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07 18:20:17

유니세프

파일:나무위키+하위문서.png   하위 문서: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bel_Prize.png 노벨평화상 수상자
{{{#!folding 20세기
{{{#!wiki style="margin: -11px; margin-top: -6px; margin-bottom: -16px"
1901년 1902년 1903년 1904년 1905년
장 앙리 뒤낭
프레데리크 파시
엘리 뒤코묑
샤를 알베르 고바
윌리엄 크리머 국제법학회 베르타 폰 주트너
1906년 1907년 1908년 1909년 1910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르네스토 모네타
루이 르노
클라스 아르놀드손
프레드리크 바예르
데스투르넬 드 콩스탕
오귀스트 베르나르트
국제평화국
1911년 1912년 1913년 1914년 1915년
토비아스 아서르
알프레트 프리트
일라이휴 루트 앙리 라퐁텐 수상자 없음
1916년 1917년 1918년 1919년 1920년
수상자 없음 국제적십자사 수상자 없음 우드로 윌슨 레옹 부르주아
1921년 1922년 1923년 1924년 1925년
칼 브란팅
크리스티안 랑에
프리드쇼프 난센 수상자 없음 오스틴 체임벌린
찰스 도스
1926년 1927년 1928년 1929년 1930년
아리스티드 브리앙
구스타프 슈트레제만
페르디낭 뷔송
루트비히 크비데
수상자 없음 프랭크 켈로그 나탄 쇠데르블룸
1931년 1932년 1933년 1934년 1935년
제인 애덤스
니컬러스 머리 버틀러
수상자 없음 노먼 에인절 아서 헨더슨 카를 폰 오시에츠키
1936년 1937년 1938년 1939년 1940년
카를로스 사베드라 라마스 로버트 개스코인 세실 난센국제난민 사무국 수상자 없음
1941년 1942년 1943년 1944년 1945년
수상자 없음 국제적십자사 코델 헐
1946년 1947년 1948년 1949년 1950년
에밀리 그린 볼치
존 모트
미국 퀘이커 봉사위원회
영국 퀘이커 봉사협회
수상자 없음 보이드 오어 랠프 번치
1951년 1952년 1953년 1954년 1955년
레옹 주오 알베르트 슈바이처 조지 C. 마셜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 수상자 없음
1956년 1957년 1958년 1959년 1960년
수상자 없음 레스터 B. 피어슨 도미니크 조르주 피르 필립 노엘 베이커 앨버트 루툴리
1961년 1962년 1963년 1964년 1965년
다그 함마르셸드 라이너스 폴링 국제적십자사 마틴 루터 킹 유엔아동기금
1966년 1967년 1968년 1969년 1970년
수상자 없음 르네 카생 국제 노동 기구 노먼 볼로그
1971년 1972년 1973년 1974년 1975년
빌리 브란트 수상자 없음 헨리 키신저
레득토 (수상 거부)
숀 맥브라이드
사토 에이사쿠
안드레이 사하로프
1976년 1977년 1978년 1979년 1980년
베티 윌리엄스
마레드 코리건
국제앰네스티 안와르 사다트
메나헴 베긴
마더 테레사 아돌포 페레스 에스키벨
1981년 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 알바 뮈르달
알폰소 가르시아
레흐 바웬사 데즈먼드 투투 핵전쟁방지국제의사회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엘리 비젤 오스카 아리아스 유엔 평화유지군 달라이 라마 14세 미하일 고르바초프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아웅산수지 리고베르타 멘추 넬슨 만델라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
이츠하크 라빈
시몬 페레스
야세르 아라파트
조지프 로트블랫
퍼그워시 회의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카를루스 벨루
조제 하무스 오르타
지뢰금지국제운동
조디 윌리엄스
존 흄
데이비드 트림블
국경없는의사회 김대중 }}}}}}
{{{#!folding 21세기
{{{#!wiki style="margin: -6px -11px"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유엔
코피 아난
지미 카터 시린 에바디 왕가리 마타이 국제원자력기구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그라민 은행
무함마드 유누스
앨 고어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
마르티 아흐티사리 버락 오바마 류샤오보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엘런 존슨 설리프
리마 보위
타우왁쿨 카르만
유럽연합 화학무기금지기구 말랄라 유사프자이
카일라시 사티아르티
튀니지 국민4자대화기구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후안 마누엘 산토스 핵무기 폐기 국제운동 드니 무퀘게
나디아 무라드
아비 아흐메드 알리 }}}}}}

유엔아동기금
United Nations Children's Fund(UNICEF)

1. 소개

"이 세상에 적국의 아이는 없다.(There are no enemy children.)"
유니세프 초대 전무 이사, Maurice Pate

유니세프, 또는 유엔아동기금은 1946년 12월 11일, 유엔총회의 결의에 따라 전쟁 피해 아동과 청소년들의 구호를 위해 설립된 기구이다. 처음 명칭은 유엔국제아동구호기금(United Nations International Children's Emergency Fund)이었으며, 이를 줄여서 유니세프(unicef)라고 하였다. 1953년에 현재의 명칭[1]으로 바꿨으나, unicef라는 약칭은 그대로 쓰기로 했다. 특이하게도 여러 매체에서는 약칭을 대문자로 표기하지만 유니세프 자체적으로는 항상 소문자로만 표기한다.

1965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당시 수상자 대표로 참석한 사람은 유니세프 설립의 공로자인 헨리 라부아스 주니어(Henry Richardson Labouisse Jr.)이다.

2. 활동

초창기에는 주로 유럽미국에서 수금 활동을 하였고, 이후 전세계 많은 국가들로 활동 영역이 넓어졌다. 주요 역할은 성금 접수, 상품 판매 후 수익금 일부 적립, 자선 콘서트 등등을 통해 기금을 모아 가난한 개발도상국이나 제3세계 국가들의 빈민 가정 아동들을 위한 구호품을 공급하는 것이다.
각국의 조직은 크게 둘로 나뉜다.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개발도상국에는 국가사무소(Country Office)를, 선진국 33개국에는 유니세프 국가위원회(UNICEF National Committee)라는 선진국형 조직을 설치 및 운영한다. 참고로 대한민국은 유니세프 국가사무소가 설치된 국가에서 국가위원회가 설치된 국가로 변경된 유일한 국가이다. 이 말은 즉 회원국 중 유일하게 수혜국에서 지원국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단체 홍보를 위해서 FC 바르셀로나와 맺은 제휴가 잘 알려져 있다. 2006년경의 일로 향후 5년간 연수익의 0.7%정도인 약 200만 유로를 FC 바르셀로나가 유니세프에 기부하고, 유니폼에 유니세프 로고를 새겨 홍보까지 하는 식.[2] 일반적으로는 돈을 주는 구단 스폰서의 이름을 유니폼에 달고 뛰는 것을 생각하면, 독특한 형식이라 하겠다. FC 바르셀로나 외에도 스코틀랜드글래스고 레인저스 FC,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 같은 다른 나라의 단체들과도 이런 식으로 홍보를 하고 있다. 항공사 중에도 아시아나항공이나 일본항공은 FC 바르셀로나처럼 돈 내고 유니세프 로고를 동체에 그려넣고 있다. 즉, 오히려 유니세프 표식을 사서 쓰는 것.

홍보 차원에서 여러 유명인사들이 유니세프를 홍보해 주는데 김혜수, 신경숙, 안성기, 정명화, 앙드레 김, 박완서 등이 한국 유니세프의 친선대사이다. 국제친선대사로 정명훈김연아[3]가 활동 중. 사실 친선대사 아니더라도 카드팔이로 매우 유명하다. 1948년에 도와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어린이들이 보낸 카드에 크게 감동받아서 이듬해부터는 어린이 그림으로 엽서와 카드를 만들어서 팔기 시작했다고. 카드 디자인은 나라마다 약간씩 다른 것으로 보인다. 미국보다는 한국 카드가 예쁜 듯.

일단 국제단체고 UN 산하인 만큼, 성금에 대한 사용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된다. 만약 자신이 정기 후원자라면 매년 1년치 정산표 + 활동내역 + 대표의 감사편지를 받게 된다. 이 편지는 분기마다 오는 경우도 있다.

큰 후원을 받으면 단체명이나 성격에 상관없이 직접 감사패를 전달하는 걸로도 유명한데, 최근 김연아 팬클럽이 기부를 하자, 장문으로 팬클럽명을 일일이 감사패에 적어서 팬클럽 회장한테 전달한 게 짤방으로 퍼지기까지 했다.

3. 논란과 비판

어린이에게 원조를 하는 일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그 어린이의 인생을 망치는 사례가 발생한다. 스스로 벌어먹을 생각을 안 하고 유니세프의 구호품만 기다리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세이브더칠드런에서는 염소를 키우도록 한 마리씩 줘서 나중에 스스로 돈을 벌어 자립하도록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유니세프는 '공평한 구호'를 기치로 오히려 1:1 구호를 하지 않음을 자랑스러워한다.

또한, 입양 가능한 어린이들을 입양되지 못하게 계속해서 보육시설에 수용시킨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하버드 대학 법과대학 엘리자베스 발톨렛 교수에 의하면, 유니세프는 어린이들이 모국에 머물 권리를 강조하는 헤이그 협약을 각 국가에 강요함으로써 국제 입양 감소를 유도했고, 이는 수많은 어린이들이 입양되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의 고아원에 방치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한다.[4]

낙태와 관련하여 부정적 입장을 취하는 종교계와 갈등을 겪기도 했다. 유니세프가 후원하는 세계모성보건회의는 낙태 기구 및 약품을 '모성보건물품'에 포함시켰고, 유니세프가 2006년 니카라과, 2009년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낙태가 합법화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보고가 있다. 이에 가톨릭 교회 등 종교계에서 상당한 반발을 하였고, 교황청2011년 유니세프에 대한 지원 중단을 선언했다.[5] 다만, 이에 대해 유니세프는 공식적으로 “유니세프는 피임기구와 낙태를 제공하지 않으며, 낙태를 가족계획 방법으로 지지하지 않는 것이 유니세프의 불변하는 장기적 정책”이라는 입장 발표를 하였다.[6]

또한 WHO 8대 총장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태업 논란을 계기로 유니세프 등의 국제기금과 후원금을 대놓고 에티오피아 독재 정권에 횡령시키고 반환 요청마저 무시하였다는 것이 드러나, 과연 유니세프 등의 국제봉사단체들의 후원금이 아프리카 등의 가난한 지역 및 불우가정에 잘 전달되고 있는지 투명성과 실효성에 의문이 드는 상황이다.

3.1. 한국위원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유니세프한국위원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홍보대사

2015년 11월 기준.

4.1. 국제친선대사

4.2. 한국위원회 친선대사

4.3. 특별대표


[1] United Nations Children's Fund, 유엔아동기금[2] 사실 바르셀로나의 유니폼은 시민 구단이라는 자존심과 역사 때문에 백 년 넘는 역사 동안 스폰서를 기재하지 않았다.[3] 전세계에서 여성 동계 운동선수로서는 최초다. 유니세프가 동계 운동선수를 국제친선대사로 임명한 전례가 없었다. 게다가 유니세프 국제친선대사로서는 최연소로 임명되었다.[4] 기사[5] 기사[6] 유니세프 입장 원문: “UNICEF does not provide contraceptive supplies. UNICEF has never provided support for abortion and it continues to be the long-standing UNICEF policy not to support abortion as a method of family plan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