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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30452,#c30452><colcolor=#fff> 기본 정보 LG그룹 | LG스포츠 | MBC 청룡 | LG 트윈스 | LG 트윈스 2군
주요 인물 구단주 구광모 | 대표이사 김인석 | 단장 차명석 | 감독 염경엽 | 주장 박해민
경기장 1군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2군 LG 챔피언스 파크
이전 동대문야구장 · 구리 LG 챔피언스 파크
우승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1990(V1) | 1994(V2) | 2023(V3) | 2025(V4)
역대 한국시리즈 1983 | 1990 | 1994 | 1997 | 1998 | 2002 | 2023 | 2025
정보 구단 역사 | 트레이드 | 역대 감독 | 역대 주장 | 사건·사고 | 암흑기(453566, 6668587667)
주요 정보 팀 컬러 | 역대 선수 및 인물(선수단) | 등번호 | 유니폼(협업, 기타) | 상대 전적 | 팀 응원가(서울의 찬가 · 서울의 모정) | 응원단장 | 엘튜브 | 치어리더 | 제휴카드
역대 시즌 역대 시즌
현재 시즌 LG 트윈스/2026년
영구 결번 9 이병규 | 33 박용택 | 41 김용수
팬덤 정보 LG 트윈스 갤러리 | I love Twins | 유광잠바
라이벌전 잠실 시리즈 | 엘 꼴라시코 | 통신사 시리즈 | 엘키라시코
기타 방화신기 | 간채골 | 보루갈 | 빅5 | 사랑해요 LG | 엘롯기 | 엘넥한 | 엘롯한 | 헬로키티 | 탈쥐효과 | 추격쥐 | 쥐평 | 엘나쌩 · 엘상바 클럽 | 아워게임 : LG트윈스 | DTD | 이 팀은 솔직히 | 메가트윈스포 | 용택아 나는 무서운 진실을 깨닫고 말았다 | 올해는 다르다 | 박신홍문 | 오김박 | 상대 전적 | X-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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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부터 2011년까지의 순위
파일:attachment/maturedfrom1994.jpg
이 술단지의 마개는 당시의 구단주인 구본무 회장이 사망한 지 5년 반이 지난 뒤에야 열리게 되었다.[1]


1. 개요

파일:attachment/munaze.jpg
이병규, LG의 가을을 경험한 문화재[2]
LG 트윈스가 2003년부터 2012년까지 하위권을 달리던 암흑기를 통칭한다.

2. 상세

파일:attachment/f0018015_5199f1e59105f.png파일:attachment/f0018015_5199f15e96692.png
박성웅, 내가 LG 팬이라고 밝힐 수가 없어
파일:attachment/LGpassword.jpg
전화번호가 아닙니다.[3]
지금 LG 트윈스에서 10년째 뛰고 있는 선수들은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야구 제일 못하는 선수들입니다. 10년간 가을야구 못 간 팀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용균 기자, 사사구에서.
롯데 자이언츠8888577한화 이글스5886899678에 버금가는 대한민국 야구계가 만들어낸 또 다른 전설의 비밀번호. 참고로 이 기간 동안에 LG 트윈스713패를 기록하였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LG는 비밀번호 기간 동안 5번이나 6위를 했다. 그런데 암흑기의 LG를 대표하는 멸칭은 칠쥐(7G)인데, 2009년에 7위를 할 때 2011년과 맞먹는 DTD 시즌을 보낼 정도로 임팩트를 보여줬기 때문으로 보인다.

참고로 이 문서는 비밀번호 7자리 시절이었던 2009년 시즌 종료 이후인 6668587 시절부터 존재했다. 즉 문서 이름을 3번 갱신했다는 소리. 사실 정확히 따지면 4번 갱신인데, 문서가 처음 만들어진 6668587 시절에는 비밀번호 관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던 터라 하이픈이 들어간 '6-6-6-8-5-8-7'로 생성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8888577과의 통일성을 맞추기 위해 하이픈을 제거하고 그 이후로 숫자가 3자리 추가되면서 갱신 횟수도 3번 늘어나 지금에 이른 것이다. 그렇기에 '6668587'이나 '66685876', '666858766'으로도 넘어올 수 있다.

실제로 비밀번호로 언급되기 시작한 건 본 문서보다도 빠른 666858 시절 동아일보 기사에서 언급되면서부터이다. (동아일보 기사) 그래서 한화의 비밀번호 항목인 5886899678도 2013년에 6자리가 찍히자마자(588689) 항목이 생성되었고, 이후 숫자가 4자리 추가되었다. 해당 기사에서 당시 박명환, 이동현, 이형종의 사진을 볼 수 있는데, 이 당시 신인이었던 이형종은 투수로 뛰고 있었다.

2009년까지는 666-8587로 중국집 전화번호마냥 외우기도 쉬웠고, 10자리로 늘어난 2012년에도 666-858-7667의 데칼코마니 형태라 외우기 쉬웠다. 게다가 이미 미국에서 볼 법한 전화번호가 되었고 8개 택배 회사[4] 한정으로는 택배 운송장 번호가 되어버렸으며, 이대로 암흑기가 지속되다간 은행 계좌번호나 바코드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추측까지 나왔다.

이 기간의 처참한 성적은 2010년대까지 LG 팬덤의 연령대가 높아지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이 당시에는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전승 우승을 거두며 금메달을 거머쥐었고, 몇 개월 지나지 않은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준우승을 거두며 한창 야구 붐이 일 때 LG의 성적은 비밀번호의 정점이었던 87을 찍고 있어 당시 베이징 뉴비들에게는 약팀으로 인식이 굳어진 탓에 대부분 당시 강팀이었던 두산이나 SK로 가버려 유입이 어려웠다.[5] 그렇기에 LG의 암흑기 당시 문제점 중 하나였던 4~50대 극성 팬들이 많아지게 되는 원인이 되었고, 암흑기를 탈출한 이후에도 극성 팬의 비중이 많아 KBO 리그 내에서 아저씨 팬이 가장 많은 팀으로 여겨졌다. 그나마 2020년대 들어서는 LG가 6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고 2023년에는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하면서 강팀 이미지가 붙어졌고, 마침 2023년부터 다시금 야구 붐이 일어나며 현재는 젊은 팬덤의 유입이 많아져 극성 팬의 비중이 많이 옅어졌다.

신기하게도 이런 극심한 침체기 속에서도 10승 투수는 꼬박꼬박 배출했다. 투수진이 완전히 망가져 꼴지를 했던 2006년조차 심수창이 10승을 거두었고, 또 한 번 꼴찌를 한 2008년에는 무려 봉중근옥스프링 두 명이 10승 이상을 기록했다. 또한 약팀임에도 꼴찌는 의외로 두번밖에 안했다. 롯데와 한화가 비밀번호 찍는 동안 무수히 많은 꼴찌를 해서 꼴데나 꼴칰 등의 별명을 얻은 것과는 달리 LG는 칠쥐가 별명이다.

2020년대 들어서는 비슷한 사례인 삼성의 암흑기인 99688378과 비교되고 있는데, 삼성이 2010년대 중반 이후 계속된 드래프트와 육성 실패로 5년이라는 시간을 내다버렸다는 평가를 받으며[6] 이종열 단장 체제 이후 부랴부랴 육성 시스템을 갈아엎어 제대로 된 리빌딩을 시작하고 있는 상황에서, LG 트윈스는 느리기는 하지만 착실히 리빌딩을 하여 암흑기를 잘 탈출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똑같이 암흑기를 맞은 한화는 제대로 리빌딩이 되지 않은 상태로[7] 김성근 시대 이후 이상군의 아주 짧은 리빌딩 이후 2018년에 반짝 3위에 등극해 11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가, 다시 9AAA98을 기록하는 등 비밀번호를 계속 찍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화는 2025년 리그 최고의 강력한 원투펀치 폰세와이스문현빈, 문동주 등 유망주들의 성장이 맞물리며 비밀번호를 끊었고, 페넌트레이스 2위에 플레이오프 승리로 19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며 준우승을 기록했으나 다음 해 연속성을 증명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현재는 암흑기 탈출 이후 계속해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면서[8] 암흑기를 완전히 청산하는데 성공하였고, 결국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총 5년동안 두 번이나 우승하였으며, 이 2번의 우승 이후로 이당시의 암흑기는 그냥 어두웠던 과거로만 기억되고 있다. LG의 암흑기를 겪어본 적이 없는 신생팬들은 포스트시즌 단골팀이 된 LG를 보고 LG가 그렇게 길었던 암흑기도 있었느냐며 놀라워 하는 경우가 많다.[9]

3. 역사

3.1. 2003년

2002년 한국시리즈 직후 김성근 감독은 경질되고, LG의 90년대 당시 전성기를 이끈 이광환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이 당시 LG 프런트의 만행과 별개로 김성근 감독의 경질에 대해서는 큰 반발은 없었다. 불펜 혹사로 대표되는 김성근 식의 관리 야구[10]가 LG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신바람 야구와 완벽한 대척점에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2002년 정규 시즌에 LG 선수들이 숙소 무단 이탈을 하자 김성근 감독이 이 선수들을 칼같이 라인업에서 제외하는 일화도 있었다.

그렇게 이광환 체제 2기에서 맞이한 2003년, 시즌 초인 5월까지는 그래도 4위권에서 버티며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경쟁을 했으나 6월 초 그 유명한 백인천의 롯데와 11승 39패의 두산을 상대로 연속 스윕패를 당하며 6연패를 당한 것으로 분위기가 한번 꺾이며 위기가 찾아왔고, 좀처럼 승패마진을 위로 쌓아가질 못하는 와중에 시즌 후반 대전 한화전 4연전 전패를 포함한 8연패를 당한 것이 결정타가 되어 6위까지 떨어지게 되었고, 다시 위로 올라가지 못한 채 시즌이 종료되었다.[11] 최종 성적은 60승 2무 71패 승률 .458의 성적을 거두며 4위 SK와 6게임차의 격차로 낭낭하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LG는 핵심타자 이병규의 십자인대 파열로 인한 시즌 아웃과 작년의 주축 야수들의 부진으로 타선이 크게 약화되었다. 이 시즌 wRC+는 구단 역사상 최하위였고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뒤에서 13번째였다. 그나마 투수쪽에서는 성과를 보였던 것이, 팀 ERA가 3.98로 KIA 다음으로 2위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먼저 선발투수에서는 당해 11승과 탈삼진왕을 수상한 이승호가 팀의 에이스 노릇을 했고, 작년 불펜 에이스였던 장문석이 선발 전환 후 한동안 좋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불펜에서는 전승남류택현이 버텨주었고, 마무리 이상훈도 30세이브를 올리며 여전한 활약을 보여줬다.

그러나 작년 신인임에도 좋은 활약상을 보인 이동현이 작년만큼의 활약을 하지 못했고, 마무리 이상훈도 전년도의 김성근의 혹사 여파[12]로 인해 이전과 같은 위압감은 없었으며 위에 언급한 큰 이승호나 장문석 또한 팀의 연패를 끊어주는 연패 스토퍼의 역할을 해주지 못했다.

3.2. 2004년

시즌이 끝나고 프런트는 이광환 감독을 2군 감독으로 강등시키고[13] 좋은 평가를 받았던 이순철 주루코치를 감독으로 선임하며 2004년 캐치프라이즈를 제2창단으로 내세울 정도로 강제적인 세대 교체를 준비했으나, 이는 암흑기의 서막이었다.

부족한 팀 전력을 어떻게든 쥐어짜내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갔던 김성근을 경질하고 이광환을 선임한 것도 그 당시에는 절차 문제로 말이 많았지만, 그렇게 무리수를 둬가면서까지 선임한 이광환 감독을 고작 1년 만에 2군 감독으로 밀어내고 다시 이순철을 감독으로 올린 것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전개이다. 한마디로 프런트가 팀의 미래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없이 즉흥적으로 사람을 짤랐다 세웠다 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시즌 전부터 팀의 마무리인 이상훈은 기타 파동으로 인해 이순철과 갈등을 빚어 반강제로 SK로 트레이드 되었으며, 유지현은 전력 외 취급을 받아 1군에서 배팅볼을 던지는 수모를 겪다 시즌이 끝나고 은퇴하게 되는 등, 팀이 프랜차이즈 취급을 개판으로 하자 팀의 근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물론 전력 보강을 아예 안한 것이 아닌 게, FA로 진필중을 영입해 팀의 뒷문을 책임지게끔 했으나 그마저도 먹튀가 되어버리며 팀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시즌 초반에는 선두까지 치고 나가긴 했으나 한달이 채 가기도 전에 삐그덕대기 시작했고, 6월이 되자 4연패-8연패-5연패를 박아버려 단숨에 중하위권으로 나가떨어졌다. 그나마 6월 이후부터 KIA, SK, 한화와 4강 경쟁이라도 하는 듯 희망이라도 있던 것마저도 8월 말부터 에이스 이승호, 불펜 핵심 이동현, 데뷔 첫 3할 타율의 박용택 등 주축 선수들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며 완전히 무너져내려 결국 최종 성적 59승 4무 70패 승률 .457로 저번 시즌과 다를 바 없는 승률로 4위 KIA와 8게임차로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를 확정지으며 시즌을 마감한다.

과거 2002년과 2003년 두 시즌간 LG의 뛰어났던 투수력을 만든 양상문 투수코치가 롯데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새롭게 이상군이 투수코치가 되자마자 멀쩡했던 투수들의 구속이 내려가는 마법이 펼쳐졌다. 이른 바 '상군매직'. 강속구 투수 유망주였던 김광삼의 성장은 정체되었고 후반기 들어 선발진이 너도나도 구속이 떨어지며 무너졌다. 불펜 필승조들은 FA로 마무리 투수의 역할을 기대했던 진필중의 실패로 뒷문에 구멍이 뚫린 것이 치명적이었고 여기에 핵심 불펜 이동현이 팔꿈치 수술로 이탈하니 불펜이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것은 당연했다.[14] 1군에서 자리잡기를 기대했던 좌완 파이어볼러 서승화는 고질적인 제구 문제에 유리멘탈이라 잇따른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하였으며, 신윤호는 마당쇠 역할을 소화했으나 과거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했던 2001년의 모습을 되찾기에는 그 시즌 혹사로 인해 더이상 보여줄 수 없었다. 거기에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외국인 투수 후타도와 그의 대체선수 쿠퍼 모두 처참한 모습으로 투수력에 보탬이 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2004년은 지난 2년의 강점이었던 투수력이 총체적으로 붕괴되는 것도 모자라 후술할 일들로 인해 거의 10년의 가까운 시간 동안 재건 불가 상태가 되어버려 향후 10년간 거칠 기나긴 암흑기의 가장 큰 문제점이 되었다.

시즌 후에는 더 가관인 일이 있었는데, 또다른 프랜차이즈이자 공격에서 이병규와 함께 사람 구실을 한 몇 없는 선수인 김재현에게 FA 협상에서 과거 부상을 당했던 고관절 부상과 관련된 각서를 쓰게 했고[15], 당연히 생명의 위협을 느낀 김재현은 LG와의 협상을 거부하고 SK로 이적하게 된다. 이때 그나마 SK 유망주 중에서 정우람, 윤길현, 신승현 등의 질 좋은 투수 유망주들이 있었기에 이 선수들 중 한 명을 데려왔더라면 그나마 나았다. 그러나 이순철"안재만의 영입은 SK의 내야진에 큰 구멍을 가져올 것이다."랍시고 보상 선수로 안재만을 지명했는데, 정작 SK는 사인 앤드 트레이드로 롯데에서 김태균을 영입해 바로 메웠고, 이후 1차 지명으로 입단한 최정이 주전 3루수로 자리를 잡으며 내야진이 오히려 탄탄해졌다. 반면 안재만은 LG로 돌아오고 나서도 주전으로 활약하지 못하며 해당 작전은 완전히 실패하고 되려 남 좋은 일만 해버린 역대급 삽질로 평가받게 되었다. 그로 인해 특별한 전력 보강 조차도 없어서 다음 시즌 팀의 전망은 암울하기 그지 없었다.[16]

3.3. 2005년

앞서 언급했듯이, 팀의 간판급 프랜차이즈 스타인 유지현이 반 강제로 은퇴를 하게 되었고, 김재현은 각서파동으로 인해 FA로 SK 이적을 함으로써 팀에 심각한 전력누수가 일어난 와중에도 딱히 특별한 전력보강이란 것은 없었고, 전문가들의 예상은 하위권에 머물렀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대로 개막 3연패에 5월 5연패 등으로 일찌감치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7월 초 반짝 8연승을 달려 잠깐 4위를 했으나 곧바로 7월에 7연패, 8월에 6연패를 하면서 한때 7위까지 떨어지는 등, 포스트시즌과 완전히 멀어졌다. 그나마 최종전에서 2위를 확정지으려던 SK의 발목을 잡으며 최종 성적 54승 1무 71패 승률 .432로 승률이 폭락하며 3년 연속 6위로 시즌을 마감[17], LG 트윈스라는 팀명 이래 최초로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이해 두산과 SK, 두 팀을 상대로 각각 5승 13패, 4승 1무 13패에 그치며 승점자판기로 전락했다. 게다가 두산을 상대로 개막 이후 맞대결 전패가 이어지면서 두산전에서 이길 때까지 홈 경기 무료 입장 이벤트까지 여는 굴욕까지 겪었으며, 앞서 전술했듯이 최종전에서 고작 6위로 올라가기 위해 SK의 발목을 붙잡아서 2위가 된 팀이 두산이었고, 그 덕분에 두산은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였기에 해당 시즌 LG는 완전히 두산 좋은 일만 한 꼴이 되었다.

타격은 주축 타자들인 이병규가 타격왕과 최다안타왕,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박용택은 도루왕과 득점왕을 수상했다. 또한 젊은 대주자 요원이던 이대형은 37도루로 리그 전체 도루 3위에 오르며 팀 도루 1위를 이끌기도 했다. 덕분에 나쁜 세부지표를 기동력으로 커버해 팀 득점이 삼성과 한화와 함께 600득점을 넘기는 등 나름 선방했다. 그러나 리그 최악의 팀 ERA 4.90이라는 처참한 투수력이 심각하게 발목을 붙잡고 말았다. 선발투수는 최원호가 13승을 거두며 로테이션을 돌아준 것을 제외하면 그 어느 투수도 안정적으로 돌아주지를 못했고, 불펜 또한 가장 중요한 마무리 투수들이 계속 부진하는 바람에 계속해서 교체되는 수모를 겪으며 불펜 가동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투수진 붕괴의 책임으로 이상군 투수코치는 시즌이 끝나고 해임되었다.

외국인 농사도 엉망이었다. 일단 시즌이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공격력 보강을 위해 타자로만 두 명을 뽑는 전략을 세웠다. 시범경기 맹타를 휘두르던 마테오는 정작 정규시즌이 되자 부진 끝에 퇴출되었으며 클리어는 후반기에 맹타를 휘두르며 3할 타율과 15홈런으로 1인분 정도는 했으나 꾸준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재계약에 실패했다. 뒤늦게 투수력 문제를 확인하고 영입한 좌완 투수 왈론드는 초반 완투승을 포함 2승을 거뒀으나 제구 난조 문제에 타선 지원 부족으로 9연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으며 실패했다.

LG의 우타 거포 기근을 해결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 특급 고졸 신인 정의윤박병호가 동시에 입단한 해이기도 했다. 향후 LG를 대표하는 거포가 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다르게 둘 다 가능성만 확인하고 정작 포텐은 다른 팀에서 터졌다.

성적 부진으로 선수단 분위기는 매우 어수선했으며, 결국 시즌 내내 이순철 감독에 대한 경질 여론이 들끓었다. 심지어 최종전 전에는 경질이 확정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가 해프닝으로 끝난 일도 있었을 정도. 2004년 이상훈의 기타 파동과 트레이드, 유지현의 반강제 은퇴와 함께 시즌 전 팀의 유일한 영구결번 김용수 코치를 자신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내치고 잠실 외야에 걸려있던 41번 영구결번 유니폼도 치우는 졸렬함은 이순철에 대한 팬들의 반감을 더욱 키운 사건이 되었다.

결국 이 시즌 시작 전까지 LG는 MBC-LG 프랜차이즈 통산 승률이 5할이 넘었지만, 2005년 8월 6일을 기점으로 승패마진이 마이너스로 전환되며 이를 다시 메우는 데에만 자그마치 20년이 넘게 걸리게 되었다.

3.4.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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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철아 우리는 네가 정말 창피하다"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4강 신화의 열기를 타고 시작된 시범경기에서 LG는 1위를 기록했다. 당초 LG의 계획은 외국인 선수 구상에서 강속구 투수 아이바를 마무리 투수로 영입하고, 텔레마코는 선발투수감으로 계약했다. 또한 베테랑 최상덕마해영을 영입해 선발진과 중심타선의 질을 높이려는 시도를 하며 지난 3년 연속 6위에서 탈피하여 최소 포스트시즌에는 진출하기 위해 의욕적인 준비를 했다.[18]

그러나 그러한 기대와는 달리 이해는 아예 팀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아이바는 시범경기때부터 어께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하며 전력에서 이탈했고, 개막전 선발투수 최상덕은 오른 허벅지 통증으로 2회에 강판했다.[19] 최상덕의 이탈로 안그래도 불안정한 선발진에 커다란 공백이 생긴 것은 물론이고 마무리를 맡아줄 것이라 기대한 아이바까지 전력에서 이탈해 불펜까지 안정적인 곳이 없어 투수진 전체가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나버렸다. 타자 쪽에서도 기대와 다르게 엇나가기 시작했는데, 당초 리드오프로 낙점했던 이대형이 공격의 물꼬를 트기에는 역부족임을 드러냈고 마해영 등 중심타선마저 해결사 역할을 하지 못해 공격력마저도 부실했다. 기대주로 평가받았던 박병호, 정의윤, 이성열 등은 1군 붙박이로 활약하기에는 경험 부족을 드러냈다.

결국 투타 모두 환상적인 밸런스를 선보인 덕분에 시즌 초반부터 승패마진을 신나게 깎아먹으며 승률 3할대로 허덕여 같은 시기 똑같이 부진하고 있는 롯데에 이어 7위로 떨어지게 되자 이러한 행태에 분노한 LG팬들은 6월 3일 경기 도중 얼굴을 가린 채 위와 같은 플래카드를 잠실 야구장에 내걸게 될 정도로 민심이 악화되었고, 결국 이순철은 이틀 뒤인 6월 5일에 사퇴하며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후 양승호 수석코치가 잔여 시즌 감독대행을 맡게 되어 시즌을 마치게 되었고, 공교롭게도 롯데가 반등하는 바람에 8위로 내려앉았으며 막판 8연패로 쐐기를 박았다. 그렇게 LG 트윈스의 2006년 최종 성적은 47승 4무 75패 승률 .385MBC-LG 프랜차이즈 역사상 첫 최하위와 역대 최저 승률[20], 최다패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만이 남게 되었다. 당초 양승호 감독대행은 최소 50승과 승률 4할을 희망했지만 당연하게도 둘 다 달성에는 실패했다.

당시 LG 투수진은 한국프로야구 전체를 통틀어도 최악이라 평가받을 수준이었는데, 이 해 프로야구 전체 ERA는 3.58로 상당한 투고타저였으며, LG 빼고 모든 팀이 팀 ERA 3점대를 찍었으나 LG만 혼자 4.22를 찍는 그야말로 걸레짝이라고 표현해도 될만한 투수력이었으며 팀 조정 평균자책점(ERA+)은 고작 83.9를 찍어내는데 불과했다.[21] 게다가 해당 시즌은 팀 내 sWAR 1위가 2.70을 찍은 마무리 투수인 우규민일 정도로 선발이나 불펜이나 할 것 없이 모든 선수들이 처참한 경기력을 선보였다.[22]

우선 외국인 선수들부터 심각했다. 당초 마무리를 기대하고 영입했으나 스프링캠프에서 던진 공 19개가 전부인 희대의 먹튀 아이바는 말할 것도 없고, 텔레마코베로커 역시 폭망했다. 국내 투수들도 다를 바 없었는데, 그나마 팀에서 괜찮았던 선발투수로는 심수창정재복이었다. 그러나 팀 내 유일한 10승 투수인 심수창은 투고타저인 리그 내에서 4점대 ERA로 별로 좋지는 않았으며 정재복은 ERA 3.59로 평균 정도의 ERA와 규정이닝 소화, 7승을 따기도 했으나 역시 다른 팀의 선발투수에 비해서는 모자랐다. 이 외에 선수들인 이승호, 최원호, 김광삼은 시즌의 절반도 채 나오지 못하며 팀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국 선발투수에서부터 믿을만한 투수가 단 한 명도 없다시피한 LG 투수진은 그렇게 완벽한 붕괴를 맞이하고 말았다.

방화신기로 인해 투수력이 걸레짝이 되어버린 것에 초점이 맞춰져있어서 그렇지 공격력 또한 투수와 다를 게 없었다. 박용택이병규를 제외하면 타격에 어떠한 힘도 되어줄 뿐만 아니라 애초에 100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들이 이 두명 외에는 조인성, 박경수 외에는 없다. 또한 정의윤박병호와 같은 유망주들의 성장세는 언제나 정체되어 있었으며 그 결과 타격 WAR은 14.33, 팀 wRC+는 86.4로 압도적인 꼴찌였다.

3.5. 2007년

2006년 최하위 이후, 구단은 절치부심하는 마음으로 현대에서 4회 우승을 이끈 김재박 감독을 비롯해 당시 현대의 코칭스태프들을 통째로 데려왔다.[23] 프랜차이즈 스타인 이병규가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을 하는 전력누수가 생기긴 했지만 이를 메우기 위해 FA로 4년 40억원이라는 총액에 두산의 토종 에이스 박명환을 영입했고, 국내로 리턴한 메이저리그 출신 봉중근이 계약금 10억원과 함께 1차 지명으로 LG에 입단했으며, 외국인 선수도 2년간 삼성의 에이스로 삼성의 2년 연속 통합우승을 이끈 하리칼라와 이병규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일본프로야구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에서 2003년 우승을 이끈 발데스까지 영입하며 LG팬들의 기대를 모았다.

실제로 타자쪽에서는 이대형이 리드오프로 자리를 잡아 타율 3할과 도루왕,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등의 좋은 활약을 통해 이병규의 빈 자리를 메웠고, 긴 시간 무명 선수였던 최동수가 팀의 중심 타선으로 거듭났으며, 이종열조인성도 타격에서 확실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투수쪽에서는 박명환이 10승과 3점대 ERA라는 기대치에 걸맞는 성적을 선보였고, 불펜에서는 좌완 원 포인트 릴리프 류택현이 홀드왕에 오르는 활약상이 있었으며 전년도 붕괴된 투수진의 유일한 희망인 우규민까지 마무리로 뒷문을 깔끔하게 막아주며 시즌 막판까지 한화, 삼성과 치열한 포스트시즌 진출권 싸움을 벌이며 2002년 이후 5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희망은 서서히 부서져가고 있었는데, 먼저 타자쪽은 테이블세터와 하위타순은 훌륭했었으나 정작 중요하다 여겨지는 클린업 트리오에서 발데스-최동수-박용택 이 선수들이 장타력이나 클러치 능력에서 다른 팀들에 비해 부족한 능력치였다는 점이었고[24], 팀의 주전 3루수로 많은 기회를 받은 김상현은 초반 잠깐의 활약을 제외하면 실망스러웠다.

투수진에서도 박명환과 중간에 들어온 옥스프링 이외에는 다른 선수들이 부진했으며 기대를 모은 봉중근, 하리칼라는 그 기대치에 못미쳤고 하리칼라는 시즌 중 방출되었다. 그 때문에 불펜진의 과부화를 재촉해 전반기까지 호투하던 우규민이 8회부터 멀티이닝을 던지거나, 연장전까지 던지는 등 과부하를 해서 체력이 떨어지는 바람에 막판에는 방화범으로 전락해 시즌 종료 기준 30세이브를 거두며 오승환 다음으로 세이브 2위를 거두며 겉보기에는 좋아보였으나 그 뒤에는 블론세이브 13회라는 역대 한 시즌 최다 블론세이브 기록을 세우며 매우 불안했고, 다른 불펜진인 김민기나 불안한 불펜진을 메꾸기 위해 선발에서 전향한 심수창정재복도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결정적으로 삼성과의 4위 싸움으로 갈 길이 바쁜 상황에 SK와의 홈 경기에서 1:2로 앞서던 9회초 2아웃 상황, 김우석[25]히 드랍 더 볼로 동점이 되어 결국 연장에서 역전패를 당한 것을 기점으로 막판 뒷심 부족으로 최종 성적 58승 6무 62패 승률 0.483을 거뒀고, 4위 삼성과 3게임차 차이의 5위로 아쉽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26][27]

3.6. 2008년

2007년의 선전으로 인해 2008년을 기대하는 팬도 많았지만, 사실 실제 승률에 비해 턱없이 낮은 피타고리안 승률, 빈약한 기초 전력에 비해 실제 성적이 잘 나왔던 시즌이었고, 유망주들도 기대만큼 성장하질 못해서 생긴 야수진의 고령화 등, 불안 요소가 많았다. 그러나 프런트는 팀 전력을 오판하며 아무런 보강에 나서지 않았다.

이는 결국 다음 해인 2008년 시즌이 시작되자 겨우 다시 살아났던 팀이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문학에서 열린 SK와의 개막전에서 우규민이 연장전 정상호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으며 패배한 뒤 다음날은 봉중근의 호투로 첫 승을 거두었지만 곧바로 4연패를 박고 난 이후 4월까지 12승 16패, 7위로 좋지 않은 출발을 하고 난 이후에는 선발투수가 잘 던진 날엔 타자들이 도와주지 못하고, 타자들이 점수를 뽑는 날엔 투수들이 무너지는 전형적인 약팀의 엇박자 야구가 이어졌다. 거기에다 4월 25일에는 저번 시즌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해준 박명환이 오른쪽 어깨 통증을 호소해 전력에서 이탈해 투수진의 붕괴는 더욱더 가속화되었으며 결국 이해 6월에만 LG는 초반 2연승 이후 6연패-1승-9연패-1승-3연패를 거두며 4승 18패 승률 .182를 찍어 팀 전체가 삼미 슈퍼스타즈와 진배없는 정신나간 성적을 찍기도 했다. 결국 바닥까지 추락한 LG는 시즌이 끝날 때까지 더 이상 최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최종 성적 46승 80패 승률 .365MBC-LG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다패, 최저 승률을 2년만에 경신하며 다시 꼴지를 기록했다. 무엇보다도 2008년은 공중분해 위기 속에서 전지 훈련도 가지 못한데다가 분위기도 개판이던[28] 서울 히어로즈에도 밀린 최하위라 충격이 더욱 컸다.

팀 내 sWAR 1위를 기록한 타자가 반 시즌 뛴 지명타자 페타지니의 3.16이라는 것에서 볼 수 있듯 야수진이 완벽하게 망했다. 페타지니 외에는 난세의 영웅이라 불렸던 안치용이나 최동수 같은 선수들이 그나마 사람 구실이라도 했지만 저번 시즌 리드오프로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한 이대형은 도루를 제외하면 스탯이 하락했고, 박용택 마저도 WAR 0점대를 기록하며 기대치에 전혀 미치지 못했으며, 박경수박병호 같은 유망주들도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 투수진도 선발에서 봉중근옥스프링이 원투펀치로 분전했지만 팀 내에는 저렇게 사람처럼 던져주는 선수가 저 둘 말고는 없었다. 저번 시즌의 하리칼라를 보고도 깨닫지 못했는지 똑같이 삼성에서 2년간 준수하게 뛴 브라운을 에이스로 기대하고 데려왔지만 결과는 참담해 하리칼라와 똑같이 시즌 중 방출되었으며, 저번 시즌 팀의 1선발로 자리를 잡아준 박명환은 부상으로 드러눕기 시작했다. 결국 1군 로테이션으로 돌려볼 선수들이 남아나질 않아 어쩔 수 없이 고졸 신인 정찬헌이범준이 선발 로테이션을 억지로 소화해야 했다. 불펜진도 저번 시즌 블론세이브 13회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30세이브로 뒷문을 책임진 우규민은 이번 시즌은 시즌 초부터 불을 지르기 시작해 마무리 자리에서 내려왔고, 그 자리를 정재복이 나섰으나 역부족이었다. 또한 이 당시에는 끝장승부 제도가 한국프로야구에 도입된 유일한 해여서 안그래도 불펜이 약한 LG는 더욱더 불리했다.

3.7. 2009년

결국 시즌을 마치고 구본준 구단주의 지시로 대대적인 감사에 들어갔고 수많은 프런트 인사들과 코칭스태프들이 갈려나갔다. 그리고 FA로 정성훈이진영을 영입하며 의욕적인 오프시즌을 보냈고, 홈경기에 한해 X-존을 설치하여 공격력 강화를 모색했다. 그에 대한 팬들의 기대는 하늘을 찔러 2008년 11월 30일에 열린 러브 기빙 페스티벌에는 수많은 팬들이 찾으며 차기 시즌 LG의 선전을 기대했다.

실제로 2009년은 5월 초까지는 외부 FA 영입생인 정성훈이진영의 활약 + 박용택의 각성 + 페타지니의 대활약 + 주전 포수 김정민의 투수 리딩에 힘입어 예전보다 나아진 투수진까지 더해져 8연승과 2위 자리에 오르는 쾌거를 누리게 된다. 당연히 그동안 잠들어있는 모든 LG팬들은 일제히 일어나 환호하며 7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까지도 꿈을 꾸게 되었다.

그러나 5월 20일 김정민이 아킬레스건 부상이라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으며 주전 포수가 시즌 아웃되는 악재를 겪게 되었고, 급하게 부상에서 회복중인 조인성이 주전 포수로 나섰으나 나아진 줄로만 알았던 투수진은 조인성이 포수 마스크를 쓰게 되자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하며 그 꿈은 산산조각나기 시작했다. 선발은 저번 시즌부터 각성한 봉중근이 여전히 에이스 노릇을 해줬으나 나머지 선발투수들은 자기 몫을 해주지를 못했고, 불펜진 또한 이재영이 마무리를 맡은 7월 초에 잠깐 4위와 반게임차로 뒤진 5위까지 올라가는 선전을 했으나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를 못한 채 그대로 최종 성적 54승 4무 75패 승률 .406, 7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이해 그나마 공격력이 좋았던 탓에 죽어라 따라가다 결국 패배하는 경기가 많았다.

고질적인 마운드 문제는 이번에도 LG의 발목을 제대로 붙잡았다. 먼저 남은 외국인 한 자리를 시즌 내내 결국 해결하지 못했다. 시즌 개막과 함께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한 외국인 투수 옥스프링이 결국 1군 마운드에 복귀하지 못하며 방출되었고, 그의 대체자 바우어는 기복이 심한 피칭으로 기대치에 비해 모자른 경기력을 보여주다 부상으로 역시 방출되었으며, 대체자로 데려온 존슨 역시 팀에 도움이 되질 못했다. 국내 선발진 조차도 다를 바가 없었는데, 수술 뒤 재활에 속도를 낸 박명환 역시 복귀와 부상 재발을 거듭했음에도 끝끝내 과거 두산 시절의 모습을 되찾지 못했다. 여기에 베테랑 최원호도 광주 원정에서의 무박 2일 경기 후 서울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황당한 부상을 당하며 이탈했으며, 2006년 이후 3년 만에 선발로 돌아온 정재복은 홈런공장장이 되면서 전혀 경쟁력이 없었다. 그나마 에이스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봉중근에 이어 2선발 역할을 했던 투수는 심수창이었는데 5월까지는 3점대 ERA에 5승을 거두며 괜찮았으나 6월 들어 부진에 빠지더니 7월 이후에는 심논개 사건 이전까지 심수창의 호투 여부와 관계없이 타선 지원도 따르지 않으면서 패전만 쌓이기 시작했다. 선발에 구멍이 발생하면서 당초 롱릴리프 역할이었던 김광수가 20번의 선발등판을 해야했고 대부분의 경기에서 상대 타자가 한 바퀴 돌면 얻어맞는 패턴을 반복했다. 방화신기로 유명한 불펜도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우규민은 시즌 초반에는 미스터 제로로 활약했으나 5월 이후에는 부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다가 마무리 자리를 이재영에게 넘겨주고 2군에 갔다가 돌아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허리통증으로 시즌 아웃되며 시즌 후 경찰청으로 입대했다. 타 팀에는 1이닝을 거뜬히 맡아주는 불펜투수들이 즐비했지만 LG는 1이닝은 커녕, 아웃카운트 하나도 제대로 막아줄 역할을 해줄 투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 때문에 고졸 2년차 정찬헌은 8월 중순 시즌 아웃되기 전까지 불펜으로만 55경기 76.1이닝을 던지면서 혹사를 당하고 말았고, 이는 허리 부상으로 이어져 그의 남은 선수 생명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되고 말았다. 결국 5월 초까지 LG 투수진이 정상화가 된 것은 단지 주전 포수인 김정민의 신들린 포수 리딩 덕분이었고, 김정민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이 되자마자 거짓말처럼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회귀하며 팀 순위와 같은 팀 ERA 7위(5.42)로 시즌을 마감했다.

거기에 그 어느 팀보다도 신진 세력들의 등장이 많이 필요했던 팀이 LG였으나 김재박 특유의 검증된 선수 선호 성향으로 인해 김재박 체제 내내 선수단의 개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년간 하위권에 머무르고도 선수단 변화의 폭은 적었다. 그저 다른 팀에서 FA 자격을 얻은 선수들(박명환, 정성훈, 이진영)이나 방출된 베테랑 선수들(오상민, 박종호)을 데려오는 수준이었다.

특히나 같은 시즌 KIA의 우승에 가장 크게 공헌한 것이 LG였다. 3위 두산은 13승 6패로 압도적인 우세로 2000년 이후 9년 만의 상대전적 우세를 점했고, 추격쥐 본능이 발동되어 SK의 19연승 기간에서 유일하게 무승부를 선사했으며, KIA에는 2승 1무 16패를 당해 승점자판기 노릇을 한 것도 모자라 MVP 선수를 내주고 사이버 투수를 데려오기도 했다.[29] 참고로 LG는 7위보다는 6위를 훨씬 많이 했는데 7G라는 별명이 생긴 것이 바로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2009 WBC 준우승 등의 대표팀의 선전 및 기존 인기팀이라고 할 수 있는 롯데 자이언츠KIA 타이거즈의 호성적이 겹쳐 야구팬이 대량 유입된 이 시즌에 시즌 중에 크게 미끄러지며 7위를 한 것이 매우 크게 작용했다.[30] 또한 그로 인해서 베이징 뉴비들에게 약팀으로 낙인 찍히는 바람에 외면받는 신세가 되었고, 같은 시기 포스트시즌에 꾸준히 진출하던 두산과 달리 향후 신규팬들의 유입에 크게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

이 외에도 심수창조인성은 1군 경기에서 충돌하는 심논개 사건으로 인해 당시 LG의 1군 선수단의 조직력이 모래알에 불과하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고, 2군에서도 서승화작은 이병규를 구타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 등, 선수단의 사건 사고 또한 터져 홍역을 겪기도 했다.

다만 늘 터질 듯 터지지 않았던 존재였던 박용택이 프로 데뷔 8년 만에 0.372의 고타율로 타격왕에 오르며 드디어 포텐을 만개한 모습을 보인 것은 팬들에게 한 가지 위안거리였다. 그러나 시즌 막바지 롯데 홍성흔과의 타격왕 경쟁 과정에서 보인 졸렬한 타율 관리로 인해 향후 박용택을 끝까지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생긴 것이 옥의 티.

결국 김재박 감독도 풀지 못하고 재임기간 동안 5-8-7의 실망스런 모습만 보여주다 3년 임기를 마쳤고 8888577에 버금가는 비밀번호인 6668587이 완성된다.

3.8. 2010년

김재박 감독의 뒤를 이어 두산 2군 감독 출신의 박종훈 감독이 취임했다. LG에서 타격코치를 역임한 바 있었고 현대와 SK 등을 거치며 무난한 코치 커리어를 이어오면서 두산 화수분 야구의 상징으로 꼽히던 인물이었다. LG 구단에서도 이례적으로 박종훈에게 5년 계약을 맺으며 신임하겠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표시했다. 그에게 주어진 과제는 가장 시급하다고 여겨진 유망주들의 발굴과 그동안 구단이 그토록 바라던 포스트시즌 진출이었기에 과연 두 가지 모두 이뤄낼 수 있을지 주목되었기에 그의 어깨가 더욱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시즌 전,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다시 LG로 리턴한 이병규에 더해 넥센에서부터 현금 트레이드로 이택근까지 영입하며 이른바 빅5를 구성. 기존 X-존과의 시너지를 기대하며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칼을 갈았다. 다만 이미 박용택, 이대형, 이진영이라는 수준급의 외야수들이 있었기에 이들을 어떻게 활용할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거리로 남았다. 그렇지만 좌타자들이 주축이 된 타선에서 우타자인 이택근의 합류로 짜임새가 강해질 것으로 생각했기에 대부분의 LG팬들 모두 기대했다. 그리하여 빅5 다섯명을 모두 가동하기 위해 외야에 3명을 쓰고 남은 2명을 지명타자와 1루수로 활용하게 되었다.[31]

개막전 대구에서 열린 삼성과의 개막전에서는 9회 2사에 오승환을 상대로 이진영의 동점 홈런에 이어 연장에서 박용근의 2타점 적시타로 순조롭게 시작했고, 4월 말까지 3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김없이 찾아온 DTD 정신으로 순식간에 승패마진을 많이도 깎아먹으며 6월까지 5위에 머물러 있었고, 7월 올스타 브레이크 전후로 4연패-5연패-5연패로 폭삭 내려앉으며 그대로 시즌 최종 성적 57승 5무 71패 승률 .429, 6위로 시즌을 마치게 되었다. 시즌 내내 단 한 번도 3연전 스윕승이 없었고, 디펜딩 챔피언 KIA가 16연패를 겪었는데도 그 KIA보다 낮은 순위로 시즌을 마쳤다.[32]

타선은 마침내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조인성에, 작은 이병규 또한 잠재력을 확인했고, 유망주 시절 오지환 또한 수비에서는 아직 부족함이 많지만 타격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가장 기대를 모은 빅5는 부상과 부진 등으로 시즌 중반까지 제대로 가동된 경기가 거의 없을 정도로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이택근은 타격 성적은 나쁘지 않았으나 시즌 중반 허리 부상으로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며 고작 91경기 출장에 그친 탓에 규정타석에 미달했으며, 그마저도 득점권 타율이 .241에 불과해 클러치 능력이 약해 팀의 패배에 기여한 적이 꽤나 많았으며, 결정적으로 시즌 후반 팀의 성적이 떨어진 이후 몰아친 탓에 이는 스탯관리를 한다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거기에다가 기존 주포지션인 중견수에는 이미 이대형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좌익수나 1루수를 봐야했는데 수비가 처참해서 지명타자로 주로 출전하며 기존에 세워둔 빅5 구성이 어그러지기도 했다. 지난해의 타격왕 박용택은 전반기 1할대의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면서 2군에 다녀오기도 하다가 후반기에 겨우 몰아쳐서 겨우 괜찮은 클래식 스탯을 만들어냈으며, 이병규는 4년 만에 돌아온 국내 무대에서 좀처럼 제 컨디션을 찾지 못해 wRC+가 평균인 100을 밑돌았으며, 타격 WAR도 겨우 1점대에 불과할 정도로 기대치를 한참 밑돌았다. 이대형도 66도루로 4년 연속 도루왕과 3년 연속 60도루를 기록하는 등의 주루 능력은 분명 좋았으나 타격에서는 역시나 별로 좋지 않았다. 그나마 이진영이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는 못했어도 타율 .331에 타격 WAR 3.64로 기대치에 조금은 도달했다. 이 외에도 저번 시즌 FA로 영입되어 기대치가 있던 정성훈 또한 부진했으며, 유망주인 박경수, 박병호는 여전히 성장세가 정체된 모습이었다. 결과적으로 타선은 위력이 있었지만 기복이 심했고 무엇보다도 좌타자들이 많은 특성상 좌완 상대로 너무 약해 상대팀들은 좌완투수들[33]을 표적등판을 시켜가면서까지 LG를 공략했다.

투수진은 여전히 심각해 봉중근을 제외하면 선발진은 돌아가는 꼴을 보질 못했다. 무엇보다도 외국인 투수 중 메이저리그 경력이 화려했던 곤잘레스를 1선발로 기대했지만 1승도 없이 9경기 6패 ERA 7.68의 최악의 기록만을 남기고 방출되었고, 그의 대체자인 좌완 파이어볼러 더마트레는 구속만 빠를 뿐 가벼운 공과 날리는 제구로 ERA 8.22로 난타당하며 일찌감치 전력에서 제외되었다. 2007년의 10승으로 제 몫을 해주고 난 뒤 지난 2년간 부상과 재활로 먹튀의 길을 걸었던 박명환은 4승을 기록하기는 했지만 기량이 떨어진 가운데 어김없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이해에는 타자 전향 후 투수로 되돌아간 김광삼이 데뷔 첫 완봉승도 한 차례 기록하는 등 사실상 2선발 노릇을 했지만 다른 선발후보군 심수창, 서승화, 한희, 이범준, 강철민, 이형종 등은 모조리 실패했다. 다만 SK와의 4대3 트레이드로 영입한 사이드암 박현준과 고졸 2년차 최성민 정도만 시즌 막판에 가능성을 남긴 정도였다. 그리고 에이스 봉중근조차도 10승은 기록했지만 지난 3년간 누적된 피로로 인해 이전 2년의 구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불펜진 또한 그 페타지니 대신 마무리를 기대하고 데려온 오카모토가 시즌 초반에는 기존 LG 마무리들과는 차원이 다른 탄탄한 뒷문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그러나 그는 구위로 승부하던 유형이 아니었기에 시즌을 치르면 치를수록 점점 폼이 하락하며 시즌 후반기에는 마무리 자리에서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이외 불펜진도 김광수가 7~8월에 예상치 못한 호투를 한 것을 제외하면 전혀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현대에서 방출된 뒤 영입한 이상열과 지난해 5년 재활에서 돌아온 이동현, 그리고 베테랑 좌완 오상민, 젊은 김기표가 있었지만 선발투수가 이닝을 많이 책임져주지 못하는 탓에 이들에게 과부하가 자주 걸렸다. 신인 신정락은 시즌 도중 부상에 발목잡히며 일찌감치 시즌을 마감했다.

여러 차례 사건사고로도 시끄러웠다. LG의 레전드 이상훈은 LG 트윈스 공식 홈페이지 '쌍둥이 마당'에 '이 글을 단장 이하 구단에게 바칩니다'라는 글을 올려 파문을 일으킨 것을 시작으로 유망주 투수 이형종도 자신의 미니홈피에 박종훈 감독을 겨냥한 말을 올려 논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재활군에 있던 와중에 "힘들어 못해먹겠다"는 글을 올리고 잠적해 버리며 임의탈퇴 공시되었다. 또한 시즌 초반 2군행을 통보 받은 봉중근의 아내가 미니홈피에 "남편이 막말과 함께 2군행을 통보받았다"고 썼다가 삭제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서승화도 전반기를 마치는 시점에서 미니홈피에 "야구를 그만두겠다"라는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켜 2군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2010년 LG는 최종 성적 57승 5무 71패 승률 .429로 또 6위에 그쳐 한국프로야구 최초 8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달성하고야 말았다. 종전 기록은 1982~1988년 삼미-청보-태평양2001~2007년 롯데의 7년이다.

시즌 후 구단에서는 2010년 초부터 '신연봉제'라는 파격적인 연봉고과 시스템을 도입해 개인성적 위주로 연봉고과를 산정했던 기존의 시스템을 바꿔 승리공헌도를 측정하여 연봉의 50%를 반영할 것을 예고했다. 그 결과 박명환은 5억 원에서 90% 삭감된 5천만 원, 2010년 0승을 기록한 심수창은 3천 만원으로 삭감되었다. 물론 수혜자도 있었는데 프로 2년차였던 오지환의 연봉은 기존 2,400만원에서 1억 200만원으로 수직상승했고 작은 이병규도 2,800만원에서 1억 원으로 올라 억대 연봉자가 되었다.

3.9.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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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2010년까지 유지하던 X-존이 이 시즌을 앞두고 사라졌다.

2011년에는 주키치리즈라는 걸출한 외국인 투수들을 뽑고, 박현준의 포텐이 터짐으로써 선발투수가 훨씬 안정화되었고, 타선 또한 이병규박용택이 맹타를 휘두르는 등, 투수진과 함께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불펜진은 저번 시즌의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마무리로 낙점찍은 김광수가 여지없이 불을 지르며 골머리를 앓긴 했지만 그래도 시즌 초에 공동 1위까지 올라가기도 할 정도로 승승장구했고, 그 기세를 5월까지 이어가 2위와 3위를 왔다갔다 하면서 30승 선착과 함께 포스트시즌 안정권으로 접어드는가 했다. 실제로 당시 주장이었던 박용택이 인터뷰에서 유광잠바를 준비하라는 말을 하기도 했으며, 팬들도 이제 올해는 다르다며 9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34]

그러나 6월이 되면서 여러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지기 시작하자 박종훈 감독의 이해할 수 없는 투수진 운용이 시작되어[35] 투수진이 퍼지기 시작해 루징 시리즈만 4번을 하고 신인 투수 임찬규가 혹사를 견디지 못하고 연속 밀어내기로 무너지는 등의 큰 부진을 겪으며 5위와 승차가 3경기차의 4위로 포스트시즌 진출권에 간신히 메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결국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 3시간 전에 박병호, 심수창넥센 히어로즈로 보내고 송신영김성현을 받는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36] 그리고 8월 3일 SK전, 그렇게 트레이드로 데려온 마무리 송신영이호준에게 역전 끝내기 홈런을 맞으면서 그날 경기를 치르지 않은 롯데에게 4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결국 이후 이렇다할 반등 없이 9월 24일 SK에 패배하면서 트래직 넘버 소멸. 9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가 확정되었다.

이후 최종 순위는 59승 2무 72패 승률 .450으로 한화와 공동 6위로 마감. 666858766 비밀번호 완성. 박종훈 감독도 최종전을 마지막으로 사임하면서 LG의 흑역사 감독 계보를 잇게 되었다.

참고로 9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실패는 한국프로야구 최초. 30승 선착하고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도 한국프로야구 최초[37]. 공동 1위 하다가 7위로 추락한 것도 한국프로야구 최초.[38] 또한 최초로 10승 투수 3명 보유하고도 7위로 시즌을 마감할 뻔 하기도 했는데 다행히 그건 면했다. 하지만 10승 투수 3명 보유하고도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는 2002년 두산 이후 9년 만의 일이자 한국프로야구 역대 11번째 일이다.

타자쪽에서는 이병규가 저번 시즌의 부진에서 벗어나 맹타를 휘두르며 타선을 책임졌고, 정성훈 또한 부진했던 저번 시즌에 비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며, 저번 시즌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자인 조인성 또한 괜찮은 타격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장타자 전환을 시도한 박용택이 기대치를 밑돌았고, 이택근은 저번 시즌에 비해 잔부상이 잦고 클러치 상황에서 약해 스탯관리를 한다는 비판을 들었으며, 이진영 또한 잔부상으로 인해 wRC+ 100을 넘기지 못했다. 게다가 이대형은 부상 이후로 커리어가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고, 저번 시즌의 모습으로 기대감이 컸던 오지환도 여전히 수비 실책이 잦은데 더해 타격 성적이 떨어졌다. 결국 타선에서 줄부상이 이어지며 그 자리들을 서동욱이 겨우겨우 메웠음에도 구멍을 끝끝내 다 메우질 못했고, 팀은 서서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선발투수에서도 주키치리즈라는 훌륭한 외국인 투수들을 뽑으며 단숨에 투수력이 강화되었고, 박현준 또한 13승을 올리며 향후 팀의 토종 1선발을 알리는 호투를 연일 선보였다. 그러나 지난 3년간 팀의 에이스를 도맡았던 봉중근이 이번 시즌에서는 그동안 많은 공을 던진 여파가 제대로 터지는 바람에 부상으로 제대로 공을 던지질 못했으며, 남은 선발 2자리를 김광삼, 심수창이 메워보려 했으나 모두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불펜은 저번 시즌과 다를 바 없는 최악의 모습이었다. 먼저 저번 시즌 7~8월의 호투로 이번 시즌 마무리로 낙점된 김광수가 시즌 초반부터 불을 지르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신인 임찬규가 그 자리를 이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6월부터 박종훈 감독의 조급증으로 이상열, 임찬규, 김선규와 같은 선수들을 마구잡이로 굴려버리기 시작하며 그 선수들이 서서히 퍼지기 시작하며 팀의 DTD는 가속화되었다. 결국 다급해진 LG는 급하게 트레이드 마감일에 박병호심수창을 내주고 송신영김성현을 데려오며 투수 보강을 했다. 실제로 송신영은 마무리 자리에서 확실히 안정적인 모습으로 뒷문을 막아주었고, 김성현은 선발 유망주인 만큼 앞으로가 기대되는 피칭을 하였다. 하지만 이 둘 만으로는 팀의 투수력을 커버하기에는 터무니 없었고 결국 팀은 완전히 폭삭 내려앉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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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D" LG 가을야구는 내년입니까?

결국 이번 시즌에도 포스트시즌 진출이 멀어지게 되자 분노한 LG 팬들은 구단 버스를 가로막고 청문회를 열기까지 했으며, 시즌 종료 이후에는 이광용의 옐로우카드에서 당시 LG 담당 기자인 이재국 기자가 수뇌부부터 프런트까지 그동안의 모든 치부들을 까발리는 등 LG팬들을 실망시키는 소식들이 연이어 쏟아지고 있었다. 해당 시즌 종료 이후 LG는 다른 하위권팀들인 넥센과 한화에 비해 그 어떠한 희망거리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수뇌부부터 프런트, 감독, 코칭스태프, 선수들까지 모두 승리에 대한 갈망 없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9년간 한결같이 LG의 포스트시즌을 위해 믿고 응원해준 팬들을 절망하게 만들며 이제는 해체 말고는 답이 없다라는 말까지 나와버린 것이 LG의 현실이었다.

시즌 종료 이후 박종훈 감독의 후임 감독으로 한때 SK에서 경질을 당한 직후인 김성근이 LG로 돌아올거라는 이야기가 돌았으나 헛소문에 불과했고, 결국 내부 승격으로 김기태 수석코치가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되었다.

2011년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은 송신영, 이택근, 조인성이 각각 한화, 넥센, SK로 이적한 데다가[39] 김성현박현준2012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으로 인해 영구제명되면서, LG는 국내 에이스, 선발 유망주, 마무리 투수, 주전 포수, 주전급 타자 다섯 명이 한꺼번에 빠지는 심각한 전력누수를 겪으며 다음 시즌도 전망은 어두웠다.

3.10. 2012년

앞서 언급한 내부 FA 3명을 모두 놓친 것에 더해 2012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으로 유망한 투수 두 명이 영구제명되어 팀에 심각한 전력누수가 생겨버렸기에 LG 팬들 사이에서는 10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졌다. 시즌이 시작하기 전에는 아예 압도적인 꼴찌 후보로까지 거론되기도 했다.

그나마 신임 감독 김기태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이번 시즌부터 마무리로 전향한 봉중근이 뒷문을 탄탄하게 막아줘 시즌 초 5할 승률을 계속 수성하기도 하며 정말로 이제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나 했다. 하지만 역시나, 6월 22일부터 롯데와 KIA에게 연속 스윕패를 당하면서 5할 승률마저 무너지고 말았고, 그 과정에서 블론세이브를 기록하고 소화전을 내려치며 자책한 봉중근이 그대로 손등뼈 골절상을 당해 전력에서 이탈하며 그 결과 6월 29일에는 7위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이 연속 스윕패가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셈. 그래도 7월까지는 반등할 가능성이 있었으나, 기회를 좀처럼 잡지 못하고 계속 하위권을 맴돌았다.

8월 들어 계속 하락세를 유지하더니, 9월 초에 이르러 당시 4위인 두산과 게임차가 벌어지면서 대부분의 팬들은 비밀번호 갱신이 사실상 확정되었다고 낙담했다. 심지어, 9월 중순에는 당시 꼴지인 한화와의 게임차가 2.5게임까지 줄어들면서 8을 붙이는 거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9월 24일에 트래직 넘버가 소멸했다.[40] 이날 LG는 SK를 상대로 승리했으나 두산이 한화에 승리하는 순간 LG의 트래직 넘버는 0이 되었다. 이날 기준으로 한화와는 3게임 차이밖에 나지 않아 꼴찌로 떨어질 걱정까지 했지만, 한화의 탈꼴찌 트래직 넘버가 10월 1일 소멸함에 따라 일단 8이 붙는 것은 모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역시 6위 넥센을 뒤집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어 비밀번호의 10번째 자리는 7로 확정되었다. 6668587667 완성. 결국 전력 출혈로 생긴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면서 최종 성적 57승 4무 72패 승률 .442로 이번에도 여지없이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로 시즌을 마감했다.

타선에서는 박용택이 장타자 전환을 포기하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자 폼이 이전 만큼 살아나며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정성훈 또한 슬래시 라인을 3-4-5에 가깝게 찍을 정도의 좋은 비율을 기록하며 그 덕분에 wRC+는 178.5가 나올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거둬 박용택과 함께 팀의 타선을 이끌었다. 이 외에도 작은 이병규 또한 적은 경기수에 비해 정성훈과 비슷한 wRC+를 기록하는 좋은 타격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외에 선수들은 기대치에 미치지 않았다. 이진영은 뭔가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고, 이병규는 이제 에이징 커브가 오나 싶은 듯이 파워가 감소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심각했던 포지션은 포수. 조인성이 SK로 이적을 해버리는 바람에 새로운 포수들을 써야만 했고, 그 때문에 심광호, 윤요섭, 김태군, 조윤준, 유강남과 같은 새로운 선수들을 써봤으나 포수라는 포지션 특성상 단번에 자리를 잡는 경우는 없었다. 이 외에도 위에 언급한 주축 선수들 모두 아무리 젊어봐야 30대 중반인 베테량들이며, 40대를 넘긴 선수도 있었기에 세대 교체는 시급해보였다. 하지만 정의윤, 오지환과 같은 선수들은 여전히 부족해보였으며, 위에 언급한 작은 이병규 또한 나이가 30대다.

투수에서는 주키치리즈가 저번 시즌의 모습과 비슷하게 잘해줬고, 불펜에서도 마무리 전환에 성공한 봉중근과 불펜의 핵심으로 거듭난 유원상, 그 외에도 신재웅, 임정우, 최성훈과 같은 새로운 인물들을 발굴해내는데 성공하며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다만 작년 불펜 핵심인 임찬규한희를 마구잡이로 굴린 대가가 참혹해 이번 시즌 이렇다할 활약이 없었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유원상, 이동현, 우규민을 똑같이 마구잡이로 굴리는 짓을 했다.

그리고 해당 시즌 가장 좋은 점을 꼽자면 팀 분위기를 개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야구장 안팍에서 선수들이 직전 시즌 보여준 무기력함과는 다르게 조금이나마 더 잘해보자라는 분위기를 서서히 만들어나갔고, 이는 다음 시즌에서 그 분위기가 제대로 불타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결국 최종 순위 7위로 LG 트윈스는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10자릿수 비밀번호라는 불명예스러운 대기록을 수립하였다.

4. 2013년: 비밀번호 탈출

4.1. 정규시즌

2013년, LG는 이번 시즌에도 신생팀 NC와 암흑기의 한화와 함께 3약을 구성하며 7위로 시즌을 마무리할거라는 예측이 많았었다.

개막 이후 4월까지는 5할 승률 및 4위권 언저리에서 버티고 있었으나, 5월이 시작하자마자 역시나 부진한 성적으로 일찌감치 비밀번호를 한 자리 더 늘리는 것인가 하는 여론이 팬들 및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드리웠다. 그러나 5월 말 광주 원정을 스윕한 이후 6월 성적 16승 5패 승률 .762라는 엄청난 성적으로 단숨에 3위까지 치고 올라갔고, 7월에도 그 기세가 이어져 무려 2위까지 올라가게 되는 대반전을 이뤄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운명의 8월, 무려 18년 만의 6할 승률과 더불어 선두 삼성을 0~2게임 차로 바짝 쫓으며 선두 자리를 노리기 시작했고, 8월 20일에는 넥센과의 경기에서 승리하고 기존 1위였던 삼성이 SK에게 패배했다. 그리고 삼성을 누르고 단독 1위를 탈환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다음 날 8월 21일에 넥센에 패하고 삼성은 SK에 승리하여 하루 만에 2위로 떨어졌다.

이후 8월 23일에 SK를 상대로 역전승을 거두며 시즌 60승 고지에 선착했다. 그리고 9월 4일 SK전에서 작은 이병규의 끝내기로 승리하고 삼성이 KIA에 2연속 고춧가루 세례를 당하며 15일만에 다시 1위에 등극했고, 이제 머지않아 이 지긋지긋한 비밀번호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이 더욱더 고조되고 있었다.

9월 18일 SK를 이기면서 SK를 6위로 다시 끌어내린 동시에 LG의 4강 매직넘버가 2가 되어서, 포스트시즌에 한걸음 더 다가서고 6668587667을 끝내버릴 기회를 잡게 되었다.

9월 20일 두산에게 패배해서 다시 선두 자리를 삼성에게 내주게 되었지만, 이틀 뒤인 9월 22일, NC를 이기고 넥센이 5위 롯데에 승리하면서 4강 매직넘버가 전부 소멸되었고,[41] 11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이 확정되면서 10년 동안의 기나긴 암흑기가 끝이 났다.

기나긴 비밀번호를 끊는데에는 먼저 팀의 베테량 선수들의 공이 컸다. 먼저 주장 이병규는 역대 최고령 타격왕을 거머쥐며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박용택 또한 작년에 이어 여전히 좋은 활약으로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이 외에도 정성훈이진영 또한 베테량으로써 팀에 힘을 보태주었고, SK에서 돌아온 권용관은 8월 10일 두산전 결승 솔로 홈런과 같이 후반기에 예상치 못한 활약을 해줬으며, 트레이드로 삼성에서 넘어온 현재윤손주인과 같은 선수들도 팀에 잘 녹아들었다. 베테량 선수들의 활약 덕분에 이 외에 김용의, 문선재, 정의윤, 오지환과 같은 선수들도 팀에 보탬이 되어 LG의 상승세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렇게 해서 LG는 팀 내에서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장타력 부재에도 불구하고 베테량 선수들의 활약 등으로 과거의 신바람 야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다.

무엇보다도 이 시즌에 포스트시즌 진출을 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거의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회생 불가 상태에 놓여 답이 없었던 투수진을 기어코 재건에 성공해냈다는 점이었다. 2년 전 팀의 토종 에이스 투수였던 박현준과 트레이드로 데려온 선발 유망주 김성현모두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선발진에서는 리즈가 굳건히 선발 자리를 잡아주었고, 선발 전환에 성공한 우규민신정락,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를 통해 5월부터 1군에 합류해 승률왕을 차지한 류제국이 선발진에 안착하면서 주키치가 부진함에도 불구하고 팀이 안정적인 4선발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불펜진에서도 1997년 이상훈의 37세이브를 뛰어넘는 MBC-LG 프랜차이즈 역사상 단일 시즌 최다 세이브인 38세이브를 기록한 봉중근을 필두로, 이상열, 이동현, 류택현과 같은 베테량 선수들이 중심축을 잡아주며 팀 평균자책점 1위를 거두는, 과거 LG를 기억하는 팬들 입장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최종전이 열리는 10월 5일까지 순위가 확정되지 않아 넥센, 두산과 2위 자리를 두고 피 말리는 경쟁을 하게 되었고, 최종전 상대는 공교롭게도 2위 경쟁팀인 두산이었다. 같은 시각 대전에서 진행중인 넥센과 한화와의 경기 결과에 따라[42] 2위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최종전에서 2:5로 승리하고 같은 시각 한화가 넥센을 2:1로 잡으며 시즌 최종 성적 74승 54패 승률 .578로 정규시즌 2위를 확정지으며 무려 16년 만에[43] 플레이오프에 직행하였다!

4.2. 플레이오프

그렇게 해서 2013년 10월 16일, 2002년 11월 10일 이후로 멈춰있었던 LG 트윈스의 포스트시즌이 다시 가동되기 시작했다. 상대팀은 바로 최대 라이벌팀 두산이었다.

당초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최종전인 5차전까지 가서 리버스 스윕으로 올라왔고, 특히 연장전만 3번을 한 끝에 올라왔기에 체력적인 면에서 LG의 우세로 점치며 전문가들은 대부분 LG가 11년 만에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뤄낼 거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LG는 1차전에서부터 1회말 작은 이병규의 투런 홈런을 제외하면 어떠한 득점도 올리지 못하며 타격 부진을 겪었고, 수비에서도 포스트시즌 경험이 있어 중요하다 생각되었던 정성훈이 1회와 7회 두 번이나 실책을 저질렀으며 특히 7회는 결승 득점이 되었을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그리고 9회에도 한 점을 더 내준 결과, 4:2로 패배하며 가장 중요하다 여겨진 1차전을 패배하게 되었다.

하지만 2차전, 리즈8이닝 무실점 10K라는 역투로 2회말에 낸 2점을 지켜내며 0:2로 승리, 시리즈를 1승 1패로 되돌려놓았고 거기에다가 2차전 투수를 단 두명 밖에 쓰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컸기에 3,4차전 불펜을 쏟아붓는다면 시리즈를 뒤집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3차전이 시작되자마자 그 희망은 부서지고 말았다. 이 날 LG의 실책 갯수는 무려 4개였고, 실책성 플레이와 주루방해까지 겹치면서 LG의 수비는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다. 그나마 9회초에 동점 찬스를 두 번이나 맞이했지만 두 번 모두 최재훈이 온 몸으로 막아내는 투혼으로 홈에서 아웃되며 동점을 만들지 못한 채 게임이 끝나며 4:5로 패배. 다시 1승 2패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4차전 승리가 너무나도 절실해진 LG. 하지만 4차전에서도 2회말 또 김용의의 실책으로 점수를 내주며 끌려가며 남은 포스트시즌 희망이 꺼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7회초 박용택이 좌중간을 꿰뚫는 적시 2루타로 동점을 만들며 다시 희망의 불씨를 살려나갔다. 그러나 기껏 살린 희망의 불씨는 7회말에 이종욱의 희생플라이로 점수를 내주며 다시 꺼져갔고, 승리가 급해 8회말 마무리 봉중근을 투입했으나 결과는 대타 최준석의 솔로 홈런과 오재일의 큰 타구를 박용택의 발을 맞고 굴러가는 바람에 타자주자가 홈에 들어오는 등, 1:5로 완전히 경기가 기우는 대참사가 터지며 희망의 불씨는 완전히 꺼지고 말았다. 결국 4차전도 1:5로 패배, 시리즈 스코어 1승 3패로 두산에게 패배하며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다.

플레이오프에서 패배한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포스트시즌 경험이 부족했다는 점이었다. 자그마치 10년이라는 세월을 포스트시즌 없이 보낸 세월은 그대로 플레이오프에서 여파가 여실히 드러나고 말았고, LG는 플레이오프 4경기 동안 8실책이나 하며 자멸하고 말았다.
파일:LG 2013 신문광고.jpg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이라는 길고 긴 암흑기를 정규시즌 2위라는 기대를 뛰어넘는 호성적으로 끊어내어 11년 만에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은 것은 큰 성과이며 이는 향후 LG가 강팀으로 가는 발판을 마련한 시즌이었기에 더욱 의미가 컸다.

5. 비밀번호 탈출 이후

비밀번호를 탈출한 2013년 이후 LG는 12년 동안 494684443131의 최종 순위를 기록, 8번의 포스트시즌을 경험함으로써, 포스트시즌 경험치를 풍부하게 쌓은 상위권의 팀이 되는 데 성공하였으며, 이때 쌓은 경험치는 오랜 한을 푸는 밑거름이 되었다.

다만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2014년과 2016년은 4위라는 순위와는 별개로 승률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2014년에는 0.492의 승률로 5할이 되지 않았음에도 9팀 중 4위를 기록하였고, 2016년에는 딱 5할의 승률로 10팀 중 4위를 기록하였다. 2013년 두산이 0.568의 승률로 9팀 중 4위, 2012년 롯데가 .511의 승률로 8팀 중 4위를 한 것을 생각해보면 2014년과 2016년 LG의 정규시즌 4위에는 운도 분명 따랐음도 부정할 수 없다.

실제로 2014년과 2016년 모두 1,2위가 압도적으로 치고 나갔으며[44], 그 때문에 중위권의 승률 디플레이션이 일어나서 중위권끼리는 서로 물고 물리며, 중위권 중 간발의 차이로 높은 승률을 기록한 LG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중위권에서 혼전이 일어났을 때 간발의 차이로 이긴 것이 실력이라면 실력이라 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최소 5할 3푼정도의 승률로 6위와의 충분한 거리를 벌리며 안정적으로 가을야구를 가는 것이 훨씬 더 강한 팀이라는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물론 그 이후 두 번 모두 업셋을 해서 플레이오프까지 오른 걸 보면 운이 아니라 실력이라는 것이 증명이 되었다.

물론 그 이후 2017년엔 막판에 DTD를 하면서, 2018년엔 두산전 1승 15패란 불명예를 만들며 DTD를 했지만, 그 이후 2019년부터 2024년까지 6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을 하며 강팀 반열에 올라섰고, 2023년에는 통합 우승을 함으로써 10년 간의 암흑기는 어두운 과거로만 기억이 되게 되었고 2019년부터 6년 동안 가장 높은 승률을 기록한 2020년대 최고의 강팀으로 자리잡았다.

5.1. 2014년

전년도 정규시즌 2위라는 호성적을 바탕으로 겨울 FA 시장에서도 거물급 매물의 영입은 없었지만 온전한 전력 보전에는 성공했기 때문에, 전문가들이나 야구 팬들이나 2014년의 LG를 더욱 기대하는 사람이 많았다.[45]

하지만 스프링캠프 외국인 선수 인선 과정에서 다소 삐걱하는 등 복선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시즌이 개막하자마자 LG는 끝없는 패배로 순식간에 최하위로 굴러떨어졌다. 전년도 LG의 돌풍의 주역이었던 김기태 감독은 4월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무책임하게 자진 사퇴를 해버렸고, 선수단은 사령탑 없이 5월 초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이 해 LG는 아직 시즌 초임에도 불구하고 올해 LG는 끝났다는 소리와 함께 희망 따윈 존재하지 않는 줄로 알았다.

그런 와중 5월 신임 감독으로 양상문이 부임된다는 소식이 밝혀지고, LG는 조금씩 달라졌다. 부임 초창기에는 여전히 다소 삐걱거리며 -16이라는 승패마진으로 포스트시즌은 고사하고 꼴지 탈출부터 해야 하는 처지였지만, 그 이후부터 거의 3주 간격으로 순위를 한 계단씩 끌어올리며[46] 8월 21일 결국 4위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 이후 롯데, 두산, SK의 맹렬한 추격을 받았지만 4위 자리를 한번도 내주지 않았고, 여기에 10월 9일 KIA전에서는 0:6을 7:6으로 뒤집는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기어코 -16의 승패마진을 0까지 맞췄었다. 비록 연패로 인해 5할 승률을 사수하지 못했고 최종전까지 4위 싸움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LG는 롯데에게 패배했지만 같은 시각 넥센이 같은 4위 경쟁팀인 SK를 잡아내면서 최종 성적 62승 2무 64패 승률 .492로 SK를 단 1게임차 차이로 최종 순위 4위를 확정지어 어렵게 2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권을 받아내는데 성공한다.[47]

이 해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비밀번호 탈출 이후 다시금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기록을 쌓고 있는 2018년 이후 롯데나 2019년 이후의 한화의 행보를 LG가 먼저 했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즌은 투수, 특히 불펜진이 철벽이 되었던 것이 포스트시즌 진출에 가장 큰 공을 세웠다. 확실히 저번 시즌 불펜도 좋긴 했지만 류택현, 이상열, 이동현과 같은 베테량 선수들이 주축이었기 때문에 개편이 절실했었다. 그런데 정찬헌, 윤지웅, 임정우와 같은 신진 세력들이 기존 베테량 선수들을 대체하는 데 성공했고, 결정적으로 신재웅의 불펜 전환이 대성공을 거두며 기존 불펜들의 부담을 덜어주는데 성공했고, 마무리 봉중근도 안정적인 마무리로 뒷문을 막아주며 LG 불펜진을 강력하게 만들었다.

타자쪽에서는 포수에서는 최경철이 클러치 상황에서의 놀라운 집중력과 많은 수비 이닝을 소화했음에도 무실책으로 완벽한 수비능력을 보여주며 스탑갭 역할을 해줄 적임자를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또한 작은 이병규의 포텐이 완전히 터지며 4번타자 역할을 시즌 내내 소화해주는 등의 팀의 중심 타선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그 이외에 타자 유망주들은 여전히 좋지 않았는데, 정의윤의 성장세는 나이가 서른이 다되어가는데도 정체되었으며, 오지환도 타격에서는 여전히 부족했다. 결국 올 시즌 모습을 보인 채은성최승준과 같은 유망주들의 성장이 중요해졌고, 또한 베테량 선수들인 이진영정성훈의 의존도는 여전히 심각했기에 이들을 대체할 선수들을 찾는 것이 LG의 앞으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5.1.1. 준플레이오프

10월 17일 최종전 이후 이틀 뒤 곧바로 준플레이오프가 진행되었기에 서울로 돌아가 휴식하지도 못한 채 창원에서 NC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1차전에서부터 이재학웨버를 탈탈 털어버리며 1회초에만 6점을 냈고, 이후 선발 류제국이 5회에 헤드샷으로 퇴장을 당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분위기를 내어주지 않고 이후 8회초에도 5점을 내며 최종 스코어 13:4로 1차전을 가져가는데 성공했다.

2차전은 이틀 연속으로 우천 취소가 되며 10월 20일에 거행될 경기가 10월 22일에 경기가 치뤄지게 되었다. 2차전에서는 9회까지 3:2로 팽팽하게 흘러가다가 9회초 작은 이병규의 높게 뜬 팝플라이를 박민우놓쳐버리며 그 틈에 3루까지 뛰었던 '1루 주자' 문선재가 홈으로 들어오는[48] 행운이 겹치며 추가점을 내는데 성공했고, 결국 4:2로 승리하며 원정에서 2승을 선점한 채 잠실로 향하게 되었다.

홈에서 맞이한 3차전에서는 1회초에 2실점을 하면서 시작했다. 그러나 3회말과 4회말에 희생플라이 두 번으로 동점을 만들며 분위기를 가져가나 했으나 곧바로 6회초 이호준의 솔로 홈런과 8회초 김태군의 적시타로 다시 리드를 내주게 되었다. 8회초 1사 2,3루 기회에서 대타로 이병규를 내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손민한의 폭투로 한 점 차까지 따라잡았다. 여기서 동점까지 갈 수 있었지만 그러질 못했고, 9회에도 득점 찬스를 살리지 못하며 4:3으로 패배. 4차전으로 가게 되었다.[49]

4차전에서는 초반 2회말 찬스를 잡지 못하며 분위기를 내어주나 했으나 3회말부터 득점을 쏟아부으며 7회말 6득점을 포함, 도합 11득점으로 완전히 밀어버리며 최종 스코어 3:11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렇게 해서 시리즈 스코어 3승 1패로 NC를 제압하고 2위 넥센이 기다리고 있는 플레이오프로 향했다.

결과적으로 작년 플레이오프에서의 약간의 경험은 이제 막 1군 진입 2년차로 창단 이후 첫번째 포스트시즌을 경험한 NC와의 차이를 만들어냈고, 결국 준플레이오프 시리즈 승리로 이어지며 2002년 플레이오프 이후 12년 만에 포스트시즌 시리즈 승리와 함께 역대 최초 5할 미만의 승률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5.1.2. 플레이오프

준플레이오프 1차전과 2차전 사이에 이틀 연속으로 우천 취소가 되는 바람에 4차전 승리 이후 휴식일이 하루 밖에 주어지지 않아 매우 불리한 상태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당시 넥벤저스라 불리우며 삼성과 우승 경쟁을 한 넥센을 만나게 되었다.

1차전은 예상 외로 대등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4회까지 스나이더의 솔로 홈런을 포함해서 3:1로 앞서나가는 등의 반전을 만드는 듯 보였으나, 앞선 준플레이오프에서 필승조의 소모가 영향을 미치는 바람에 6회말 윤석민의 역전 쓰리런으로 경기의 분위기가 넘어가게 되었고, 이후 별다른 반전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3:6으로 1차전을 패배하게 되었다.

2차전에서는 선발투수 신정락7이닝 무실점 10K라는 호투로 강력하기로 유명한 넥센 타선을 완전히 틀어막는데 성공했고, 타선 또한 밴헤켄의 호투로 7회까지 2득점에 그치며 팽팽한 승부를 이어나갔으나 밴헤켄이 내려간 8회초 6득점을 통해 팽팽했던 분위기를 완전히 깨뜨려 최종 스코어 9:2로 승리해 1승 1패로 균형을 맞추고 잠실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LG는 정규시즌 최종전까지 이어진 4강 싸움과 포스트시즌 6경기에서 모든 힘을 모조리 쏟아부었던 나머지, 잠실에 와서는 모든 힘이 방전되어 투타 모두 어긋난 경기력을 보여주고 말았다. 선발 오재영을 전혀 공략하지 못했고, 그사이 투수들은 5회 4득점을 포함해 벌써 5:0으로 기울어버리며 최종 스코어 6:2로 패배. 1패만 더 하면은 시즌이 끝나게 된다.

그렇게 맞이한 4차전, 1회초 2실점을 하며 끌려간 LG는 이후 3회말과 4회말에 정성훈의 2루타와 이병규의 희생플라이로 동점을 만들며 다시 분위기를 가져오려 하지만 김민성의 쓰리런을 시작으로 넥센 타선의 맹공격을 버티지 못한 채 끝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최종 스코어는 12:2. 결국 시리즈 스코어 1승 3패로 이번 시즌도 플레이오프에서 시즌을 마무리하게 되었다.[50]

5.2. 2015년

감동의 2014년이 끝났고 2년 연속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지만 그 이면에는 차기 시즌을 위한 선택의 기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더 높은 성적을 위해 올라갈지, 아니면 노쇠화된 팀을 바로 잡는 리빌딩을 선택할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 해의 LG는 그렇게 높은 평을 받지는 못했다. 게다가 kt의 1군 합류로 10구단 체제가 되어 144경기를 치르는 혹독한 일정이 되면서 베테랑 의존도가 높은 LG에 대한 전망은 좋지 않았다.

그리고 시즌이 시작하자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그동안 팀을 지탱해준 이진영, 이병규, 박용택, 봉중근 등이 줄줄이 부상 및 부진하는 모습을 보이고, 류제국우규민도 시즌 전 부상 치료를 위해 팀 전열에서 이탈한 것. 또한 지난해 4번타자였던 작은 이병규가 담 증세 여파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고, 외국인 선수는 소사가 에이스 노릇을 하며 중심을 잡아줬지만 한나한은 부상에 시달려 결국 시즌 중에 웨이버 공시되었고, 탱킹팀 휴스턴 10승 경력의 루카스는 시즌 초 구위는 뛰어나나 제구와 멘탈이 좋지 않아 팀의 골칫거리는 한둘이 아니었다. LG는 개막부터 4월까지는 5할 승률을 유지하며 근근히 버텼지만 5월이 시작하자마자 내리 7연패를 기록하며 결국 팀은 강제적으로 리빌딩에 나섰다.

하지만 그 과정도 마냥 쉽지는 않았다. LG는 이미 10년이나 지속된 암흑기를 탈출한지 얼마 안된 상태라 여전히 팜 시스템은 박살이 나있었기 때문에 리빌딩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여름을 거치면서 양석환, 유강남, 서상우, 윤지웅, 임정우, 오지환과 같은 기존 어린 선수들과 트레이드로 영입한 진해수임훈 등이 확실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대체 외국인 타자로 데려온 히메네스도 평균 이상의 활약을 보이며 비록 최종 성적 64승 2무 78패 승률 .451, 9위로 MBC-LG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저 순위를 기록하는 굴욕적인 시즌을 맞이해야 했지만 팀이 꽤 짜임새가 있어지며 리빌딩에 대한 조그마한 희망은 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시즌 후 열린 2차 드래프트에서 주장이었던 베테랑 이진영을 kt에 내주며 이별을 고하고 이병규를 다음해 팀 구상에서 배제하며 팀의 리빌딩 기조를 확실히 했다. 그리고 다음 해 마무리 투수로 임정우를 낙점했다.

5.3. 2016년

이미 전년도에 리빌딩을 선언한 팀 사정상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LG가 높은 순위를 기록하지는 못할 것으로 예측하고 당시 사령탑인 양상문도 투타에서 새로운 옥석을 발굴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스프링캠프를 진행했기에 이 해 LG의 스토브리그는 FA 정상호의 영입 말고는 상당히 조용했다.

그리고 9년 만의 홈 개막전으로 시즌을 시작한 LG는 4월과 5월 내내 5할 승률을 철저히 마크하며 나름대로 중위권 싸움을 이어나가며 선전하는 흐름을 보여왔다. 그러나 6월부터 전력의 밑천이 드러나기 시작하며 4위에서 8위까지 굴러떨어진 채 후반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 때 극성 LG팬들은 양상문 감독의 선수 기용에 반발해[51] 퇴진 현수막까지 들고 왔을 지경.

그런데 8월부터 신진급 선수들의 성장과 기존 전력의 부활, 거기에 단단해진 마운드를 바탕으로 14년 만의 9연승을 질주해 순식간에 포스트시즌 경쟁에 뛰어들었으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시행착오들이 이어졌으나 9월 들어 중요한 경기에서 승리를 연달아 따냈고, 결국 -14라는 승패마진을 완전히 극복하고 시즌 최종 성적 71승 2무 71패 정확히 승률 5할로 정규시즌 4위를 기록하며 극적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먼저 타격에서는 드디어 외야수의 리빌딩에 성공했다는 점이었다. 작년 부진을 겪은 채은성이 중심타선으로 스텝 업에 성공하며 성장했고,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이천웅 또한 인상적인 모습으로 본인의 자리를 잡아나갔으며, 타자 전향 이후 1군으로 돌아온 이형종 또한 앞으로의 모습이 더욱더 기대되는 모습으로 기존 베테량 선수들의 공백을 최소화했다. 그리고 포수 또한 유강남이 FA 영입생 정상호를 역으로 백업으로 밀어내버리는 타격 실력과 저번 시즌에 비해 나아진 수비로 주전 자리를 꿰차는 희소식이 생겼다. 그리고 오지환 또한 타율 .280에 개인 통산 첫 단일 시즌 20홈런을 기록하는 타격 실력으로 기존에 나아진 수비와 더불어 자신이 왜 주전 유격수인지를 알려주는 시즌을 보냈다. 거기에 히메네스는 비록 후반기에 부진했지만 전반기 20홈런을 기록하는 등의 맹활약을 보여주며 팀의 타선을 책임졌다.

투수에서는 새로운 주장 류제국이 후반기의 호성적을 바탕으로 데뷔 첫 완봉승을 포함해 3년만에 10승을 따내며 주장으로써의 역할 그 이상을 해냈고, 폭망한 외국인 투수 코프랜드를 대신해 데려온 외국인 투수 허프는 후반기 에이스 모드로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큰 역할을 해줬다. 마무리 자리에서는 임정우가 28세이브로 성공적인 마무리 안착에 성공했다. 이 외에도 새로운 불펜의 핵으로 떠오른 김지용도 있었고, 작년 트레이드로 영입한 진해수 또한 좌완 원 포인트 릴리프로 괜찮게 던져줬다. 그러나 투수진에는 의문점이 많았었는데, 특히 6~7월에 그 문제점이 터진 것이 원인이었다. 소사는 초반 건재한 모습을 보이다가 점점 피안타가 늘어났고, 우규민 또한 초반 완봉승으로 호투했지만 이후 부상과 부진이 겹친 탓에 2군까지 내려온 적이 있다. 불펜에서는 이동현신승현 또한 전반기 좋은 피칭이 무색하게 맞아나가기 시작했고, 윤지웅은 전반기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부진했다. 이 외에도 봉중근의 선발 시도는 결국 실패해 이도 저도 아닌 채 시즌을 마무리했다.

5.3.1. 와일드카드 결정전

LG 역사상 첫번째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르게 된 상대는 똑같이 중위권 경쟁에서 살아남은 KIA였다. 1승 어드밴티지를 얻어냈기 때문에 대부분 LG의 우세를 예측했다.

그러나 1차전에서 4회초 선제 실점으로 이어지는 오지환의 치명적인 실책으로 인해 먼저 끌려가기 시작했고, 이후 따라가나 했으나 8회말에 유강남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본헤드 플레이를 저지르며 결국 4:2로 패배. 와일드카드 결정전 신설 이후 최초로 2차전까지 가게 되었다.

양 팀 모두 벼랑 끝인 2차전에서는 양 팀 선발 양현종류제국의 호투와 타선의 빈타, 양 팀 선수들의 대단한 호수비로 인해 9회초까지 0:0으로 팽팽한 승부를 하다가 9회말 1사 만루 찬스에서 김용의가 끝내기 희생플라이를 치면서 천신만고끝에 준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5.3.2. 준플레이오프

2년 전에 만났던 플레이오프와 같이 휴식일이 하루 밖에 주어지지 않은 불리한 상태에서 넥센과 붙게 되었다.

1차전, 예상 외로 맥그레거가 선발로 나온 넥센의 투수들을 털어내며 7득점을 만들어냈고, 수비에서는 11안타를 내준데 반해 득점을 절대 허용하지 않으며 결국 7:0 승리로 1차전을 가져가게 되었다.

2차전에서는 드디어 넥센의 에이스 밴헤켄을 상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LG는 안그래도 약했던 밴헤켄을 전혀 공략하지 못했고, 임병욱의 홈런을 포함해 초반 4이닝 동안 5실점을 하며 순식간에 경기가 기울어 결국 1:5로 패배, 1승 1패로 균형을 맞춘 채 잠실로 돌아가게 되었다.

3차전, LG는 다시 허프를 선발로 내세우며 승부수를 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4회말 0의 균형을 깨는 유강남의 선제 투런 홈런으로 앞서나가기 시작했고, 5회초 한 점을 내주며 추격을 허용했지만 7회초 1사 3루 위기를 허프가 막아내는 데 성공한 이후 LG가 7회말 2득점을 내며 쐐기를 박아 1:4 승리. 시리즈를 2승 1패로 유리하게 끌고 가기 시작했다.

4차전에서는 초반 선발 류제국이 난조를 보이며 조기 강판이 되었고, 2회에만 4실점을 내주며 이대로 꼼짝없이 고척으로 끌려갈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이동현-윤지웅-김지용-진해수-정찬헌으로 이어지는 불펜진이 모두 무실점으로 막아냈고, 그 사이 타자들이 3회와 5회에 각각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하며 승부는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8회말, 오지환의 우전 적시타로 드디어 LG가 역전에 성공했고, 9회초 마무리 임정우가 막아내며 결국 4:5 승리. 시리즈 스코어 3승 1패로 승리를 거두고 2년 만에 다시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짓게 되었고, 2년 전의 복수를 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와일드카드 승리팀이 최초로 준플레이오프에서 업셋을 거둔 최초의 사례는 덤.

5.3.3. 플레이오프

이번 플레이오프에서는 3일 휴식을 하며 어느 정도 체력이 남아있는 상태로 나테이박의 NC와 만나게 되었다.

1차전에서 소사해커의 호투로 0:0이 유지되던 가운데, 7회초 히메네스의 홈런으로 앞서나가기 시작했고, 8회초 예상치도 못했던 정상호의 홈런까지 터지며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하게 1차전을 LG가 가져가나 했다. 그러나 9회말 임정우가 아웃카운트를 단 하나도 잡아내지 못한 채 그대로 연속 3안타를 내주자 급하게 김지용으로 바꿨으나 결국 충격적인 블론세이브를 거뒀고, 이후 끝내기 패를 당하며 끔찍하게 1차전을 내주고 말았다.

2차전, 이번에도 허프스튜어트의 호투들이 이어지던 와중, 결국 박석민에게 투런 홈런을 맞고 녹다운되어 결국 0:2 패배. 결국 타선의 끔찍한 침묵으로 시리즈 스코어 2패로 씁쓸하게 잠실로 가게 되었다.

3차전, 결과는 1:2로 LG가 연장 승부 끝에 양석환의 끝내기 안타로 1승을 추가하는데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는 엄청난 졸전이 있었다. 일단 사사구만 NC는 9개, LG는 16개였으며, 양 팀의 잔루는 각각 14개와 19개로 이게 정녕 플레이오프가 맞나 싶을 정도의 심각한 졸전이었다. LG는 이 경기를 잡으려고 1차전 선발 소사를 꺼내야만 했으며, 마무리 임정우도 2이닝 넘게를 소화하는 등의 막대한 전력 소모를 감내해야만 했다.

그렇게 겨우 4차전까지 끌고 왔지만, 지난 3차전을 포함해 도합 포스트시즌 9경기를 치른 LG는 이미 모든 힘을 쏟아부어 모든 투수들의 체력은 남아나질 않았고, 에이스 허프까지 불펜으로 내보냈지만 결국 NC의 강타선을 버텨내질 못하며 8:3으로 패배. 시리즈 스코어 1승 3패로 길고 길었던 LG의 2016년이 끝이 나게 되었다.

5.4. 2017년

지난해 후반기의 호성적으로 기적을 만들어낸 것에 고무된 LG는 차우찬을 4년 95억이라는 거액에 FA로 영입하며 양상문 감독의 임기 마지막 해에 무조건 15년 만에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뤄내고자 칼을 갈았다. 실제로 개막 이후 6연승을 달릴 때와 어린이날 3연전 스윕 및 7연승으로 2위에 올랐을 때만 해도 기세가 좋았다. 그러나 광주에서의 피스윕을 기점으로 LG의 제동력은 시즌이 지나면 지날 수록 서서히 멈춰가기 시작했다. 선수단 사이에서 여러 악재들이 끊이지 않았고[52], 여기에 양상문 감독이 임기 마지막 해라는 것으로 인해 집단 마무리 및 이닝 쪼개기를 고집하면서 너무 이기는 야구에만 집착했다. 후반기 들어 계속해서 위닝시리즈를 거두며 8월초 승패마진 +9를 기록할 때까지만 해도 가을야구는 유력하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곧바로 후반기 무서운 상승세를 달리던 두산에 피스윕을 당한 것을 기점으로 결국 전반기에 잘 버티던 불펜이 후반기 들어 점점 퍼지고 말았다. 시즌을 치르면 치를수록 LG는 답답한 공격과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 투수력으로 순위싸움을 이어갈 동력이 떨어졌으며 결국 팀 평균자책점 1위를 찍고도 최종 성적 69승 3무 72패 승률 .489로 5위와 5게임차 6위에 그치며 포스트시즌조차 나가지 못하는 최악의 결말로 시즌을 마치게 되었다.

타격은 냉정히 말해 이제 마흔이 되었음에도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박용택 말고는 정말 형편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타선에서 핵심이 되어야 할 외국인 타자인 히메네스는 부상과 부진으로 인해 결국 시즌 중 웨이버 공시가 되었으며, 화려한 메이저 리그 경력으로 LG팬들의 환영을 받으며 영입된 로니는 끝내기 안타도 치는 등의 좋은 모습을 보이다 부진하기 시작해 2군으로 말소시켰는데, 돌연 미국으로 출국해 웨이버 공시가 되는 어이없는 경우[53]가 발생하는 등의 최악의 상황이 시즌 후반에 일어나며 결국 팀의 동력을 완전히 잃어버려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는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 외에 국내 선수들을 살펴보자면 전년도 20홈런을 친 오지환은 부상으로 인해 공격과 수비 모두 답이 없는 상태였고, 강승호양석환 또한 기대치를 밑도는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뒀다. 또한 저번 시즌 성공적으로 리빌딩을 마쳤다고 생각했던 외야진인 채은성은 부진했고, 이천웅은 클러치 상황에서 맹타를 쳐주는 활약상이 있었으나 부상으로 시즌 절반 가량을 날리고 말았다. 그나마 팀 내 유망주라고 여겨진 선수들 중에서는 포수 전체 WAR 3위를 기록한 유강남이형종 정도 말고는 없을 정도로 현재 LG 야수진에게 기대란 것은 전혀 없었고, 이는 양상문 감독이 임기 내내 외쳐댔던 리빌딩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 LG팬들이 점차 늘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타격 부진의 원흉으로 손꼽혀온 서용빈 타격코치는 이해를 끝으로 타격코치 자리에서 물러났다.

투수진을 살펴보자면, 선발에서는 이적생 차우찬이 기대치에 걸맞는 피칭으로 팬들을 만족시켰으며, 소사 또한 선발 로테이션을 꾸준히 돌아주었다. 그러나 에이스 허프는 피칭은 정말 좋았으나 부상이 발목을 잡았고, 임찬규와 주장 류제국은 실망스러운 피칭을 선보였다. 그 외에 선발 로테이션을 돌았던 2년차 김대현은 절반의 성공만을 거두었다. 불펜은 기존 마무리 임정우가 부상으로 빠져버리는 바람에 집단 마무리 체제로 갔는데, 이것은 오히려 악수가 되었다. 초반 상승세를 어떻게든 지키고자 어떻게든 이기는 야구를 해서 당장의 성적은 좋지만, 후반기로 가면 갈 수록 팀의 성적은 계속해서 갉아먹는 최악의 수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좌완 원 포인트 릴리프로 홀드왕을 차지한 진해수 정도가 꾸준히 불펜에서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줬지만, 군에서 제대한 신정락, 정찬헌, 김지용과 같은 선수들을 마구잡이로 굴려 결국 후반기에 이 선수들이 퍼져버리며 팀의 포스트시즌 희망의 끈을 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양상문은 시즌이 끝나고 단장이 되었고, 단장이 되자마자 베테랑 정성훈이 방출 통보를 받은 데 이어 2차 드래프트에서 손주인 등이 팀을 떠나면서 많은 팬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선사했다. 물론 같은 시간에 LG의 운명을 뒤바꾸는 영입이라고 평가받는 김현수를 4년 115억원이라는 거액에 영입했다.

5.5. 2018년

파일:2018 DTD.gif

지난 시즌을 끝으로 감독직에서 단장직으로 영전한 양상문의 후임 감독으로 무려 삼성 왕조를 세운 류중일을 LG의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했고, 이후 4년 115억이라는 거금을 들여 미국에서 돌아온 김현수를 영입하며 이번에는 정말로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이를 갈며 시즌을 시작했다.

그러나 해당 시즌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LG 트윈스 역사상 최악의 DTD 시즌으로 요약이 된다.

팀은 초반부터 심각하게 롤러코스터를 탔다. 4월 중반부터 5연승-3연패-8연승-8연패를 기록하는 등 경기력 자체가 기복이 심했다가 5월 말부터 팀이 점차 안정감을 찾아 6월 말에 잠깐 2위를 찍기도 했고, 7월 말까지도 안정적인 4위로 자리잡는 듯 했다. 실제로 이 때 피타고리안 승률로 알아본 LG의 당시 포스트시즌 진출 확률은 무려 96%에 달했을 정도로 LG는 포스트시즌 안정권에 접어드는 듯 했다. 그러나 이 경기를 기점으로 후반기에 그야말로 2011년에 버금가는 기록적인 DTD를 기록하며 팀이 침몰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아시안 게임 브레이크 이전까지 그나마 다른 팀들이 니가 가라 5위를 시전하며 5위 턱걸이를 붙잡아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아시안 게임 브레이크가 종료되고 리그가 재개된 이후 팀의 중심을 잡아준 중심축 김현수가 부상으로 빠지고 난 이후, 2주 뒤에 투수진이 완전히 붕괴되며 결국 KIA에게 5위 자리를 내주며 LG는 기어코 포스트시즌 진출권 밑으로 떨어지고야 말았다. 이후에도 이렇다할 반등은 커녕, 더 내려가기만 하면서 최종 성적 68승 1무 75패 승률 .476으로 5위와 불과 1.5게임차 8위로 시즌을 마쳐야 했다.

그나마 타자진은 타격왕을 먹은 김현수를 필두로 채은성, 양석환, 유강남, 이형종과 같은 신진 선수들이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은 분명 좋은 점이었으나, 해당 시즌은 KBO 리그 역사상 가장 심각한 타고투저 시즌이었기에 김현수를 제외한 선수들은 평범한 성적이 되었고, 이들을 계속해서 무한으로 굴리는 류중일로 인해 시즌 후반 이 주축 선수들의 체력은 완전히 방전되어 결국 공격력도 약화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먼저 40을 넘긴 박용택을 붙박이 지명타자로 박아버리는 바람에 다른 선수들의 체력 안배를 등한시했고, 안되는 운명인 김용의박지규에게 꽂혀 홍창기윤대영, 백승현과 같은 선수들을 기용하지 않아 기존 주전들은 시즌 후반을 거듭하면 할수록 더욱더 방전되고 말았다.

투수진은 그야말로 파멸적이었다. 먼저 선발부터 보자면 소사윌슨은 비록 불펜의 방화로 인해 9승에 그쳐야 했지만, 정말 LG 투수진의 희망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훌륭한 피칭을 선보여 ERA 3점대[54]에 WAR은 윌슨이 7.01, 소사가 5.90로 거의 붕괴되다 싶이한 팀의 투수진을 그나마 지탱할 수 있게끔 했다. 그러나 나머지 국내 투수들인 차우찬임찬규는 각각 12승과 11승을 거뒀으나 타선의 힘으로 얻어낸 승리라 ERA는 각각 6.09와 5.77로 매우 높았으며, 그에 따라 WAR도 1.55에 1.46으로 실속이 없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바로 불펜진에 있었는데, 류중일강상수가 불펜진을 마구 굴리는 바람에 후반기에 완벽하게 퍼져 전 시즌 팀 평균자책점 1위 팀이 맞나 싶을 정도로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져 그 유명한 방화신기가 부활했다고 봐도 믿을만한 수준이 되어버렸다. 먼저 팀의 붙박이 마무리가 된 정찬헌은 전반기 기복이 있어도 그래도 마무리 자리를 잘 소화했지만 후반기 들어서 결국 혹사를 견디지 못해 완전히 망가져버렸고, 김지용은 8월 시즌 아웃이 되기 전까지 마구잡이로 굴려나가버려서 결국 팔꿈치 수술로 시즌 아웃이 되며 앞으로의 선수 생활에도 먹구름이 끼고 말았다. 사실 2017년 1차 지명으로 영입된 고우석을 제외하면 모두 저번 시즌 양상문에게 갈려진 선수들이 그대로 이번 시즌에도 갈려졌다. 대표적으로 앞서 언급한 정찬헌과 김지용 외에 신정락, 윤지웅, 이동현, 진해수 이 선수들이 계속해서 굴려지며 결국 시즌 후반 LG의 불펜진은 그야말로 활활 타오르다 못해 새까만 재가 되어 포스트시즌 진출 희망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가장 최악인 것은, 최대 라이벌팀 두산에게 1승 15패라는 다시는 씻을 수 없는 멍에가 씌여진 것이다. 심지어 그 1승도 시즌 마지막 맞대결에서 나왔으며, 차우찬의 혼신의 134구 완투승으로 만들어낸 승리였다.[55] 비단 두산 뿐만 아니라 2위 SK는 6승 10패, 3위 한화에게는 7승 9패를 거두며 상위권 팀들에게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암흑기때부터 지금까지 2013년을 제외하면 승패마진이 플러스였던 적이 없었기에 이때까지 LG의 통산 승패마진은 계속해서 떨어져서 승패마진 -143에 승률 .484를 찍을 정도로 많이 떨어져있었다.

5.6. 2019년

저번 시즌 최악의 DTD 시즌으로 인해 프런트와 코칭스태프의 대대적인 개편이 있었다. 구단 사장에 야알못 낙하산 인사 대신 야잘알 이규홍이 임명되었다. 기존 단장이었던 양상문조원우의 경질로 공석이 된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공석이 된 단장 자리에는 과거 LG 투수이자 투수코치로 활약했던 차명석 해설위원이 새롭게 부임했다. 그리고 강상수, 박종호 등 실적이 부실한 코칭스태프 인사들이 줄줄이 잘려나갔고 최일언 등 타팀에서 인정받은 코칭스태프들이 새롭게 부임했다. 그러나 주전 내야수 양석환의 군입대로 인한 전력 누수, 결정적으로 이미 새까맣게 타버린 불펜진까지. 모든 것을 잃어버린 LG는 다음 시즌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전력 보강을 필사적으로 해야하는 것이 맞았으나, 비어버린 3루 자리에 김민성을 사인 앤드 트레이드로 영입한 것 외에는 이성우, 장원삼, 심수창, 전민수, 양종민, 김정후, 강구성 등 모두 한물 간 베테랑 선수나 방출 선수들만 복권 긁듯 영입했기에 시즌 전 많은 전문가들에게 포스트시즌 진출권 예상에 그 어떠한 이름도 올라가지 못하며 하위권 예상을 받았다.

그러나 LG는 2013년과 더불어 모두의 예상을 비웃듯이 시즌 내내 중상위권에서 순항했다. 개막전부터 KIA를 2연승으로 제압하면서 출발했고, 4월 두산전 홈경기 위닝과 NC와의 창원 원정 스윕을 시작으로 상위권에 자리를 잡았다. 5월 들어 어린이날 피스윕을 시작으로 타격이 침묵하기 시작한 탓에 팀이 가라앉으며 위기를 맞았으나 후반에 다시 살아나면서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나며 중상위권을 유지했다. 6월 들어 NC가 나성범의 시즌 아웃 부상으로 인해 급격히 추락하면서 경기력이 안정세에 접어든 LG는 안정적인 4위로 달리고 있었고, 이제 남은 과제는 저번 시즌 처럼 미끄러지지 않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지방 4팀이 무너지며 하위권과의 격차를 크게 벌려나갔고, NC와 KT가 5위 쟁탈전을 벌이며 4위 자리를 굳혀나가 최종적으로 9월 16일에 3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 확정, 9월 25일 4위를 확정지었다. 최종 성적은 팀 역대 단일 시즌 승리 2위의 성적인 79승 1무 64패 승률 .552의 호성적으로 정규시즌을 무사히 마쳤다.[56] 이 해 피스윕은 어린이날 단 한 차례밖에 없었고 무엇보다도 이강철 감독의 부임 첫 시즌 창단 첫 포스트시즌에 도전했던 KT를 13승 3패로 찍어누른 것이 4위 수성에 결정적이었다.

특히 기존 투수코치인 강상수가 나가고 들어온 최일언으로 인해 바로 불펜진의 기량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며 그 덕분에 팀이 정상화되었던 것이 가장 컸다. 우선 선발진은 윌슨에 이어 켈리라는 뛰어난 외국인 투수가 가세한 덕분에 이 둘이 승리를 많이 벌어다줬고, 차우찬 또한 여름에 흔들린 영향이 있었을 뿐이지 전반적으로 3선발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그리고 불펜진에서는 기존 마무리 정찬헌이 허리 수술로 인해 시즌 아웃이 되며 공석이 된 마무리 자리를 고우석이 꿰차며 시즌 35세이브로 하재훈에 이어 세이브 2위를 거두며 봉중근 이후 오랜만에 30세이브를 거둔 투수가 되었으며, 고졸 신인 정우영이 필승조로 자신의 역할을 100% 수행해내며 1997년 이병규 이후 22년 만에 신인왕을 거머쥐게 되었다. 이 외에도 진해수, 김대현과 같은 선수들도 불펜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내며 망가진 LG 불펜을 1년만에 다시 재건하는데 성공했다.

타격에서는 공인구 반발 계수의 감소로 극심한 타고투저였던 리그 양상이 투고타저로 급변하는 바람에 전반적으로 리그 내 타격 성적이 떨어진 것에 맞춰 LG의 중심타자들인 김현수, 채은성, 유강남의 타격 성적도 떨어졌다. 거기에 마흔을 넘어서도 꾸준한 타격을 보여준 박용택도 이번 시즌은 부상으로 제대로 뛰지 못했다. 지난시즌 무주공산인 2루수 자리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던 정주현은 풀타임 2년차 시즌에 공수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외국인 타자 조셉은 허리 부상의 여파로 시즌 중 웨이버 공시되었으며, 그 대체자인 페게로는 초반 부진한 타격 성적과 포지션 문제로 인해 골머리를 앓았으나 9월 팀의 타선을 캐리하며 9월 MVP까지 수상했다. 무엇보다도 이번 시즌 최고 히트상품은 바로 이천웅. 팀의 리드오프 자리를 꾸준하게 도맡았고, 커리어 첫번째 규정타석 3할과 168개의 안타로 최다안타 3위에 오르는 등, 팀 내 WAR 1위를 거두며 그야말로 팀의 타선에서 없어서는 안될 선수로 우뚝 서게 되었다. 그리고 이 해에는 기존 이형종과 채은성까지 소위 간채골 라인의 위용이 굳건하여 1군에서 팀내 최대 유망주로 꼽히던 홍창기의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57]

이 해 포스트시즌 진출은 정말 의미가 큰데, 이후 앞으로 6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발판을 마련하였기에 더욱더 크게 다가왔다. 또한 김민성의 영입과 함께 오지환을 중심으로 이 해부터 LG는 수비력이 안정화되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대졸 신인 구본혁이 수비에서의 강점을 보여주며 내야 대수비 요원으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신민재 역시 빠른 발을 앞세워 대주자 요원으로 활약해 새로운 선수들의 등장을 알렸다.

5.6.1. 와일드카드 결정전

3년 만에 다시 돌아온 포스트시즌. 그 상대는 kt와의 5위 경쟁에서 승리한 NC였다. 그러나 시즌 막판 오지환의 부상으로 인해 팀의 공격력이 약화하여 무려 37이닝 연속 적시타가 없었고, 핵심 불펜인 고우석정우영이 시즌 막판에 흔들리는 경향이 있어 대부분 NC와의 호각세를 예상했다.

하지만 1차전에서 켈리를 낸 선택은 그대로 적중하며 호투를 했고, 타선도 초반에 3점을 내며 어느정도 지원을 해주었다. 비록 9회초 고우석이 크게 흔들리며 1사 만루라는 초유의 위기를 맞이했으나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최종 스코어 1:3 승리. 3년 전과는 다르게 1경기 만에 끝내고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5.6.2. 준플레이오프

3년 전에 와일드카드를 통과하고 만난 상대가 넥센이었듯이, 이번에도 준플레이오프에서 키움을 만나게 되었다.

1차전, 윌슨브리검 모두 호투하며 9회초까지 0:0으로 팽팽하게 맞서던 그 때, 9회말 고우석이 마운드 위에 올라섰고, 그 결과는 박병호에게 던진 초구가 그대로 끝내기 홈런으로 이어지는 충격적인 결과로 결국 1차전을 허무하게 내주게 되었다.

2차전에서는 7회까지 차우찬의 호투와 타선의 적절한 득점 지원으로 4:1로 앞서나가며 무난하게 2차전을 승리하나 했다. 그러나 8회말 김대현이 또 박병호에게 투런 홈런을 맞으며 단숨에 한 점 차까지 쫓기게 되었고, 결국 9회말 이번에는 무조건 막아야만 하는 상황에 고우석이 마운드 위에 다시 올랐다. 그러나 고우석은 2사 3루, 승리까지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겨놓은 상황에서 서건창에게 좌전 안타를 허용하며 또다시 충격적인 블론세이브를 거뒀고, 결국 팀은 연장 10회말에 진해수의 실책과 함께 이틀 연속 끝내기로 패배하며 엘리미네이션인 상태로 잠실로 가게 되었다.

3차전, 이제 오늘 내일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진 상황인 LG. 하지만 초반 2점을 허용하며 이대로 시리즈 3연패로 시즌을 허무하게 마감하나 싶었으나, 2회말 정주현의 적시타, 4회말 채은성의 동점 홈런으로 경기를 원점으로 끌고 갔고, 팽팽한 싸움에서 7회말 오지환의 역전 희생플라이에 더해 8회말 페게로의 쐐기 솔로 홈런까지 터지며 2:4 역전. 그리고 9회초, 이번에는 정말로 막아야 하는 상황에 고우석이 다시 등판했고, 또다시 1사 2,3루 위기를 만들며 LG팬들을 공포에 몰아넣었으나 다행히도 이번에는 막아내며 고우석의 힘찬 포효와 함께 겨우 1승을 얻어내며 4차전의 포문을 여는데 성공했다.

4차전, 선발 최원태임찬규가 조기에 무너지며 초반부터 타격전으로 펼쳐졌고, 5회까지 3:5 리드를 이어나가며 마지막 한 판을 위해 고척으로 가는 듯 했다. 그러나 6회초 순식간에 동점을 내주는 것에 더해 7회초에는 역전까지 허용했고, 8회초에는 어이없는 실책까지 합쳐져 10:5까지 점수차가 벌어지며 탈락이 눈 앞에 보이게 되었고, 그대로 10:5로 경기 종료. 시리즈 스코어 1승 3패로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며 시즌을 마치게 되었다. 이는 구단 역사상 최초의 준플레이오프 시리즈 패배였다.

5.7. 2020년

전년도의 호성적 덕분에 많은 전문가들에게 못해도 포스트시즌 진출, 잘하면은 우승까지 가능하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이번 시즌 LG는 많은 팬들과 전문가들에게 기대를 받았다. LG 트윈스로 이름이 바뀐 지 30주년이자 박용택의 현역 마지막 시즌을 맞는 2020년, LG는 그 어느 때보다도 우승을 위한 의욕이 가득했다. 2루수가 경쟁력이 약하다고 판단하여 2차 드래프트에서 국가대표 출신 정근우를 영입했다. 무주공산인 포지션인 1루수 문제로 인해 지난해 9월의 영웅이었던 페게로 대신 10개 구단 중 가장 늦게 라모스와 계약했다. 다만 1~3선발 윌켈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떨어지는 하위 선발진은 팀의 가장 큰 약점으로 꼽혔다.

코로나19로 인해 5월 5일이 돼서야 무관중 체제로 뒤늦게 개막한 2020년 KBO 리그, 초반에는 새로운 외국인 타자 라모스의 대활약으로 6연승까지 하는 등의 타선이 큰 힘이 되어주며 5월 월간 16승 7패로 2위로 마치면서 쾌조의 스타트를 보였다. 그러나 6월에 들어서자 삼성, 키움과의 경기에서 연속 루징을 당하며 먹구름이 조금씩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나마 SK와 롯데전을 위닝 시리즈, 한화에게 스윕승을 거두며 다시 상승세를 거두나 했지만 귀신같이 두산과 키움에게 연속 스윕패를 당하며 도합 7연패로 순식간에 2위에서 4위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그나마 SK와의 경기에서 정찬헌의 완봉승을 포함해 SK전 위닝을 거두며 한 숨 놓게 되었다. 그러나 부상자들이 속출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류중일 감독의 이해할 수 없는 쓸놈쓸로 7월 중반까지 4연속 루징을 당하며 엄청난 부진에 빠지는 바람에 순위는 순식간에 5위로 내려가고 말며 또다시 DTD의 그림자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듯했으나 부상자들이 돌아오자 다시 경기력이 살아나며 한화전 스윕승을 시작으로 두산전 위닝, SK전 스윕으로 다시 경기력이 올라왔고, 8월에도 그 기세를 이어나가 월간 승률 16승 1무 8패 승률 .667로 다시 3위까지 올라가며 상위권 경쟁에 재진입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중요한 후반부인 9월이 되자 바로 류중일 감독의 고질적인 쓸놈쓸로 필승조들이 모조리 부진에서 허덕이며 후반 대역전패가 늘었고, 주전 선수들이 돌아오자 그 선수들만 집중적으로 사용하며 확대엔트리를 비효율적으로만 사용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다시 4위까지 떨어진 모양. 게다가 10월에는 라모스와 윌슨 마저 이탈하며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다. 하지만 LG는 1위 NC와의 더블헤더 포함 홈 4연전을 모두 쓸어담는 등 6연승을 기록하면서 다시 2위에 올랐고, KT, 두산, 키움과의 막판 순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듯한 모습으로 적어도 플레이오프 직행은 유력해보였다. 시즌 마지막 2경기인 한화전과 SK전에서까지 순위 싸움을 이어나갔는데 적어도 1경기라도 이겼다면 다른 경쟁팀인 kt의 경기 결과에 따라 2위가 가능했다. 그러나 한화전은 0:6으로 이기는 경기를 벤치의 판단 미스로 순식간에 6:6 동점이 되었으며, 결국 연장 11회에 실점을 허용하며 패배, SK전에서도 타선의 빈타로 인해 또 1점차로 패배하는 최악의 경우의 수가 나와버렸다. 결국 최종 성적 79승 4무 61패 승률 .564라는 작년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뒀으나 2위 kt와 불과 반게임차, 3위 두산에게는 승률이 완전히 같지만 상대전적에서 밀리면서 순식간에 4위로 추락하며 시즌을 마무리하는 바람에 모든 팬들이 생각하지도 않은 와일드카드에서 포스트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2020년의 LG는 수많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시즌 전 약점이라고 생각되던 임찬규, 정찬헌 등 4~5선발 후보군들의 활약과 고졸신인 이민호김윤식, 그리고 홍창기이정용, 남호 등 이천 팜에서 배출된 젊은 선수들의 활약상이 어우러지면서 시즌 막판까지 상위권 경쟁을 치열하게 이어나가며 분명 이전과는 다른 체급을 느낄 수 있던 시즌이었다. 그러나 충분히 더 치고 올라가야 할 중요한 상황에서 쓸놈쓸 야구[58]와 어처구니없는 벤치의 미스로 어이없이 역전패를 당하는 등 상위권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기회를 본인들 스스로 날려먹었다. 결국 마지막에 그 댓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말았다.

타자쪽에서는 이번 시즌 최고 히트상품 홍창기가 드디어 알을 깨고 주전 자리를 꿰찼다. 시즌 중반 이천웅이 부상으로 빠져버리자 그 자리를 놓치지 않고 특유의 눈야구를 활용한 높은 출루율로 새로운 리드오프의 탄생을 알렸다. 또한 오지환도 저번 시즌 타격 부진을 딛고 이번 시즌 데뷔 이후 첫 3할로 FA 신청 당시 보였던 저평가를 뒤집기 시작했으며, 외국인 타자 라모스는 비록 시즌 후반 부진한 성적이 있었으나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다 홈런 기록인 38홈런으로 그동안 LG의 오랜 갈증이었던 거포 타자의 진가를 보여주었고, 김현수 또한 좋은 성적으로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이형종도 부상으로 시즌을 늦게 시작했지만 되려 커리어하이를 찍으며 팀의 타선에 힘을 더했다.

투수진에서는 지난 2년간 에이스 노릇을 해준 윌슨이 부진했지만, 켈리가 15승을 거두며 2001년 신윤호 이후로 15승을 거둔 LG 투수가 되며 새로운 에이스가 되었고, 그동안 성장세가 정체된 임찬규 또한 10승에 4점대 초반의 ERA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만들어내며 드디어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였다. 또한 10일 간격으로 로테이션을 돌았던 정찬헌이민호는 팀이 하락세에 접어들때마다 호투하며 팀의 페이스를 유지해주었고, 차우찬이 부상으로 빠진 자리에는 신인 김윤식이 기복있는 피칭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버텨내는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이런 좋은 모습에도 단점은 있었으니, 바로 감독 류중일이었다. 2018년때 보여준 자신의 단점인 지나친 쓸놈쓸과 믿음의 야구로 포장된 방관&방치 야구, 필승조 혹사는 시즌 내내 LG의 발목을 붙잡았고 결국 시즌 막판 팀의 상승세에 제동을 걸어버렸다. 그나마 저번보다 좋은 성적을 거둔 것도 한화-SK-KIA-NC전에서 완전히 상대를 호구잡아버리며 승리를 쓸어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한화와 SK에게 시즌 마지막 두 경기에서 고춧가루를 세게 맞아버리며 2위에서 4위로 급추락했다. 또한 지난 3년간 최대 라이벌 두산과의 상대전적에서 호구잡히며 결국 3년 내내 밀리는 상대전적은 곧 3위 두산과 승률이 완전히 같음에도 상대전적에서 밀린 바람에 두산보다 낮은 순위를 거두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5.7.1. 와일드카드 결정전

모든 팬들이 예상하지도 못했던 와일드카드 결정전, 상대는 똑같이 막판에 미끄러진 키움을 2년 연속으로 만나게 되었다.

우천 취소로 인해 하루 미뤄진 1차전, 선발 켈리를 시작으로 투수들의 호투가 이어졌지만, 정규시즌 막판부터 이어진 타격의 침묵은 여전히 이어져 연장 13회까지 간 끝에 신민재의 끝내기 안타로 간신히 승리를 거두고 2년 연속으로 와일드카드 결정전 승리를 거두며 준플레이오프로 향했다.

5.7.2. 준플레이오프

와일드카드 1차전이 우천취소로 하루 밀리면서 하루 휴식 후 바로 최대 라이벌인 두산을 상대했다. 이번 시즌은 코로나19로 인해 준플레이오프가 2선승제로 축소가 되었기에 1차전을 잡는 것이 그 누구보다도 중요할 수가 있다.

1차전은 깜짝 선발로 이민호를 선발로 내는 강수를 던졌으나 당연히 초반부터 페르난데스에게 투런 홈런을 맞으며 초반 기세를 두산에게 내줬고, 상대 선발인 플렉센에게 일방적으로 막히며 무난하게 0:4 패배.

2차전은 선발 윌슨의 부진으로 8:0까지 벌어지며 이대로 탈락이 유력해지나 싶었다. 그러나 라모스의 연타석 홈런을 포함해 홈런 4방과 함께 6회까지 8:7까지 따라가는 저력을 보였으나 타선이 동점까지는 가지 못했고, 9회초 이성우의 본헤드 플레이에 허무하게 추가점을 허용하며 9:7 패배. 시리즈 스코어 0승 2패로 구단 역사상 첫 포스트시즌 피스윕을 당하며 팀의 레전드 박용택의 마지막 시즌을 허무하게 마무리 하게 되었다.

결국 구단 고위층에서 재계약 여부를 논의하기 전부터 류중일 감독 본인이 재계약 없이 물러나며 류중일 감독의 3년 임기는 씁쓸하게 마무리되었다.

5.8. 2021년

저번 시즌에 이어서 이번 시즌에도 우승 후보 평가를 받았고, 팬들에게 어마어마한 혹평을 받으며 물러난 류중일의 뒤를 이어 팀의 프랜차이즈 출신인 류지현이 새로운 감독으로 취임하며 시즌을 시작했다.

실제로 개막 직후부터 상위권에서만 노는 모습을 보였고, 5월에는 1위까지 올라가며 상승세를 유지하나 싶었다. 그러나 유령 태그 사건 이후 팀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해 단독 1위에서 6위까지 수직낙하했으나 이내 롯데전과 키움전을 위닝으로 잡으며 다시 상위권에 올라갔다. 이후 6월에는 15승 9패로 올라간 이후부터 계속해서 상위권 경쟁을 이어나가며 시즌 막판까지 삼성, kt와 같이 정규시즌 우승 쟁탈전을 이어나가 겉으로 보기에는 기대치에 걸맞는 시즌을 보내는 듯 싶었다. 그러나 막상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게 우승 경쟁을 하는 팀이 맞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의문점이 많은 시즌이었다. 타선의 힘은 너무나도 허약해 LG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불펜진으로만 먹고 사는 재미없는 야구가 계속되었다. 결국 10월 19일부터 25일까지 일주일간 4무 3패라는 충격적인 성적으로 정규시즌 우승의 희망이 급격하게 꺼져갔고, 최종전까지 겨우겨우 우승의 희망을 이어나갔으나 삼성과 kt가 이변 없이 승리하고 LG는 패배하며 최종 성적 72승 14무 58패 승률 .554의 성적으로 1,2위와 1.5게임차[59]의 3위가 확정되었다.

타격에서는 그야말로 보다보면 눈이 썩어버릴 정도로 최악이었다. 류지현 감독과 타격코치 이병규가 시행한 '전 타자 홍창기화' 프로젝트의 결과는 정말이지 참혹했으며, 이게 정녕 우승 경쟁을 하는 팀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이 해 LG 타자진의 유일한 동아줄과 같은 존재는 출루율왕과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리드오프 홍창기였다. 리드오프가 팀 타선의 유일한 기둥이었으니 나머지 주전 선수들인 김현수, 이형종, 이천웅, 유강남, 오지환은 정말 농담이 아니고 싹 다 망했다. 외국인 타자들도 다를 바 없었는데, 저번 시즌 어마어마한 홈런포를 쏘아올리며 활약한 라모스는 부진을 거듭하다 부상으로 결국 시즌 중 웨이버 공시되었다. 하지만 라모스는 양반일 정도로 그보다 더 최악인 외국인 타자가 들어오니 바로 보어였다. 보어는 영입되자마자 공수 모두 최악의 모습만을 보여주며 앞서 언급한 국내 선수들보다 못한 모습을 보여 결국 9월 중순 엔트리에서 말소된 이후 돌아오지 못했다. 나머지 김민성도 타격에서 의문점만 남는 모습이었으며, 주전 2루수 정주현 또한 타격에서 별로인 모습을 보여 정찬헌을 내주고 서건창을 트레이드로 영입하는 강수를 두었으나 서건창도 정주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나마 이번 시즌 히트상품이라 할 수 있는 신예 문보경이 1군에 자리를 잡는 모습을 보였고, 이 외에 이영빈, 이재원, 문성주가 1군에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투수들을 살펴보면 선발은 켈리 말고는 시즌 내내 상수인 선발투수가 없었다. 윌슨을 대신해서 데려온 수아레즈는 시즌 초반 압도적인 포스를 뽐냈으나 시즌 후반 부상과 태업 의심으로 여론이 악화되었고, 지난해 10승으로 커리어하이를 찍은 임찬규는 시즌 초반 부친상을 겪는 등의 내외적인 일이 겹쳐 크게 부진했지만 시즌 후반 신인 시절의 구속을 회복해 토종 에이스의 모습을 보여줬다.[60] 저번 시즌 신인임에도 가능성을 보여준 이민호는 기복이 심했으며, 정찬헌은 허리 문제로 정상적으로 5일 로테이션을 소화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고, 결국 서건창과의 트레이드로 키움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문제는 정찬헌을 대체할 선발이 없었다는 것이었기에 이는 큰 패착이었고, 9월에 수아레즈가 부상으로 빠질 당시 손주영, 이상영, 김윤식과 같은 유망주들과 배재준, 이우찬과 같이 이미 다 긁은 꽝 복권을 썼으나 모두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시즌 막판 호투를 보여준 임준형이 주목을 받을 정도. 또한 양석환 ↔ 함덕주 트레이드로 영입된 함덕주는 당초 선발투수의 역할을 기대하고 영입했으나 막상 물집으로 인해 3이닝도 소화하지 못하는 실망스러운 모습이었으며, 그마저도 시즌 중반에는 수술을 받으면서 전력에서 이탈했다.

그나마 이 시즌 LG에게 있어서 동아줄과 같은 존재가 홍창기 말고 또 있었으니, 바로 불펜진이었다. 저번 시즌 2차 드래프트로 영입된 김대유가 포텐이 터지며 핵심 좌완 불펜으로 성장해 진해수의 부담을 줄여줬고, 이정용 또한 저번 시즌보다 한 단계 더 스텝 업하며 필승조의 역할을 다했으며, 정우영은 시즌 초반 좌타자 상대로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후반기에는 LG팬들이 기대했던 모습으로 최고 구속 157km/h의 투심으로 상대 타자들을 윽박질렀다. 이 외에도 송은범은 마당쇠 역할로 기존 필승조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불펜진의 언성 히어로였으며, 투수로 전향한 백승현과 트레이드로 영입된 채지선 또한 불펜의 한 축을 담당했다. 그나마 불펜진에서 아쉬웠던 선수를 꼽으면 마무리 고우석인데, 시즌 초반에는 언터처블의 모습으로 뒷문을 막아냈으나 도쿄 올림픽 한일전 탭댄스 사건 이후로 멘탈이 흔들려 시즌 후반, 특히 시즌 막판 심각한 부진에 빠지며 팀의 정규시즌 우승 희망을 끊어버렸다.

5.8.1. 준플레이오프

이번 시즌에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스킵하고 바로 준플레이오프에서 시작하며 조금의 휴식일을 가지고 맞이한 준플레이오프 상대는 키움을 2차전까지 간 끝에 승리하고 올라온 최대 라이벌 두산이었다. 두산이 키움을 상대로 2차전까지 가며 체력을 빼놓고 왔기에 이번에야말로 시리즈 승리가 예상되었다.

그러나 1차전에서 외국인 투수 수아레즈를 선발로 냈고, 두산은 최원준을 선발로 내보냈기에 선발 싸움에서 유리했으나 최원준을 상대로 득점권 찬스를 4번이나 만들어냈으나 중요한 상황에서 허약한 LG 타자들이 찬스를 다 날려먹는데 반해 LG는 5회초에 두산 김태형 감독이 비디오 판독 결과에 대해 상황 설명을 해달라고 나온 것으로 미끼를 던졌는데, 이걸 류지현이 덥썩 물어 비디오 판독 결과에 항의했으니 퇴장해야 한다고 항의를 하는 바람에 9분이나 경기가 지연되어 수아레즈의 어깨가 식어버려 이후 수아레즈가 이후 난조를 겪으며 추가점을 허용하는 원인을 제공하고 말았다. 이후 중요한 후반부에서 만루 찬스를 살리지 못한 것에 더해 정주현의 결정적인 클러치 에러까지 그야말로 공수 모두 최악의 모습으로 5:1로 패배했다. 게다가 적은 점수차로 인해 정우영, 김대유, 이정용, 진해수, 백승현까지 필승조를 대부분 소모했기에 2차전까지 암담하게 만들었다.

2차전에서는 그나마 4안타를 올린 김민성을 포함해 7회초 5득점을 내는 등의 모처럼 타선이 폭발하고, 선발도 켈리를 내세웠고, 예상대로 켈리가 호투를 거둠으로써 투타 밸런스가 간만에 맞아떨어지는 야구로 9:3 승리를 거두며 시리즈 스코어 1:1로 균형을 맞추며 삼성의 상대가 될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놓고 최종 3차전까지 가게 되었다.[61]

3차전에서는 선발 임찬규가 초반부터 흔들려 3점을 내주는 바람에 급하게 수아레즈를 불펜으로 투입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하지만 타자들은 거의 매이닝 득점권 찬스를 만들었으나 득점은 1득점 밖에 없었으며, 결국 5회초 대참사가 나고야 말았다. 김윤식을 불펜으로 올리자 귀신같이 두산의 타선이 폭발하기 시작했고, 2사 만루에서 김민성의 실책으로 인해 이닝을 끝내지 못한 나비효과는 정수빈의 싹쓸이 3루타로 이어지며 게임이 터지는 등 정말 총체적 난국의 모습으로 두산에게 압도당해 결국 10:3으로 완패하며 시리즈 스코어 1승 2패로 처참하게 업셋당했다.[62]

결과적으로 3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기에 이제는 포스트시즌 경험 부족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도 될 정도의 연차가 쌓였지만, 여지없이 정규시즌에 보여준 문제점을 온 몸으로 노출하며 포스트시즌 경험이 풍부한 두산에게 이번에도 압도당하며 탈락하고 말았다.

5.9. 2022년

저번 시즌에 이어서 이번에도 우승 후보로 평가받았다. 시즌 전, FA로 삼성의 중견수 박해민을 4년 60억에 영입하며 외야 수비 보강에 나섰고, 이제 진짜 그동안의 포스트시즌 부진은 담금질이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정규시즌으로만 한정했을때는 거의 1994년을 소환할 정도로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었던 시즌이었다. 시즌 초반부터 국내 선발진이 시들시들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합류한 이호준 타격코치의 훌륭한 코칭 덕분에 훨씬 강력해진 타선과 저번 시즌에 팀의 희망이었던 불펜은 여전히 건재하여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kt전과 롯데전 스윕패, 그리고 어린이날 대참사로 분위기가 내려갈뻔한 것을 빠르게 수습해 다시 승리를 적립해나갔고, 6월부터 타선의 힘이 더욱이 강력해지며 그야말로 승리를 쓸어담기 시작했다. 실제로 4월과 5월 승률은 각각 .560과 .538로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지만 6월부터는 승률이 .714, .632, .700으로 수직상승하며 단숨에 상위권 싸움에서 선두권 싸움으로 합류했고, 시즌 초반 개막 이후 압도적인 페이스를 기록했지만 후반부로 가면 갈 수록 에너지 레벨이 떨어져가던 SSG를 붙잡을 수도 있다는 희망까지 생기기도 했으나 막판 타선의 힘이 떨어지는 바람에 결국 끝내 붙잡질 못하며 선두와 2게임차 2위에 만족해야했다. 하지만 정규시즌 2위도 암흑기 탈출 시즌인 2013년 이후 9년만의 성적이었고, 결국 최종 성적 87승 2무 55패 승률 .61327년 만의 6할에, 구단 역사상 최다 승 기록 경신으로 그야말로 순위 빼고 모두 완벽한 시즌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게다가 피타고리안 승률은 .640으로 선두 SSG보다도 뛰어날 정도였다. 또한 잠실 라이벌 두산과의 상대전적 10승 6패로 2014년 이후 8년만에 상대전적 우세를 점하며 그동안 끊임없이 시달려온 두산전 악몽을 떨쳐냈다.

먼저 타선부터 살펴보면 지난 시즌 리그 최악의 타선이라고 믿기기 힘든 최고의 불방망이를 선보였다. 먼저 지난 시즌 팀의 타선을 홀로 이끈 홍창기는 옆구리 부상 이후 후반기 부진을 겪었어도 출루율 5위로 나쁘지 않은 시즌을 보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홍창기가 기록한 성적이 기대치에 비해 아쉽다고 느낄 정도로 다른 타자들의 타격 성적은 정말이지 훌륭했다. 오지환은 개인 첫 20-20 클럽을 기록하며 생애 첫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김현수 또한 비록 3할은 기록하지 못했지만 23홈런으로 장타력에서 확실한 이점을 보여주었다. 또한 박해민은 수비에서는 물론 타격에서도 나쁘지 않은 모습으로 자신을 영입한 이유를 보여주었으며, 지난 시즌 혜성같이 등장한 문보경은 전년도보다 더욱이 스텝업에 성공하며 김민성을 밀어내고 주전 3루수가 되며 차세대 팀의 프랜차이즈의 탄생을 알렸다. 채은성 또한 1루수 전향 이후 4번타자로 나쁘지 않게 시즌을 보냈으며, 이재원은 몇 안되는 기회에도 훌륭한 파워를 보여주며 차세대 거포로 성장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무엇보다도 이번 시즌 최고 히트상품은 바로 문성주. 한때는 장외 타격왕까지 노릴 정도로 정말 놀라운 타격 실력으로 이 선수가 정녕 2차 10라운드 턱걸이로 지명된 선수가 맞나 싶을 정도로 포화 상태인 LG의 외야수 중 한 명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물론 모든 선수가 타격에서 불방망이를 선보인 것은 아닌데, 유강남은 계속해서 우하향인 그래프를 반등시키지 못하며 결국 홈런 갯수가 8개에 불과하며 커리어 로우를 다시 경신했다. 게다가 해당 시즌은 외국인 타자 없이 구축한 불방망이 타선이었기에 더욱 더 놀라웠다. 먼저 루이즈는 시범경기에서의 빈타를 정규시즌에서도 보여주며 결국 시즌 중 웨이버 공시되었으며, 대체로 데려온 가르시아 또한 초반 8월에는 KBO 리그 역대 5번째 좌우 연타석 홈런을 기록하며 그동안 LG의 아킬레스건인 외국인 타자 문제를 해결하는 줄 알았으나 분석이 끝난 9월부터는 공수 양면에서 부진하며 결국 시즌을 완주하기 전에 웨이버 공시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LG의 팀 타격 WAR은 31.02로 리그 1위이며, 팀 wRC+도 113.4로 리그 1위를 기록하며 그야말로 리그 최고의 불방망이 타선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투수쪽을 보면, 선발은 우승 경쟁을 하는 팀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많이 아쉬운 편이었다. 외국인 투수인 켈리플럿코는 리그 최고의 외인 원투펀치로 불리우며 둘이 모두 15승 이상을 세웠고, 특히 켈리는 16승으로 리그 다승왕에 오르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그러나 이 외에 국내 선발진은 형편없었는데, 먼저 임찬규는 저번 시즌 149km/h까지 올라갔던 구속이 다시 떨어지며 FA를 앞두고 있는 시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부진으로 팀의 연승 스토퍼로 전락해버렸으며, 이민호는 12승을 거두긴 했으나 세부 내역을 뜯어보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63] 그나마 8월 말부터는 김윤식이 놀라운 호투를 연이어 보여주며 팀의 선발진의 중추로 자리매김하는 등, 마냥 실망스럽다고는 할 수 없긴 했다. 불펜진은 고우석이 저번 시즌 막판의 부진을 딛고 시즌 내내 언터처블의 모습으로 커리어하이를 찍으며 42세이브로 프랜차이즈 역대 최다 세이브를 기록하며 생애 첫 세이브왕에 올랐고, 정우영 또한 잠시 부진하긴 했지만 35홀드로 자신의 생애 첫 홀드왕에 오르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이 외에도 김대유 또한 저번 시즌에 비해서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필승조로써는 손색 없는 경기력이었으며, NC에서 방출되어 영입된 김진성, 진해수, 송은범도 필승조가 나오기 힘든 상황에 등판해 자신의 몫을 다해냈다. 그렇게 LG는 리그 최강의 불펜진으로 모두가 염원하던 전원 필승조화에 성공한 모습으로 시즌을 마쳤다.

5.9.1. 플레이오프

정규시즌 2위였음에도 불구하고 피타고리안 승률은 1위 SSG를 뛰어넘을 정도로 압도적인 성적을 거뒀고, 선발진을 제외하면 뭐 하나 결점이 없다고 평가받을 만큼 이번 시즌 팀의 전력은 여타 2위들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정말 강력했다. 거기에다 지난 두 시즌간 발목을 잡은 두산이 이번 시즌에 9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해 맞대결 자체를 하지 않게 된 것도 호재이며, 상대팀인 키움은 준플레이오프에서 5차전까지 간 끝에 kt를 꺾고 올라온 팀이라 체력적인 부분에서 밀릴 수 밖에 없을 뿐더러, 객관적인 전력 마저도 한 수 이상 아래라고 평가받을 만큼, 이번에야말로 포스트시즌 잔혹사를 이겨내고 20년 만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뤄낼 것이라 대다수의 전문가들과 팬들 모두 믿어 의심치 않아했다.

실제로도 1차전에서 포스트시즌 필승 카드 켈리를 내보냈고, 타선도 적절히 안타와 상대의 실책을 곁들여서 순식간에 앞서나갔다. 켈리 또한 믿음에 부응하며 푸이그에게 투런 홈런을 맞은 것 외에는 훌륭한 피칭으로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고, 이후 6회말 타선이 2점을 더 뽑으면서 여유롭게 3:6으로 승리. 한국시리즈 진출 확률 80.6%의 확률을 얻음으로써 LG팬들은 20년 만에 한국시리즈 진출이 눈 앞에 왔다며 기뻐하고 있었다.

그러나 2차전에서 부상으로 인해 한 달간 실전 등판이 없던 플럿코를 곧이곧대로 믿고 선발로 내보낸 것도 모자라 흔들리던 와중에도 류지현은 플럿코를 방치했고, 이는 그대로 플럿코가 6실점을 헌납하며 시리즈 전체 분위기가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한 원인이 되었다. 3회 2득점과 5회 4득점으로 한 점 차까지 추격했으나 더이상의 득점은 나오지 않으며 결국 7:6으로 패배. 시리즈 스코어는 1승 1패가 되고 말았다. 거기에다가 3차전 키움의 선발은 에이스 안우진인 반면, LG는 이제 시즌 막판 토종 에이스가 된 김윤식이었기에 2차전 패배는 너무나도 뼈아팠다. 분위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고척으로 가게 된 이상 3차전에서 분위기 반전이 필요했다.

3차전에서는 김윤식안우진이라는 불리한 선발 매치업에서도 김윤식이 크게 선전했고, 초반 2득점으로 앞서나갔으나 이후 류지현의 이상한 투수교체와 이로 인해 불펜들이 불을 지르는 환장할법한 시너지로 3실점을 허용하며 역전당했고, 이후 7회초에 바로 2득점으로 겨우 재역전에 성공했다. 그러나 다음 7회말에 이정용임지열이정후에게 각각 한 개의 공을 던진 결과가 역전 백투백 홈런으로 이어지는 대참사가 터지고 말며 4:6으로 다시 재재역전이 되었고, 8회초 무사 1,2루로 다시 찬스를 만들었지만 번트를 잘 대지 못하는 편인 문보경에게 굳이 번트를 지시해 결국 김재웅의 다이빙 캐치로 더블 아웃이 되는 최악의 경우의 수가 나오고야 말며, 결국 그대로 4:6으로 패배. 시리즈 스코어 1승 2패로 역전을 허용하며 이제 1패만 더 하면 한국시리즈도 올라가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하게 되는 비상사태가 되어버렸다.

결국 승리가 급해 4차전 선발로 1차전 선발이었던 켈리를 3일 휴식 후 올렸고, 3일 휴식은 거의 경험하지 않았던 켈리가 그나마 5이닝 2실점으로 나름 선방했으나 그마저도 타선의 침묵과 7회말 정우영이 투수 앞 땅볼을 처리하지 못한 것의 나비효과로 추가 득점을 허용해 그대로 1:4로 패배. 1차전 승리 이후 3연패로 시리즈 스코어 1승 3패로 또다시 업셋당하는 대굴욕을 당했다.

정규시즌에서 압도적인 2위로 대다수의 사람들 모두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거라고 거의 확정짓다시피 했으며, 전력상으로도 체력상으로도 그 어느 무엇도 키움에게 뒤쳐지지 않았기에 이번 포스트시즌은 다른 포스트시즌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줄기차게 썼던 포스트시즌 경험 부족이라는 변명도 이제는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로 통하지 않는 것을 생각할 때, 이젠 팀이 아예 안되는 팀인가라고 의심이 들 정도였다.

결국 그로 인해 4차전 경기를 직관한 구본능 구단주 대행의 격노를 유발했으며, 당연하게도 류지현은 재계약 없이 1994년 선수 입단 후 무려 29년간 몸담아온 LG를 쓸쓸히 떠나게 되었다.

5.10. 2023년: V3

파일:23LG_정규시즌우승.png
29년 만에 이뤄낸 정규시즌 우승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업셋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LG는 한국시리즈가 진행되던 와중 갑작스럽게 염경엽이 신임 감독으로 선임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게 되었다. 전말은 원래 2군 총괄 코디네이터 직책을 제안받은 염경엽을 구본능 구단주 대행의 독단으로 1군 감독으로 선임하게 되었으며, 이 사실에 모든 LG팬들이 폭발하였다.[64] 게다가 이번 시즌에는 최소한 전력 유지라도 했던 지난 몇년과 달리 해당 시즌부터 도입된 샐러리캡으로 인해 내부 FA 협상에서 난항을 겪게 되었고, 결국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들인 유강남채은성을 각각 롯데, 한화에게 내어주며 중요한 포수 포지션과 1루수 포지션에서 심각한 전력 유출을 겪게 되었다. 그나마 박동원을 4년 65억에 계약하며 포수 문제는 한시름 놓게 되었지만 다른 경쟁팀들이 전력 보강을 하는데 반해 LG는 되려 전력이 악화되어버리며 새로운 감독 염경엽이라는 것과 정해지지 않은 자리인 1루수와 2루수의 의문점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번 시즌에도 LG는 포스트시즌은 확정적이지만, 다른 팀들이 전력보강을 하며 평준화가 되었기에 우승까지는 조금 어렵지 않냐는 예측이 많았다.

그렇게 시작된 2023년 정규시즌. 개막전에서 kt를 상대로 참패를 거두며 어렵게 시즌을 시작했지만, 4월 중반까지는 그래도 SSG와 함께 선두 자리 쟁탈전을 하는 등, 우려를 불식시키나 했다. 그러나 4월 말이 되자 KIA와의 홈 3연전에서 스윕패를 당하며 단숨에 3위까지 추락했다. 단순히 3연전에서 스윕패를 당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리그 최강의 공격력을 가지고도 그것을 깎아먹는 일명 '뛰는 야구'와 병적인 작전 집착으로 인해 곪아있던 문제점이 KIA전에서 한꺼번에 터져버린 것이다. 게다가 시즌 전 건강 문제로 2군으로 내려간 경헌호 코치가 실제로는 염경엽과의 불화로 인해 내려간 거라는 루머까지 도는 등,[65] 모든 LG팬들이 당장 염경엽을 경질해야 한다는 여론이 한때 들끓기도 했다. 그러나 5월부터는 이적생 박동원의 미친 페이스를 필두로 타선이 불이 붙었고, 염경엽도 작전을 줄이기 시작함과 더불어 기존 플럿코만이 고군분투하던 선발진에 구세주 임찬규가 가세한 덕에 경기력이 안정화되며 7연속 위닝시리즈와 30승 선착으로 선두 자리를 빼앗아냈다. 그러나 6월에 접어들면서 NC-키움-한화를 상대로 도합 2승 1무 6패에 그치며 다시 위기가 오나 싶었으나 삼성전 스윕 이후 폼이 올라오며 SSG에게 위닝을 거둔 후 선두 자리를 지켜나갔고, 이대로 올스타 브레이크까지 기세를 이어가나 싶었다. 그러나 올스타 브레이크를 전후로 5연패에 빠지며 선두 SSG와 불과 반게임차까지 좁혀지며 선두 자리가 위태로웠으나 가까스로 연패를 끊고 난 이후 두산전에서 스윕승으로 다시 분위기를 반전시켰고, 8월부터는 상승세와 함께 중간중간 스윕패도 겪으며 위기를 맞기도 했고[66], 항저우 아시안 게임으로 인한 선수 유출[67]에도 승리를 쌓아나가더니 마침내 10월 3일, 정규시즌 우승 매직넘버가 소멸되며 29년만의 정규시즌 우승 + 29년만의 한국시리즈 직행 + 21년만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일궈냈다. 또한 2014년 넥센 감독 시절과 2019년 SK 감독 시절에 이루지못한 염경엽 감독의 커리어 첫 정규시즌 우승이며, 한국시리즈 진출도 2014년 넥센 이후 9년만이다. 시즌 최종 성적은 86승 2무 56패 승률 .606이었고, 2위 kt와의 게임차는 6.5게임차였다.[68]

타격에서는 저번 시즌과 비슷한, 아니 오히려 더 강력한 타격을 선보였다. 먼저 FA로 팀을 떠난 기존 포수와 1루수 자원인 유강남채은성의 경우, 이 빈 자리를 박동원오스틴이 메우는 것을 넘어 200%의 활약으로 팀의 타선에 큰 힘이 되어주었다. 박동원은 기존 우하향하던 유강남의 파워를 포수 20홈런으로 자신의 장타력을 과시했으며, 당초 외야수로 영입된 오스틴은 예상하지 못했던 1루 수비도 안정적으로 소화했을 뿐더러,[69] 타격에서도 23홈런 95타점으로 홈런, 타점 부문 3위를 기록하며 wRC+가 153.9를 찍는 위력적인 모습으로 지난 2년간 외국인 타자가 부재하다시피한 LG의 외국인 타자 슬롯을 완벽하게 차지하며 당당히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70] 게다가 리드오프 홍창기도 지난 시즌 후반기 부진을 딛고 다시 한 번 리그 정상급 리드오프가 자신임을 증명하는 최고의 활약으로 출루율왕과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2년만에 다시 수상했다. 게다가 오지환도 저번 시즌 20-20 클럽에 비해 부진하다고 생각될 뿐이지, wRC+ 127로 유격수로 한정하면 최상급의 퍼포먼스로 2년 연속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김현수도 저번 시즌보다는 아쉽지만 그래도 wRC+ 114.4로 평균 이상은 해냈으며, 문보경도 후반기 맹타로 자신의 첫 두 자릿수 홈런으로 한 단계 더 진화한 모습을 보였다. 이 외에도 저번 시즌에 이어 여전히 홍창기에 버금가는 출루 능력을 뽐낸 문성주, 압도적인 중견수 수비와 함께 준수한 타격을 보여준 박해민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 최고 히트 상품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새로운 주전 2루수 신민재이다. 2019년부터 간간히 대주자로 나왔던 선수였고, 그마저도 저번 시즌에는 거의 2군에만 머물러 야구를 그만둘까도 했던 이 선수가 놀랍게도 팀의 최대 골칫거리인 2루수 자리에 정착한 것이었다. 해당 시즌에도 대주자로 기용이 되었지만 5월 9일 키움전에 끝내기 내야안타를 친 이후로 5월 21일 첫 선발 기회를 잡게 되었고, 그 날 멀티히트를 때려내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여 6월부터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자리를 잡아나갔고, 그렇게 팀의 주전 2루수가 된 것이었다. 특유의 컨택으로 안타를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애매한 땅볼이 나오면 빠른 발로 1루에 살아나갔으며, 그 빠른 발로 주자로써의 역할을 다 하는 등, 하위타순에서 없어서는 안될 선수가 되었다. 거기에다 2루 수비는 정말 놀랍다는 말을 넘어 환상적일 정도로 물이 새지 않는 완벽한 수비로 팀에 큰 보탬이 되며 올해 팀의 가장 큰 복덩이가 되었다.

투수진에서도 선발은 4월까지만 하더라도 플럿코를 제외하면 믿을만한 선발이 없었다. 4년간 팀의 에이스였던 켈리는 켈리답지 않게 부진했고, 당초 선발진에 합류한 김윤식, 이민호, 강효종과 같은 선수들이 모조리 선발진에서 떨어져나가 골머리를 앓았다. 그러나 5월부터 구세주가 등장했으니, 바로 임찬규였다. 저번 시즌 끔찍한 부진으로 당초 롱릴리프로 시즌을 시작했던 임찬규는 앞서 말한 투수들이 이탈하자 선발 로테이션에 돌아왔으며, 이후 믿을 수 없는 대각성으로 토종 에이스로 급부상하며 14승으로 국내 선발들 중 최다승을 거두었으며, ERA도 3.42로 리그 9위라는 저번 시즌 임찬규를 생각하면 도저히 믿기 힘든 최고의 성적으로 데뷔 13년차에 커리어 하이 시즌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 둘만으로는 선두 싸움을 이어나가기에는 어려움이 있었고, 실제로 7월에는 이 둘이 부진하기 시작하면서 위기가 오나 싶었다. 그래서 결국 선발 자리를 메우기 위해 트레이드 마감 시한이 다가오는 7월 29일, LG는 키움에게 이주형, 김동규와 1라운드 지명권까지 내주며 최원태를 데려오며 승부수를 던지게 된다. 그 덕분인지 최원태가 첫 경기를 제외하면 부진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선수들이 각성하며 이 승부수는 간접적인 효과를 보게 되었다. 먼저 임시 마무리로 시작해 심각한 부진을 겪어 시즌 중반 선발로 전향한 이정용은 시즌 후반 예상치 못한 호투를 연이어 선보이며 선발 문제를 겪던 팀에 큰 보탬이 되었고, 전반기 내내 부진했던 켈리 또한 구위를 회복하며 이전에 알던 켈리의 모습으로 돌아오며 5년 연속 10승을 채웠으며, 김윤식도 전반기 부진 이후 2군에서 긴 조정 기간을 거쳐 1군에 돌아왔을 때 다시 저번 시즌 가을의 모습을 재현하며 부상으로 빠진 플럿코의 자리를 대체했다. 이 외에도 이지강 또한 데뷔 첫 승리와 함께 선발에서 가능성을 보여주는 호투를 펼치기도 했다.

불펜진 또한 여전히 강력했다. 시즌 초반 마무리 고우석과 셋업 정우영이 부상 및 부진으로 이탈한 것을 함덕주박명근이 더블 스토퍼로 막아주었다. 그 중 박명근은 비록 체력 이슈로 후반기에 부진하며 아쉬움을 삼켰지만 함덕주는 지난 2년간의 부진을 털어내고 리그에서 손꼽히는 핵심 불펜으로 활약해 드디어 왜 자신을 트레이드로 영입했는지 보여주었다. 또한 해당 시즌 불펜진의 다크호스로 평가된 유영찬이 시즌 내내 필승조의 역할을 해줬으며, 투수로 전향한 백승현 또한 필승조로써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또한 후반기에 매직넘버 카운트다운때마다 중요한 순간에 나타나서 연일 호투를 선보인 김진성은 38세라는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KBO 리그 역대 최초로 우완 투수 80경기라는 많은 경기를 소화하며 팀을 위해 헌신했다. 비록 정우영과 고우석이 끝내 반등하지 못하고 커리어 로우를 거뒀지만 거의 모든 선수들이 필승조라고 해도 될 정도로 여전한 안정감을 자랑해 이 둘의 부진을 모두 가려주었다.

5.10.1. 한국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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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 만에 다시 불어온 신바람 통합 우승, V3

2002년 한국시리즈 이후 자그마치 21년이라는 세월을 지나 다시 한국시리즈를 치르게 된 LG의 상대팀은 여름부터 엄청난 마법을 일으키며 꼴지에서 2위까지 올라왔고, 플레이오프에서 NC를 상대로 리버스 스윕으로 꺾으면서 한국시리즈에 오른 kt가 되었다.

1차전에서는 양 팀 모두 추운 날씨 속에 실책들과 호수비가 겹치며 8회까지 2:2로 팽팽한 승부가 이어졌다. 그러나 9회초 마무리 고우석이 2사 이후 배정대에게 볼넷을 허용한 이후 문상철에게 왼쪽 펜스를 맞추는 일격을 맞았고, 이후 그대로 3:2로 패배하며 중요하다 여겨진 1차전을 kt에게 내주고 말았다.

1차전 패배로 처진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2차전. 호투가 절실했던 선발 최원태가 불과 0.1이닝만에 4실점을 하는 충격과 공포의 피칭으로 순식간에 4:0이 되어버리며 마지막 관문인 한국시리즈에서도 잔혹사가 이어지며 모든 꿈이 무너지나 싶었다. 그러나 이후 이정용-정우영-김진성-백승현-유영찬-함덕주-고우석으로 이어지는 불펜진들이 남은 8.2이닝을 단 한 점도 허용하지 않았고, 타선도 3회말 오스틴의 적시타, 6회말 오지환의 2002년 최동수 이후 21년 만에 한국시리즈 홈런인 솔로 홈런, 7회말 김현수의 적시 2루타로 야금야금 점수를 따라잡아 한 점 차까지 따라잡았다. 그리고 8회말, 핵심 불펜 박영현을 상대로 선두타자 오지환의 볼넷, 문보경의 희생번트로 1사 2루의 찬스에서 박동원이 타석에 들어섰고, 박영현의 체인지업을 그대로 받아쳐 좌중간 펜스를 넘기는 역전 투런으로 4:0으로 끌려가던 경기를 기어이 뒤집어 최종 스코어 4:5로 2차전을 극적으로 가져오게 되었다.[71]

수원으로 장소를 옮겨 진행된 3차전에서는 한국시리즈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가 펼쳐졌다. 3회초 2사 2,3루의 찬스에서 오스틴이 시즌 내내 LG가 공략하지 못하던 벤자민에게서 좌측 파울 폴을 맞추는 선제 쓰리런으로 기분 좋게 3:0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3회말 선발 임찬규가 볼넷-안타-2루타로 한 점을 허용하고 무사 2,3루 위기까지 자초했으나 이후 뜬공과 병살타로 무실점으로 겨우 3:1로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이후 4회말에도 2사 1,2루가 되자 LG 벤치는 임찬규를 내리고 김진성을 올렸고, 첫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내며 만루까지 몰렸지만 우익수 플라이로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이 교체는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5회말, 1사 1루 상황에서 오지환이 평범한 병살 타구를 놓쳐버리는 치명적인 실책으로 1사 2,3루가 되어버렸고, 이 실책의 나비효과는 먼저 kt 타자들의 연속 적시타로 순식간에 동점이 되었고, 곧바로 역전 적시타까지 허용하며 순식간에 3:4로 뒤집혀버렸으며, 설상가상으로 불펜 자원들 중 정우영, 함덕주, 백승현을 모조리 5회에 소모하는 바람에 불펜 운영에도 크게 차질을 빚게 되었다. 하지만 6회초, 바로 선두타자 문보경이 안타를 치고 나간 이후 다음 타자 박동원이 바뀐 투수 손동현을 상대로 좌측 담장을 넘기는 역전 투런 홈런을 치며 다시 5:4로 앞서나가게 되었다. 이후 6회말과 7회말을 저번 2차전때 2.1이닝을 퍼펙트로 막은 유영찬이 이번에도 2이닝을 막으며 팀의 불펜 소모를 최소화했다. 그렇게 8회말, LG는 마무리 고우석을 조기 투입하는 초강수를 두었지만 그 결과는 안타-희생번트-2루타로 순식간에 동점을 허용한 데 이어 시리즈 내내 부진하던 박병호에게 역전 투런 홈런을 맞아버리는 바람에 다시 5:7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모든 LG팬들은 절망했고, 이대로 경기가 끝날거라고 자포자기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9회초, kt는 마무리 김재윤을 올리게 된다. 선두타자 홍창기가 안타를 치고 나갔지만 이후 2아웃이 되며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오스틴이 0-2의 볼카운트에서 볼넷을 만들며 출루했고, 다음 타자 오지환이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오지환이 받아친 2구는, 오른쪽 담장을 넘겨버리는 극적인 역전 쓰리런이 되며 그렇게 LG는 남은 아웃카운트 단 하나를 남겨놓고 다시 리드를 잡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승리를 위해 무조건 막아야 하는 9회말, 그대로 마무리 고우석이 올라왔지만 1사 이후로 몸에 맞는 공과 안타를 허용하며 1사 1,2루가 되어버리자 더는 참을 수 없었던 LG 벤치가 고우석을 내리고 이정용을 투입하게 된다. 하지만 이정용이 던진 초구는 그대로 폭투가 되어버리며 순식간에 끝내기 주자가 득점권으로 진루하는 초비상사태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결국 배정대를 거르고 1사 만루 상황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김상수를 상대하게 된다. 그리고 이정용이 던진 2구를 김상수가 받아쳤는데, 그대로 이정용의 글러브 속으로 들어가며 1-2-3 홈병살로 이어지는 최상의 시나리오가 완성되어 최종 스코어 8:7로 극적인 2연승을 거두며 시리즈 스코어 2승 1패로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LG가 시리즈 분위기를 완전히 잡은 4차전에서는 선발투수 김윤식이 5.2이닝 1실점으로 자신의 몫을 다해주며 승리투수가 되었고[72], 타선은 초반 김현수의 선제 투런 홈런으로 앞서나간 것을 시작으로 문보경의 투런 홈런과 오지환의 이틀 연속 쓰리런 홈런[73]으로 맹타를 휘둘렀고, 7회초에는 한국시리즈 역대 최초인 8타자 연속 안타 신기록을 세워내는 등, 그야말로 물이 오른 타격감으로 15:4 대승을 거두어 이제 모든 LG팬들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통합 우승까지 단 1승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그리고 5차전에서도 다시 등판한 선발 켈리가 무난하게 잘 던져줬고, 타선도 박해민이 선제 2타점 적시타와 4회초 팀을 지켜내는 슈퍼캐치로 공수 모두 맹활약하는 활약상과 함께 적절하게 6득점을 지원해줬다. 이후 불펜진에서도 유영찬함덕주가 잘 처리하며 마지막 9회초 아웃카운트 3개만을 남겨뒀고, 마운드에는 팀의 마무리 투수 고우석이 마운드 위에 올라서게 되었다. 첫 타자 박경수를 3루수 파울 플라이로 잡아내며 1아웃, 다음 타자 조용호도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내며 이제 29년 만에 통합 우승까지 남은 아웃카운트는 단 한 개. 다음 타자는 배정대였다. 그리고 2-2 상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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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 만의 통합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

배정대의 얕은 플라이를 2루수 신민재가 잡아내면서 경기 종료. 최종 스코어 2:6. 시리즈 스코어 4승 1패로 kt를 무찌르며 2023년 11월 13일, 1994년 10월 23일 이후로 정확히 10613일만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면서 29년 만의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원동력이 되었던 것은, 바로 막강한 타선이었다. 한국시리즈 동안 LG의 타선은 5경기에서 wRC+ 157.3에 장타율 .533, OPS .931로 역대 한국시리즈 팀 역사상 가장 훌륭한 기록이었다. 선수 개개인면에서도 김용수 이후 역대 2번째 한국시리즈 MVP 수상자가 된 오지환은 단일 한국시리즈 역사상 최초로 3경기 연속 홈런을 때려냈고, 박동원 또한 시리즈의 분기점이 된 2,3차전에서 2경기 연속으로 역전 투런 홈런을 치며 65억의 값어치를 제대로 증명해냈으며, 오스틴 또한 3차전 선제 쓰리런 홈런과 이외에 적절한 타격으로 포스트시즌에서 외국인 타자의 유무를 확인할 수 있듯이 타선에서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또한 튼튼한 불펜진 또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외국인 선수 한 명이 엔트리에서 제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2,3차전에서 벌떼야구로 이를 상쇄시켰다. 특히 그 중에서 가장 중추 역할을 해주었던 것은 유영찬으로, 데뷔 이후 첫 포스트시즌 무대인 한국시리즈에서 2차전 2.1이닝 무실점, 3차전 2이닝 무실점으로 팀이 필요로 할 때 특급 활약을 선보였으며, 약점인 선발에서도 1,5차전 켈리와 4차전 김윤식의 호투로 지친 불펜진에게 휴식을 선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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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어쩌다 보니 예전 LG의 멸칭이였던 겨울쥐가 다시 주목받게 되었는데, 4연승을 내달린 2차전부터 절기상 겨울의 시작인 입동이어서 긍정적인 의미의 겨울쥐가 되어버렸다. 이후에도 LG가 우승하려면 정규시즌 때 최대한 성적을 뽑아내고 포스트시즌 때 입동을 넘겨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5.11. 2024년

시즌 전 FA로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들인 오지환과 6년 124억 계약[74]을 하고, 저번 시즌 14승을 거두며 놀라운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낸 임찬규도 4년 50억의 계약으로 재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저번 시즌 핵심 불펜인 함덕주도 4년 38억에 재계약을 맺으며 집토끼들을 모두 지켰다. 거기에다 1선발 역할을 기대하며 플럿코를 대신해서 엔스를 영입했다. 다만 저번 시즌 선발에서 기대치 이상의 활약을 보여준 이정용이 시즌 후 상무로 군입대를 했으며, 고우석이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 리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이적하는 등, 투수쪽에서 전력 유출이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디펜딩 챔피언인 만큼 이번 시즌에도 우승 후보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는 달리 초반 KIA전 스윕패를 포함해 경기력에서 기복이 심한 모습으로 4월까지 승패마진을 고작 +1밖에 쌓지 못하며 5위에 머무르며 디펜딩 챔피언답지 않은 부진을 겪었다. 5월에 그나마 반등에 성공해서 다른 경쟁팀들이 부진한 틈을 타서 안정적으로 단독 2위까지 올라갔다. 6월에도 국내 선발진들의 부상과 불펜진이 붕괴되기 시작하는 악재 속에서도 월간 승률 5할 이상으로 버텼고, 7월 초에 KIA가 부진한 틈을 타 선두까지 탈환했다. 하지만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4연패를 박으며 떨어지는가 싶었지만 곧바로 7연승으로 반등하며 비록 KIA의 무서운 상승세로 인해 선두 자리가 멀어지기는 했지만 2위를 점하며 선두 쟁탈전을 위한 숨고르기를 했고, 결국 부진하는 것을 보다못한 LG 프런트가 5년 넘게 팀을 위해 헌신한 켈리를 웨이버 공시하고 에르난데스를 영입하는 강수를 두며 8월에 다시 올라가리라 다짐을 했다. 그러나 해당 시즌 8월 들어 LG는 투타 모두에서 박살난 경기력으로 올라가기는 커녕, 월간 승률 5할 미만으로 되려 내려가며 선두 KIA는 무슨, 2위 경쟁에서도 무시무시한 상승세를 거둔 삼성에게 밀려났다. 게다가 9월에는 4위 두산에게도 쫓기는 신세가 되며 미끄러지는 조짐이 보이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9월말 두산과의 3연전에서 위닝시리즈로 잡아내며 최종 성적 76승 2무 66패 승률 .535로 기대치에 비해 많이 낮은 승률이긴 하지만 일단 3위를 확정지어 6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준플레이오프 직행까지 확정지었다.

타선은 저번 시즌 통합 우승을 하는 데 큰 공을 세웠던 강력한 타선이라는 것이 무색하게 위력이 많이 떨어졌다. 특히 가장 심각했던 것은 일명 '오김박'이라 불리우는 고액 연봉자들인 오지환, 김현수, 박해민이었다. 먼저 오지환은 6년 124억이라는 대형 계약이 시작되자마자 공수 모두 저번 시즌보다 스탯이 떨어졌고, 중간에 부상으로 결장한 횟수가 많아 108경기 출장에 100안타도 기록하지 못했다. 그나마 wRC+가 100을 넘고 100안타도 치지 못한 와중에 두 자릿수 홈런을 친 부분은 그나마 다행인 부분. 다음 김현수는 나이가 36이라는 많은 나이로 인해 에이징 커브가 온 건지 장타력이 급감하며 wRC+가 고작 104.7밖에 되지 않았고, WPA와 득점권 타율까지 급감해 과거 클러치 히터로써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제일 심각하다 평가되는 박해민은 다른 걸 다 떠나서 OPS가 .700도 안되며, wRC+는 86.1로 그냥 타격에서 암덩어리의 모습을 보인, 지명수비 그 자체였다. 게다가 이러한 처참한 성적에도 수비와 주루 때문에 전 경기 출장을 소화하며 LG팬들의 속을 더 박박 긁어놓기도 했다. 그렇게 LG 타선은 이 셋의 대단한 활약 속에 8~9월에 이 셋을 포함한 주전 선수들이 단체로 심각한 타격 부진에 빠져버리며 선두 자리는 커녕, 2위 자리까지 뺏겨버리는 대형 참사가 터지고 말았다. 또한 2번타자로 중심타선과의 연결고리 역할을 잘 소화해낸 문성주는 잔부상에 시달려 전반기 좋은 성적을 다 깎아먹었고, 김범석 또한 초반 역전 만루홈런과 같은 임팩트로 LG팬들의 지지를 받았으나 이후 고질적인 체중 문제로 후반기에 부진했다. 그나마 이 시즌에도 타격쪽에서 좋은 소식은 존재했으니, 먼저 홍창기는 이번 시즌 부터 도입된 ABS에도 굳건히 2년 연속 출루율왕 타이틀로 자신을 증명했다. 그리고 이번 시즌 타선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오스틴은 wRC+ 147.8의 최고 성적과 타율 .319-32홈런-132타점으로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초 30홈런-100타점, 최초 타점왕, 최다 타점에 오르며 프랜차이즈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대활약으로 당해 홈런왕의 주인공 데이비슨을 제치고 2년 연속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또한 문보경 또한 저번 시즌에 이어서 후반기 맹타로 팀의 4번타자가 되어 타율 .301-22홈런-101타점으로 두산의 김동주 이후 잠실 토종 3루수 최초의 기록을 세웠고, 박동원 또한 저번 시즌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2년 연속 20홈런 고지를 밟아 비록 강민호의 부활로 인해 아쉽게 생애 첫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커리어 하이 시즌을 만들어냈으며, 마지막으로 신민재 또한 월등히 좋아진 타격 실력으로 이제 정말 모두가 인정하는 LG의 2루수가 되었다.

다음 투수들을 보자면, 먼저 선발은 저번 시즌 허약하다 평가받은 국내 선발들이라는 약점이 모조리 메워지며 순식간에 강점으로 변모했다. 먼저 임찬규는 4월과 8월 초에 잠시 주춤한 것과 6월에 부상으로 이탈해 규정 이닝을 채우지 못한 것을 제외하면은 두 시즌 연속으로 10승을 거둠과 동시에 타고투저 시즌에 3점대 ERA를 거두며 이제는 상수라고 해도 될 정도의 특급 활약으로 50억이 아깝지 않은 선수가 되었다. 최원태 또한 6월에 부상으로 이탈한 것으로 규정 이닝을 돌파하지 못한 것과 더불어 시즌 내내 LG팬들이 원했던 기대치는 미치지 못했으나 그래도 9승과 4.26의 ERA로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번 시즌 LG 최고의 히트상품은 바로 손주영이었다. 드디어 7년차 시즌에 기량이 만개하기 시작하며 이게 정말 5선발의 성적이 맞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의 특급 활약으로 9승이란 사실을 제외하면 규정이닝 돌파와 ERA 3.79로 자신의 풀시즌 1년차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다만 외국인 투수들은 당초 기대한 바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엔스는 시즌 초 1선발이라는 기대에 걸맞지 않은 불안한 모습으로 방출 위기에 몰렸지만 후반기 반등으로 살아남아 결국 풀시즌을 소화한 것과 더불어서 13승과 ERA 4.19로 그래도 준수하다고 생각되는 성적을 거뒀다. 다만 켈리는 저번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에도 부진하며 전술한 엔스와 함께 방출 위기에 몰렸다. 그래도 6월 25일에 8이닝 퍼펙트를 포함한 9이닝 1피안타 27타자 완봉승으로 켈리의 반등을 기대하는 팬들이 많았으나 결국 에이징 커브를 이겨내지 못하며 결국 시즌 중인 7월 20일에 고별전을 치르고 웨이버 공시되며 팀 내 최고의 외국인 선수라는 아름다운 칭호와 함께 팀을 떠나게 되었다. 그렇게 승리를 위해 켈리를 눈물을 머금고 보내주면서 데려온 에르난데스는 많은 LG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으나 기대와는 달리 불펜에서 뛰다가 급하게 선발로 뛴 영향 탓인지 구위 대비 체력이 약해 많은 피홈런과 의문점인 제구로 인해 팬들의 기대를 져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불펜은 저번 시즌 막강하다 평가받은 불펜진이라는 강점이 모조리 사라지며 순식간에 약점으로 변모했다. 시즌 내내 팀을 지탱해준 불펜은 27홀드를 기록한 39세 노장 김진성과 후반기에 체력 이슈로 부진했지만 26세이브로 데뷔 첫 풀타임 마무리 시즌을 나름 성공적으로 소화해낸 유영찬을 제외하면 그야말로 오펜하이머를 보는 듯한 재앙적인 불펜진이었다. 사실 시즌 전에 마무리 고우석이 포스팅을 통해 꿈을 쫓아 미국으로 갔고, 이정용 또한 군입대를 하며 안그래도 전력 유출이 생긴 LG 불펜진에 함덕주 마저도 FA 계약 직후 수술을 받아 전반기 아웃으로 약화된 불펜진에 대해서 걱정하는 시선도 존재했다. 그리고 시즌이 시작되자, 기존 핵심 불펜진인 백승현은 부진으로 1군과 2군을 왔다갔다 했고, 정우영도 슬라이드 스텝 장착에 대실패하며 원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저번 시즌 함덕주와 더블 스토퍼를 이룬 박명근도 시즌 초반 부진 이후 조금 호투하다 부상으로 빠진 이후 돌아오고 나서는 위력적인 공을 남은 시즌 동안 보여주지 못했다.1차 지명 출신으로 터지기만을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김대현은 잠깐 호투로 필승조 반열에 올라서나 했으나 귀신같이 떨어져나갔고, 8월에 복귀한 함덕주마저도 팀에 보탬이 되지 못했다. 결국 김진성과 유영찬 이 둘만이 유일한 필승조였던 탓에 이 둘이 많이 등판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8월에 접어들며 이 둘 마저도 퍼져버리며 LG 불펜은 그렇게 폭발했다. 그나마 저번 시즌 유강남의 보상 선수로 넘어와서 한 경기도 1군 경기에 등판하지 못했던 김유영이 좌완 불펜으로 그나마 괜찮은 모습을 보인 것이 위안거리.

5.11.1. 준플레이오프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역사상 최초로 정규시즌 5위 kt가 4위 두산을 업셋하는 이변을 일으키고 준플레이오프에서 LG를 상대하게 되었다.

1차전에서는 선발로 엔스가 선발로 나왔고, 문상철에게 투런 홈런을 맞은 것 빼고는 3실점으로 나름 괜찮게 막았다. 그러나 9월 막판에 괜찮아진 줄로만 알았던 타격이 다시 죽어버려 와일드카드 결정전 2차전 이후 단 하루 휴식한 고영표를 전혀 공략해내지 못했고, 9회말 2사 1루 김대원끝내기 도루실패로 화룡점정을 찍어 kt에 3:2로 패배하며 저번 한국시리즈에 이어 이번 준플레이오프에서도 1차전을 내줬다.

2차전에서는 선발 임찬규가 기대치에 걸맞는 피칭을 보여주었고, 이를 바탕으로 타격에서도 어제와는 다르게 초반 2실점을 바로 만회함과 더불어 kt 야수진의 수비 실책을 틈타 역전을 만들어냈고, 6회말 1사 만루 찬스에서 신민재의 적시타와 kt 좌익수 김민혁의 포구 실책이 이어져 3점을 벌리면서 그대로 2:7 승리를 거두며 저번 한국시리즈와 똑같이 1승 1패 균형을 맞추고 수원으로 향했다.

수원으로 이동한 3차전에서는 초반 박동원이 이번에도 홈런을 날리면서 기분 좋게 시작했다. 그러나 선발 최원태가 여지없이 난조를 보이면서 흔들렸고, 결국 2:3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손주영이 올라오고 나서는 안정되면서 역전을 노렸고, 이는 5회 오스틴의 역전 3점 홈런으로 경기를 다시 뒤집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손주영은 8회까지 던지면서 5.1이닝 무실점으로 자신의 진가를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9회에는 마무리 유영찬이 올라왔다. 그러나 시리즈 시작 전 부친상으로 인해 멘탈이 크게 흔들렸는지, 선두타자 안타 허용에 이어 보크까지 저지르며 순식간에 무사 2루를 만들었고,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긴 했으나 결국 배정대에게 투런 홈런을 맞으며 순식간에 한 점 차까지 좁혀지고 말았다. 결국 승리가 급해 3차전에 쓰지 않으려 했던 에르난데스를 급하게 투입했고, 두 타자를 모두 막아내며 결국 6:5로 승리하며 플레이오프 진출까지 1승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4차전에서는 김현수-박해민의 백투백 홈런을 앞세워 바로 앞서나갔으나 3일 휴식 후 등판한 선발 엔스의 컨디션 난조로 금세 kt에게 역전을 허용하면서 패색이 짙어지던 찰나, 8회에 기어코 동점을 만들며 희망을 이어갔고, 연장까지 승부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연장 11회말 무사 만루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다행히 2사까지 잡고 다음 타자도 땅볼 유도에 성공하며 12회까지 끌고 가나 싶었다. 그러나 오지환신민재가 서로 공을 잡겠다고 하다가 부딪쳐서 넘어지는 희대의 데칼코마니 수비로 인해 아무도 처리하지 못하면서 결국 5:6 끝내기 패배로 다시 5차전 잠실까지 가게 되었다.

이제 물러설 수 없는 5차전. 선발 임찬규의 6이닝 1실점 호투를 바탕으로 뒤이어 나온 손주영에르난데스가 잘 틀어막아냈고, 타선 또한 초반부터 적절하게 점수를 내어 1:4로 승리. 2016년 이후 8년만의 준플레이오프 승리로 플레이오프 진출을 함과 더불어 2002년 한국시리즈 이후 22년 만에 삼성을 만나러 대구로 향하게 되었다.

안그래도 붕괴된 투수진에 더해 정규시즌에 괜찮았던 엔스가 부진했고, 최원태는 여지없이 가을에 바로 박살나버리며 투수 운영에 있어서 엄청난 난항을 겪을 뻔했지만 이제는 포스트시즌에서도 상수로 거듭난 임찬규가 홀로 2승을 따냈고, 시리즈의 분기점이었던 3차전과 5차전에서 결정적인 순간 난세의 영웅이 되어준 손주영 뿐만 아니라 준플레이오프 5경기 전 경기 출장이라는 에르난데스의 투혼이 있었다. 또한 타자쪽에서도 저번 시즌에 이어 오스틴박동원이 이번 시리즈에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한 방을 터트려주었고, 오김박 또한 모두 나쁘지 않은 타격을 보여주었다. 결국 5위 결정전-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3경기 연속 엘리미네이션 경기로 이미 지칠대로 지친 kt를 겨우 제치고 준플레이오프 시리즈 승리를 거머쥐는데 성공했다.

5.11.2. 플레이오프

2021년 이후 3년 만에 정규시즌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삼성과 맞붙게 되었다. 2002년 한국시리즈 이후 22년 만에 포스트시즌 맞대결이며, 플레이오프로 한정하면 1998년 플레이오프 이후 26년 만이다.

1차전에서는 가을의 악몽 최원태가 여지없이 타자 친화구장인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두들겨 맞으며 경기가 완전히 꼬여버렸고, 타선도 잠깐 따라가나 싶었으나 이변없이 10:4로 패배했다.

2차전에서는 우천취소로 하루 연기된 것을 고려해 선발로 손주영을 내세워 배수의 진을 쳤으나[75] 손주영을 비롯한 LG 투수진은 삼성 타선에게 도합 홈런 5방을 허용하면서 그야말로 펑펑 터져버렸고, 타선도 9회 잠깐 4득점으로 반짝한 거 제외하면 10:5로 이번에도 완패하여 속절없이 2연패를 당하며 잠실로 가게 되었다.

3차전에서는 선발 임찬규에르난데스가 무려 9이닝 무실점[76]을 합작해내며 삼성의 강타선을 완전히 틀어막았고, 타선은 여전히 신통치 않았으나 5회말 홍창기의 희생플라이가 결승점이 되며 0:1로 신승을 거두며 기사회생했다.

4차전에서는 선발 엔스가 6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9일 휴식 효과를 톡톡히 봤으나 적시에 터지는 타선의 부진으로 계속 점수를 얻질 못하다가 8회초 강민호에게 결승 홈런을 맞고 녹다운되어 그대로 1:0으로 패배해 시리즈 스코어 1승 3패로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준플레이오프 5경기를 모두 치르느라 체력이 모두 바닥나버렸고, 안그래도 심각한 타선의 부진이 플레이오프에서는 더욱 심각해진 것에 더해 부족한 투수력 또한 끝끝내 반전을 거두지 못하며 결국 플레이오프에서 이번 시즌 모든 일정을 마치게 되었다.

5.12. 2025년: V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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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다시 정규시즌 우승을 탈환하다
시즌 전, LG는 저번 시즌 붕괴된 불펜진을 어떻게든 해결하고자 저번 시즌 통합 우승팀 KIA의 핵심 불펜 장현식을 4년 52억 무옵션으로 영입하는 데 성공했으며, 저번 시즌 막강한 두산 불펜의 일원이었던 김강률 또한 3+1년 14억으로 영입하며 불펜을 보강하였다. 또한 저번 시즌 애매한 활약이었던 엔스와 재계약하지 않고, 치리노스와 계약하게 되었다. 다만 이번 시즌에도 전력 유출이 없었던 거는 아니었는데, FA 최원태가 4년 70억의 조건으로 삼성으로 이적하게 되었지만 이 이적에 대해서 아쉬워한 팬들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번 시즌에는 디펜딩 챔피언 KIA가 투타 모두 완벽한 전력이라며 강력한 우승 후보로 평가받은 것에 이어 삼성과 함께 2위 경쟁을 할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런데 LG는 시즌이 시작되자마자 개막 12경기 동안 11승 1패를 기록하며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압도적인 선두를 달렸다. 그러니 한때 와이어 투 와이어까지 노릴 페이스라는 충격적인 페이스로 선두 자리를 굳혀나가기 시작할 때쯤, 4월 말부터 5연패를 하며 한 풀 기세가 꺾여 5월에 무섭게 치고 올라온 한화에게 단독 선두 자리를 내어주었고, 6월 들어 공수 모두에서 최악의 모습으로 종합적으로 무너진 모습을 보였다. 이로 인해 결국 월간 승률 9승 12패로 승패마진 마이너스를 찍어 한때 3위까지 떨어지는 등 부진을 면치 못했다. 이후 7월에 간신히 경기력을 조금 회복해 단독 2위로 전반기를 마무리지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선두 한화와의 격차는 5.5게임차였고 모두들 한화를 따라잡지 못할 거라며 한화의 우승을 점치고 있었다.

그런데 후반기 시작 후 상황이 급격히 반전되기 시작했다. 먼저 홈에서 펼쳐진 롯데와의 홈 4연전에서는 우천취소를 포함해 2승 1패로 기분 좋게 시작했다. 그리고 KIA와의 광주 3연전에서는 첫 날 기적의 역전승으로 완전히 분위기가 올라가며 12년 만의 광주 원정 스윕을 포함해[77] 6연승 후 7연승이라는 시즌 초보다 더 무서운 상승세를 기록하면서 한때 선두 한화와 5.5경기차까지 벌어졌던 승차를 단 2주만에 좁히더니 8월 5일에는 52일 만에 선두를 탈환했다. 그리고 후반기 최대 분수령인 한화와의 홈 3연전에서 첫 날인 8월 8일에는 트레이드로 영입된 천성호의 연장 끝내기 안타로 승리, 8월 9일에도 초반 선발 엄상백을 털어 손쉽게 승리하며 65승 2무 41패, 승패마진 +24를 기록, 2005년 8월 7일 이후 20년 만에 마이너스였던 MBC-LG 프랜차이즈 통산 승패마진을 0으로 만들고 통산 승률 5할을 다시 찍는데 성공했다.[78] 이후 8월 10일 마지막 경기에서는 손아섭의 활약으로 패배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승 1패 위닝 시리즈라는 성공적인 결과로 3연전을 마쳤다.

이후 인천 SSG전과 잠실 롯데전마저도 위닝 시리즈를 달성하는 데 성공하며 같은 시간 서서히 침체기를 겪고 있는 한화를 단숨에 4경기 차로 따돌리는 동시에 70승 선착에도 성공하며 정규시즌 우승 확률 77.1%의 확률을 얻어냈고, 2013년 이후 12년 만에 10연속 위닝 시리즈 뿐만 아니라 다시 광주 KIA전 스윕승, 그리고 창원 NC전 위닝으로 KBO 역사상 최초로 단일 시즌 12연속 위닝 시리즈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정상을 향해서 더욱더 고공행진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잔여경기 일정이 시작되는 상황에서 2위 한화와는 후반기 시작과 같은 5.5게임차, 정규시즌 우승 매직넘버는 15였다. 물론 잔여경기로 넘어가면서 선수들의 경기력이 떨어졌고, 그 사이 다시 페이스를 회복하고 추격하기 시작한 한화 때문에 아직 안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경기력이 영 좋지 못하는 와중에도[79] 매직넘버는 조금씩 줄여나갔고, 마지막 한화와의 대전 3연전에서는 첫 경기 또 박동원의 유령태그라는 어이없는 장면이 나오며 역전패를 하긴 했지만 두번째 경기에서는 상대 선발 문동주를 1회에 6득점으로 털어버리며 승리한 덕분에 매직넘버를 1까지 줄였다. 그러나 마지막 경기에서는 전 날 다 몸을 푼 와중에 우천취소가 되어버려 컨디션이 올라오지 못한 폰세 대신 불펜데이를 한 한화 투수진을 전혀 공략하지 못하며 3:7로 패배했고, 이때부터 상황이 점점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다음날 홈에서 9위가 확정된 두산을 상대로 타자들이 전혀 공략하지 못하며 또다시 6:0으로 패배. 결국 마지막 날 NC와의 경기에서 무조건 이겨서 남은 매직넘버 1을 지워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이번에도 투타 모두 엇박자가 나버리며 7:3으로 또 패배하며 결국 3연패를 당하고 매직넘버 1을 지우지 못한 채 정규시즌 일정을 마무리하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지고 말았다. 그 사이에 한화가 SSG와의 경기에서 5:2의 리드 상황에서 9회말을 맞이했고, 마무리 김서현이 공 2개로 2아웃을 잡으며 승리가 눈 앞에 오게 되면서 이 경기와 3일에 수원에서 열리는 kt와의 경기에서도 승리하면 한화와 완벽히 동률이 되어 꼼짝없이 잠실에서 1위 타이브레이커를 치뤄야 하는 상황.

그런데 9회말 2아웃 상황에서 대타 류효승의 안타와 대타 현원회의 투런 홈런으로 5:4 한 점 차로 따라붙었고, 다음 타자 정준재가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출루한 상황에서 이율예가 좌측 담장을 넘기는 극적인 역전 끝내기 투런 홈런을 작렬시키며 그대로 경기 종료. SSG가 9회 2사 상황에서 대거 4득점을 뽑아내는 기적을 연출하며 한화를 잡아내 끝내 LG가 지우지 못한 남은 매직넘버 1을 대신 소멸해주며 LG는 최종전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천신만고끝에 2년 만에 정규시즌 우승을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최종 성적은 85승 3무 56패 승률 .603이었고, 2위 한화와의 격차는 불과 1.5게임차였다.

타격에서는 확실히 2년 전의 위력을 다시 되찾았다. 심지어 부동의 리드오프인 홍창기가 5월 부상으로 9월이 되어서야 복귀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팀 타선의 사이클이 좋았을 때는 KBO 리그 역사를 통틀어도 가장 충격적일 정도로 가장 높은 고점의 퍼포먼스를 자랑했다. 먼저 리드오프였던 홍창기의 자리를 대체한 선수는 신민재였다. 타격에서 성장했다 평가받은 전년도보다 훨씬 더 스텝업을 한 모습으로 wRC+ 128.8을 거두며 어느새 리그 최고의 2루수로 거듭나 이제는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도 가능할 수 있다는 대단한 시즌을 보내며 다시 한 번 커리어 하이를 경신하며 팀에 없어서는 안될 핵심 선수로 우뚝 섰다. 또한 주전 포수 박동원은 비록 태그 플레이와 관련해서 아쉬운 모습으로 팀의 승리를 날려먹은 적도 있긴 했으나 공격력에서는 3년 연속 20홈런 이상으로 팀의 펀치력을 채워줬고, 오스틴 또한 부상으로 빠진 기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3할-30홈런을 기록한 것에 더해 wRC+ 또한 171.9로 어마어마한 기록을 남겨 삼성의 디아즈와 함께 리그 최고의 외국인 타자로 거듭났으며, 팀의 4번타자인 문보경 또한 기복이 심하긴 했지만 그래도 2년 연속으로 20홈런-100타점을 거두고 wRC+ 또한 135.6이라는 팀의 4번타자로 손색이 없는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또한 저번 시즌 팀 타선의 침체에 일조했던 오김박이 모두 반등에 성공했다. 먼저 오지환은 저번 시즌과 똑같이 부진에 시달리다 후반기부터는 홈런포를 쏘아올리기 시작하는 등, 장타력으로 저번 시즌의 부진을 어느 정도 만회해 팀의 하위 타순을 받쳐주었다. 다음 김현수는 시즌 극초반만 해도 너무 부진해서 대타로까지 밀릴 정도로 심각했으나 이후 마치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완벽하게 부활에 성공하며 여전히 자신은 팀에 없어서는 안될 선수 중 한명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마지막 박해민은 이번 시즌 주장으로 임명된 만큼, 더욱이 책임감을 갖고 시즌을 임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번 시즌에도 전 경기 출장으로 LG 이적 후 4년 간 모든 경기에 출전하는 철강왕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타격에서는 저번 시즌에 비해서, 아니 박해민의 타격 커리어 하이라고 해도 될 만큼의 성적이었다. 기본적으로 wRC+가 커리어 사상 처음으로 110을 넘긴 115.8을 기록했으며, 7월 22일 KIA전에서는 마무리 정해영을 상대로 9회초 극적인 동점 쓰리런 홈런을 작렬시키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이후 이 홈런 덕분에 팀이 8월까지 다시 폭주할 수 있게 해준 기폭제가 되는 임팩트 있는 모습 또한 보여주었다. 수비와 주루에서는 역시 박해민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훌륭했으며 특히 수비에서는 선두 경쟁을 하는 한화를 상대로 여러 차례 경악할만한 호수비를 연일 선보여 많은 한화팬들의 탄식을 자아냈으며, 주루에서 또한 도루 49개로 7년 만에 도루왕을 다시 차지했다. 이 외에도 홍창기의 부상으로 비어버린 우익수 자리에는 문성주가 부상 없이 완주하는데 성공함에 더해 후반기 맹타를 휘두르며 데뷔 이후 처음으로 규정타석 3할을 달성했고, 주전 선수들이 쉬어야 할 때나 부상으로 빠질 때는 리그 최고의 슈퍼 유틸리티 구본혁이 모든 야구팬들을 경악하게 만든 슈퍼캐치를 포함해 안정적인 수비는 기본에 상무 제대 이후 나날히 늘어가는 타격 성적으로 팀 내의 진정한 언성 히어로 그 자체였으며, 외야 자원으로 준수하게 백업 역할을 해준 최원영과 시즌 중반 트레이드로 합류해 중간중간 빈 부분을 구석구석 채우는 백업 역할을 열심히 해준 것과 더불어 선두 싸움에서 중요한 한화와의 경기에서 마무리 김서현을 상대로 때려낸 끝내기 안타까지 타격에서도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준 천성호,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빼어난 타격 능력으로 시즌 중반부부터 순식간에 팀의 대타 자원으로 1군 자리를 잡아낸 박관우까지 모든 선수들이 부족함 없이 자신의 몫을 해내주었다.

투수진에서는 역시 선발에서는 대부분 자신의 몫을 다 해내주었다. 먼저 1선발로 기대하고 영입한 치리노스는 여름에 부진하긴 했지만 시즌 초와 시즌 중후반부터 빼어난 피칭으로 팀의 선발진을 잘 지탱하며 전체적으로 봤을 때 13승에 ERA 3.23을 거두며 충분히 훌륭한 시즌을 보냈고, 토종 에이스 임찬규 또한 시즌 첫 등판부터 완봉승을 거두는 등의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이더니, 후반부 힘이 떨어진 것을 감안하더라도 본인의 커리어 하이를 다시 경신하며 커리어 처음으로 160이닝을 돌파하는 이닝 소화 능력과 더불어 11승에 ERA 3.03을 찍는 위대한 성적으로 이번 시즌 최고의 토종 선발투수 중 한 명으로 군림했으며,풀타임 2년차 시즌을 맞이한 손주영 또한 전반기에 약간 기복 있는 피칭이 있었음에도 결국 11승에 150이닝, 3.41의 ERA로 이미 올 시즌 국내 최고의 좌완 투수 중 한 명임에도 더욱더 발전할 가능성이 남아있어 더욱이 기대되는 선수이다. 무엇보다도 아직 2025년 LG 최고의 히트 상품은 나오지 않았으니, 바로 송승기다. 아무리 상무에서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대단한 성적을 올려 최원태의 FA 이적으로 인해 비어버린 5선발 자리에 낙점되었다고 해도, 퓨처스 리그인데다가 1군 첫 풀타임 시즌인 것, 이미 2년 전에 똑같이 상무에서 퓨처스를 씹어먹고 돌아온 이상영이 1군에 돌아오자마자 형편없는 투구로 곧바로 나가리되었던 것을 감안했을 때 5선발 자리를 잘 맡아줄지는 미지수였다. 그러나 상무에 있을 동안 패스트볼 구속이 148km/h까지 나왔던 송승기는 데뷔 첫 선발 등판 경기였던 한화전에서 최고 구속 150km/h로 상대 타자들을 윽박지르며 7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는 충격적인 투구로 작년 손주영이 생각나듯이 단숨에 리그 최고의 5선발로 거듭나 신인왕 경쟁에서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비록 후반기에 1군 첫 시즌이라 체력적인 여파가 있어 조금 부진하기 시작했고 수원의 어느 역대급 고릴라의 탄생으로 신인왕에서는 멀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정이닝과 11승, ERA 3.50으로 이번 2025년 LG 최고의 히트상품임에는 변함이 없으며, 특히 후술할 불펜진을 떠올려봤을 때 이번 시즌 강력한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한 송승기가 이번 정규시즌 우승에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또한 마지막으로 시즌 중반 혜성처럼 나타나 LG의 정규시즌 우승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되어준 톨허스트가 있었다. 시즌 중반까지 에르난데스가 부상과 부진으로 인해 교체 여론이 듫끓던 시기, LG는 AAA에서 5점대 ERA를 기록하고 있는 톨허스트를 영입했다. 처음 영입을 발표할 당시에 빅 리그 경험도 전혀 없던 데다가 AAA에서의 성적도 별로 좋지 않은 그저 그런 투수를 데려온 것 아니냐며 불안해한 시선도 있었다. 그러고 나서 톨허스트는 데뷔전인 kt전에서 7이닝 무실점 완벽투로 모두를 놀라게 했으며, 이후 패전투수가 된 2경기를 빼면은 매 경기 완벽한 투구로 마지막 남은 선발 자리까지 완벽하게 채워지며 시즌 막판 LG는 5선발 체제가 정상적으로 풀 가동되는 최상의 시나리오가 완성되었다.

반면 저번 시즌 파멸적인 불펜진은 이번 시즌에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불펜진에서 꾸준히 잘했던 선수는 노경은, 이로운과 더불어 40이라는 고령의 나이에 홀드왕 경쟁을 한 김진성과 신인 중 가장 기대를 받았고, 그 기대에 제대로 부응해 후반기부터 팀의 핵심 필승조가 된 김영우, 부상에서 돌아온 6월부터 꾸준히 뒷문을 막아 20세이브를 거둔 유영찬 말고는 전무했다. 먼저 4년 52억 무옵션 계약을 맺으며 LG와 계약한 장현식은 스프링캠프 도중 길바닥에 넘어져서 부상을 당해 시즌 출발이 좀 늦었으며, 이후에도 부상과 부진으로 인해 첫 시즌에는 기대했던 것에 비해 전혀 미치지 못했다. 또한 3+1년 총액 14억으로 두산에서 LG로 이적한 김강률은 시즌 초 잘 던지다가 부상으로 이탈하더니 다시 돌아오지 못했고, 시즌 초반 잘 던지던 박명근도 시즌이 지나면서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이더니 저번 시즌에 이어 이번에도 출발이 늦은 함덕주 또한 믿고 맡기기엔 어딘가 좀 부족한 모습이었다.

5.12.1. 한국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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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 최강팀임을 증명하는 신바람 통합 우승, V4
한국시리즈 상대는 2006년 한국시리즈 진출 이후 기나긴 암흑기에서 드디어 벗어나 LG와 시즌 막판까지 정규시즌 우승 경쟁을 치열하게 했고, 플레이오프에서 5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삼성을 제압하고 올라온 한화가 되었다.

1차전에서는 초반부터 LG가 기세를 한껏 올리고 갔다. 1회초 문현빈의 중견수 쪽 126m 짜리 큰 타구를 박해민이 잡아내면서 초반 분위기가 넘어갈 것을 막아냈고, 이내 1회말에 선발 문동주를 공략하면서 초반부터 0:2로 앞서나갔다. 이후 양 팀 선발들의 호투 속에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가 5회말 박해민이 오른쪽 담장을 넘기는 105m 짜리 솔로 홈런과 노시환의 송구 실책을 합쳐 다시 2득점으로 추가점을 내는데 성공했다. 6회초에 톨허스트가 잠시 집중타를 맞아서 2점을 다시 내주긴 했으나 6이닝 2실점 QS로 호투하며 투수운용의 부담을 덜어주었고, 이후 타자들이 한화 불펜진들을 상대로 4득점을 하는 대량득점을 올리면서 스코어 2:8로 1차전을 기분 좋게 승리했다.[80]

그러나 2차전에서는 당초 선발 치리노스의 담 증세로 인해 임찬규가 갑자기 선발로 내정되게 되었고, 시작하자마자 문현빈노시환에게 백투백을 맞는 등 마치 2년 전 한국시리즈 2차전과 비슷한 악몽을 재현하고 말았다. 거기에다 상대 선발이 엘나쌩 클럽 끝판왕이라 불리우는 류현진이었기에 상당히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2회말부터 그 류현진을 상대로 타선이 맹공격을 퍼부으며 순식간에 4:0으로 끌려가던 경기를 뒤집었고, 3회말에 박동원도 똑같이 2년 전 한국시리즈 2차전처럼 투런 홈런까지 터트리며 류현진을 조기 강판시키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4회초에 잘 던지는 듯 했던 임찬규가 다시 흔들리기 시작하는 바람에 결국 LG도 임찬규를 조기 강판하는 강수를 두었고, 김영우가 밀어내기 볼넷을 내주면서 흔들리기는 했지만 바로 다음 투수인 김진성을 올려서 2사 만루 상황을 틀어막으며 더 큰 일이 일어나지는 않게 만들었다. 그리고 LG는 이 위기를 넘기자 마자 곧바로 문보경이 만루 상황에서 오른쪽 홈런성 타구를 날리며 싹쓸이 2루타를 기록함으로 단숨에 5:10까지 스코어가 벌어지게 된다. 이후 LG 불펜진들이 위기 없이 잘 막아나간 사이 노시환의 송구 실책과 문보경이 투런 홈런까지 터트리며 결국 스코어 5:13으로 1회초 4실점을 완전히 극복하고 다시 대승으로 누르면서 홈에서의 2연승으로 분위기가 최고조인 상태에서 대전으로 가게 된다.

대전으로 옮긴 3차전, 손주영폰세라는 불리한 매치업과 정규시즌 1승 1무 5패라는 매우 불리한 상성인 상황에서 2회말에 최재훈의 좌전 안타 상황에서 김현수가 포구 실책을 하는 바람에 선취득점을 내주긴 했으나 바로 다음 공격인 3회초에 신민재의 적시 2루타로 동점을 만든 다음, 4회초에는 김현수의 역전 솔로 홈런으로 경기를 뒤집는데 성공했다. 이후 손주영이 5이닝 1실점 호투로 한화 타선을 틀어막은 다음, 6회 김진성과 7회 함덕주가 잘 막아낸 데 이어 8회초에는 상대 투수 김서현의 폭투로 다시 한 점을 추가하며 3:1로 앞선 상태에서 8회말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8회말 마운드 위에 올라온 송승기가 각각 김태연에게 2루타와 손아섭에게 안타를 연이어 맞아 무사 1,3루 위기 상황을 만들었고, 이후 리베라토를 삼진으로 잡고 마무리 유영찬에게 바톤을 넘기게 된다. 그러나 유영찬은 이후 문현빈에게 다시 적시타를 맞으며 한 점 차까지 추격하게 되었고, 갑자기 제구가 심하게 흔들리며 채은성황영묵에게 연속으로 볼넷을 허용하며 밀어내기로 동점 허용, 다음 타자 심우준에게 3루수 키를 넘기는 2타점 적시타를 연이어 얻어맞으며 단숨에 무너져내렸다. 결국 유영찬마저도 내려가고 김영우를 올렸지만 최재훈에게도 연속으로 적시타를 맞으며 3:1의 스코어가 3:7로 경기가 갑자기 기울어졌다. 9회초에 김서현을 1사 1,2루 상황을 만들며 마지막 기회를 가졌지만 대타 문성주를 냈으나 병살타를 치며 그렇게 경기 종료. 뼈아픈 3차전의 패배를 당하게 되었다.

분위기 위해서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4차전, 담 증세로 인해 4차전까지 등판이 밀렸던 치리노스가 등판해서 6이닝 1실점으로 자신의 몫을 다했지만 타선이 와이스에게 찬스 상황에서 5회초 박해민과 7회초 문성주의 병살타로 인해 득점을 하지 못한 채 완전히 틀어막히는 바람에 분위기가 계속해서 넘어가고 있었고, 7회말 되려 문현빈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으며 추가점을 허용했다. 8회초 2사 이후 신민재가 2루타를 치면서 와이스가 드디어 내려가게 된 이후 다음 투수 김범수를 상대로 김현수가 적시타를 치며 추격하는 점수를 뽑았고, 이후 2사 1,3루를 만들어 김서현을 소환했지만 한국시리즈 내내 부진하던 오스틴이 또다시 내야 뜬공으로 물러나며 동점까지 갈 수 있는 기회를 날리게 된다. 이후 8회말에 최재훈에게 또다시 적시타를 맞으면서 기껏 따라갔던 점수차를 다시 벌려놨고, 이대로 경기가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선두타자 오지환이 볼넷으로 걸어나간 다음에 바로 다음 타자인 박동원이 가운데 담장을 넘기는 추격의 투런 홈런을 때려내며 3:4 한 점 차까지 추격하게 된다. 이 홈런 이후로 분위기가 급격하게 뒤집히기 시작했고, 1사 이후로 박해민의 볼넷으로 출루하자 뒤늦게 투수를 박상원으로 교체했지만 홍창기의 안타까지 나오며 1사 1,2루 이제 역전 주자까지 출루하게 된다. 이후 신민재가 1루 땅볼로 물러나며 2사 2,3루 아웃카운트 하나까지 몰려있는 상황에서 김현수가 타석에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2-2의 볼카운트에서 1-2루 간을 뚫어내는 기적적인 2타점 역전 적시타로 벼랑 끝까지 몰려있던 LG가 기적적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이후 후속 타자들인 문보경 또한 1타점 적시 2루타와 오스틴의 적시타[81]까지 터지며 1:4로 끌려가던 점수를 7:4로 뒤집는데 성공했다. 이후 9회말에는 전날 패전투수였던 유영찬이 나름 잘 막으며 그대로 경기 종료. 2승 2패로 갈 수 있었던 경기를 3승 1패로 만들면서 이제 2년 만에 왕좌를 재탈환하기까지 1승만을 남겨두게 된다.

이제 오늘로 시리즈를 마무리하기 위해 5차전에 톨허스트를 선발로 낸 LG는 비록 선발 문동주가 좋지 않은 몸상태로 인해서 1이닝만에 내려가 불펜데이를 치르는 한화를 상대로 거의 매 이닝 맞이한 득점 찬스에서 4득점밖에 내지 못하긴 했으나 탄탄한 수비로 병살타를 3개나 유도해내며 톨허스트를 도와줬고, 톨허스트가 7이닝 1실점 역투로 승리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후 불펜진 또한 8회말 김진성이 무실점으로 막고 마지막 9회말에는 이번 시즌 처음으로 3연투에 나서는 마무리 유영찬이 등판하게 된다. 선두타자 리베라토를 3루수 뜬공으로 처리하며 1아웃, 다음 타자 문현빈 또한 중견수 플라이로 처리하며 2아웃을 만들어냈고, 노시환을 상대로 안타를 맞아 2사 1루 상황에서 채은성이 타석에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0-2 상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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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통합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

채은성의 투수 앞 짧은 땅볼을 투수 유영찬이 1루로 송구하면서 경기 종료. 최종 스코어 4:1. 시리즈 스코어 4승 1패로 한화를 무찌르며 2년 만에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6. 원인

LG 트윈스의 2009~2012 시즌 성적에 가장 큰 특징이 있다면, 4월에는 순위가 오르다가 5~6월 들어 순위가 내려가고 비밀번호를 연장한다는 점이다. 즉 처음에는 1위도 했다, 2위도 했다가 시즌 끝나면 순위는 잘해봐야 5위고 보통 6~7위 정도였다. 이런 패턴이 10년 동안이나 쭉 이어져왔고, 특단의 조치가 없는 이상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2012년마저도 비밀번호를 찍으면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일본프로야구에선 했지만 KBO 리그에선 그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대망의 열 자릿수 비밀번호가 완성되었다.

그런데 MLB에서는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팀 16개 중 20자리 비밀번호를 작성하지 않은 팀은 뉴욕 양키스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밖에 없다. 이유야 당연히 MLB는 초창기에는 리그 팀 중 절반이 아니라 리그의 페넌트 레이스 우승팀만 포스트시즌 진출권을 쥐어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상 MLB의 20자리 비밀번호보다 이 10자리 비밀번호가 훨씬 불명예스러운 기록이라 봐도 무방하다.

6.1. 부실한 마운드

비밀번호가 만들어진 근본 원인이다. LG 트윈스는 비밀번호 첫 시즌인 2003년엔 팀 ERA가 3.98로 전체 2위를 기록했으나,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단 한 번도 팀 ERA가 4위 안에 들어본 적이 없었다. 비밀번호 기간 LG의 팀 ERA 순위는 2-5-8-8-6-8-7-7-4-7이다. 정규시즌 2위로 암흑기에서 탈출한 2013년 팀 ERA는 3.72로 전체 1위를 기록한 것을 보면 마운드 부실이 LG의 암흑기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단적으로 타격왕 박용택 + 로베르토 페타지니 + FA 영입생 이진영정성훈의 존재로 경쟁력 있는 타선을 갖췄던 2009년에는 부실한 마운드 때문에 좀처럼 치고 올라가지 못했고 추격쥐만 양산한 채 DTD하면서 7위로 마쳐야 했으며, 큰 이병규의 복귀 및 이택근의 트레이드 영입으로 국가대표급 외야수 5명을 갖췄다는 빅5가 있던 2010년에 조인성이 몬스터급 시즌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6위에 그친 이유 역시 마운드 부실이었다.

팀 ERA 2위를 기록한 2003년에는 이닝 1위 + 탈삼진 1위를 기록한 큰 이승호를 축으로 장문석, 전승남, 김광삼, 김광수, 이동현 등 나름 괜찮은 투수진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4년 이순철 감독의 부임과 함께 레전드이자 투수진의 버팀목이었던 이상훈을 트레이드로 SK 와이번스로 보내고 대신 FA로 영입한 진필중이 최악의 모습을 보이면서 이때부터 LG의 마운드는 부실해지기 시작했다. 이동현은 2004년 시즌 중반 팔꿈치 통증을 호소한 뒤 토미 존 수술만 2번을 받으며 5년 동안 LG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토종 선발이 두 축이었던 큰 승호장문석은 2004년 이후로 더 이상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둘 다 FA 보상선수와 트레이드로 팀을 떠났다.

2001년 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마운드의 신데렐라였던 신윤호는 나왔다 하면 불만 지르다가 2007년을 끝으로 방출되었다. 좌완 파이어볼러 서승화는 툭하면 사건사고를 일으키며 사고뭉치가 되었고 꼴랑 2승 23패만 기록하며 2011년을 끝으로 방출되었고, 전승남은 2004년을 끝으로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김광삼은 2005년까지는 그럭저럭 활약하다가 2006년 부상으로 개점휴업했고 타자로 전환해 3년을 보내다가 2010년에 다시 투수로 돌아왔다. 최원호는 2005년 13승을 거둔 것을 빼면 평범한 선발 투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으며, 유리몸 기질로 인해 1군에서 이탈한 적도 많았다.

2006년 LG가 8개 구단 중 유일한 4점대 ERA를 기록하며[82] 창단 첫 최하위를 차지하는 굴욕 속에 심수창이 10승 투수가 되고 정재복이 ERA 3.58로 선전하며 LG 마운드의 희망으로 떠올랐으나, 2007년 김재박 감독 부임 이후 당장의 성적을 위해 마당쇠로 굴리기 시작하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결국 심수창은 그저 그런 투수로 전락한 끝에 2009년 6월 이후 승리 없이 연패에 빠지다가 2011년 중반 트레이드되었고, 정재복은 2009년 선발로 돌아와 두들겨 맞은 뒤 부상 및 재활로 1군에서 사라졌다. 2006년 중반부터 마무리 투수가 되며 17세이브를 기록하며 해당 시즌 팀 내 투수 WAR 1위에 오른 우규민은 2007년에 30세이브를 기록했으나 후반기부터 블론세이브를 남발해 13블론세이브로 아쉬운 모습을 보였고, 2008년과 2009년에도 끝내 부진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경찰 야구단에 입대했다. 다행히 우규민은 경찰 야구단에서 선발 투수 전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으며, 2012년에 마당쇠로 활약한 이후 2013년부터 토종 선발의 한 축이 되며 LG의 암흑기 탈출에 앞장섰다.

2007년을 앞두고 두산의 에이스 박명환을 FA로 영입했지만 첫 해인 2007년에만 10승으로 활약한 뒤 2008년부터 부상 및 재활로 2년을 허비해버리며 먹튀로 전락했다. 2010년에 돌아와 4승을 기록한 뒤 부진해 2011년 신연봉제에 의하여 연봉 폭풍세일을 당했고 2012년을 끝으로 방출되었다.

2008년 정찬헌, 이범준, 이형종이 한꺼번에 입단했는데 정찬헌과 이범준은 무너져버린 마운드를 메우기 위해 입단 첫 해부터 억지로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해야 했으며, 정찬헌은 2009 시즌 불펜에서 노예로 혹사당하다가 결국 시즌 중반에 부상으로 이탈해 오랫동안 1군에서 볼 수 없었다. 이범준은 이렇다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군복무 이후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이형종은 부상으로 2년을 방황하다가 2010년 박종훈 감독과 트러블을 빚은 뒤 잠시 1군에 올라왔다가 부상으로 재이탈했다. 이후 "힘들어 못해먹겠다"는 글을 올리고 잠적해버리며 임의탈퇴 신분이 되었다가 군 복무를 마친 뒤 2013년 LG에 복귀했고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했다.

2011년 벤자민 주키치레다메스 리즈 전까지 외국인 투수 중 성공작은 2007년 대체선수로 들어와 2008년 봉중근과 원투펀치를 이루었던 크리스 옥스프링 하나 뿐이었다. 2004년 에드윈 후타도와 대체 외국인 브라이언 쿠퍼, 2005년 레스 왈론드는 실패작이었으며 2006년 아마우리 텔레마코매니 아이바는 그야말로 최악의 선택이었다. 텔레마코는 전혀 외국인 투수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방출되었고 마무리 투수로 낙점했던 아이바는 부상을 숨긴 채로 들어와 아예 1군에서 1경기도 등판하지 않고 팀을 떠났다. 대체선수로 버디 카라이어라이언 베로커가 들어왔는데 카라이어만 그나마 활약했고 그거마저도 불펜에서의 활약이라 한계가 있었다. 2007년과 2008년을 앞두고 삼성에서 재계약에 실패한 팀 하리칼라제이미 브라운을 영입했으나 둘 다 기대 이하의 활약을 보이며 시즌 도중 웨이버 공시되었다. 하리칼라의 대체선수로 들어와 활약했던 옥스프링은 2년 연속 재계약에 성공하며 2009년에도 뛰게 되었지만 WBC 대회에서 입은 부상 때문에 개점휴업하다가 결국 웨이버 공시되었으며 그의 대체선수로 영입된 릭 바우어도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가 부상으로 퇴출, 그의 대체선수인 제레미 존슨 역시 이렇다할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 팀을 떠났다. 2010년에는 에드가 곤잘레스를 1선발로 낙점하며 영입했으나 0승 6패의 최악의 모습을 보인 채 웨이버 공시되었고 그의 대체선수인 필 더마트레는 국내 선수만도 못한 모습만 보이며 '더맞드레', '쳐맞드레' 라는 별명만 양산했다. 오카모토 신야는 불펜에서 나름 괜찮은 모습이었으나 구위가 뛰어나지 않아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재계약에 실패했다.

이 기간 꾸준히 활약했던 선발투수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연속 10승으로 에이스로 활약한 전직 메이저리거 봉중근이었다. 그러다가 2011년에 외국인투수 듀오 주키치와 리즈의 동반 성공에 2010년 트레이드로 영입한 박현준이 토종 에이스로 활약하면서 선발 마운드에 숨통이 트였다. 그 박현준이 2011년 중반 트레이드로 영입된 김성현과 함께 승부조작 혐의로 방출되면서 LG 선발진은 다시 약해지게 되었다. 수술로 2011년 중반 시즌아웃되었던 봉중근은 2012년 선발이 아닌 마무리 투수로 LG에 복귀했다. 그러다가 2013년 리즈가 에이스로 활약하는 가운데 우규민이 사이드암 토종 선발로 자리잡고, 류제국의 등장과 함께 신정락신재웅이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토종 선발이 리그에서 경쟁력을 갖추었고 암흑기 탈출의 열쇠가 되었다. 안타까운 점은 에이스로 활약해야 했던 벤자민 주키치가 태업 논란 끝에 최악의 모습을 보이면서 눈앞에 다가온 정규시즌 1위를 아깝게 놓친 점이다.

선발투수도 문제였으나 마무리투수는 더욱 상황이 심각했다. LG는 이상훈의 이적파동 이후 리그를 압도할만한 마무리투수를 보유하지 못했다. 이상훈의 이적 이후 마무리투수로 30세이브 이상을 기록한 사례는 2007년 우규민이 유일했으며 20세이브를 기록한 사례조차 없었다. 2012년 봉중근이 마무리투수 보직으로 1군에 복귀하기 전까지 LG의 마무리투수는 매년 시즌 중 교체되기 일수였다. 안정적인 마무리투수를 기대하며 FA로 영입한 진필중은 화려하게 불을 지르다 '진필패'라는 오명과 함께 망해버렸고 1년 반의 혼란기 이후 2006년부터 우규민이 자리잡는 듯했으나 2007년 후반기에 흔들린 이후 2008년에도 불을 지르면서 마무리투수 보직은 정재복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정재복 역시 안정적인 마무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우규민은 2009년에도 부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며 당해 트레이드로 이적해온 이재영이 마무리투수 보직을 맡기에 이르렀다. 2010년에는 외국인 투수로 일본 국적의 오카모토를 낙점했지만 초반에는 미스터 제로를 찍더니 점점 맞아나가고 ERA도 오르기 시작하며 마무리투수를 내려놓게 되었다. 2010년 후반기 마무리 보직을 소화한 김광수는 2011년 들어 불안한 모습을 보이다가 그 역시 마무리투수 보직에서 하차했고 신인 임찬규가 마무리투수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2011년 후반기 LG는 4위를 굳히기 위해 마무리투수로 송신영을 트레이드했지만 4위 진입에도 실패하고 시즌 후에는 송신영을 붙잡지 못하면서 FA로 떠나보냈다. 2012년 김기태 감독은 외국인 원투펀치 에이스 리즈를 마무리로 돌리는 실험을 했지만 보기 좋게 실패한 뒤 팔꿈치 수술로 인해 약 1년의 재활을 마친 봉중근을 선발 투수가 아닌 마무리 투수로 기용한 것이 성공하며 마무리 고민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6.2. 프랜차이즈 베테랑 방출·전력에 보탬 없는 베테랑 수집

2003년 LG 프런트는 이광환 감독에게 구단과 척을 진 이상훈김재현, 류지현을 정리하라고 압박했다. 이광환이 이를 거부하자 성적 부진을 빌미로 시즌 후 2군 감독으로 내려보내고 주루코치였던 이순철을 감독으로 내세워 눈엣가시 정리에 나섰다.

2003년에는 비록 부진했지만 아직 나이가 32세에 불과했던 류지현은 2004년에는 거의 전력외로 취급되었고 후배들 앞에서 배팅볼을 던져주는 굴욕을 당하며 은퇴를 종용받다가 바로 은퇴했다. 비록 SK와 한화의 오퍼가 있었으나 LG 프랜차이즈로 남겠다며 이적 대신 은퇴를 선택했다. 이상훈은 기타 사건을 빌미로 SK로 트레이드됐다. 이순철이 이 일로 가장 크게 욕먹고 있으나 근본 원인은 이들을 정리하라고 압박을 가한 프런트다. 선수협 활동 및 고관절 각서 사건으로 인해 구단과 마찰을 빚은 김재현은 2004년을 끝으로 FA를 선언했고, 결국 SK로 떠나 왕조를 세우는데 앞장섰다.

이들의 대안이라도 있으면 다행이겠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LG에는 육성 메뉴얼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트레이드 대상자와 FA 보상선수를 선택하는 안목도 꽝이어서 전력에 보탬이 되지 않았다. 또 유망주들의 성장이 더디면서 당장 전력에 활용하기 위해 타 팀에서 퇴물 취급받은 나이 든 선수는 데려오는 우를 범했다. 전성기에서 두 번 이상은 내려온 강상수마해영, 최상덕 등을 데려온 것이 대표적이며 이들은 전력에 거의 보탬이 되지 않았다. 위에 언급된 세 명만 하더라도 모두 1~2년도 버티지 못하고 LG를 떠났다.

6.3. 터지지 않는 유망주

6668587667이라는 암흑기 동안 LG에서 부진에 시달렸던 선수와 코치들은 모두 다른 팀에서 빵빵 터졌는데, 대표적으로 이용규, 김상현, 박병호, 박기남, 염경엽[83], 서건창[84]이 있다.

물론 이 선수들은 모두 '언제든 크게 터질 수 있다고' 평가될 정도의 기본 실력을 갖고 있었던 선수들이지만 LG에서는 터지지 않고 1~2군을 오가는 백업으로 머물거나 아예 2군 생활을 주로 하다가 타 팀에 가자마자 터졌다.

혹은 박경수, 정의윤처럼 1군에 머물더라도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을 보이다가 팀을 옮기자마자 대폭발한 경우도 있다. 심지어 저 둘은 팀을 탈출한 뒤로, 각각 2021년과 2018년에 우승반지까지 받았다. LG 팬들은 그저 눈물만 이렇다 보니 나온 단어가 탈쥐효과이다.

한 두번이면 우연이라고 하겠지만, 오랜 암흑기 동안 이런 사례가 반복된다는 것은 LG 트윈스의 신인 육성 및 선수 기용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2년의 박용택을 끝으로 신인이 데뷔 시즌에 1군의 주요 전력으로 자리 잡는 경우가 없었다.[85]

리빌딩인지 윈나우인지 불확실한 팀의 스탠스와 함께 긴 호흡을 가지고 기다려주어야 했던 유망주들에게 1군에서 당장의 성적을 요구했다.[86] 그들이 성장하는 동안 1군에서 버텨주고 유망주들에게 큰 조언을 줄 수 있었던 주축 선수들은 프런트와 척을 지거나 조금만 부진해도 가차 없이 내쳐버리면서 올바른 육성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거포를 영입해놔도, 소총수로 만들어버리는 짓거리들을 저지르고, 결국 영입은 죄 다 장타 가능성 없는 소총수들로만 채웠다. 오죽하면, 김용의처럼 이 시절 트윈스의 상징을 보여준 타자도 있고, 일발장타 기대하기에는 무리에 가깝던 삼진왕 오지환도 있었다.

그래도 고무적인 것은 2020년대 이후로 유망주 육성이 빛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 팀을 꾸준히 강팀으로 유지하고 2023년에 통합우승까지 올려놓는 초석이 되었다.

6.4. 인색한 신인지명

그리고 LG는 2군 선수층이 얇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었는데, 1군 주전 선수들이 부상당하거나 부진할 때 자리를 메꿔줄 수 있는 선수들이 부족해서 리그 중반을 넘어서면서 뒷심이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물론 후술할 코치진의 능력 등 육성의 문제도 있지만, 신인 지명에 인색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0년대 중반 신인 지명회의에서 LG는(각 년도마다 편차는 있지만) 5라운드 선에서 신인 지명을 그만두다시피하곤 했는데, 심지어 08년 신인 지명회의에서는 4라운드에서 연세대 진학이 확정된 나성범[87]47?을 지명하여 빈축을 사기도 할 정도였다. 21세기 들어 1군에서 활약하는 선수들 중에는 하위 순번 지명자[88]나 지명조차 받지 못한 신고선수 출신[89]들이 꽤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을 때[90] DTD는 자초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할 것이다. 그나마 프런트가 물갈이된 이후로는 마지막 순번까지 채워서 지명하면서 2군 뎁스를 늘려가고 있다.[91]

6.5. 철밥통 코치진

그리고 이 당시 무능한 코칭스텝들이 LG에 있는지라 유망주 성장이 더디고 선수들 실력 하락이 되었다고도 볼 수가 있다.

제일 먼저 이순철 감독시기의 1군 메인투수코치는 한화에서 공무원 소리를 듣던 이상군이고 1군 타격코치는 KIA에서 무능하다고 욕을 먹는 것이 연례행사였던 이건열이다. 이 둘 다 크보 최악의 코치로 유명하며 수비코치 김용국 역시 2011년 전까지는 무능한 걸로 한 몫했던 인물로 코치진의 질이 상당히 낮았다.

다만 이순철 초기까지는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던 황병일, 박상열, 박철영 같이 유능한 코칭 스태프들이 있었다. 2005 시즌부터는 그런 거 없었다. 이순철 감독이 껄끄럽다고 친히 2군 투수코치였던 김용수를 잘랐는데, 김용수는 능력이 미묘한 코치이긴 하지만[92] 팀의 레전드를 내치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을 뿐더러 그 와중에 이순철보다 연배가 높은 코치진들이 싸그리 내쳐졌다. 말년에 구단이 데려온 수석코치 양승호 정도를 빼면 이순철의 코치진들은 하나같이 악평을 받았다.

결국 김재박으로 감독이 바뀐뒤엔 코치들이 또다시 물갈이 되며 육성 시스템이 왔다갔다 하기 시작했다.[93] 2군 감독 김영직, 타격코치 김용달 주루코치 송구홍, 외야수비코치 윤덕규, 투수코치 양상문, 성영재 배터리코치 서효인, 2군 투수코치 김용수. 그러나 이 인물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무능했다는 점이다. 양상문은 8위 하고서 롯데 2군 감독으로 가버렸지만 대신 올라온 인물이 김용수였다. 김용수도 사람만 좋지 2군 코치 하면서 키운 선수가 없다는 점에서 영 좋지 않았다. [94]

그나마 이 시기에 유능한 코치가 없던 것은 아니다. 배터리 코치인 전종화나 일본인 투수코치인 다카하시 미치타케[95] 정도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소수의 능력자를 제외한 주요 코치진들은 말 그대로 무능했는데, LG 내부사정을 어느 정도 아는 주요 코치진들은 오히려, 선수들을 강하게 지도하지 못하고 순하게만 지도하며 무능함을 보여줬다.[96]

1군만 답이 없는 것은 아니여서, 2군 타격코치 서용빈, 2군 수비코치 유지현으로 유망주들을 못 키우는 인물들이 2군 코치를 하고 있었다.[97] 이 정도면 한화의 코치진 소위 칰무원들하고 다를바가 없다. 특히 김영직, 노찬엽, 서효인, 송구홍은 코치진에 오랫동안 이름을 올렸지만 실적은 아예 없었다. 이제는 쥐무원이란 멸칭으로 불리고 있으며 박종훈으로 감독이 바뀌면서 정진호, 김용수, 김용달, 윤덕규가 잘렸지만 그게 그거라 봐도 무방했다.[98]

거기에 운영팀장에서 현장으로 온 염경엽 수비코치[99], 권명철 투수코치, 윤학길 투수코치가 가세를 해 무능한 코치들로 가득 채워져있었다.

참고로 이 시기에 명 투수코치로 유명한 차명석은 이 시기에 윤학길, 성영재에 밀려서 2군과 재활군을 오가던 코치여서 존재감이 없었다. 그 외에도 허문회 역시 2군코치로 있었는데 구단이 좋아하던 서용빈에게 밀려서 1군에 못 올라왔다.[100]

박종훈 2년차에 윤학길이 롯데 수석코치로 간 것과 김정민이 은퇴하면서 1군 배터리 코치가 되면서 서효인 코치가 잘린 것 까지는 좋았다. 그리고 메인 투코도 최계훈이 새로 부임했다. 그런데 불펜 투코가 권명철이었다.[101]

결국 김기태로 감독이 바뀌면서 염경엽은 넥센 3루코치로 가버렸고 권명철이 두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성영재가 프런트로, 서용빈이 2군으로 쫓겨났다. 그리고 차명석이 1군 투코로 왔으며 롯데에서 김무관을 1군 타코로 영입했다.

그리고 이걸로는 모자랐는지 김기태 2년차에는 계형철, 신경식, 이홍범, 김민호(전 두산) 등의 능력있는 코치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1, 2군 모두 훌륭한 코칭스탭들로 채워졌다.[102] 동시에 김영직최원호가 물러났으며[103] 이것이 어찌보면 LG의 4강 진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104]

23년에 LG가 통합우승할 수 있었던 데에도 선수들의 기량 향상에 도움을 준 유능한 코치들이 있었고 특히 이호준 타격코치의 영입은 팀의 타격 뎁스를 끌어올리는데 기여했다.

6.6. 무사안일 프런트와 나태한 선수단

여기에 LG 트윈스의 진정한 문제점은 감독이 아니라 무사안일한 프런트와 나태한 선수단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실제로 LG에서 부진했던 김재박의 경우 프런트의 적극적인 지원과 더불어 선수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등에 업고 현대 왕조를 건설한 바 있으며, 역시 같은 이유로 중도 사임한 박종훈두산 베어스의 화수분 야구의 중심으로 유망주 육성 능력이 탁월한 감독이었다.[105] 2011 시즌이 끝나고 방영된 이광용의 옐로우카드에서 한 번 대놓고 특집으로 LG를 디스하는 방송을 내보냈는데 디스의 90%, 아니 99%가 프런트를 향한 것이었다. 방송 내내 비판의 강도가 아주 높았다. 과장 좀 하자면 패밀리 가이와 맞먹을 정도. 더 큰 문제는 방송된 내용 또한 프런트가 저지른 잘못들의 단지 일부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애당초 이광용 아나운서가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한 거라고 했으니 말 다했다.

요약하자면 이재국 스포츠동아 기자[106]의 평이었다. "LG 사장은 뭐하러 오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최소한 야구는 봐야 되는 거 아니냐?" 위에 언급된 야구도 안 보시는 LG 트윈스 사장님은 바로 이 분 되시겠다.

위 영상에서 언급된 문제들은 한두 가지 문제가 아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프런트라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아래는 위의 영상 요약본.
  • 프런트가 문제다. 이재국 당시 LG 담당 기자는 당시 8개 구단 중 가장 심각한 프런트라고 평했다.
  • 역할 분담이 안 되어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화보 촬영 문제. 운영팀과 홍보팀이 서로 발이 맞지 않아 헤맸고 애꿎은 선수들만 욕을 먹었다.
  • 프런트가 특정인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특히 수장 문제가 심각한데, 외부 인사들이 배치가 되고 자주 바뀌는 경향이 심각해 팀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또한 야구를 모르니 잘못된 정보를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장이 술 먹고 감독에게 주사를 벌이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지르는 상황도 연출이 될 정도로 문제라고 한다.
  • 이용균 기자에 따르면 벤자민 주키치의 계약과 관련해 감독은 일주일 시간을 뒀다가 기자들에게 발표를 해달라는 구단의 요청에 승낙했지만, 정작 엉뚱한 데서 먼저 누설하는 바람에 졸지에 감독만 바보[107]가 된 사건이 있었다. 이는 프런트 간에 손발이 안 맞는 걸 의미하기도 하지만 감독의 권위가 얼마나 땅바닥에 떨어졌는지 알 수 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용균 기자는 "아무래도 감독은 왕따구나."라고 평했다.
  • 수석코치와 감독직에 대해 몇몇 코치진과 프런트와의 커넥션이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문도 제기했다. 정치적인 분위기가 가장 강한 팀이 LG 트윈스다. 즉 모 기업, 프런트와 코칭스탭에 파벌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 감독에 대한 권위가 없다. 프런트 인사들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XX아!"거리는 팀이 LG가 유일하다고 한다. 이에 이광용은 삼성이 감독을 존중하는 분위기[108]라 LG는 삼성이 하는 거 반대로 하는 거 아니냐[109]면서 대차게 깠다.
  • 이러한 덕아웃, 프런트의 분위기는 선수단에게도 영향을 끼친다고 보인다. 다음시즌에 FA가 되는 모 선수[110]는 100억을 줘도 이팀에선 못뛰겠다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마지막 이광용 아나운서의 마지막 멘트가 굉장히 의미심장했다. LG 트윈스 관계자가 말했다. "LG 트윈스에는 두 가지 검은 세력이 존재한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감독을 언제든 갈아치울수 있는 선수단 내의 세력, 역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사장과 단장을 바꿔 끼우려는 프런트 내의 세력. 그 두 세력이 사라지지 않는한 LG 트윈스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 매번 감독에게 전권(全權)을 부여한다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점도 비판했다. 이용균 기자는 이를 두고 전권(前權)과 후권(後權)이 나뉘어 있다는 식으로 비판했다.

6.7. 팬들의 몰지각함

다수의 LG 팬들은 위에서 설명한 문제들만 중요하고 자신들에게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LG가 암흑기를 겪은 데에는 팬들의 지분 역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김성근 감독 시절인 2002년에 LG팬들은 공식 홈페이지 쌍둥이 마당에 김성근 감독이 기존 스타들이나 박용택 등 엘리트 유망주 대신 최동수, 권용관 같은 무명을 쓴다고 감독과 해당 선수를 계속 욕했다. 특히 유명한 여자 팬은 최동수 등이 뼈가 부러지라는 저주를 쌍마에 올릴 정도였다. 그리고 이들은 매일 같이 '신바람 야구', 'LG 다운 야구', '이기는 것보다는 지더라도 납득이 되는 야구', '예상 가능한 오더[111]의 야구'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승리하나 패배하나 앵무새처럼 떠벌렸고, 준우승을 한 후에도 그런 비판이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

당시는 쌍마는 김성근 감독 옹호파와 비난파(반대파)가 매일 피터지게 싸웠으나, 대체적으로 비난파가 더 강했다. 그래서 어윤태가 새로 프런트 수장으로 부임하면서 이들 LG팬의 의견을 받아들여, 그들이 그렇게 원하고 노래부르던 이광환 감독을 기용한 것이다. 그때 김성근 반대 LG 팬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원하는 신바람 야구가 구현되게 되었다며, 어윤태와 이광환 감독 체제를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그리고 당시 LG 팬들 중 김성근 찬성파들 중 많은 수가 LG에 실망해 떠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LG 10년 저주의 가장 큰 원인은 2002년 무리한 혹사로 투수진을 박살낸 김성근[112]과 또한 이 시기 두각을 나타낸 최동수 등의 무명 출신 선수들을 증오한 LG팬들이다. 최동수가 그 뒤에 서용빈이 하락세를 탐과 동시에 유명 선수로 성장하고서 다른 박병호 같은 2군급 선수가 1루에서 삽질을 하면 똑같은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LG의 암흑기가 길어지면서 결국 프런트는 현대 유니콘스 계열의 김재박 사단을 영입하게 되는데 기존에 있던 LG 코치진들과 융화가 잘 되지 못한다는 소문이 돌고, LG팬들 사이에서는 코치들 내에서 파벌이 있다는 루머까지 나돌기 시작했고, 그렇게 되면서 프런트가 팀에 적합한 선수단을 구성하기 보다는 팬들의 눈치를 보면서 여론을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암흑기를 더 길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의 정점이 된 사건이 염경엽김기태 감독 부임 초기의 정치설 논란. 물론 이쪽도 프런트의 책임이 아주 없는 건 아닌게, 이순철 감독 시절에 팀의 레전드를 내친 이후로 LG 팬들의 프런트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2013년 이후로 2시즌 동안 가을야구를 하게 되면서 당분간은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 2015년 9위 추락으로 비밀번호 재림을 두려워하는 팬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투수층이 두터워지면서 보직 재배치만 제대로 해준다면 반등의 여지를 지니고 있으며, 15시즌 가장 큰 문제로 부각된 야수진 고령화 문제는 언젠가는 터질 문제였고,[113] 이들을 대신할 야수 자원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2016년 이후가 도약이냐 추락이냐의 기로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그 뒤로 극성팬들은 프런트를 쥐고 흔들기 보단 맘에 들지 않는 감독이나 단장, 선수에 대한 악플을 달며 스스로 무너지게 만들기도 했다. 2016시즌 채은성, 이천웅 등 기존자원의 발견과 김용의의 각성 등으로 인해 라뱅은 2군에서 4할을 침에도 시즌 마지막까지 1군에 못 올라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리가 없어서였다.[114] 2013년 마지막 불꽃 이후로 나름 많은 기회를 받았으나, 그의 OPS는 6할이 간당간당했고 타율은 2할 초반에 그쳤다. 이 정도의 타격 성적이면 2루수나 유격수여도 욕을 먹을 마당에 그는 지명타자로, 타격으로 모든 걸 보여줘야 하는 선수였다. 이렇듯 팀 체질 개선 및 본인의 노쇠화로 라뱅의 자리가 1군에 없었지만 극성팬들은 여전했다. 이병규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잠실 외야에 '상문아 우리는 네가 부끄럽다'라는 현수막을 걸었고, 이에 당시 주장이던 류제국은 부담스럽다고 인터뷰를 할정도였다. 어처구니 없게도 이 사건 이후로 엘지는 급격히 반등해서 4위를 마크했고 이 극성팬들은 이 해의 성과를 자신들이 선수단과 감독을 정신차리게 했다고 자화자찬하는 중이다. 더욱 어이없게도 이 극성팬들은 이병규가 한창 1군에서 삽을 푸던 2015년엔 양상문이 이병규를 기용한다는 이유로 신나게 깠다.

해가 가도 이들은 변하지 않았는데, 이번엔 정성훈이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며 주전 경쟁에서 밀렸지만 이들은 팀의 4번타자인 양석환을 못 마땅해하며 정성훈을 쓰도록 강요했다. 더불어 주전 2루수인 손주인의 나이가 많아서 새로운 자원을 시험하기 위해 강승호, 정주현 등을 테스트했지만 극성팬들은 손주인을 왜 벤치에 두냐고 한탄했다. 덤으로 이들 눈에 띈 또 하나의 선수가 있었는데, 바로 이형종. 2017시즌 4월, 4할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보여주며 리그에서 제일 잘나가기 시작하자, 이들은 당시 소포모어 징크스+삼재+금단현상이라는 극단적 상황에 시달리던 채은성을 2군에 박아놓으라고 악플을 일삼았다. 물론 당시 채은성의 성적은 예년에 비하면 재앙이었던건 맞지만 채은성이 홈런을 치는 날조차 칭찬 한마디 없었으니 그 도가 너무나도 지나쳤다. 이 외에도, 원 포인트 릴리프인 진해수를 왜 우타자 상대 안 시키냐고 까는 등 이진영, 이병규, 정성훈, 손주인 등으로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양상문을 어떻게든 무슨 이유를 들어서든 까는데에 앞장섰고, 그에 대한 평가는 4번의 시즌 중 2번의 가을야구와 팀에 새로운 얼굴들을 비추게 했음에도 이순철과 동급 취급을 당했다. 물론 팀 사기는 박살나서 신나게 롤코를 타다가 DTD로 추락했다.

2018년, 정성훈이 방출되어 KIA로 가고 허프는 일본으로 떠났으며 손주인이 2차 드래프트로 삼성으로 떠나자, 팬들은 그야말로 폭발했다. 이들은 단장으로 영전한 양상문이 김현수의 영입을 성공하던 말던 소사 재계약을 하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115] 이들은 신임 감독 류중일에게도 불만을 품었다. 부상당한 이형종은 그렇다쳐도 이천웅이 아니라 양상문의 양아들이자 적폐로 둔갑한 채은성이 시범경기 주전 우익수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채은성이 시범경기에서 매 경기 안타행진을 하며 무력시위를 함에도 이들은 채은성에게 꾸준히 악플을 달며 저주를 했고, 실제로 4월까지는 퐁당퐁당으로 좋지 않은 성적을 기록하며 이천웅 주전설이 퍼졌지만 정작 이천웅은 1달 내내 3안타를 치며 부진의 끝을 달렸다.

결국 이 해 채은성이 각성을 하며 팀 역사를 싹다 갈아치웠지만 언제나 이 극성팬들은 이형종과 이천웅이 먼저였다. 덤으로 유강남도 까였는데, 존재조차 하지 않는 투수리드를 탓하며 신나게 터져나가는 투수들을 대신해 까였다.[116] 이 투수진은 LG 팬들에게 그야말로 신과 같은 존재인 차명석에게 키워진 존재들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주전포수인 유강남이 모든 책임을 지고 있으니 정상호를 쓰면 된다는 논리를 폈다. 참고로 16~17시즌 정상호의 WAR은 약 -2였다. 거기에 3루수로 낙점된 가르시아가 드러누워만 있자, 주전 1루수인 양석환이 3루수를 맡게 되었는데 이렇게 되자 팀의 1군급 중 1루를 볼 수 있는 선수는 4명뿐이었다. 김현수, 김용의, 서상우, 김재율. 하지만 서상우의 수비는 극혐이었고, 김재율은 2군에서조차 부진했다.

마침 김현수, 이천웅, 이형종, 채은성 모두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성적을 기록하자 타선의 화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김현수를 1루로 돌렸다. 하지만 이 일 역시 극성팬들의 타겟이 되었는데, 이는 단순히 국대 좌익수를 1루수로만 쓴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현수가 좌익수로 나가면 1루를 김용의가 보고 이천웅, 이형종, 채은성 중 1명이 벤치를 지켜서 타선의 주포가 한명 사라지고 식물이 하나 들어가는 참사가 발생하는데도 이들은 꾸준히 김현수의 좌익수 기용을 외쳤다. 물론 결과적으로 시즌 막판에 김현수가 1루 수비도중 시즌아웃 되며 이들의 말이 맞았지만 이들은 대안없이 김현수의 좌익수 투입을 주장했다. 그리고 김현수의 부상 이후 서상우와 김용의가 1루를 봤지만 한명은 눈이 썩는 수비를, 한명은 눈이 썩는 타격을 보여주며 또 DTD였다.

2019년에는 양상문 대신 새 단장 차명석이 오자 급속도로 팬들은 프런트의 편을 들었다. 이런 충성심은 백순길, 송구홍, 양상문 시절에도 없었는데, 투수코치로서 능력을 입증했었던 차명석이 아무것도 안 해도 ‘믿습니다 차단장님 충성충성^^7’을 외치며 프런트에 힘을 실었고, 프런트는 장원삼, 심수창, 전민수 등 타팀에서 방출된 선수들을 영입하며 보답했다. 물론 이 중 잘 영입했다 싶은건 전민수와 이성우 뿐. 장원삼은 5선발 후보로 나와 불만 질렀으며 심수창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민수는 다행히도 대타로써 쏠쏠한 활약을 했지만 외야자원이 차고 넘치다 못해 썩는 엘지 입장에선 잉여로운 감이 없잖아 있었다.[117] 이성우는 사람수준도 못 되는 정상호 대신 백업으로써 좋은 활약을 했지만, 이는 또다른 불씨가 되었다. 유강남이 잠시 손 부상으로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돌아왔지만 타격에서 병살을 양산하고 투수들의 실점이 조금 늘자, 유강남의 리드가 잘못이라 투수가 터지니까 유강남 갖다 팔고 주전으로 39살인 이성우를 쓰자는 극단적인 주장이 힘을 얻었고, 이에 위축된 유강남의 성적은 점점 나락으로 파고 들기도 했으며 정주현 역시 까였는데, 손주인의 뒤를 잇는 주전 2루수인데다가 기복에 따라 5툴과 무툴을 오가는 정주현인데, 결국 못 하는 것만 부각되며 역대 최악의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참고로 19시즌 정주현의 WAR은 양수이지만 18시즌 손주인의 WAR은 -1점대. 채은성은 올해에도 부당하게 까였는데, 전반기 팀내 셋 뿐인 3할타율을 치지만 여전히 4옵션으로 전락한[* 공인구 변화에도 홈런을 9월 18일 기준 지난해와 동일한 13홈런을 기록할 정도로 장타력이 있지만 문제는 클러치 능력. 외야 주전 4인방 중 유일하게 득점권 타율이 3할 미만이다.

2022년 플레이오프에서 최악의 졸전으로 1승 후 3연패로 키움에 업셋을 당해 구본능 구단주 대행의 극대노를 유발하여 류지현과 재계약을 하지 않고, 염경엽을 새로운 감독으로 임명하자 이에 극성팬들은 LG 야구 망했다며 저주를 퍼부었다. 11년 전인 2011년 자신들이 퍼뜨린 온갖 악성 루머로 LG에서 떠나게 만든 염경엽 감독을 상대로는 커뮤니티 등을 통해 온갖 악담을 퍼붓기도. 심지어 LG가 선두 경쟁을 하고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어도 주루&작전 미스 등으로 조금이라도 꼬투리 잡히면 온갖 비난을 퍼부어댔고 과연 진정 LG팬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팀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118] 패배주의적인 글들을 마구 생산해냈다. 그러나 염경엽 체제의 LG가 시즌 중 맞이한 온갖 악재들을 극복하고 강력한 전력을 기반으로 강한 뒷심과 위닝 멘탈리티를 동원해 2023년 29년 만에 정규시즌 우승을 이룬데 이어 한국시리즈에서 1패 후 4연승으로 통합우승까지 성공시키면서 진정한 야알못은 극성팬이라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그리고 2025년 또 한 번 통합우승을 하면서 확인사살...

심지어 2023년 한국시리즈 우승 후 선수단의 우승 축하 행사에도 일부 몰상식한 관중이 난입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7. 유사한 비밀번호 사례

7.1. 목록

  • 롯데 자이언츠88885777A788777: 한 때 LG의 비밀번호와 쌍벽을 이뤘었던 비밀번호이자, 2024년 현재는 한화의 비밀번호와 쌍벽을 이루는 비밀번호. 1992년 마지막 우승 이후 암흑기 이전인 2000년까지만 해도 가을야구에 3번 진출해 그 중에 준우승을 2번[119]한 어느 정도 강팀이였고 2008년 1차 암흑기 청산 이후만 해도 5연속 가을야구 진출에 플레이오프만 2번 두드린 가을야구 단골팀이였지만, 그 이후 2013년-2025년까진 단 1번만 가을야구에 나가는 약팀이 되었고, 결국 2차 비밀번호까지 만들어냈다. 게다가 이 중에서 유일하게 우승 공백이 30년을 넘고, 한국시리즈 진출 공백도 20년이 넘는 팀이다.
  • 한화 이글스5886899678: 2023년 현재 기준 위의 롯데와 같이 쌍벽을 이루는 비밀번호, 한화는 1999년 첫 우승 이후부터 암흑기 시작전인 2007년까지만 해도 가을야구에 4번 나가고, 그 중에 1번은 준우승을 했던 어느 정도 중상위권 팀이였지만, 10년 간의 암흑기 청산 이후 가을야구 진출이 단 1번밖에 없으며, 그 뒤엔 9위 - 3연꼴 - 9위란 성적을 만들어 내며 2차 비밀번호가 유력한 구단이다. 그나마 롯데보다 다행인 건 21세기에 한국시리즈에 두 번 진출했다는 점과 2차 비밀번호 생성을 막아냈다는 점이다.

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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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O 로고(세로형/화이트).svg KBO 리그 역대 비밀번호 목록
구단 비밀번호 기간
태평양 돌핀스 6366677 1982~1988년
롯데 자이언츠 8888577 2001~2007년
LG 트윈스 6668587667 2003~2012년
한화 이글스 5886899678 2008~2017년
롯데 자이언츠 7A788777 2018년~진행 중

[1] 1995년오키나와 아와모리 소주로, 43도로 꽤 독하다. 증발과 오염에만 신경써준다면 100년 이상 보관 가능하다. 자세한 내용은 증류주 참조. 그런데 2020년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보관을 잘못했는지 술이 거의 증발해 버려서 2017년에 새로 채웠지만 2023년에 또 대부분이 증발해버렸다고 한다. 다행히도 술은 어느 정도 남아있었고, 우승 직전 LG에서 오키나와로 급파한 직원이 추가로 두 병을 더 사왔다고 한다. 기사 그리고 11월 17일에 열린 축승회에서 뚜껑을 뜯고 축배를 들었다.[2] 여담으로 LG의 2002년 한국시리즈 출전 엔트리에 포함된 선수 27명 중 LG의 2013년 플레이오프 출전 엔트리에 포함된 선수는 이병규, 박용택, 이동현, 권용관, 류택현까지 총 5명이다. 정현욱, 현재윤은 2002년 당시 삼성 라이온즈 소속으로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있었으며, 류지현은 2002년 한국시리즈 당시에는 주장이었으나 2013년 플레이오프에서는 코치가 되었다.[3] 2010년에 찍힌 사진이며, LG는 이후 3번이나 비밀번호를 더 늘려야만 했다.[4] 경동택배, CJ대한통운, 한덱스, 한진택배, 롯데택배, 편의점 택배, DHL, KGB. 참고로 9자리였던 시절엔 일양로지스도 있었다.[5] 2020년 설문조사에서 그때 학창 시절을 보낸 20대 LG 팬 비율이 처참하게 나오는 것이 그 증거이다.[6] 오죽했으면 삼성이 2024년에 정규시즌 2위와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것이 2020년대 KBO 리그 가장 큰 이변 중 하나라 평가받을 정도로 삼성의 전력은 다른 팀들에 비해 크게 떨어져 있었다.[7] 한대화김응용이 뭔가를 해보는 듯 했으나 결국 애매하게 끝내서 평가하기도 미묘하다.[8] 2019년 이후로는 7년 연속 진출하고 있다.(4443131)[9] 주로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엘린이 자녀를 둔 LG팬 부모와 자녀 간 대화나 최근 LG팬으로 유입된 사람과 오래 전부터 응원해 온 LG팬들 간의 대화에서 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는 1990년대에만 세 번이나 최하위를 하며 '꼴비'라고도 불리던 시절부터 OB 베어스를 응원한 두산의 올드 팬덤과 2000년부터는 포스트시즌 단골이 된 이후로 2015년부터 7년 연속으로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할 정도로 리그에서 가장 꾸준한 강팀이 된 두산의 젊은 팬덤의 사이의 입장이 다른 것과 똑같다.[10] 다만 관리 야구 자체는 2000년부터 시작된 이광은 시절부터 이어지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광은이 어설픈 경기 운영과 선수단 관리 실패 등으로 인해 조기에 해임되고 관리 야구로 유명한 김성근이 취임하면서 그 색채가 짙게 굳어진 것이다.[11] 참고로 시즌 후반부에는 원정 경기 16연패라는 수모를 당했다.[12] 2002년 5월 중순에 복귀하여 52경기에 등판하여 85이닝을 던졌다. 거기에 더해 이상훈은 포스트시즌에서도 준플레이오프부터 한국시리즈까지 계속 던졌다. 30대 중반의 불펜투수를 이 정도나 굴렸으니 다음 시즌에 그 여파가 드러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다.[13] 명목상 이광환 감독의 자진 사퇴 후 2군 감독 임명이었지만, 실상은 구단이 못 미덥다고 생각한 이광환 감독을 자르고 선동열을 새 감독으로 세우려고 했기 때문에 이광환 감독이 알아서 사의를 표명한 쪽에 가깝다. 또한 이광환 감독은 94년 신인 3인방 정리 문제 등으로 프런트와 갈등이 있던 상황. 정작 선동열은 은사인 김응용 감독이 있는 삼성 수석코치로 가면서 LG 프런트는 똑같이 선동열을 감독으로 영입하려고 김인식 감독을 짜른 두산 프런트와 함께 뒷목을 잡는다.[14] 이동현은 세 번의 팔꿈치 수술 끝에 2009년이 돼서야 1군 마운드에 돌아왔다.[15] 요약하자면 경기 중에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가도 구단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내용이었다.[16] 사실상 이 때부터 LG의 암흑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팀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팀의 프랜차이즈 출신 베테량 선수들인 이상훈, 유지현, 김재현과 같은 선수들을 모조리 내쳐버리면서 중심추가 사라지며 팀이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던 것.[17] 하지만 이로 인해 차기 드래프트 순번에서 손해를 봤고, 그 2위 경쟁을 하는 팀이 다름 아닌 두산이었기에 두산의 정규시즌 2위 및 한국시리즈 진출에 공헌하는 꼴이 되며 결과적으로 LG 입장에서는 남 좋은 일만 하게 되었다.[18] LG 트윈스로 팀명이 바뀐 1990년부터 LG는 월드컵이 개최되는 해에 최소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징크스가 있었기에 최소한 포스트시즌 진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던 이들이 있었다.[19] 애초에 개막전 선발투수라는 중책을 타 팀에서 트레이드로 넘어온 노장이 맡았다는 것 자체가 LG 마운드가 얼마나 허약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20] MBC 청룡 시절인 1988년과 타이 기록[21] 해당 시즌 리그 평균자책점이 5.21이라는 극심한 타고투저라는 것을 감안해도 팀 평균자책점이 6.35라는 경이로운 ERA를 기록한 2014년 한화보다 더 낮은 기록이었다.[22] 우규민 이외에 팀 내에서 20이닝 이상 투구한 투수들 중 프로야구 전체 ERA인 3.58보다 낮은 ERA를 기록한 투수는 경헌호카라이어 외에는 없었으며, 이 둘의 선발 등판 회수는 단 3회에 불과했다.[23] 당시 현대에서 코치는 물론이고 트레이너, 스카우터, 프런트까지 김시진과 같은 일부 인물을 제외하면 김재박을 따라서 LG로 이동했다. 이 당시 현대 출신 인물들 중 일부는 지금도 LG에 남아 중요한 역할을 수행 중인데,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스카우터 백성진. 스카우트팀 차장을 거쳐 2017년 말 기존의 스카우트 팀장이던 김현홍의 후임자로 팀장으로 임명되어 본격적으로 신인 스카우트를 이끌기 시작하더니 지명된 유망주들이 2군에서 가능성을 보이며 1군에서 포텐을 터뜨리며 성공적으로 팀에 자리잡는 등의 성과를 보이며 유망주의 무덤이라 불리우던 LG의 유망주 팜을 재건하는 데 1등 공신이라는 평을 받으면서 2025년 현재도 일선에서 활약 중이다. 또한 스카우트와 운영팀장을 거쳐 1군 수비코치로 활동하다 넥센으로 자리를 옮긴 염경엽은 2023년을 앞두고 LG의 감독으로 부임했고 팀의 29년 만의 우승을 이끈다.[24] 시즌 초반에는 마해영에게 팀의 중심타선에서의 활약을 기대했으나 28타수 2안타 타율 .071로 완전히 폭망해 5월에 2군으로 내려간 후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25] 김성근이 실업야구에서 뛰던 김우석의 수비력만 보고 강력하게 요청해서 2차 1라운드로 지명했다. 참고로 바로 다음 순서에서 뽑힌 두 내야수가 조동찬고영민이다. 알려지지 않은 LG 시절 김성근의 흑역사 중 하나.[26] 참고로 이 해 거둔 성적이 LG가 암흑기를 거치면서 가장 성적이 좋았을 시기였다.[27]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암흑기였던 KBL 서울 SK 나이츠도 07-08시즌 5위로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주희정의 안양 KT&G 카이츠에게 2전 전패로 패퇴했다. 이 시즌 서울 SK는 암흑기 시절 유일하게 플레이오프에 오른 시즌이다.[28] 구단주 - 프런트 - 선수단 - 코칭스태프 등이 서로 융화되지 못 했고 구단 측의 행보로 인해 분위기가 굉장히 흉흉했었다.[29] 물론 이 당시에는 김상현의 주 포지션이었던 3루수 자리에 FA로 영입한 정성훈이 있었기에 자리가 없어 길 터주기 용도로 트레이드가 되었던 것이었다. 트레이드 직후 곧바로 김상현이 당해 MVP를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만.[30] 실제로 한국 프로야구를 통틀어서 6위를 가장 많이 한 구단은 LG이며, 7위를 가장 많이 한 구단은 한화, 8위를 가장 많이 한 구단은 롯데다. 다만 최하위 횟수로 줄을 세울 경우 한화와 롯데가 공동 1위.[31] 하지만 이 빅5는 오히려 LG에게 있어서는 독이 되었는데, LG가 그렇게 터지길 기원하던 우타 거포 유망주들인 정의윤박병호의 주포지션인 외야수와 1루수 자리에 빅5 선수들을 모두 기용해야 했기에 이들에게 주어진 출장 기회는 더 줄어들게 되었다. 일례로 박병호는 2009년 말에 이택근의 트레이드 소식을 접하고 난 이후 집에 계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저 이제 야구 그만해야 할까봐요" 라고 펑펑 울기도 했다.[32]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 승률 기준으로 하면 LG가 5위이지만, 당시에는 무승부를 패배로 간주하는 승률제였기에 KIA가 5위가 되었다.[33] 류현진, 차우찬, 양현종, 전병두, 장원준 등.[34] 실제로 그 당시에는 30승 선착팀은 무조건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기에 많은 LG팬들의 기대치는 더욱더 커지고 있었다.[35] 그 특유의 조급증으로 인해 안그래도 별로 쓰지도 않는 불펜투수인 한희김선규와 같은 필승조들의 부담이 더욱더 가중되었으며, 박현준과 같은 선발투수들을 불펜으로 당겨쓰기도 시작되었다.[36] 이 트레이드는 단순한 트레이드가 아닌, 한국프로야구의 미래를 바꾼 엄청난 트레이드가 되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박병호는 이 트레이드 이후 그저그런 유망주에서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홈런타자가 되었는데 반해, 송신영은 잔여 시즌간 LG 마무리로 쏠쏠하게 던져줬으나 시즌 종료 후 LG 프런트의 냉대 속에 FA를 통해 한화로 이적했고, 김성현은 전 소속팀에서 승부조작을 해버리는 바람에 영구제명되어 말 그대로 LG에게 남은 것은 단 하나도 없는 트레이드였다. 거기에다가 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뒷돈 15억까지 껴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며 LG는 더욱더 비참해졌다.[37] 정리하자면 처음 두 달 동안 30승을 거두고 나머지 네 달 동안 29승을 거두는데 그쳤다. 세세히 따지면 첫 두달 30승은 한달에 15승이나 했다면, 나머지 네 달은 한달에 정확히 7.25승, 약 7승으로 무려 절반을 깎아먹었다.[38] 웬만해선 깨지지 않을 거 같은 기록이었지만 불과 2년 후, 타어강으로 대표되는 KIA가 1위에서 8위로 추락하는 대참사로 기록을 경신했다. 또한 kt와 NC가 17시즌과 18시즌에서 1위에서 10위로 곤두박질치며 다시 기록을 경신했다.[39] 특히 송신영은 이적 과정에서 프런트 담당자가 욕설을 하면서 무시하는 바람에 아예 정나미가 떨어졌다는 후문. 반면 한화는 운영팀장이던 그 이상군이 직접 공을 들였을 정도였다.[40] 공교롭게도 2011년에도 같은 날 트래직 넘버가 소멸했다.[41] 한편, 한화의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9위 확정도 이날이었다.[42] 당시 넥센은 한화를 상대로 승리하면 자력으로 2위가 될 수 있었고, 지면 자동으로 3위가 확정되는 상황이었다.[43] 단일 리그 기준. 양대리그까지 포함하면 2000년 매직 리그 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것 이후로 13년 만이다.[44] 2014년엔 삼성과 넥센, 2016년엔 두산과 NC가 치고 나갔다.[45] 특히 2013년 한국시리즈 진출팀인 삼성과 두산이 각각 전력 누수, 불안한 모기업 사정으로 인한 전력 누수로 인해 넥센과 더불어 당시 좋은 평을 받았던 SK와 함께 포스트시즌에 나갈 유력 후보로 평가받았다.[46] 9위에서 8위가 된 게 6월 13일이고, 7위가 된게 7월 1일, 6위가 된게 7월 26일, 5위가 된 게 8월 1일이었다.[47]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은 1997~1998년 이후 16년 만이다.[48] 사실 이건 문선재본헤드 플레이였다. 1사 1루 상황에서 단독 도루를 했는데 내야 플라이가 되면 당연히 돌아와야 하는데 오히려 3루까지 뛰며 정상적인 수비였다면 더블 플레이로 이닝이 종료되었을 상황이었다. 본인 조차도 자기가 왜 3루로 달리고 있나라고 본헤드 플레이임을 인정했을 정도.[49] 이 경기의 패배는 상당히 뼈아팠는데, 앞선 두번의 우천취소로 인해 4차전을 승리한다고 해도 휴식일이 단 하루밖에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50] 만약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면 1위가 삼성이라서 12년만에 말띠 해의 한국시리즈를 치를수도 있었다.[51] 특히 가장 반발했던 것은 이병규의 기용 문제였다. 시즌 내내 1군에 올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자, 일부 LG팬들이 이에 반발한 것.[52] 대표적으로 이병규의 은퇴식 및 영구결번식으로 모멘텀을 얻으려고 했지만 곧바로 윤지웅의 음주운전 시즌아웃이라는 찬물이 끼얹어졌다.[53] 일명, 이천으로 가랬더니 인천으로 갔다는 사건.[54] 이 해는 정말 극악무도한 타고투저 시즌으로, 리그 평균자책점이 무려 5.20에 달할 정도였으므로 이 해 3점대 ERA는 훌륭한 수치였다.[55] 여담으로 느그프가 처음 나온 2016년의 롯데 역시 라이벌 팀인 NC에게 똑같이 1승 15패 퍼주었다. 즉 2016년의 롯데와 2018년의 LG는 최대 라이벌팀에게 15승을 퍼주면서 지역 라이벌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기여하게 된다. 심지어 지역 라이벌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여 준우승까지 거둔 것도 똑같다.[56] 다른 해였다면 더 높은 순위도 가능했을수도 있었겠지만 이 해에 4할 5푼을 넘지 못하는 팀만 4팀이나 있었고, 꼴지인 롯데는 93패로 승률 .340를 찍은 탓에 상위권의 승률 인플레가 심해져 1위부터 3위까지 모두 승률이 6할이 넘는 기형적인 시즌이었기에 4위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57] 2018년 김현수의 영입 효과로 단숨에 리그 1위가 되었던 리그 외야수 WAR은 2019년에도 2년 연속 리그 1위를 지켰다.[58] 대표적으로 부상에서 복귀한 이천웅을 기계적으로 주전으로 기용했으며, 상무에서 전역한 양석환이 공수 모두 도움이 안되는데 고집스럽게 기용했다.[59] 이 해 1위와 2위는 1위 결정전을 통해 결정이 났다.[60] 다만 그럼에도 앞서 언급한 타선의 부진으로 1승에 그치는 등의 불운을 겪었다.[61] 이번 시즌에도 코로나19로 인해 준플레이오프가 2선승제로 축소되었다.[62] 이 날 LG의 타자들은 9이닝 중 무려 7이닝을 득점권 찬스를 만들었지만 득점은 고작 3득점에 불과했다.[63] 이 해 이민호가 거둔 WAR은 -0.73으로 KBO 역대 10승 투수 중 가장 WAR이 낮은 기록이다.[64] 현장의 의견을 무시한 것은 뒤로 하더라도 염경엽이 SK 감독 시절에 처참하게 실패한 감독이란 것을 알고 있는 모든 야구팬들은 염경엽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엄청난 거부반응을 일으킬 정도로 모든 야구팬들의 기피대상이었다. 게다가 우승 청부사라는 표현으로 염경엽을 선임한 것에 반해 염경엽은 감독으로 있으면서 우승 경력이 없다는 것으로 인해 모든 팬들에게 비웃음을 샀다.[65] 다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경헌호 코치는 정말 건강 문제로 인해 내려간 것이 맞다.[66] 8월 NC와의 3연전에서 스윕패를 당한 과정 중 9회말 2사 상황에서 타구가 2루심의 발뒷꿈치에 맞아 2루 땅볼 아웃이 2사 1,2루가 되며 피해를 본 이후 역전 끝내기 홈런을 맞아 패배한 경기도 있었고, 9월 더블헤더가 포함된 KIA와의 광주 4연전에서는 1승 후 3연패로 승률 6할이 깨지기도 했다.[67] 고우석, 문보경, 정우영. 참고로 이번 아시안 게임부터는 브레이크가 없기 때문에 차출된 선수들 없이 경기를 치러야 했다.[68] LG가 정규시즌에서 우승을 하는 데는 LG의 전력에 상향된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작년 한국시리즈 우승팀과 준우승팀인 SSG와 키움의 부침과 몰락이 한몫했다. 어떻게 보면 작년에 운이 상당수 따랐던 두 팀의 가려졌던 문제점들이 23년에 터진 결과인데 키움은 안우진, 이정후라는 팀의 핵심자원이 모두 부상으로 인한 수술로 시즌 아웃되면서 최하위까지 곤두박질치고 구단 사상 최저 성적을 기록하고말았다. SSG는 두산, KIA와 5위 경쟁까지 몰리다 극적으로 3위로 정규 시즌을 마감했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NC에게 셧아웃 패배로 마감했다. 이렇게 된 이유도 선수단 평균 연령이 높고 상대팀인 NC에 당장 김주원, 김형준, 서호철 같은 루키들이 주전으로 정착했는데 SSG는 신인발굴은 커녕 아직도 김광현, 김강민, 추신수, 최정 등 베테량들에 매달린 것이 뼈아팠고, 그 여파로 플레이오프 직후 김원형 감독까지 경질되었다. 또한 LG의 상위권 경쟁팀 중에서도 NC에게만 열세일 뿐, kt와 SSG 상대로는 우세 성적으로 마감한 것도 고무적이고 NC가 와일드카드부터 플레이오프 2차전까지 6연승을 달리다 11월 들어 체력저하로 리버스 스윕으로 탈락했고 kt 역시 정규 시즌 2위로 플레이오프까지 쉬는 시간이 있었지만 플레이오프 5차전까지 치르면서 LG에 비해 부족한 체력과 정신력이 결정적이었다.[69] 오스틴은 원래 고등학교 시절에는 내야수를 소화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1루 수비가 매끄러울 수 있었던 것.[70] 이는 LG 역사상 최초로 소속 외국인 선수의 첫 골든글러브 수상이었다.[71] 이는 2002년 11월 8일에 거행된 2002년 한국시리즈 5차전 이후 7670일만의 한국시리즈 승리였으며, 정확히 21년 만의 한국시리즈 승리였다.[72] 그렇게 해서 김윤식은 2002년 한국시리즈 2차전 만자니오 이후 7677일만에 LG 투수의 한국시리즈 선발승 기록 보유자가 되었으며, 국내 투수로 한정하면 자그마치 1998년 한국시리즈 5차전 최향남 이후로 9145일만의 기록이었다.[73] 이 홈런으로 오지환은 한국시리즈 역사상 최초로 단일 한국시리즈에서 3경기 연속 홈런을 때려낸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74] 원래 비FA 다년계약으로 저번 시즌 시작 전에 계약을 발표했으나 저번 시즌 종료 이후 다시 부활한 2차 드래프트에서 더 많은 선수들을 묶기 위해 다년계약을 파기하고 동일한 조건으로 FA 계약을 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75] 손주영이 최근 등판한 준플레이오프 5차전이 10월 11일이었고, 하루 연기된 2차전이 10월 15일이었기에 3일 휴식이 가능했기에 충분히 도전해볼만한 상황이었다.[76] 임찬규 5.1이닝, 에르난데스 3.2이닝[77] 이는 2013년 6월 2일 무등에서 한 이후로 처음이었으며 그에 따라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개장 이후 첫번째 광주 원정 스윕을 거두는데도 성공했다.[78] MBC 청룡의 역사를 뺀 LG 트윈스만으로 한정하면은 3월 27일 한화전에서 개막 5연승을 기록하면서 승패마진 0으로 만들고 이후로는 통산 승패마진 플러스를 유지중이다.[79] 이 경기는 7타자 연속 사사구, 6타자 연속 밀어내기 사사구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긴 경기였다.[80] 1994년 한국시리즈 1차전 이후로 정확히 11,331일 만에 한국시리즈 1차전 승리였다.[81] 오스틴의 이번 한국시리즈 첫번째이자 유일한 안타이다.[82] 이 시즌은 투고타저 시즌이다. 다른 시즌, 특히 타고투저 시즌이었다면 4점대 평균자책점이 상위권일 수도 있었지만 투고타저 시즌이라 저게 팀 평균자책점 최하위가 되었다.[83] 사실 스카우터로 능력이 좋은 편이었다. 당초 LG 트윈스로 온 것도 스카우터로 온 것이었고, 문제는 수비코치 시절로 이 시절 재수가 없었는지 파벌 설이 떠돌아서 오해와 의심을 받으면서 죽도록 까였다. 결국 넥센에서 명장이 되어 재기에 성공했으나 SK 감독 재임 때는 망했다. 하지만 4년 후인 2023년 LG 감독으로 부임한 후 첫 정규리그 우승, 더 나아가서 한국시리즈에서 29년만에 LG를 우승시켰다. 거기다 2025년 시즌에도 우승하여 LG 트윈스를 2번이나 우승시킨 감독이 되었다.[84] 서건창은 신고선수 신분이었고 부상 때문에 방출된 것이라 탈쥐효과의 사례로는 부적절하다. 공교롭게도 서건창은 친정 팀인 LG로 트레이드된 후 끝 없는 내리막을 타면서 입쥐효과가 발동해버렸다.[85] 당시의 대졸 신인과, 현재의 고졸 신인이 1군에 자리잡는 과정을 완전히 동일하게 볼 수는 없겠지만, 옆동네 두산만 보더라도 김현수처럼 대졸 1년차 혹은 고졸 2년차에 바로 주전 차지한 사람도 많고, 심지어 타 팀에서 필요없다고 방출당한 사람이 신고선수로 힘들게 입단해서 그 해 바로 도루왕을 차지한 이종욱의 경우도 있고. LG는 고졸 출신, 대졸 출신을 가리지 않고 박용택 이후 2013년까지 프로 입단 2년 이내에 1군에 주전으로 자리잡은 선수가 현 주전 유격수 오지환 뿐이다. 이러한 문제는 2019년 이후 고우석, 정우영, 문보경 등이 나온 이후에야 해결되는 모양새다.[86] 이정후강백호처럼 데뷔 시즌부터 자리잡는 고졸 야수는 극소수다. 대개 20대 중후반에 자리 잡는 경우가 많다.[87] 나성범의 경우는 기량과는 상관없이 집안 내에서 은퇴 이후의 진로도 생각해서 대학 진학을 건의해서, 어느 팀의 지명 여부에도 상관없이 대학 진학을 이미 결정한 상태였는데 프런트가 냅다 지명한 경우이다.[88] 양의지, 오재원, 한유섬, 문성주[89] 김현수, 박해민, 서건창아이러니하게도 이 들은 2023년 현재 모두 LG 선수들이다 서건창은 방출당한 건 안 비밀[90] 특히 LG가 무려 115억이라는 거금을 주고 영입한 김현수 역시 신고선수 출신이다.[91] 이와 비슷한 문제를 겪은 팀이 한화 이글스로, 신인 지명에 인색했고 당장의 즉시전력감으로 활약할 수 있는 베테랑들을 주로 영입했다. 2007년까지는 어찌어찌 포스트시즌에 꼬박꼬박 갔지만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며 그 대가를 치렀다.[92] 1기 시절에는 평범한 이미지였는데, 정삼흠 - 이상군으로 이어지는 무능한 1군 투수코치들 때문에 반사 효과로 유능한 이미지가 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93] 사실 구단은 감독대행을 맡았던 양승호를 2군 감독으로 보내서 육성을 맡길 계획이었으나 정작 양승호는 고려대학교 감독으로 갔다.[94] 그나마 김용달은 잠깐이지만 이대형의 포텐을 터뜨린 공이 있고 타 팀에서도 적당히 철밥통으로 살아남았고, 윤덕규는 코치 경력이 너무 짧아서 평가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LG 외야는 암흑기 시절에도 상위권으로 손꼽혔고 수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95] 다카하시는 LG와 주니치가 자매 구단이었다는 점 때문에 LG에서 거의 모셔오다시피 한 인물이었다. 이 쪽은 감독이 김기태로 바뀔 때 정리되었고 과거 주니치 시절의 제자인 선동열을 따라 KIA로 갔으나 폭망하고 한국을 떠났다.[96] 실제로 2009 시즌을 보면 양상문이 롯데 2군 감독으로 가고서 1군에 올라온 김용수 코치는 주전 포수인 조인성심수창이 신경질이나 부리며 싸우는데도 말리지도 못하고 당황한 모습만 보였다. 코치의 인품을 떠나서 코치가 선수들을 제대로 말리지도 못하는 그 자체가 충분히 문제 있는 것이다.[97] 뭐 적어도 유지현은 2013~2014년에 1군 수비코치로서 제 몫은 뒤늦게나마 해냈다.[98] 애초에 정진호, 김용달, 윤덕규는 김재박 사단이었으니 교체될 운명이기는 했다. 김용수는 프런트로 전출되었으나 중앙대 감독으로 가면서 바로 사직했고.[99] 원래 이 사람은 단장이나 주루코치에 어울리지, 염경엽에게 수비코치를 맡기는 건, 정현욱, 이대진에게 투수코치를 맡긴 꼴이라는 흉물취급 수준이였다. 이는 넥센 가서도 수비 능력이 하위권인 건 마찬가지.[100] 그리고 잘려서 상무로 갔다가 염경엽의 부름을 받아 넥센의 타격코치로 가버렸다.[101] 물론 메인투수 코치는 최계훈이었다.[102] 이 중에서 계형철과 이홍범은 김성근 사단으로 구분되는 인물들이고, 김기태 감독과 쌍방울 시절에 함께한 사이이다. 신경식도 쌍방울 시절의 인연이 있고, 김민호는 국가대표팀에서 함께한 사이.[103] 최원호는 피칭 연구소 개업을 하고 해설위원으로 일했다. 다만 최원호는 능력을 평가하기에 애매한 인물이기는 했다. 연수도 안 다녀오고 2년간 2군에서 일했던 인물이니... 이후 한화 2군 감독으로서 보여준 능력은 제법 준수했다.[104] 다만 계형철, 이홍범 코치는 김성근 감독을 따라서 한화로 갔고, 김민호 코치는 조계현 2군 감독과 같이 김기태 감독 따라 KIA로 갔다.[105] 그래서인지 2013년부터 NC 다이노스 육성이사로 있으며 좋은 평을 받았고, 2017년 한화 이글스 단장으로 취임한 뒤로도 2군을 재정비하며 여러 업적을 쌓아가며 호평을 듣는 중이다.[106] 당시 LG 트윈스 담당 기자였다. 본인이 이 방송에서 예언했듯이 방송 이후 2012년에 넥센 히어로즈 담당 기자로 보직 변경했다. 그리고 2013년 삼성 라이온즈 담당 기자로 삼성의 6번째 우승을 경험했다. 동영상 내내 얼굴을 붉혀가면서 분노 스킬을 시전하는 걸 보면 본인도 많이 답답했던 모양이다.[107] 기자들이 계약 건에 대해 알고 물어봤지만 당연히 감독은 위에서 시킨 대로 말했지만 이미 기자들은 구단 측에서 발표해서 알고 있었다는 것.[108] 자신이 감독보다 선배라 하더라도 존칭을 붙여 감독님이라고 부르는 것. 실제 삼성은 2011년 당시 류중일 감독보다 선배인 김성래, 장효조(같은 해 9월 간암으로 타계), 양일환, 성준 등의 코치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감독에 대한 예우를 갖추고, 존대했다.[109] 참고로 LG와 삼성간은 야구 외 적인 측면에서도 경쟁심리가 강해, LG가 MBC 청룡을 인수한 1990년 이래로 근 23년간 서로 트레이드도 하지 않았다. 2012년 시즌 후 김태완, 정병곤, 노진용현재윤, 김효남, 손주인 트레이드가 이루어지고 나서야 이 관례가 깨졌다.[110] 그다음 시즌 FA로 풀려서 더 적은 금액에 팀을 옮긴 이 분이라는 말도 있었으나 18년 2월 더그아웃 지에 실린 인터뷰를 보면 그건 아닌 걸로 보인다.[111] 즉 기존 유명 선수의 꾸준한 출장을 의미하며, 이는 최동수 등의 무명 출신 선수의 배제를 뜻한다.[112] 더불어 박용택의 어깨도 박살냈다.[113] 주전 야수들인 박용택이나 이병규(7), 이진영 등은 벌써 30대 중후반에 접어든 베테랑이다. 그리고 라뱅은 16년에도 반등하지 못한다면 시즌 끝나고 은퇴를 바라봐야 할 정도로 무너졌다. 결국 협상 테이블에서 구단과 싸우기 싫다며 은퇴했고 17시즌 중반 은퇴식을 치렀다.[114] 13시즌에 당한 햄스트링 부상으로 수비가 불가능한 라뱅을 기용하려면 리그 최고의 타자인 박용택을 좌익수로 보내고 당시 주전 좌익수이던 이천웅을 벤치에 앉히거나 이천웅을 우익수로 보내고 엘지의 주포인 채은성을 빼거나, 이천웅을 중견수로 보내고 리드오프이던 김용의를 빼는 등 자충수뿐이었다. 그렇다고 라뱅을 대타로 쓰기에는 당시 대타자원만 정성훈/양석환, 서상우, 이형종, 문선재 등 잔뜩 쌓여있었으며 서상우와 정성훈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최소 2개 이상의 포지션을 소화하는 멀티 선수들이었다. 그리고 냉정히 말해서 이병규는 설령 팀 내에 자리가 있었어도 쓸 이유가 없었다.[115] 매일같이 잠실구장 LG 사무실 앞에서는 양상문 퇴진 시위가 벌어지고 양상문 개인의 전화번호가 털려서 전화번호를 바꾸는 등,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116] 벤치 개입이 많은 리그 특성상 볼배합은 거의 무조건 벤치 사인을 따라간다. 또한 볼 배합대로 공을 던졌다고 안타를 안 맞는 것도 아니고 볼 배합 지시대로 100% 공을 찔러넣을 수 있는 투수는 MLB에도 없다.[117] 전민수의 영입으로 인해 퓨처스 4할타자로 차기 외야 세대교체의 대표 주자가 되어야 할 홍창기의 자리가 사라졌다.[118] 근거가 있는 비판은 팀에 도움이 되지만 지금까지 안돼왔으니 이번에도 안 될 거라는 자세는 올바른 팬의 태도가 아니다.[119] 1995년, 199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