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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라크 시위는 2011년부터 이어지는 이라크의 반정부 시위를 말한다.2. 발단
이라크 정부는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 의원내각제로 개편되었다. 2011년 당시 국가원수는 제74대 총리인 누리 알 말리키였는데, 세계에서 4번째로 부패한 국가로 알려지고[1], 어려운 국가 상황에 잘 대처하지 못하여 국민들의 불만이 커져가는 상황이었다.알말리키는 국민의 불만을 의식하여 연봉 50% 삭감 및 2014년 선거에 나서지 않을 뜻을 내비쳤으나, 주요 도시에서 반정부 시위가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3. 진행
3.1. 2011년
3.1.1. 2월
2월 12일에 수백 명의 시위대가 바그다드와 카르발라에 모여 안보 정책과 부패 개혁, 공공 서비스 개선 등을 요구하였다. 이라크 정부는 시위 이후 전기요금 인하를 포함한 대책안을 발표하였다.2월 18일에는 쿠르드족 자치 지역의 시민들이 높은 실업률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며 자치정부 대통령의 집권당 사무실을 급습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한 명이 숨지고 30여 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2월 20일에는 술레이마니야 지역에서 약 1500명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는데, 여기 참여한 17세의 세르코 모하메드가 복부에 총탄을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라크 정부는 시위가 확산되자 수입품 가격의 80%까지 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하는 개정 관세법의 시행을 유보하였다. 성직자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는 이라크 국민의 고통을 이해하나 유혈 사태는 자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이라크 중부의 사마라에서 폭탄 차량을 이용한 테러리즘이 벌어져, 경찰관 10명이 숨을 거뒀다. 알말리키 총리는 국영 방송사를 통하여 시위의 배후에 사담 후세인 지지세력과 알카에다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주장은 리비아의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2011 리비아 민주화 운동에 관하여 내놓은 입장과 같다.#
2월 25일에 신발투척으로 유명한 기자 문타다르 알-자이디가 반정부 시위를 위해 귀국하다가 군 당국에 연행되었다.#
25일은 대규모 시위가 예정돼 있던 '분노의 날'(Day of Rage)로, 바그다드 해방 광장에 5천여 명의 시위대가 모여 경찰과 군인에게 물건을 집어던졌다. 같은 날 모술과 하위자 마을 등에서도 시위가 일어났다.# 경찰은 이에 발포로 대응하여 이날 하루에만 이라크 전역에서 최소 29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3.1.2. 3월
3월 8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시위를 주도한 정당(이라크 국민당, 이라크 공산당3월 21일 이라크 정부는 2011 리비아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고 무아마르 알 카다피를 축출하기 위한 국제 사회의 개입에 대하여 지지 입장을 내놓았다. 3월 29일에는 이라크 살라후딘 주 지방의회에 무장 괴한이 난입하여 폭탄 테러를 가하였다. 테러 사건으로 58명의 사망자 및 97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으며 이라크의 긴장이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3.1.3. 4월
알카에다 연계조직인 '이라크 이슬람 국가'(훗날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가 3월 29일 벌어진 테러 사건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였다.# 4월 11일에는 팔루자와 바그다드에서 연달아 발생한 폭탄 테러로 인하여 10세 여아와 경찰관 2명을 포함한 10명이 사망하였다.#4월 12일에 이라크를 거점으로 삼던 이란의 반체제단체인 이란인민무자헤딘기구(PMOI)가 이라크 정부로부터 퇴거 명령을 받았다.
4월 14일에는 이라크에 주둔한 미군 기지가 무장단체로부터 박격포 공격을 받았는데, 반미 시아파 지도자인 무크타다 알-사드르와의 연관성이 점쳐지고 있다.#
정기적인 시위는 한동안 잠잠해진 가운데, 무장 테러 등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3.1.4. 5월~12월
미군에 의한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과 관련하여 조성된 원리주의자들의 반미 정서가 확대되어 반미 시위 및 테러리즘이 이어지고 있다.12월에 들어서며 미군의 이라크 철군 행보가 가속화하는 모양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경제 지원을 약속하였고, 15일에는 이라크 전쟁의 공식적인 종결 선언을 하였다.#
12월 4일 알말리키 총리는 AP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하여 자신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었다고 밝혔다. 12월 6일은 이슬람 시아파 최대의 성일인 아슈라로, 이날 바그다드에서 시아파 순례자들을 겨냥한 테러가 발생하여 8명이 숨지고 2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시아파 출신인 알말리키 총리가 공무원 암살 등의 혐의로 수니파 출신 부통령 타리크 알하셰미의 체포 영장을 발부하여 종파 갈등의 불이 붙었다. 역시 수니파 출신인 살레 알무트라크 부총리는 TV 화면의 조작을 주장하며 알말리키를 '사담 후세인보다 더한 독재자'라고 비난하였다. 총리는 이에 대하여 무트라크의 해임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격화된 종파분쟁을 보여주듯 22일 바그다드에서 연쇄 폭탄 테러가 일어나 25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라크 내무부는 최소 74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고 발표하였으며, 알자지라는 최소 63명의 사망자 및 200명 이상의 부상자가 속출하였다고 보도했다.
3.2. 2012년 12월
2011년 12월 미군 철수 이후 이라크는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종파 갈등이 심화되었다. 말리키 총리는 비교적 중립의 위치에서 종파 갈등을 중재하였던 잘랄 탈라바니 대통령이 뇌출혈로 쓰러져 독일의 병원에 이송된 틈을 타 수니파 계열 라피아 알 에사위 재무장관의 경호원 10명을 체포하였다. 해외 도피 중인 알하셰미 부통령은 성명을 통하여 말리키 총리를 '이란의 앞잡이'라며 비판하였다.2012년 12월 27일 걸프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수천 명의 수니파 시위대가 안바르 주 주도 라마디에서 시리아 방향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진행하였다. 시위대는 수니파의 권리 존중과 수니파 수감자의 석방 및 말리키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였다.## 또한 시위대는 반테러법이 정적을 제거하는 데에 악용되고 있음을 주장하며 폐지를 요구하였다.
12월 31일 말리키 총리는 반정부 시위대에게 '반헌법', '외부 세력 개입', '혼란조장'을 이유로 해산을 통첩하였다. 다만 총리는 일부 수니파 여성 수감자들에 대한 석방을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총리는 수니파 성직자인 할레드 알 물라와의 만남에서 교도소의 여성 수감자 920명 중 약 700명을 석방하겠다고 약속하였다.#
3.3. 2013년
3.3.1. 1월
1월 15일에 안바르주의 팔루자에서 폭탄 조끼를 이용한 자살 폭탄테러가 발생하여 수니파 의원인 알 이사위가 사망하였다. 안바르주 당국은 사흘의 추모기간을 정하였으며, 수니파 반정부 시위는 이번 표적 테러로 말미암아 격화될 전망이다.# 1월 23일에는 바그다드 북쪽 210km 방면에 위치한 투즈 코마르토시의 시아파 사원에서 장례식 도중 자살 폭탄테러가 발생하여 수십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대한민국 외교통상부는 이라크의 불안한 상황과 관련하여 여행금지국가 지정을 7월 31일까지로 연장하였다.
1월 25일에 진행된 '물러서지 않는 금요일'(No Retreat Friday) 시위와 관련하여 이라크군 당국이 시위대에게 발포하여 5명이 숨지고 23명이 다쳤다.# 불상의 수니파 무장괴한 조직은 이를 규탄하며 다음날 국경의 검문소를 공격하여 군인 2명을 숨지게 하였다.#
3.3.2. 2월
2월 3일 오전 북부 키르쿠크의 경찰 본부에서 차량 테러 사건이 발생하여 100여 명의 사상자가 속출하였다.# 2월 8일에도 북부 카디미야 근처의 시장에서 시아파를 겨냥한 차량 테러가 발생하여 17명이 숨지고 45명이 부상을 입었다. 쇼말리 마을 및 카르발라와 모술 등에서도 테러가 발생하여 이날 기준으로 최근 일주일새 이라크 내 폭력사태로 인한 사망자가 100명을 넘어섰다.#2월 9일에는 한때 미군의 리버티 기지로 이용되었던 이란 반체제 망명자 캠프가 로켓포 공격을 받아 최소 6명이 사망하고 1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하였다.#
2월 22일에는 '이라크냐, 말리키냐'(Iraq or Maliki) 등의 시위 구호를 내건 시위대 수천 명이 바그다드와 모술 등 주요 도시에 집결하여 내각의 퇴진을 요구하였다.
2월 23일 독일의 의료진에 따르면 뇌출혈로 쓰러져 응급 처치 후 독일로 이송되었던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의 상태가 호전되어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탈라바니 대통령은 수니파(부총리, 부통령)와 시아파(총리) 사이의 갈등이 심화될 당시에 중재자로서 타협안을 내놓았던 인물로, 그가 부재중인 사이 격화되었던 이라크 시국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3.3.3. 3월
3월 1일에 라파 알-에사위 재무장관이 시위에 참석하여 연설하였고, 재무장관직을 사임하겠다고 통보하였다.3월 4일 시리아 내전중 반군의 확장을 피하여 이라크 영토내로 피신한 시리아군, 공무원 등 최소 42명이 매복 공격을 당하여 숨을 거두었다. 3월 11일 이라크이슬람국가(ISI)가 자신들의 소행이라 주장하였다.
3월 8일에 경찰이 모술의 수니파 시위대에게 발포하여 1명이 숨지고 5명이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시위 과정에서의 사망자 발생은 같은 해 1월 25일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다음날 이라크의 농업장관 이제디네 알-다울라는 발포 사건에 대하여 정부에 강력히 항의하며 사임의 의사를 밝혔다.#
3월 14일에는 이라크 바그다드 중심부에서 폭탄테러 사건이 일어나 22명의 사망자 및 도합 70명에 이르는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3.3.4. 4월
4월 23일과 4월 24일, 이라크 북부 하위자에서 시아파 정부군과 수니파 시위대들의 충돌이 발생했다. #3.3.5. 9월
9월 1일, 이라크 전국에서 시위가 일어났으며, 국회의원 고당 수액 및 특권을 줄이라고 주장했다. #3.3.6. 10월
10월 24일, 수니파 출신의 옛 부통령이었던 타레크 알 하셰미는 누리 알 말리키를 반대했으며, 시아파 출신의 정치인 무크타다 알사드르는 누리 알 말리키를 반대하는 시위대들을 지지하기도 했다. #3.3.7. 12월
12월 30일, 라마디에서 정부군이 수니파 시위자들의 시위 현장 철거를 밝혔으나, 충돌은 계속 이어졌다. #3.4.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이후
2014년 1월까지 지속되었던 이 시위에서 일부 극단주의자로 변질된 단체들은 다에시라는 테러단체가 결성되어 2014년 6월 29일에 자칭 국가로 선포하고, 2017년까지 국제적 분쟁 및 테러들을 일으켰으나 2017년 12월부터 2018년 1월 이후부터는 이들의 행보가 많이 약화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무능한 정부와 총리들, 많이 개선되어도 여전히 불안정하기도 한 치안으로 인해 여러 불만들이 쌓여 2018년에 시위가 시작되었다.2019년 미국 컨설팅 기업인 머서(Mercer)의 발표에 의하면 바그다드는 '세계 도시 삶의 질 평가'에서 231위 중 꼴찌에 해당되었을 정도로 삶의 질이 좋지 않았는데 이는 2003년 이후, 종파 분쟁, 지도자들의 권력 다툼과 부정부패, 무능함 등으로 민생은 뒷전이었기 때문이었다.[2]
3.4.1. 2014년
2014년 1월, 안바르 주 라마디에서 수니파 출신 시위자들이 1년 넘게 버틴 시위장이 철거되면서 정부군과의 갈등이 커졌다. #, #3.4.2. 2015년
2015년 8월 전력부족으로 인한 시위가 바그다드에서 일어났다. #3.4.3. 2016년
2016년 4월 30일, 시위대들이 그린 존 장벽을 허물고 의회를 점거하면서 정치 개혁을 주장했다. #시위가 일어난지 6시간 만에 해산되었고,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 #
3.4.4. 2017년
2017년 2월 11일, 바그다드 타흐리르 광장에서 선거 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자들과 경찰이 충돌해 모두 7명이 사망했다. #2월 14일에는 이 때 사망한 사람들을 기리는 장례식을 치뤘다. #
3.4.5. 2018년
2018년 7월에도 민생고 문제로 인한 시위가 일어났다. #3.4.6. 2019년
2019년 10월에 본격적으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첫 시위에서 2명이 사망했다. #, #10월 6일, 강경 진압으로 인하여 나타난 사망자들이 100명을 넘었다. #
2019년 10월에 일어난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인해 10월 31일, 총리가 사임하겠다고 밝혔고 #, 훗날 11월 29일만에 이라크의 총리는 물러났다. #[3] 동시에 반이란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 이후인 2020년에도 여전히 크고 작은 반정부 시위들이 나타났다.
3.4.7. 2020년
2020년 5월에는 새로운 내각이 들어섰다#.2020년 7월에는 시위를 지지하던 독일인 여성이 붙잡혔다가#, 훗날 풀려났다.#
2020년 8월, 11월에도 시위는 여전히 일어났다#, #.
3.4.8. 2021년
2021년 7월에도 시위는 이어졌다#.3.4.9. 2022년
2022년 3월 이상 고온, 우크라이나 침공의 이유로 일어난 2022년 식량·에너지 위기로 식품 가격이 대폭 상승하자 나시리야 등 이라크 남부 쪽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4. 여담
- 2019년 10월 1일에 시작된 혁명의 이름을 10월 혁명(아랍어:ثورة تشرين)[4]이라고 부른다. 또한 이라크에서 신분이 낮거나 가난한 젊은이들이 툭툭(삼륜차)을 타고 거리나 광장에서 시위를 해서 툭툭 혁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
- 2019년 시위가 일어났던 장소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타흐리르[5] 광장인데#, 이집트와 예멘, 시리아 등에서도 수도에 이러한 이름을 가진 광장들이 있다. 우연이지만 8년 전인 2011년 아랍의 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집트와 예멘, 그리고 시리아에서도 이 타흐리르 광장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시위가 나타났다.
- 이라크 전쟁 이후 이라크 내의 일부 수니파 출신 반체제 및 반정부 인사들이 저항의 의미로 몇 년동안 쓰였던 사담 후세인 시절의 옛 국기[6]를 썼던데 비해[7] 2019년 후기와 2021년까지 반정부 시위에 쓰였던 국기는 별 3개가 없고 쿠픽체로 인쇄된 국기(2008년에 바뀐 버전)가 쓰였는데 이 국기는 주로 시아파들이 썼으며, 2019년 시위의 중심 세력들도 정부처럼 시아파였기 때문에 현재 국기를 사용했다. 참고로 수니파들은 이 때 사실상 가만히 있었다.
5. 관련 문서
[1] 국제투명성기구 자료[2] 출저: 이토록 매혹적인 아랍이라니(손원호 지음).[3] 2019년 이라크 시위는 훗날 2019년 레바논의 반정부 시위에도 영향을 주었다.[4] "티슈린 혁명(tishreen revolution)"으로도 불리는데 티슈린은 아랍어로 10월이라는 뜻이다.[5] 아랍어로 해방(Tahrir)을 의미한다.[6] 별 3개에 '알라후 아크바르'가 필기체로 쓰여진 형태.[7]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의 과도 정권에서도 2004년 중후반까지 쓰이긴 했으며, 사담 후세인을 반대하는 세력 중에서도 이 국기를 유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