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8 15:22:53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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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뉴델리
1954
마닐라
1958
도쿄
1962
자카르타
1966
방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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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방콕
1974
테헤란
1978
방콕
1982
뉴델리
1986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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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베이징
1994
히로시마
1998
방콕
2002
부산
2006
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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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광저우
2014
인천
2018
자카르타·팔렘방
2022
항저우
(연기)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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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도하
2034
리야드
2038
미정
2042
미정
2046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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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제12회 아시안 게임
第12回アジア競技大会™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1994年アジア競技大会
XII Asian Games
Hiroshima 1994
파일: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로고.svg
대회 기간 1994년 10월 2일 ~ 1994년 10월 16일
개최국
[[일본|]][[틀:국기|]][[틀:국기|]] / 히로시마
슬로건 アジアハーモニー
Asian Harmony

(아시아의 조화)
마스코트 포포&쿠쿠
참가국 42개국
참가 인원 6,824명
경기 종목 34개 종목 - 338개 세부 종목
개회 선언 아키히토
일본 천황
성화점화 아키 이치조, 우치토미 야스노리
개·폐회식장 에디온 스타디움 히로시마
1. 개요2. 경기3. 메달 순위4. 대한민국의 메달 현황
4.1. 메달 현황4.2. 세부 종목 메달 현황
4.2.1. 금메달4.2.2. 은메달4.2.3. 동메달
5. 대한민국 측 공식스폰서6. 비판 및 논란7. 여담

[clearfix]

1. 개요

1994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개최된 아시안 게임. 원자폭탄이 떨어진 지역에서 개최되는 스포츠 경기라 대회 시작 전에도, 대회 시작 이후에도 온갖 논란이 벌어졌다.[1]

2. 경기

1991년 소련의 해체와 동시에 독립한 중앙아시아 5개 공화국인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이 독립 후 처음으로 참가하였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은 종합 4위, 5위를 차지하였으며, 우즈베키스탄은 준결승전에서 대한민국을, 결승전에서 중국을 연달아 꺾고 축구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 대회부터 중앙아시아 5개국이 참가하기 시작한 것은 직전 대회까지 레슬링과 복싱에서 강세를 보였던 대한민국의 메달전선에 큰 영향을 끼쳤다.

남자 마라톤의 우승자는 "몬주익의 영웅"으로 불리는 코오롱 사단 멤버 황영조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일본 선수를 꺾고 우승을 차지해 56년만에 '일장기의 한'을 푼 그는, 보란 듯이 평화기념관에 골인했다.

남자 축구와 여자 농구, 여자 배구에서 한일전이 열렸다. 특히 남자 축구는 8강전에서 2002년 월드컵 개최지 선정을 앞두고 FIFA 관계자들이 참관하는 가운데 대한민국이 난타전 끝에 유상철, 황선홍의 합작으로 3:2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야구, 근대 5종, 가라테,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이 처음으로 아시안 게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야구의 경우 대한민국은 은메달을 차지했고,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의 경우 솔로와 듀엣 종목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다.

대한민국이 3위를 차지한 대회다. 원래 대회 종료 시점에서는 중국에 이어 종합 2위였는데, 중국 선수 중 약물 복용자가 대거 적발되면서 금메달을 박탈당했다. 그리고 이 박탈된 금메달의 상당수를 일본이 승계하면서 대한민국은 대회가 끝나고서 종합 3위로 밀렸다.

여자농구 대표팀과 여자배구 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을 계기로 1990년대~2000년대 초반 세계구급으로 발돋움하는데 시초가 된 대회기도 했다. 당장에 일본·중국을 잡았던 것도 그렇지만, 특히 배구에서는 당대 백구대제전 최강이던 김철용 감독 휘하의 호유라인이 대거 국가대표팀으로 나서기도 하여 큰 주목을 받았다. 이들의 우승 순간은 호남정유 기업 PR 인쇄광고에 실리기도 했다.

3. 메달 순위

순위 국가명 합계
1 중국 125 83 58 266
2 일본 64 75 79 218
3 대한민국 63 56 64 183
4 카자흐스탄 27 25 27 79
5 우즈베키스탄 11 12 19 42
6 이란 9 9 8 26
7 대만 7 12 24 43
8 인도 4 3 15 22
9 말레이시아 4 2 13 19
10 카타르 4 1 5 10
11 인도네시아 3 12 11 26
12 태국 3 9 13 25
13 시리아 3 3 1 7
14 필리핀 3 2 8 13
15 쿠웨이트 3 1 5 9
16 사우디아라비아 1 3 5 9
17 투르크메니스탄 1 3 3 7
18 몽골 1 2 6 9
19 베트남 1 2 0 3
20 싱가포르 1 1 5 7
21 홍콩[2] 0 5 7 12
22 파키스탄 0 4 6 10
23 키르기스스탄 0 4 5 9
24 요르단 0 2 2 4
25 UAE 0 1 3 4
26 마카오 0 1 1 2
26 스리랑카 0 1 1 2
28 방글라데시 0 1 0 1
29 네팔 0 0 2 2
29 미얀마 0 0 2 2
29 브루나이 0 0 2 2
29 타지키스탄 0 0 2 2
4년전 아시안 게임에서 중국이 압도적인 1위를 한것이 운빨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대회였다. 하지만 전술하다시피 금메달을 무려 15개나 박탈당하는 도핑 파동이 벌어지면서 국가 망신과 대회 운영의 실패를 초래하고 말았다.

4. 대한민국의 메달 현황

4.1. 메달 현황

종목 합계
레슬링 10 1 6 17
사격 7 7 9 23
유도 7 3 4 14
볼링 4 4 3 11
배드민턴 4 3 0 7
태권도 4 0 0 4
육상 3 3 3 9
양궁 3 1 2 6
펜싱 2 3 4 9
역도 2 3 2 7
체조 2 3 2 7
정구 2 3 0 5
사이클 2 2 1 5
수영 2 1 6 9
복싱 2 1 0 3
하키 2 0 0 2
핸드볼 2 0 0 2
탁구 1 3 4 8
근대5종 1 1 1 3
농구 1 1 0 2
배구 1 0 1 2
카누/카약 0 2 5 7
테니스 0 2 2 4
골프 0 2 2 4
조정 0 1 3 4
승마 0 1 1 2
요트 0 1 1 2
우슈 0 1 1 2
야구 0 1 0 1
합계 63 56 64 183

4.2. 세부 종목 메달 현황

4.2.1. 금메달

메달 종목 세부 종목 이름
유도 여자 -52kg 현숙희
유도 여자 -56kg 정선용
유도 여자 -61kg 정성숙
유도 남자 -60kg 김혁
유도 남자 -78kg 윤동식
유도 남자 -71kg 정훈
유도 여자 -72kg 김미정
역도 남자 -59kg 전병관
역도 남자 +108kg 김태현
체조 남자 도마 여홍철
체조 남자 안마 이장형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48kg 심권호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74kg 한치호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100kg 송성일[3]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52kg 민경갑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62kg 최상선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68kg 김영일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90kg 엄진한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130kg 양영진
레슬링 남자 자유형 -100kg 김태우
태권도 남자 -54kg 진승태
태권도 남자 -78kg 정광채
태권도 남자 -67kg 김현용
태권도 남자 +84kg 김제경
배드민턴 여자 단식 방수현
배드민턴 여자 단체전 길경아 김지현 라경민 방수현 심은정 이홍순
장혜옥 정소영
배드민턴 혼합 복식 유용성 정소영
배드민턴 여자 복식 심은정 장혜옥
사격 여자 10m 공기소총 단체전 여갑순 오미란 이은주
사격 여자 10m 공기소총 개인전 이은주
사격 남자 50m 소총 3자세 단체전 이은철 차영철 최병우
사격 남자 10m 공기소총 단체전 김성수 김세호 채근배
사격 남자 50m 소총 3자세 개인전 이은철
사격 여자 스탠다드 소총 개인전 조은영
사격 여자 스탠다드 소총 단체전 공현아 서영민 조은영
복싱 남자 -75kg 이승배
복싱 남자 -54kg 염종길
볼링 여자 2인조 김숙영 김영심
볼링 여자 개인전 김숙영
볼링 여자 마스터즈 이지연
볼링 남자 5인조 김성주 민철기 변호진 서국 이윤재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 김상욱
펜싱 남자 플러레 단체전 김승표 김영호 김용국 유봉형 정수기
하키 남자 강건욱 구진수 김영귀 김윤진 김종이 박신흠 신석교 유명근
유문기 유승진 이정석 전종하 정용균 조명준 최저호 한병국
하키 여자 권수현 권창숙 김명옥 김수정 노영미 신유리 오승신 유제숙 이선영
이은경 이은영 이지영 장동숙 장은정 조은정 진덕산
핸드볼 남자 문병욱 백상서 윤경신 이기호 이민우 이상섭 이석왕 이석형
이선순 이학면 정강욱 정주성 조범연 조영신 조치효 허영선
핸드볼 여자 구애경 김랑 김미심 김은미 김정미 김현옥 남은영 문향자 백창숙
오성옥 오영란 이상은 이호연 차재경 허영숙 홍정호
근대 5종 남자 개인전 김명건
육상 남자 800m 이진일[4]
육상 남자 마라톤 황영조
육상 남자 4x100m 계주 김순형 손주일 이언학 이진일
정구 남자 복식 유명동 이명구
정구 여자 단체전 강지숙 박순정 박영아 윤선경 정순영
탁구 남자 복식 이철승 추교성
농구 여자 박현숙 손경원 유영주 윤영미 이희주 전주원 정선민 정은순 조혜진
천은숙 하숙례 한현선
배구 여자 강혜미 김남순 박수정 오윤경 이도희 이진영 장소연 장윤희 정선혜
정은선 주순란 홍지연
수영 남자 자유형 400m 방승훈
수영 남자 배영 200m 지상준
양궁 남자 개인전 박경모
양궁 남자 단체전 오교문 정재헌 한승훈
양궁 여자 개인전 이은경
사이클 남자 40km 포인트 조호성
사이클 남자 4km 단체추발 김종모 박민수 정영훈 지성환 홍석한

4.2.2. 은메달

메달 종목 세부 종목 이름
양궁 남자 개인종합 정재헌
사이클 남자 1km 독주 홍석한
사이클 남자 스프린트 개인전 현병철
수영 남자 4x200m 계영 방승훈 우원기 우철 지상준
승마 마장마술 단체전 서정균 신창무 최명진
야구 남자 강혁 권오영 김재걸 김종국 문동환 박재홍 백재호 손민한 안희봉
위재영 이병규 이영우 임선동 전병호 조경환 조성민 진갑용 차명주 최기문 홍원기
역도 남자 -108kg 정대진
역도 남자 -70kg 김학봉
역도 남자 -99kg 최동길
요트 남자 레이저급 진홍철
근대5종 남자 단체전 김명진 김미섭 정대성
농구 남자 전희철 허재 현주엽 정재근 강동희 김승기 김유택 김영만 이상민 문경은 오성식 서장훈
배드민턴 남자 단체전 강경진 김학균 박성우 안재창 유용성 이광진
이석호 하태권
배드민턴 여자 복식 길영아 정소영
배드민턴 혼합 복식 강경진 장혜옥
복싱 남자 -81kg 고영삼
볼링 남자 2인조 민철기 서국
볼링 남자 3인조 민철기 변호진 서국
볼링 여자 개인종합 김숙영
볼링 여자 마스터즈 김숙영
골프 여자 개인전 강수연
골프 여자 단체전 강수연 송채은 한희원
사격 남자 10m 공기소총 개인전 채근배
사격 남자 50m 소총 3자세 입사 개인전 이은철
사격 남자 25m 스탠다드 권총 개인전 박병택
사격 남자 트랩 개인전 박철승
사격 남자 25m 센터파이어권총 단체전 박병택 이기춘 이상학
사격 여자 스탠더드소총 3자세 단체전 공현아 서민영 조은영
사격 여자 스포츠권총 개인전 부순희
우슈 남자 전능권 박찬대
유도 남자 -95kg 김재식
유도 남자 무제한급 이준영
유도 여자 -66kg 조민선
육상 남자 높이뛰기 이진택
육상 여자 창던지기 이영선
육상 남자 400m 손주일
정구 남자 단체전 김태균 유영동 이명구 이석우 장한섭
정구 남자 복식 이석우 장한섭
정구 여자 복식 윤선경 정순영
탁구 남자 단체전 김택수 박상준 유남규 이철승 추교성
탁구 남자 복식 김택수 유남규
탁구 남자 단식 유남규
테니스 남자 단식 윤용일
테니스 남자 복식 김치완 정의종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 이효근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 김상욱 유상주 이수근 이현수 이효근
펜싱 여자 플러레 개인전 장미경
레슬링 남자 자유형 -62kg 장재성
조정 여자 무타페어 김정 선유선
체조 남자 단체전 여홍철 유옥렬 이장형 이주형 정진수 한광호 한윤수
체조 남자 링 유옥렬
체조 남자 평행봉 정진수
카누 남자 C-1 1000m 박창규
카누 남자 C-1 500m 박창규

4.2.3. 동메달

메달 종목 세부 종목 이름
레슬링 남자 자유형 -74kg 박장순
레슬링 남자 자유형 -130kg 김익희
레슬링 남자 자유형 -68kg 황상호
레슬링 남자 자유형 -82kg 김연수
레슬링 남자 자유형 -48kg 문명석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57kg 이태호
역도 여자 -50kg 최명식
역도 남자 -91kg 전용석
유도 여자 무제한급 문지윤
유도 남자 -86kg 김석규
유도 여자 +72kg 손현미
유도 여자 -48kg 김소라
펜싱 여자 플러레 개인전 이정숙
펜싱 남자 플러레 개인전 유봉형
펜싱 남자 플러레 단체전 구교동 박춘근 윤원진 이상기 이상엽
펜싱 여자 플러레 단체전 이정숙 이화영 임미경 장미경 전미경
테니스 여자 복식 박성희 최주연
테니스 혼합 복식 정의종 최주연
탁구 여자 복식 박해정 유지혜
탁구 여자 복식 김무교 김분식
탁구 혼합 복식 박해정 유남규
탁구 남자 단식 김택수
수영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 솔로 최정윤
수영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 듀엣 최유진 최정윤
수영 여자 4x100m 계영 배윤경 이보은 이지현 정원경
수영 여자 자유형 400m 정원경
수영 여자 혼계영 4x100m 변주미 이동숙 이보은 이지현
수영 남자 자유형 200m 우원기
승마 마장마술 개인전 신창무
양궁 여자 개인종합 한희정
양궁 여자 단체전 이은경 임정아 한희정
조정 남자 무타포어 오대진 윤상진 한재동 홍석호
조정 남자 에이트 김구현 김성수 김철원 김태욱 서대문 이강호 이기현
장현철 허회영
조정 여자 싱글스컬 김미정
배구 남자 김병선 김상우 김세진 김철수 박삼용 박종찬 박희상 신영철 이성희 임도헌 제희경 하종화
볼링 남자 개인종합 민철기
볼링 여자 3인조 김민정 김숙영 이지연
볼링 여자 5인조 김민수 김성희 김숙영 김영심 이지연
사격 남자 25m 속사권총 단체전 박병택 이상학 임장수
사격 남자 트랩 단체전 김태석 박철승 오금표
사격 남자 25m 센터파이어권총 개인전 박병택
사격 남자 50m 소총 3자세 개인전 종합 차영철
사격 남자 50m 소총 3자세 개인전 슬사 최병우
사격 남자 50m 소총 3자세 개인전 입사 차영철
사격 여자 10m 공기권총 단체전 박정희 부순희 이선복
사격 여자 10m 공기소총 개인전 여갑순
사격 여자 더블트랩 개인전 손혜경
골프 남자 단체전 김종철 김창민 안주환 허석호
골프 여자 개인전 송채은
근대5종 남자 개인전 김미섭
사이클 남자 1km독주 원창용
체조 여자 단체전 김윤지 박주영 박지영 오은미 지해성 한라정 허소영
체조 남자 도마 이주형
카누 남자 K-2 1000m 김수열 남성호
카누 남자 K-4 1000m 강기진 심병섭 이승민 정광수
카누 남자 K-4 500m 강기진 심병섭 이승민 정광수
카누 남자 C-2 500m 이승우 이충근
카누 여자 K-1 500m 최선영
요트 여자 미스트랄 주순안
우슈 남자 태극권 한경수
육상 남자 800m 김용환
육상 남자 마라톤 김재룡
육상 남자 장대높이뛰기 김철균

5. 대한민국 측 공식스폰서

  • 동서식품
  • 삼성전자
  • (구)조선무약
  • 코리아나화장품
  • 대양(랜드로바)

6. 비판 및 논란

  • 일본 측이 원폭에서 완전히 회생한 히로시마의 이미지를 강조하고자 타 국가 선수단들과 스태프들의 공식 일정에 원폭 희생자 위령 기념관에 가는 일정을 넣었고, 3번에 한해 원폭 피해자와 면담할 기회를 주도록 했다. 당초 개막식 전 매스게임에 원폭 피해를 상징하는 '미증유의 체험'을 집어넣고자 했으나 한국 등 타 피해국들을 자극한다는 우려 탓에 '아시아의 희망'으로 바꿨다. # 반면 이는 일본의 피해자 행세를 부각시킨다는 일부 여론도 있다. #
  • 해당 대회의 국제방송신호를 제작한 NHKTBS유도와 같이 일본에 유리한 종목 등 15개만 체리피킹하여 송출하면서 타 국가 방송사들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았다. 심지어 레슬링, 양궁, 역도 등 타 국이 우위에 있는 종목들 일부는 아예 중계 신호 제작조차도 안 했다.[5] 국제방송센터 역시 엘리베이터가 건물 전체에 2대만 설치되어 있는 등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 1994년 10월 4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영상 결국 KBS, MBC 등 국내 방송사들은 현해탄 건너에 중계차를 실어보내 방송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아침부터 밤까지 틀어대던 이전 대회 때와 달리 중계는 야구, 농구 등 인기종목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낮시간대와 밤시간대 등 하루 5시간 정도만 고정편성되었다.

7. 여담

  • 이 대회를 계기로 한국인 원폭 피해자 문제가 잠시나마 재조명받은 바 있는데, 민단 히로시마현 본부가 일본에서 치료 중이던 한국인 원폭 피해자 3명을 개막식에 초청토록 했으며 10월 2일 열린 위령식 때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이전 문제도 같이 알려졌다.[6]
  • 한국과 일본 간 3대 명승부는 축구-마라톤-종합2위 세 가지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축구는 8강에서 한일전이 성사, 재팬 킬러 황선홍[7]이 2골을 넣는 활약을 보이며 3:2로 승리했다. 당시 축구대표팀은 준결승전에서 공격에서 주도권을 잡고도 단 한 번 허용한 역습에서 우즈베키스탄 공격수가 찬 평범한 슛을 차상광 골키퍼가 어이없게 놓쳐 버리며 0:1로 패해 결승 진출에 실패한 후 3-4위전에서 쿠웨이트에 패해 노메달로 끝났으나, 당시 여론은 "일본 이겼으니 됐어"라고 반응할 정도였다. 물론 차상광평생까임권을 얻은 후, 다시는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지 못했다. 24년 후 리턴 매치에서 후배들이 제대로 설욕해 주었다. 이후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결승에서도 다시 일본과 만나게 된다. 마라톤 역시 일본 선수들을 누르고 황영조가 금메달을 땄다. 그리고 종합 2위도 한국이 차지하며 폐막. 하지만 상술했듯 이후 순위가 뒤바뀌게 된다.

파일:Mascot-Hiroshima-1994.jpg
  • 대회 마스코트는 비둘기를 모티브로 한 포포와 쿠쿠인데, 패미통 표지를 비롯한 게임 관련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명한 마츠시타 스스무가 디자인했다.
  • 홍보 부족, 미숙한 대회 운영, 선수촌에서 너무 먼 경기장 등 시설미비, 중국 선수단의 도핑 파동 등으로 혹평이 쏟아진 대회이다.

[1] 대놓고 50주년(정확히는 49년)을 노리고 개최했으니 정치적, 역사적인 논쟁이 벌어지지 않을수 없었다.[2] 영국령 홍콩이라는 국명으로 참가하는 마지막 대회이다.[3] 1969년 8월 8일 경기도 과천시(당시 시흥군 과천면) 출생. 위암 말기인 줄 모르고 위장약을 먹으며 금메달을 땄지만, 아시안게임 직후 위암 4기 판정을 받았고 이듬해인 1995년 1월 29일 향년 2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상무 소속이었는데 군무원 신분으로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4] 이듬해인 1995년 3월 독감에 걸려 선수촌에서 처방해 준 감기약이 듣지 않아 선수촌 밖 약국에서 감기약 3알을 사먹었다가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의 불시 도핑테스트에 걸려 4년간 선수자격이 정지되었다. 이후 자격정지가 2년으로 감경되었지만 전성기 때의 기량을 회복하지 못한 채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같은 종목에서 2연속 우승에 성공한 것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5] 당시 레슬링과 양궁은 한국이, 역도는 중국이 아시아 정상에 올라 있었다.[6] 1970년 제막 이래 시 당국의 불허 탓에 평화공원에서 떨어진 외진 곳에 있었으나, 민단 및 일본 시민단체의 끈질긴 요구로 1998년 이전 승인이 나 1999년에야 평화공원 안에 세울 수 있었다.[7] 같은해 개최된 미국 월드컵에서의 부진으로 국민들의 분노와 실망을 어느정도 해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