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나메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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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Shahnameh》. 이란의 시인 피르다우시가 기록한 역사를 바탕으로 한 대서사시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비견되는 페르시아 문학의 걸작으로 칭송받는 작품이다. 피르다우시는 977년부터 《샤나메》를 쓰기 시작하여 1010년에 완성했다. 수십년 동안 공들여서 쓴 작품답게 분량 또한 엄청나게 방대하다.2. 특징
조로아스터교 경전인 《아베스타》와 함께 페르시아 신화가 기록된 문헌들 중 하나로, 책 이름의 뜻은 《왕의 서》이다. 원래 《샤나메》는 이란인 왕의 지원을 받아 이란과 투란으로 대표되는 페르시아 VS 튀르크 세력의 전쟁을 담은 서사시로 만들어졌고, 작중의 투란은 그야말로 악의 소굴급의 묘사였다. 《샤나메》를 후원하던 사만 왕조가 멸망하고 아이러니하게도 투란의 후예, 즉 튀르크계였던 가즈니 왕조의 술탄 마흐무드가 피르다우시를 후원하게 되었다. 튀르크인들을 야만인으로 비하하는 서사시임에도 불구하고, 《샤나메》가 제작 당시부터 워낙 기대를 많이 받고 있었던 유명한 대작이다보니, 과시욕이 강했던 마흐무드가 피르다우시를 계속 지원했다고 볼 수도 있다.피르다우시가 장편의 서사시를 완성짓기 이전 다른 시인들이 몰래 그의 시구 내용을 도용하고 표절하는 일로 골치를 썩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에게 후원을 약속했던 마흐무드가 보상을 많이 챙겨줄 것을 기대했지만 마흐무드가 약속했던 돈을 금화 대신 같은 무게의 은화로 지불하자 크게 상심하기도 했다. 야사에 따르면 《샤나메》가 완성되자 한참 후에야 마흐무드가 은화를 가득 실은 코끼리 한 마리를 보냈는데, 피르다우시가 왜 이렇게 돈이 조금이냐고 돈을 가져온 관리와 코끼리 몰이꾼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이후 다시 마흐무드가 같은 코끼리 위에 금화를 가득 실어서 보냈더니 이미 피르다우시가 일생을 바친 작품이 푸대접받았다고 홧병이 나서 죽어 있었다고 한다. 튀르크인들에 대한 페르시아인들의 우월감과 자존심, 그리고 보상심리를 드러내는 야사라 하겠다.
페르시아어로 기록한 서사시로, 창세부터 시작해서 이슬람에게 정복당할 때까지의 이란의 장대한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전부 역사는 아니고, 신화나 설화가 더 많이 포함되어 있다. 기원전 3600년경의 창세부터 기원전 1150년경까지 피슈다디 왕조가 있었으며, 기원전 1150년경부터 기원전 350년경까지 메디아와 아케메네스 왕조까지 포함하여 카야니아 왕조가 있었다고 나온다. 그 이후의 내용은 실제 역사에 의거하나 《삼국유사》을 능가할 정도로 설화성이 여전히 매우 짙다.
피슈다디 왕조와 카야니야 왕조는 실제했던 국가가 아니라 사산 왕조 때 신화상으로 만들어진 가공의 왕조들이다. 원래 사산 왕조의 건국 세력은 아케메네스 제국의 키루스 대제와 다리우스 1세 같은 명군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1] 이 같은 상황에서 사산 황실과 그 지원을 받는 조로아스터교 사제들은 권위를 자랑하기 위해서 방대한 양의 신화를 제작했던 것이었고, 이것이 《샤나메》의 주요 소재가 되었다.
3. 의의
《샤나메》는 중동에서 이슬람교 신학 분쟁과 튀르크인들의 대이주에 밀려 조로아스터교의 교세가 급격히 약화되던 시절에 나온 작품이었다. 현존하는 《아베스타》의 분량이 사산 왕조 시절의 1/20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무슬림 시인이었던 피르다우시가 《샤나메》에 조로아스터교 및 페르시아 신화를 담지 않았다면 고대 페르시아의 신화와 문화 상당 부분이 그대로 소실되었을 것이다.《샤나메》의 의의는 단순히 페르시아 신화를 보존했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산 왕조 시대에 창작된 페르시아 신화가 황실의 귄위를 자랑하기 위한 목적에서 다소 평면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는 단조로운 형태였다면, 《샤나메》는 반골 기질이 강했던 피르다우시 개인의 창작품으로서 이란의 왕들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풍자와 비판을 담아 인물을 묘사했다.[2] 《샤나메》가 단조롭게 생소한 인물 목록만 나열한 시였다면, 방대한 분량이 오늘날까지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실전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