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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 프라하 범슬라브 회의에서 채택된 범슬라브 기(旗).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국기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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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830년대에 처음 주장된 모든 슬라브족들이 같다거나 모든 슬라브족들이 합쳐서 외세를 막자는 사상. 독일 제국이 범게르만주의를 이용했다면 러시아 제국은 범슬라브주의를 이용했다.민족주의라는 개념이 뿌리를 뻗음에 따라 유럽에서는 독일 제국, 이탈리아 왕국 등 파편화되어 있던 국가들이 통일 민족 국가를 이루었고 이는 발칸반도에도 영향을 미쳐 슬라브족도 슬라브 민족으로 이루어진 독립 국가에 대한 열망을 품었다. 이에 따라 발칸반도에 강한 영향을 끼치던 오스트리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 대한 불만이 점차 강해지기 시작했는데 이는 같은 슬라브족이자 발칸반도와 중앙아시아로의 세력 확장을 노리던 러시아 제국에게는 하나의 기회로 작용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발칸의 슬라브족이 독립 국가를 이루면 그만큼 경쟁자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나 오스만 제국이 약화되는 것이니 나쁠 게 없었다. 자신의 세력권에 편입시키면 발칸반도의 자원이나 지중해와 아드리아해로의 진출로를 확보할 수 있어서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하다 못해 완충국으로서의 역할만을 수행하게 해도 나쁠 게 없었다.
세르비아는 범슬라브주의를 근거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와 마케도니아 등을 아우르는 대세르비아를 주장했고 이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탄생으로 실현되었다. 불가리아는 냉전 시대에 슬라브족 국가인 유고슬라비아와 합치는 '대유고슬라비아'를 구상하기도 하였다.
다만 오스만 제국은 몰라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의 슬라브족- 보헤미아 왕국(현 체코, 슬로바키아)과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등은 이를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20세기의 오스트리아-헝가리는 경제나 기술 등 여러 분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대국이었으며 겉으로는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전제군주제 국가였지만 느슨한 관행(Schlamperei, 슐람페라이)에 따라 실제로는 언론과 종교, 집회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당시 유럽은 물론 전세계를 통틀어 봐도 굉장히 자유롭고 개방적인 국가였다. 그에 반해 세르비아는 영토는 물론이거니와 경제도 오스트리아-헝가리의 1/20 수준에 불과한 조그만 소국에 불과했고 문화나 복지 등 여러 분야에서 후진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으니 같은 슬라브 민족이고 자시고 세르비아로의 편입에서 매력을 느낄 턱이 없었다. 대신 슬라브족 정치인들은 '친오스트리아슬라브주의'를 주장했는데 이는 혼란스러운 발칸반도의 현실상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독립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며 대신 정치와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의 광범위한 자치를 얻어내고 최종적으로는 보헤미아인이나 크로아티아인 등 슬라브 민족이 독일-오스트리아인과 헝가리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일종의 연방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한편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나타난 범게르만주의, 튀르키예에서 나타난 범투란주의[1]와의 대립, 분쟁도 나타났다.
범슬라브주의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 탄생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였으나 유고슬라비아가 내전으로 붕괴되면서 실패했다. 심지어, 비교적 늦은 13세기 분화되기 시작하여 구성원들의 유사성이 높고 통일국가를 유지하던 동슬라브족조차도 소련의 해체로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로 뿔뿔이 흩어지며 완전히 실패한 이념이 되었다.더불어 범슬라브주의는 냉전 시대의 소련처럼 러시아가 동유럽을 지배하기 위해 써먹는 이념이 되어서 동유럽에서 반러 감정과 대립하고 있다.
2. 여담
범슬라브주의에 심취하다 못해 옛 동유럽 전역이 거의 슬라브의 땅이라고 확신하는 팽창주의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걸핏하면 이웃나라 사람들의 어그로를 끌기도 한다. 헝가리, 루마니아와 몰도바, 알바니아, 그리스가 주된 피해자고 심하면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까지 슬라브족의 땅이라고 주장하거나 슬라브 문화권에도 속한다고 주장한다(...)[2]. 오늘날 남아있는 슬라브 계통 국가 중 가장 강한 러시아에서도 물론 이런 말이 나오지만 그 외 여러 슬라브 계통 국가에서도 한국에 환빠가 있듯 범슬라브주의에 물든 사람들은 조금씩 출몰한다. 물론 이들 중에는 슬라브족과의 혼혈 등으로 동화된 사람도 있다.슬라브도 자리잡은 위치와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그 하위 분파인 동슬라브[3], 서슬라브[4], 남슬라브[5][6]로 중세에 진작 분화되어서 그 안에서는 세부 민족 내지는 국가가 달라도 언어 호환이 잘 되는데[7] 그렇지 않으면 언어가 많이 달라져서 호환율이 많이 떨어지거나 심하면 아예 호환이 안 된다. 물론 주요 단어를 위주로 끼워맞추다 보면 서로 이해할 수는 있다.
3. 언어별 표기
러시아어 | Панславизм |
벨라루스어 | Панславізм |
우크라이나어 | Панславізм |
폴란드어 | Panslawizm |
체코어 | Panslavismus |
슬로바키아어 | Panslavizmus |
세르비아어 | Панславизам |
마케도니아어 | Панславизам |
크로아티아어 | Panslavizam |
슬로베니아어 | Panslavizem |
4. 둘러보기
[1] 다만 범투란주의는 오스만에서 처음 나타난 게 아니다. 자세한 건 문서 참조.[2] 다만 앞서 말한 헝가리, 루마니아, 몰도바 등등은 몰라도 라트비아인과 리투아니아인이 속한 발트족은 슬라브족과 혈통/문화적으로나 언어적으로 가까워 슬라브와 묶여 발트-슬라브로 분류되기도 한다.[3]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세 분파 중 바이킹이나 몽골-튀르크의 유목 계열과의 접촉이 많아서 가장 북구적이면서 아시아(유라시아)적이고 대륙적이다. 종교는 폴란드-오스트리아의 지배로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이 다수인 극서부 우크라이나 지역을 제외하면 모두 정교회.[4]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이쪽은 독일어권 게르만 계열과의 접촉이 많아서 맥주 문화 등 독일어권 문화와 통하는 것이 많고 구체적으로는 독일어권 중에서도 북독일 쪽보다는 남독일-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가문) 쪽과의 접점이 많아서 그런지 종교가 모두 가톨릭이며 역사가 역사인 탓에 서슬라브권 국가의 역사를 연구할 때는 독일어는 필수다.[5] 주민 대부분이 알바니아계인 코소보를 제외한 구 유고슬라비아 국가들(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과 불가리아. 이쪽은 7세기 동로마 제국 헤라클리우스 시절에 제국의 포커스가 사산조 페르시아와 아랍 이슬람 제국 때문에 동쪽에 완전히 꽂혀 있을 때 그 틈을 노려 아바르 칸국의 지휘 하에 도나우 강 방어선을 뚫고 발칸반도로 내려온 것에서부터 역사가 시작된다.[6] 종교는 기독교(가톨릭, 정교회)가 가장 많지만 15세기 이후 400여년 동안 받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의 영향으로 생겨난 이슬람도 일부 있다. 9세기에 이 발칸 반도의 남슬라브족을 (종교적인 의미에서) 가톨릭(로마 교회)과 정교회(콘스탄티노플 교회)가 어떻게 나눠먹을까가 첨예한 화두였고(교황청 측이 동로마의 국력 상태에 따라 간을 봤다. 그 전투력 측정기는 바로 옆의 불가리아였다.) 정교회 측의 선교 과정에서 키릴로스 선교사는 슬라브족에게 선교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글라골 문자를 만들었고 그 제자들이 글라골 문자를 다듬었는데 그것이 바로 키릴 문자다.[7] 동, 서, 남슬라브 안에서 세부 민족 국가로 갈린 것은 상대적으로 최근이라서 언어 분화가 별로 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