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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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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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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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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KBO 리그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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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2004 KBO 리그 홈런왕

보유 기록
4연타석 홈런[1] 2000년 5월 19일 대전 한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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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완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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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감독
(SK 와이번스 시절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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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2군 감독
(SK 와이번스 시절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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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주장
(SK 와이번스 시절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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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80번}}}
박경완
(1991~1992)
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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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호
(1992)
박경완
(1993~1997)
박철우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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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화선
(1996~1997)
박경완
(1998~2002)
김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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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SK 와이번스|SK 와이번스]] 등번호 26번}}}
양용모
(2000~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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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013)
영구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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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근
(2012~2013)
박경완
(2014)
김무관
(2015~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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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012~2014)
박경완
(2016~2020)
조웅천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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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박경완감독대행ㄴ.jpg
<colbgcolor=#cc1133><colcolor=#c8ab37> SSG 랜더스 No.26
박경완
朴勍完 / Park Kyung-Oan
생년월일 1972년 7월 11일 ([age(1972-07-11)]세)
출신지 파일:전라북도 휘장.svg 전라북도 군산시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신체 178cm, 88kg
학력 전주중앙초 - 전주동중 - 파일:ImVr0SY.png 전주고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1년 신고선수 입단 (쌍방울)
소속팀 파일:PKPuIYF.png 쌍방울 레이더스 (1991~1997)
파일:external/s20.postimg.org/Hyundai_Unicorns_Logo.png 현대 유니콘스 (1998~2002)
파일:SK_Wyverns_logo_1st.png 파일:SK와이번스 로고.png SK 와이번스 (2003~2013)
지도자 파일:SK와이번스 로고.png SK 와이번스 2군 감독 (2014)
파일:SK와이번스 로고.png SK 와이번스 1군 배터리코치 (2016~2018)
파일:SK와이번스 로고.png SK 와이번스 1군 수석코치 (2019)
파일:SK와이번스 로고.png SK 와이번스 1군 수석·타격코치 (2019) [2]
파일:Wyverns_2020_emblem.png SK 와이번스 1군 수석코치 (2020)
파일:Wyverns_2020_emblem.png SK 와이번스 감독대행 (2020.6.25~2020)[3]
프런트 파일:SK와이번스 로고.png SK 와이번스 육성총괄 (2015)
파일:SK와이번스 로고.png SK 와이번스 전력분석원 (2015)
별명 포도대장, 경완옹, 박붕가, 붕가옹
등장곡 자전거 탄 풍경 - 너에게 난 나에게 넌
응원가 파일:external/s20.postimg.org/Hyundai_Unicorns_Logo.png The fans -Ole Ole Ole[4][5]
파일:SK와이번스 로고.png 소명 - 유쾌상쾌통쾌[6]
수상 한국시리즈 우승 5회 (1998, 2000, 2007, 2008, 2010)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 4회 (1996, 1998, 2000, 2007)
MVP (2000)
홈런 1위 2회 (2000, 2004)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
3.1. SK 와이번스 2군 감독 시절3.2. SK 와이번스 배터리코치 시절3.3. SK 와이번스 수석코치 시절3.4. SK 와이번스 감독 대행 시절3.5. 이후
4. 프런트 경력5. 플레이 스타일6. 김원형과의 관계7. 기록8. 여담9. 연도별 주요 성적10.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70퍼센트의 몸 컨디션으로도 100퍼센트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게 프로다.
은퇴식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야구인이자 전 SK 와이번스 코치.

선수 시절 포지션은 포수로,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데뷔해 현대 유니콘스를 거쳐 2013년 SK 와이번스에서 은퇴했다.[7]

KBO 리그 최장 시즌 1군 경기 출장 선수이며, KBO 통산 포수 WAR 1위#이자 SK 와이번스-SSG 랜더스 역사상 최초의 영구결번을 받은 선수다.[8]

2. 선수 경력

파일:박경완포수.jpg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박경완/선수 경력 문서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지도자 경력

파일:박경완 코치경력.jpg

3.1. SK 와이번스 2군 감독 시절

파일:external/cdn.mydaily.co.kr/201310231359282222_1.jpg
2013년 10월 23일 SK 와이번스 2군 감독으로서 첫 훈련을 지켜보는 모습.

아무리 2군이라 하더라도 코치 연수도 거치지 않은 선수가 바로 감독으로 부임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문 일이기 때문에 박경완의 감독 부임에 대해 많은 해석이 나왔는데,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1군 감독 이만수를 압박하기 위한 카드라는 것이었다. 2013시즌 4강 진출에 실패한 이만수 감독은 시즌 이후 시행된 코칭스태프 개편에도 드러났듯이[9] 팀내 입지가 상당히 좁아진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선수단 내 신뢰도, 팬들의 지지도 면에서 이만수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 박경완을 이만수의 압박 카드로 사용했다는 것이다.[10]

일단은 2013년 11월 5일 한화 이글스 퓨처스 팀과의 연습경기를 통해 비공식 감독 데뷔전을 치뤘고, 스코어 3:0으로 패했다. 부임 후 김성근 감독 시절 못지 않은 강훈련으로 선수들을 지도하겠다는 포부를 밝혀 팬들에게 많은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

3월 10일에 프론트는 박경완이 SK시절 달고 있던 26번에 대한 영구결번화를 결정하였다. 이로써 SK 와이번스 역사상 첫 영구결번이 되었으며, 프로야구 영구결번 수는 총 12개가 되었다. 박경완 선수의 영구결번 소감

2014년 시즌이 끝난뒤 육성총괄로 임명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감독직에서 물러나게되었다.

2군 감독을 한 기간이 고작 1년이기 때문에 박경완의 감독으로서의 역량, 장단점, 스타일에 대해서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선수시절 자신이 겪었던것처럼 체계적이고 많은 훈련을 통해 선수단의 능력을 끌어올리려 하는 것만은 확실한것 같다.

3.2. SK 와이번스 배터리코치 시절

파일:/image/410/2016/05/05/20160505_1272398_99_20160505113912.jpg

파일:/image/109/2015/11/23/201511231659775243_5652c7aa56c02_99_20151123170103.jpg
그 옛날 본인이 그랬던 것처럼 어마어마한 훈련량으로 젊은 포수들을 조련하는 중이다. 사진 속의 선수는 김민식.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20170416000464_0_20170416101515641.jpg
SK로 온 이홍구또한 시즌중이지만 많은 훈련으로 조련시키고 있다고 한다.

KIA로 이적한 김민식이 수비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고, KIA에 있던 시절 수비로 비판 받은 이홍구가 SK에서 준수한 활약을 하자 팬들 사이에서는 평가가 좋다. 다만 김민식은 2018 시즌 들어서 그간 훈련받은거 다 까먹은 듯한 역대급 막장 수비로 기아 팬들에게 지탄받으며 시원하게 망하는 중. 특히 포일 남발이 매우 심한 상태.

2018 시즌 종료 후 트레이 힐만 감독이 떠나면서 박경완 역시 차기 감독 중 한 명으로 이름이 거론되는데 김태우 기자의 말에 따르면 현재 SK가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지도자 자원인데 감독했다가 실패하면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실제 감독으로 취임할 가능성은 별로 없고, 차기 혹은 차차기로 남겨둘 것이라고.

3.3. SK 와이번스 수석코치 시절

파일:코치 박경완.jpg

김성갑 수석코치가 사의를 표명함에 따라 2018년 11월 19일 염경엽 감독이 새로운 팀의 수석코치로 박경완 코치를 선임했다. 박 코치가 사실상의 차기 감독감인 만큼 염경엽 감독을 보필하며 경험을 쌓게 하려는 구단의 전략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11]

그러나 4월 19일 김무관 1군 타격코치가 삽질을 하며, 결국 육성총괄로 이동하면서 1군 타격코치직까지 맡게 되었다. 첫 경기부터 팀은 패했으나 김무관 코치시절 한 경기 최다 득점인 8점을 하루만에 갱신해버렸다(...)

4월 20일 경기에선 최정, 로맥, 나주환이 연이어 홈런을 터트리면서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타격코치 교체 효과는 크게 보지 못했고 시즌 전체를 봤을 때 김무관 코치 시절보다 딱히 나은점은 없는 상황. 하지만 이상하게도 SK팬들은 속만 끓일 뿐 박경완 코치를 비판하는 모습은 거의 없다. 타격 보조코치인 박재상은 아예 존재감이 없고[12]

그러나 이는 이미 시즌 중반에 대대적인 타격폼을 손보기란 불가능하며, 구단에서도 그러지 않겠다는(현행 타격폼으로 올 시즌은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해서 실제로 행해진 것은 타격포인트를 앞으로 가져오는 것만이 진행되었다.

물론 최정 등 일부 타자는 시즌 중에도 꾸준히 타격폼을 바꿔가며 자기 타격폼을 계속 찾아가는 타자들이라 예외일 뿐.[13]

또한 애초에 타격코치 겸임으로 좋은 사례가 나온 적은 없거니와 박재상[14] 역시 은퇴한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코치 연수를 밟아가는 단계였음에도 상황이 상황이라 보조타격코치가 된 것이기 때문에 이 둘에게 타격 부진의 책임을 묻긴 어렵다.

2020 시즌부터 일본 라쿠텐에서 연수를 받고 국내로 돌아온 이진영이 1군 메인타격코치로 영입되며 다시 수석코치만 맡게 되었다.

2020 시즌 시작부터 팀이 연패에 빠지고 염경엽 감독의 거취가 도마에 오르면서, 시즌 중 감독 대행 기용설이 나오고 있다.

3.4. SK 와이번스 감독 대행 시절

그러다가 6월 25일 염경엽 감독이 건강 이상으로 입원하면서 복귀 전까지 감독대행을 맡게 됐으며, 당일 더블헤더에서는 1차전은 염경엽 감독의 갑작스러운 이탈로 패배했지만, 2차전에서는 분위기를 수습한 뒤 7:0으로 승리를 거뒀다. 박경완이 향후 SK의 감독 후보로까지 꼽히는 인재임을 감안하면 대행으로 있는 동안 자신의 실력을 얼마나 발휘하느냐가 향후 행보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본인이 감독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하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7월 1일 대구 삼성전에서 기묘하게도 계속 극단적인 외야 후진수비 시프트를 가져갔고, 이를 의아하게 여긴 안치용 해설위원으로 부터 수차례 지적받았다.실제로도 외야 정상수비 포메이션이면 평범한 플라이 아웃이 될 타구가 계속 안타로 둔갑하였고, 좌익수 고종욱이 후진수비를 하다가 얕은 플라이가 나오자 많은 거리를 뛰어오며 글러브 안에 공이 들어갔다가 튕겨져 나오는 실책을 저지르는 등 이상한 상황이 많이 벌어졌고, 특히 똑딱이 타자로 유명한 박해민의 타석에서도 극단적인 후진수비를 계속 가져가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해설도 당연히 엄청나게 비판했으며, SK 팬들은 박경완이 더위를 먹어서 판단력이 감소한게 아닌가 의심하는 중이다.

7월 3일 염경엽 감독이 두 달 이상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사소견이 나왔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생각보다 감독대행을 수행하는 기간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짧으면 8월 말, 길면 정규 시즌 종료 시점까지 감독대행을 맡을 예정이다.[15] 그래도 주말 시리즈에서 1달만의 2승 1패의 3연전 우세를 기록하며 18연패를 당한(...) 한화와의 승차를 3게임 차까지 벌렸다.

7월 7일 NC 다이노스와의 홈경기에선 1할치는 포수 이현석을 6번타자로 기용해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상대의 에이스 구창모에게서 타자들이 매 이닝 안타를 뽑아내며 시작은 좋았는데, 1회에 시도한 더블스틸이 실패해 3루에서 최지훈이 아웃당해 찬스가 무산되었다. 이후로도 계속 무리한 도루 작전을 시도하며 양의지의 도루 저지 기록만 신나게 올려주었다.

7월 8일 NC 다이노스와의 홈경기에선 이겼지만, 경기평은 별로였다. 선발 이건욱이 6이닝 1실점 호투로 기분좋게 1-3으로 앞서는 9회초까지 왔는데 박경완은 어제 나와서 24구나 굴렀던 김택형을 2점차의 긴박한 세이브 상황에서 연투로 올려버렸고, 결국 최준우의 어이없는 실책 등이 겹쳐 2-3으로 쫓기는 상황까지 가서 박민호를 또 쓰고서야 간신히 이긴 것이다.

7월 9일 NC 다이노스와의 홈경기에선 또다시 투수운용의 미숙으로 손쉽게 점수를 내주며 결국 1승 2패의 3연전 열세를 기록했다. 선발 핀토가 6이닝 2실점으로 선발의 임무를 다하고 내려간후 윤석민의 2점 홈런[16]으로 2-2동점으로 대치하던 7회초에 요즘들어 가장 컨디션이 안좋은 김태훈을 올렸고, 올렸으면 저번 김정빈처럼 우직하게 믿어준 것도 아니고 안타 2개 맞았다고 황급히 이원준으로 바꿔버리는 정신없는 투수교체를 단행했다. 그 결과이원준은 밀어내기 볼넷에 이어서, 만루홈런을 내주면서 패배를 결정지었다. 신인투수를 무사 2,3루라는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에서 올리는 박경완의 비합리적인 투수운영으로 첫날 문승원의 호투에 힘입어 최소 2승은 가능했던 3연전이 감독대행의 계속된 용병술 실패로 고작 1승만 챙기는 것으로 그쳤다.

7월 10일 한화 이글스와의 원정경기. 9-10위간 대결전 일명 '어둠의 한국시리즈'에서 김정빈이 밀어내기 볼넷을 2개나 내주며 경기를 말아먹고 있는데도 팔짱을 끼며 경기를 관중처럼 구경하다 결국 대량실점하고 9회초에 상대 마무리 정우람을 공략하는 성과에도 1점차로 지고 말았다. 다음 날 경기는 5대 3으로 무난히 승리했으나 우천 취소로 연기된 월요일 경기에서 2대 4로 패배하며 한화에게 29일만의 위닝시리즈(...)를 안겨주고 말았다. 9회초 3연속 대타 작전이 모조리 실패한 것은 덤.

이후 진행된 키움 히어로즈와의 3연전에서는 상대팀의 안-조 콤비를 상대로 대타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공략하며 2승 1패의 우세를 기록했다. 특히 안우진을 상대로 이전까지 부진한 편이었던 최항 등을 보란듯이 기용한 것이 주효하여 두 번이나 역전승을 거두었다. 상대측 감독 손혁의 운용에 문제가 있던 탓도 있었지만, 어쨌든 2위 경쟁 중인 상위권 팀과의 3연전에서 우세를 기록한 것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한화 이글스와의 원정 3연전에서도 최종적으로 2승 1무의 우세를 거두었지만, 마지막 경기인 27일 경기에 팬들의 눈을 의심케 하는 기이한 선수 기용과 작전 등으로 SK의 팬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1-3으로 뒤지던 2회부터 스퀴즈 실패로 병살을 기록했고, 이날 멀티히트를 치며 좋은 타격감을 뽐낸 윤석민을 고작 5회임에도 시즌 내내 공격와 수비, 주루 그 어느 것 하나 보여준 게 없는 대주자 고종욱으로 교체해버렸고, 고종욱은 타구 판단 미스로 홈에서 횡사하며 팬들의 어이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고종욱이 8회초 1사 1,2루의 절호의 찬스때 병살타를 쳐버리며 믿고 기용해준 박경완의 기대를 철저히 저버렸다. 일부 노리타 성향의 팬들이 열심히 박경완을 실드치고 있지만, 스승 김성근처럼 작전을 안 내면 죽는 병에 걸린 것마냥 환장하며 작전을 내는 것에 대해 비판도 꽤나 만만치 않다.

고작 9위면서 어둠의 한국시리즈에서 18연패의 10위 한화[17]한테 전승도 아닌 2승 정도 낸 걸로 자신감이 붙었는지 앞으로 마음대로 작전 내겠다거나 불펜들을 계속 3연투 시키겠다는 등 기고만장한 인터뷰들을 쏟아내면서 팬들의 혈압을 올렸다. 특히 7월 28일 LG 트윈스에게 24-7의 핸드볼 스코어로 참패했는데, 굳이 정영일을 3연투 시키는 등 심각한 수준의 무리수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윤석민[18]과 오준혁은 죽어라 못 믿으면서 본인 양아들 고종욱만은 끔찍하게 아끼는 게 SK팬들에게는 끔찍하게 다가오고 있다.

7월까지 박경완 대행에 대한 평가는 갑작스럽게 감독직을 맡게 된 것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부정적이다. 투수와 호흡을 맞추는 포수로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진용, 김정빈을 필두로 한 투수 혹사 및 운용문제, 지나친 작전야구 성향은 SK 팬들 사이에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심지어 백혈병 투병과 무릎 부상으로 인해 건강문제가 있는 김세현마저 3연투를 시키면서 선수 체력관리 또한 의심되는 상황으로, 그 결과 박경완 체제 하에서 SK의 구원투수 평균자책점, 승리확률기여도는 리그 10위로 곤두박질쳤고, 8월에는 팀 평균자책점까지 리그 9위, WAR는 리그 10위, 폭투는 리그 1위가 되었다.

8월 1일 kt전에서 5회도 끝나기 전에 9실점을 하자 경기 도중 포수 이재원을 이현석으로 교체시켰지만 이미 벌어진 점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0대 11로 대패했다. 8연전이 진행 중임을 참작하더라도 6경기 중 무려 4경기나 두자릿수 실점이 나온 것에 팬들은 크게 실망하고 있다. 18연패를 찍은 한화와 비슷한 수준의 경기력을 보며 팬들은 무슨 생각일지...

8월 14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는 8회까지 6-3으로 이겨가던 경기를 김재현, 김태훈, 박민호의 투입으로 6-7로 역전당하며 아주 화끈하게 말아먹고 SK 와이번스 갤러리 내의 박경완을 지지하는 소수 노리타층의 입김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역시 아직 감독감이 전혀 아니며 박경완을 만약 정식 감독으로 세운다면 10년 암흑기를 찍을꺼 같다는 의견이 대세이며, 디시인사이드, 엠엘비파크, 트위터 등을 막론하고 야구 커뮤니티에서도 막장 투수운용, 작전남용 등으로 박경완을 성토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투수운용뿐만 아니라, 타율 및 타점도 리그 9위, PASS/9는 리그 10위를 기록하면서 좋은 평가를 듣지 못하고 있다.

8월 25일 사직 롯데전에서 선발 이건욱이 5이닝 1실점을으로 호투하고 내려간 6-1 상황에서 무슨 생각이었는지 걸렸는지 갑자기 부상에서 복귀한 올라온 김태훈을 바로 올려버렸고, 이후 대량실점으로 이건욱의 승을 날려먹고 말았다(...)

현재까지의 모습을 보면 박경완은 좋은 선수가 좋은 지도자되기 힘들다는 격언만 되새겨주고 있다. 배터리코치, 2군 감독, 1군 감독대행까지 팀에서 레전드라고 자리보장해주며 그렇게 밀어주는데 실적이 정말 하나도 없다.

8월 26일 사직 롯데전에서 1-1로 팽팽히 맞선 상황에 작전 본능이 또 발동했는지 김정빈을 올려버렸고 김정빈이 볼질로 만루를 채울 때까지 수수방관했고, 결국 졌다.

이후에도 개연성이 떨어지는 투수교체와 끊임없는 번트 작전으로 팀이 8위 이상으로 오르는 것을 막고 있다. 하재훈의 전력 이탈, 핀토의 부진, 대체 외인 타자 화이트의 사구로 인한 골절상(...) 등 선수층 문제와 불운도 따르고 있지만, 번트를 그다지 잘 대지 못하는 타자들에게까지 계속 번트를 시키는 것은 그저 아웃카운트 하나만 상대에게 헌납하는 것이기 때문에 팬들의 반응은 실망 일색.[19]

9월 1일 염경엽 감독이 현장복귀를 밝힘에 따라 2020년 6월 25일 두산과의 더블헤더 2차전부터 감독대행을 맡은 뒤 67일만에 다시 수석코치로 돌아간다. 대행으로 거둔 승률은 0.385. 어지간한 감독이라면 욕을 바가지로 먹고 경질론이 나올 승률이지만 하필 비교대상이 염경엽이라...

하지만 9월 6일, 8연패 도중 염경엽 감독의 건강이 다시 나빠지며 감독 대행 자리를 다시 잡게 되었다. 당일 경기는 어수선한 분위기 탓인지 0대 10으로 대패.

결국 염경엽 감독이 남은 경기 출장을 포기하면서 2020시즌 잔여경기를 감독대행직을 수행한다. #

8일 문학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역시나 감독 감은 아니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투수운용과 용병술로 '8점 차로 앞서고 있음에도 대역전패를 하고 말았다. 9일에는 9이닝 최다볼넷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까지 쓰고 말았다. 그러나 상대전적 9승 1무 4패의 꼴지팀만은 2연속으로 때려잡으며 승차를 3.5게임 차까지 벌렸다.

이어서 치뤄진 롯데전에서도 전승을 거두면서 갈길이 바쁜 롯데의 발목을 집았다. 확실하진 않지만 한화전에서부터 팀 색깔을 폭발적인 타선이나 에이스 투수들로 틀어막기보다는 수비수가 협력해서 적은 점수차라도 확실히 지키는 수비형 야구로 전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럭저럭 괜찮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타격능력도 이전보다 감소하고, 투수들도 제구력이 흔들리는 현재의 상태로는 차라리 이게 낫다는 평가.

16일까지 6연승을 거두었다. 한화, 롯데는 그렇다치고 천적 기아팀을 상대로 각각 15점차 대승과 역전승을 잡아내는 모습을 보이면서 팬들의 평판도 나아지는 중이다. 비록 감독감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많지만 그래도 대타 작전 성공률이 높아지고, 변화한 스타일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좀 더 경험만 쌓으면 충분히 성장하지 않겠냐는 평가다.

그러나 이어진 NC전에서는 상대의 에이스 루친스키에게 타자들이 막힌데다 문승원이 담이 오는 악재까지 겹치면서 연승 행진을 마감하고 말았다. 물론 현재 팀의 전반적인 전력 상태가 상위권 팀에게는 역부족이어서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이며 3점밖에 안 내준 게 다행이지만, 영봉패는 좀 심하지 않았냐는 의견.

이어진 2차전에서도 로맥의 2연타석 홈런과 고종욱의 연속타자 홈런을 비롯하여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믿었던 이건욱이 초반 이닝에 무너지면서 2연패를 하고 말았다. 그래도 1위팀인 NC를 상대로 박경완으로선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심한 비판은 나오지 않고 있다. 다만 루친스키전을 포기하고 1선발 문승원이 2차전에 올랐다면 1승은 했으리라는 점은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경험 부족은 어쩔 수 없는 듯.

이어진 LG 트윈스전에서는 선발 박종훈이 5회까지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피칭으로 LG타선을 농락했으나, 6회에 볼넷 3개를 줄때까지도 단 한번도 마운드 방문도 하지 않고 팔짱끼고 경기를 관중처럼 관람하다가 그대로 게임이 터져서 지고 말았다.박종훈은 본인의 스승 세이콘처럼 상대 타자보다는 제구 날림으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한다는 평이 있음에도 제구가 흔들려도 방관한 돌경완의 책임이 막중하다.

그후 박경완의 신묘한 지략과 능숙한 팀운영으로 인해 팀은 7연패까지 몰렸고, 10위 한화와 1.5경기차밖에 남지 않았다.

수비형 야구로 전환한 것까진 좋은데, 가끔 투수 컨디션이 안 좋을 때도 수비만 너무 믿고 투수를 방치하다가 경기를 터뜨리는 모습이 지속되고 있다. 팬들은 맨날 김광현, 김원형, 전병두의 공만 받아왔다고 모든 투수들이 다 그럴거라 생각하는 거 아니냐고 비아냥거린다.

현재의 박경완은 배터리 코치로 평가가 좋고 그 외에 요소가 지적되던 이전과는 상황이 정반대가 되었다. 오히려 대타, 대주자는 잘 먹히는 편이라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정작 포수와 투수 관리가 엉망이 되었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이재원, 김태훈을 왜 계속 쓰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20]

다행히 채현우 대타 카드와 모처럼 공격에서의 역전타, 수비에서의 홈-2루 병살잡기로 활약한 이재원, 결승점 홈런을 친 정현 덕에 키움과의 2차전을 잡아내면서 연패는 끊었다. 하지만 이 경기도 앞서가던 경기를 김태훈 냈다가 역전당한 뒤 재역전한 점이 옥에티.

그 다음날인 9월 26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는 8회초까지 2-2로 동점으로 팽팽했으나 8회말 김태훈을 올려버렸고 이미 이 문서에서도 전술되있다시피 수차례 지적된 투수가 털리건 말건 또 방관하는 실수를 시전.우리의 김태훈은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0.2이닝 32구를 던지는동안 5실점으로 신명나게 개털리면서 삼성에게 역전패를 허용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평소에 초장부터 지고 있거나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는 본인이 경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스타일이지만 경기 후반 본인이 믿던 필승조가 털려서 역전을 허용하면 그때부터는 멘붕해서 투수가 알아서 하겠지라는 마인드로 거의 투수를 방치에 가까울 정도로 아무것도 개입하지 않는 기묘한 이중적인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고, 결국 이것이 독이 되어 역전패를 당하는 경우가 매우 잦다.

그래도 2차전에서는 모처럼 불타오른 타격에 힘입어 12대1 대승을 거두었다. 또한 본인도 자기반성을 하는지 박종훈이 연속 볼넷을 하며 위기를 맞자 얼른 올라가는 등 개선된 모습을 나름 보였다. 여전히 만루가 된 다음에서야 올라가는 비교적 늦은 모습을 보여준 건 아쉬운 부분.

9월 29일 NC의 루친스키-양의지 배터리를 상대로 자꾸 도루를 시키다가 저지당하며 좋은 찬스마저 죄다 놓치며[21] 0:3으로 패배하며 트래직 넘버가 소멸,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되었다. 물론 고작 대행에게 모든 책임을 지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있지만, 팬들은 한화가 탈락한 다다음날 전시즌 3위 팀이 리그 2번째로 탈락했다는 것이 충격적이라는 반응.

10월 30일 시즌 최종전을 앞두고 염경엽 감독이 결국 자진사퇴하면서 마지막 경기는 수석코치 딱지를 떼고 진짜 감독 대행으로 경기를 치렀다. 차기 감독이 될 가능성이 점쳐졌으나[22], 10월 31일 팀을 떠나기로 결정, 18년 만에 SK를 떠나게 되었다. 분명 LG와의 최종전이 끝났을 때까지만 해도 내년 시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잔류할 듯한 모습을 보여 일부에서는 정식 감독으로 승격할 거라는 예상이 있었으나 하루만에 사퇴 기사가 나온 것. 프런트에서 압박한 것인지 본인의 의사인지는 불분명하다. 대다수의 팬들은 팀의 1호 영구결번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차기 감독감으로 밀었던 팀 레전드가 허무하게 떠나간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23] 신임 SK 감독은 죽마고우 김원형의 차지가 됐고 5년 만의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다.

염경엽 감독이 SK 사령탑에 있는 동안 가장 고생한 사람일 듯 하다. 당초 염경엽을 보좌할 수석코치로 시작했던 2019 시즌에는 감독이 선임한 타격코치가 부진했기 때문에 급하게 타격코치도 겹업해야 했고, 2020 시즌에는 아예 감독이 아파서(...) 시즌 절반가량을 감독대행으로 보냈으며 이미 팀이 나락으로 떨어진 데다가 감독대행이라는 신분의 한계에 부딪혀 자신만의 야구를 해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그를 옹호하는 팬의 수도 상당하다. 특히 순위권 경쟁이 엄청났던 10월임에도 승률 5할을 찍으면서 박경완에 대한 우호도가 크게 올랐다.

하지만 올라간 우호도에도 불구하고, 투수관리 측면에서는 그다지 좋은 평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SK가 SSG로 바뀌면서 SK 역사상 마지막 감독대행이 되었다.

3.5. 이후

SK를 떠난 후 근황이 알려지지 않다가, 2021년 3월 신세계에 매각된 SK 와이번스 구단 고별행사에 영상으로 등장했다.

2021년 3월 19일, 근황이 공개되었다. 야인 신분으로 야구를 더 공부할 겸 가족들과 함께 미국 애리조나로 건너와 있다고 한다.# 동시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입단해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를 소화하는 김하성을 보러 오기도 했다.

이후 잠시 귀국해 야신야덕 채널에 출연하기도 했다.

4. 프런트 경력

김용희 육성총괄이 1군 감독으로 취임하자 공석이 된 육성총괄로 선임되어 SK 와이번스 프런트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박경완이 계속 2군 감독으로 현장감각을 키울것으로 예상했으나, 다소 의외라는 반응. 이후 나온 기사에 따르면 현장업무 뿐 아니라 프런트로써 해야하는 업무까지 담당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2014년 11월 김강민과의 FA협상에서는 본인이 직접 김강민을 10시간 동안이나 가둬둔 끝에(..) 소속팀 잔류를 이끌어냈다. 네이버 스포츠의 인터넷 라디오 라디오볼에 따르면 김강민에게 김성근 前 감독이 아버지같은 존재라면 박 총괄은 어머니라고 말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었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협상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SK 와이번스 갤러리에서는 붕마마(붕가옹+마마)라는 새 별명까지 획득.

육성총괄이라는 보직이 눈에 띄는 자리는 아니다보니 근황을 궁금해 하는 팬들이 많았는데 미국에서 한 달간 대체 외국인 선수를 알아보러 다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16년 1군 배터리 코치로 부임하면서 다시 현장에 복귀하게 되었다.

5. 플레이 스타일

포수로서의 기본기인 블로킹, 포구 능력, 도루 저지를 위한 강견은 물론 장타력까지 모두 정상의 기량을 뽐내던 KBO의 역사상 최정상급 포수이다. 현대의 1998, 2000 시즌, 그리고 SK의 2007, 2008, 2010 시즌 우승 주역. 포지션상 도루는 많이 안 노리지만 한 시즌 20-20도 달성한 바 있다. 체력소모가 큰 포수에게는 20-20은 엄청나다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의 어마어마한 대기록이다. 140년 역사의 MLB에서도 포수 20-20은 오직 단 한 번밖에 기록되지 않은 것이 사실. 99년 이반 로드리게스가 전대미문의 이 기록을 앞세워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누르고 MVP를 수상하였다.[24] 박경완의 01년 20-20은 이반 로드리게스에 이은 전세계 2번째 포수 20-20이며, 당연히 KBO역사에서는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타석에서는 정교함보다는 힘으로 쳐내는 타격을 주로 했던 편으로, 통산 타율은 2할 5푼에 1리가 모자라고, 단 한 번도 3할을 친 시즌이 없으나, 2000년, 2004년 두 번이나 홈런왕을 차지한 적이 있다. 공갈포는 당연히 아니고 타율은 낮지만 출루율과 장타율은 훌륭했던 대표적인 OPS 히터. 통산 .249의 타율로 OPS가 .800이 넘는다. 특히 2000년에는 40개의 홈런을 쏘아올려 포수로는 이만수 이후 처음으로 홈런왕과 시즌 MVP를 따내기도 했다.[25] 그런 만큼 삼진수도 엄청나게 많다. 통산 삼진이 1,605삼진으로 역대 타자 최다 삼진을 기록하고 있다.[26] 하지만 클러치 능력이 꽤나 빼어나서 타점도 적지 않고 적시타도 상당히 많다. 무엇보다 자신의 전성기이던 쌍방울과 현대시절 모두 자신보다 더 뛰어난타자들이 많아서 박경완이 타점을 내고 싶어도 주자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

스탯티즈 기준 포수 통산 타격 war 1위이다. 타 스탯도 출루율, 장타율, OPS 역대 포수 3위[27], wRC+ 4위[28] 포수 원톱 논쟁으로 인해 vs 이만수와 비교되면서 다소 수비 쪽으로 평가가 집중되긴 했지만 타격 능력 역시 롱런하면서도 꾸준히 성적을 내줘서 역대 포수 중 톱클래스이다.[29] 다만 톱클래스라는 표현으로 함께 묶이기에는 이만수가 넘사벽이긴 하다. wRC+ 기준 이만수는 통산 159, 박경완은 122이다.[30]

이대호를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첫 타석 볼넷이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박경완의 포수로서의 능력을 보여주는 좋은 예.

6. 김원형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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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 김원형의 은퇴식을 함께하는 박경완[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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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은퇴식때 함께하는 김원형

김원형이 은퇴할 때 가장 아쉬워했던 것은 본인 김원형보다 오히려 박경완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 였다. 박경완이 김원형의 은퇴를 함께한 이후 김원형 또한 박경완의 은퇴식에 나와서 마지막 까지 함께 하였다.[32]

7. 기록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포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만큼 수비도 뛰어나지만, A급 타자이기도 하다. 통산 성적도 홈런, 출장 경기, 타점 등 많은 부문에서 순위권에 들어 있다.

통산 타율은 불과 .249로 많이 낮은 편이지만, 클러치 능력과 뛰어난 장타력으로 이를 극복했던 스타일. 삼진개수 역대 1위(1605개)인 탓에 공갈포로 취급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 박경완이 현역으로 뛰던 시절에는 많이 주목받은 능력은 아니지만 볼넷을 상당히 많이 얻어내는 타입이라 타율에 비해 출루율이 거의 0.1 이상 높은 편이었고, 실제로 통산 성적도 타율은 .249에 그치지만 통산 출루율은 .367로 6시즌 째 지명타자를 병행해가며 타격 스탯에서 이득을 보고 있는 홍성흔보다도 높다. 데뷔 초 2할 초반의 타율에 머물때도 출루율은 항상 3할을 넘겼다.

그가 기록했던 통산 성적 중 눈여겨볼 만한 것들을 살펴보자면,
  • 2043경기 출장으로 역대 10위를 기록. 이 부문 1위인 박용택(2224경기, 2020년 10월 8일 기준)과는 180경기 차이가 난다.
  • 통산 995타점으로 역대 19위를 기록. 그보다 더 많은 타점을 올린 우타자는 997타점의 정성훈, 1069타점의 홍성흔, 1145타점의 장종훈, 1084+타점의 최정, 1097타점의 김동주, 1081타점의 박재홍, 1030타점의 송지만, 1029타점의 심정수, 1003타점의 마해영, 1265타점의 이호준, 1113타점의 이대호, 1233타점의 김태균, 1127타점의 이범호 뿐이며, 좌타자는 1389타점의 어느 타격의 신, 소속팀에서 영구결번이 된 1498타점의 라이언킹, 1027타점의 저격수, 1031+타점의 최형우, 1059+타점의 박용택 단 다섯 사람뿐이다. 심정수와 마해영의 기록은 뛰어넘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2009년 아킬레스건 파열이라는 큰 부상 이후 재활 후에도 고질적 발목 문제가 생겨 다음해 1년간 활약했음에도[33], 2011년부터 주기적인 발목 통증 재발로 인해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고, 결국 1000타점도 채우지 못했다. 2009년의 부상이 두고두고 아쉬운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경완의 통산 타점 기록이 대단하다고 인정받는 것은 앞선 경쟁자들이 모두 소속팀의 중심타자 역할을 할 때, 박경완은 수비 부담 문제로 하위타선에 자주 배치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 의외로 안타는 불과(?) 1480개. 정확성보다 장타를 중시한 스타일대로의 결과. 단 흠이라면 23시즌이나 뛰어서 한 해 평균 안타 개수는 64.3개다.
  • 통산 974볼넷으로 역대 5위를 기록. 아쉽게도 1위는 바로 그 분께서 1278개를 기록한 탓에 기록 경신이 쉽지 않았다.
  • 몸에 맞는 공 166개로 역대 단독 4위. 역대 1위는 같은 팀 후배 마그넷정으로, 5년 연속으로 20사구를 맞는 페이스로 풀타임 10년만에 무려 156개를 맞(...)고 2위를 찍는 기염을 토한 뒤, 2016년 4월 23일, 타이를 이루고, 4월 28일, 결국 단독 1위로 등극한다. 2위는 196개의 박석민이고 3위는 167개의 이대호이다. 그 아래로 5위 161개의 박종호, 6위 148개의 김한수, 7위 147개의 김동주 그 아래로 8위 145개의 송지만은 은퇴했다.
  • 약간 특이한 기록으로는 안타 중 장타의 비율이 40.6%로 역대 6위. 안타 10개 중 4개가 2루타 이상이었다는 뜻.
    그런데 사실 박경완보다 상위에 있는 선수들은 10시즌 동안 41.3%의 조경환[34], 그리고 펠릭스 호세, 카림 가르시아, 타이론 우즈같은 단기간 활약한 외국인 선수. 즉, 역대 모든 타자 중 일단 치면 장타였던 선수는 실질적으로 박경완이라는 뜻. 그런데 이 부문 1위는 49.3%, 즉 안타의 절반이 장타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강의 홈런타자인 그 분. 물론 이 괴수는 불과 9시즌동안 기록한 성적이긴 하다.[35]
  • 크보에서 유일무이한 20-20클럽 포수 가입자이다. 심지어 이 시즌을 전후로는 한 번도 1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한 적도 없다. 2년 전 저쪽 리그 어느 땅딸보 포수가 포수 최초로 20-20을 기록한 이후 얼마 안 돼서 나온 기록이라서 더 놀라운 기록이다.[36]
  • 불명예 기록으로는 통산 삼진 1위가 있는데, 무려 1605개(…). 2위인 송지만과는 154개 차이. 그 밑으로는 장종훈이 1354개로 3위, 박재홍이 1147개로 4위, 심정수가 1073개로 5위, 이승엽이 1022개로 6위다.[37] 이 기록을 갱신할 것으로 여겨지는 후보는 셋. 포수후배 강민호와 SK후배 최정, 역대 최연소로 1,000삼진을 달성한 오지환. 강민호와 최정은 워낙 어린 나이부터 주전으로 뛰었고 스윙도 커서 삼진이 쌓인 케이스라면, 오지환은 한시즌 부상없이 뛰면 140개씩 적립하는 어마어마한 삼진 페이스로 추격중이다. 이들의 부상빈도와 나이를 고려하면 최정과 강민호가 무슨 기록을 세우던 오지환이 갱신할 가능성이 높다. 재미있게도 오지환 역시 많은 삼진에 비해 출루율이 이상하게 높은 괴이한 스탯을 보유하고 있다.
  • 잘 언급되지 않는 사실이지만, 보내기 번트도 통산 178개로 홈런과 비슷한 순위인 역대 7위에 올라있다. 번트도 누적기록이기 때문에 상위에 랭크된 선수는 모두 많은 경기에 출장한 유명 선수들이지만, 10위권은 박한이를 제외하면 모두 박경완과 성적이 꽤 차이나는 선수들이다. 번트 169개로 박경완에 이어 8위인 박한이도 wOBA로 보면 0.361로 0.362인 박경완과 거의 같지만, 박경완보다 1400회나 많은 타석에 섰으니 타석 대비 번트 횟수는 박경완과 적지 않은 차이가 난다. 애초에 둘은 번트 대는 스타일이 달라서 직접적 비교는 어렵다 시즌 OPS가 1.0이 넘는 선수는 보통 해당시즌 번트를 거의 대지 않으나[38] 박경완은 1.0이 넘었던 00년, 04년에도 각각 6개의 번트를 댔고, OPS 1.0이상 시즌에 저보다 더 많은 번트를 댄 선수는 8개의 85년 장효조밖에 없다. 통산 번트가 저리 많은 것은 박경완이 특별히 번트를 잘 대서라기보다는 커리어의 대부분을 번트를 선호하는 과 보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식 스몰볼 흉내가 아닌 통계를 제대로 활용하는 감독과 선수 생활을 했다면 저렇게 많은 번트를 대지는 않았을 것이다.

8. 여담

  • SK 왕조 시절 역대 대한민국 최고의 포수가 이만수냐 박경완이냐에 대해 뜨거운 키배가 벌어지기도 했다. 최고의 포수로서 이만수를 고르는 쪽은 주로 압도적인 타격을 근거로 내세운 반면 박경완을 고르는 쪽은 포수 리드와 수비적인 면을 내세웠다. 하지만 포수 리드는 세이버매트릭스에서는 수치화하기 힘들어서 제대로 다루지 못 하는 영역이고(당장 2014년 팬그래프에서만 하더라도 포수에 대한 스탯 활용에 대한 접근은 최근(그 시점 기준 3년 정도)에 와서야 겨우 시작하는 수준이라고 하였다. 반면 타격 지표로 넘어가면 wRC+에서 이만수가 159, 박경완이 122로 그 차이가 매우 커진다. 게다가 골든글러브 수상 횟수에서도 4회에 불과한 박경완은 5회의 이만수에게 밀리는데, 이만수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원년에 데뷔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몇년 더 일찍 프로야구가 생겼다면 이 차이는 더욱 크게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국 역사상 최고의 포수는 이만수이고, 그 바로 다음이 박경완이라고 볼 수 있다.[41]
  • 스트레스성 원형탈모 증세가 있다고 한다...[42][43]게다가 포수라는 포지션에서 비롯된 중압감이 심해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현대 시절 생긴 불면증이 십수년째 계속되었고, 운동선수에게 수면부족은 치명적이기에 치료란 치료를 다 받아봤지만 소용없었다고 한다. 수면제를 복용해야 간신히 새벽 5시경에 잠들었는데, 그조차 숙면이 아닌 선잠이었다고. 김성근 감독은 이러한 불면증에 시달리는 박경완의 오전훈련 및 특타를 열외시켜주며 낮잠을 잘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특히 연타석 홈런을 친 그날 불면증으로 잠을 설치고 비몽사몽간에 경기를 나섰는데도 대기록을 세웠다. 최악의 불면증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클래스를 보여줬다는 것은 참...현대 시절부터 탈모의 징후가 보인다.
  • 조인성이 '잉'이란 접미사가 붙는다면 이쪽은 초성으로 나타내면 ㅂㄱㅇ이라 붕가라는 접두사가 붙는다... 여기에서 파생된 단어가 붕가포 등등. [44]
  • 2002년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얻었을 시절, 현대 유니콘스에 남는 조건으로 당시로써는 엄청나게 큰 금액이었던 7년 총 42억을 요청한 바 있다. 당연히 자금난에 시달리던 현대에게는 씨알도 안 먹혔고, 시장에 나온 후 SK 와이번스와 3년 총 19억에 계약, 본인이 원했던 계약액, 계약기간보다 훨씬 적은 금액에 계약했던 바 있다. 본래부터 현대를 떠나려고 했던건지 일부러 크게 부르고 계약하면 좋고 아니면 타팀으로 갈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그 당시 현대 단장이던 김용휘와 선수 박경완 두 사람만 알고 있을뿐
  • 포수용 헬멧과 일반 마스크를 분리해서 착용하는 다른 포수들과 달리 현대 유니콘스로 이적한 이후부터 줄곧 아이스하키 골리(골키퍼)들이 쓰는 마스크와 유사한 헬멧 일체형 마스크를 썼다. 자세한 사연은 야구 헬멧 항목 참조.
  • 해몽학계에선 길몽의 상징이라고 한다(...).
    1. 로또 383회 당첨자 꿈

    작은 시골마을 은행출장소 같은데, 출근을 할려고 택시를 타고 가서 요금을 낼려고 지갑을 보니

    만원권 복사본 한 장만 있다. 기사를 보니 SK 와이번스 박경완과 부인이 택시를 하는 모양이다.

    계좌번호를 적어주면 직장에 가서 입금시켜 주겠다고 하니 박경완이 전과조회를 한 후 입금해야 한다는 등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 그러는 사이 우리 집에서 삶아온 닭고기를 먹는데, 꼭 소고기 맛이다.


    2. 네이버 지식인 태몽 사례

    수박 태몽 해석 부탁드려요...내공 드려요

    와이프가 직접 꾼 꿈이라는데...

    프로야구 SK 포수 박경완 선수가 초음파를 봐 줬는데,

    아기가 딸이고, 아기 배 모양이 수박 모양이라 했답니다.

    박경완 선수가 "배가 수박 모양이면 아기가 아주 튼튼한 거다"라고 했다네요.

    해몽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게 태몽일 수도 있나요?

    저희 부부도, 그리고 주변에도 어느 한사람 태몽 꾼 사람이 없어서요.

    아! 와이프는 임신 4개월이고 저희는 결혼한 지 2년 안됐고 첫 아이입니다.

    참! 아직 아들인지 딸인지 모릅니다.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 없이 다 좋고요...

    혹시 아들인지 딸인지도 알 수 있나요?
  • 자신이 선수 생활동안 겪은 제구 안 되는 투수로 세 명을 꼽았는데 그 중 한 명이 고효준, 나머지 한 명은 김영수였다고 한다. 프로경력만 20년 이상 되는 포수 입장에서도 공을 받기 힘들었다는 말을 했을 정도로 이 둘의 답없는 제구력은 유독 돋보였던 모양.[45] 여담으로 제구 안되는 좌완투수였던 김영수가 방출되자 한시름 놓았는데 그와 비슷한 타입인 고효준이 1군에 자리잡는 바람에 제구 안되는 투수 둘을 연이어서 상대했다고 밝힌 바 있다.
  • 김성근 개인팬들은 김성근이 박경완을 포수로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훈련과 꾸준한 경기 출장을 통해 키웠다며 왜곡을 하는 글이 여러 차례 보이지만 실은 김성근이 쌍방울 감독으로 부임하기 이전부터 조범현 당시 배터리코치의 혹독한 훈련으로 1994년~1995년부터 주전 포수로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당연히 씨알도 안 먹힌다. 한화 이글스 감독 시절의 실패로 그간의 좋던 이미지를 다 깎아먹기 전에는 '이게 다 김성근 덕분이다'는 식의 주장이 먹혔겠지만...
  • SK 와이번스에서 싸인 받기 어려운 인물들 중 하나로 손꼽힌다. 받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 2018년 어린이날 한정으로 어린이 팬에게 싸인을 해주고 모자도 선물로 줬다. 현역에서 물러나 코치가 된 지금도 팬서비스는 정말로 최악이라고 한다.[46]
  • 박명환야구TV에서 오상민이 술회하기를, 당구 실력이 상당히 뛰어나다고 한다. 박경완, 오상민, 김원형, 최정환[47] 이렇게 당구시합을 하는데 꼴등을 하다가 항상 1등으로 게임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조용훈의 일화로, 조용훈은 몸쪽 꽉 찬 속구를 던졌으나 박경완에게 홈런을 맞자 분노를 이기지 못해 삭발하고 혼잣말을 하던 모습이 기자에게 알려지면서 조감히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조용준이 밝힌 장민석의 일화로 장민석이 대선배 포수인 장광호의 사인에 가로젓는 모습을 보이자 덕아웃에서 불꽃 싸대기를 날렸다고 한다.
  • 가수 G.NA의 노래 Black & White에서 너와 나~ 블랙엔화이트~ 이 부분이 너와나~ 박경와이~로 들린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래서 야갤 등지에서 지나와 박경완을 합성한 짤방이 떠돌아다닌 적도 있다.

9.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1 쌍방울 10 6 .000 0 0 0 0 0 0 0 2 .000 .250
1992 31 49 .224 11 1 0 3 6 5 0 3 .429 .269
1993 26 48 .208 10 2 0 0 2 1 0 5 .250 .283
1994 102 240 .238 57 8 2 14 31 31 0 30 .463 .322
1995 121 361 .227 82 13 2 19 46 48 5 64 .432 .344
1996 126 367 .218 80 19 2 15 74 58 2 79 .403 .349
1997 82 239 .280 67 15 1 16 48 46 2 66 .552 .430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8 현대 123 404 .250 101 25 1 19 66 54 3 45 .458 .324
1999 124 367 .221 81 16 1 23 67 67 2 80 .458 .359
2000 130 408 .282 115 16 0 40
(1위)
95 83 7 99 .615
(2위)
.419
(3위)
2001 130 421 .257 108 13 1 24 81 66 21 98 .463 .395
2002 119 330 .203 67 10 1 19 42 42 6 53 .412 .311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3 SK 122 336 .250 84 16 2 15 60 49 6 68 .443 .373
2004 132 410 .295 121 19 1 34
(1위)
79 94
(4위)
2 108 .595
(2위)
.440
(2위)
2005 114 347 .245 85 17 0 11 44 43 1 64 .389 .357
2006 111 324 .253 82 13 0 13 51 38 2 46 .414 .342
2007 119 352 .247 87 21 1 15 60 60 6 65 .440 .357
2008 101 304 .273 83 17 0 7 36 44 6 54 .398 .377
2009 65 198 .268 53 10 0 12 38 32 3 35 .500 .375
2010 129 381 .262 100 20 0 14 67 51 1 73 .425 .379
2011 10 15 .133 2 0 0 0 1 0 0 2 .133 .235
2012 8 20 .100 2 0 0 0 0 0 0 2 .100 .182
2013 8 19 .105 2 0 0 1 1 1 0 1 .263 .150
KBO 통산
(23시즌)
2043
(4위)
5946 .249 1480 271 15 314
(5위)
995 913 75 1140
(3위)
.458 .367

10. 관련 문서


[1] 한경기 4홈런은 박병호, 최정, 한동민 4연타석 홈런은 야마이코 나바로가 기록했지만 이틀에 걸친 기록. 한경기 4연타석 홈런은 박경완과 윌린 로사리오가 달성했다.[2] 4월 19일부터 타격코치 김무관의 자진 강등으로 공석이 된 타격코치를 겸하게 되었다.[3] 9월 1일 염경엽 감독이 복귀하자 다시 수석코치로 돌아갔으나 9월 6일 결국 염경엽 감독이 시즌아웃되면서 5일만에 다시 감독대행으로 돌아갔다.[4] 홈런~ 홈런 홈런 홈런 박경완~ 박경완 X2[5] 이 응원가는 기존 쌍방울 레이더스 팀 응원가에서 개사된 응원가이다.[6] (헛둘셋넷) 유~쾌하게 안타! 상~쾌하게 홈런! 통쾌하게~날려라~ 최고의~ 타자~ 박~경완~(무조건 안타! 무조건 홈런!) 최고의~ 타자~ 박↗~경완~(박!경!완!)[7] 포수 최초로 통산 300홈런과 한 시즌 20홈런 20도루를 달성했던 역대급 포수로 평가받는다. 수비력 또한 훌륭해서 그 김성근 감독도 "SK 전력의 반은 박경완이다."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8] 그리고 2021년 SK 와이번스가 신세계그룹으로 인수되면서 SK의 이름을 단 최후이자 유일한 영구결번 선수가 되었다. 물론 랜더스는 와이번스의 모든 역사를 그대로 유지시키는 쪽이라 팀이 해체되는 건 아니니 영구결번 지위는 그대로 유지된다.[9] 이만수의 부임과 함께 코치직에 임명된 최경환, 맥스 베너블[48] 등의 코치는 2013시즌 종료 후 모두 해임되었으며 실질적으로 이만수의 사람이라고 부를만한 코치는 성준 수석코치 한 명만 남았다.[10] 대체적으로는 태평양 시절부터 인천야구를 봐 온 올드 팬덤은 인천의 남자 김경기 1군 타격코치를, 이보다 연령대가 낮거나 김성근 전 감독 시절 구성된 팬층은 박경완을 지지하는 편.[11] 염경엽과 박경완은 데뷔년도가 같다. 그러나 염경엽은 대졸.[12] 애초에 우리는 이 분의 본 파트가 정수성 코치와 함께 주루 코치임을 알아야 한다.[13] 최정이야 뭐 꾸준함에 자기 관리를 잘하는 편이라 뭘해도 알아서 한다.[14] 2017년에 은퇴를 했다.[15] 염경엽 감독은 두 달 뒤에 바로 복귀하는 것이 아닌 건강 상태를 체크한 뒤에 복귀할 예정이라 올 시즌 복귀가 힘들수도 있다.[16] 이것도 만약 무리한 도루작전으로 주자 최지훈이 아웃되지 않고 남아있었다면 3점이었는데, 1점 손해본 것이었다.[17] 그나마 한화는 최원호 감독대행의 투수관리 및 유망주 콜업, 육성에 집중하여 후임자 카를로스 수베로가 팀을 살릴 토대를 제공해 팬들에게 좋은 평을 받았다.[18] 윤석민은 이날 2홈런을 쳤는데, 처음부터 선발로 출장한게 아니라 10점차 이상으로 점수차가 벌어지면서 승산이 없으니까 최정을 쉬게 해줄려고 어거지로 출전시켰다. 이 전날 한화전에서는 상술되있듯 2안타를 쳤는데도 5회에 빼버렸다.[19] 세이버메트리션들의 견해에 의하면 최근에는 무사 1루, 1사 2루나 기대 득점은 비슷하므로 아주 특수한 상황(예: 승부치기, 좌타자 대 좌완 언더핸드)이 아니면 번트보다 강공이 낫다는 평가가 우세하다.[20] 이재원은 그나마 블로킹은 여전히 괜찮은 편이고, 도루 저지도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다. 이재원이 나온다 보다는 박경완이 이흥련을 너무 안 쓴다는 점이 더 비판받는 것이다. 하지만 나올 때마다 경기를 터뜨리는 김태훈에 대해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평. 오원석처럼 경험을 쌓아야하는 신인 투수도 아닌데 왜 쓰냐는 것이다. 다만 김태훈은 팔꿈치 수술 후 첫 시즌임을 감안해야 한다.[21] 심지어 대체로 박경완에게 우호적인 반응이었던 SK 와이번스 갤러리에서도 박경완의 이 무리하고 의미없는 실패한 도루작전을 대차게 깠다.[22] 최근 10년간 감독대행이 다음 시즌 정식 감독으로 승격된 케이스는 팀의 전 감독인 이만수가 유일하다.[23] 그래도 다른 여러 구단에서 영구결번 헌액자가 지도자로 들어왔다가 성적 부진으로 친정팀 코칭스태프에서 불명예스럽게 떠나간 사례는 꽤 있다. 대표적으로 KIA의 선동열, LG의 김용수, 한화의 송진우, 정민철, 장종훈 등이다. 또 영구결번은 아니지만 레전드급으로 분류되는 한화 한용덕은 도중에 불명예 퇴진했고, 삼성 김한수 역시 감독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팀을 떠났다. 이들 가운데 한화의 영구결번 3인은 나중에 모두 코치와 프런트로 다시 복귀했다가 장종훈송진우는 2020년 시즌 후 다시 한화를 떠나게 됐다. 다만 상술한 것처럼 박경완은 애초에 팀을 거의 수습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독대행이 된 상황이라 옹호 여론이 꽤 높았고, 시즌 막판 한 달 간 승률 5할을 기록한 데다가 감독대행이라는 한계가 있어 전체적인 평가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거기에 애초에 선수 은퇴 후부터 SK 구단에서 대놓고 차기 감독감으로 밀어줬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사퇴가 의외라는 평이 많은 것.[24] 로드리게스의 경우 1998시즌과 비교하여 눈에 띄는 성적 향상이 있었고, 안타와 홈런은 데뷔 후 최고 기록한 시즌이기도 하는 등 로드리게스의 1999 시즌은 다양한 부분에서 실력 상승이 돋보인 시즌이었다. 물론 마르티네즈의 1999시즌 기록의 굵직한 점만 적더라도 23승 4패, 방어율 2.07, 삼진 313개 등 미친 시즌인 것이어서, 로드리게스에게 20-20의 기록이 없었다면 MVP를 받기 어려웠을 것이다[25] 그런데 100타점을 넘지 못했다(95타점). 당시 클린업에 있던 박재홍(최다타점) 등이 타점을 다 쓸어가서...[26] 전체 2위 송지만과는 150여개 차이.[27] 셋 모두 1위는 이만수, 2위는 양의지인데 양의지는 아직 현역인만큼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28] 예상외라 생각할 수 있지만 3위는 태평양 돌핀스의 주전이었던 김동기. 다만 타석 숫자가 많이 차이나므로 박경완이 4위에 불과하다는 말을 쓸 순 없을 것이다.[29] 올드 팬들은 이만수에 손을 드는 이유가 수비 때문에 손을 들어주고 박경완의 경우 리드와 저지 능력 이라는 점을 이용해 비교를 한다.[30] 사실 포수로써 통산 122의 조정생산력이면 엄청나게 뛰어난 것이다. KBO의 2010년대 포수 평균은 95를 넘긴 적이 없고, 통산성적으로 122면 포수가 아니라 1루수로도 레전드 소리 들을만한 수준이다. 그냥 이만수가 KBO 역사상 최고의 우타자로 불릴 선수인 것일 뿐.(여담으로 이만수의 커리어하이 wRC+는 200이 넘는다. 그것도 세번이나...)[31] 해당 사진은 원래 김원형 항목에 있던 것이다. 실제로 이 둘의 관계는 야구에 대해서 잘 모르던 사람들도 어느 정도는 알 정도로 꽤 유명한 친구 사이다.[32] 둘을 일컫는 말중 하나인 영혼의 배터리라는 표현이 있는데 야구 팬들 뿐 아니라 언론에서도 이 둘의 관계를 부르면서 자주 사용하던 표현이다.[33] 이때도 주루에는 지장이 있었다.[34] 1998년에 롯데 자이언츠에서 데뷔한 외야수로, 사상 최초 1군 첫 타석 홈런 기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1999년부터 똑딱이 일색의 롯데 타선에서 마해영과 함께 장타를 쳐주던 몇 없던 장타자. 2000년 그 똑딱 기술마저 잃어버린 몰락한 롯데 타선에서 버텨주던 마해영도 2000년을 끝으로 떠나가 2001년 100타점을 올리며 펠릭스 호세와 함께 역시 팀 내에서 둘뿐인 장타자 역할을 해줬으나, 당시 감독인 백인천의 삽질로(자세한 항목은 백인천 항목 참조) 2002년 시즌 중 SK로 트레이드시켜버린다. SK에서 박경완과 잠시 한솥밥을 먹었으며 이후 KIA에서 은퇴했다. 크보 역대 최고의 공갈포 중 한 사람. 굳이 비교하자면, 저쪽 리그아담 던같은 스타일.[35] 이승엽의 범위를 선수시절 한일통산으로 합산하면 23시즌 2842안타, 602 2루타, 36 3루타, 626홈런으로 장타 비율이 44.4%가 된다.[36] 여담으로 20-20클럽 포수 가입자는 저 둘 뿐이다.[37] 본인은 불명예로 생각하지 않는다. 최훈이 공동필진에 포함된 스카우팅 리포트 시리즈에 따르면 박경완은 자신은 포수이고 하위타선에 배치되는 일이 많았던 만큼 삼진을 당하더라도 큰 스윙으로 장타를 만들어내는게 더 의미가 있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2010년의 2할5푼치는 양의지가 2011년 3할치던 양의지보다 더 위협적인 것과 같은 이치다.[38] 2018년에는 OPS 1.0이상인 선수가 6명이었는데, 저 6명의 번트 합계는 0이다.[39] 고교 시절 전국구급으로 실력이 뛰어났던 건 아니지만 사실 꼭 프로구단에서 신고선수를 해야 할 정도로 못했다고 하긴 애매하다. 실제로는 학교 야구부와의 거래로 원광대학교 진학이 다 약속되어 있었다고 한다. 또한 그 소문에 프로구단들이 지명 안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졸업을 앞두고 갑자기 박경완 본인이 프로에 가고 싶다고 우겨서 스스로 쌍방울에 갑자기 입단테스트 받고 가는 바람에 신고선수가 되었다고 한다. 거기엔 당시 고교 최강 투수 중 하나였고 계속 배터리를 이루었던 전주고 동기 김원형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 그 대학에서 박경완이 입학하기로 한 대가로 같이 입학시켜 주기로 약속된 몇몇 동창 선수들(일종의 끼워팔기 딜)이 박경완이 입학을 거부함에 따라 갈 곳이 없어져 같이 신고선수로 쌍방울에 들어가면서 박경완을 많이 원망하기도 해서 어차피 1군에서 즉시전력감으로 쓰여서 자주 볼 일 없던 김원형만을 제외한 그들 동창 사이에서 잠시 왕따이기도 했다고 하는데, 어쨌든 실력이 부족한 동창 선수들을 대학입학 대가로 보너스로 꽂아줄 정도의 실력이라면 최고급 신인 같은 건 아니었더라도, 원래 어느 정도 잘하는 선수였으면 잘하는 선수였지 허접한 선수는 아니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40] 98년 삼성 라이온즈가 해태 타이거즈 조계현의 트레이드 머니 4억원을 불렀는데 이는 하루만에 신기록을 세웠다.[41] 참고 박경완은 역대 포수 WAR 1위이자 최다 홈런자이다. 이만수를 제외하면 비율 스탯으로는 양의지, 김동기가 비슷하지만 통산 WAR에서 무려 30 가까이 차이나므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다만 2020년 현재 양의지가 엄청난 페이스로 통산 WAR 차이를 20까지 좁혀버려 어쩌면 박경완과 비교될 가능성이 생겨버렸다.[42] 워낙 상대 타자들을 연구하는 탓에 생겼다고 한다. 09년 우승하면 팀원들이 갹출해서 심어준다고 했으나 팀은 준우승... 심어줬다고 하지만 아직도 휑하다. 다행인 건 KBO 최고령 노총각이신데다 최근 탈모까지 오신 류택현 옹과는 다르게 결혼은 애즈녘에 했다는 것(...) 오히려 곱상한 동안 미남으로 유명했던 절친 김원형보다 일찍 했다.[43] 모를 리는 없겠지만 원형탈모는 쉽게 생각해서 땜빵이 머리에 난다고 생각하면 된다.[44] 온라인 야구 게임 마구마구에선 레어+박경완(스페셜)+박경완(") 조합인 붕가붕가 조합이 유명하다.[45] 여담으로 고효준과 김영수는 좌완 파이어볼러, 제구가 잘 되지 않는 와일드 씽 타입, 전천후 투수, 롯데와 SK 유니폼을 입고 뛴 것(2002년 롯데, 2003~2004년, 2007년 SK) 등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46] 과거 도원아재들의 일화인데. 현대 시절에도 저랬다고 한다.[47] 과거 쌍방울의 투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