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5 23:18:25

오상은

<colbgcolor=#131230><colcolor=#eee156> 오상은
吳尙垠|Oh Sang-eun
파일:오상은 미래에셋증권 탁구단 프로필 사진.png
출생 1977년 4월 13일 ([age(1977-04-13)]세)
대구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대구대명초등학교
심인중학교
심인고등학교
서울산업대학교
신체 186cm, 78kg
직업 탁구 선수 (오른손 셰이크핸드 올라운드 / 은퇴)
탁구 감독
특기 백핸드 드라이브, 백핸드 블록
가족 배우자 이진경
장남 오준영(2004년 3월 5일생)[1]
차남 오준성(2006년 6월 12일생)[2]

1. 개요2. 플레이 스타일3. 평가4. 수상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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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탁구 선수 출신 감독. 現 미래에셋증권 탁구단 남자부 감독.

4번의 올림픽과 7번의 세계 선수권에 출전해 한국 탁구에 괄목할 만한 성적을 남겼다. 또한 국내 최고 대회인 종합 선수권에서 6번 우승하며 최다 우승 기록을 세웠다.[3] ITTF 월드 투어 단식도 총 8회 우승으로 국내 최다 우승자다.

2016년 12월, 차남 오준성 군과의 복식 경기를 마지막으로 선수 은퇴를 했으며 공식 은퇴식은 2017년 12월 27일에 치렀다.

2. 플레이 스타일

186cm의 장신의 올라운더 스타일의 셰이크핸드 선수로 다방면에서 기본기가 매우 뛰어났던 선수다. 양핸드 드라이브 모두 좋았고 특히 철벽의 블로킹과 중간중간 재치있는 센스 플레이가 큰 장점이었던 선수다. 대표적으로 스트레이트 백드라이브와 코스를 적절하게 바꾸는 플레이가 훌륭했다. 오상은의 플레이는 간결함의 극치로 요약할 수 있다. 매우 효율적으로 영리하게 포인트를 따는 선수였다. 여기에 좋은 예측능력과 반응을 토대로 깔끔하게 상대의 공격을 블락하는 데 능했다. 최상위권 선수 중에는 독일의 티모 볼 선수에게 강한 모습을 보였는데, 회전이 많은 루프 드라이브가 주특기인 티모 볼이 좋은 포지션을 선점하고 높은 높이에서 철벽같은 디펜스를 펼치는 오상은에게 꽤나 고전하는 그림이 자주 나왔다.[4]

그렇다고 해서 오상은이 수동적이고 디펜스만 하는 선수는 결코 아니였고, 오히려 상당히 지능적이고 공격적인 선수였다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올인성 무리 플레이를 자주 하지 않고 미스 없이 안정적으로 게임을 풀어가는 걸 선호할 뿐, 오상은의 탁구는 테이블과 멀리 떨어지지 않고 쇼트(하프발리)를 하든 강한 공격을 하든 자신의 템포로 경기를 공격적으로 주도하는 게 주된 스타일이었다. 여타 초 공격적인 탁구선수들에 비해 탁구를 아주 화려하게 하진 않아서 얼핏 보면 백핸드 블록을 자주 하는 수동적인 선수로 보일 수 있으나, 사실 오상은은 모션 훼이크를 동반한 기습적인 포핸드 플릭을 상당히 자주 시도하는 편이었고 성공률 또한 높았다. 양핸드에서 나오는 스매싱과 드라이브도 꾸준히 위력적이었다. 특히 백핸드 드라이브가 가장 강력했는데, 인터뷰에 의하면 본인은 이 백핸드를 고등학교 선배와 유럽 선수들, 특히 크레앙가 선수의 백핸드를 보며 연구했다고 한다. 오상은은 오스트리아의 챔피언 베르나 슐라거 선수에게 매우 강했는데, 창의적이고 현명한 플레이로 유명했던 슐라거는 중요한 순간마다 오상은의 백핸드 기술에 잘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상은은 대체로 유럽 선수들에게 상당히 강한 편이었다.

또 한 가지 두드러지는 오상은의 특징은 바로 컨트롤 능력이다. 소위 말하는 "손재간"이 상당히 좋았고 공의 적절한 위치선정과 방향전환에 능했다. 상대가 어설픈 공을 주거나 빈틈을 보이면 과감하게 반대 코스로 빼거나 간결한 모션의 카운터드라이브나 푸쉬, 기본기로 상대를 농락하며 득점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오상은은 중진 힘 대 힘 싸움에서 중국의 최상위권 선수들에게 밀리는 일이 잦았다. 특히 왕리친, 왕하오[5], 마룽처럼 공 하나하나의 위력이 매우 강할 뿐만 아니라 힘 대 힘 랠리에서도 최고 수준이고 운동능력과 지구력까지 최고 수준으로 뛰어난 중국 선수들을 상대로는 쉽게 주도권을 가져오지는 못했다.[6]

비록 중요한 고비마다 탑급 중국선수들에게 밀려 세계선수권 우승이나 올림픽 금메달같은 초 대형 타이틀을 따내지는 못했지만, 오랜 기간 동안 세계 랭킹 6위~20위를 유지하고 최고 5위까지 올라가며 세계무대에서 꾸준히 좋은 활약을 한 선수다.

3. 평가

상당히 큰 키에 백핸드와 센스가 좋은 셰이크핸더라는, 대한민국에서 보기 드문 유형의 탁구 선수였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부터 선수생활을 했던 오상은은 국내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유럽형 셰이크로 세계 최상위권 랭킹에 도달한 선수였다. 효율적인 움직임, 탄탄한 기본기와 연결력을 바탕으로 공&수 밸런스가 좋았고, 특히 백핸드가 강했다. 손 감각과 컨트롤도 뛰어난 편이었으며, 대체로 부드러운 스타일이었지만 때에 따라서는 과감하고 재치있는 판단으로 자신이 의도하는 플레이를 쉽고 멋지게 실행해내는 선수였다.

폭발적인 풋워크로 폭 넓게 움직이며 알고도 못 막는 드라이브를 구사했던 일식 펜홀더의 로망 유승민, 어떠한 공격이 와도 완벽한 커트로 막아내며 짜릿한 역습까지 선보이던 완성형 수비수 주세혁에 비해 오상은의 탁구에 누구나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화려한 면모는 부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쉬워 보여도 쉽사리 따라할 수 없는 본인만의 간결한 전진 탁구를 한결같이 펼쳐 온 오상은은 탁구를 사랑하는 많은 탁구인들에게 철벽형 올라운드 플레이어이자 2000년대 한국 탁구 대표팀을 오랫동안 든든하게 지켜준 맏형 선수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4. 수상 기록

올림픽
은메달 2012 런던 단체전
동메달 2008 베이징 단체전
세계선수권
은메달 2001 오사카 혼합 복식
은메달 2006 브레맨 단체전
동메달 1997 맨체스터 단체전
동메달 2001 오사카 단체전
동메달 2001 오사카 남자 복식
동메달 2003 파리 남자 복식
동메달 2004 도하 단체전
동메달 2005 상하이 단식
동메달 2010 모스크바 단체전
동메달 2012 도르트문트 단체전
아시안 게임
은메달 1998 방콕 단체전
은메달 1998 방콕 혼합 복식
은메달 1998 방콕 남자 복식
은메달 2002 부산 단체전
은메달 2002 부산 남자 복식
은메달 2006 도하 단체전
은메달 2010 광저우 단체전
동메달 1998 방콕 단식
동메달 2002 부산 단식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1996 칼랑 단체전
금메달 2007 광저우 혼합 복식
은메달 1994 텐진 단체전
은메달 1998 오사카 단체전
은메달 1998 오사카 남자 복식
은메달 2005 제주 단체전
동메달 1994 텐진 남자 복식
동메달 1996 칼랑 혼합 복식
동메달 1998 오사카 혼합 복식
동메달 2005 제주 남자 복식
동메달 2007 광저우 단식
월드컵(단체전)
은메달 2009 린츠 단체전
은메달 2010 두바이 단체전
동메달 2007 마그데부르크 단체전


[1] 부친 및 동생과 달리 탁구를 하지 않는다.[2] 부친을 따라 탁구의 길로 들어섰다.[3] 이는 유남규 감독과 김택수 미래에셋증권 감독의 각각 5번,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 위원의 3번을 뛰어넘는 기록이다.[4] 티모 볼은 2010년 10월 챔피언스 리그 경기 인터뷰에서 "난 오상은 선수와 경기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난 그가 조금 두렵다." 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2020년 5월 티모 볼 Q&A 영상에서 티모 볼은 "유승민 선수와 오상은 선수 중에 누가 더 상대하기 까다로웠나?" 라는 질문에 "유승민은 큰 대회에서 끝까지 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선수였다. 오상은은 정말 강적이었다. 그는 안정적이면서도 강력했다. 나는 그와 상성이 좋지 않았다. 키가 그렇게 큰데도 부드러움을 갖춘 선수를 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고 대답했다.[5] 예외로 2005년 슈퍼 서킷 매치에서 왕하오를 상대로 4:0으로 원사이드하게 이긴 경기가 있다. 하지만 이 경기를 제외한 왕하오와의 경기는 전부 패배했다.[6] 하지만, 흔히 오상은이 파워가 약하다는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오상은과 마롱의 2009 Liebherr Men´s World Cup 경기를 보면 볼의 파워나 속도는 2009년 당시에도 세계 1위 였던 22살의 마롱과 큰 차이가 없었다. 오상은이 중진 랠리에서 중국선수들에 비해 밀렸던 원인은 파워의 부족함이라기보다는 그저 중국선수들의 공격랠리와 풋워크와 운동능력이 더 뛰어나서였다. 실제로 오상은은 마린을 상대로도 약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상은은 2006년 그랜드 파이널 결승전과 2006 아시안게임 결승전, 그리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8강에서 마린에게 패배한 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