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 문제로 북한을 선택하거나, 남북경계의 변동, 그리고 납북자 혹은 월북 등으로 인해 북한에서도 실향민이 생겼다.
- 납북자의 경우 해당문서 참고
1. 개별 문서가 있는 인물
1.1. 서울
- 김순남
- 려연구 : 여운형의 딸로 6.25전쟁 전에 월북하여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을 지냈다
- 박세영
- 박태원
- 성혜림
- 송영
- 신남철
- 최승희 : 무용가
- 안성희 : 최승희의 딸
- 임화
- 윤기복
- 허담
- 허정숙 : 북한 최고재판소장
- 현덕
- 홍기문
- 홍석형
1.2. 경기, 인천
1.3. 부산, 울산, 경남
- 김두봉(부산 기장군) : 북한 명목상 국가원수
- 김약수(부산 기장군)
- 김원봉(경남 밀양시)
- 남도부(경남 함양군)
- 로태석(경남 밀양시)
- 리상조(부산 동래구)
- 박갑동(경남 산청군)
- 박윤원(경남 남해군)
- 백홍권(경남 남해군)
- 이극로(경남 의령군)
- 이종만(울산 남구)
- 허종만(경남 고성군)
1.4. 대구, 경북
- 강건(경북 상주시)
- 강영창(경북 봉화군)
- 권오직(경북 안동시)
- 김석형(대구)
- 김웅(경북 김천시)
- 김익선
- 김월송(경북 안동시)
- 박문규(경북 경산시)
- 박성철(경북 경주시)
- 박열(경북 문경시)
- 서만술(경북 포항시)
- 이쾌대(경북 칠곡군)
- 안달수(대구 남구)
- 전평수
- 정경희(대구)
- 장철(경북 의성군)
- 한덕수(경북 경산시)
- 최원택(경북 경산시)
1.5. 충북
1.6. 충남
- 박헌영(충남 예산군)
- 리병남(충남 천안시)
- 안기영(충남 청양군) : 음악인
- 이기영(충남 아산시)
- 임선규(충남 논산시) : 극작가, 북한이 고향인 문예봉을 따라 월북
- 황철(충남 청양군) : 배우
1.7. 전북
1.8. 전남
- 김병식(전남 신안군) : 북한의 부주석
- 김병회(전남 진도군)
- 김옥주(전남 광양시)
- 김중기(전남 장흥군)
- 리승기(전남 담양군) : 과학자
- 리창선(전남 순천시)
- 백남운(전남 고창군)
- 신성균(전남 곡성군)
1.9. 강원
- 심영(강원 철원군) : 고향 철원군이 북한 지역이었을때 월북했으나, 고향이 남한땅이 되어 실향민이 됨
- 이태준(강원 철원군) : 고향 철원군이 북한 지역이었을때 월북했으나, 고향이 남한땅이 되어 실향민이 됨
- 최용달(강원 양양군) : 고향 양양군이 북한 지역이었을때 월북했으나, 고향이 남한땅이 되어 실향민이 됨
- 최태규(강원 정선군)
1.10. 제주
2. 그 외
6.25 전쟁 와중 전선이 요동치는 과정에서 삼팔선 이북의 수복지구에 살고 있던 주민 상당수는 후퇴하는 공산군에 의해 강제로 납북당해 실향민이 되었다. 납북을 피해 용케도 살아남는데 성공해도 자신의 고향이 비무장지대나 민간인 출입통제선 이북에 위치하는 바람에 민간인 거주가 금지되어 강제로 고향을 떠나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농지개혁의 경우 민통선 이남 지역에서의 전쟁 이전 월남했던 사람이 다시 돌아와 경작 의사를 밝힌 경우를 제외하면 북조선인민위원회 치하에서 실시된 토지개혁 결과를 그대로 인정해 줌으로써 대부분 해결되었지만 민통선 인근 정착촌의 토지 소유권 문제는 경작자에게 소유권이나 경작권을 준 뒤 그 판매나 임대차 수입으로 보상하기로 해결되었다.전쟁 이후에도 북한 당국에 의해 납북당해 강제로 이산가족 겸 실향민이 된 경우도 많다. 재일교포 북송으로 실향민이 된 사례가 있는데 당시 재일교포의 대다수가 일본과 가까운 남한 지역에 본적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탈북에 성공한 운 좋은 일부를 제외한 절대다수가 본적인 남한으로도, 북송 이전 살던 일본으로도 돌아가지 못했다.
북한으로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들도 상당수가 고향이 남한이라 실향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