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9-11 09:50:52

중동

1. 中東, Middle East
1.1. 역사
1.1.1. 일설들
1.2. 개념1.3. 지정학적 특성
1.3.1. 역사1.3.2. 나라 및 지역 목록1.3.3. 대중동 권역1.3.4. 관련 문서
1.4. 중동을 모티브로 한 가상 매체에서의 집단
2. 한국의 지명 中洞3. 중앙동아리의 약자

1. 中東, Middle East

영미권에서 서아시아(캅카스 산맥 제외)와 북아프리카를 칭하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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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중동 권역.png

진한 녹색이 일반적으로 칭하는 중동[1], 녹색은 G7에서 정의한 대중동, 연두색은 사회정치적으로(종교, 문화 포함) 중동과 연결되는 지역이다.[2] 지도에서는 표시되어있지 않지만 중국의 신장위구르자치구와 러시아의 북(北) 카프카스 등도 넓게 보면 중동과 연결되는 지역으로 볼 수도 있다.

터키, 사우디 아라비아, 이란 이 세나라를 중심으로 한다.
터키어, 아랍어, 페르시아어

1.1. 역사

서구권에서 원래 부르던 이름은 '아랍', '소아시아(Asia Minor, 아나톨리아)', '근동(Near East)' 등이 있었다.

원래 (인도 등을 일컫는) 아라비아 동부 지방은 오래 전부터 아랍어로 الشرق الأوسط(Ashsharqul'awst/Asharq Al-Awsat) '앗샤르꿀 아으싸뜨/혹은 아으사뚜'라고 불렀다. 직역하면 "중동(동방의 가운데)". 이걸 영어로 직역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일부에서는 이를 유럽 중심적인 단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Middle East라는 용어는 19세기 중반 영국인들이 유라시아 대륙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기준으로 만든 단어이기 때문. 단, 이 단어가 널리 퍼진 것은 어디까지나 미국 때문이다. 1902년 9월 미국해군 제독 알프레드 머핸(Alfred Thayer Mahan)의 "페르시아 만과 국제 관계(The Persian Gulf and International Relations)"라는 글에서 최초로 사용되면서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중동이라는 용어는 아시아나 아프리카라는 용어에 비하면 오히려 훨씬 현실적인 명칭이다. 애초에 아시아는 유럽 사람들이 유라시아 대륙에서 동쪽에 있는 서로 다른 문화권의 국가들을 자기들의 지리적 기준으로 뭉뚱그려 하나로 묶어버린 것인데 비해 중동은 이러한 지리적인 문제에 구애받지 않고 동일한 문화권을 대표할 수 있는 적절한 용어이기 때문. 사실 아시아라고 한다 해도 동아시아, 남아시아, 서아시아는 완전히 다른 문화권이고 아프리카 역시 사하라 이북과 이남은 역사적으로 거의 교류가 없었던 데 반해 중동 지역은 비록 아랍, 페르시아, 투르크 등 별개의 민족이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오랫동안 상호간에 거의 동일한 문화를 공유해왔던 서남아시아 및 북아프리카 지역을 통틀어 이르는데 이보다 적절한 용어도 없다.

사실 머핸이 정의한 중동은 지금의 의미보다 더 좁은, 페르시아 만을 끼고 있는 나라만을 의미하는 뜻이었다. 20세기대영제국러시아 제국의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이 벌어지는 시대상 속에서, 머핸의 "중동"은 아라비아(아랍, 근동)와 인도(영국령 인도 제국) 사이를 지칭하는 의미였다.[3] 이런 머핸의 표현이 한 달 뒤 타임지에서 "중동 문제"라고 다뤄지기 시작하면서 중동이란 말이 이 지방을 대체하는 말이 되었다.

물론 "중동"의 범위는 아직 작았다. 영국과 머핸의 기준에서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쪽 끄트머리 지역은 극동(Far East)이라 불렀고, 오스만 제국이 차지하고 있던 동유럽(발칸 반도)과 아나톨리아, 레반트 지역은 가까운 동방이라 하여 근동(Near East)이라 했다. 영국의 "중동"의 경우에는 (아랍어의 '중동'처럼) 오늘날의 인도, 파키스탄, 이란 등을 포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근동 개념의 경우 근대(19세기) 유럽 외교가의 "동방 문제", 즉 유럽의 병자 취급받던 오스만 제국의 처리를 둘러싼 외교적 문제가 화두가 되면서 등장한 개념이다. 자연히 오스만 제국이 해체된 이후에는 북아프리카-서아시아 일대의 이슬람 문화권을 한데 묶어 가리키는 중동 개념에 묻어가면서 점차 사라졌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영국은 "근동"의 범위는 터키와 동지중해로 한정시키고, 북아프리카~아라비아 전역은 파키스탄에 위치한 중동지상군 사령부에서 지휘했다. 그래서 전쟁 내내 언론 등에서 이 지역을 중동이라 칭했고 그 표현이 굳어지게 되었다.

1.1.1. 일설들

일설에는 전쟁 이후 이 지역의 이름을 근동으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으나 "영국 젊은이들이 그 곳을 중동이라 알고 죽어갔으므로 계속 중동이라해야 한다!"는 이유로 영국에서는 중동이란 표현을 계속 사용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른 일설에 따르면 "중동"이 근동의 범위까지 잡아먹은데는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알력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근동"지상군 사령부는 맥마흔 조약 이후 시리아 등을 다스리던 프랑스가 지휘했는데 얼마 후 프랑스가 나치에게 항복하면서(비시 프랑스) 영국이 지휘권을 넘겨받았다는 것. 그런데 자존심 강한 프랑스군은 지휘권을 내주지 않았고 이로서 "중동"지상군 사령부가 그대로 전쟁을 지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중동지상군 사령부가 북아프리카~아라비아 전역을 담당한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 나중에 만들어진 이야기로 보인다.

독일에서는 여전히 이 지역에 대해 "중동"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 독일어로는 Naher Osten(근동, 나어 오스텐)이라고 하고 남아시아(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미얀마, 그리고 가끔씩 이란를 포함하는 과거의 "중동" 개념을 그대로 이어써 이 지역을 "Mittlerer Osten(미틀러어 오스텐, 직역하면 중동)"이라고 부른다. 굳이 영미권이 의미하는 중동이라고 할 때는 "대 중동(Großraum Mittlerer Osten, 그로스라움 미틀러어 오스텐)"이라고 따로 부른다.

프랑스어로는 Moyen-Orient(무아앵-오리앙)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동양의 중앙, 중동이다.

러시아어에서도 Ближний Восток(블리지니 보스토크), 즉 근동을 사용하고 있다. Средний Восток(스례드니 보스토크, 중동)라는 표현도 있고 거의 비슷한 지역을 이르는 말이기는 한데 근동이라는 표현을 훨씬 많이 쓴다.

한국에는 중동말고도 중양(中洋)이라는 단어가 있으며 실제로 국립국어원판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쓰이지 않는 용어이다.

1.2. 개념

간혹 중근동(中近東)이라 할 때도 있다. 보통 서아시아를 가리키지만, 북아프리카이집트마그레브 지역, 소말리아, 파키스탄 등까지 포함해서 대중동(大中東, Greater Middle East)이라고도 한다.

유럽적 편견이든, 아니면 원래 있었던 이슬람권의 표현을 빌려온 것이든, "중동"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아시아의 서쪽에 있다는 점에서 때때로 아스트랄한 기분이 드는 건 변함 없다. 중동이라는 단어가 나타난 다른 이유는 이스라엘이 아랍권 사이에 있던 팔레스타인에 세웠고, 이곳에 있던 아랍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아랍보다는 중동을 썼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틀린 주장이라고 볼 수 없지만, 이스라엘이 나타나기 전부터 아랍계 출신 사람들만 살지는 않았다.

어원적 특성 때문에 다른 단어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서아시아-북아프리카라는 단어가 너무 길고 준말 만들기도 마땅찮아 중동이라는 단어만 계속 쓰이고 있다. "아랍"[4], "이슬람권"[5]이란 말도 부정확하긴 마찬가지기 때문. 같은 어원을 가진 극동이란 단어가 최근 10~20년 사이 사용 빈도가 급격히 줄어들고 대신 "동아시아"나 "동북아" 따위의 단어로 대체된 것과 비교된다.

1993 대전 엑스포에서 알제리, 모리타니, 수단 공화국, 요르단이 중동공동관에 참가했는데 거기서의 중동이 넓은 의미의 중동, 즉 대중동이라고 보면 된다. 2011년 튀니지 혁명을 중동발 재스민 혁명이라고 불렀던 것도 비슷한 경우이다. 단 남수단의 경우는 대다수가 흑인계이며, 아랍어보단 영어와 여러 부족 간의 토속어의 비율이 높고 종교도 토착종교와 기독교이기 때문에 중동권에는 속하지 않는다.

1.3. 지정학적 특성

You can't make war in the Middle East without Egypt and you can't make peace without Syria.
당신은 중동에서 이집트 없이 전쟁을 시작할 수 없다. 당신은 시리아 없이 평화를 이룰 수도 없다.
- 헨리 키신저[6]
대표적인 세계의 화약고 중 하나로, 전략적, 경제적(=석유 등의 천연자원)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이면서도, 각종 종교와 사상, 인종의 충돌장소가 된 지 오래라 현재 세계에서 벌어지는 각종 험악한 사건(테러라든가 등등)의 발단은 대부분 중동 관련 문제인 경우가 많다. 이래서 현대에 있어 큰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실제로 20세기와 그 이후에도 여러 번 전쟁이 일어난 적이 있다. 그런 연유로 종종 '신이 버린 땅'이라는 표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세계 최대 종교의 뿌리이자 중심지였던 역사를 생각해 보면 꽤나 아이러니하다.

흔히 이슬람 관련 문화를 보고 중동 문화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슬람=중동은 아니다. 북아프리카 및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일부 지역, 근동, 유럽의 발칸 반도 일부, 남아시아동남아시아의 일부 국가, 중앙아시아, 중국의 북서부(신장 위구르 자치주)와 러시아의 북카프카스(체첸, 다게스탄, 잉구시 등)도 이슬람 문화권이다. 다만 근동과 중동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중동과 아랍이 동의어가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중동 지역은 크게 아랍계, 튀르크계, 페르시아계, 유대인계로 나뉘며, 넷은 언어, 인종부터 시작해서 차이점이 많다. 물론 한 군데서 오래 부대끼며 살다 보니 서로 섞이고 동화된 부분이 있는 점도 사실이지만, 아직 서로를 명확히 구분할 정도의 정체성은 가지고 있고 사이도 많이 안 좋은 편이다.

중동 국가이긴 하지만 아랍 국가가 아닌 나라들로는 이스라엘(유대계), 이란(페르시아계), 터키(튀르크계), 키프로스(그리스계, 튀르크계) 등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차드, 남수단,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 등도 중동으로 포함될 때도 있다.

1.3.1. 역사

일부 비옥한 초승달 지대[7]라고도 불리우는 이 지역에서는 다른 곳보다 일찍이 문명이 발생하였다. 기원전 3000년 경부터 도시와 국가가 성립되어 수많은 세력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했으며, 기원전 6세기 경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에 의해 비옥한 초승달 지대 전역이 통일되었다. 그 후 200년 동안 안정되어있다가 기원전 4세기 경 마케도니아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케메네스 왕조를 정복하면서 이 지역을 지배하는 듯 하였으나 알렉산드로스 사후 제국은 사분오열되었다. 이 때 그리스 문화가 중동에 유입되었다. 그 후 기원전 1세기~ 기원 후 1세기 경 로마 제국아나톨리아, 시리아, 이집트, 북아프리카 등을 지배하면서 로마 문화의 영향도 적지 않게 받았다. 로마 점령 기간에 시리아 지역에 유대교를 뿌리로 한 새 종교 기독교가 등장하였고, 기독교는 박해를 받으면서도 유럽, 중동 지역으로 교세를 확장하였다. 한편 메소포타미아-이란 지역에는 아르사케스 왕조, 사산 왕조가 세워져 로마와 대립하며 조로아스터교 등의 독자적 문화를 발전시켰다.

7세기에 접어들자 아랍 지역에서 이슬람이 발흥하여 동로마로부터 시리아, 이집트, 북아프리카를 점령하고 페르시아를 완전히 정복하여 중동 대부분 지역이 아랍-이슬람 문화권이 되었다.[8] 아랍인들은 동로마와 페르시아에 비해 문화적으로 뒤떨어져 있었지만 정복지의 제도와 문화적 유산들을 빠르게 받아들였으며, 그 결과 8~11세기 동안 중동 지역은 정치, 경제, 문화 전반을 통틀어 황금기를 누릴 수 있었다.[9] 그러나 이슬람 세계의 거의 대부분을 지배하던 압바스 왕조의 통제력이 약해져 지방 세력들이 난립하고, 용병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유목민 튀르크인들이 아대규모로 이주해 오기 시작하면서 중동 지역은 극심한 정치적 혼란 상황에 빠졌다. 이에 더해 11세기 말에는 유럽에서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고, 13세기 초에는 몽골이 쳐들어오는 외우내환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유럽 십자군 세력은 이집트와 시리아를 중심으로 한 서부 이슬람 세계가 정치적 통일성을 되찾자 얼마 버티지 못하고 격퇴되었으나, 이란을 중심으로 한 동부 이슬람 세계는 튀르크인 도래 이후의 오랜 정치적 혼란에 뒤이은 몽골의 무자비한 약탈과 파괴로 인해 황폐화되었다. 게다가 중동 지역 대부분은 사막 혹은 건조 기후이기 때문에 원래부터 농경지로 쓸 만한 땅이 많지 않았는데,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한 관개 시스템 역시 수천 년에 이르는 집약적 농업으로 인한 토양의 염화와 관개 시설의 파괴, 사막화로 인해 완전히 붕괴되었다. 이로 인해 13세기 이후 중동 지역은 인구-생산력 측면에서 유럽 지역에 비해 열세에 놓이기 시작했고, 곧 문화-기술적 측면도 유럽 지역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따라잡히게 되었다. 그나마 비단길, 바닷길을 이용한 아시아-유럽 간 중계 무역으로 큰 이득을 보았지만, 이 역시 지리상의 발견과 대항해시대의 시작으로 막히게 되었다. 또 중동권 역시 흑사병에 의해 유럽 못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그나마 중동 일대를 석권한 오스만 제국이 15~16세기 강력한 군사력으로 유럽인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은 유럽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3개 대륙에 이르는 영토를 차지하고 전쟁에서 유럽 국가들을 압도하던 16세기의 오스만 제국조차 인구 수로 따지면 유럽 전체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10] 그 결과 오스만 제국의 유일한 강점이었던 전쟁 수행 능력조차 쉴레이만 1세 사후 유럽 국가들에게 급속히 따라잡혔고[11], 1683년 2차 빈 포위의 실패를 기점으로 오스만 제국은 점차 "유럽의 환자"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오스만 외의 다른 이슬람 국가인 사파비 왕조 역시 유럽에 비하면 국력이 상대가 안되는 것은 마찬가지. 이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벌어져서, 19세기 유럽의 산업 혁명 이후 중동 지역은 유럽 제국들의 압도적인 군사력 아래 제국주의적 침략의 대상이 되었다. 이집트와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일대가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등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그나마 강대국이던 오스만 제국과 오만, 이란 역시 유럽 국가들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 시기의 경험 때문에 오늘날 중동 지역 사람들은 강한 반(反) 서방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에는 오스만 제국이 패배함에 따라 완전히 해체되고 지역별로 아랍 독립국가들이 성립되어 오늘날 중동의 국경선이 대략적으로 그어졌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의 해체는 이슬람과 중동의 위상이 추락함을 의미했다.

20세기 이후 석유 자원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고 그 수요가 폭증하면서 중동 국가들은 갑자기 떼돈을 벌게 되었지만, 국내 사회와 경제 기반은 여전히 낙후된 상태였기 때문에 심각한 빈부 격차, 높은 실업률, 지역/종족/종교 간의 갈등과 대립 등 각종 문제가 빈발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속주의, 아랍민족주의사회주의 등 다양한 이념들이 등장하였지만, 대개 독재 정치로 흐르거나 제대로 실현이 안 되는 등 별 실효를 거두지 못했기에 갈수록 강력해지고 발전하는 서방 국가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어 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했다. 특히 냉전으로 인한 미국소련(러시아) 등의 지나친 간섭도 중동의 정세를 한층 복잡하고 극단적으로 만들었다.[12] 지금도 여전히 중동 국가들은 서방 국가들에게서 군사, 기술, 경제 면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종속된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그나마 걸프만 국가들은 부유해서 암울한 상황과는 거리가 있지만 이들국가들도 왕정이다. 그 결과 중동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큰 좌절감과 분노를 가지게 되었고, 익숙한 종교적 메시지와 널리 퍼진 이슬람교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이슬람 극단주의가 그 틈새를 공략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급격한 인구 증가와[13] 도시화로[14] 인해 수자원의 고갈이 심해지면서 극심한 식량 부족과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어 이는 중동의 미래를 갈수록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15] 그나마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 쿠웨이트, 바레인같이 부유한 나라들은 담수화로 어찌어찌 해결하고 있지만 담수화하는데에도 비용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이것도 한계가 있다.

오죽하면 독일의 마인츠 시 연구원들이 이대로 간다면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곧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곳으로 바뀔 것이라고 발표할 정도다.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조차 중동은 사막화가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어 늦게 잡아도 80년 뒤엔 더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불모지가 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이렇게 개막장인 환경이 된다면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나라들은 몰락할 것이 분명하고 떠나는 난민들도 지금보다 훨씬 많아질 것은 자명한 일이라서[16] 세계적으로 골치 아픈 문제가 된다.[17] 미국으로서도 골치 아픈게 자국 경제 및 정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유대인들의 이스라엘도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막대한 돈을 들여 70년에 걸쳐 이스라엘을 일으킨 유대인들도 이 문제에 대하여 도무지 답이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렇듯 암울해보이기는 하지만 한국의 경제성장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터닝포인트를 해결했는데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순까지 오일쇼크로 사우디, 이란,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이라크 등 주요 산유국들이 석유값 폭등으로 호황을 누리자 각종 건설사업을 벌였는데 한국 건설업체들이 빠른 공사속도와 값싼 공사비용, 그럼에도 괜찮은 품질을 내세워서 건설 사업 다수를 수주했고 많은 한국인 노동자들이 고임금을 노리고[18] 중동에서 열심히 노동하면서 하면서 한국으로 돈을 송금했다. 그래서 한때는 한국에서 벌어들이는 외화수입의 85% 가량이 중동으로부터 흘러왔을 정도이며,[19] 이러한 자금을 통해서 오일쇼크의 여파를 땜방할수 있었다. 현재도 그 인연 덕택에 중동권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은 개신교 선교사 문제만 빼면 좋은 편이고, 현재도 중동권과 경제적인 교류는 활발하다.

1.3.2. 나라 및 지역 목록

굵은 글씨는 중동인지 논란이 되는 국가

1.3.3. 대중동 권역

여기 나열된 국가 및 지역은 중동의 범위를 확장했을 때 중동에 포함되는 지역들이다. 이 중에서도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은 중동과 지리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대부분 아랍어권 이슬람 국가라서 인종, 언어, 종교, 문화적으로 매우 비슷하며, 역사적 공통점도 있으므로 넓은 의미의 중동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1.3.4. 관련 문서

1.4. 중동을 모티브로 한 가상 매체에서의 집단

2. 한국의 지명 中洞


전국 곳곳에 있는 동명. 그러나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아래는 법정동으로서 다른 행정동(괄호 안)의 관할하에 있는 중동.

또, '중동면'은 총 두 곳이 있다.

3. 중앙동아리의 약자

대학교동아리들 중 특정 학과나 단과대학 소속이 아닌 동아리들을 말한다. 중앙 동아리를 줄여서 중동이다. 보통 학과나 단과대학 소속 동아리들은 규모가 영세하거나 과생활과 연계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본격적인 동아리 활동이라 하면 대부분 중동을 얘기하는 것이다. 물론 규모가 큰 과나 단과대학의 경우에는 중동급으로 큰 동아리들이 활동하기도 한다.


[1] 아바스 왕조의 영토와 거의 일치한다[2] 녹색과 진한 녹색을 합한 영역은 터키, 소말리아 등을 제외하고 우마이야 왕조의 최대 영토와 비슷하다.[3] 이 점에서 머핸의 "중동"은 최초로 인도를 제외하는 의미로서 사용되었다. 글을 쓰면서도 본인도 "이런 표현을 쓸 수 있다면"이라고 단서를 붙여두었다는 점도 흥미롭다.[4] 이란 등이 빠지는데다 애초에 비중동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아랍은 중동을 대체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용어다. 사실 이걸 지명으로 쓴다는 것부터가 쿠르드계나 베르베르계, 투르크계 등의 다른 민족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5] 실제 이슬람권 국가는 소위 "중동"에만 있는게 아니라 동남아 등까지 매우 넓다.[6] 복잡한 중동의 정치적, 군사적 상황에 대해서 키신저가 남긴 격언.[7] 이집트 + 레반트(시리아) + 메소포타미아.[8] 이슬람 발흥 전 시리아, 이집트, 북아프리카 지역은 기독교 문화권, 이란은 조로아스터 문화권이었다.[9] 이 시기에 극동의 신라까지 아랍, 페르시아 상인들이 진출했으며, 신라가 그려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알 이드리시의 지도도 이 시기에 나왔다.[10] 사실 중동은 유럽과 달리 땅이 척박해서 농경지가 많지 않다 보니 인구가 늘어날 인프라가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옛날부터 중동의 인구는 유럽보다 훨씬 적을 수 밖에 없었다. 중동의 인구가 현대에 들어서 폭발적으로 늘어난것은 석유의 발견과 오일 머니로 벌어들인 돈빨로 인프라를 충족시켰기에 가능한 것이다.[11] 애초에 오스만 제국이 유럽을 이길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이 유럽 국가들의 국가 체계가 봉건제도 때문에 부실했고 내부 단합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대항해 시대를 지나면서 급속히 발전하면서 중앙집권을 확립하고 내부가 단합되면서 유럽 국가들이 오스만 제국을 능가하게 된다.[12] 지금도 중동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이 장난 아니게 세다. 중동의 모든 나라들이 미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신경 써야 할 지경이다. 그 중에서 가장 강한 게 미국. 중동의 대부분 나라들이 일반 국민들의 반미 감정과는 별개로 정부 차원에서 미국과 대놓고 적대하지 않는다. 예외라면 이슬람 혁명 이후 현재의 이란 정도지만, 이쪽도 자신들이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기에 함부로 맞서지 않는다.[13] 2017년 기준으로 서아시아는 2억 6천만, 북아프리카는 2억 3천만으로 1950년대에 각각 5800만, 5500만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4배가 넘게 증가했다.그밖에도 현재 아프리카 다음으로 세계에서 출산율이 높은 지역이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역이다.[14]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중동의 국가들은 인구의 70%가 도시에 거주하여 도시화가 굉장히 높다. 특히 사막화로 인해 농촌들이 파산하면서 농촌 인구가 계속 도시로 몰리고 있어 도시화가 심해지고 있다.[15] 특히 중동 국가들은 국토가 척박하고 산업이 빈약해서 대부분의 생필품을 수입해 쓰다 보니 물가가 세계에서 비싼 축에 속한다. 그나마 국가에서 보조금으로 안정시켰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경제난이 심해져 보조금이 축소되면서 물가가 급증하고 있어 서민들의 생활고가 심각해지고 있다.[16] 실제로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는 부자와 서민 관계 없이 매년 수십만 명이나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유럽으로 떠나는 기후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경제난으로 인해 유럽으로 이민 가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다. 이 유럽행이 위험하며 막대한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도 서로 가려고 한다. 게다가 이 기후난민의 수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난민들은 유럽에 정착하길 원해서 살기 어려운 중동과 북아프리카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는 인구 증가로 인한 사막화와 수자원 고갈도 문제이지만, 국외로 계속 떠나는 인구 때문에 골머리를 않고 있다. 유럽 역시 몰려드는 중동과 북아프리카인들로 인해 골치가 아픈 상황. 중동과 북아프리카 뿐만 아니라 똑같이 사막화로 환경이 나빠지는 아프간과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같은 남아시아 국가들과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도 유럽으로 난민이 쏟아져 오는 판국이다.[17] 그러다 보니 미디어물에서 항상 등장하는게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환경이 사람이 살 수 없는 불모지가 된 것과 이 지역 나라들의 몰락이다. 농담이 아니라 여기 나라들의 개막장스러운 현실을 보면 이렇게 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잘 말해주는 미래를 암시한다.[18] 1970년대 후반 당시에는 중동에서 건설업에 종사하면 한국에서 벌어들인 돈의 몇배는 벌수있었다.[19] 이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이 최첨단 전자제품, 반도체, 자동차로 큰 수익을 벌여들었던 나라가 아니었으며, 전자제품이 알려졌다해도 싼 맛에 소비한다는 인식이 강했다는 점을 생각해야된다.[20] 사실 중앙아시아(정확히 말하자면 투르키스탄 일대)도 넓은 의미로 보면 서아시아를 구성하는 한 지역이라고도 볼 수 있다.[21] 단, 현재는 이집트인도 아랍인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국적으로 분류할때 이집트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할 경우를 제외하면 유대인, 터키인, 페르시아인처럼 따로 부르는 경우는 드문 편. 당장에 이집트의 공식 명칭부터가 이집트 아랍 공화국이며 언어도 고유의 언어를 쓰는 터키인, 유대인, 페르시아인과 달리 아랍어를 쓴다.[22] 정확히는 중동+동유럽+오스트리아.[23] 사우전드 선의 기본적인 모티브는 이집트지만 아젝 아흐리만이 작 중에서 지구(작 중에서는 홀리 테라)의 이란 출신(작 중에서는 아케메네스 왕국으로 나온다.)이었다는 것과 이스칸다르 카욘의 이스칸다르가 알렉산더의 아랍식 표기이자 중동권 남성의 이름인 것인 만큼 중동의 다른 지역에서도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