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3 18:50:39

조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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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190513-OYT1I50051-1.jpg 파일:1200px-Jomon_People_and_Jomon_Dog.jpg
조몬인 여성 조몬인 남성

1. 개요2. 상세
2.1. 신체적 특성2.2. 비하의 역사
3. 생활4. 관련 항목

1. 개요

조몬인이란 조몬 시대 일본 열도에 거주했었던 인구 집단을 뜻한다. 유전적으로 보았을때 부계 하플로 D그룹 인구가 아시아 대륙 곳곳에 먼저 자리를 잡았으나 후에 농경 문화로 대규모 인구 확장에 성공한 하플로 O그룹에 밀려 아시아 곳곳에서 하플로D 그룹의 비율이 크게 줄어들었지만, 해수면 상승으로 대륙으로 부터 분리가 되어 일본 열도에 고립이 된 이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고 그렇게 만년 단위의 시간이 흐르면서 나온 집단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주로 부계 하플로 D1a2a와 C1a1, 모계 하플로 M7a와 N9b가 조몬인들의 후손으로 비정되며,[1] 큐슈와 서혼슈 일대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동북아시아인, 동남아시아인들과의 인적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동아시아인들과 많이 혼혈된 반면에 도호쿠와 홋카이도 등 동북부로 갈수록 조몬계 특징이 크게 나타나며 현대 일본인들에 비해 수염과 체모가 짙고 이목구비도 뚜렷한 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2. 상세

조몬인은 현대 일본인의 혈통 비율 중에서 10%~15%를 차지한다고 한다. 즉, 도래인 계통의 야요이인은 현대 일본인의 혈통 비율 중에서 89~80%를 차지한다. 8% ~ 9.8% (2019), 9% ~ 13% (2019). (연구 모델을 조몬인과 야요이인을 염두에 두고 설계했다.)

조몬인 혈통 비율이 가장 높은 민족은 아이누이다. 아이누인의 혈통 비율 중에서 조몬인은 66~79.3%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 다음은 류큐인이 가장 높은데, 류큐인의 혈통 비율 중에서 조몬인은 27%이다.[2]

이처럼 연구결과에 대해 차이가 있지만 부계 하플로 그룹 D1a2a의 분포를 볼때 북큐슈, 산인지방, 간사이를 비롯한 서부지역으로 갈수록 하플로 그룹 D1a2a의 빈도가 20% 가량으로 크게 줄어드는데 반해[3] 간토(도쿄), 도호쿠, 홋카이도로 갈수록 40~50%대로 높아지면서 이목구비가 뚜렷해지고 수염과 체모가 짙어지는 양상이 강하며, 아이누들은 85~90%에 가까운 비율을 보이고 있다. 이는 일본의 역사와 고고학적인 자료를 살펴볼때 기원전 4~3세기 무렵에 한반도에서 대규모로 도래인들이 이주 해오면서 인구가 비교적 적은 조몬인들을 흡수하고 서일본 일대에서 우위를 차지한 다음에 서일본 각지에 소국들을 건립하면서 이합집산하는 양상을 보이며, 이들 소국들이 서기 3세기 무렵에 야마타이국라는 연맹국가로 통합되는 양상을 보였고, 야마타이국은 야마토일본이라는 정치체로 계승되었다. 다만 이 시기에도 동일본과 가고시마, 류큐에서는 지리상의 이유로 야요이인들의 유입이 적었기 때문에 조몬인들이 여전히 높은 비율을 차지했었는데, 야마토가 서일본을 제패한 뒤로는 점차 가고시마와 간토 이동의 조몬계 세력들(하야토, 에미시)을 정복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동일본에 주거하던 에미시들은 헤아안 시대 전반기때 야마토 정권과의 전쟁에서 선전하는 양상을 보였지만, 결국에는 자체적인 통일국가 형성에 실패하였고, 11세기 경에 도호쿠 전역이 일본에 복속되면서 이들 에미시들은 점차적으로 일본인에 동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다만 그 영향으로 도호쿠와 간토 일대의 인구가 일본에 그대로 흡수되었는데, 하플로 그룹 D의 차이가 지역별로 차이가 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키네 히데유키 가천대 교수는 일본인의 기원이 '고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왜곡하는 기조가 일본 학계에 있다고 주장하며, 일본인의 기원의 다양한 갈래를 주장하는 학자들도 도래인의 위상을 과소평가하거나 한반도 문화가 일본 열도에 전파된 것 정도로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심지어 몇몇 일본 학자는 도래인이 한반도를 거치지 않고 시베리아, 만주, 중국 대륙 남부에서 바로 건너왔다고 보기도 한다는데, 어떻게든 한국인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피하고자 만들어낸 억지 주장이라고 보았다. 그는 현 일본 학계가 한일 간 명백한 문화적 연속성이 있음은 알고 있으면서도 혈연 관계는 인정하면 안 된다는 신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4]

또한 세키네 교수는 일본 제국 시절 유리할 때는 일선동조(日鮮同祖)론을 내세우고, "일본인은 조선을 조상의 나라로 생각했고, 일본은 (조선의) 식민지였다."라고 주장했던 학자(도쿄제국대 인류학 주임교수 도리이 류조, 1919년)도 있었던 일본 학계가 패전 후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특별한 민족론'을 내세우려 한반도와의 관계를 억지로 부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5]

홋카이도의 레분 섬에서 발견된 조몬인 여성의 유골 DNA를 분석한 결과, 밝은 갈색 눈, 젖은 귀지, 알코올 분해가 가능한 형질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유전적 구성이 한국인, 울치족, 대만 원주민과 유사하였다.#

주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 종종 일본인에 관한 생물학적인 연구를 할 때, 일본 내에 존재하는 오키나와인, 아이누인, 본토 일본인(야마토 민족)을 각각 비슷한 숫자로 표본을 수집하여 연구 결과를 낼 때도 있다. 이렇게 되면 1억 2천만 명이 넘는 일본 인구 중 오키나와인과 아이누인은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유전 형질 비중(조몬인 계통)이 심하게 과대평가된다. 과학계에서 이런 식으로 표본을 편향되게 수집하여 의도적으로 원하는 결과를 유도하는 행태가 아예 없는 게 아니므로 주의해야 한다. 의도한 부분은 아니었겠지만 암내 유전자 비율을 조사할 때도 유사한 경우가 있었다.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선사시대 동아시아지역 고인골 유전체를 분석해서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한반도 남부 지역의 신석기 시대 고인골들의 dna를 분석한 결과 인골마다 20~95%가량의 조몬계 유전자가 발견이 되었다고 하며 이는 일본의 야요이 시대 고인골에 버금 가는 비율이고, 금관 가야국의 대성동 고분군에서 발굴한 금관 가야인 8명의 유골 중에서 지배계층에 속하는 AKG_10203은 일본 열도 토착 조몬인 그룹에 속하는 부계 하플로인 D1a2a1로 나왔으며 상염색체 부분에서도 높은 조몬계 유전자를 가지고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 외 나머지 7명도 기득권층과 피지배층 구분 없이 모두 넓은 범위로 봤을 때 현대 한국인 그룹에 속하지만 조몬인 유전자가 20~30%씩 나왔다. 한반도 여러지역에서 일본산 흑요석이 발견되는걸 볼때 야요이인들이 정착하기 이전에도 한반도인과 조몬인들이 서로 배타고 교역하고 일부는 정착했다는것을 알수있다, 그러나 현대 한국인들에게는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하플로그룹 d1a2a1은 비중이 2~9%내외에 불과한것을 보면 북방에서의 인구유입과 청동기 시대 말기~삼국시대때의 일본 이주로 인해 그 비중이 줄어든것으로 추정되며, 이것이 야요이인들이 한반도와 중국에서 왔다는 증거가 되었다.

2.1. 신체적 특성

파일:external/www.hk-curators.jp/c04040a43a7be876882b33489a2922df.jpg
고전후 시대 일본의 그림으로 왼쪽의 파란 옷을 입은 세 명이 조몬인 계통이고, 오른쪽의 갑옷을 입은 사람이 야요이인 계통이다.
파일:금관 가야인.jpg
금관 가야국의 고분군인 대성동 고분군의 금관 가야인 8명의 유골을 분석 하여 복원한 모습
이들 중에서 AKG_10218과 AKG_10203이 지배계층에 속하고 나머지 6명은 순장 희생자이다.
AKG_10203의 경우 부계 하플로 그룹이 조몬인 그룹에 속하는 D1a2a1로 나왔으며 상염색체 부분에서도 AKG_10207과 함께 현대 일본인, 선사시대 조몬계 일본인과 상대적으로 더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그 외 나머지 6명도 기득권층과 피지배층 구분 없이 모두 큰 틀에서는 한국인 그룹에 속하지만 조몬인 유전자가 20~30%씩 나왔다.

발굴된 유골을 바탕으로 복원한 조몬인 여성의 모습

후에 유입된 도래인에 비해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많은 체모를 지녔다고 하는데, 이러한 특징은 조몬인의 직계 후손인 아이누인들과 유사하며, 일본의 지역별 체모분포에서도 조몬인 후예의 비율이 높은 도호쿠, 간토, 홋카이도, 가고시마, 오키나와 주민들의 수염 길이가 평균적으로 더 길고 짙다는 점에서 입증된다. 유골 조사를 볼 때 일본 중남부에 살고있던 조몬인들은 도래인들보다 키가 작았던 것으로 보인다.

치아 형태에선 조몬과 아이누는 자기들만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동남아시아의 Sundadont 그룹에 가깝다고 한다.

2.2. 비하의 역사

현대 일본은 조몬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아졌지만, 과거 일본 제국 시절에는 조몬인을 아이누 신화에서 따와 '고로봇쿠루'라고 불렀는데, 당시에는 연구가 부족했던 탓에 식인 종족의 상징으로 통용됐다.
도리이[6]의 생각에선 당시 일본 제국주의의 모순이 잘 드러난다. 원래 서구에서 식민지는 머나먼 아프리카나 근동지역에서 문명의 개화가 아주 늦은 지역을 차지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물론 영국과 아일랜드의 관계처럼 예외는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과 역사를 함께한 이웃이었고, 무엇보다 일본인들의 기원으로 생각한 곳이었다. 그런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든 일본으로는 이를 어떻게 역사적으로 합리화할 것인가가 큰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도리이 이후에 조선총독부는 북한의 낙랑군과 남한의 임나일본부를 강조함으로써 원래 한국인은 미개했고, 그들 사이로 일본민족(야마토민족)의 기원이 된 이들이 지나갔다는 식의 억지 해석을 했다. 지금도 혐한세력이 한국을 얼토당토않게 비하하는 논리는 이미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은 왜 한국을 ‘되찾아야 할 고향’이라 하는가(2019) 경희대 사학과 강인욱 교수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인들은 천황만세일계를 외치며 순혈의 단일민족을 주장했다. 그렇다면 야요이 이전에 거의 만년 가까이 있었던 조몬시대 사람들은 일본인이 아니란 말이 된다. 이러한 자기부정의 역사는 일본 동북쪽에 살던 아이누인과 남서쪽에 사는 오키나와인에 대한 강력한 탄압으로 이어졌다. ...(중략)... 고로봇쿠루 논쟁[7]으로 일본인들은 자신들은 섬나라(일본 열도)가 아니라 북방 대륙(한반도 및 만주)에서 기원했다고 더욱 굳게 믿었다.'''
홋카이도와 쿠릴열도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2019) 경희대 사학과 강인욱 교수

3. 생활

자세한 것은 조몬 시대 참조.

4. 관련 항목




[1] 하플로 그룹 K와 P도 일정비율 존재했지만 조몬시대 말기에는 그 비율이 크게 줄어드는 양상을 보였고, D1a2a가 주류가 된다. 이후의 인구 유입으로 지금도 중국 대륙과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많은 인구가 유입이 되고 있고 이러한 영향으로 현대 일본인들의 상염색체는 조몬인들의 유전자가 많이 희석되었다. 반면에 부계 하플로에서는 전체적으로 D1A2A와 C1A1을 합치면 40%, 도호쿠와 홋카이도에서는 50~60%에 이른다, 이렇게 부계에서 번창한 이유는 천황가가 하플로 D1a2a에 속하는 유전자를 지닌데다가, 에미시 계통의 후슈들이 가마쿠라 막부 시대에 사무라이나 다이묘로 출세한 경우가 빈번하여 이들에 의한 창시자 효과가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 천황가들은 후손을 많이 낳았고, 또한 야마토가 도호쿠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도호쿠 일대의 토착 호족들은 무사계층으로 많이 편입되었는데, 이들은 가마쿠라 시대와 남북조시대, 센고쿠 시대를 거쳐서 다이묘가 된 경우도 흔했기 때문에, 그 만큼 많이 번성했다고 추측할수있다.[2] # #[3] 하플로 그룹D가 높은 비율로 발견이 되는 곳이 전 세계에서 티벳과 안다만 제도, 한반도, 일본 열도인데 티벳이나 안다만 제도의 경우 일본 열도의 D그룹과는 갈라진 분화 연대가 만년 단위이므로 D계통이라는 아주 넓은 범위에서 묶일 뿐이며 상염색체 부분에서도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는 이들을 조몬인으로 볼 수도 없을 뿐더러 사실상 한반도 그룹만이 형제뻘 수준으로 가장 가까운데 그 한반도에서의 점유율은 5~9%이다.[4] #[5] #[6] 도리이 류조. 일본제국 시절 도쿄제국대 인류학 주임교수.[7] 조몬인 같은 식인종은 일본인의 기원이 아니라는 주장에서 비롯됨. 고로봇쿠루는 아이누 신화에 나오는 사람들로 당시 일본제국 학계는 조몬인을 고로봇쿠루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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