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랄해 | |
- 러시아어: Аральское Море(아랄스코예 모레)
- 영어: Aral Sea
- 우즈베크어: Orol Dengizi, آرال دېنگیزی (오롤 뎅기지)
- 카라칼파크어: Aral Ten'izi (아랄 텡이지)
- 카자흐어: Aral Teñizi, ارال تەڭىزى (아랄 텡이지)
- 튀르키예어: Aral Denizi (아랄 데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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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앙아시아의 대형 호수였던 사막 지역. 아랄해라는 이름은 직역하면 '섬바다' 혹은 '천개의 섬의 바다' 정도의 뜻인 고대 튀르크어 아랄 딩기즈에서 유래되었는데, 실제로 면적 1㏊ 정도인 섬들이 1,000여 곳 이상 이상 호수에 흩어져 있었다. 이름은 아랄'해'이지만 사실 호수라는 게 아이러니하다.[1] 국제법상 바다로 분류될 때와 호수로 분류될 때의 나라별 영유권 주장이 다르다. 바다로 분류되면 아랄해는 '해리'로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지만 호수로 분류되면 그렇지 않다.
우즈베키스탄의 카라칼팍스탄 자치 공화국과 카자흐스탄의 크즐오르다 주 사이에 위치한 호수로 한 때는 총면적 68,000㎢에 평균 깊이 16m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호수였다. 스리랑카 면적과 비슷하다. 남한의 면적이 100,339 ㎢로 아랄해가 남한 면적의 약 3분의 2 크기다. 괜히 아랄해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을 정도다. 어족도 풍부해서 철갑상어와 여러 물고기가 서식하여 근방의 주민들은 어렵지 않게 살았다. 한때 아랄해 최대의 항구 도시였던 무이나크[2] 주변 어획량은 연간 3만t에 이르렀지만, 이 모든 것이 지금은 사라진 과거일 뿐이다. 현재는 그나마 호수의 역할을 유지하고 있는 수심 8m 정도의 북아랄해 3,300㎢ 지역만 현상유지가 되는 상황이고 주변의 민물 유입이 끊긴 남아랄해는 점점 계속 면적이 줄고 있다.
아랄해는 지구상에서 인간들의 무지막지한 자연환경 파괴와 생태계 파괴의 위험성과 심각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이 되었으며, 반드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2. 소멸 사태
2.1. 재앙의 시작
아랄해의 크기 변화 |
2.2. 재앙의 진행
2010년의 아랄해 모습[3] |
아무다리야 강과 시르다리야 강에서의 물 유입이 크게 줄어들면서 아랄해의 면적은 점점 감소하기 시작했다. 원래 아랄해는 카스피해와 달리 호수의 깊이가 깊지 않아서 물의 수위가 줄어들면 면적이 급격하게 감소한다. 당장 면적만 봐도 1998년에는 28,687㎢, 2004년에는 17,160㎢, 2008년에는 6,800㎢로 줄어 버렸다. 약 50년 만에 면적이 1/10로 줄어버린 것.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점차 줄어드는 게 위성사진으로도 명백히 보이니 2012년에는 6,800㎢보다도 훨씬 더 줄어 들었을 것이다.
호수가 그냥 감소하기만 해도 큰 문제인데, 이로 인해 주변 기후가 변한다는 점이 더욱 치명적이었다. 마른 호수 바닥은 낮에는 끓어오르듯 뜨거워지고 밤에는 얼어붙듯 차가웠다.[4] 여름이 줄어들고 더 뜨거워졌으며, 강우량이 줄어들고 서리가 끼지 않는 날의 수가 줄어들어 목화 재배에 타격을 입게 된다. 그리고 아무다리야 강 유역의 숲들은 황폐해졌으며, 그 곳에 살고 있던 각종 동물들 역시 사라졌다.
또 다른 문제는 아랄해가 약간의 염호였다는 것이다. 바다처럼 염도가 높은 것은 아니었고 담수에 가까웠지만 염분은 존재했다. 즉, 기수와 같은 수준의 물이었다. 물이 없어 점점 말라 가면서 아랄해의 염도는 개발 이전보다 3배 가깝게 올라가 버렸으며, 본래 호수였던 곳이 마른 곳은 소금 사막이 되어버렸다. 소금기가 섞인 모랫바람으로 소금 가루가 500㎞ 이상 날아가 주변국 농토까지 위협했다. 토양에 날아와 묻은 소금들을 제거하기 위해 더 많은 물을 소비했으며, 이러한 소금물들은 토양에 침투하거나 다시 아랄해로 흘러들어가 염도를 가중시켰다. 게다가 관개시설이 열악하였던지라 불필요하게 증발되는 물도 많았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정작 목표였던 목화 재배량도 날이 갈수록 줄어들게 된다. 단적인 예로 고려인들의 콜호스(집단농장)인 김병화 콜호스는 1950년대~1970년대까지만 해도 소련 정부가 지정해 준 쌀과 면화 생산 목표의 두 배를 아무렇지도 않게 찍던 괴물 같은 농장이었다. 7개년 계획을 4개년 만에 초과 달성하는 위엄을 보여 주었을 정도. 그런데 이 농장은 1980년대 아랄해의 사막화가 예전으로 돌이킬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자 생산량이 소련 평균을 밑돌 정도로 몰락했다. 이로 인해 이 지역 인근의 카라칼파크인들은 큰 피해를 보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우즈베키스탄에 독립을 요구할 재력조차도 없다고 한다.
또한 높아지는 염도 외에도 목화 및 쌀을 재배하기 위해 뿌려진 각종 화학 비료와 살충제는 고스란히 아랄해로 들어가게 되었고 호수의 오염 자체도 심화되어 갔다. 이러한 오염은 아랄해를 식수로 이용하는 지역 주민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했고, 특히 어린이들에게 치명적이었다. 아랄해의 남쪽 해안에 위치한 카라칼팍스탄 지역의 1989년 당시 어린이 사망률은 세계 최고였다. 또한 서식하던 물고기가 32종에서 6종으로 줄었고, 1960년대 연 4만t에 달했던 어획량은 1970년대 1만t으로, 2006년에는 20t으로 급감했다. 그래서 관련된 일자리 6만 개가 사라져서 주민들은 도시로 떠나야 했다.
결국 물이 줄어 바닥이 드러나면서 아랄해는 카자흐스탄 쪽의 북아랄해와 우즈베키스탄 쪽의 남아랄해로 두 쪽이 났다. 우즈베키스탄은 아랄해로 유입되는 강을 이용한 면화 산업을 계속 유지하고 호수 바닥에서 가스와 석유를 개발하겠다며 소금 사막으로 변한 아랄해 재생 노력을 사실상 포기했다. 이 상태에서 환경 전문가들은 2020년에는 아랄해가 완전히 말라붙을 것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5]
한마디로 말해 근처 지역민에게는 헬게이트가 도래한 것이다. 아랄해의 옛 항구도시였던 카자흐스탄의 아랄(Арал, 러시아어명 아랄스크(Аральск))과 우즈베키스탄의 무이나크(Mo‘ynoq)의 인구는 절반 이하로 줄어버렸고, 열심히 물고기를 잡는 소련 시절의 빛바랜 선전 벽화가 그대로 남아 있으며, 옛날에 항구였던 모래사막 위에는 녹슨 어선들이 나뒹굴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궁여지책으로 아랄해로 흐르는 아무다리야 강을 막아 무이나크 주변에 거대한 인공 호수를 만들었다. 그 곳에서는 어업 허가권을 가진 사람들만 어업 행위를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아랄해의 몰락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와 함께 소련의 2대 환경 재앙으로 꼽히며, 산업화와 생산량 달성만을 위해 달려오던 소련 공산당이 영원히 까일 구실을 만들어 주었다. 소련은 목화를 위해 아랄해를 성급하게 개발했지만 정작 목화 재배도 시들해졌으며, 아랄해와 지역 주민에게는 지옥같은 환경과 큰 피해를 남겨주었다.[6] 그렇다고 목화산업이 망한 것까진 아니고 그 증거로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은 여전히 목화 산업 때문에 아랄해로 유입되는 강의 물을 원복시키는데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참고로 투르크메니스탄은 목화 생산량 세계 8위, 우즈베키스탄은 세계 6위의 목화생산 강국이다.
2.3. 필사적인 노력
2011년의 아랄해 모습 |
2018년 5월 4일에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은 아랄해 되살리기에 나서기로 합의했다.[7] 그리고 아랄해와 연결된 강의 유량을 관리하기로 합의했다.
2021년 7월 2일에 코이카는 아랄해 지역의 위기 대응을 위해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와 주 우즈베키스탄 한국대사관에서 카라칼팍스탄 자치공화국의 지역사회 주도 친환경 재건 사업 협약을 체결했다.
2.3.1. 아랄해 수역 계획
2.3.1.1. 참여 국가
총 5개국이 참여하였으며, 그 참여국은 다음과 같다.2.3.1.2. 목표
이 계획의 목표는 4가지이며, 다음과 같다.- 아랄해 수역 자연 환경의 안정화
- 아랄해 주변 환경 복구
- 아랄해 수역을 구성하는 국제 하천의 관리 강화
-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지역적, 국가적 기구 설치
2.3.1.3. 진행 상황
1984년부터 2016년까지 아랄해의 해수면 변화 구글 어스 위성사진.
2.3.1.3.1. 1단계(1992~1997)
아랄해 수역 프로그램의 첫 번째 계획은 아랄해 주변 지역을 개선하는 데 중점을 뒀다. 즉 아랄해에 물을 채우려는 것이 아닌, 아랄해의 말라버린 지대의 사막화를 늦추는 과정이었다. 1992년 세계은행의 협력 하에 시작되었고, 아랄해에 크게 영향을 받는 참가국들이 협력을 위해 노력했다. 대표적인 예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은 화력 발전으로 얻은 전기를 키르기스스탄에 보내주는 대가로 시르다리야 강의 물을 아랄해로 끌어올 수 있도록 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이 물로 관목을 키워 사막화를 어느 정도 막는 데에 기여했다고 한다.결과적으로 아랄해 주변 환경의 악화는 다소 늦춰졌으나, 환경을 복구하려는 장기적인 대안을 찾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는 참가국 내부에서 아랄해의 위기에 대한 인식이 저조하여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이에 각국 정부가 긴밀한 협력을 하는 데 큰 의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2.3.1.3.2. 2단계(1998~2003)
아랄해 수역 프로그램의 두 번째 계획은 완수하지 못한 1단계 계획을 지속하면서 아랄해에 근접한 지역 사회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에 각 참가국은 자국 내에서 아랄해에 관련한 여러 문제점을 공론화하여 아랄해 회복을 위한 여론을 형성하게 된다. 이는 1단계 계획이 대중의 인식 부족으로 완벽하게 성공하지는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2단계 계획은 1단계 계획과는 다르게, 세계 은행을 중심으로 참여국 정부 대표단과 여러 분야의 기술자들이 주도하여 계획을 수립하였다. 참여국은 세계 은행을 중심으로 아랄해 수역 프로그램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하였다.
2.3.1.3.3. 3단계(2003~2010)
아랄해 수역 프로그램 3차 계획부터 아랄해의 수위를 이전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을 골자로 한 목표를 이행하게 된다. 또한 1차 계획도 주변 지역의 개선에서 회복으로 수정했는데, 이는 아랄해의 주변 지역이 상대적으로 안정화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랄해 전 지역의 수위를 회복하면 좋겠지만, 남아랄해는 광활하기 때문에 참가국이 감당할 수준이 되지 않아 북아랄해부터 수위를 회복하기로 한다.2.3.1.3.4. 북아랄해 수위 회복 계획(2003~현재)
카자흐스탄 정부는 3차 계획이 시작되자마자 북아랄해를 살리기 위해 1차 계획 때 있었던 키르기스스탄과의 협약을 먼저 이행하였다. 이에 키르기스스탄은 상류에 있던 댐의 문을 개방하여 시르다리야 강에서 물을 내려보내 북아랄해에 강물을 공급하였다. 이로 인해 북아랄해의 수위가 저하되는 상황을 간신히 모면했다.북아랄해의 수위가 감소하지 않는 것을 확인한 카자흐스탄 정부는, 시르다리야 강의 물이 남아랄해로 흘러 들어가 그대로 증발해버리는 상황을 막기로 한다. 이에 2003년부터 5년간 8,800만 달러(약 1,040억 원)를 들여 북아랄해와 남아랄해 사이 최단 구간에 쾨카랄(Көкарал)댐을 세웠다. 공사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았으나, 도로나 통신 등 기반 시설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 기반 시설을 건설해야만 했다. 하지만 기반 시설마저도 허약해 어쩌다 비가 오기라도 하면 길이 진흙탕이 되어 차량의 진입 자체가 불가능했고 통신 또한 자주 두절되었다고 한다. 또한 작은 댐을 건설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라붙은 호수 바닥이 초연약지반이었기 때문에 난공사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댐은 작았으나 그 측면이나 지하로 물이 새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댐 주위의 물가에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콘크리트 벽을 쌓았다.
그리고 댐이 완공되자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아랄해가 마르면서 바닷물 이상으로 상승했던 염도도 다시 기존의 염도로 돌아왔고, 타지에서 물고기를 산 채로 잡아서 아랄해에 방생하는 등의 노력으로 물고기가 늘면서 2007년 어획량이 1년만에 100배인 2,000t으로 늘었다. 게다가 수심이 30m에서 42m로 무려 12m씩이나 증가하면서 1970~1980년대까지만 해도 항구도시였다가 물가까지 최대 100km를 가야 하는 내륙 도시로 변했던 아랄도 물가까지 거리가 25km 정도로 줄어들었다. 2016년 7월 말에는 15km까지 단축되었다.
덤으로 북아랄해 주변 지역 한정이지만 날씨도 상대적으로 온화해지면서 소금모래폭풍도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그래서 카자흐스탄 정부는 쾨카랄댐 북쪽에 댐을 한 개 더 만들어서 확실하게 아랄을 근 40여년만에 다시 원래의 항구도시로 만들려는 계획을 가지고 이를 추진 중이다. 2016년에 두 번째 댐이 만들어지면 2017년쯤에는 다시 옛 항구도시 아랄에 물길이 닿을 것으로 예측된다고 한다. 결국 이 계획은 성공적으로 이르러 이제는 아랄에서 아랄해까지 6km까지 단축되었다고 한다. 현재 아랄해 회복계획 협의체는 아랄과 아랄해를 잇는 항구를 지으려고 계획 중이다.
2021년 5월 카자흐스탄 정부는 아랄해의 마른 지역에 모래폭풍이 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나무를 대량으로 심을 계획을 발표했다.
2.4. 경과
2.4.1. 2010 ~ 2014
2011년의 아랄해 모습 |
따라서 원래 면적의 10%도 안되는 북아랄해만 간신히 살아남은 상황에서 아랄해의 소금 사막에서 불어오는 소금모래폭풍을 약화시키고 일부 지역을 보호할 수는 있다고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이를 1960년대처럼 완전히 원상복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예컨대, 아랄해를 완전히 복구하는 방법 중 하나로 볼가-오비-이르티시 강의 대규모의 물을 일시에 끌어오는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을 추진하려면 20~30년 동안 300~500억 달러(40조~60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자금을 투자해야 된다. 하지만 이를 ASBP 참여국만으로 시행하기에는 각국이 재정적으로 크게 부담을 지게 되므로 참여국이 적극적으로 나서기에는 아직 힘든 상황이다.
1989년(좌측)과 2014년(우측)의 아랄해 모습 비교 |
이렇게 아랄해는 자연을 훼손하면 돌이킬 수 없다는 큰 교훈을 주고 있다.
2.4.2. 2015 ~
2014년 사진에서는 남쪽에 물이 거의 없었지만 2016년 사진에서는 상당히 넓어진 걸 볼 수 있다.
2016년 7월 28일 사진. 중앙의 호수의 넓이가 엄청나게 증가했다.
2016년 8월 21일 사진. 일시적인 현상인지 아닌지 장기적으로 확인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09년과 2010년 사진을 비교해 보면 그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출처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우기와 건기의 차이 때문이다. 우기 때는 쏟아지는 비와 낮은 지대로 인해 그나마 옛 아랄해의 모습이 되지만 건기 때는 줄어든 강물의 수량의 영향을 직격탄으로 맞아 말라버린 아랄해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와디와 비슷한 일시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
2017년 8월의 사진. 중앙부분 호수와 유입부가 더 증가된 것이 보인다.
2021년 8월의 사진. 북아랄해를 제외한 아랄해 전체가 거의 말라붙었으며 서쪽으로 극히 일부만 남아있다. 2016년 당시 중앙부의 물이 빠르게 증가했던 것과 비교하면 너무 많이 말라버렸다.
2023년 7월의 사진. 2020년 중앙부의 물이 완전히 말라버린 이후로 2023년까지 3년의 시간동안 중앙부의 물이 채워진 적은 없었고 2023년의 남아랄해는 2021년의 그것보다 약간 더 마른 상태에서 형태만 겨우 유지하고 있다. 남아랄해 복구 작업은 결국 실패하면서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이대로라면 2020년대 안에 남아랄해가 진짜로 전체가 지도에서 지워지는 운명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2024년 현재는 약간 다시 채워졌으나 여전히 회복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이다.
2.5. 아랄해가 회복되기 어려운 이유
앞서 언급했듯이 아랄해에 물을 공급하는 하천은 크게 2개가 있는데 하나는 천산산맥에서 출발해서 키르기즈스탄- 카자흐스탄을 거쳐서 아랄해 북쪽으로 흘러드는 시르다리야 강이고, 다른 하나는 티베트 고원에서 산맥이 쭉 이어지는 파미르 고원에서 출발해서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을 거쳐 아랄해 남쪽에 도착하는 아무다리야 강이다. 이들은 수량도 많지 않고 물이 귀한 건조지대를 흐르며 여러 국가를 지나는 국제하천이라 국가 간 분쟁이 나기 딱 좋은 상태다.
문제는 이 지역의 경제가 워낙 답이 없다는 데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산업화 하기엔 기술도 없고 인구수도 적고 바다도 없는 내륙국들이라서 육상 실크로드 길이 무너진 이후엔 교역하기도 불편하다. 그래서 소련이 도저히 이 지역 경제를 살릴 방법이 안보이기 때문에 강물의 수자원을 끌어다 쓰는 목화 플랜테이션으로 산업을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경제를 부흥시킨 나라가 바로 우즈베키스탄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아랄해로 들어가는 수자원을 활용하여 목화랑 섬유를 찍어내고 있고 이 덕분에 세계 6위의 면화 생산국 + 5위의 면화 수출국이라는 산업기반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투르크메니스탄도 상황이 우즈베키스탄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구소련 해체 이후, 아랄해가 말라가면서 아랄해에 엮인 중앙아시아 나라들이 모여서 견적을 내봤는데 입장이 다 달랐다. 강 상류에 있고 수자원이 부족하지 않았던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같은 나라들은 사실상 크게 관심이 없었고 투르크메니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아무다리야 강의 수자원을 포기하여 자국의 주요 산업인 목화 산업을 포기하라는 건 자살행위였기에 결사적으로 반발했다. 결국 북아랄해 쪽 카자흐스탄[8] 정도나 아랄해를 살리려는 데 적극적이었으니, 시르다리야 강을 영유한 카자흐스탄이 북아랄해를 겨우 살린 정도가 실질적인 한계였던 것이다. 거기다가 우즈베키스탄은 상술했듯이 아랄해에서 천연가스랑 석유를 뽑을 수 있다고 기대했으니 카자흐스탄이랑 의견이 일치할 리 없었다.
거기다가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입장에선 아무다리야 강이 이렇게 써먹을 구석이 많기에 물을 그냥 아랄해에 내버릴 이유가 없었다. 결국 누가 됐든 산업화와 주민들의 생활 수준의 상향을 시도하려면 이 용수를 끌어다 썼을 거고 결과적으로 아랄해는 마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즉 남아랄해를 가진 우즈베키스탄은 아랄해 인근의 환경을 포기해 다른 지역 전체의 생활 수준 향상에 투자했던 것이다. "물 많이 먹는 목화 키우게 한 게 소련 탓 아니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건조지대 상품 작물이 뭐 얼마나 된다고 목화를 거르겠는가? 소련이나 이들 중앙아시아 국가들에게도 할 말이 있었다. 환경 보호가 중요하다고 목청을 높이지만 당장의 생계가 중요한 이들 국가 입장에선 "그러면 우리는 계속 기간산업도 키우지 말고 이대로 손가락만 빨고 굶으라는 거냐?"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흑해-카스피해-아랄해 연결하는 운하건설계획이 실행으로 옳겨지거나 국가 농업의 전반을 아무다리야 강 수자원에 의존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이나 투르크메니스탄이 카스피해의 염수 담수화를 통한 대체 농업 용수자원 전환이 실현되지 않는 한[9] 아랄해의 수위회복은 예전 수준으로 되돌아가기 어려운 현실이다.
여기에 더해 아랫나라인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까지도 아무다리야 강에서 물을 끌어다 쓰는 코시 테파 운하를 건설 중이다. 아프가니스탄은 UN 수자원 헌장에 가입하지도 않았으며, 중앙아시아에서 체결한 알마타 협약 당사국도 아니다. 더구나 토목 기술의 비효율성과 낙후함으로 인해 30~70%의 물이 유실될 거라 추측되고 있어 안 그래도 모자란 아랄 해에 유입되는 물의 양이 더 줄어들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10]
3. 만들어진 것
3.1. 아랄쿰 사막(Aralkum)
말 그대로 아랄해가 말라붙으면서 생긴 세계에서 가장 젊은 사막이다. 게다가 그냥 모래사막이 아니라 소금이 가득 섞인 고운 먼지입자가 많은 사막인지라 끔찍한 소금모래폭풍까지 발생한다. 그리고 이 사막은 계속 확장하고 있어서 북아랄해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사막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3.2. 보즈로즈데니야 섬(Vozrozhdeniya Island)
원래는 남아랄해에 있던 섬으로, 1948년부터 소련이 비밀리에 생화학무기 실험장 및 부산물 처리장으로 운영했다. 그래서 가끔 여기서 새어나온 병원균으로 인해 아랄해 주변 도시에 전염병이 도지는 사고가 발생한 전례가 있는데, 1971년에 무기용 천연두 병원균 누출로 발생한 아랄해 천연두 사건이 유명하다.이 섬은 소련의 붕괴로 인해 1992년부터 버려졌다. 그리고 많은 양의 생물학무기용 병원균이 파기되지 않고 밀봉된 컨테이너 속에서 방치되었다. 그리고 아랄해가 말라 가면서 섬의 크기가 점점 커지더니, 2001년부터는 아예 반도로 다른 육지와 붙어버렸다. 이로 인해 누군가가 섬에 접근해서 병원균을 잘못 건드려서 대참사를 일으키거나, 사막화로 인해 발생한 소금모래폭풍에 병원균까지 섞일 위험성이 무지하게 높아진 것이다.이 구역에 칸투벡(Kantubek)이라는 유령도시도 있는데, 상기한 소련이 운용했던 생화학무기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과학자나 기술자들이 거주한 곳으로 연구소가 폐쇄되던 1992년 모든 거주 인원들이 퇴거하며 일부 건물들이 철거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다. 연구소가 폐쇄되기 전 거주하던 인원은 약 1,500명 정도였다.결국 2002년에 미국이 우즈베키스탄의 협력을 얻어서 이 섬에 접근해서 탄저병 관련 병원균이 묻힌 보관소 10여개소를 철거하고 주변의 오염을 제거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리고, 2020년 우즈베키스탄 건설당국에서 모든 시설물을 완전히 철거했다.별칭은 리버스 섬.[11] 콜 오브 듀티 시리즈에서 해당 지역을 차용하면서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콜 오브 듀티: 워존에서 등장한다. 작중에선 노바 6의 실험지이자 프리드리히 슈타이너의 은신처로 등장한다.
3.3. 아랄해 바닥에서 발견된 실크로드 도시 유적
2001년, 과거엔 호수였다가 말라버린 아랄해 바닥에서 우연히 돌과 구운 벽돌로 축조한 14세기 영묘 유구가 발견되었다. 잠정적으로 케르데리(Kerderi) 묘라고 이름지어졌다. 근처에 배후 도시 유적도 있을 것이 유력했지만 발견되지 않았다.2004년, 이 근처에서 또다시 묘와 성터, 그리고 귀걸이와 도자기 조각 등이 발굴되면서 아랄해에 잠겨있던 고고학 유적지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 잠정적으로 아랄-아사르(Aral-asar)로 이름붙여진 이 도시는 과거 아랄해 연안의 항구도시였던 카라테렌(Karateren) 마을에서 65.2km 떨어져 있다. 이 도시는 발굴 결과 고대 시르다리야 강 하구의 지류에서 이 도시까지 관개수로를 파서 물을 끌어왔고 맷돌, 도기, 창고 등이 다수 발견되어 농업이 발달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랄해는 본디 플라이오세 후기까지는 그냥 저지대였는데 톈산 산맥이 형성되며 빙하가 만들어지고 여기서 녹아내린 물이 시르다리야 강이 되어 이 저지대까지 흘러내려와 고이기 시작했다. 아무다리야 강은 당시엔 카스피해로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에 유입 수량이 적다 보니 증발량을 감당하지 못해 말라붙어 염분이 쌓이다가, 제4기 후기(약 2만년전)에 접어들면서 아무다리야 강이 아랄해로 방향을 틀며 현재 모두가 기억하는 형태의 아랄해가 형성되었다. 이후로도 아무다리야 강이 카스피해로 방향을 틀 때마다[12] 수위가 낮아지며 소멸 위기에 처했다가 시간이 지나 강이 다시 돌아오면 수위가 늘어났다.
유적지들은 16세기 무렵 아무다리야 강이 다시 아랄해로 흘러들기 시작하면서 수위가 크게 늘어나 잠겨버린 것이다.
4. 아랄해~카스피해 연결운하 건설 계획
흑해(지중해)-카스피해-아랄해 운하 건설을 통해 아랄해를 살린다는 구상이 있지만, 비용 문제, 잠재적인 환경 문제, 운하가 통과할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혀서 진도는 나가지 못하고 있다. 만약, 성사될 경우 우즈베키스탄은 카스피해를 거쳐 흑해 등 바다로 진출이 가능해질 것이다.
2021년 말 우즈베키스탄 현지에서도 아랄해를 카스피해와 운하 연결로 인한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한 동영상도 있다.
다만 이것이 실제 실현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비용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운하가 카자흐스탄 또는 투르크메니스탄의 영토를 관통해야 하는데, 우즈베키스탄이 해외 영토에 자국을 위한 운하를 건설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권이 걸려있었던 파나마 운하조차 콜롬비아의 지나친 요구로 부침을 겪다가 미국의 지원으로 파나마를 콜롬비아로부터 독립시키고 나서야 겨우 추진할 수 있었다. 게다가 카스피해도 주변 도시들의 난개발과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조금씩이지만 수위가 줄어들고 있어서 말라붙은 아랄해에 카스피해가 다량의 물을 공급했다가는 오히려 카스피해까지 말라붙어[13] 주변국들의 반발을 살 우려가 크다. 볼가-돈 운하를 대체할 흑해-카스패해간 유라시아운하를 건설로 흑해와 지중해로부터 카스피해와 아랄해로의 해수유입이라는 변수가 있지만 두고볼 일이다.
5. 관광
옛날에 항구도시였던 카자흐스탄의 아랄이나 우즈베키스탄의 무이나크에 가면 모래사막 위에 나뒹구는 녹슨 배나 어업기념물 등등 바다가 있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현지 여행사들은 자동차를 타고 새로 생긴 소금 사막, 녹슨 배를 모아놓은 선박묘지, 조금 남은 아랄해 등을 둘러보는 투어를 판매 중이다.[14]특히, 우즈베키스탄 쪽에 남아있는 호수는 그 염도가 사람과 벽돌까지 둥둥 뜰 정도로 상당히 높다. 즉, 완벽한 사해가 된 것이다. 카자흐스탄의 북아랄해는 그래도 나름 복구 중이어서 호수의 수량이 늘어났고 염도도 원래의 상태로 회복되어 있다.
6. 여담
- 현재까지도 세계 지도에는 아랄해가 마르기 이전의 크기로 나타나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때문에 아랄해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편. 특히 중앙아시아와 남부 시베리아 지방에는 내륙형 호수가 많은데, 소련 시절의 면화사업으로 말라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최근 들어서는 2000년대 초반 즈음의 모습으로 업데이트가 된 경우도 많지만, 문제는 그마저도 현재에는 거의 다 말라버렸다.
-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 오리지널 미션 5에도 나온다.[15] 처음 시작 때 버튼 대령이 GLA를 낚아 한데 모은 뒤 벙커를 폭발시켜 일대를 날려버린다. 게임상 다리가 2개 있다. 물과 온전한 섬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2000년대의 아랄해를 바탕으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16]
-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Rebirth 미션에도 나온다. 여기선 물이 가득 차고 섬이 있던 60년대 당시 그대로 나온다.
- 비슷한 가상사례로 아이, 로봇에서는 미시간 호가 이 비슷한 봉변으로 완전 말라붙어 한때 호수였다는 표석만 남았다. 쓰지 않아 교각과 상판만 겨우 남은 다리 아래로 컨테이너들만 쌓여있는 황폐한 모습이었는데, 이와 같은 일이 결국 현실에도 일어난 것이다. 그나마 미시간 호는 상상한 거지만, 유타주의 그레이트솔트 호에서는 2022년 현재 아랄해와 똑같은 과정이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다. 호수 면적은 과거의 절반, 담수량은 1/3이다.
- 빅토르 초이가 출연한 영화인 이글라에도 이미 말라붙어서 회전초가 굴러다니는 상태로 나온다. 아랄해 장면에 삽입된 BGM의 제목도 러시아어로 회전초를 뜻하는 페레카티폴레(Перекати-поле).
- 1995년 3월 KBS 1TV 해외 특파원 취재 프로그램인 "세계는 지금"에서 '아랄해가 사라진다'는 제목으로 아랄해가 처한 위기를 다룬 적이 있다. 그때 특파원이 취재를 간 카자흐스탄의 한 마을은 원래 어촌이었으나 취재 당시에는 호안선이 이미 마을에서 2km 바깥으로 멀어져 항구는 몰락하고 어선들이 메마른 호수 바닥에서 녹이 슬어 있었고, 호수가 마르면서 모래와 염분이 섞인 바람이 잦아지고 이로 인해 주변 지역에 호흡기 질환이 만연하던 터였다. 2010년대보다 사정이 나았을 1990년대부터 아랄해와 그 주변은 이미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었던 것.
- 미국에도 이미 관개농업과 도시화로 사라져 버린 툴레어 호(Tulare Lake)가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상이변으로 인해 폭우와 폭설이 연달아 쏟아지면서 부활하기 시작해 주민들이 피해를 보았다.
- 특이하게도 아무런 대규모 군사작전이 벌어지지 않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을씨년스런 분위기 덕에 밀리터리 게임 워 썬더의 맵으로 등장했다. 폐선과 폐건물들이 엄폐물 오브젝트로 등장하는 사막 맵으로 나온다. 상술한 구 소련의 기밀무기 생산구역이었던 리버스 섬(보즈로즈데냐 섬)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현실에선 이곳에 버려진 T-72와 BMP-2가 있긴 하나, 직접적인 전투가 현실에서 벌어진 적은 없다.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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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는 과거 아랄해가 테티스 해에 포함되어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2] 하얀 낙타의 목 같다는 뜻이다.[3] 이 사진도 이젠 그나마 양호했던 수준의 사진이다. 2015년엔 저 사진 가운데 부분에 있던 호수도 없어졌다가 2016년에 아랄해 복구 사업으로 다시 생겨났다가 전보다 더 줄어들었다.[4] 실제로 플라이오세, 약 596만년에서 533만년을 전후로 대서양에서 지중해로 대량의 해수를 공급하던 지브롤터 해협 지각의 융기로 약 반만년간 막히게 되면서 지중해가 막혀 증발해 버리는데 이때 엄청난 염분이 지중해에 쌓였다. 이른바 메시나절 염분 위기(Messinian Salinity Crisis). 이후 533만년 전후즈음에 일어난 잔클레 홍수(Zanclean Flood) 때문에 지브롤터 해협이 다시 열리면서 대서양으로부터 다시 해수를 공급 받았지만 이전에 쌓인 염분은 그대로 남아서 지중해의 염도를 높이게 된다.[5] 그나마 후에 복구 사업이 진행되며 간신히 증발을 멈추는데 성공해 현재까지 남아있다.[6] 아틀란트로파가 더 먼저 계획되었다. 그러나 아틀란트로파 계획의 대상은 지중해였고 여러 나라들의 이해관계가 걸려있어서 제대로 된 진전이 안 된탓에 다행히 실행되지 않았다. 환경에 대한 논의는 조금도 고려되지 않았다. 당시에는 사례가 없어서 그런지 바다가 증발하면 어떻게 될 지에 대한 생각도 없고 환경에 대한 논의도 수십년 후에야 시작되었다. 현대에 이것이 성공했을 시에 대해서 가정 결과 해수면이 10m 상승하고 지중해 일대는 사막화가 되었을 것으로 본다. 물론 아틀란트로파 계획은 지중해를 모두 증발시키는게 아니라 일부만 빼내서 단순히 수위만 낮추는 것이었지만 계획과 실제로 벌어질 일은 이렇게나 달랐다.[7] 이때 러시아가 매우 크게 비판을 받았는데 왜냐하면 아랄해 재앙의 시작은 일단 소련이고 그 소련을 공식적으로 이어받은 국가가 러시아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도 여기에 책임이 있는데 무책임하게 방관만 하고 앉았다며 러시아와 대척점에 있는 EU국가들이 소련의 권리는 다 받아가면서 의무는 다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8] 어차피 카자흐스탄은 국가경제의 전반이 수자원을 꾸준히 끌어다 쓸 필요가 없는 석유산업이나 광산업에서 나오고, 인구정책도 농민들을 도시로 이주시켜서 첨단산업이나 석유, 광산, 제조업에 종사하게 하려는 쪽이므로 시르다리야 강물을 아랄해로 그냥 흘려보내도 큰 문제가 없다.[9] 그러나 염수의 담수화는 이보다 더 비싼 비용이 들기에 경제적으로 가난한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이 아무다리아 강의 수자원이 아닌 카스피해 해수의 담수화를 통한 목화농업의 용수 전환을 실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10] 심지어 아프가니스탄은 중앙아시아 구소련권 국가들의 국경을 가르는 아무다리야 강 뿐만 아니라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을 관통하는 헬만드 강의 수자원 사용권을 놓고 서쪽의 이웃나라인 이란하고도 물 분쟁을 겪고 있다.[11] 러시아어 Vozrozhdeniya(Возрождение)라는 단어 자체가 부활, 부흥, 회복 등의 의미이다.[12] 기원전에 한 번, 13세기 몽골 침공 당시 제방 파괴로 한 번.[13] 완전히 말라붙는 것이 아니라 해안선이 도시로부터 10m만 후퇴해도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14] 2019년에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이 옛 항구도시 무이낙에서 이런 투어를 한 적이 있다.# 말라버린 아랄해의 관광이 대충 어떤 것인지 엿볼 수 있다.[15] 미군기지를 정리하고 아랄해 주변과 안 섬에 있는 화학물질벙커를 회수하는 미션이다. 스렉스 박사가 오리지널의 사령관이니 당연한 미션일 것이다.[16] 게임의 발매 시기가 2003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