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바브웨 대통령| 짐바브웨 대통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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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무가베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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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 제2대 대통령 로버트 게이브리얼 무가베 Robert Gabriel Mugab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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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6400><colcolor=#ffffff> 출생 | 1924년 2월 21일 | ||
남로디지아 식민지 쿠타마[1] | |||
사망 | 2019년 9월 6일 (향년 95세) | ||
싱가포르 글렌이글스 병원 | |||
재임기간 | 초대 총리 | ||
1980년 4월 18일 ~ 1987년 12월 31일 | |||
제2대 대통령 | |||
1987년 12월 31일 ~ 2017년 11월 21일 |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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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1965
1965~1979
1979
1979~2017 | |
가족 | 아버지 가브리엘 마티비리(Gabriel Matibiri) 배우자 그레이스 무가베 (1996년 결혼) 슬하 4명 | ||
학력 | 쿠타마 칼리지 (교사 연수 과정 / 졸업)[2] 포트헤어 대학교 (역사학 · 영문학 / 학사) 남아프리카 대학교 (경영학 · 교육학 / 학사) 런던 대학교 국제 프로그램 (경제학 · 법학 / 학사) 런던 대학교 국제 프로그램 (경제학 · 법학 / 석사) | ||
신장 | 173cm, 78kg[3] | ||
종교 | 가톨릭 | ||
소속정당 | 짐바브웨 아프리카 국민연합 - 애국전선 (1987–2019) 짐바브웨 아프리카 국민연합 (1963–1987) 짐바브웨 아프리카 인민연합 (1961–1963) 국민민주당 (1960–1961) | }}}}}}}}} |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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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0세 당시의 모습 |
짐바브웨의 전 지도자이자 독재자이다.
한 때에는 백인의 식민통치에 저항하며 무장 독립운동을 주도해 짐바브웨를 백인들로부터 해방시킨 독립운동가였지만, 대통령으로 집권한 후에는 잔혹한 대학살과 초인플레이션을 위시한 경제 파탄, 부정부패로 얻은 돈으로 누빈 사치 등으로 말그대로 국가 자체를 그냥 말아먹어버려서 국제적인 지탄을 받는 독재자로 아프리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악명높은 독재자로 불린다.[4]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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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3. 아내 그레이스 무가베
말년에 무가베가 가장 신임하던 사람은 바로 배우자 그레이스 무가베(Grace Mugabe, 1965~)였다고 한다. 그레이스 무가베는 로버트 무가베의 말년에 고령의 남편을 대체해 사실상 짐바브웨를 지배했던 인물로 꼽힌다.
원래 무가베의 첫 번째 아내는 샐리 무가베였는데, 이전에 무가베는 어려운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집에 돌아가 샐리와 상의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애처가였다. 그러나 무가베는 짐바브웨 대통령 사무실의 타이피스트였던 그레이스와 불륜 관계를 가졌고, 이 불륜을 알아차린 샐리가 이들의 불륜을 저지하려 했지만 샐리는 병에 시달려서 몸 상태가 말이 아닌 상태였고, 결국 첫 아내 샐리가 사망한 후 1996년 그레이스는 무가베와 결혼했다. 무가베보다 41세 연하의 1965년생인 그레이스는 짐바브웨의 영부인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서 ZANU PF의 여성연맹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며 당내에서 정치적 입지를 다져 현재에 이르렀다. 그와 함께 2014년에 하라레의 공립 대학교 '짐바브웨 대학교'에 입학한 지 단 2개월 만에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믿기가 힘들 정도로 박사 학위를 빨리 딴 것이 의심스럽다고 한다. 더욱이 무가베가 아내에게 학위를 수여했다고 하는데, 짐바브웨 대학교의 총장은 짐바브웨 대통령이 겸임한다는 것을 감안해도 수상한 감이 있다.
사치스럽기로 악명이 자자한데, 실제로 그레이스는 저소득층 주민의 주택을 짓기 위한 예산을 횡령해 고급 주택을 지어 구설수에 오르는 것은 물론, 쇼핑을 좋아해서 세간에선 '구찌 그레이스'로도 불린다. 그레이스는 2014년 초에 딸의 결혼식에 무려 51억 7천만 원을 쏟아부어서 수많은 짐바브웨 국민들이 굶어죽어가는데 저렇게 돈을 쓰냐는 비판을 받았다. 더군다나 짐바브웨는 빈곤 때문에 소녀들이 10~15살의 어린 나이로 나이 많은 남자에게 팔려가다시피 하는 조혼 문제도 심각한 나라이다. 같은 나라에서 누군가는 돈 때문에 딸을 파는데 누군가는 딸의 결혼식 때문에 수십억을 쓰다니 분노하는 게 당연하다. 또한 성격도 까탈스럽고 이기적인지라 2009년 홍콩에서 명품들을 사며 쇼핑을 하다가 자신을 촬영하던 영국인 사진기자를 자기 맘에 안 든다고 폭행해서 폭행 혐의로 입건되었다가 합의금을 주고 풀려난 적도 있었다.
2015년에는 자신의 농장에서 생산되는 우유를 네슬레에서 더이상 구매하지 않기로 하자 이를 소모하기 위해 알파오메가라는 아이스크림, 초콜릿 회사를 설립하는가 하면# 그해 11월, "내가 특수 휠체어를 만들어 밀고 다니면서 무가베 대통령의 집권을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무가베 대통령은 2014년 12월 연설에서 (집권당인) ZANU-PF 반대"라고 외쳐 사실상 판단능력을 상실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레이스 무가베는 2018년 대선에서 ZANU-PF 후보로 나설 것임을 이미 밝힌 바 있는데, 무가베 대통령보다 41살이나 어린 50세의 그레이스 무가베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무가베 대통령만큼 장기집권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창기라이 전 총리는 수렴청정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다만 군부의 수장이자 부통령인 에머슨 음낭가과가 계승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 변수.
2016년 12월 26일에 그레이스는 짐바브웨의 채무를 상환하기 위해 국립공원 야생동물들을 중국으로 보냈다.# 그리고 그레이스는 그나마 좀 살기나은 밑동네 남아공에도 저택이 있고 또 자주 남아공을 방문하는데 2017년 8월에는 발목염좌를 치료하기 위해 남아공을 방문했다가 자기 아들의 친구이자 현재 남아공에서 활동하는 모델인 가브리엘라 엔젤스를 폭행했다고 한다.# 엔젤스는 2017년 만 스무살이 조금 넘었고 그레이스에게 단순히 몇 대 맞은 정도가 아니라 얼굴에 심한 흉터가 남을 정도로 상해를 당했다고 하여 남아공 국민들은 우방국 영부인이라지만 자국민이 그리 당했으니 그레이스의 처벌을 강력히 요구했지만 남아공 정부에서는 외교관 신분은 치외법권을 적용받는다는 이유로 그레이스를 그냥 짐바브웨로 귀국시키는 정도로 끝나 논란이 있었다. 사실 외교관 신분도 아니었지만 이는 남아공의 집권당 ANC 나 짐바브웨의 ZANU-PF 도 예전 백인정권과 싸울 때 서로 협력했던 역사가 있어 마치 한미동맹, 내지 북중동맹까지 군사동맹은 아니더라도 유대감이 곤고한 편이다. 그러하기에 남아공은 무가베가 유엔에서 인권유린으로 욕먹어도 변호하는 입장을 취했고.
2017년 11월 15일 군부 쿠데타가 발발하면서 그레이스의 승계야망은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애초에 그레이스는 독립운동으로 지지 기반이 있었던 무가베와는 달리 정통성이나 별다른 공적도 없었던지라 국민들 사이에서도 반발이 상당했고, 그레이스의 라이벌이었던 에머슨 음낭가과가 축출되면서 음낭가과를 밀고 있던 군부가 반발한 것이 쿠데타의 원인이기 때문에 복권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11월 21일에 남편이 하야함에 따라 권력 세습의 가능성은 없어졌다고 봐도 무방할 듯 하고 그나마 엘레나 차우셰스쿠나, 장칭 같은 최후는 안 맞았으니 오히려 그레이스 본인에게는 다행이라 할 수 있겠다.
공식적인 키는 불명이지만, 두 번째 사진에서 173cm의 무가베와 엇비슷하게 나온 걸 보면 여성으로서는 장신이다.
4. 기타
- 이웃나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국부 넬슨 만델라와는 생전 인종차별에 대항한 투사라는 공통점으로 친분이 깊었는데 만델라는 마음이 잘 맞는 동지였던 무가베가 독재자로 타락하는걸 매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비록 만델라가 말년에 무가베를 직접 비판할 정도로 사이가 조금 벌어지긴 했지만, 만델라의 장례식에도 직접 참석했다. 그리고 무가베와 만델라 둘 다 같은 95세에 사망했다.
- 1994년에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바스 훈장을 수여받았으나, 2008년 대선 결선투표 이틀 전이던 2008년 6월 25일에 '짐바브웨의 인권 탄압에 대한 혐오와 민주주의 과정에 대한 철저한 무시'를 이유로 훈장을 박탈당했다. 참고로 영국의 훈장을 박탈당한 사람은 무가베 외에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유일하다.
- 2015년에는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짐바브웨의 독립을 이뤄냈다'는 명목으로 중국의 민간단체에서 한때 수여하던 정체불명의 상인 공자평화상 제6회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으나, 무가베 본인은 이 상을 받는 것을 거부했다.
- 말년에는 집권 초만큼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고 하며, 심지어 각료 회의 시 코를 골며 자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한다.
- 무가베 사후인 2023년 차남인 로버트 무가베 주니어가 하라레 교외에서 열린 파티에 참여해 차량 전면유리를 깨뜨리는 등 난동을 부리며 미화 12,000달러(약 1,500만 원)의 피해를 입혔다는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물론 본인은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 2022년 9월 18일 짐바브웨의 유명 저널리스트 호프웰 친오노(Hopewell Rugoho-Chin'ono)가 트위터 투표를 올린 바에 따르면 투표 참여자 중 무려 74%가 이언 스미스를 짐바브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뽑았다. 무가베는 21%[5][6], 음낭가과는 5%에 그쳤다. 친오노는 이에 대해 "식민지 지배의 고통을 겪은 우리들은 ZANU-PF가 이안 스미스보다 더 나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슬프다."고 평했다.#
5. 둘러보기
짐바브웨의 역대 총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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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現 짐바브웨 서마쇼날랜드 주 쿠타마[2] 짐바브웨 노턴에 위치한 가톨릭 계열 사립 기숙 고등학교이며, 무가베는 여기서 교사 연수 과정을 거쳤다. 또한 재학 중 학비를 벌기 위해 졸업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3] 출처[4] 아프리카에서 이와 견줄만한 독재자로는 이디 아민이랑 오마르 알바시르정도다.[5] 허나 저렇게 나라를 박살냈는데도 국민 1/5이 여전히 무가베를 지지하는 것부터가 독립영웅 무가베의 이미지를 그리워하는 짐바브웨인들도 많다는 증거다.[6] 다만 2024년 1월 기준으로도 짐바브웨의 인터넷 보급률은 32.6%인지라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어느 정도의 재력을 갖춘 사람들의 의견이 과표집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