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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트 구조의 위성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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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하라의 눈(عين الصحراء, the Eye of the Sahara)은 서아프리카의 모리타니 우아단(Ouadane) 인근, 티리스젬무르주와 아드라르주에 걸친 거대한 동심원 지형을 가리킨다.학술적으로는 리차트 구조(Richat Structure)라고 부르는데, 이는 1940년대 이 지형을 처음 보고하면서 '리샤트 크레이터(Richât Crater)' 또는 '리샤트 단추구멍(boutonnière du Richât)'이라고 표현한 것에서 유래했다. '리차트' 또는 '리샤트'는 본래 가죽 부대의 주둥이를 가리키는 모리타니 방언으로, 지형의 모습이 마치 원형 개구부와 닮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1] 하술하듯 지질학계에서는 차별 침식 과정을 거친 돔 지형으로 추정하고 있어 인근의 '세미시얏 돔(Semisiyat Dome)'과 함께 '리차트 및 세미시얏 돔(Richat and Semsiyat Domes)'이라고도 부른다.[2]
2. 특징
NASA에서 입체 모형으로 구성한 리차트 구조의 지형도. 갈색은 기반암을, 황색과 백색은 모래를, 청록색은 소금층을, 녹색은 식생을 나타낸다. |
리차트 구조는 매우 거대한 지형으로, 그 크기는 가장 외곽의 검은 선이 그리는 원을 기준으로 지름이 약 40km, 면적은 1,300km2 내외에 달한다. 이는 서울특별시(605km2) 크기의 2배 이상이다. 여러 개의 동심원이 그리는 고리 구조는 10km 이상 상공에서는 뚜렷하게 확인되지만, 지상에서는 정밀한 측정 도구 없이 전체적인 형상을 짐작하기 어렵다. 위치는 서아프리카 해안에서 약 500km 떨어져 있으나, 주변에 큰 도시가 없는 사막 지형 가운데에 있어 사하라를 횡단하는 항공 교통이 충분히 발달한 1930년대 말이 되어서야 처음 기록되었다.
리차트 구조의 위치. |
리차트 구조의 생성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며, 당초 소행성 충돌이나 화산 활동의 흔적으로 추정되었다.[3] 이후 1954년에 프랑스 탐험가, 지질학자 테오도르 모노 (Théodore André Monod, 1902~2000) 등이 마그마 분출에 따른 형성설을 제기했으나, 이에 대해서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
1960년대 이후 지질 탐사에서 외부 충격으로 인한 암석 변형[4]이 관찰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질 활동의 결과물이라는 추측이 큰 설득력을 얻었고[5], 오늘날에는 백악기에 융기한 기반암층이 서로 다른 속도로 규칙적으로 침식된 결과라는 이론으로 설명되고 있다. 지표에 드러난 기반암층의 연대는 오르도비스기 이전에 형성된 매우 오래된 퇴적암으로 조사되었다.
3. 아틀란티스설
리차트 구조의 낮은 지형을 운하로 보고 그린 아틀란티스의 상상도. |
위성사진 등으로 해당 지형에 대한 미디어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이 원형 고리 지형이 옛 그리스의 플라톤이 언급한 사라진 고대 문명 아틀란티스가 아니냐는 음모론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특히 리차트 구조가 서아프리카 지역[6]에 위치해 있다는 점, 60m 이상 해수면을 상승시켜 바닷물이 아프리카 대륙 깊숙히 들어오게 할 경우를 시뮬레이션해 본 결과 아틀란티스의 원형 도시 구조와 비슷하다는 주장 등을 근거로 내세웠다.
《사하라의 눈과 아틀란티스에 관한 비밀 파일》, Bright Insight |
- 리차트 구조의 크기가 플라톤이 기록한 아틀란티스의 크기와 일치한다.
- 플라톤은 아틀란티스의 크기를 127스타디아라고 기록했는데, 1스타디아는 185m로 127스타디아면 23.495km이다. 위 사진의 두꺼운 회색지대를 제외한 지름이 대략 24km이다.
- 리차트 구조의 주변 지형이 플라톤의 기록과 일치한다.
- 아틀란티스는 동심원 3개인 고리 모양 해자 구조로 중앙섬에 연결되고, 도시의 북쪽에 산이 있고 남쪽에 넓은 평지가 있다고 기록되었다. 상기된 '모로코 수스마사(Sous Massa) 설'을 주장한 미하엘 휘프너(Michael Hübner)도 이 특징적인 동심원 지형을 찾아다녔을 만큼 이 구조는 매우 독특한데, 리차트 구조의 위치가 사막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아틀란티스와 거의 흡사하다. 그런데 사하라 사막은 지구 자전축 변화로 인해 2만 년마다 초원&습지와 사막을 오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에 따르면 이 지역이 지금처럼 사막이 된 것은 약 5000년 전부터이니 플라톤의 주장대로 9000년 전, 지금 기준으로 1만 1천 년 전쯤에는 사막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 아틀란티스 문명의 멸망 시기가 영거 드라이어스기(Younger Dryas, 기원전 12,900~11,700)에 해당한다.
- 영거 드라이어스기에는 급변하는 기후로 인해 해수면이 높아졌는데, 이것은 도거랜드설과도 상통하는 부분으로, 1만여 년 전에는 지금보다 해수면이 훨씬 낮았다. 이 해수면이 높아지는 과정에서 당시 아틀란티스가 수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주장에 따르면 아틀란티스는 물 속에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오른 셈인데, 실제로 모리타니 사막에서 화석화 되지 않은 고래뼈가 발견된 적이 있어 인근 지역이 해수면 아래에 위치했던 적이 있음은 사실로 판명되었다. #
이 변화는 플라톤이 언급한 "지진으로 가라앉은 후, 진흙으로 막혀 배로는 접근할 수 없었다"라는 대목을 가장 잘 설명해준다. 아틀란티스가 섬에 위치했다고 보는 다른 가설들은 가라앉은 것을 설명할 순 있어도 그 후에 어째서 진흙으로 막혔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대양의 섬은 가라앉아봤자 바다이므로 진흙으로 가로막히지는 않을 것이다. 반면 대륙 깊숙이 위치한 저지대는 해수면의 상승에 수몰될 수도 있고, 반면 해수면이 낮아지면 강이 끊어져 내륙이 되어버릴 수도(=진흙으로 가로막힘) 있는 것이다.
그 이후에 추가 영상에서 브라이트 인사이트(Bright Insight)의 지미 코세티(Jimmy Corsetti)는 위성 사진 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동심원의 바깥과 해자에 해당하는 부분에 있는 하얀색 부분이 소금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어서 사하라 사막에서는 지표면에서 소금이 많이 검출된다고 언급한다.
또한 플라톤의 말에 따르면 아틀란티스는 붉은색, 검은색, 그리고 하얀색이 섞인 돌로 지은 건축물이 많은 도시라고 하는데, 모로코와 모리타니 근방에선 해당 색깔의 암석이 많이 발견된다. 유튜브에 실제로 리차트 구조를 답사하러 간 사람이 있는데 그의 영상에 따르면 사하라의 눈에서 가장 근방에 위치한 마을의 건축물도 플라톤이 언급한 그것과 비슷한 색깔의 암석으로 지어져있으며, 정확히는 모르지만 굉장히 오래된 마을이라고 한다. # 우아단의 villa historique de Oudane이라고 한다. 마을이라기보단 유적에 가깝다.
"...two springs of water from beneath the earth, one of warm water and the other of cold, and making every variety of food to spring up abundantly from the soil."
플라톤의 저서에서는 땅 아래에서 담수가 나오는 샘이 있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리차트 구조의 가운데에 해당하는 부근에서 샘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it contained a very large stock of elephants; for there was an ample food-supply not only for all the other animals which haunt the marshes and lakes and rivers, or the mountains or the plains, but likewise also for this animal, which of its nature is the largest and most voracious."
똑같이 플라톤의 크리아티스 번역본에서 발췌, 코끼리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아라비아 지역에 많이 서식한다. 그러나 오늘날 모리타니에는 더 이상 코끼리는 살지 않는다고 한다. (사하라 사막 북부에서 서쪽으로)[7] 이어서 또 열흘의 노정을 거치면 다른 소금언덕과 물이 있고 그 주위에 사람이 산다. 이 소금언덕에 접해서 아틀라스란[8] 산이 있다. 이 산은 폭이 좁고 주위가 동그란 데다가 그 정상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다고 한다. 겨울 여름의 구별 없이 그 꼭대기에서 눈이 녹을 새가 없으므로 고장의 주민은 이 산을 하늘의 기둥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곳 주민의 이름은 이 산의 이름을 따 아틀란테스인으로 불린다. 이 종족은 살아있는 동물을 먹지 않고, 또 꿈도 꾸지 않는다고 한다.
이 아틀란테스인까지는 나도 사막지대에 거주하는 주민의 이름을 들 수가 있으나 그 너머로는 나의 힘이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사막지대는 헤라클레스의 기둥 내지 그 밖에까지 미칠 것이다.
헤로도토스 《역사》 - 4. 멜포메네, 755-756.[9]
이 아틀란테스인까지는 나도 사막지대에 거주하는 주민의 이름을 들 수가 있으나 그 너머로는 나의 힘이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사막지대는 헤라클레스의 기둥 내지 그 밖에까지 미칠 것이다.
헤로도토스 《역사》 - 4. 멜포메네, 755-756.[9]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묘사된 세계[10] |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는 현 아틀라스 산맥 일대에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언급하며 그 근처에 '아틀라스'의 이름을 딴 '아틀란테스인'이 거주하고 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우연히 '아틀라스'의 이름을 공유하는 것일 수는 있으나 헤라클레스의 기둥과 아틀라스라는 2개의 별개의 지명이 공통적으로 언급된다는 것은 눈여겨 볼 만하다.
위 번역문 주석에서 보듯 신화의 아틀라스의 이름이 베르베르어 '아드라르'(ádrār)에서 왔으리라는 가설[11] 역시 아틀라스 관련 전설의 기원의 위치를 베르베르인의 권역으로 비정하는 데에 힘을 싣는 점이다. 확실히 《역사》를 비롯해 아틀라스는 모리타니의 전설적 왕 이름으로도 쓰이는 등[12] 북서아프리카에서 자주 등장하는 고유명사이다. 아틀란티스는 그리스 각 세계와 본격적으로 교류하기 전에 멸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상황에서 아틀라스가 베르베르어 기원의 고유명사인데 아틀란티스가 다른 데에 있다고 하면 아틀란티스의 아틀라스는 단지 동음이의어라든지, 아니면 아틀란티스 시대에 이미 아틀란티스인과 베르베르인 사이의 교류가 있었다든지 등의 자질구레한 연결이 추가로 필요하다.
한편 이 리차트 구조를 포함한 사하라 사막 서부에 존재했던 거대한 강의 흔적도 아틀란티스 가설을 설명하는 데 이용되었다. 흔히 타만라세트(Tamanrasett)강 또는 타망가세트강으로도 부르는 이 거대한 강은 과거 사하라가 사막이 아니었을 때 흘렀던 것으로 추정되며, 오늘날 사하라 지하에 있는 대수층의 옛 흔적 가운데 하나이다. #
따라서 1만 1천 년 전 이 리차트 구조의 위치는 해협 수준의 거대한 강 줄기를 끼고 있는 연안 지역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고, 기후 변화 속에서 수몰되었던 것으로 상정할 수 있다. 단, 이 가설에 따라 리차트 구조 지역이 실제 수몰된 과거가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지질학적, 해양학적 연구 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아 어디까지나 가능성에 머무르고 있다.
사하라의 눈 중심에 뭔가 사각형 모양의 무언가의 터가 있다. 이것 외에도 매우 비슷하게 생긴 사각형 모양의 터가 해당 지점의 남서쪽 방향에 위치하고 있으며 여러가지 인공 구조물로 보이는 것들이 위성 사진상에서 발견된다.
위에서 말하는 고대문명 음모론이 과하다고 생각해, 아래 반론과의 절충으로 아틀란티스라는 전설은 부풀려진 과장이고 현실적인 규모의 문명이나 문화권이 있었다는 타협안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해당 경우 아틀란티스 가설의 큰 뒷받침이 되는 '서울시 2배 면적에 달하는 거대하고 정교한 원형 지형을 건축할 만한 고대문명'이라는 초월적 해결수단이 상실되어 당위성의 진퇴양난에 빠지게 된다.
결국 현실적으로 보기에는 너무 거대규모의 지형이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에는 아래 있듯이 반론의 여지가 너무나도 많다.
3.1. 반론
《지질신화학자 랜달 칼슨이 해설하는 리차트 구조가 아틀란티스가 될 수 없는 이유》 상기한 Bright Insight의 견해 또한 언급한다. |
상술했듯 최근에 들어서야 알려진 지형이라는 주장과 달리 이미 1930년대에서 1940년대부터 보고되어 온 지형으로, 이미 당시에 'Richât buttonhole'이라는 이름으로 표기되었다. 이는 다른 많은 황무지의 지형이 연구된 시기와 비교하여 결코 늦지 않다. 즉, 해당 지역은 인류가 범접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 같은 것이 아니며, '특징' 문단에서처럼 특수한 지형으로 인해 이미 지질학계와 고고학계에 의한 현장 조사가 여러 번 이루어진 곳이다.
또한 위험하고 접근하기 힘든 곳도 아니라서 위에 언급된 지질학자 테오도르 모노가 처음 지리 조사를 했던 시기가 1952년이고, 이후 거의 40년을 넘는 시간 동안 여러 차례 방문하여 석기 시대 유물과 벽화들을 발견했다. 영어 위키백과를 보면 해당 지형의 지질구조 추정도가 있는데, 이를 보면 어떻게 해서 차별침식이 이루어졌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즉 호주의 울루루-카타추타 국립공원의 지질구조처럼 차별침식으로 암괴가 드러난 것인데, 이 곳이 일종의 화산성 지형 내지는 심성암의 관입지형일 경우 동심원 구조의 자연적 생성이 가능하다.
사하라의 눈에는 문명의 흔적이 없다는 것이 큰 약점이다. 무려 아틀란티스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하는 거대한 가설과는 달리 원시 석기 시대를 넘어서는 어떠한 유물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 위에 언급된 인공구조물 '처럼' 보이는 것들도 실제 인공구조물이 아니고 유물도 원 바깥쪽에만 존재하며 안쪽에는 유물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특히 이 지역은 강수량이 극히 적고 매우 건조하기 때문에 유적이나 유물이 보존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라 '문명'이 존재했다면 뭐라도 반드시 나와야 하는 상황이다. 즉, 지질학적 조건은 충족하나 인문학적인 유물이 전무하기에 도시가 존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학계에서는 지질학 연구 외에 '사하라의 눈'과 관련된 초고대문명 같은 것은 전혀 연구되고 있지 않으며,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다.[13] 이를 아틀란티스의 후보지로 보는 것은 레딧 등 인터넷 아마추어 고고학 커뮤니티 정도이거나, 미스터리 및 음모론을 다루는 대중매체에서 흥미거리로 다루는 것이 거의 전부이다.
4. 매체
- 원신에서 유사한 형태를 갖고 있는 하드라마베스 사막이라는 지역이 모험 장소로서 등장한다. 각종 음모론과 신화를 집대성한 게임답게 고대 문명이 탄생하고 파멸한 흔적이다. 강력한 모래바람 때문에 모험이 끝나기 이전에는 중앙부에 접근할 수 없지만, 스토리가 끝나면 영원의 오아시스라는 고대 수로 시설에 접근할 수 있다.
- 더 그랜드 투어 시즌 5 3편에서 제레미 클락슨과 제임스 메이가 각각 재규어 F-타입과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랠리카 튜닝 차량을 타고 방문했다.[14] 그러나 정작 본인들은 제대로 찾아 왔다는 것을 끝까지 알아차리지 못하였는데, 영상을 통해 항공 영상으로 그들이 서 있는 장소가 눈의 한 복판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5. 여담
- 사막 지역에는 강수에 의한 침식이 더디게 일어나는 기후 특성 때문에 사하라의 눈 이외에도 특이한 지형이 많이 발견된다. 하지만 불모지라는 특성상 탐사 접근이 쉽지 않아 지형의 유래나 인문지리적 특성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Gara Medouar[15]나 Well of Barhout[16] 같은 사례 역시 오늘날에도 초보적인 지질 조사만 이뤄졌을 뿐, 형성 원인이나 인류사에서의 위치 등에 대해선 제대로 연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사하라의 눈 같은 경우는 워낙 규모가 크고, 특징적이어서 사막의 특이 지형 중 그나마 연구가 많이 이뤄진 편에 해당한다.
[1] Richard-Molard, J. (1952). "La pseudo-boutonniers du Richat". Gouvernement Général de l'Afrique Occidentale Française Bulletin de la Direction des Mines. 15 (2): 391–401.[2] ROBERT S DIETZ, ROBERT FUDALI, WILLIAM CASSIDY; Richat and Semsiyat Domes (Mauritania): Not Astroblemes. GSA Bulletin 1969;; 80 (7): 1367–1372.[3] Richard-Molard, Jacques (1948). "La boutonnière du Richât en Adrar Mauritanien". Comptes Rendus de l'Académie des Sciences. 227: 142.[4] 통상적으로 외계에서 소행성 등이 충돌한 경우 강한 열과 압력에 의해 셰터콘(shatter cone, 원뿔형 암석 구조)과 같은 독특한 흔적이 발견된다.[5] Fudali, R. F. (10 October 1969). "Coesite from the Richat Dome, Mauritania: A Misidentification". Science. 166 (3902): 228–230. Bibcode:1969Sci...166..228F. doi:10.1126/science.166.3902.228. PMID 17731489. S2CID 37249316.[6] 음모론자들은 '가깝다' 라고 표현하지만 이는 아프리카 대륙의 크기에 대한 감각이 없기 때문이다[7] 이 앞 즈음에 이집트 서부의 유명한 오아시스 도시인 시와가 언급된다. 암몬-아우길라-가라만테스-아타란테스-아틀란테스로 이어진다.[8] 그리스신화의 아틀라스와의 관계는 베르베르어로 산을 아드랄이라고 하기 때문에 음이 닮은 데서 왔을 것이란 설이 있다(인용 원문 번역자 주).[9] 역사(2023), 박현태 역, 동서문화사.[10] 《역사》에서는 오이코메네(οἰκουμένη)라 한다. "거주 지역"을 의미한다.[11] 아직까지 아틀라스의 어원은 불확실하며 '아드라르' 역시 하나의 가설이다. 다른 가설들은 영문 위키피디아 아틀라스 문서 참고.[12] Mercator & Lessing J. Rosenwald Collection (Library of Congress) (2000). 링크는 위 아틀라스 영어 위키백과 문서 참고.[13] 구글 스콜라 등에서 검색해 봐도 피인용수가 10 이하인 레포트나 잡지 기고문, 그 밖에 교양 서적의 텍스트 몇 가지가 전부이다. 애초에 처음 주장했다는 유튜버 브라이트 인사이트부터 여러 음모론을 주제로 영상을 만드는 채널이라 신뢰성이 높다고 보긴 어렵다.[14] 리차드 해먼드의 애스턴 마틴 DB9 볼란테는 엔진 고장으로 말썽을 일으켜 오지 못했다.[15] 한눈에 봐도 로라이마 산이나 테이블 산처럼 고대 지형이 차별침식에 의해 형성된 것을 알 수 있지만, 정확히 어느 시대 지질인지 연구가 부족하여 확정되지 않은 것.[16] 이 경우도 겉보기로 보면 블루홀 같은 석회암 차별침식 지형이 사막화되어 수직동굴만 남은 것임을 알 수 있지만(바닥에서는 석회동굴에서 볼 수 있는 계란모양 석회석 결정까지 보인다), 정확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생성기작이나 연대가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