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불교의 종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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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토교(淨土敎)는 불교 사상의 한 갈래이자 대승불교의 하나다. 무량수경, 아미타경, 관무량수경의 3가지 불경(이른바 정토삼부경)을 소의경전[1]으로 한다.중국 당나라의 선도대사(善導大師)로부터 시작되어 한국, 일본에 널리 퍼졌다. 다른 불교 종파에 비해서도 대중 친화적이고 신앙적인 측면이 강하며 염불 수행을 통해 극락에 왕생하여 정정취(正定聚)에 머물러[2] 마침내 열반(涅槃)을 얻게 된다는 교리를 중심으로 한다.[3][4][5]
기초적인 형태의 염불신앙은 초기 불경인 숫타니파타 및 아함경에서부터 등장한다. 숫타니파타 제5품에서는 몸이 노쇠한 존자 삥갈라가 '마음으로나 육안으로나 붓다를 본다'고 고백하는 대목이 등장하는데 불교학자 폴 윌리엄스(Paul Williams)는 이것을 붓다의 모습을 심상화하는 관상명상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바라문이여, 저는 저 광대한 지혜를 갖춘 고따마님, 광대한 이해를 갖춘 고따마 님 곁에서 잠시라도 떨어져 살 수 없습니다. 지금 여기에 효과가 있고, 시간을 뛰어넘고, 갈애를 소멸하고 고뇌가 없는 가르침을 제게 말씀해 주셨으니, 그에게 견줄 자는 아무데도 없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방일함이 없이 밤낮으로, 마음으로나 육안으로나 그를 봅니다. 그분을 예배하면서 밤을 보냅니다. 그러므로 생각건대 그분을 떠나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과 희열과 정신적 새김[6]은 고따마의 가르침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광대한 지혜를 갖춘 님께서 어느 쪽으로 가시거나, 그 가시는 곳곳을 향해 나는 기울고 있습니다. 나는 이제 늙어서 기력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 몸은 그곳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으로는 항상 그곳으로 거닙니다. 바라문이시여, 그와 맺어져 있는 것은 나의 정신입니다.
숫타니파타 제5품 18, 피안가는 길에 대한 마무리의 경(Parayanakasamitisutta)
숫타니파타 제5품 18, 피안가는 길에 대한 마무리의 경(Parayanakasamitisutta)
부파 불교 시대의 설일체유부에서도 붓다의 32상을 관상하는 명상을 가르쳤다. 설일체유부식 관상명상은 이후 카슈미르 지역에서 대승불교의 세계관 및 특유의 수행법(다라니, 만트라 등)과 결합되며 독특하게 발전했다. 이때는 극락이나 아미타불에 대한 기반개념이 존재하던 시대로, 삼보에 귀의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며 수행하면 현세에는 이익을 얻고 내세에는 천상세계[7][8]에서 태어나 이윽고 열반을 이룬다는 득과사상의 형태로 존재하였다. 염불 수행에 대해 용수는 염불 수행을 하면 붓다의 공덕과 서원력의 도움을 받아 현재 생에서 손쉽게 아유월치를 이루어서 해탈이 가능하다고 보았으나 세친은 염불을 찬탄문의 일종으로 보아 그 공덕은 인정하지만 염불만으로는 현생에서의 해탈은 어렵고 한 번 왕생한 다음 해탈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세친의 염불관은 정토 신앙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쓰였다.
(전략) 스스로 '나무불'이라고 부르면서 모두 나의 처소로 와 현재에 공양한다. 저 부처님의 과거는 선정이 평등하여 증감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불법 가운데서는 성중들이 받들어 섬긴다. 전심으로 삼보를 섬기면 반드시 무위처에 이른다. (후략)
(전략)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이르셨다."마땅히 한 법을 수행하고, 마땅히 한 법을 널리 펴라. 한 법을 수행하면 문득 명예가 있게 되고, 큰 과보를 이루며, 모든 선(善)이 널리 이르게 되고, 감로의 맛을 얻어 무위처(無爲處)에 이르며, 문득 신통을 이루어 모든 어지러운 생각을 제거하여 사문과(沙門果)를 얻어 열반에 이른다. 어떤 것을 한 법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염불이니라." (후략)[9]
(전략) 만약 어떤 비구가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고 결가부좌하여 생각을 묶어 앞에 두고, 다른 생각이 없이 오로지 부처님을 염하며 여래의 형상을 관(觀)하되 잠시도 여래의 형상이 눈에서 떠나지 않게 한 다음 여래의 공덕을 염하라. (후략)
(전략) 또한 중생이 몸과 입과 뜻으로 악을 행하였지만, 그가 만약 목숨을 마칠 때에 여래의 공덕을 생각하면[10] 세 갈래 나쁜 길을 여의고 천상에 태어날 수가 있다. 아무리 지독한 악을 지은 사람이라도 천상에 태어날 수가 있다.[11]
(전략) 만약 목숨을 마친 뒤에도 나쁜 곳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요, 끝끝내 나쁜 일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는 이미 오랫동안 염불, 염법, 염승을 닦고 익혔기 때문이니라. (후략)
- 출처: <잡아함경>, 조계종출판사 발행 <염불 수행 입문>에서 재인용.
기원전 1세기 서북 인도에서 <무량수경>과 <아미타경>이, 훨씬 뒤인 4~5세기경 서북 인도(혹은 중국)에서 <관무량수경>이 형성되고 대승 불교가 중국으로 들어오면서 담란대사와 선도대사에 의해 정토종이라는 하나의 독립된 종단이 형성되었다.
정토신앙은 한국과 일본에도 유입되었으며 한국인에게도
2. 특징
정토교에서는 '정토'라는 일종의 '이세계'의 개념이 존재한다. 경전에 언급되는 많은 부처와 많은 정토가 존재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아미타불과 서방극락세계를 가장 중시한다.[13][14]정토교의 기초는 말법 사상에서 나온 타력본원(他力本願)[15] 사상이다. 말법 사상에서는 이 세상은 이미 말법의 세계이므로 기존의 불교 방식으로는 수련을 해도 효과가 없고, 깨달음을 얻어 성불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다른 종파에서 흔히 채택된 수련 방식인, 좌선(座禅)은 정토신앙계열 종파 에서는 채택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세가 아닌 다른 세계(정토)에서는 아직 성불이 가능하며 그 가운데서 아미타불은 위대하고 자비로운 부처로서 단지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내세에 극락정토로 환생시켜 가르침을 주어 성불할수 있게 끔 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16]
'나무아미타불' 등의 염불을 외워서 궁극적으로 성불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므로 염불을 중시하는 특징을 지닌다. 염불을 외우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고 간단하므로 정토신앙이 전파된 나라를 막론하고 민중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 현세의 어려움과 내세의 성불을 강조하는 사상이므로 국가의 혼란기, 정체기에 널리 퍼졌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선종과 결합하면서 선과 염불이 수행법은 다르지만 궁극적인 목표(성불)은 같으며 둘을 같이 닦아야 한다는 선정겸수(禪淨兼修) 사상도 등장했다. 이런 사상은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라 중국 초기 불교에서부터 존재하였으며 고려시대 보조 지눌도 <염불요문>을 지어 염불과 선을 같이 해야 함을 주장했고 휴정도 <선가귀감>에서 근기가 낮은 참선자가 염불을 겸해야 함을 주장하면서 2가지 비유를 드는데 자력(自力)의 참선으로 도를 이루겠다는 것은 마치 나무를 심어서 키운 뒤 배를 만들어 건너가겠다는 것과 같아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염불은 선착장의 배를 빌려 타고 건너가는 것과 같으며, 참선 수행자가 마장을 만났을 때 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은 어린아이가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어머니의 도움을 받는 것과 같다는 비유가 있다.
중국의 유명한 선승 영명 연수는 저서 <만선동귀집>에서 근기가 출중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토와 선을 겸해서 닦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며 이는 뿔 달린 호랑이와 같다고 하였다.[17] 한 사람이 성불하면 자신의 불국토를 가지게 된다. 우리가 사는 사바세계는 석가모니불의 불국토이고 시방세계에는 수 많은 불국토들이 존재한다. 특히 말법 시대가 되면 정토종과 밀종만 남아서 유행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3. 수행법
정토교(淨土敎)의 수행법은 칭명염불이다. 육자명호인 나무아미타불이나 아미타불을 반복적으로 입으로 부르거나 마음 속으로 크게 외운다.4. 종파 및 단체
4.1. 한국
한국에서 정토신앙을 처음으로 대중화시키고 연구한 스님은 유명한 원효인데 본인이 직접 소성거사로 활동하면서 대중들에게 정토교와 정토염불을 전파하는 한편 정토교의 소의경전인 정토삼부경을 해설하는 <아미타경소>와 <무량수경종요>, <유심안락도>를 지어 한국 정토교학의 이론을 잡았다. 이 중 <무량수경종요>는 중국의 혜원, 길장이 쓴 주석과 한국의 경흥의 주석과 더불어 정토교와 관련해 4대 주석서로 불리며, 원효의 주석서는 화엄 사상에 입각하면서 우리가 사는 이 곳이 바로 정토라는 <유마경>의 유심정토설을 따르고 있다. 다만 원효 본인이 별도의 종파를 만들고 제자를 양성하지는 않았으며 <유심안락도>의 경우 원효의 사상을 담고는 있지만 후대의 위작이라는 논란이 있다.이후 한국에서 정토교는 하나의 독립된 종파보다는 다른 종파의 수행과 상호 보조적인 성격을 갖고 전수되었으며 이는 염불수행과 선 수행이 결합한 선정쌍수의 형태로 나타난다. 여말선초기의 선종의 고승들인 지눌의 <염불요문>,태고 보우국사의 <태고화상어록>과 나옹 혜근의 <나옹화상어록>, 조선조의 휴정의 <선가귀감>에서도 정토수행을 같이 할 것을 귄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보이고 있다.
(전략)누구나 열 번만 염불하는 이는 그 원의 힘으로 연꽃 태 속에 왕생하여 바로 윤회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삼세의 모든 부처가 다 같이 말했고 시방세계의 보살들도 모두 그것에 왕생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하물며 고금에 극락세계에 왕생한 사람들의 행적이 분명하게 전해오고 있으니, 바라건대 공부하는 이들은 삼가 그릇 알지 말고 힘쓰고 힘쓸지어다.(중략)또 마명보살이나 용수보살이 다 조사 스님이지만 분명히 말해서 왕생하는 길을 간절히 권했거늘 나는 어떤 사람이기에 왕생의 길을 닦지 않을 것인가?(후략)
출처:<선가귀감>, 조계종출판사 간행 <염불수행입문>에서 재인용.조선 중후기~근현대에 들어서는 전국의 여러 사찰마다 염불당이 생기고 염불결사가 널리 퍼질 정도로 정토수행이 널리 퍼졌으며 현대로 오면서 조계종이 종단의 정체성을 간화선과 선종에 놓으면서 정토수행은 하근기들의 수행이라며 다소 천시받기도 했지만 염불선을 중시하는 청화문중에서는 <보리방편문>을 지어 염불수행을 권장 보급했고 청화스님이 왕생하신 지금도 청화문중의 염불수행 보급은 현재도 진행중이다. 특히 청화문중에서 하는 보리방편문 수행법은 티베트 불교 닝마파에서 비전되는 족첸 수행법과 같아 티베트 스님이 놀란 적도 있다.
조계종에서도 2000년대 초반에 각종 수행입문서를 펴내면서 <염불 수행 입문>을 출간하고 2013년부터 염불원법이 통과된 후 같은 해 봉선사에 염불원을 개원[18]하는 등 정토수행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 외에 군소 종단들 중에 정토교 계열 군소종단들이 존재한다.
4.1.1. 종파
한국에서는 다음 불교 종파들이 정토종 계열을 자처하고 있으나 모두 군소 종단들이다.- 대한 불교 정토종(大韓 佛敎 淨土宗) - 대전광역시 유성구 원신흥동에 위치한 신흥사가 현재 혜만 종통 스님께서 머물고 계신 정토종 총본산이며 아미타불 부처님과 협시불인 관음보살님과 대세지보살님을 주불로 봉안하였으며 104위 신중님이 봉안되어 있다.
- 보국불교 염불종(輔國佛敎念佛宗) - 대전광역시 동구 그나마 무당들이 주를 이룬 종단이 아닌 불교 종단이다. 판암동에 위치한 원광사를 총무원으로 하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주변지역이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면서 총무원을 매물로 내놓은 상태다(...)[19]
- 대한불교미타종 - 위 두 종파보단 조금 규모가 되는 정토교 교파다. 총본산은 단양 봉암사이며 승려 권벽암이 창시한 교단이다.[20]
- 한국불교정토종 - 불교종단협의회 소속종단 목록*에도 없는 초 마이너 종파.
- 대한불교무량종 - 여기는 의외로 평이 괜찮은 듯하다. 정토삼부경을 제대로 공부하고 승단이 무속인들과 역술인들로 구성되지 않았다.
외외로 정토회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름 때문인지 정토회를 정토신앙 계열의 단체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정토회의 구심점이라고 볼 수 있는 법륜은 보다 '유심정토'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므로 이를 정토신앙이라 치부하기에 어려운 구석이 많다. 유심정토란 '정토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평안하면 바로 그 자리가 극락정토이다'라는 유식(불교)학적 맥락에서의 정토를 말한다. 즉, 정토교가 아닌 '일체유심조 사상'의 연장선이다. 이에 대해 상기한 '선정쌍수'계열의 정토종으로 볼 수도 있지 않나 싶겠지만 법륜의 그간 언행을 보아서는 그렇게 여기기도 힘들다. 일단 법륜스님은 생사윤회[21]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생사윤회가 없다는 전제하에서는 어떤식으로든 정토사상이 성립될 수 없다. 반면 본 문서 전반에서 다루는 정토신앙은 아미타부처의 원력에 의해 서방정토에 태어나 법문을 듣고 열반하리라는 내용을 '실체적'으로 믿으므로 둘은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4.1.2. 단체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승려 문중들 중 보리방편문 수행법을 닦는 청화문중(까페링크)에서 염불수행을 중시하며 그 밖에 만일염불회나 무량수여래회, 염불공양모임 등의 재가자 중심의 여러 염불신행단체들이 있다.4.2. 중국
중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염불선/유심정토론에 입각한 선정쌍수 수행을 했지만 정토선과 별개로 타방정토설에 입각한 정토수행을 하는 독립된 정토교 교파가 등장하였다.중국에서 순수 정토종의 본격적인 시작은 당나라 초기의 고승 선도대사다.[22] 그가 당나라 정관 15년(641년)에 <관무량수경>의 이치를 깨닫고 스승 도작대사가 왕생한 뒤 종남산 오진사로 돌아가 독립된 종파로서의 정토종을 창립한 것이 시작이다. 그 이전에도 중국 불교계에 정토수행은 존재하였으나 독립된 종파가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 현재도 중국 정토종계에서는 선도대사의 이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반대로 선정쌍수 계통은 유명한 선승이기도 한 영명 연수의 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한국의 염불선도 이쪽의 영향을 받고 있다.[23]
이후 중국에서는 성리학이 국시였던 명나라와 티베트 불교를 중시한 청나라를 거치면서 선종은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정토종이 주류를 차지하였으며[24] 근현대로 오면서는 중국 본토는 중국공산당의 문화대혁명으로 불교역시 숨죽여 지내다가 종교를 어느 정도 풀어 주면서 정토종 역시 다시 발전하는 형국이다. 대만은 한때 그리스도교가 매우 왕성했으나 승려들이 정토종을 중심으로 한 결사운동을 추진하면서 신도도 많이 늘어나고 정토종도 많이 발전하고 있다.[25]
4.3. 일본
4개 종파가 존재한다.- 정토종: 호넨(法然)을 개조로 하는 종파다. 지온인(知恩院)이 본부다.
- 정토진종: 호넨의 제자 신란(親鸞)을 개조로 하는 종파다. 히가시혼간지와 니시혼간지가 이 종파에 속하며[26] 일본인 승려가 머리를 기르고 있다면[27] 높은 확률로 이 종파에 속한 승려들이다. 전국시대에는 잇코잇키를 일으켜 오다 노부나가와 맞짱을 뜨기도 했고 메이지 유신 이전에는 승려의 육식과 결혼을 허가하는 유일한 종파였다.
- 시종(時宗): 잇펜(一遍, 1239-1289)을 개조로 하는 종파다. 춤추면서 염불하기(오도리넨부쓰)가 특징이며 본부는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에 소재한 '조조코지'(清浄光寺)다.
- 융통염불종(融通念仏宗): 료닌(良忍)을 개조로 하는 종파로 정토교와 밀교의 특징을 한데 섞은 것 같은 교리가 특징이다. 본부는 오사카에 소재한 '다이넨부쓰지'(大念仏寺)다.
일본 정토교에 특징이 있다면 일본에서는 중국이나 한국에서 보이는 선정쌍수가 빛을 보지 못했고 철저하게 말법시대설[28]에 입각해 칭명염불을 통한 정토수행만 집중하는 정토교가 주류를 차지하였다.[29] 타 종파들처럼 명상 등으로 육체적인 수행을 많이 해서 스스로 부처가 되는게 아니라 아미타불의 도움으로 구제받아 극락왕생한다는 교리가 강조되기 때문에[30] 일본 정토교 계열 종단들은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예불할 때 반야심경을 외우지 않는다.
일본 불교계 전체가 선종보다는 정토종 계통이 우세를 점했기 때문에 일본에 처음 가톨릭이 전래될 때 선교사들은 정토종 불교를 그리스도교의 특이한 이단 교파처럼 착각했고 반대로 일본인들은 가톨릭을 약간 특이한 불교의 종파로 착각했다는 일화가 있다.
사실 이렇게 된 데는 초기 선교사들이 일본어 번역을 잘못 한 탓도 있었다. 예수회 선교는 토착신앙을 포맷하고 그리스도교를 새로 선교하는 것보다는 원주민들의 신심을 자연스럽게 그리스도교로 틀어 주는 방법을 선호한다. 때문에 중국에서는 Deus(오늘날엔 '하느님'으로 옮김)를 '상제'로 소개하기도 했으며 유교의 논리를 사용하여 그리스도교의 정당성을 도출하였다. 즉 요순이 섬기고 우탕이 믿던 그 상제가 사실은 그리스도교의 그분과 동일한 분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오늘날 Deus의 번역으로 쓰이는 하느님(하나님)도 동아시아의 토착 天 신앙에서 어휘를 가져온 것이다. 같은 원리로 일본에 선교할 때는 예수회는 Deus를 일본어로 다이니치(대일, 곧 대일여래)라고 번역했다. 그 때문에 예수회 선교사들은 처음 일본에 도착해서 "대일여래를 믿으십시오!"라고 외치고 다녔고 당연히 일본인들에게는 불교의 한 분파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유교와는 달리 불교는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도저히 호환이 불가능했고[31] 선교사들은 나중에 Deus를 발음 그대로 데우스로 일본인들에게 가르쳤다. 다만 데우스라는 말이 일본인들 귀에는 다이우소(큰 거짓말)처럼 들려서 그것대로 문제는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만 적어놓으면 예수회 선교사들이 계속 삽질을 저지른 것 같지만 일본인들의 불교 신심이 중국인들보다 깊었기 때문에 가톨릭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쉽게 전환할 수 있었고 특히 센코쿠 시대~에도 시대 초기의 간사이 지방에서 민중들과 다이묘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물론 불교 입장에서는 기분 좋은 현상일 리 만무했지만.
조계종에 익숙한 대다수 한국인들에게는 낮선 외래 종파임에는 틀림이 없다. 한국인이 일본 정토(진)종을 접하게 된다면 보통은: i) 신장의 야망을 하면서 혼간지
4.4. 동남아시아
태국에서는 불법승 3보를 염하는 식으로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불보에 대해서는 '붓도(buddho)'를 염송하거나 '나모 붓다야(namo buddhaya)'를 염송한다. 미얀마의 마하시 사야도는 여래의 10호를 염하면서 여래의 공덕을 찬탄하면 가슴에서 희열이 일어나는데 이 기쁨을 관찰해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쳤다.5. 역대 정토종 조사
초조 혜원대사제2조 선도대사
제3조 승원대사
제4조 법조대사
제5조 소강대사
제6조 영명연수 선사
제7조 성상대사
제8조 연지대사
제9조 우익대사
제10조 행책대사
제11조 성암대사
제12조 철오선사
제13조 인광대사
[1] 한 불교 종파의 사상의 중심이 되는 경전[2] 정정취는 8지 아비발치 보살의 경지다. 8지 아비발치 보살은 성불이 결정되는 동시에 보살 위에서 타락하지 않을 위치다.[3] 한 국토에는 한 분의 부처님만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서방극락세계에서 성불하려면 아미타불이 열반한 후에 성불해야 한다. 한 국토에 두 분의 부처님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중생 구제의 측면이나 결정적으로 여래는 한 국토에 두 분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4] 한 국가에 대통령이 한 명이듯이, 부처님도 법왕(法王)이기 때문에 한 국토에는 한 분의 여래만이 계신다.[5] 여기서 말하는 열반(涅槃)은 8지 아비발치 보살의 대정(大定)으로 추측된다.[6] 희열(piti)은 불교의 선정 중 제2선, 정신적 새김(sati)은 제3선 및 제4선의 요소에 해당한다. 이는 불교 역사의 초창기부터 염불이 선정 수행의 일환으로 행해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단, 지금처럼 명호를 읊조리는 형태보다는, 후술할 설일체유부의 관상법과 같은 심상화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된다.[7] 정확히는 정거천. 다섯 정거천은 성자들이 태어나는 곳이자 윤회가 사실상 끊어진 곳이며, 정토경전에서도 극락과 동일시하고 있다.[8] 정토계 염불경전의 서술은 초기경전에서도 염천(念天)의 선정법과 함께 공덕을 지어 발원하고 서원하는 곳에 재생하는 것과도 그대로 일치한다. 이처럼 대승 정토 경전의 내용은 그대로 초기불교에 바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토 경전의 여러 군데에서 스스로 극락정토가 제사선천임을 극명하게 증명한다. 그것은 정토계 경전 모두 극락 왕생자를 ‘아나함(불환과)’이라고 하며 ‘불퇴전’이라 하며 ‘일생보처보살’이라하는 용어를 반복하여 사용하는 것에서도 잘 보여준다. 이는 정확히 정거천과 일치한다. (중략) 극락과 정거천이 어원적으로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살펴보자. 『아미타경』이나 『무량수경』의 산스끄리뜨 제목에서 모두 sukhavati(극락세계)라는 말이 사용된다. 산스크리트어로 극락이 sukhavati의 번역일 때 정토는 kṣetra-pariśuddhi의 번역이다. 정거천은 suddhāvāsa다. 대승 정토의 kṣetra-pariśuddhi와 같은 의미다. 출처: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연구소 조준호 교수-"아미타불 신앙의 기원과 전개에 대한 규명", 제2회 성운학술상(불교학술진흥상) 대상 수상논문[9] 증일아함경 십념품[10] 일반적으론 흔히 부처의 칭호를 입으로 외우는 칭명염불이 널리 퍼져있어 염불=칭명염불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지만, 부처님의 공덕을 생각하는 것 또한 관상염불(觀想念佛)이라 하여 염불에 속한다.[11] 이와 유사한 이야기는 밀란다팡하(미란다왕문경/나선비구경)에도 등장하는데 무거운 쇠덩어리를 그냥 물에 넣으면 가라앉지만 큰 배에 실으면 가라앉지 않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든다. 여기서 큰 배는 염불의 공덕을 뜻한다.[12] 자세한 내용은 증일아함경 제2권 광연품, 32권 역품 참조.[13]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도 일종의 유행(?)이 있다. 초기에는 동방의 아촉여래의 묘희(妙喜)세계가 더 인기를 끌었고 한국의 통일신라 시대에는 미륵보살이 상주하는 도솔천에 왕생하는 형태의 미륵신앙이 유행해 극락이 나으냐 도솔천이 나으냐로 승려들이 토론하기도 했다. 다만 이 논쟁은 어디까지나 승려들 사이에 논쟁으로 그쳤지 조선조 예송논쟁마냥 정치적 암투까지 가진 않았고 갈 이유도 없었다. 사실 다 나름대로 좋은 곳들이다.[14] 여기서 아미타불의 극락왕생 신앙이 가장 대표주자로 남게 된 것은 후술할 아미타불의 48대원에 있다.[15] 인간인 자신은 무력하기에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신적 존재의 힘을 빌려야 함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신적 존재는 당연히 '아미타불'이지만 구원에 이르는 과정이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것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 흥미롭다. 일본에 전파된 초기 가톨릭 선교사들이 정토교를 접하고 일본에 자신들보다 먼저 개신교가 들어온 것이 아닌가 하고 당황했다는 일화가 있다.[16] 꼭 성불한다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한 세계에 2명의 여래가 동시에 존재 할수 없기 때문에 서방극락세계는 가장 공부하기 좋은 학교라고 생각하면 된다. 무조건 성불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왕생하기 전의 근기에 따라 하품하생~상품상생이 결정되고 하품하생은 수다원과를 목표로하고 상품상생은 왕생 즉시 무생법인을 깨닫고 8지 아비발치 보살의 경지에 오른다. 상품 왕생 이상이랴야 성불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또 다른 불국토의 보살들이 극락세계에 왕생 할 경우 필경에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에 올라 성불할 수 있다.[17] 그냥 호랑이도 무서운데 뿔까지 달리면 어떻겠냐는 것이다.[18] 기사는 2014년 기사지만 설립 자체는 2013년이다.[19] 염불종 홈페이지에 나오는 원광사 사진과 비교해 보자(...)[20] 정토종과 비슷한 부류이지만 역술인도 있지만 무속인들이 주를 이룬다.[21] 찰나윤회나 연기법적 윤회가 아닌 실제로 중생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윤회[22]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는 담란대사를 중국 정토교의 시작으로 잡고 있는데 정토교의 이론을 정립한 것으로 치면 담란대사가 맞지만 엄밀하게 따져서 정토종이라는 하나의 독립된 종파를 형성한 사람은 선도대사이며 선도대사 본인도 담란대사의 제자로서, 법맥이 담란 → 도작 → 선도로 이어진다.[23]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여말선초 한국 승려들이 중국에서 유학하며 남종선을 배울 때 당시 중국 승려들의 법맥을 따지고 올라가면 영명연수 스님의 제자뻘들이다.[24] 말법 시대에는 정토종과 밀종만 남아서 유행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25] 대만의 불교는 95%가 정토종이라고 보면 된다. 나머지 5%에 해당하는 종파는 선종과 티베트 불교가 대표적이다.[26] 다만 서로 계파는 다르다.[27] 정확히는 두발자유화에 가깝다. 타 종파처럼 완전히 삭발한 정토진종 승려들도 많다.[28] 물론 중국과 한국에서도 이 설을 바탕으로 염불결사가 일어난 적은 있다.[29] 센고쿠 시대로 대표되는 잦은 내전의 영향으로 추정된다.[30] 일본식 불교 용어로 '타력본원'(他力本願)이라 부른다. 요시와라 유곽 등 집창촌에 팔린 유녀들이 죽어서 묻히는 사찰(일명 나게코미데라)도 조칸지처럼 대개 정토종 소속이 많은데 이 타력본원 교리 때문으로 보인다.[31] 단적인 예로 그리스도교에서 우주의 제1원리는 '존재 그 자체'로 고백되는 하느님이며 유(有)의 결핍적인 부재는 악이 된다. 그렇기에 공허(void)는 서양 문화권에서 굉장히 어둠과 관련된 뉘앙스를 가진 단어가 되며 인간이 자신의 유(有)를 완성하여 '완전 존재(=하느님)'와 일치를 누리게 된 상태를 '천국'이라 믿는다. 반면 불교에서는 만물에는 실체가 없다는 공(空) 사상을 기초로 깔고 있으며 열반을 위해서는 바로 이 공(空)을 깨달아야 한다.[32] 정토진종의 개조 신란의 제자였던 유이엔(唯圓)이 쓴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