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문서: 사라예보 사건
, 사라예보 포위전
스웨덴의 밴드 사바톤이 발매한 동명의 노래에 대한 내용은 사라예보(노래) 문서 참고하십시오.
사라예보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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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 Sarajevo Сарајево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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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
인구 | 369,534명 (2013) | ||
면적 | 1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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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도시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BiH)[1]의 수도이며 스릅스카 공화국(SR)의 명목상의 수도이다.[2]2. 명칭
'사라예보'라는 이름의 유래는 오스만어로 '보스니아의 궁전'을 가리키는 단어인 '사라이보스나(Saraybosna)'가 세르보크로아트어로 슬라브화된 것이다. 오스만 제국 시절 시작된 사라예보의 역사의 방증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 튀르키예어로도 사라예보는 사라이보스나라고 불린다.3. 역사
제1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사라예보 사건으로 영원히 역사에 남을 도시로, 그 이후에도 현대사에 굵직한 사건을 남긴 도시이다.1984 사라예보 동계올림픽의 개최지인데 이때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아니라 유고슬라비아의 도시 자격으로 치렀다. 이후 경기장 일대까지 보스니아 전쟁의 온상이 되면서 상당수가 폐쇄되었고 1984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문서에서도 보듯 경기장 바로 옆에 공동묘지가 있는 흉흉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3.1. 보스니아 전쟁
사진 아래쪽에 보이는 묘비들은 대부분 보스니아 전쟁으로 전사한 군인들의 묘비이다. |
보스니아 전쟁 당시 많은 난민과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이쪽 주민들이 너나할 것 없이 총을 들고 싸우면서 엄청난 난민이 발생하여, 1991년 52만 명에 달했던 인구가 사라예보 포위전 이후 30만 명으로 급감한 뒤 수십 년 넘게 제대로 회복이 안 되고 있다. 죽은 사람들도 워낙 많아서 시내를 둘러보면 정말 곳곳에 묘지가 위치해 있다. 이 당시 1,425일간 포위를 당해 현대사에서 가장 오래 포위당한 도시로 기록되었다. 그 참혹했다던 레닌그라드 포위전보다도 훨씬 오래 갔다. 이 때 사라예보의 여성들은 제노사이드에 더하여 심지어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강간 피해까지 입는 비극을 겪었으며, 이 사건은 〈그르바비차(Grbavica)〉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거기다가 저격수 거리라는 후에 이름까지 붙여진 곳에서는 저격수들이 높은 건물에서 어린아이까지 가리지 않고 쏴 죽였다. 거짓말 안 보태고 어젯밤만 해도 함께 파티를 하며 친하게 지냈던 옆집 아저씨와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옆집 아저씨네 어린 아들은 쏴 죽이고 어린 딸은 강간하는 끔찍한 비극이 비일비재했다. 이 일을 겪은 후로 지역사회는 완전히 붕괴되었고, 사회적 갈등이 치유되지 않은 채 그 여파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보스니아 전쟁 문서도 참고.
종전한 지 수십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총탄자국이 남아있는 건물이 많이 남아있으며, 전쟁 당시 시가지 외부와의 연결고리였던 '사라예보 터널'은 많은 방문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일명 '희망의 터널'로 불리는 곳으로, 사라예보 국제공항이 소재한 부트미르(Butmir)에서 사라예보 국제공항 활주로 밑을 통과해 사라예보의 시계지역인 도브리냐(Dobrinja)를 잇는다. 건설 당시에는 이 두 지역을 잇는다 해서 'Objekt D-B'로 불렸다. 당시 사라예보 국제공항은 UN평화유지군이 관리하던 곳이어서 사라예보 포위전 당시 이 터널을 통해 여러 구호품들을 안전하게 이송하는 보급로로 활용됐다.
3.2. 오늘날
전쟁이 끝난 지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그나마 발전상을 보이고 있다.오랜 전쟁의 영향으로 오늘날의 인구는 2013년 기준 369,534명으로 수도치고는 굉장히 적은 편이다. 인근 도시권을 포함하면 688,354명. 민족구성은 2013년 기준으로 보슈냐크인 80.74%, 세르비아계 3.78%, 크로아티아계 4.94%, 기타 10.54%이다.[3] 무슬림 지구를 한번 돌아보면 튀르키예의 중소도시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그래도 도시가 계곡의 너른 지대에 형성된 도시다보니 여타 옛 유고슬라비아권 대도시의 도심에서는 보기 힘든 고층아파트가 즐비하고, 사진에도 나와있듯 언덕 중턱에 지은 집들도 상당히 많다. 이때문에 체감 인구 밀도는 좀 있는 편이다. 그나마 사라예보 서쪽에 위치한 일리자(Ilidža)가 사라예보 광역권의 신도시로 사라예보 시내의 인구를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몇몇 관광식당을 제외하면 물가도 상당히 저렴하다.
무슬림들이 다수인 도시 특성상 술을 팔지 않는 가게가 늘어나고 있고, 전쟁 이후에 히잡을 쓰는 여성들이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보스니아 정부는 걸프 아랍 왕정 국가들에 의한 이슬람 근본주의 선교를 우려하여 공공 장소와 법원에서 히잡을 쓰는 것을 금지하였다. 이슬람 근본주의 자체를 우려하기보다는, 이런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세르비아계(정교회)와 크로아티아계(가톨릭)와의 분쟁, 이로 인한 전쟁 재발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는 보스니아에 분쟁이 터지면 즉시 군사적 개입을 할 것을 천명한 상태이다. 약간의 불씨가 또다시 발칸반도를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 있다.
4. 특징
4.1. 동사라예보
동사라예보 Istočno Sarajevo |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로 버스로 넘어가려면 동사라예보까지 가야 하는데, 사라예보 교통체계와 따로 굴러가기 때문에 무궤도전차로 마지막 도브리냐(Dobrinja) 정거장까지 가서 국경처럼 생긴[5] 검문소 시설을 걸어서 넘은 다음에 "Welcome to the Republic of Srpska"라고 쓰여진 팻말을 지나 동사라예보 터미널로 가야 한다. 국경을 넘자마자 세르비아 특유의 키릴문자로 쓰여진 간판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모습도 볼 수 있으며, 이곳은 전쟁 당시 격전지였기 때문에 총알 자국 없는 건물 찾기가 힘들다. 그나마 아무 검문 없이 경계를 넘을 수 있는 것은 위안이다. 2020년 이전까지는 동-서 사라예보 간 민통선을 못 넘게 되어 있었다. 외국인들은 넘어다닐 수 있지만 보스니아-스릅스카 자국민들은 민통선을 넘어서 동-서 사라예보를 갈 경우 당일 20시까지 원래 사는 곳으로 복귀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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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동사라예보 일대도 보슈냐크인(무슬림)이 많이 살았던 구역이다. 보스니아 전쟁 당시 세르비아군이 사라예보 포위전을 하면서, 서사라예보가 아닌 동사라예보 지역을 완전히 함락시켰다. 동사라예보가 세르비아 수중에 떨어진 것은 1993년 3월. 동사라예보 지역에 살던 보슈냐크인은 세르비아인에 의해 대대적인 학살, 강간, 추방을 당했다. 그래서 동사라예보에는 보슈냐크계 무슬림이건, 크로아티아계 가톨릭이건 아무도 없고 오로지 세르비아인 단일민족 지역이다.
면적은 1,450 km2로 훨씬 넓지만 인구는 76,569명에 불과하다. 보스니아 전쟁을 마무리한 데이턴 협정 당시 동사라예보 지역에 민통선을 설정했던 여파로 많은 구역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다. 이 때문에 벽에 총알이 박힌 건물들도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거의 못하고, 동사라예보는 그래서 지금도 사람이 별로 없다. 사라예보 서부의 교외 신도시인 일리자(Ilidža)와 비교를 해도 상당히 낙후된 모습을 보인다. 이런 상황이니 스릅스카 공화국의 수도는 동사라예보가 아니라 바냐루카이다.[6]
4.2. 시내 교통
노면전차와 무궤도전차, 시내버스로 이루어져있다. 노면전차는 주로 밀랴츠카 강 이북의 중앙대로를 끼고 노선이 구성되어있다. 무궤도전차는 남쪽 사라예보 국제공항에서부터 북쪽으로 이어진다. 상술한 바와 같이 남부 동사라예보는 사실상 별개의 국가인 스릅스카 공화국의 영역이기 때문에 사라예보 대중교통 체계는 모두 그 앞의 도브리냐(Dobrinja)에서 끊어진다.
5. 매체에서
-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 안녕 요정의 등장인물인 마야의 고향이 바로 이곳. 이 소설은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진행 중인 1992년, 주인공 모리야가 1년 전인 1991년 유고슬라비아 전쟁 발발 직전에 일본에 온 소녀 마야와 있었던 일을 회상하면서 그녀의 고향을 추리하는 내용이다. 마야는 일본에 온 지 2달이 지난 때 쯤 전쟁이 시작된 고국으로 돌아가곤 소식이 끊기는데, 모리야는 추리 끝에 마야의 고국이 유고슬라비아 6개 공화국 중 보스니아라는 결론에 도달하자 매우 불안해한다.
- This War of Mine은 발칸반도의 여러 전쟁, 특히 보스니아 전쟁을 많이 참고하였는데, 특히 작중 배경이 되는 도시 포고렌은 전쟁 당시 포위되었던 사라예보를 모티브로 하였다.
- 스웨덴 메탈 밴드 사바톤의 제1차 세계 대전을 주제로 한 앨범 The War to End All Wars(2022)의 여는 곡은 이 도시에서 일어난 암살사건을 배경으로 한 "Sarajevo"이다.
- 메달 오브 아너: 워파이터에서 "오랜 친구들" 미션의 배경으로 등장. 전쟁 끝난지가 몇년인데 무기상이 아지트를 차려놓고 곳곳에 용병들을 깔아 놓는 것도 모자라 침입자 방지용 IED까지 깔아 놓는 개박살난 유령도시로 나온다(...).
-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에서는 대대로 Nod 세력의 중심 성지처럼 여겨지는 지역으로 묘사된다. 타이베리안 던부터 타이베리움 워까지 Nod 미션에서 사라예보는 항상 단골로 등장. 이는 수장인 케인이 이곳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템플 프라임을 GDI가 이온 캐논으로 폭격하여 소멸되면서 더 거대한 사건의 방아쇠가 된다.
- 유고슬라비아 전쟁 중 빌 카터라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사라예보에 방문하였다가 전쟁에 짓밟힌 사라예보에서 개최된 미인 대회를 주제로 한 '미스 사라예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였고, 이에 감명받은 보노는 브라이언 이노,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의기투합하여 동명의 노래를 발표했다.
6. 여담
- 위에서 언급한 대로 동사라예보는 사라예보의 한 지역이 아니라 별개의 구역이므로 구글 지도에 '사라예보'로 검색하면 동사라예보를 제외한 지역만이 표시된다.
- 오스만 제국에 의해 세워지고 발전된 도시라 그런지 전통시장에 가면 튀르키예스러운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다. 특히 사라예보의 특산품은 구리를 가공한 동세공품인데 터키의 것과 매우 흡사하다.
7. 갤러리
[1]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이루는 두 구성체 중 하나로, 보슈냐크계와 크로아티아계로 구성된다. 후술할 스릅스카는 세르비아계로 구성되어있다.[2] 후술하듯 스릅스카 공화국이 차지한 동사라예보는 현실적인 여건상 수도의 기능을 하기 어렵고 실질적인 수도는 바냐루카가 수행한다.[3] 보스니아 전쟁 이전에는 최대 민족인 보슈냐크인의 비중이 절반이 안 될 정도로 민족조성이 다양한 곳이었다.[4]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이루는 세르비아계 구성체.[5] 스릅스카 공화국 측에서는 실제로 '국경'(border)이라는 표현을 썼으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정을 내렸고 '개체간 경계선'(Inter-Entity Boundary Line, IEBL)이라는 표현을 쓴다.#[6] 상징성과는 별도로 분단도시의 특성으로 수도를 다른 곳으로 둔 비슷한 예로는 팔레스타인이 있다. 명목상 동예루살렘이 수도이지만 실질적인 시가지는 이스라엘이 차지하고 있기에 수도 기능을 하기 곤란하고 라말라가 사실상의 수도이다. 서독 역시 베를린의 분단(과 고립)으로 본을 수도로 택했다. 한편 키프로스의 니코시아는 분단 도시이긴 하지만 키프로스, 북키프로스 모두 니코시아를 수도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