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oxiana (라틴어, "옥수스(Oxus) 너머의 땅")
ما وراء النهر (아랍어, "강 너머의 땅". '마- 와라아' 안나르'라고 읽는다. 페르시아어로는 마베라 나흐르)
1. 개요
중앙아시아 서쪽의 아무다리야 강(Amu Dar'ya) 강과 시르다리야 강(Syr Dar'ya) 사이에 있는 땅. 메소포타미아처럼 두 개의 큰 강들 사이에 평원이 있으며, 이곳에 적은 규모의 문명과 중앙아시아(또는 투르키스탄)의 독자적 문화들이 나타났다.아무다리야 강을 고전 그리스어로 옥소스(Ὦξος, Oxos) 강이라고 불렀으므로 라틴어로 '옥수스(Oxus) 너머의 땅'이라는 뜻의 트란스옥시아나라는 이름이 붙었다.
- 서쪽으로는 아랄해 남부의 호라즘(Khwarazm),
- 남서쪽으로는 이란 동부의 호라산(Khorasan)과 접하며,
- 동쪽으로 가면 키르기즈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사이의 페르가나 계곡, 및 파미르 고원이,
- 동남쪽으로는 힌두쿠시 산맥으로 연결되며,
- 북쪽에는 스텝 지대가 펼쳐져 있다.
지금의 우즈베키스탄과 그 인근 영토에 대응한다. 우즈벡인들의 영토로서 명칭은 바뀌었지만 고대시대의 이 땅을 말할 때 주로 쓰는 말이다.
이름이 길고 복잡해서 익숙해지지 않으면 좀 헷갈린다. 영어로 Transoxiana, 한글로 트란스옥시아나라고 쓰는 경우가 가장 많으나, 발음을 줄여서 트란속시아나라고 쓰기도 하고, 트란속사니아(Transoxania) 라고 쓰는 경우도 있다.
2. 역사
2.1. 고대
전체적으로 지대가 낮고 평탄하며, 건조하지만 강이 흐르는 곳은 토지가 비옥했다. 때문에 기원전 8000년경부터 이미 농업이 시작되었고, 기원전 2200년경에는 인도유럽어족 계통의 민족인 인도아리아인[1]이 이 지역의 토착 농경민을 정복하고 박트리아-마르기아나 문화라는 선사 시대 농경 문화를 꽃피웠다. 또한 비단길의 주요 통로 중 하나였으므로 고대부터 농업과 상업이 발달해있었다.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에 페르시아에 편입되어 옆동네 박트리아와 함께 크게 번영을 누렸으며, 이 때는 소그디아나라고 불렸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후에는 헬레니즘 세계의 최전방이 되어 셀레우코스 왕조와 박트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헬레니즘 왕조들은 거의 단명하였지만 트란스옥시아나는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 스텝 유목민들, 중국 등의 문화가 한데 모이는 교역과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고, 이후 이란 지역에 들어선 강대국 파르티아와 사산 왕조의 지배를 받으며 번영을 이어나갔다.2.2. 고중세
그러나 트란스옥시아나는 중앙아시아에서 발흥한 유목민들이 중동, 인도, 유럽 등으로 진출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교두보이기도 했으므로 그 침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5~6세기 사산 왕조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에프탈[2]이나 돌궐 제국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 일대를 페르시아어로 투르키스탄이라고 부르게 된 것도 그만큼 튀르크인들의 영향력이 점점 강해졌기 때문이다.2.3. 이슬람화
이후 아직 건재한 돌궐 부족들과 카를룩 카간국이 이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트란스옥시아나는 8세기 들어 사산 왕조를 멸망시킨 아랍 무슬림의 이슬람화로 인해 이 지역에 거주하던 돌궐인들은 전부 무슬림으로 전환되었다. 압바스 왕조의 동진으로 위협을 느낀 당은 둔황지역으로 진출하려는 압바스 군대를 막아섰다. 하지만 압바스 왕조가 탈라스 전투에서 당을 무너뜨리면서 확고한 이슬람 세계의 일부가 되었다. 하지만 이 지역의 주도세력은 칼리파들이 통치하는 아랍 중심지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 문(文)에서는 페르시아인들이, 무(武)에서는 튀르크인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독자적인 발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사만 왕조, 카라한 왕조, 가즈니 왕조, 셀주크 왕조 등 여러 강국들이 출현하였는데, 특히 셀주크 왕조는 이란은 물론 이라크, 아나톨리아, 힌두스탄까지 세력을 뻗치는 강대국이 되었다.셀주크 왕조가 약화된 후에는 그 세력에서 이어진 호라즘 왕조에 의해 지배를 받았다가 몽골 제국의 출현으로 비단길의 중심지라는 입지가 강해졌다.이후 이지역은 일 칸국에게 다스려지게 되는데,일칸국이 산산이 붕괴되고 티무르 제국이 등장하여 트란스옥시아나를 점령했다.하지만 티무르 제국 역시 16세기경 우즈베크족의 침공으로 멸망했다.
2.4. 근대 이후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의 우즈베크 족의 우즈베크 삼칸국이 건국되고 북쪽의 카자흐족을 격퇴하여 안정시켰다. 우즈벡의 샤이바니 칸 시대에는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문화적으로도 풍요롭게 되었다. 튀르크계 이슬람 국가로서 지도자들은 세속적인 삶에서 멀어지게 되었고 점차 종교적인 면모를 얻게 된다. 무역 쪽으로도 발전하여 카자흐스탄에서는 "우즈벡인들은 달나라에서도 장사를 한다"라는 말이 존재한다. 비단길의 영향은 줄어들었는데 지리상의 발견과 대항해시대의 시작으로 비단길의 영향력이 결정적으로 쇠퇴한 것 역시 중요한 요인이다. 이후 19세기 들어 러시아 제국이 중앙아시아로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러시아 영향권으로 편입되었고, 이후 소련 내의 사회주의 공화국이었다가 소련 붕괴 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으로 독립했다.3. 관련 지명
- 박트리아: 항목 참고. 토하리스탄이라고도 한다.
- 소그디아나(Soghdiana): 부하라와 사마르칸트 등 트란스옥시아나의 중심지를 가리키는 고대 페르시아의 지명. 페르시아어 "수흐드"에서 온 말로 사산 왕조 때까지 쓰였다.
- 페르가나: 시르다리야 강 상류 일대의 넓은 분지 일대
- 마르기아나 (Margiana): 아무다리야 강 남쪽에 있는 주요 도시 메르프 (Merv)를 중심으로 한 지역.
- 투란 (Tūrān): 페르시아 전설, 혹은 피르다우시의 샤나메(왕서)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란의 북쪽에 있는 이란계 혹은 튀르크계의 유목민들이 사는 땅으로 여겨진다. 아무다리야 강이 이란과 투란의 경계라고도 한다. 투란도트와도 관련이 있다.
- 투르키스탄 (Turkistan): 페르시아어로 "튀르크인의 땅"이라는 뜻이다. 트란스옥시아나 뿐만 아니라 그 동쪽의 중앙아시아 대부분을 포괄하는 지명으로 사용되지만, 트란스옥시아나는 투르키스탄과 이란, 아프가니스탄의 접경지대로서 중요하다.
- 호라산 (Khorasan 혹은 Khurasan): 이란 동북부에서 트란스옥시아나, 현대의 아프가니스탄 일대까지 포괄하는 영역.
- 호라즘 (Chorasmia 혹은 Khwarazm): 카스피 해와 면한 현대의 투르크메니스탄 서부를 가리키는 지명. 호라즘 왕조가 유명하다. 위에 있는 호라산과 영어 스펠링도 비슷하고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해서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20세기 번역본에는 화레즘이라고 되어있다.
- 토하리스탄 단어 자체는 산스크리트어로 "토하라인의 땅"이라는 뜻으로 쿠샨 왕조가 위치해 있던 오늘날의 파키스탄과 인도 북부, 아프가니스탄 일대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오늘날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해당하는 지역을 언급하는 경우도 있다.
- 중앙아시아/서아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