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인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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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세르비아어: Срби, Srbi
세르비아인은 세르비아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세르비아의 주요 민족으로 보스니아인, 크로아티아인, 몬테네그로인과 마찬가지로 남슬라브어파 세르보크로아트어를 사용한다. 슬로베니아인들과 세르비아인들도 가깝지만, 종교, 언어에서 차이가 있다. 세르비아인들은 주로 세르비아 정교회를 믿으며 주로 이슬람을 믿는 보슈냐크인, 주로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인과 종교, 문자는 다르지만 혈통적으로는 거의 유사하다.[1] 과거 발칸 반도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영향으로 많은 세르비아인들이 오늘날에 세르비아에 해당하는 지역 외에도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코소보 등에 널리 퍼져 살고 있다.
2. 분포
세르비아 내의 세르비아인 인구는 600만여 명이며, 이는 미승인국인 코소보에 사는 15만여 명의 세르비아인들은 제외한 수치이다. 전 세계에 분포한 세르비아인 인구는 약 1000만여 명 내외로 추산되는데 이 중 60%가 세르비아에 거주하는 셈이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는 스릅스카 공화국을 중심으로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계 보스니아인 인구 100만여 명이 거주하는데, 이들은 몬테네그로나 세르비아 내 세르비아인들이 무슬림과 사이가 대단히 나쁜 것과 다르게[2] 이웃 보스니아인 무슬림들과 무난한 사이이다. 크로아티아에는 19만여 명, 몬테네그로에는 18만여 명이 거주하는데, 몬테네그로인과 세르비아인 모두 정교회를 믿고 몬테네그로어와 세르비아어는 방언 수준의 차이만 나는 등 실질적인 차이는 별로 크지 않다. 한 때 같은 유고슬라비아에 속했던 북마케도니아와 슬로베니아 내에도 각각 4만여명 이하 수준의 세르비아인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헝가리에 1만여 명 루마니아에도 2만여 명 내외 규모의 세르비아인들이 거주하고 있다.세르비아의 경제가 서유럽에 비해 낙후된 영향으로 많은 세르비아인들이 EU 내 선진국들로 이민, 정착했다. 독일에는 70만여 명, 오스트리아에는 30만여 명 정도의 세르비아인들이 정착했으며 스웨덴과 프랑스에도 각각 12만여 명 정도의 세르비아인들이 정착했다. 이 외에도 EU에는 속하는 국가는 아니지만 스위스에 15만여 명, 영국에 7만여 명 정도 되는 세르비아인들이 정착했다.
이외에도 미국에는 20만여 명, 캐나다에는 8만여 명, 호주에는 7만여 명 등의 세르비아인들이 정착했다. 특이하게도 남아공으로 이민간 세르비아인들도 2만여 명 정도 된다. 그리고 오스만 제국시절에 러시아로 이주한 세르비아인 후손들도 있다.
이들 중에는 세르비아 마피아를 조직해서 범죄를 저질러 세르비아 마피아의 악명이 세계로 퍼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3. 기원
오늘날 세르비아인의 직계 조상은 서기 6~7세기 무렵 오늘날에 도나우강을 넘어 정착한 보이키(Boiki), 보이카(Boika)라고 불리던 백세르비아인(White Serbians)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서슬라브계의 벤드족(Wends)에서 갈라져 나온 부족으로 오늘날의 소르브인과 근연 관계이다. 이들이 당시 일리리아인, 트라키아인, 다키아인, 로마인, 켈트인이 살고 있던 오늘날의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일대로 남하하면서 오늘날의 세르비아의 기원을 이루었다.
동로마 제국은 국력을 회복한 후 도나우강을 넘어온 남슬라브인들을 다시 토벌하는데 성공했으나 척박한 환경에서 거주하던 슬라브인들의 높은 출산율 때문에 이 지역은 이미 슬라브화한 상태였다. 동로마 제국은 슬라브인 포로 상당수를 아나톨리아 변경 지역으로 보내고 남은 남슬라브인들에게는 동로마 제국의 종주권을 인정받은 후 달마티아 테마를 만든다. 이러한 테마에서는 블라스티모로비치 혹은 보이슬라예비치 같은 귀족 가문들이 영향력을 세습하였으며, 동로마 제국이 약화되자 독립적인 군벌처럼 행세하기 시작한다. 13세기 초 세르비아 왕국(14세기 세르비아 제국의 전신)이 들어서면서 이 지역에서 동로마 제국의 종주권은 최종적으로 상실되고 독자적인 세르비아인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4. 문화
4.1. 종교
그리스인, 루마니아인 및 불가리아인과 마찬가지로 정교회를 믿는다. 과거 오스만 제국에서는 정교회를 믿는 여러 피지배 민족들을 한 데 묶어 룸 밀레트라고 관리했으며 당시 세르비아인들은 독자적인 민족 의식이 희박한 편이었다.오늘날 정교회 내에서 세르비아 정교회 베오그라드 총대주교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모스크바에 이어 서열 6위에 해당한다.
4.2. 언어
세르보크로아트어를 사용하며 대개 키릴 문자를 쓴다. 부크 카라지치에 의해 현대 세르비아 표준어가 확립되었다.4.3. 반 튀르키예 감정
세르비아인들은 우리나라의 혐중 감정이나 혐일 감정을 아득히 넘어서는 반 튀르키예 감정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에는 과거에 똑같이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그리스, 불가리아 등의 국가들과 달리 튀르키예와 경제적 교류도 많이 없기 때문에 심지어 세르비아 관광청에서 대놓고 “오스만 제국에서는 5백년 가까이 세르비아를 식민 지배하면서 세르비아 엘리트 계층을 뿌리뽑고, 이슬람 국가로서 세르비아인 정교회신도들을 농노로 다루고 모욕하며 착취했다.”라는 다소 격앙된 말투로 튀르키예를 디스하는 내용도 올려놓았다. 그러다 보니 세르비아 내에 잔류한 튀르크계 후손들이 엄청나게 고생하고 있다.[3]이는 굳이 세르비아 내 세르비아인 뿐만 아니라 몬테네그로, 미국 등 해외의 세르비아인들도 마찬가지로 이들은 세르비아인 중 무슬림들(특키 튀르키예인과 보스니아인)과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있으면 잠재적인 민족 배신자라는 식으로 상당히 껄끄럽게 본다. 반 튀르키예 민족 감정이 이슬라모포비아로 이어진 셈.
오스만 제국 시절 발칸이 관료주의 및 종교적 제약으로 인한 인쇄술과 과학지식의 확산 제약, 마케도니아 일대의 정치투쟁, 정비되지 않은 도로 때문에 산업화와 기업농의 발달이 저해된 면이 있기 때문에 세르비아 측 주장이 엄밀히 말하면 틀린 것도 아니다. 다만 오스만 제국은 굳이 기독교인만 탄압한 건 아니고 아랍인들도 견제 차원에서 잔혹하게 탄압했으며, 오스만 제국은 이란의 카자르 왕조처럼 막장 수준으로 농민들을 굶기고 억압하던 나라는 아니었다.[4] 또한 오늘날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이 과장하는 것과는 다르게 세르비아를 여행했던 서유럽인들은 보슈냐크인과 알바니아인들이 세르비아 정교도들하고 대체적으로 친했다는 기록을 남겼던 바 있다. 한마디로 세르비아의 반 튀르키예 감정과 이슬라모포비아는 세르비아판 탈아입구를 위해 확대 재생산된다 보면 된다. 사실 이건 세르비아만 그런 건 아니고, 세르비아와 똑같이 오스만의 지배를 받았던 불가리아나 그리스도 비슷하다. 오스만의 지배를 받았던 발칸 국가들이 유럽의 여타 국가들로부터 '아시아'나 야만인 취급받은 역사가 있다보니 이쪽 나라들에게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 자체가 트라우마이다.
차이가 있다면, 이는 발칸반도의 지형과 세르비아의 지형 때문일 가능성이 큰데, 발칸반도의 서쪽 크로아티아,보스니아 지역은 산악지대이고 불가리아, 루마니아는 카르파티아 산맥이 싹 둘러치고 있어서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유럽 진군때 한번 산을 넘어야 되는 반면, 세르비아 지역은 그리스에서 중부 유럽으로 올라가 현재 헝가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카르파티아 대평원지대의 입구에 위치하고 있고, 그 출구에 오스트리아 빈이 있기 때문에, 속된말로 오스만 튀르크 침략군들에게 세르비아는 오스트리아를 침략하기 위해 지나가는 길에 불과했다. 그때문에 오스만 튀르크가 강성하면서 세르비아는 수백년간 빈을 뚫기 위한 일종의 앞마당 입구처럼 허구헌날 얻어터졌고, 산을 끼고 버티면 됐던 유고의 다른 지역에 비해 유독 심하게 오스만 제국군의 군화발에 밟힌 동네다. 그로 인한 반튀르크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다른 지역보다 쉽게 발흥한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다만 세르비아에서 튀르키예 드라마의 인기가 많은 편인데, 이에 대한 민족주의자들의 반발도 크다.#
5. 출신인물
- 가브릴로 프린치프 - 사라예보 사건의 주범으로 법적으로는 오헝 국민이나 인종은 세르비아인이다.
- 노박 조코비치
- 니콜라 테슬라
- 니콜라 요르기치
- 니콜라 요키치
- 네마냐 비디치
- 라트코 믈라디치
- 라도미르 안티치
- 라도반 카라지치
- 미타르 타라비치
- 밀라 요보비치
- 미하일로 오브레노비치
- 밀란 오브레노비치
- 밀로시 오브레노비치
- 밀루틴 밀란코비치
- 반야 부키리치
- 보얀 크르키치 페레스[5]
- 부크 카라지치
- 블라디미르 유고비치
- 소콜루 메흐메트 파샤 - 그의 국적은 확실치 않으나, 일단 세르비아에서는 자국의 위인으로 가르친다.
- 스테판 우로시 4세 두샨
- 알렉산다르 오브레노비치
- 이바나 네소비치
- 일리야 페트코비치
- 조라나 쿠즈마노비치
- 제프 사마자
- 시니샤 미하일로비치
- 세르게이 밀린코비치사비치
- 아니카 밀렌코비치
- 알렉산다르 미트로비치
- 알렉산다르 콜라로브
- 유고슬라비아 역대 국왕들[6] :
- 포르피리예
- 두샨 타디치
6. 관련 문서
[1] 그러나 다른 역사적인 배경을 가졌던 민족들을 강제로 하나로 합치는 과정에서 서로의 감정만 상했고 결국 유고슬라비아 전쟁으로 폭발하여 이제는 화합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2] 유대인들 중에는 무슬림을 싫어해도 개인적으로는 가급적 무슬림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에 비해, 이들은 알바니아인이나 보슈냐크인들과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는 경우를 잠재적인 민족반역자로 간주할 정도로 굉장히 싫어한다.[3] 실제로 이들은 유고슬라비아 전쟁 당시 학살 당했다.[4] 중세 말 농민들을 착취하던 기존 세르비아 귀족들과 성직자들이 오스만에 의해 물갈이당했고, 그 빈자리를 채운 무슬림 지주들은 오스만의 중앙정부에게서 지속적인 감시를 받은데다, 농민에게 조세를 거둘 수 있는 권리만 있었지 농민을 소유할 권리는 없었기 때문에, 오스만 치하 발칸의 정교회 농민들은 폴란드 왕국-폴란드-리투아니아, 헝가리 왕국-합스부르크 제국이나 러시아 제국 같은 다른 지역의 농민들보다 자유로웠다.[5] 카탈루냐 태생으로, 어머니가 카탈루냐인이다.[6] 카라조르제비치 왕가 자체가 본질적으로 세르비아계이므로 여기에 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