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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 아테네 | 1900 파리 | 1908 런던 | |||
<rowcolor=#202020,#DFDFDF> 6회 | 7회 | 8회 | 9회 | 10회 | |
[[벨기에|]] | [[프랑스 제3공화국|]] | [[네덜란드|]] | [[미국|]] | ||
1924 파리 | |||||
<rowcolor=#202020,#DFDFDF> 11회 | 12회 | 13회 | 14회 | 15회 | |
[[나치 독일|]] | [[영국|]] | [[핀란드|]] | |||
1936 베를린 | 1948 런던 | 1952 헬싱키 | |||
<rowcolor=#202020,#DFDFDF> 16회 | 17회 | 18회 | 19회 | 20회 | |
[[호주 자치령|]] | [[이탈리아|]] | [[일본|]] | [[멕시코|]] | [[서독|]] | |
1956 멜버른 | 1960 로마 | 1964 도쿄 | 1972 뮌헨 | ||
<rowcolor=#202020,#DFDFDF> 21회 | 22회 | 23회 | 24회 | 25회 | |
[[캐나다 자치령|]] | [[소련|]] | [[미국|]] | [[대한민국|]] | [[스페인|]] | |
1988 서울 | |||||
<rowcolor=#202020,#DFDFDF> 26회 | 27회 | 28회 | 29회 | 30회 | |
[[미국|]] | [[호주|]] | [[그리스|]] | [[중국|]] | [[영국|]] | |
2000 시드니 | 2004 아테네 | 2008 베이징 | 2012 런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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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 [[일본|]] | [[프랑스|]] | [[미국|]] | [[호주|]] | |
2020 도쿄(연기) | 2024 파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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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6 미정 | 2040 미정 | 2044 미정 | 2048 미정 | 2052 미정 | |
역대 동계올림픽 / 역대 하계패럴림픽 / 역대 동계패럴림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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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fff>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 | |
제9회 올림픽 경기대회 Spelen van de IXe Olympiade Olympische Zomerspelen 1928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 경기대회 Games of the IX Olympiad™ Amsterdam 1928 | |
[1] | |
<colbgcolor=#4a3923> 대회기간 | 1928년 7월 28일 ~ 8월 12일 |
개최국 | [[네덜란드| ]][[틀:국기| ]][[틀:국기| ]] 암스테르담 |
참가국 | 46개국 |
참가선수 | 2,883명[2] |
경기종목 | 14개 종목, 109개 세부 종목 |
개회선언 |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하인리히 네덜란드 국왕 빌헬미나 여왕의 부군 |
선수 선서 | 하리 데니스 |
개·폐회식장 | 암스테르담 올림픽 스타디움 |
[clearfix]
1. 개요
1928년 7월 28일부터 8월 12일까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개최된 제9회 하계올림픽. 참가국도 많이 늘어나는 등 올림픽이 국제적인 권위와 명성을 갖춘 대회로 정착했음을 다시금 보여주었다.당시 네덜란드에선 판퇴일 남작을 중심으로 올림픽 유치를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독실한 기독교도였던 빌헬미나 여왕이 "이교도들의 행사가 네덜란드 땅에서 재현된다니 망측하도다"며 반대 의사를 내비쳐 난항을 겪었다. 그러나 정치권의 노력과 국민들의 성원 덕분에 간신히 유치에 성공하였다.
최초로 설치된 400m 트랙 위로 46개국 남자 2724명, 여자 209명의 선수가 입장했다. 사상 최초로 여자 육상 경기가 거행되었으며 스타디움 상단엔 최초의 성화가 등장하였다. 개회식에는 올림픽에 일생을 바친 쿠베르탱의 병석 메세지가 전달되어 숙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남자 장거리는 여전히 핀란드가 휩쓸었지만, 단거리의 미국은 400m 릴레이 외의 트랙 전종목에서 참패했다.
2. 경기 종목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 종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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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메달 집계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 메달 집계 최종 집계 | |||||||||||
<rowcolor=#000,#ffffff> 순위 | 국가 | 메달 | 합계 | ||||||||
금 | 은 | 동 | |||||||||
1 | [[미국|]] 미국 | 22 | 18 | 16 | 56 | ||||||
2 | [[바이마르 공화국|]] 독일 | 10 | 7 | 14 | 31 | ||||||
3 | [[핀란드|]] 핀란드 | 8 | 8 | 9 | 25 | ||||||
4 | [[스웨덴|]] 스웨덴 | 7 | 5 | 7 | 19 | ||||||
5 | [[이탈리아 왕국|]] 이탈리아 | 8 | 3 | 5 | 16 | ||||||
6 | [[스위스|]] 스위스 | 7 | 4 | 4 | 15 | ||||||
7 | [[프랑스 제3공화국|]] 프랑스 | 6 | 10 | 5 | 21 | ||||||
8 | [[네덜란드|]] 네덜란드 | 6 | 9 | 4 | 19 | ||||||
9 | [[헝가리 왕국(1920~1946)|]] 헝가리 | 4 | 5 | 0 | 9 | ||||||
10 | [[캐나다 자치령|]] 캐나다 자치령 | 4 | 4 | 7 | 15 | ||||||
11 | [[영국|]] 영국 | 3 | 10 | 7 | 20 | ||||||
12 |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 3 | 3 | 1 | 7 | ||||||
13 | [[덴마크|]] 덴마크 | 3 | 1 | 2 | 6 | ||||||
14 | [[체코슬로바키아|]] 체코슬로바키아 | 2 | 5 | 2 | 9 | ||||||
15 | [[일본 제국|]] 일본 | 2 | 2 | 1 | 5 | ||||||
16 | [[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 | 2 | 1 | 2 | 5 | ||||||
17 | [[이집트 왕국|]] 이집트 | 2 | 1 | 1 | 4 | ||||||
18 |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 오스트리아 | 2 | 0 | 1 | 3 | ||||||
19 | [[호주|]] 호주 자치령 | 1 | 2 | 1 | 4 | ||||||
[[노르웨이|]] 노르웨이 | 1 | 2 | 1 | 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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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제2공화국|]] 폴란드 | 1 | 1 | 3 | 5 | |||||||
23 | [[남아프리카 연방|]] 남아프리카 연방 | 1 | 0 | 2 | 3 | ||||||
24 | [[인도 제국|]] 영국령 인도 제국 | 1 | 0 | 0 | 1 | ||||||
[[아일랜드 자유국|]] 아일랜드 | 1 | 0 | 0 | 1 | |||||||
[[뉴질랜드|]] 뉴질랜드 자치령 | 1 | 0 | 0 | 1 | |||||||
[[스페인 왕정 복고|]] 에스파냐 | 1 | 0 | 0 | 1 | |||||||
[[우루과이|]] 우루과이 | 1 | 0 | 0 | 1 | |||||||
29 | [[벨기에|]] 벨기에 | 0 | 1 | 2 | 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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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국가독재|]] 포르투갈 | 0 | 0 | 1 | 1 |
4. 특징
이 때부터 성화제도가 생겨서 올림픽 성화를 피우게 되었다. 다만 성화만 피웠으며, 올림피아에서 개최국까지 성화를 들고 오는 성화 봉송은 1936 베를린 올림픽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올림픽 입장 때 그리스 선수부터 입장하는 것이 이 대회를 계기로 확립되었다.몇 달씩 늘어지는 기존 대회 운영에 참다못한 IOC가 암스테르담 대회부터 공식 규정으로 경기 일정을 최대 16일로 제한하였다.[3]
10,000m 결승에서는 핀란드의 두 숙적 파보 누르미와 리톨라가 다시 만난다. 누르미는 리톨라를 누르고 30분 18초 8이라는 믿을 수 없는 기록으로 우승했는데, 전 대회의 우승자이자 세계 신기록 보유자인 리톨라에게는 그야말로 굴욕적 순간이었다.[4] 그리하여 누르미는 1920년대에 걸쳐 열린 3차례의 올림픽에서 연속으로 금메달을 따내는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이것이 누르미가 올림픽에서 획득한 9번째이자 마지막 금메달이 되었다.
반대하는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을 굴복시키고 여자부 육상이 최초로 올림픽에 도입된 대회였다. 여자 육상 최초의 금메달은 100m의 엘리자베스 로빈슨(미국). 너무 긴장한 나머지 출발 신호를 어겨 실격당한 캐나다 선수는 잔디밭에 주저앉아 30분 동안 통곡하는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여자 육상 800m에서는 많은 선수들이 지쳤거나 경기를 마치지 못했다는 일부 보도로 인해(논쟁 있음) IOC가 "여자들에게는 800m가 너무 멀다"고 간주해 800m 종목을 없애버렸다. 여자 800m는 1960 로마 올림픽에서야 다시 도입되었다.
이 대회 삼단뛰기에서 우승한 일본의 오다 미키오(1905~1998)는 아시아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었으며, 일본은 다음 LA 대회에서 금메달 7개를 따내 일약 5위로 올라서는 기염을 토하며 세계 스포츠계의 신흥 강자로 부상했다.
오다 미키오의 아시아 최초의 금메달과 더불어 아시아 최초의 단체종목 금메달도 탄생했으며, 올림픽 사각지대였던 아시아 팀들이 서서히 두각을 나타냈다. 처음으로 올림픽 하키 경기에 출전한 인도 대표팀[5]은 화려한 개인기를 앞세워 거뜬히 우승, 앞으로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 이웃 파키스탄에 왕좌를 넘겨줄 때까지(어차피 파키스탄도 영국령 인도의 후신이긴 하다.) 28년 동안 6연속 제패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또한 36년 베를린 올림픽까지 3연패의 견인차 된 20세기 최고의 하키영웅 이안 찬드가 이 대회로 올림픽에 데뷔했다.
독립선수단 출격 자격을 부여 받은 인도와는 달리 이 대회에서부터 식민지 국가들의 대표팀이 다른 나라의 국기를 달고 나오는 경우가 존재했으며, 남자 마라톤에서 프랑스 지배 하에 놓여졌던 알제리 출신 부게라 엘 우아피가 프랑스 대표로 출전하여 우승하였다.
우루과이도 축구에서 2연속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 경력과 파격적인 조건으로 1회 월드컵 개최권을 따냈고, 거기서도 우승했다.
결승전에서 당대의 양대산맥인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과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이 맞붙었고 여기서 우루과이가 승리해서 금메달을 차지했는데 2년후 개최된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에서도 같은 결과가 났다.
1차 대전의 동맹국으로 전대회 불참 수모를 당한 독일이 참가했으나 관중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이에 약이 오른 독일 선수들은 일부 종목에서 난투극을 벌였는데 오히려 체면만 더 깎이고 말았다.
한편 차기 대회의 개최국으로 예정되어 있던 미국은 철저히 이 대회를 이용해 자국의 우위를 자랑하려고 했다. 특히 미국 선수단의 단장으로 참가한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올림픽을 '국력의 평가장'이라 부르며 선수들에게 비밀 훈련을 시켰다.
정크 푸드의 대명사로 불렸던 코카콜라가 올림픽 최초의 스폰서가 된 대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