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8 15:58:09

에조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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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f304e><colcolor=#fff> 에조 공화국
蝦夷共和国
{{{#!wiki style="margin: -16px -11px" 파일:에조 공화국 인장.svg
인장[1]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ap_of_Republic_of_Ezo.png
1868년 ~ 1869년
성립 이전 멸망 이후
에조 대일본제국 홋카이도
에도 막부 마츠마에 번 }}}
위치 홋카이도, 쿠릴 열도
수도 하코다테
정치체제 공화제
국가원수 총재
총재 에노모토 다케아키
언어 일본어
문자 한자, 가나 문자
민족 일본인, 아이누, 윌타, 오로치
주요사건 1868년 건국
1869년 하코다테 전쟁, 멸망
현재 영토
[[일본|]][[틀:국기|]][[틀:국기|]] 홋카이도


1. 개요2. 역사3. 기타4. 창작물에서5.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1868년에서 1869년까지 일본 홋카이도 일대에 존속한 정권이다. 일본 역사에서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한 공화국이다.[2]

2. 역사


1867년, 대정봉환에 이은 보신 전쟁으로 도쿠가와 막부가 막을 내리자 이에 불만을 품은 에도 막부 내 군인들이 일으킨 일종의 반란이었다. 도쿠가와 요시노부시즈오카로 낙향하는 것을 지켜본 도쿠가와 막부의 해군 부총재 에노모토 다케아키는 구 막부의 신하들을 보호하고 북방을 방어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1868년 8월 9일, 해군 기함 카이요마루를 비롯한 8척의 배를 이끌고 에도를 탈출했다.

도중에 아이즈 전쟁에서 패한 전습대를 비롯 신선조와 창의대의 잔존세력들이 에노모토에게로 합류했고 이를 바탕으로 에노모토는 에조국 마츠마에 번을 침공한다. 당시 마츠마에 번주였던 마츠마에 노리히로가 급사[3]하면서 그대로 마츠마에 번 전체를 정복한다.

이를 바탕으로 이들은 하코다테에 정청을 두게 된다. 이들은 스스로를 에조 공화국이라 칭한 건 아니었지만, 영국 공사관 서기관인 애덤스가 하코다테 정청을 "공화국"이라 보고하면서 에조 공화국이라는 명칭이 생겨나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이 에조에 정식으로 나라를 세운 건 아니었기 때문에 "에조 도쿠가와 막부 무사대”삼별초라고 불러야 한다는 의견도 있긴 하다.

1868년 11월 4일, 에노모토가 하코다테를 점령한 뒤에 영국과 프랑스의 공사를 태운 군함들이 하코다테를 방문했다. 이들은 에노모토와 회견을 가진 뒤,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적은 각서를 보내왔다. "일본 국내 문제에 우리는 중립을 지킨다, 교전 단체로서의 권리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상의 정권(Authorities De Facto)'으로는 인정한다."라는 것이었다. 이 '사실상의 정권'이란 말은 이후 에조 공화국을 논할 때 두고두고 떡밥이 되었다.

하지만 '사실상의 정권'이라는 말은 말장난에 불과했다. 기실 에노모토를 만나고 호감을 가진 영국과 프랑스 군함의 함장들이 본국의 훈령도 무시하고[4] 멋대로 쓴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사실상의 정권이란 영국이 신정부만을 유일한 정권으로 인정하기 위한 구실이었다. 그러나 에노모토는 이 '사실상의 정권'이라는 말에서 국제법의 헛점을 찾아내고, 이를 이용하여 하코다테 정권을 교전단체로 인정하게 만든다.
이후 12월 5일, 일본 최초의 선거(입찰)을 통한 정부 조직 구성이 이뤄졌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투표권은 에노모토를 따라온 군인들에게만 있었고 현지 주민들에겐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사실상 요식 행위에 불과한 것이었다는 지적이 있기도 하다. 어쨌든 856명이 투표하여 156표를 받은 에노모토가 총재(대통령)으로 임명되었고 120표를 받은 마츠다이라 타로가 부총재가, 116표로 아깝게 3등을 한 나가이 나오유키[5]가 하코다테 지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후 득표순대로 주요 각료들을 선임했다.

하지만 에조 공화국은 기반 자체가 빈약하다 보니 애초에 오래 갈 나라가 절대 아니었다. 당연히 일본 정부가 가만히 놔둘 리가 없어 즉시 진압군을 보내 공격에 나섰다. 정부군과의 전쟁으로 재정 상태가 악화되자 심지어는 매춘부들에게까지 세금을 징수하고 관문을 설치해 통행세를 받으려 들었고, 결국 현지 주민들이 이들에게 불만을 품고 은밀히 정부군을 돕는 일까지 생겨났다.

이런 가운데 1868년 12월 28일, 사실상 이들의 핵심 전력이라 할 수 있는 군함 카이요마루가 풍랑으로 좌초, 침몰하고 말았다.[6] 기다렸다는 듯이 프랑스는 그동안 판매를 유보하고 있던 최신예 군함들을 일본 정부 측에 팔았고, 해군 전력에서 에조 공화국보다 정부 측이 더 우세해지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서양 각국이 '일본은 오로지 천황제를 시행하는 메이지 유신 정부가 정통'이라고 공언해버리면서 에조 공화국은 서양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되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빠져 버렸다.

결국 정부군에게 밀리던 에조 공화국 측은 1869년 5월 11일, 최후의 결전에서 주력군이 궤멸당하자 5월 17일, 에노모토와 및 각료들이 에조 공화국의 최후 본진인 고료가쿠 성의 문을 열고 정부군에 항복, 5개월여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마감하고 흑역사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현재 에조 공화국의 수뇌부가 있던 고료가쿠는 하코다테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에노모토는 반역죄로 감옥에 수감되었지만 1872년 석방된 뒤(에노모토가 직접 번역한 국제법 책을 받은 구로다 기요타카가 그가 일본에 필요한 인재라고 여겨 구명 운동에 힘썼다), 메이지 덴노 밑에서 각종 요직을 두루 거치고 자작 지위에까지 올랐다. 에노모토 자신에게도 에조 공화국은 흑역사일 듯 싶다(...).

3. 기타

에조 공화국의 주요 인사 중 한국사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 하나 있는데, 바로 오오토리 케이스케라는 사람이다. 에조 공화국에서는 육군 봉행(총사령관)을 지내며 하코다테 대사관의 프랑스군[7]과 함께 하코다테 남부를 지킨 인물. 그러나 메이지 정부에 항복한 뒤 여러 직책을 거치다가 조선으로 온다. 이 사람이 바로 조선 주재 일본 공사였고 근현대사 관련 자료에서 '오토리 공사'라는 이름으로 자주 나타나는 그 사람이다.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날 때 군대를 이끌고 경복궁에 들어가 고종을 압박하기도 했으며 갑오개혁 때에 큰 영향을 행사하기도 한 인물이다. 그리고 이 오토리 케이스케의 후임으로 온 조선 주재 일본 공사가 바로 조슈삼존 중 한 명인 이노우에 가오루며, 이어서 을미사변의 주역인 미우라 고로가 공사로 연이어 오게 된다.

파일:external/img-cdn.jg.jugem.jp/20120311_2237078.png

위 깃발은 에조 공화국의 국기라고 알려져 있지만, 위키피디아에서는 토론 결과 근거가 없고 단순히 개인이 멋대로 상상해서 만든 합성 이미지로 간주하여 삭제한 상황이다. 자세히 보면 일본 국장에다가 현재의 홋카이도 도기(道旗)에 있는 칠각별을 합성한 이미지인데, 애초에 일본 황실과 전혀 관련이 없는 공화제 국가가 상징으로 일본 황실의 가몬을 사용하는 것부터 말이 안 된다.[8] 영어 폴란드볼에서도 있었으나 지금은 수정됐지만 그리기가 서툴어서인지 평면 컨트리볼이다.

4. 창작물에서

  • 인터넷 대체 역사 창작 프로젝트 일 베티사드에선 에조 공화국이 현재까지도 존속한 걸로 되어있다.
  • 기관막말이문 라스트 카발리어에서는 히지카타 세이루트에서는 공화국을 수립 및 존속에 성공했지만 콘도 이사 루트에서는 공화국 수립 후에 메이지 신정부에서 요구해온 협상에 응해서 메이지 신정부에 흡수되었다.
  • 토탈 워: 쇼군2/사무라이의 몰락에서 에조 공화국처럼 일본 내에서 실제로 공화국을 수립할 수 있다. 관련 도전 과제도 있다. 본인이 토탈 워를 내정 전투 모두 아주아주아주 잘 한다고 생각하면 한 번쯤 도전해볼 만 하다(…). 그만큼 더럽게 승리하기 어렵다.
  • 록밴드 E.Z.O의 밴드명이 에조 공화국에서 이름을 따왔다.
  • 건담 센티넬에서 공방전이 벌어지는 위성 펜타가 이 에조 공화국, 정확히는 고료가쿠에서 따 온 것이다.

5. 관련 문서



[1] 정식명칭은 북이도총독인(北夷島總督印). 북이도는 홋카이도의 이명 중 하나이다. 에조 공화국의 총재 에노모토 다케아키가 사용하였다.[2] 계획까지 포함하면 일본인민공화국도 포함되지만, 애초에 설립은 커녕 헌법 초안만 작성하고 망한 계획이라 딱히 거론되지는 않는 편이다.[3] 자살했다는 설도 있다.[4] 영국의 주일 전권공사였던 파크스는 용어 사용에 신중할 것을 미리 당부했지만 서기관 애덤스가 실수를 저질렀다.[5] 이 인물이 언급되는 유일한 이유는 그의 직계 고손자가 미시마 유키오 이기 때문이다.[6] 사실상 에조공화국은 이 배 한 척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신정부측의 어떤 군함보다 이것의 성능이 월등히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 배는 에사시를 점령하기 위해 출동했다가 좌초했는데 이미 그곳의 정부군은 도망간 후여서, 불필요한 전투 때문에 가장 중요한 전력을 잃었다는 비판이 컸다. 이 배의 빈 자리는 후일 하코다테 상륙작전에서 크게 느껴지는데, 이것이 없어서 에조 쪽은 신정부측의 상륙을 막지 못했다.[7] 에조의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것을 파악한 프랑스의 군사 고문관들은 소수를 제외하고 하코다테 만에 주둔해있던 프랑스 선박을 타고 도망쳤으며, 요코하마를 통해 프랑스로 수송되었다. 일본 측은 프랑스에게 군사 고문관들을 심판할 것을 요청했으나, 프랑스 국민들의 지지로 처벌을 받지 않았다.(한국어 위키백과 '보신 전쟁' 문서)[8] 이 깃발은 일본 현지인들도 상당히 낚이는지 이 깃발을 에조 공화국의 국기로 표기한 일본 자료가 상당히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