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9 12:47:20

라타키아

{{{#!wiki style="color:#000,#ddd; margin: -0px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수도
다마스쿠스주(دمشق)
주(ولایت)
리프디마슈크주(دمشق) · 쿠네이트라주(القنيطرة) · 다라주(درعا) · 수와이다주(السويداء) · 홈스주(حمص) · 타르투스주(طرطوس) · 라타키아주(اللاذقي) · 하마주(حماة) · 이들리브주(إدلب) · 알레포주(حلب) · 라카주(الرقة) · 데이르에조르주(دير الزور) · 하사카주(الحسكة) }}}}}}}}}


파일:라타키아 해변.jpg
라타키아의 해변

아랍어 اللَاذِقِيَّة‎ (알 라디키야)
프랑스어 Lattaquié (라타키에)
영어 Latakia / Lattakia / Latakiyah

1. 시리아의 주2. 시리아의 도시
2.1. 역사

1. 시리아의 주

시리아 서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주로 면적은 2,297㎢이다. 북쪽으로는 튀르키예와 국경을 접한다. 인구는 내전 직전에 100만명이었고 알라위파의 비중이 라타키아 시에 비해 높아 70%까지 올라간다. 한마디로 알라위파의 본진. 하페즈 알 아사드, 수헤일 알 하산 같은 상당수의 알라위파 인물들도 라타키아 주가 고향이다. 고대 우가리트의 유적이 이 주에 위치한다. 관할 도시로 라타키아, 자블라 등이 있다.

2. 시리아의 도시

{{{#!wiki style="margin:-10px -10px; word-break: keep-all"<tablebordercolor=#00732F>
파일:이슬람 도시기구.png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colbgcolor=#00732F> 이집트 카이로 · 기자 · 알렉산드리아 · 데숙 · 카프르엘셰이크 · 만수라 · 탄타 · 시빈엘콤 · 반하 · 아시유트 · 퀴나 · 룩소르
모로코 탕헤르 · 우지다 · 페스 · 라바트 · 메크네스 · 카사블랑카 · 마라케시 · 아가디르 · 엘아이운
튀니지 튀니스 · 타바르카 · 비제르트 · 베자 · 카이로우안 · 수스 · 마흐디야 · 스팍스 · 토주르 · 가베스
세네갈 티바완 · 티에스 · 다카르 · 디우르벨
카메룬 야운데 · 두알라 · 응가운데레 · 응간하
리비아 트리폴리 · 데르나 · 벵가지
수단 하르툼 · 북하르툼 · 옴두르만
니제르 아가데즈 · 니아메
나이지리아 아부자 · 라고스
말리 바마코 · 팀북투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 메디나 · 메카 · 바하 · 압하 · 지잔 · 타부크 · 나즈란 · 담맘 · 부라이다 · 하일 · 사카카 · 아라르 · 호푸프
팔레스타인 가자 · 나블루스 · 라말라 · 아리하 · 예루살렘 · 베이트 울라 · 사이르 · 알칼릴 · 칼킬리야 · 툴카름 · 제닌 · 칸유니스 · 할훌
레바논 베이루트 · 트리폴리
시리아 다마스쿠스 · 알레포 · 라타키아 · 홈스
이라크 바그다드 · 모술 · 바스라
요르단 암만 · 카라크 · 마안 · 살트 · 자르카 · 마프라크 · 이르비드
예멘 사나 · 아덴 · 타림
오만 무스카트 · 소하르 · 도파르 · 니즈와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 두바이 · 샤르자 · 라스 알카이마 · 아지만
이란 테헤란 · 이스파한 · 쉬라즈 · 카샨 · 타브리즈
튀르키예 앙카라 · 이스탄불 · 카이세리 · 이즈미르 · 에디르네 · 부르사 · 메르신 · 가지안테프 · 샨르우르파
북키프로스 파마구스타 · 레프코샤 · 키레니아
러시아 카잔 · 그로즈니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 사마르칸트 · 부하라
그 외 국가 사라예보 · 티라나 · 그라나다 · 실베스 · 누악쇼트 · 리브르빌 · 반줄 · 와가두구 · 은자메나 · 코나크리 · 프리타운 · 비사우 · 파라마리보 · 지부티 · 모가디슈 · 캄팔라 · 마푸투 · 모로니 · 쿠웨이트 · 마나마 · 도하 · 바쿠 · 알마티 · 비슈케크 · 두샨베 · 아시가바트 · 카불 · 이슬라마바드 · 다카 · 말레 · 마라위 · 반다르스리브가완 · 쿠알라룸푸르 · 자카르타 }}}}}}}}}

파일:라타키아 시내.jpg
해안의 풍경
파일:라타키아 항구.png
라타키아 항구
파일:라타키아 시가지.jpg
2008년 시내 풍경

시리아 서부의 항구도시. 시리아 내전 이전의 인구는 40만명으로, 시리아에서 5번째로 큰 도시이자 최대의 항구도시였다. 다마스쿠스에서 북쪽으로 385km 떨어져 있고 알레포에서는 서남쪽으로 180km, 하마에서 서북쪽로 120km, 타르투스에서는 북쪽으로 70km 떨어진 라스지야라 곶에 위치해 있다. 도시에서 북쪽으로 25km 올라가면 튀르키예와의 국경이 나오며, 안타키아(안티오키아)와도 멀지 않다. 포도, 목화 등이 생산되며, 알레포의 외항 역할을 했다. 라타키아산 담배도 시리아 내에서는 명성이 높다. 1987년 제10회 지중해 게임을 개최했다.

중세 시대부터 기독교와 이슬람 공동체가 공존하던 도시이다. 거주민 중 알라위 무슬림이 50%, 기독교 신도가 30%, 수니 무슬림이 20%였다. 사실 라타키아, 타르투스를 비롯한 해안 지대는 2011년 초기의 소요사태를 제외하고는 시리아 내전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이기에 지금도 그럴 확률이 높다. 실제로 내전이 한창이 와중에도 메르디앙 호텔 등 해안의 휴양업이 성행 중이고, 외국인들의 출입도 이어지고 있다.

2.1. 역사

파일:라타키아 개선문.jpg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개선문

고대 이름은 시리아의 라오디케아였고 셀레우코스 왕조 시절에 건설되었다. 당연히 라타키아도 라오디케아가 음운만 살작 변한 것이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자유 도시로 선정되어 번영했고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건설한 개선문, 극장 등의 유적이 지금도 남아있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때 일시적으로 로마령 시리아 속주의 주도가 되었다고 하며, 그 외에도 세베루스는 대도시 타이틀 및 마치 이탈리아처럼 간주되는 특권(Ius Italicum)[1]을 부여했다고 한다. 이 시절 라오디케아는 4만명의 인구 및 대도시에나 있는 히포드롬까지 보유하며 번영했다.[2]

기독교적으로는 사도 바울로가 도시를 방문해 5명에게 복음을 전파했다고 한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에는 황후 테오도라를 기리는 의미에서 종전 제1 및 제2 시리아 속주의 일부를 분할해서 테오도리아스(Theodorias)라는 새 속주를 만들었는데 그 치소로 지정되었다.[3]

그러다 636년 이슬람 제국령이 되어 아랍식 이름인 알-라디키야 (اللَّاذِقِيَّة)로 불리게 되었다. 한편 우마이야 왕조에 대한 레바논 현지의 기독교 반란군인 마르다이트가 705년 도시를 점령했다. 그들은 칼리파 왈리드 1세와의 협상으로 철수했으나 그가 사망한 후 719년 재차 라타키야를 습격했다. 그후 칼리파 우마르 2세가 도시를 재건했다.

970년 요안니스 1세 휘하의 동로마 제국은 약 3세기만에 도시를 수복했으나 10년만에 파티마 왕조에게 상실했다. 11세기 중엽 파티마 조가 쇠퇴하자 1074년 잠깐 동로마 군이 수복한 것을 제외하면 1080년대 샤이자르의 바누 문키드가 도시를 지배했다. 동로마 제국은 1차 십자군을 틈타 1097년 10월 도시를 마지막으로 수복했고, 1099년 후에 트리폴리 백국을 세우는 레몽 드 생 질이 그 대리로 통치했으나 1103년 안티오키아 공국의 탕크레드에게 상실했다.

그후 안티오키아 공국령에 속했으며, 여러 성당이 지어졌다. 그 중 예수 성심 성당은 지금도 남아있다. 당시 이름은 '라 리셰 (La Liche)'였다. 1188년 여름 살라흐 앗 딘이 점령하여 아이유브 왕조알레포 번국에 속했다가, 1260년 몽골 제국의 시리아 침공 시에 훌라구 칸이 자신에 복속한 보에몽 6세에게 라타키아-자블라를 하사하며 80여년만에 안티오크 공국령이 되었다.

다만 1287년 지진으로 성벽이 붕괴했고, 같은해 4월 맘루크 술탄 칼라운이 도시를 기습 점령했다. 그후 14세기 키프로스 왕국의 습격을 받은 후 라타키아는 중소 도시로 남았다. 그러다 오스만 제국의 해체 이후 이어진 프랑스 위임 통치기에는 알라위 국가의 수도가 되어 재차 번영하기 시작했다. (1920 ~ 1936년) 시리아 내전 시에는 러시아 공군 기지도시 근교에 위치하게 되었다. 2023년에는 지진 피해가 발생했다.

2024년 시리아 반군 공세에서 2024년 12월 8일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이 무너질 당시에도 타르투스와 함께 시리아 정부군이 통제하고 있던 지역이었으나, 시리아 군부가 반군에게 항복하면서 시리아 반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1] Ius Italicum. 이탈리아 밖을 마치 본국 이탈리아처럼 간주하는 특권이다. 그 곳 시민들이 자동으로 속주민에서 로마 시민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것이며, 시장 및 총독도 더 이상 속주민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로마 시민을 다스리게 되는 것인만큼 통치를 더 세심하게 해야 되었다. 물론 카라칼라의 안토니누스 칙령 이후에는 의미를 상실했다.[2] 영어 위키백과 Laodicea in Syria 중, 'During the Severan dynasty, a third century imperial dynasty of Rome from Syrian origins, the emperor Septimius Severus named with the title "Metropolis" the city in 194 AD and allowed the Ius Italicum (exemption from empire taxation) to Laodicea, that was later called a "Roman Colonia".' 및, 'Under Septimius Severus the city was fortified and was made for a few years the capital of Roman Syria: in this period Laodicea grew to be a city of nearly 40000 inhabitants and had even an hippodrome.'[3] 영어 위키백과 Laodicea in Syria 중, 'Justinian I made Laodicea the capital of the Byzantine province of "Theodorias" in the early sixth century. Laodicea remained its capital for more than a century until the Arab conqu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