6:20분까지 등교하게 하고 하교 시간을 30분이나 미뤘다. 이에 교사들이 인권을 외쳤지만 교장에게 뺨 맞았다고 한다. 인력공사(인력사무소)의 출근 시간과 비교해 보자. 과거의 고등학교 교사는 야간자율학습 감독까지 해서 극한직업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의 관점을 적용하면 주 52시간 근무를 위반하는 것과 같다. ##
7. 관련 문서
[1] 사실 원래 학칙상 지각의 기준은 학교장이 정한 등교시각까지 출석하지 않은 경우이다. 즉, 무조건 1교시 시작 시각을 기준으로 해야하는 것이 아니다.[2] 문제집을 구매하게 한 다음 시간을 정해 풀 시간을 주게 하거나 하는 사례도 있었다. 물론 요즘엔 이런 경우는 없어졌다.[3] 더군다나 웬만한 시내버스는 첫차가 5시 쯤에 있다. 때문에 이 당시 고등학교를 지나는 노선은 첫 차부터 가축수송을 일삼았다.[4] 정확히는 아침밥을 못 먹는 경우가 먹고 등교하는 경우보다 훨씬 흔했다.[5] 7시 이후로 등교 시각을 잡은 학교도 몇몇 있었지만 늦은 곳도 7시 30분이었다.[6] 소위 효율러나 재능충으로 불리기도 하는 짧고 굵게 집중력과 체력을 쏟아 밀도 있게 공부하는 상위권 학생도 꽤 있는데 이런 류의 학생의 경우 이와 같은 양치기를 강조하는 엄격함 교칙이 오히려 학습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존재한다.[7] 이것 때문에 21세기에는 교사들 사이에서도 0교시 시행을 반대하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물론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교장 혹은 보수적인 교사들에게 이를 주장하면 오히려 반박당하니까 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8] 특히 교문 지도를 담당하는 교사들은 당연히 학생 등교 시간보다 30분~1시간을 더 일찍 출근해야 하는데 이 정도면 늦어도 7시까지는 학교로 출근해야 하며 이는 교사의 수면 부족을 불러와 그들의 업무 능력 역시 저해한다. 더군다나 그 시간에 지각뿐만 아니라 복장과 두발가지고 학생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시간까지 더하면 업무 난도는 더 높아진다. 그래서 상당수 학교에서 학생부장이 오히려 두발자유화나 교복자율화를 더 원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는 후문도 적지 않게 있었다. 적어도 옷과 머리모양 가지고 실랑이 벌일 시간은 줄어드니,[9] 또 이런 교사는 야자 끝난 후 하교 지도와 더불어 문단속까지 다 해야 하는 탓에 실질적인 퇴근시간은 더 늦어질 수밖에 없다.[10] 애초에 당시에는 평균 학력 및 대학 진학률이 매우 저조하였고, 1960년대에는 고등학교까지만 나와도 상당한 고학력으로 인정해 주던 시대였다. 더군다나 그들은 야자와 0교시가 없던 학창시절을 보냈으며 학급당 학생 수가 50명씩 채워놓아도 교실이 부족해서, 국민학교에서 2부제, 극단적으로는 3부제 수업까지 실시했고 중고등학교는 이보다는 상대적으로 덜했으나, 대다수 학교에서 교실부족문제로 야간자율학습을 시키기 어려웠다.[11] 당시에는 한국 기업의 기술력이 높지 않아 제품을 값싸게 생산해서 싸게 파는 박리다매형 수출기업이 주류였기 때문에 그랬다. 메이드 인 코리아 하면 미제나 일제보다 낮게 쳐주던 시절인지라 외화 획득을 위해서라도 국산품 장려운동이 펼쳐진 것도 이 시대의 풍경이었다.[12] 물론 교련을 강제해서 군사훈련을 시키기는 했다.[13] 다만 교사급여가 박봉이던 시절에는 0교시를 더 선호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0교시 및 야간자율학습을 하면 추가수당을 챙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14] 새벽별을 보며 일터로 나가서 밤별을 보며 귀가하자는 캠페인.[15] 그러나 대학수학능력시험 초창기에는 기존에 하던 식으로 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16] 대중교통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에서는 0교시, 야자 강제가 일종의 출퇴근 분산효과까지 가져온다. 자녀가 부모보다 먼저 출근해 늦게 퇴근하는 선뜻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되지만 이들이 같은 시간에 출퇴근 도로위에 있을 때보다는 교통사정이 분산된다는 이점이 있어서 특히 버스 대수가 부족한 지방일수록 이를 은근히 반기는 실정이다.[17] 단, 평택시의 평택고등학교와 신한고등학교, 안양시의 신성고등학교는 8시 등교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용인시의 신갈고등학교는 8시에 등교해서 40분 동안 강제자습을 한다. 조회는 대부분 8시 40분에 시작하며 1교시는 9시에 시작한다. 참고로 이들 4개 학교 가운데 평택고등학교는 공립이다.[18] 내신을 따기 힘든 환경 등 모종의 이유로 정시파이터라고 불리는 학생의 비율이 높은 고등학교에서는 일찍이 수능 시간표에 몸을 맞추기 위해 학생이 자발적으로 일찍 등교하여 0교시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경기도 오산에 위치한 세마고등학교의 경우 대부분의 학생들이 8시 아침자습에 참여하고 있다. 권장사항이긴 하지만, 절대로 자습을 강제하는 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