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7 22:05:36

오카모토 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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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모토 신야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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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07주니치.png파일: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13.svg
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2007 2008

파일:2008아시아시리즈챔피언.png
아시아시리즈
우승반지
2008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ffffff 2004년 센트럴리그 최우수 중간계투[1]릴리프 포인트(RP)라는, 당시 센트럴 리그에서만 독자적으로 사용한 중간계투 평가 수치였다. 릴리프 포인트에 관해선 홀드(야구)의 해당 항목 참고.]}}}
이와세 히토키
(주니치 드래곤즈)
31.15RP
오카모토 신야
(주니치 드래곤즈)
24.80RP
수상기준 개편[2]

LG 트윈스 등번호 56번
존슨
(2009.7.28.~2009)
오카모토
(2010)
송윤준
(2011~2014)
}}} ||
}}} ||
파일:1000022452.jpg
오카모토 신야
[ruby(岡本, ruby=おかもと)][ruby(真, ruby=しん)][ruby(或, ruby=や)] | Okamoto Shin'ya
[3]
출생 1974년 10월 21일 ([age(1974-10-21)]세)
일본 교토부 다케노군 야마노초
(現 교토부 교탄고시)
국적
[[일본|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신체 183cm, 93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2000년 드래프트 4순위 (주니치)
소속팀
[아마추어 경력 보기]
사토 공무점
아베 기업
야오한
암웨이 레드삭스
야마하
주니치 드래곤즈 (2001~2007)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008~2009)
LG 트윈스 (2010)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11)

1. 개요2. 선수 경력
2.1. 프로 데뷔 전2.2. 프로 데뷔 후2.3. LG 트윈스2.4. 그 후
3. 여담4. 연도별 성적5.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일본프로야구 선수이자 LG 트윈스외국인 선수. 포지션은 투수. LG에서 활동 당시 등번호는 56번. LG에서 뛰었던 유일한 일본 국적의 선수이다.

2. 선수 경력

2.1. 프로 데뷔 전

74년생이지만 프로 입단은 2001년[4]으로, 주니치 이전의 팀은 모두 일본의 사회인야구 팀이다.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고교 졸업 후 프로의 지명을 받지 못해 사회인야구 쪽을 선택하게 되는데, 사토 공무점은 입단 1년 후 해체, 야오한 재팬은 입단 3년 후 부도가 나서 회사 자체가 도산했다고.

야마하[5]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27세라는 늦은 나이에 주니치 드래곤즈에 입단하게 된다. 노망주[6]

2.2. 프로 데뷔 후

입단 3년차인 2003년에 12차례 선발 등판, 4승 6패 방어율 3.34라는 준수한 성적으로 두각을 드러낸다.

체력 문제로 다음 해인 2004년부터 중간계투로 보직을 변경, 올스타전에 출장하고 센트럴리그 최후의 릴리프포인트[7]왕을 차지했다. 당해 성적은 9승 4패 ERA 2.03.[8] 이후 레전드 마무리인 이와세 히토키의 앞에 등판하는 주축 셋업맨으로 자리잡는다.

2007년 개인 최다인 38홀드를 기록하며 팀의 일본시리즈 우승에도 기여하지만, 이듬해 강타자 와다 가즈히로[9]의 FA 보상 선수로 지명되어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 입단한다. 세이부에서도 팀내 홀드 2위를 기록하며 알찬 활약으로 팀의 일본시리즈 제패에 기여한다. 선수 본인에게는 두 번째이자 2년 연속으로 우승반지를 챙겼다. 그리고 주니치와 세이부 모두에서 아시아 시리즈 우승도 경험했다.

2009년에는 2008년에 미치지 못한데다가 스트레칭 도중에 목을 삔 것이 팔저림 증상으로 발전하여 시즌 중반 2군으로 강등, 이후 1군 무대에 복귀하지 못하고 방출되었다. 시즌 종료 후 NPB 12개 구단이 참여하는 트라이아웃에 참여하지만, 입단에 실패하며 무적선수가 된다.

2009년까지의 NPB성적은 357시합(12선발) 32승 19패 2세이브 92홀드 / 방어율 3.21. 426이닝 / 421탈삼진 / 169볼넷

2.3. LG 트윈스

2010 시즌 LG 트윈스로부터 한국행을 제의받고 입단 테스트를 받아 계약했다. LG로서는 역사상 첫 일본인 선수이자, 1998년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된 이래 리그 6호 일본인 선수다.[10] 일부 LG 팬들의 경우 오카모토가 로베르토 페타지니의 대체 요원이라는 이유로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었다. 페타신이 보통 선수였어야지 오카모토의 보직은 마무리 투수로, LG의 마무리 부재는 김용수, 이상훈 이래로 꾸준히 문제시된 데다가 우규민마저 경찰청 입단으로 자리를 비우면서 클로저의 역할을 맡게 된다. 특히 우규민이나 이재영처럼 불안한 9회를 보던 LG 팬들은 9회마다 개안하는 느낌인지라, 얼마나 감격했으면 시즌 초반에 페타지니의 응원가를 오카모토 등판 시에 부르기도 했다.[11]

2010 시즌 개막 이후 4월까지 ERA는 0. 1승 6세이브 0블론으로 LG 불펜의 재건을 이끌었다. 그러다가 5월 2일 문학 SK전에서 4:3으로 LG가 앞선 8회 무사 1루에서 2이닝 마무리 상황을 맡게 됐는다. 오지환의 불규칙바운드 타구 처리 실책이 그만 스노우볼이 되어 폭투로 첫 블론세이브를 기록하고, 박경완에게 적시타로 역전을 내주게 되었다. 9회초 2사에서 LG가 동점을 기록하며 9회말에도 등판했다. 그러나 2아웃에서 프로 통산 3홈런이었던 조동화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으면서 첫 자책점과 함께 패전투수가 되었다.[12]

5월 4일 두산전에서 1점차로 앞선 9회초 1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7세이브를 올렸다.

5월 9일 잠실 KIA전에서 일요일이라 총력전을 펼쳐 지는 상황에서 9회 2아웃에 컨디션 조절차 등판해 한 타자만 잡았으나 9회말 조인성의 역전 끝내기 안타에 힘입어 승리투수가 되었다. 이후 LG가 5연패에 빠져 개점휴업하다가 5월 16일 잠실 롯데전에서 대승을 거두는 과정 속에서 9회에 등판해 무실점을 기록했다.

5월 21일 잠실 두산전에서 2:0으로 앞선 9회말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시즌 8세이브와 함께 서승화의 데뷔 첫 선발승을 지켰다. 다만 2아웃에서 볼넷과 안타를 허용하며 똥줄 마무리가 된 것은 아쉬운 점.

5월 25일 잠실 KIA전에서는 4:2로 앞선 1사 1루에 등판했으나 이영수에게 동점 투런 홈런을 맞아 김광삼의 선발승을 날렸다. 시즌 2번째 블론세이브를 기록했지만 8회말 LG는 권용관의 적시타로 리드에 성공했고 9회는 깔끔하게 막아 시즌 3승째를 올렸다.

5월 29일 목동 넥센전에서 8:6으로 앞선 9회에 등판했지만 주자 2명을 내보낸 뒤 2아웃 2,3루에서 유한준에게 적시타를 맞고 시즌 3번째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그나마 작뱅의 결정적인 홈송구 성공으로 패전투수가 되는 것은 모면했고 LG도 11회 승부 끝에 승리에 성공했다.

5월 30일 목동 넥센전에서 연장 10회에 등판하여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고 연장 11회에 터진 1득점으로 시즌 4승째를 올렸다.

6월 1일 사직 롯데전에서 1점차 상황인 9회말 1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9번째 세이브를 기록했다. 다만 다음날에는 9:5로 앞선 9회말에 등판했는데 2사에서만 주자 2명을 내보낸 뒤 강민호에게 적시타를 맞아 1실점하면서 잠재적 동점 상황을 만들었다.

6월 6일 잠실 SK전에서 2:0으로 앞선 9회에 등판해야하는 상황인데 등판하지 않았고 오상민의 번트 송구 실책이 스노우볼이 되어 연장 12회 끝에 4연패 및 SK전 7전 전패를 당했다. 박종훈 감독은 오카모토가 팔 근육이 뭉쳐서 경기에 나서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6월 8일 잠실 한화전에서 3:0으로 앞선 9회초 1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10세이브를 달성했다. 그러나 다음날인 3:2로 앞선 9회에 주자 한 명을 내보내더니 2사 3루에서 신경현에게 역전 투런 홈런을 맞아 한희의 선발승을 날리고 패전투수가 되었다.

방어율만 보면 성적이 나빠 보이지 않을 수 있으나 FIP가 5.0, WHIP가 1.35일 정도로 마무리치고 상당히 높아 경기만 보면 똥줄이 탔다. [13] 특히 한 끗 차이로 애매한 볼이 볼 판정을 받는다거나 장작을 쌓는다던가 할 때 나오는 그의 난처한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지난 날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애초에 터프 세이브 상황에서 등판하거나, 위기를 자초하고 그 위기를 막아내거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이가 있는 탓에 구속이 많이 올라오지 않았고, 구위 또한 썩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었다. 비록 시즌 초반 출중한 제구력을 바탕으로 미스터 제로로 불린 모습만으로는 LG의 용병 농사가 성공하는가 했지만, 시즌이 진행되며 주자를 계속 쌓는 등 불안한 모습을 자주보였다. 시즌 최종 성적은 46경기 48이닝 5승 3패 1홀드 16세이브(4위), 평균자책점 3.00, 블론 세이브는 5개. 시즌 초반 미스터제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평균자책점은 시즌 내내 꾸준히 높아졌다. 방어율만 보면 나빠보이지 않으나 FIP는 5점대로 운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는걸 알수 있다. 주자를 자주 쌓아 후반에는 오카모토 대신 김광수 + 이동현으로 마무리를 꾸려가야 할 정도였다.

이 와중에 박종훈 감독에게 연투시키지 말아달라고 떼쓴 사실도 밝혀져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리고는 거의 휴업 상태에서 덕아웃의 음료수는 마구 비워대서 더더욱 욕먹었다. 이쯤되면 태업이 의심되는 상황.

2010시즌 종료 후, 선발 투수 2명으로 용병 계획을 잡은 LG 트윈스는 오카모토와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보류명단에서 제외했다.

여담으로 이 해에 외국인 한자리를 일본투수로 채우려던 LG는 오카모토와 다른 한 선수를 놓고 고민하다 오카모토를 택했는데 물망에 올라 있었던 다른 투수는 바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원클럽맨이자 한때 속구파 에이스였던 니시구치 후미야였다. LG 팬들이 두고두고 아쉬워했던 대목. 이 다음해 니시구치는 10승대를 달성하며 회광반조였지만 부활에 성공했기에 풍부한 선발경험의 니시구치가 왔더라면 허약하기 그지없던 LG의 선발진에 힘을 보태줬을 것이다.

2.4. 그 후

LG에서 방출된 뒤에는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부임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즈의 입단 테스트에 참가, 합격하면서 일본야구로 복귀했다. 그러나 당시 라쿠텐 1군에는 중간계투진이 탄탄했기 때문에 1군 복귀는 못하고 2군에서만 24시합에 4.01의 방어율을 남긴 채 2011 시즌 종료 후 구단으로부터 방출되었고, 직후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후 2012년 7월 센다이시에 곱창전골집을 개업했다.

2020년 근황이 전해졌는데, 현재도 곱창전골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10년 전 같은 팀에서 뛰었던 오지환의 수비가 많이 발전했다고 평가하였다. # 기사에서 2019년이진영이 라쿠텐에서 코치 연수를 받을 때 오카모토의 가게에 찾아왔다고 하는 걸 보면 어느 정도는 한국과의 인연을 유지하고 있는 듯.

2023년부터 도호쿠 방송의 야구 해설위원을 맡고 있는데, 현재 일본 방송에서 유일한 KBO 리그 선수 출신 해설위원이기도 하다.

3. 여담

별명은 CD옹으로, 그의 성인 "오카모토"[14]로 인해 파생된 별명. 그래서 세이브에 성공하면 '피임 성공', 블론 세이브를 기록하면 '찢어졌다' 등의 드립이 나오기도 했다. 한때 임훈 선수가 SK 와이번스 시절 둘의 맞대결에 임신 vs 피임 드립이 잠깐 유행했었다.

이것에 착안한 이사만루2018에 있는 본인 전용 스킬인 콘돔쥐가 있다. 그러나 후속작 이사만루 3에서는 고유 스킬이 아예 붙어있지도 않다(...)

4. 연도별 성적

역대 성적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2010 LG 46 48 5 3 16
(4위)
1 3.00 36 6 29 4 40 1.35
KBO 통산
(1시즌)
46 48 5 3 16 1 3.00 36 6 29 4 40 1.35

5. 관련 문서


[1] 이때의 수상기준은 지금의 홀드가 아닌(이 당시엔 퍼시픽 리그에서만 사용중이었다)[2] 2004년을 끝으로 릴리프 포인트가 폐지되었고, 양대리그 모두 홀드홀드포인트(홀드+구원승, 세이브 포인트와 비슷한 기준이다) 도입을 결정하여 홀드포인트가 많은 투수에게 최우수 중간계투 타이틀을 시상하는 것으로 수상기준이 개편되었다.[3] 2001~2008년 시즌까지의 등록명은 [ruby(岡本, ruby=おかもと)][ruby(真, ruby=しん)][ruby(或, ruby=や)], 2009년 시즌의 등록명은 [ruby(岡本, ruby=おかもと)][ruby(慎也, ruby=しんや)].[4] 2000년 드래프트 4위.[5] 도시대항야구대회에서 세 번이나 우승한 명문이다. 축구가 강세인 시즈오카에서도 이 팀만큼은 인지도가 높다.[6] 참고로 일본의 일반적인 대졸+사회인야구 출신 선수는 만 25세, 세는나이 26세에 프로에 입단한다. 오카모토는 고졸+사회인야구 출신이긴 하지만 만 27세, 세는나이 28세에 입단했으므로 일반적인 대졸+사회인야구 출신에 비해 2년을 더 쓴 것. 이런 케이스로는 셋츠 타다시, 아리요시 유키, 모리와키 료스케 등이 있다. 놀라운 것은 더 극단적인 케이스로 아베 쇼타, 쿠사노 다이스케처럼 세는나이 30대에 입단하는 케이스도 있다는 것.[7] 센트럴리그가 메이저리그홀드를 모방해 1996년~2004년까지 채택한 독자적 중간계투용 기록. 홀드 상황에서는 +, 블론세이브분식회계, 장작쌓기는 -포인트를 부여했다.[8] 당시 킨테츠 버팔로즈에서 이적한 오츠카 아키노리에게서, 투구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9] 주니치는 후쿠도메 고스케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로 그의 자리를 메꿀 중심타자가 필요했다.[10] 2003년 이리키 사토시(투수, 두산), 모리 카즈마(투수, 롯데), 2006년 시오타니 가즈히코(3루수, SK), 2008년 다카쓰 신고(투수, 히어로즈), 2009년 카도쿠라 켄(투수, SK)[11] 오 오 오카모토 오오오 오오오 오오오 오오오오 이렇게 불렀다.[12] 아래에 있는 2020년 오지환 수비 관련 기사도 이 경기와 관련되어 있다.[13] 2008년 최악의 마무리라고 불렸던 임경완, 우규민의 FIP 4.08,4.79 WHIP가 1.37, 1.40인 걸 보면 오카모토가 얼마나 최악인지 알수 있다.[14] 사가미 등과 함께 일본의 콘돔 제조 회사로 유명하며, 한국의 웬만한 편의점에서 이 회사 콘돔이 진열대에 올라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래서 한국 포털 사이트에서 오카모토를 치면 성인인증이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