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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농민.2. 생애
1912년 6월 21일, 경상북도 대구부에서 태어났다.9살 때부터 머슴살이, 품팔이군으로 온갖 궂은 고생을 하였으며 기초적 교육도 받지 못하다가 해방을 맞이했다. 해방 시점에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북에서 살고 있었으며 토지개혁으로 땅을 분배받아 농사를 짓게 되었다. 애국미헌납운동 때 열심히 쌀을 갖다바쳤으며 조선로동당에 입당하여 리세포위원장이 되었다. 6.25 전쟁 중에는 전선원호사업에 참여하여 그 공으로 국기훈장 3급을 받았다. 유엔군이 북한까지 밀고오자 조옥희소년무장자위대를 조직하여 구월산에서 빨치산으로 싸웠다고 전해진다.
핵심제대군인이라는 표현이 있는 것을 봐서 6.25 전쟁이 끝나고 정식으로 제대를 했던 모양이다. 농업 협동화가 시작되자 처음으로 자기 지역에서 협동농장을 조직하여 1953년 12월에 황해남도 벽성군 서원리 상룡협동조합관리위원장이 되어 1958년 11월까지 재직했다. 일을 잘 한 덕분인지 1957년 9월, 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1958년 4월 16일, 후방원호사업의 공을 인정받아 로력영웅 칭호 및 국기훈장 1급, 마치와 낫 금메달을 수여받았다. 1958년 12월, 서원협동농장관리위원장으로 올라갔으며 계속하여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도 재선되었다. 1972년 4월 8일, 김일성훈장의 1차 수훈자로 선정되었다. 북한의 선전에 따르면 1956년 2월부터 김일성이 열번 이상 안달수를 만나주었으며 이후 안달수의 아들을 만나 안달수는 자신의 오랜 친구라고 교시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것은 7,8,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명단에도 안달수의 이름이 있지만 조선대백과사전에선 그가 6기까지만 대의원을 했다고 적고 있다. 지역구도 황해남도이고 이후 다른 안달수가 없는 것을 봐서 분명히 동일한 안달수로 추정되지만 일단은 조선대백과사전을 따르도록 한다. 이후 1985년 7월에 은퇴하여 서원협동농장 명예관리위원장으로 물러났다고 한다. 그러다가 1993년 12월 11일에 사망,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하지만 정치적 거물은 아니라 그런건지는 몰라도 일체의 부고를 발표하지는 않았다.
이후로 북한에서 농업혁신자, 애국농민으로 계속 선전되고 있으며 2016년 5월, 7차 당대회 개회사에서 김정은은 '조선로동당의 강화발전과 사회주의 위업의 승리를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한 충직한 혁명동지'의 한 사람으로 허담, 연형묵, 김중린, 허정숙, 김국태, 김용순, 김양건, 전병호, 박송봉, 리찬선, 리제강, 리용철, 강량욱, 리종옥, 김락희와 함께 안달수를 언급하였다. 그의 생애를 기르는 소개편집물도 제작되어 방송되었다.
3. 참고문헌
- 조선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