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3 01:10:07

공화춘


1. 중국집2. 팔도라면

1. 중국집

1.1. 인천광역시 중구 차이나타운에 있었던 중국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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共和春, Gonghwachun

1908년 무렵에 지어진 2층 건물이며, 2006년에 등록문화재 246호로 지정되었다. 매우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청나라 시대 건축 양식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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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춘 설립자 화교 우희광(于希光) (1886~1949)

설립 당시에는 산동회관(山東會館)이라는 이름이었으나(우희광이 산둥성 출신이다.), 신해혁명을 기념해서 '공화국의 봄'이라는 뜻의 '공화춘'으로 이름을 바꿨다.[1]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된 이후 중국인들이 인천 지역에 거주하기 시작하고 조선과 청 사이의 무역이 성행하자 중화 요리를 파는 요릿집이 생기기 시작했고, 공화춘도 초기에는 중국인 무역업자들을 주 고객으로 삼았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들어선 뒤에는 토착화된 중화요리가 조선인들에게도 인기를 얻으면서 식사 공간이 확장되었고, 결혼식 등 대규모 연회도 소화할 수 있는 연회장까지 갖춰 당시 기준으로는 고급 음식점으로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1950년에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일시적으로 영업을 중단했으나, 1953년에 우희광의 아들인 우홍장(1917~1993)이 매입해 가업을 이어가면서 197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으나 1983년에 경영난으로 폐업했다.

한국에서 최초로 짜장면이라는 상표를 달고 짜장면을 판매한 곳으로 짜장면의 원조로 알려져 있다. 다만 짜장면의 유래는 중국에서 춘장에 면을 비벼먹는 형태의 '작장면(炸醬麪)'(현대 한어 병음 표기로 'Zhajiangmian(자장몐)')이 1900년대 초반 선린동 일대 화교촌의 요릿집에서 자연스럽게 한국화되어 형성된 요리라고 보는 편이 훨씬 타당하다. 따라서 짜장면은 사실상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어, 인천의 나이든 화교 1세대들은 공화춘은 짜장면의 원조라고 하는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이렇게 형성된 요리를 짜장면이란 이름을 내걸고 판 곳은 공화춘을 최초로 보기에 짜장면 역사에서 공화춘이 차지하는 위치는 중요하다.

옛 공화춘 건물은 약 100m 가량 떨어진 골목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을씨년스러운 폐가 상태였고 붕괴 위험이 있으니 건물 가까이 주차하지 말고 행인들도 조심하라는 경고문이 붙어있는 등 상당히 안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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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등록문화재 지정 건물이라 그런지, 2010년 후반 들어 인천광역시 중구청에서 건물과 대지를 매입한 뒤 보수 공사를 시작해 2012년 4월 28일에 짜장면 박물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입장료는 무료였지만 2013년부터 성인 기준 1000원씩 받는다.

어째선지 몰라도 기획전시실에 쌍절곤이 박힌 클로건틀렛이 전시되어 있다.

1.2. 2004년 차이나타운에 개업한 중국집

2004년부터 오늘날까지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영업하고 있는 공화춘은 짝퉁 공화춘이다. 옛 공화춘은 1983년에 문을 닫았고, 오늘날 공화춘은 이현대라는 사람이 개업 전인 2002년에 이름만 따서 상표등록한 옛 공화춘이 있던 건물 근처에 자리를 잡은 완전히 별개의 음식점이며, 옛 공화춘을 운영하던 우씨 가문과도 하등 관계가 없다. 음식 맛은 먹어본 사람마다 평이 엇갈리는 등 편차가 큰 편이나 전반적으로 평이 좋지는 않으며 흔한 중국집 수준이다.

진짜 공화춘의 후손 가게도 있다. 공화춘의 초대 설립자 우희광의 외손녀가 영업 중인데, 공화춘이라는 간판은 앞서 말한 가게에 빼앗겨서 신승반점이라는 이름으로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영업중이다. 관련 글. 그래도 요즘은 여러번 방송을 타서 유명해졌으며, 그 유명세 덕에 여러 곳에 지점이 있다. 사실 여기도 1983년 공화춘이 폐업한 직후 다시 개업한 곳이라 30년이 넘는 나름 긴 역사를 가진 곳이다. #

이 짝퉁 공화춘은 20년도 안 된 2004년에 문을 열었으면서도 공화춘이라는 상표명에 기대어서 "100년 전통" 등의 광고 문구로 소비자를 속여왔다. 원인천 거주자들은 이를 알고 있었으므로 이 짝퉁 공화춘을 외면했지만 타 지역에서 오는 사람들은 공화춘이라는 이름과 광고 문구만 믿고 이 짝퉁 공화춘이 진짜 공화춘인 줄 알고 속아왔던 것이다.

이현대는 자신이 100년 전통의 공화춘을 되살렸다고 거짓 선전을 하고 다녔으며 2019년 8월에는 프랜차이즈 사업까지 시작하였다.

결국 이 꼴을 보다 못한 나머지, 2019년 9월 앞서 말한 신승반점을 영업중인 우희광의 외손녀가 짝퉁 공화춘을 상대로 원조인 척 영업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외손녀 측에서 요구하는 배상액은 1000원이며, 이는 본 소송이 금전적 이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짝퉁 공화춘이 마치 100년 전부터 영업해온 것처럼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을 바로잡기 위함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이다.

그 일이 2019년 10월 24일 KBS2제보자들을 통해 방영되었다.

2. 팔도라면

2006년에 출시된 GS25PB상품으로, 제조사는 팔도이다. 짜장면의 경우 소스의 차이 어쩌고 하는 광고카피였던 것 같지만, 그 실체는 3분 짜장 소스를 컵라면 위에 얹어먹는 것. 물론 짜파게티같은 스프 라면과는 차이가 난다. 반응이 좋았는지 봉지라면도 나왔다.

가격대에 비해 내용물이 매우 충실하고 진짜 짜장에 가까운 맛을 낸다. 출시 초기에는 감자가 많이 들어있었으나 점점 줄어든 점이 아쉽다.

짜파게티의 경우 물이 적으면 분말스프가 뭉치거나 제대로 스프가 면에 잘 묻지 않는 단점이 있으나, 공화춘은 소스를 부어 비비는 형식이라 그런 단점은 거의 없는 편이다.

내용물은 건조면과 파우치에 담겨있는 레토르트 짜장 소스가 들어있다. 일단 기본 조리법대로라면 용기에 물을 붓고 뚜껑을 덮은뒤 그 위에 파우치를 얹어서 열기로 데우는 형식이지만 잘 데워지지 않는다. 잘 데웠다 해도 미적지근한 상태. 그냥 면하고 같이 담가서 데우는 방법도 좋으나 그러면 봉투가 뜨거워 데일 수 있다. 그래서 소스 위에 용기를 올려놓기도 하는 모양이다.

군대 PX에서도 공화춘 짜장과 짬뽕 컵, 공화춘 짜장 봉지를 절찬리 판매중이며 공화춘 짬뽕과 함께 나오기만 하면 싹쓸이 되는 인기품목이다. 참치나 스팸을 넣어서 어레인지 버전을 맛볼수도 있다. 일부 부대에서는 공화춘 컵+간짬뽕 뽀글이를 섞어서 만든 간화춘(공간이라고도 부른다.)이라는 것을 먹기도 한다. 짜장의 느끼함과 간짬뽕의 매운맛을 적절히 없애주기 때문에 먹을만 하다. 최근에는 불닭볶음면과 공화춘을 섞은 불화춘[2]이 더 인기라고 한다. 간짬뽕보다 매운맛이 강해서 인기를 끄는듯하다.

후속작으로 공화춘 짜장곱배기 컵과 아주매운짬뽕 컵이 출시되었는데 짜장곱빼기 컵은 기존 공화춘 짜장 컵에서 용량이 증가되어 230g 중량에 700kcal의 열량을 자랑한다. 아주 매운 짬뽕은 기존 공화춘 짬뽕보다도 맵다. 공화춘 짬뽕 + 틈새라면 수준이다. 그리고 나트륨양도 상상을 초월한다. 한 개에 나트륨 2220mg가 들어있어 일일영양소 대비 111%였으나 이후 나트륨 함량이 낮아져 1730mg에 일일영양소 대비 87%가 되었다. 나트륨 함량이 높은 편이나, 대부분의 라면에는(국물포함) 일일영양소 대비 60~70%, 혹은 그 이상의 나트륨이 들어간다. 다른 국물라면처럼 국물은 남기고 면만 먹는다면 나트륨 섭취량을 대폭 줄일 수 있다.[3]

짜장의 경우 반응이 괜찮은지 제조사인 팔도에서 일품 짜장면이란 이름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대형 마트나 슈퍼에서 할인된 가격에 구할 수 있는데다가 한 묶음을 사면 1봉지를 더 주는 행사도 자주 한다.
[1] 이 때문에 1904년 '공화춘'이 '최초'로 '짜장면'을 팔았다는 인천광역시의 홍보에 모순이 생겼다.[2] 부대에 따라 불공춘, 공불이라고도 한다[3] 한국 음식의 나트륨 함량이 유달리 높은 이유도 바로 국물 음식이 많기 때문인데, 이걸로 끝이 아니라 맵고 뜨겁게 먹다 보니 체감 간이 낮아져서 그만큼 나트륨 함량을 높이다 보니 도무지 나트륨을 낮추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