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1 20:12:35

시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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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국기

1. 개요2. 역사
2.1. 태동2.2. 충돌의 시작
3. 아랍, 중동에서의 시오니즘4. 분파5. 오해 및 편견
5.1. 시오니즘은 우파적이다?5.2. 시오니즘은 유대교이다?5.3. 반시오니즘은 반유대주의이다?5.4. 시오니스트들은 팔레스타인 아랍인을 항상 타자화한다?
6. 논란
6.1.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시오니즘 논란
7. 비판
7.1. 역사 왜곡7.2. 배타성7.3. 자의적인 정의
8. 여담9. 관련 문서

1. 개요

뒷날, 야훼의 성전이 서 있는 산이 우뚝 솟아 언덕들을 굽어보게 되는 날, 높이 치솟아 멧부리들을 눈 아래 두는 날이 오면, 만민이 물밀듯 밀려오리라.

모든 민족이 몰려와 말하리라. "어서, 야훼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을 뽑으신 하느님의 성전으로! 거기서 어떤 길을 가리켜주시든 우리 모두 그 길을 따르자!" 그렇다. 야훼의 가르침은 시온에서 나온다. 야훼의 말씀은 예루살렘에서 들려온다.

하느님께서 민족 사이의 분쟁을 판가름해 주시고 강대국 사이의 시비를 가려주시리라. 그리 되면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나라와 나라 사이에 칼을 빼어드는 일이 없어 다시는 군사를 훈련하지 아니하리라.

사람마다 제가 가꾼 포도나무 그늘, 무화과나무 아래 편히 앉아 쉬리라. -만군의 야훼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다.

어느 민족이나 저희 신의 이름을 부르며 살지 않느냐? 우리도 자손 만대에 우리 하느님의 이름 야훼를 부르며 살아가자.

그 날이 오면, 나는 절름발이들을 모아오리라. -야훼의 말씀이다. 흩어졌던 것들을 모아들이리라. 적잖이 고생을 시켰지만,

그 절름발이들, 비틀거리는 것들을 씨앗으로 남겨 강대국을 만들리라. 이제부터 영원토록 이 야훼가 시온 산에서 다스리리라.

양떼를 지키던 망대, 언덕에 자리잡은 수도 시온아, 네가 잃었던 주권을 도로 찾으리라. 수도 예루살렘의 국권을 되찾으리라.
미가 4장 1-8절(공동번역 성서)
Zionism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조상의 땅이었던 팔레스타인 지방에 유대인의 민족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던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t) 운동으로,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됨으로써 실현되었다. 시온(Zion)이란 원래 예루살렘 시가지 내의 언덕 이름으로 예루살렘, 또는 이스라엘인의 땅을 의미한다.[1] 시온주의라고도 한다.

시온주의, 시오니즘이라는 단어 자체는 1893년 의 유대인 대학생 지도자 나탄 비른바움(Nathan Birnbaum; 1864-1937)에 의해 만들어졌다.

2. 역사

2.1. 태동

19세기 민족주의 열풍이 불면서 시오니즘도 유대인 사회에서 새로운 근대적 의미를 갖게 되고 드레퓌스 사건[2]에 깃들어 있는 반유대주의의 뿌리깊은 앙금을 목격한 유대계 오스트리아 기자 테오도르 헤르츨의 제창에 의해 국제 시오니즘 협회가 창설되고 당시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팔레스타인 지역으로의 이주를 원하는 이들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3]

특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독일 제국, 폴란드 일대의 중부 유럽에 뿌리를 깊게 내린 유대인 좌파 노조들을 중심으로 '자본주의의 착취와 제국주의적 폭압에 병든 유럽을 버리고 유대인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신천지를 개척하자'라는 메시지가 강력하게 퍼지기 시작했고 러시아 제국포그롬(반유대주의 폭동)이 심각해지면서 동유럽 유대인들의 경우,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대규모 민족 이동이 시작되었다.[4] 이런 동유럽 유대인들의 대다수는 미국 이민을 선택했으나, 일부는 팔레스타인에 고향을 되찾자는 시오니즘에 동조하여 팔레스타인 이민(알리야: Aliyah)을 결정했다.

수십 년에 걸친 이민의 결과, 1920년경에는 상당한 규모의 유대인 이민자 사회가 팔레스타인에 형성되어 현지 아랍인들, 영국 식민 당국과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 당시 유대인 정치 집단 중 조직화와 이데올로기적 무장이 가장 철저했던 집단은 중부 유럽의 유대인 분트(Bund), 각지 사회당-공산당의 유대인 조직 등 사회주의에 깊게 심취한 좌파였고, 이스라엘 건국을 위한 시오니즘 또한 원래는 좌파의 이데올로기로 시작했다. 모세스 헤스, 나흐만 쉬르킨, 베르 보로호프 등 시온주의의 초기 이론가들은 또한 동시대 사회주의 운동의 지도자들이기도 했으며, 베를 카츠넬슨, 다비드 벤구리온, 골다 메이어 등의 많은 이스라엘 초기의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들 또한 평생 뿌리 깊은 사회주의적 신념을 품고 살았다.

시오니스트들 중에서 좌파 시오니스트들의 경우, 이스라엘 건국 이후 막장 민족 대결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쓴 글들만 하더라도 순진한 건지, 이상이 지나친 건지 수천 년 만에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가 떡!하고 생기면 현지 아랍인들과 대립과 반목은커녕, 똑같이 서구 제국주의자들에게 억압받는 피착취계급 처지로서 서로서로 손잡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평등한 이웃으로 존중하며 오순도순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넘친다.[5] 니네민족끼리. 이러한 믿음 또한 이들이 결코 전통적인 종교적 관점에서 [6] 단순히 '우리민족끼리 혼자서 잘 먹고 잘 살 땅을 차지해야겠다!' 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나름 미래지향적이고 건설적인 벨 에포크의 낙관적 계몽주의에 기반하여 시오니즘을 주장하였기 때문에 현실의 벽과 맞닥뜨리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게 나름 호소력이 컸다. 그렇기 때문에 환빠에게 굳이 정치적 정체성을 부여하자면 전형적인 팽창주의적 민족주의 극우에 속하는 반면 시오니즘은 역사적 관점에서 동급으로 취급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우파 시오니스트들[7]은 기본적으로 아랍인, 무슬림을 야만인, 이교도 취급했다. 20세기 초 수정시오니스트들은 사민정책을 열심히 펼쳐서 아랍인을 팔레스타인에서 축출하자는 주장을 한 것은 아니었으나 이들은 기본적으로 아랍인은 정치적으로 아무런 각성도 없는 미개민족에 불과하니까 옆에 두어서 잘 부려먹자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종교시오니스트들은 자신은 선택받은 민족이기 때문에 아랍인, 무슬림을 학살, 추방해도 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8]

하지만 이미 19세기 말부터 아랍 민족주의가 각성하고 조직적인 민족주의 단체들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대놓고 공존을 부정하고 자신들을 미개 민족으로 보는 우파시오니즘 지지자들이 속속 정착하는 것에 대해 아랍인들이 곱게 볼 리가 없었다. 반면 아하드 하암와 같은 일부 시오니스트들은 유대인과 아랍인의 절대 공존을 천명하며 아랍인을 극도로 존중해서 아랍인들의 인정을 받아야 유대 국가가 팔레스타인에 건설될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소수였던 그들의 목소리는 작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초기 시오니스트들이 아랍인에 대한 시각은 제각각이긴 했어도 기본적으로 좌파민족주의적이고 친노동적인 성향이 강했으나, 나치 홀로코스트와 이스라엘 건국, 그로 인한 전쟁 등을 통해 점차 우경화되었고 신보수주의가 세계화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에는 아얘 대놓고 이스라엘 내에서도 우파들이 주도권을 쥐게 되어 21세기 와서는 사실상 진보적 색채조차 찾아보기 힘든 우파-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다른 주류 이데올로기와 비교해봐도 시오니즘은 보수화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된 셈이다.[9]

2.2. 충돌의 시작

시오니스트들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세우려고 하는데 문제는 팔레스타인 지역은 아랍인[10]들이 오랫동안 살아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유대 이민의 초기에는 유혈충돌이 없었고 상술한 것처럼 오히려 아랍 엘리트들은 시오니즘을 환영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러시아 제국에서의 유대인 학살을 비롯해서 유럽에 팽배한 반유대주의로 인하여 하루빨리 유대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강박증과 더불어 아랍인을 존중할 필요없는 미개인 취급하는 수정시오니스트들의 관점은 아랍인들과의 충돌을 빚게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에 팔레스타인으로의 유대인 이민은 더욱 가속화되었는데 유대인의 수가 급증하고 여기저기서 건설되는 유대인 공동체가 아랍인에게 2등 시민의 지위를 강요하자 강성해지고 있던 아랍 민족주의자들은 시오니즘에 큰 반감을 품게 되었다. 이 때문에 192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유대인을 상대로 한 폭동, 테러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아민 알 후세이니가 주도한 폭동이 벌어지게 되었다. 영국 당국은 소요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애초에 원인을 제공한게 얘들인 건 둘째치고 이미 식민당국의 개입 정도로 소요가 진정되기에는 민족감정의 골이 깊어진 후였다.

여기에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더더욱 시오니즘에 집착하게 되었으며, 서유럽 여러 나라들은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방관했다는 빚과 민족자결주의, 격화되는 식민지의 독립 민족국가 수립요구 등으로, 또 소련의 경우에는 서유럽의 영향력이 막강한[11] 아랍지역에 공산국가[12]를 하나 더 늘리고 싶다는 생각 등등 각각의 계산에 따라 유대인 국가가 성립하는 것을 찬성했다.

1948년 UN의 분리독립안에 따라 이스라엘의 건국이 선포됨과 동시에 주변 아랍국가들은 일제히 이스라엘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는데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에서는 아랍계 팔레스타인인들이 추방되고 주변 아랍국가에서는 유대인들이 추방되면서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팔레스타인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결론적으로는 그 사상은 팔레스타인 고통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13]

전쟁 이전부터 약 1년간 무기 금수 조치가 있었기 때문에 당시 영국령 팔레스타인 식민지 내에는 소화기 이상의 무기는 없는 상태로 주변 아랍국가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는 아랍계가 유리했지만 유대계는 2차대전 중 영국이 에르빈 롬멜을 상대하기 위해 예비로 모병해둔 부대 출신자와 유럽 각국에서 군경력을 쌓은 전역자들이 있어서 조직력 면에서는 우수했다.

1차 중동전이 시작되면서 신생 이스라엘은 미리 수입해둔 공작기계로 간단한 무기를 생산하는 한편, 유럽과 미국 등지에 특사를 파견해 기부금을 모았고[14] 그 돈으로 2차대전 이후 처리에 고심하고 있던 구형 무기들을 긁어모으기 시작해 전쟁 초기에는 기갑 차량이나 공군력이 거의 전무하던 상황에서 후기에는 체코에서 전투기 등을 수입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전력 격차를 메꾸는 데 성공했다.[15]

결국 아랍계는 우세한 무기와 전력체계[16]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등의 이권다툼[17] 때문에 참패하고 말았다. 이후 여러 차례에 걸친 전쟁에서 떡실신되고 결국 이집트와 요르단은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여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고[18][19] 더이상 반 이스라엘 정책을 펴지 않는다. 시리아는 아직도 적대관계이나 전략적 요충지인 골란 고원을 빼앗기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수밖에 없다. 아니 시리아 같은 경우는 서로 국경에서 포격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시리아로선 이대로 평화적으로 대충 놔두는 분위기(물론 골란 고원은 포기 안 하지만)였는데 아사드 대통령의 독재에 대한 불만이 폭발해서 발생한 시리아 내전으로 더 엉망이 되면서 이스라엘에선 독재자 아사드 일가가 무너질 경우 호스니 무바라크 실각 직후의 이집트 꼴이 나지 않을까 우려 중이다. 나중에는 어쨌거나 팔레스타인의 고통과 그들에 대한 탄압이 지속되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사담 후세인 시절에는 요르단을 사이에 두고 이라크와 이스라엘은 으르렁거렸지만,[20] 걸프 전쟁 이후 미국한테 실컷 얻어맞은 이라크가 너무나 약체화되어 이스라엘은 한시름 놓는가 했는데...

아랍 민족이 아니라서[21] 같은 친미국가인 이스라엘과 사이가 좋았던 이란은 혁명 이후 이슬람 세력이 집권한 후 외교 방침을 180도 돌려 반미-반이스라엘 정책을 펼친다. 호메이니는 이슬람 영토를 점유하고 있으며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이스라엘을 "악마 제국"으로 규정하고, 이스라엘을 지도상에서 없애고 팔레스타인 국가를 되찾아주는 것을 국가적 사명으로 삼았다. 그 뒤를 이은 이란 지도자들도 마찬가지 정책을 펴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과 팔레스타인인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다. 그러다보니 현재 이스라엘과 이란은 서로를 제1의 가상 적국으로 삼고 있다. 물론 이란과 이스라엘이 직접적으로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요르단과 이라크가 양국 사이에 있기 때문에 희박하다. 특히 이스라엘을 공격한다는 게 가뜩이나 반미국가 이란을 싫어하는 미국의 신경을 건드리는 짓이라서 이란으로서는 더욱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할수가 없는 상황.

그러나 어쨌든 이란-이스라엘의 갈등은 심각한 편. 이란의 핵 개발도 사실상 핵 보유국인 이스라엘에 대항하기 위한 이유가 크다. 만약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이란을 폭격할 경우에는 정말로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헬게이트가 열릴지도 모른다. 물론 핵 협정 타결로 이란이 핵포기를 함에 따라 핵전쟁은 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란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적으로 생각하고 이스라엘도 이란을 경계하고 있기에 핵전쟁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전쟁의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이집트에서 2011년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가 몰락하면서 이스라엘에겐 잠시 비상이 걸렸다. 8,000만에 달하는 인구를 가지고 아랍권에서 정보 및 여러 모로 중요한 나라이자 이스라엘과 국교를 맺고 친미 국가가 되면서 미국제 무기를 도입하던 이집트가 단기간에 친미 독재자를 잃은 셈. 2012년 시점에서는 군부는 아직도 무시 못하나 여론은 반군부에 무슬림 형제단을 지지하고 1차 총선에서도 이들이 압승을 거두는 통에 이스라엘로선 30년 넘도록 평화를 유지한 이집트와 충돌도 염려해야 할 판국...일 줄 알았으나, 1년도 못 가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고 집권하던 무슬림 형제단이 개박살나면서 유야무야된 듯. 새로 집권한 엘시시 정부는 내부문제와 이슬람 무장단체들에만 신경쓰며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관심을 끊고 있다.

3. 아랍, 중동에서의 시오니즘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시오니즘 자체가 유대인과 유대교를 찬양하는 주의이자 (아랍을 침공하여) 잃어버린 유대국의 영토를 수복한다는 뜻이 담겨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제외한 아랍 대부분은 이 시오니즘에 대해서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전통적인 이슬람 율법을 통해서 시오니즘 찬양을 금지하고 있고 그 외 다른 아랍국가들도 이슬람 율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시오니즘에 대해서 적시하거나 불온적으로 여기고 있는 상황.

시아파가 대부분인 이란 역시 이스라엘의 시오니즘을 경계하고 혐오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 주변국인 레바논, 시리아 등 이슬람교 국가 입장에서는 자기네 영토가 포함되어 있는 것 때문에 더욱 시오니즘에 대한 혐오성향이 짙다. 그것도 이슬람교가 아닌 유대국의 영토라는 점 때문에.

4. 분파

시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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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 분파
정치적 시오니즘 실용적 시오니즘 종합적 시오니즘
노동 시오니즘 수정 시오니즘 자유 시오니즘
문화 시오니즘 녹색 시오니즘 개혁 시오니즘
종교적 시오니즘
종교 시오니즘 기독교 시오니즘 무슬림 시오니즘
특수 분파
근력 시오니즘 신시오니즘 원시 시오니즘
그 외
반시오니즘 탈시오니즘 비시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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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오해 및 편견

5.1. 시오니즘은 우파적이다?

시오니즘은 19세기 초에 당시에 좌파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내셔널리즘[22]의 영향으로
유대인이 주류 사회에 대한 억압,차별,혐오에 저항하기 위해 시작된 정체성 정치였다.[23]

그런데 시오니즘 자체가 친서방 우파사상으로 잘못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나치즘반유대주의가 아니고 러시아의 볼셰비키가 시오니스트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레닌을 위시로한 볼세비키는 자결권[24]을 내세워 약소 네이션(민족, 국민)의 내셔널리즘을 지지했고 강대국의 내셔널리즘을 비판했다. 그러나 당시 우파 시오니스트들은 서양 열강에게 로비해서 팔레스타인에 유대국가를 건설하려고 했는데 이때 볼세비키가 이를 친제국주의라고 비난했다.[25]

레프 트로츠키가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숙청당한 이후로 소련은 반시오니즘에서 반유대주의로 바뀌었고 서방으로 도망친 트로츠키주의자들은 클리프주의를 포함한 수정주의 계열까지 포함해서 반시오니즘 기조를 이어나가게 되었다. 이들은 이스라엘 자체가 제국주의의 산물이라고 선전해왔으며 이에 영향을 미친 사회자유주의, NLPDR, PD계열 정당이 반시오니즘을 진보좌파적인 것으로 간주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미국이 1967년 이후로 이스라엘 영내 우파시오니즘만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6일 전쟁을 지켜본 미국이 이스라엘을 중동을 견제할 수 있는 도구로 인식했기 때문이다.[26] 이 시기부터 기독교 시오니즘이 서양 우파 사이에서 번성하기 시작했고 이는 진보좌파 입장에서는 시오니즘 자체가 극우적이라고 오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27]

또한 테오도르 헤르츨이 사망한 이후 수정시오니즘의 시조인 제프 자보틴스키가 헤르츨의 후계자를 자칭하면서 시오니즘에 유럽식 인종주의, 유대교적 관념을 끼우면서 시오니즘을 변질시킨 것이 시오니즘에 대한 오해를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노동시오니스트들은 수정시오니즘을 견제하지 못해 수정시오니스트들이 나치스트들과 비리를 자행한 것을 막지 못하고 묵인할 수 밖에 없었다.[28] 또한 수정시오니스트들은 노동시오니즘과 달리 반공주의를 탑재했고 그렇게 때문에 영국, 미국같은 열강으로부터 쉽게 지원받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자금력이 노동시오니스트들보다 더 높았고 수정시오니스트들이 시오니즘의 주류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수정시오니스트들은 1967년 이후로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다른 시오니즘을 제치고 유력한 주류가 되었다.

게다가 노동시오니즘 내부에서도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동정심을 상실하고 아슈케나짐 우월주의에 빠진 것도 "노동시오니즘도 말로만 좌파고 시오니즘 곧 인종주의라는 것이다."라는 오해만 가중시켰다. 그러나 노동시오니스트들이 1936년 이후에 보인 차별적인 모습은 수정시오니스트들의 인종주의가 원인이 아닌 당시 팔레스타인인들과 다른 아랍인들이 자신이 내세운 노동시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고 반유대주의를 피해서 온 유대인을 침략자로 간주하여 차별, 공격하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29]

국내에서 시오니즘 비판자로 잘못 인식되기도 한 이스라엘 출신 팔레스타인 평화운동가인 아모스 오즈도 사실 좌파시오니스트이다.

또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다비드 벤구리온 초대 총리, 골다 메이어 총리 등 초기의 거물급 이스라엘 정치인들은 무신론과 사회주의에 심취한 좌파 성향이였고, 당시 이스라엘은 정치,사회,문화 전반적으로 사회주의 영향력이 강력했고 아랍 내셔널리즘 부상 이전에는 소련과도 관계가 좋았다. 1980년대부터 이스라엘 좌파세력이 힘이 약해지더니 21세기 들어서는 좌파가 거의 전멸하고 주류 우익에 반대하는 세력이 주로 리버럴일 정도로 우경화되어서 한국 내에서는 초기 이스라엘이 사회주의적 내셔널리즘의 국가였다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5.2. 시오니즘은 유대교이다?

사실이 아니다. 위에서도 쭉 설명이 되었듯 시오니즘은 철저한 세속주의적 현실론적 민족주의였다. 실제로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로 꼽히는 테오도르 헤르츨, 다비드 벤구리온 등은 확고한 무신론 시오니스트(민족주의자)들이었다. 이미 2차 대전 이전부터 상당수의 유대인들은 유교문화권에서 제사 지내듯이 유대교를 관습적인 차원에서 따를 뿐, 실생활에선 세속적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았고, 내세나 인격신 같은 초자연적인 주제들에 대해 관심이 없다시피 했다.[30] 현재도 이스라엘의 중교 분포를 보면, 국민의 약 75% 정도가 유대교인이라고 하지만 이들 중 반은 철저한 세속주의적 유대교인이며, 나머지의 절반 정도만이 전통적 의미의 유대교도이다.[31] 그 외에도 이스라엘 국민의 18%에 가까운 사람들이 무슬림이며 나머지는 기독교 또는 무교 등이다.

국내에서는 이스라엘 독립 전쟁을 비롯한 주변 중동 국가들과의 갈등을 유대교 vs 이슬람교의 시각에서 보는 경우가 많은데, 이스라엘 지도부에서는 그런 입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이런 갈등을 철저히 유대인 민족의 삶의 터전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으로 보았다. 또한 이는 반대 진영에 있던 아랍권도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 저항조직인 PFLP의 창시자이자 '테러리즘의 대부'로 불렸던 주르지 하바시는 이슬람이 아닌 그리스정교회 신자였고 미국의 개신교 선교단체에 의해 세워진 베이루트 아메리카 대학에서 역시 그리스정교회 출신인 콘스탄틴 주레이크의 강의를 통해 그의 범 아랍주의에 영향을 받았으며, PFLP에서 갈라져나온 조직 DFLP의 창시자 나예프 하와트메는 그리스 가톨릭 교회 출신이었다. 또한 시리아와 이라크 등에서 혁명에 성공한 아랍 사회주의 사상인 바트주의는 그리스 정교회 출신 미셸 아플라크와 무신론자 자키 알 아르수지 등의 영향을 받았다. 한편 수에즈 전쟁6일 전쟁 당시의 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는 아랍사회주의 성향의 세속적 무슬림이었다. 이런 점은 이스라엘과 수차례 전쟁한 이집트요르단 등에 비해 이스라엘과 별 충돌이 없었던 이란이나 이스라엘과도 큰 마찰이 없었는데다 아랍을 대표하는 친미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훨씬 지독한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임을 고려하면 더욱 확실해진다.

시오니즘에 반대하는 유대교 랍비들도 있는데, 유대인 조상들이 죄를 지어서 신의 징벌로 흩어져서 떠돌아 다니게 되었고, 나중에 메시아가 왔을 때 다시 나라를 찾게 된다는 것이 유대교의 신앙이기 때문이다. 또한, 흔히 선민사상에 대해서 오해하는데, 유대교에서는 유대인만이 구원받고, 다른 민족들은 지옥간다고 말 하는게 아니라, 유대인을 통해서 메시아가 오고, 모든 민족이 구원을 받는다고 믿는다. 심지어, 유대교 경전인 구약 성경 사무엘하 21장의 내용에서, 사울 왕의 시대에, 이스라엘 중에 함께 살던 이민족인 기브온 사람들을 학살하자, 신이 이스라엘에 기근을 징벌로 내리고, 다윗 왕이 기브온 사람들에게 속죄하기 위하여 사울의 아들들을 죽이도록 내어주고 나서야 기근이 끝난다.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기브온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요 그들은 아모리 사람 중에서 남은 자라 이스라엘 족속들이 전에 그들에게 맹세하였거늘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그들을 죽이고자 하였더라 이에 왕이 기브온 사람을 불러 그들에게 물으니라
다윗이 그들에게 묻되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 하니
기브온 사람이 그에게 대답하되 사울과 그의 집과 우리 사이의 문제는 은금에 있지 아니하오며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는 문제도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하니라 왕이 이르되 너희가 말하는 대로 시행하리라
그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를 학살하였고 또 우리를 멸하여 이스라엘 영토 내에 머물지 못하게 하려고 모해한 사람의
자손 일곱 사람을 우리에게 내주소서 여호와께서 택하신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우리가 그들을 여호와 앞에서 목 매어 달겠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내가 내주리라 하니라
그러나 다윗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 사이에 서로 여호와를 두고 맹세한 것이 있으므로 왕이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끼고
왕이 이에 아야의 딸 리스바에게서 난 자 곧 사울의 두 아들 알모니와 므비보셋과 사울의 딸 메랍에게서 난 자 곧 므홀랏 사람 바르실래의 아들 아드리엘의 다섯 아들을 붙잡아
그들을 기브온 사람의 손에 넘기니 기브온 사람이 그들을 산 위에서 여호와 앞에 목 매어 달매 그들 일곱 사람이 동시에 죽으니 죽은 때는 곡식 베는 첫날 곧 보리를 베기 시작하는 때더라
사무엘하 21장
성경에서 이민족을 멸절하는 내용에서는 그 이민족들의 우상숭배와 음란행위등의 죄악을 근거로 들지, 이민족이라는 인종적인 사실 자체가 죽임당해야 할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대표적인 예시가 요나서에서 니느웨(니네베)가 죄악으로 인해 멸망당할 뻔 했다가, 회개하여서 재앙을 피하게 되는 내용이다.

5.3. 반시오니즘은 반유대주의이다?

우파 시오니스트들이 내세우는 매도이고 사실이 아니다.

반유대주의는 우파가 먼저 시작했고 반시오니즘은 좌파가 먼저 시작했다는 점부터 차이가 있다. 전자는 유대인 자체에 대한 부정이라면 후자는 이스라엘 자체에 대한 부정이다.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대안우파는 친시오니즘이지만 반유대주의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자국내에서 유대인에 대한 타자화를 하고 이스라엘을 내세워 예루살렘을 대안우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 대(大)중동 전체를 지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언뜻보면 모순적이지만 이는 이스라엘을 자신의 도구로 이용할 뿐 유대인을 배려하려는 마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32]

주류 반시오니스트들은 진보좌파 성향이라서 대개 반유대주의를 반대하고 있는데 이스라엘의 존재가 반유대주의를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을 탄압함으로서 아랍인들에게 반유대주의를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스라엘을 서양제국주의가 중동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고 유럽 유대인이 원주민인 아랍인을 내쫒아 만든 식민지라고 간주하고 있다. 또한 서양, 이스라엘의 우파들이 시오니즘을 내세워 유대인과 아랍인을 이간질한다고 생각하고 유대인과 아랍인이 연대하여 이스라엘을 비롯한 서양제국주의를 중동에서 추방시켜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오히려 강경 초정통파 유대인일수록 오히려 시오니즘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시오니즘 자체는 유대적이고 민족주의적일지언정 유대교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건국 자체는 유대교에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지만 시오니즘의 과정 자체가 유대교회가 중심이 된 것이 아닌 노동시오니즘과 같은 사회주의 사상 중심으로 건국된 세속 국가에 불과한 것이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시오니즘에 대해서 아쉬움을 표하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초정통파 유대인들도 있다.#

5.4. 시오니스트들은 팔레스타인 아랍인을 항상 타자화한다?

초기 시오니스트들은 팔레스타인 아랍인을 보고 외세에 저항해 땅을 지키다가 결국 정체성까지 상실해버린 유대인의 후손으로 간주했다. 또한 위 '태동'의 문단에 나오듯 일부 시오니스트들은 아랍인을 포용한 히브리 민족국가를 세우자는 주장도 나왔다. 즉 팔레스타인 지역의 아랍인들이 히브리인이라는 정체성만 받아들이면 국민이 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영유권을 둘러싼 아랍인들과의 분쟁 격화, 결정적으로 1차 중동전쟁은 이런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었다. 1차 중동전쟁 전에도 유대인과 아랍인들은 팔레스타인에 어느 민족이 국가를 세울 것인지를 두고 치열한 경합을 벌였으며 그 과정에서 상호 간의 학살과 추방이 자행되었다. 이스라엘 독립 후 팔레스타인 아랍인의 원조를 위해 아랍 국가들이 대대적인 침공을 개시하자 이런 학살과 추방은 더욱 광범위하게 자행되었다.

1차 중동전쟁 종전 이후 이스라엘 중부에 거주하던 아랍인들은 거의 대부분 가자 지구와 서안지구, 요르단 등지로 피난하거나 추방되었다. 그러나 북부의 아랍인들은 현지에 잔류하여 오늘날 이스라엘 인구의 1/4에 달하는 이스라엘 아랍인의 주류를 구성한다. 편견과 달리 아랍인의 이스라엘 사회 진출은 활발한 편이며, 이스라엘 노동당과 같은 좌파 정당과 주로 연계하여 정계에도 진출한다. 허나 유대인에 비해 심각하게 낮은 경제력은 문제로 꼽힌다. 2017년 현재 아랍인의 3%는 부유층, 27%는 중산층에 해당한다. 이조차도 20년전 17%에 비하면 상당히 증가한 것이다.

6. 논란

6.1.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시오니즘 논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시오니스트 여부에 대한 논쟁이 있다. 내셔널리즘이 아니라 국제주의 관점에서 시오니즘을 지지했다는 게 대체적인 정설이다.[33] 아인슈타인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논란이지만 1918년부터 이스라엘 건국 운동에 참여한 건 사실이다.[34]

7. 비판

7.1. 역사 왜곡

전 세계의 모든 유대인들을 유대-로마 전쟁 이후로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추방당한 혈연적 후손이라고 선전했고 유럽에서 유대교 신앙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유대인 디아스포라 신화를 사실로 조작했다. 특히 수정시오니즘, 종교시오니즘은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던 아랍인들을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에서 온 이민자로 왜곡하고 그들에 대한 탄압, 추방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이용하고 있다.

유대인이라는 개념을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민족집단으로 만들어 유대인이 선천적으로 생겨나는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었고 시오니스트들이 친유대주의적 목적으로 유대인 DNA 드립을 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수천년동안 다른 나라에서 계속 동화되어 살아온 만큼 무슨 특정한 유대인 혈통이 있다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비과학적인 망언에 불과하다.

유대인이 다른 민족과 공생한 역사를 부정하고 다른 민족에게 고난당한 사건들만 나열하여 피해의식과 타집단에 대한 공포가 전수되고 있다.[35] 특히 홀로코스트만을 집중적으로 강조하여 유대인이 절대적인 사회적 약자라고 착각하며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유대인의 안전을 보장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7.2. 배타성

이는 모든 민족주의의 부정적인 면이지만 수정시오니즘이 아닌 노동시오니즘조차도 팔레스타인인이 아닌[36] 다른 민족에게 배타적인 면이 있다.

혈연적으로 연관이 없는 아시아인, 아프리카인 유대인을 수용하면서 정작 그들이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아슈케나짐을 가장 우선시하는 인종주의를 보이고 있다. 이는 수정시오니즘만의 현상이 아니다. 이스라엘 노동당소속인 이츠하크 라빈조차 이스라엘 영내 아랍인은 20%를 초과하면 안된다고 생각했고 골다 메이어도 아슈케나지 유대인이 다른 유대인에 비해 우수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을 정도이다. 특히 종교적으로는 유대교이지만 언어와 문화적으로 아랍인에 가까운 아랍 유대인들 때문에 이스라엘 사회가 고유의 정체성을 잃고 주변의 아랍권에 동화되어버릴까 염려하여 이들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7.3. 자의적인 정의

생전에 자신을 유대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던 사람을 멋대로 유대인이라고 정의하는 현상이 있다. 프란츠 카프카 [37]도 이 사례에 속하는데 정작 그는 시오니즘을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유대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족보에 유대인이 포함된 좌익 인사는 모조리 유대인으로 낙인 찍어 공격하던 서구권 반유대주의 우파들의 반공 마타도어를 그대로 수용하여 카를 마르크스, 블라디미르 레닌, 로자 룩셈부르크 등을 유대인으로 간주하기도 한다.[38]

8. 여담

얼핏 시오니스트들은 모두 골수 유대교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테오도르 헤르츨, 하임 바이츠만, 다비드 벤구리온, 골다 메이어, 모세 다얀, 이츠하크 라빈, 제프 자보틴스키 등 다수의 시오니스트 인사들은 무신론자 내지 불가지론자였다.

일부 문화적 시오니스트들은 프란츠 카프카를 이스라엘 국적 작가라고 주장한다. 유대인이나 이스라엘에 대하여 언급도 하지 않고 유대인 찬양도 하지 않았으며 종교조차도 유대교를 믿지 않던 카프카인데도 말이다. 그 당시에 존재도 하지 않던 당시 이스라엘이? 항목에서 보듯이 카프카를 문화적 시오니즘의 성자로 왜곡한다는 해외의 비난도 나오고 있다. 그저 유명한 작가라고 이스라엘의 자랑이라며 왜곡하는 것이다.

다른 얘기지만 유대인 인권단체와 시오니즘 단체는 동의어가 아니다. 이걸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후자의 경우 미-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나 미국유대인위원회(AJC) 같은 경우를 가리키고 전자의 경우는 반명예훼손연맹(ADL)같은 혐오 반대 단체이다. 후자는 시오니즘을 표방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슬람혐오를 포함해 모든 형태의 인종주의와 차별에 반대하는 반인종주의 단체이다.[39] 유대인 인권단체를 시오니즘 단체로 치부하는 것은 이슬람혐오 반대 단체를 이슬람주의 단체라고 치부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논리적 비약이다.

9. 관련 문서



[1] 다른 의미로는 천국을 지칭하기도 한다.[2] 사실상 전세계의 유대인들이 시오니즘을 추구하게 된 계기이자,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탄생의 방아쇠가 된 셈.[3] #벌거벗은세계사[4] 독일 제국의 경우 지식인들의 경우 오히려 이런 시오니즘을 반대하고 역으로 독일사회에 편입하면서 유대인들의 권리 신장을 노리는 경우도 있었다. 마침 독일 내에서 유대인에 대한 차별이 철폐되면서 이런 운동이 가속화되었다.[5] 더 극단적인 경우를 들자면, 1세대 유대인 이주민의 자녀들이 장성했을 무렵, 종교 공동체를 바탕에 깔고 있는 유대인 정체성에 기반한 국가 대신 팔레스타인 땅에서 태어나 히브리어를 모어로 쓰는 히브리 토박이들이 같은 토박이인 팔레스타인계를 포용한 히브리 민족국가를 세우자는 주장도 나왔다. 이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인들은 히브리인이라는 정체성만 받아들이면 국민이 될 수 있는 반면, 세계 각지의 디오스포라 유대인들의 경우 기독교도와 무슬림처럼 그저 유대교라는 종교 공동체에 속해있는 외국인에 불과하게 된다.[6] 사실 전통적이라고 할 것도 없는 게, 시오니즘을 일반적인 민족 국가의 내셔널리즘의 땅이 없는 유대인 버전으로 보자면, 종교적인 우파의 관점에서 유대인 민족 국가를 얘기하기 시작한 것은 이들보다 한 박자 늦게 활동을 시작한 제프 자보틴스키가 소위 말하는 수정 시오니즘을 주장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건국 초기만 하더라도 다수의 이민자들이 1차대전 이전만 하더라도 굉장히 화려한 문화적, 지적 발달을 영유했던 서유럽의 아슈케나짐 유대인들이여서 이런 고지식하고 단순무식한 민족주의보다 보편적이고 세련된 노동시오니즘이나 자유시오니즘을 선호했으나, 1차 중동전쟁을 기점으로 근대적 이데올로기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던 중동의 유대인들이 대거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이스라엘 영내 좌파는 쇠락하고 우파가 1970년대부터 영미권의 신우파의 영향을 받아 등극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1990년대에 소련이 붕괴되어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에서 아슈케나짐 유대인이 유입되었는데 그들은 자유주의보다는 우파민족주의 성향이 현재까지도 더 강하다.[7] 수정시오니즘, 종교시오니즘[8] 노동시오니즘은 아랍인 중에 팔레스타인인들을 유대인의 지류로 정의했고 그들을 공생대상으로 보았지만 다른 아랍인은 공생대상으로 보지 않은 것은 그들과 마찬가지였다. 이는 시오니즘 사상의 한계이다. 그러나 탈시오니즘, 개혁시오니즘은 현재까지도 다른 아랍인과 더불어 타민족의 이민에 관대하다.[9] 시오니즘의 우경화에는 미국의 역할이 컸는데 미국은 1967년 이전까지 이스라엘에 관심두지 않다가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면서 이스라엘을 중동 통제 수단으로 간주했다. 이런 정세에서 미국에서 시작된 신보수주의가 이스라엘에게 영향을 미쳐 수정시오니즘이 이스라엘 정계에서 대세가 된 것이다.[10] 아랍에 동화된 유대인들의 후손이라는 말도 많다. 사실 아랍인들 자체가 중동의 수많은 민족들을 흡수해서 지금의 규모로 커진 민족이라는걸 생각해보면 타당성은 있다.[11] 지금의 상황과는 매우 달라서 당시에는 이집트나 시리아, 이라크와 요르단 등의 왕가가 친서구적 성격이 강했다.[12] 이것도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이스라엘 건국 이후 오랫동안 제1당이 노동당이었다.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에 남아 있는 집단농장들이 공산주의적 이상주의자들의 흔적.[13] 그래서 아랍국가들은 1차 중동전을 알 나크바, 대재앙이라고 부른다.[14] 이때 미국에 파견되었던 사람이 나중에 이스라엘 최초의 여수상이 된 골다 메이어.[15] 이때 체코에서 Bf-109를 수입하다 보니 이집트군이 사용하는 스핏파이어와 묘한 공중전을 치르기도 했다.[16] 특히 요르단군은 영국군의 지도를 받아 아랍군단이라고 불리며 아랍계 최정예로 불리는 서구식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17] 자국 이득도 있거니와 내부 갈등도 컸다. 1차 중동전쟁이 끝나고 겨우 3년 만에 이집트 파루크 왕가가 쿠데타로 무너진 것을 봐도 알 수 있다.[18] 심지어는 이스라엘의 요구에 응해 자국 내의 팔레스타인인들을 탄압하기도 했다. 그래서 분노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에게 총리가 암살당하는 사건까지 터졌다.[19] 또 다른 의미로는 당시 팔레스타인을 지도하던 PLO가 입헌군주국인 요르단에서 지나치게 세력을 확대했기 때문에 입지를 안정시키기 위해 숙청했다고도 할 수 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PLO는 요르단을 떠나 레바논으로, 다시 레바논에서 리비아로 본부를 옮겨야 했다. 자세한 내용은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 참고.[20] 1981년에는 이스라엘 공군이 이라크에 있는 오시라크 원자로를 폭격하기도 했다. 원자로는 타격을 받았지만 목표로 하던 완전 파괴는 실패했고 결국 걸프 전쟁 때서야 미군이 엄청나게 폭격하여 비로소 완전히 파괴했다.[21] 이란은 페르시아 민족이며 아랍인과는 언어적으로나 인종적으로 전혀 다르다. 나름 아랍인에 비해 더 문화민족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고 이란의 환빠들은 아랍 주변 나라들이 과거 페르시아 제국 땅이라고 자부하는 게 비슷하다. 다만 환빠와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하는게, 이들이 주장하는 페르시아 제국은 실존했던 강대국이었다. 환국과는 다르다! 환국과는![22] 나치 독일 이후로 내셔널리즘, 특히 (에스니시티적 의미의)'민족주의'는 우파적으로 간주되었지만 19세기 초 당시 내셔널리듬은 신분제를 옹호하던 봉건주의에 대항하여 평등한 국민을 강조했기에 좌파적으로 간주되었다.[23] 시오니즘의 선조격인 모제스 헤스는 마르크스, 엥겔스, 헤르첸 등과 교류하던 개혁 성향 사상가였으며, 유대인 정체성은 근본적으로 외부에 의해 규정된 타자적 성격을 가진다고 보았기에 온전한 유대인 해방을 위해선 유럽 국민국가로의 동화가 아닌 팔레스타인 이주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24] 한국에서 흔히 민족자결주의라고 번역한다.[25] 유대인=볼셰비키라는 공식은 우파 반유대주의자의 편견이며 볼셰비키 중에 유대인이 종종 있다는 것이지 볼셰비키 주요 당원들 자체가 유대인이 아니다.[26] 1967년 이전엔 사우디아라비아를 중동 최대 우방으로 간주했지만 유럽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는 불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유럽 혈통인 아슈케나짐이 주도로 건설된 국가이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보다도 더 신뢰성이 있어보였다.[27] 기독교 시오니즘은 테오도로 헤르츨 등의 오리지널 시온주의와는 상관 없고 세대주의에서 발생했지만, 유대인의 민족국가(nation state) 건설이라는 목적이 동일해서 시오니즘이라는 이름을 공유한다.[28] 반시오니즘 작가인 랄프 쇤만은 당시 수정시오니스트들이 나치 독일과 뒷거래하여 건장한 유대인들만 수용소에서 빼오고 그렇지 못한 유대인을 죽게 방치했다고 주장했다.[29] 당시 아랍인들의 언행은 21세기 현재 무슬림 난민을 보고 우파성향의 서양, 동아시아 자국민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심리와 유사하다.[30]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이런 경향을 묘사한 우스갯소리가 있다. "유대교는 신 한 명만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명까지만 믿을 수 있는 종교다." 그러니까 안믿어도 무방하다는 뜻...[31] 이들 중에서도 극단적인 일부가 하레디다.[32] 대안우파 온건파는 유대-기독교 개념을 강경파보다 더 지지하기 때문에 유대인을 서양 사회의 일원으로 간주하고 있다.[33] https://doi.org/10.1093/acprof:oso/9780198785491.003.0005[34] https://doi.org/10.1080/13537121.2017.1333727[35] 현재 일부 이스라엘인들이 가자 지구 폭격을 비웃고 서안 지구의 유대인 정착민들이 외국인 봉사자한테도 폭력을 자행하는 심리도 이런 제조된 공포가 원인이다.[36] 노동시오니즘같은 좌파시오니즘은 팔레스타인인들을 단순한 아랍인이 아닌 유대인의 지파로 생각하고 있다.[37] 다만 프란츠 카프카는 1913년 빈에서 개체된 제 11차 시오니스트 회의에 참석한 바 있으며, 이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도 사진을 찍었다.https://blog.nli.org.il/en/kafka_zionist/[38] 또한 사회주의자가 아니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까지 유대인몰이를 당했는데 이는 나치를 옹호했던 당시 미국 우파의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39] 다만 놈 촘스키는 ADL가 시오니즘 단체라고 비판 한적이 있다. 다만 이것은 ADL가 반시오니즘반유대주의를 혼동해 프로불편러적인 태도를 보여서 빚어진 오해이다. 남부빈곤법률센터마지드 나와즈를 이슬람혐오자로 오판해 반이슬람 극단주의자 낙인을 찍었던 것처럼(물론 지금은 입장철회했다). 게다가 어디까지나 공공연히 인정받는 견해가 아닌 순전히 개인적 견해이다. ADL는 반이슬람 증오에도 마찬가지로 반대하며 노골적 친이스라엘이나 시오니즘을 공공연하게 내세우지 않는다.[40] 물론 유대인이라고 해서 독소전쟁에서 징집안되었던 것은 아니었고, 이 과정에서 유대인 젊은층들이 전사했지만 유대인을 학살하던 나치 독일과 싸우던 것이니 성전이나 다름없었기는 했다.[41] 히틀러 등 독일 민족주의자들은 반유대주의적 목적으로 아민 알후세이니 등 이슬람권 민족주의자들과 연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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