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5 19:53:04

엄정욱

엄정욱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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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3.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10

SK 와이번스 등번호 55번
팀 창단 <colbgcolor=#FF6600> 엄정욱
(2000~2015)
정영일
(2016~2017)
}}} ||
파일:엄정욱 감독.jpg
엄정욱
嚴正郁 | Um Jungwook
출생 1981년 6월 18일 ([age(1981-06-18)]세)
서울특별시 도봉구
(現 서울특별시 강북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수유초 - 중앙중 - 중앙고
신체 191cm, 94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2000년 2차 2라운드 (전체 9번, 쌍방울)[1]
소속팀 SK 와이번스 (2000~2006, 2008~2015)[2]
등장곡 Dream ~ 내일로의 시작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
2.1. 2000~2009 시즌2.2. 2010 시즌2.3. 2011 시즌
2.3.1. 포스트시즌
2.4. 2012 시즌2.5. 2013 시즌2.6. 2014 시즌2.7. 2015 시즌
3. 은퇴 후4. 피칭 스타일5. 여담6. 연도별 성적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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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SK 와이번스 소속 우완 오버핸드 투수.

쌍방울 때 지명되었지만 데뷔부터 은퇴까지 SK 와이번스에서만 뛴 넓은 범위에서 구단 최초 원클럽맨이다.[3]

별명은 와일드 씽(Wild Thing)[4]…은 서류상 별명[5]이고, '엄롤코', 우롤코가 제일 많이 쓰이는 별명이다. 잘할 때는 엄판왕. 엄쏘공이라는 별명도 있다.

조동화와 더불어 유이하게 2000년 SK 창단 멤버 중 SK 소속 현역으로 남은[6] 선수였었다.

2. 선수 경력

2.1. 2000~200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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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수유초, 서울 중앙중, 중앙고 출신으로, 당시 해체를 눈앞에 둔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2순위(전체 9순위) 지명을 받은 상당한 유망주였다. 선수생활 초기에는 2군에서 곧바로 데뷔하며 많은 기회를 부여받고 뛰었다.

통산 평균자책점 4.11, 10승을 찍은 시즌도 전무하고 데뷔 16년차 동안 겨우 340이닝 남짓 소화한 그는 얼핏 보면 그저 그런 평범한 투수로 보이게 만든다.

그가 스타덤에 오른 이유는 바로 당시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빠른 공을 던진 사나이였기 때문이다.

2002년 5월 11일, 문학 KIA전에서 이현곤에게 154km/h, 이종범에게 156km/h의 공을 던져 삼진을 잡아내는 모습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엄정욱은 순식간에 ‘총알탄 사나이’, ‘한국의 롭 넨’ 등등의 수식을 받으며 스타로 급부상했고, 2003년 4월 27일에는 158km/h의 광속구를 선보이면서 자신이 기록했던 한국 프로야구 최고 구속 기록을 갈아치우는 모습을 보인다.

2004년은 전업 선발로써 22경기(선발 19경기) 출장하여 105⅓이닝동안 7승 5패 1세이브 1홀드 ERA 3.76으로 커리어하이를 찍었다.[7] 특히 7월 한 달간 6경기 등판하여 41이닝을 소화했고 57탈삼진을 잡아냈다. 거기에 완봉승 1회 포함 4승에 월간 ERA 2.85로 빼어난 호투를 보이며 당시 팀 선발이자 동기인 에이스 이승호와 쌍두마차로 굳건히 입지를 다지는가 했으나, 8월 10일 현대전에서 6이닝 8탈삼진 1실점 승리투수를 마지막으로 개점 휴업에 들어갔다. 지긋지긋한 어깨 부상의 악령이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괴롭힌 것이다.

재활을 통해 2005년 정규시즌에 한 달 정도 늦게 복귀하여 중간계투로 3경기 연속 무실점 투구를 하다가, 다시 선발로 복귀하고자 5월 13일 한화전에 선발로 등판했으나 2회까지 1피안타 2볼넷 1탈삼진 1실점을 기록한 후 다시 어깨 통증이 재발하면서 다시 재활에 들어갔고, 후반기인 8월 15일이 되어서야 두산전에 1⅔이닝 1피안타 1볼넷 3탈삼진으로 복귀식을 가졌고, 바로 다음날 16일 롯데전에서는 1⅔이닝 동안 1피안타 맞긴 했어도 아웃카운트 모두 삼진으로 잡는 호투를 선보이며 당시 패넌트 레이스에서 1위였던 삼성 라이온즈를 잡을 비장의 카드로 급부상했으나 8월 27일 삼성전에 선발로 나와 1⅔이닝 투구 후 또 다시 어깨 통증으로 인해 조기강판 되었고[8] 재활 판정을 받으며 그대로 시즌을 아쉽게 접고 말았다.

2006년에도 7월 8일 두산전에 전격 복귀하여 1이닝 2볼넷 2탈삼진 무실점으로 홀드를 기록하긴 했으나, 6일 뒤인 14일 한화전에서 ⅔이닝 동안 1피안타 1볼넷 1탈삼진 2실점으로 부진투를 보였고 또 다시 부상의 악령을 떨쳐내지 못하고 길고 긴 재활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심각한 부상에 불성실로 인한 자기 관리 실패가 겹치면서 꽤 오랜 기간동안 볼 수 없었다.

2009년 시즌을 앞두고 캠프에서 2천구 투구[9]로 감각을 찾은 뒤 야쿠르트 스왈로즈삼성과의 대결에서 제법 호투하며 기대감을 높였지만 고작 6경기에 나와 7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10.29를 마크하는 성적이 전부였다. 그렇게 더 이상 엄정욱의 솔리드한 모습을 보는 것은 힘든가 싶었는데...

2.2. 2010 시즌

파일:엄정욱 2010.png
2010 시즌 시작 전에 김성근 감독이 키 플레이어로 엄정욱을 꼽더니, 필승계투조는 아니지만 34경기에 66이닝을 소화하여 4승 3패 평균자책점 6.27을 기록했다.[10] 예전처럼 160km/h에 육박하는 광속구를 다시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150km/h는 여전히 넘기는 속구에 변화구가 한 층더 개선되면서 구멍난 투수진의 어디든 투입되어 활약했고, 기어코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들게 된다.

엄정욱은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으나, 팀은 시리즈 전적 4승으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개인 첫 커리어 우승 반지를 얻게 되었다.

2.3. 2011 시즌

3월 12일 롯데전, 3월 16일 한화전 시범경기에서 두 경기 모두 무실점 호투를 보이며 올 시즌은 오랜만에 풀 시즌의 엄정욱을 볼 수 있는가 했는데, 2011년 패넌트 레이스가 시작되고 4월 15일에 넥센전에서 1⅓이닝 3안타 2볼넷 1탈삼진 무실점 투구를 끝으로 2군에 내려가게 되었는데, 2군에서 등판 간격도 널널하게 가져가며 선발 수업을 다시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총 7경기 등판 한 후 선발 투수진이 완전히 붕괴된 7월에 1군으로 전격 승격, 7월 9일 롯데전에 선발 등판했다. '2이닝 정도나 막아주면 감지덕지'라고 팬들이 생각할 정도로 별로 기대하지 않은 이 경기에서 5⅔이닝 동안 3피안타 1실점의 성적과 함께 삼진 7개를 잡는 호투를 선보였다. 비록 이 날 승리 투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전날 등판해 연패를 끊은 이영욱과 함께 글로버를 제외하면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선발진에 진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김성근 감독이 엄정욱은 한 번 등판을 하면 오래 쉬어야 하는 타입이라고 이야기한 것으로 봐서는 등판 간격은 널널할 듯.[11]

8월 6일과 13일 기아전과 넥센전에서 각각 6이닝 9K 무실점과 5⅓이닝 6K 3실점으로 연속 승리투수를 기록하면서 선발로써 다시 입지를 다지는가 싶었는데, 감독의 경질 직후 열린 8월 18일 경기에서 6이닝 8K 2실점[12] QS 피칭을 하고도 경기 내내 어수선한 분위기를 이기지 못한 팀 타선이 침묵하면서 패전을 안게 되었다.

이후 이만수 감독대행 체제에서는 9월 부로 마무리로 보직을 변경해서 기용되었고[13], 역시 한 번에 많은 공을 던지지 않는 덕분인지 다시 150km/h대의 직구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마무리에서 굉장한 안정감을 보이며 9월~10월 월간 기록은 11경기 등판에 13이닝 소화하면서 단 4피안타(1피홈런) 2볼넷만 내주고 18탈삼진을 잡았으며 1승 6세이브 ERA 1.38의 빼어난 투구를 보였다.

이런 변신은 구속에 대한 욕심을 다소 버리고 변화구의 구위와 커맨드를 끌어 올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엄정욱에게 가장 많이 붙는 말 중 하나가 "직구를 받치는 변화구가 없다." 였으나, 올 시즌 포크볼과 체인지업의 제구와 구위가 올라오면서 변화를 보인 것으로 생각된다.

마무리 전향은 처음엔 고육지책이었으나, 날이 갈수록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엄정욱 개인으로서는 2004년 이후 오랜만에 제 기량을 발휘했던 한 해로 남았다.

2.3.1. 포스트시즌

10월 8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 팀이 스코어 1:0으로 지고 있던 9회 1사 1, 2루 상황에서 5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안치홍을 볼넷으로 내보낸 후 최희섭을 상대로 땅볼을 유도하여 2사 만루까지 만들었는데, 다음 타자였던 차일목에게 만루홈런을 맞으며 안 그래도 끌려가는 분위기였던 SK 와이번스의 추격의지를 꺼버렸다. 결국 엄정욱은 이날 ⅓이닝 투구수 12개, 1피안타 1피홈런 1볼넷 2실점 2자책점을 기록했고, 팀은 5:1로 패했다.

시리즈 전적 1승 1패인 10월 11일 광주 무등 야구장에서 열린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팀이 스코어 2:0으로 앞선 9회말에 5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이닝 18투구수 1볼넷 1탈삼진으로 세이브를 기록하였다.

엄정욱은 2011년 준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1⅓이닝 1피안타 1피홈런 2볼넷 1탈삼진 2실점 2자책점 평균자책점 13.50, 1세이브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엄정욱은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2⅓이닝 2피안타 1볼넷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지던 11월 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 최종전에서 팀이 스코어 1:0으로 뒤지고 있는 5회말에 이미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거치며 지친 불펜에 도저히 올릴 투수가 없는 상황에서 조기 등판하여 4이닝 51투구수 1피안타 1볼넷 5탈삼진 무실점의 극강의 언터쳐블 포스를 보여주었으나, 팀 선발 투수브라이언 고든이 이미 4회에 강봉규에게 솔로홈런을 맞아, 1:0으로 뒤져 있었고, 무기력한 SK의 타선은 삼성의 철벽불펜에 눌려 결국 점수를 뽑지 못하여 팀이 스코어 1:0으로 패하고 결국 삼성이 최종 우승함으로써 엄정욱의 눈물나는 호투는 묻히고 말았다.

엄정욱은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 5경기 중 3경기에 등판하여 7⅓이닝 3피안타 2볼넷 9탈삼진 무실점, 1세이브를 기록하였다.

엄정욱은 2011년 포스트시즌 14경기 중 7경기에 등판하여 11이닝 6피안타 1피홈런 5볼넷 12탈삼진 2실점 2자책점 평균자책점 1.64, 2세이브를 기록하였다.

2.4. 2012 시즌

2011년 한국시리즈 3차전 때 보여준 무적의 중무리(?)포스 때문에 2012시즌 SK의 마무리를 맡을 것이라고 이만수 감독이 낙점했으나, 팔꿈치 수술 재활이 늦어져 마무리 자리는 정우람이 맡았기에 엄정욱은 스윙맨이나 셋업으로 주로 기용되었다.

한 달씩 드러눕고 있는 SK 불펜진에서 그나마 처음부터 활약해주고 있었지만, 철벽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주로 6~7회에 애매한 스코어에서 많이 등판했다. 임경완리타이어한 후에는 활용도가 늘었다.

박희수정우람이 함께 드러누운 7월에는 잠시 마무리를 맡기도 했었으나, 블론세이브도 기록하는 등 작년의 안정감에 비해서는 다소 부족했다.

요컨대 쏠쏠한 불펜이지만 특급 불펜이라기에는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박희수 - 정우람을 제외하면 최영필과 함께 붕괴된 SK 마운드에서 가장 쓸만한 우완 불펜인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에 박희수와 정우람이 도저히 등판하기 어려운 상황[14]에서는 곧잘 모습을 보였다. 요컨대 - 라인이 KBO 수위급의 S급 불펜이라면 SK 내에서는 A급 정도의 위치.

8월 21일 옆구리 근육 손상으로 1군에서 말소되고 이재영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리고 엄정욱의 보직은 박정배가 메웠다. 이후 9월 24일 LG전에 전격 복귀하여 1이닝 1볼넷 무실점으로 투구했다.

10월 16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1:2로 앞선 7회초에 등판했는데, 선두 타자 전준우를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출루시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황재균가 번트를 댔는데 포수 땅볼이 되어 1루 주자가 2루에서 아웃되었고 용덕한의 대타 강민호를 우익수 플라이, 문규현을 삼진으로 잡으며 1이닝 17투구수 1볼넷 1탈삼진 무실점으로 홀드를 따냈고 팀도 스코어 1:2로 승리하였다.

10월 17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1:4로 앞선 7회초에 등판했다. 전준우를 내야 안타, 황재균을 유격수 실책으로 출루시키고 문규현의 타석 때 폭투를 시전하여 무사 1, 3루의 위기를 맞았고 결국 문규현에게 1타점 2루수 땅볼 진루타, 김주찬에게 1타점 2루타를 맞고 스코어 3:4, 1사 2루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왔다. 다음 투수 박희수가 2루주자 김주찬을 홈으로 불러 들이는 바람에 엄정욱의 실점과 자책점은 늘어났고, 이날 엄정욱은 ⅓이닝 23투구수 2피안타 3실점 2자책점을 기록했다. 이날 팀이 연장 10회까지 가는 경기 끝에 스코어 5:4로 패하는 바람에 엄정욱은 최윤석과 함께 플레이오프 2차전을 말아먹은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

엄정욱은 2012년 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1⅓이닝 2피안타 1볼넷 1탈삼진 3실점 2자책점 평균자책점 13.50, 1홀드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엄정욱은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먼 훗날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전까지 은퇴 직전에 발견됐다고 많이 알려졌던 위암 초기 증상을 2011 시즌 끝나고 건강검진을 받았다가 발견했다고 한다. 방사선 치료를 받고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체중이 줄어들어 변화구 위주로 던질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2.5. 2013 시즌

2012 시즌 후 부상이 도져 2013년에는 2군에서 8경기 ERA 6.01이라는 성적만 남기고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2.6. 2014 시즌

2014년에도 부상 재활로 인해 2014년 6월 5일이 돼서야 퓨처스에서 첫 등판을 했다.

2014년 7월 1일, 드디어 1군에 등록되었다. 일단 이만수 감독은 주로 여유가 있는 상황일 때 등판시켜 감각을 조율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당일 NC와의 경기에서 4:4의 팽팽한 접전이 오가는 중에 8회말 1사 후 호투하던 김대유의 뒤를 이어 등판해서 두 타자를 깔끔하게 잡았으나 9회말 선두 타자를 출루시키더니 폭투로 인해 무사 2루를 만들고 박정배에게 넘겼으나, 손시헌의 번트로 1사 3루에서 김태군의 끝내기 희생플라이로 경기에서 패배. 첫 등판에 패전을 떠안았다.

7월 7일 롯데전에서는 6회에 선발 고효준손아섭에게 홈런을 맞아 점수가 4점차가 되자 등판했다.최준석에겐 볼넷, 박종윤에게 안타를 맞고 황재균 타석에서 폭투를 범해 1실점했다. 0⅓이닝 1실점을 기록한 후 윤길현으로 교체되었다.

결국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7월 10일 1군에서 말소되었고, 2014년에는 1군 5경기 출장으로 끝났다. 뒤늦게 밝힌 바에 따르면 신인때 한번 걸렸었던 블래스 신드롬이 이 해에 재발했었다고 한다.

2.7. 2015 시즌

파일:엄정욱 15시즌.jpg

2015년에도 재기를 노렸지만, 1군은커녕 2군에서도 출장 기록이 없다. 장기 재활조에 있다가 전반기를 끝으로 팀에서 떠나 인천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개인훈련 중이라고 한다. 시즌 종료 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은퇴 후 15시즌 당시 위암 후유증[15]으로 인해 구속이 저하되어 복귀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3. 은퇴 후

파일:엄정욱.jpg

모 팟캐스트에서 엄정욱과 고교 동문으로 친한 사이인 김환[16] SBS 아나운서에 의해 알려진 바에 의하면, 재활 기간 도중 위암이 발견되었고 다행히 상태가 나쁘지 않아 완치되기는 했으나 그 이후 몸에 힘이 붙지 않아 시속 140km 초반도 던지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SK 구단의 주선으로 히어로즈 입단을 타진했지만 몸상태가 좋지 않아 불발되었다고 한다. 그 뒤 지인을 도와 과일 장사를 하는 등 야구와 거리를 두려는 행보를 보이다가 인천의 모 야구 클리닉에서 야구 동호인들을 대상으로 투수교육을 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지는 모습은 볼 수 없겠지만 언젠가 코치나 감독으로 재기할 가능성은 존재할 듯.

이후 송도에서 유소년 야구단을 창단하여 감독을 맡고 있다고 한다.

2019년 8월 27일에 이영미 기자와 진행한 인터뷰가 기재되었다.

2020년 12월 11일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베이스볼 아카데미를 인천광역시에서 운영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엄정욱 본인이 감독이고 SK에서 같이 뛰었던 홍명찬윤희상이 코치로 일하고 있다. #

2021년 5월 팀의 후배인 윤희상과 함께 스포츠 토크 프로그램 스톡킹에 출연했다.

4. 피칭 스타일

파일:엄정욱 투구스타일.gif

1군에서 최대 159km/h, 연습경기 161km/h, 2군에서는 최고 163km/h를 기록한 강속구 투수[17]이다.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이 기록들은 모두 "비공인"으로 남아있는데, KBO 공인의 스포츠투아이는 2011년 이후 측정된 기록을 공식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18] 어쨌든 당시 그 빠른 스피드로 2004년에는 SK 선발축의 한 축을 담당했고, 그 해 7월 25일 KIA전에서 최고구속 154km/h를 기록하며 14K를 잡는 초특급 강속구를 보여주기도 했다. 역시 구위 덕에 삼진도 전성기엔 9이닝당 9개를 넘겼을 정도이다.

그러나 제구력은 좋지 않다. 이 때문에 별명은 '엄롤코', '우롤코'. 2004년에 '엄버넷'이라 불리면서 커다란 기대를 받았지만 그 때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부상 복귀 이후의 엄정욱은 상당히 안타깝다고 볼 수 있다. SK 왕조시절 막바지인 2011년, 2012년에는 이만수의 남자 또는 팀의 핵심 불펜진의 한 축을 맡으며 부활에 성공했으나 이후 부상과 위암 투병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폼을 되찾지 못하고 커리어를 마감할 수 밖에 없었다.

5. 여담

  • 원래는 왼손잡이였다고 한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손을 묶어놓는 등 강제로 오른손으로 교정해서 오른손으로 던지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일상 생활에서는 여전히 왼손을 쓴다고[19] 한다. 테드 윌리엄스도 자신의 책에서 말했듯이 사람은 한 쪽 팔의 힘이 다른 쪽보다 강하다. 타고난 왼손잡이에서 좌완투수로 길러졌을 때 160km/h을 만약 던졌더라면 정말 아롤디스 채프먼 같은 좌완 광속구 투수로 이름을 떨쳤을지도. 하지만 오른손으로 던져도 비공인 163km/h를 남긴 것과 이 빠른 구속을 몸이 버티지 못하여 부상으로 커리어를 탄탄하게 이어가지 못한 부분은 오히려 MLB에서 최고 104마일을 찍었던 조엘 주마야와 흡사해 보인다.
  • 아버지가 씨름선수였다고 한다. 당시 프로씨름이 없었기에 프로는 아니었으나, 지역에서는 알아주는 "장사"였다는 듯. 그런 아버지의 좋은 피지컬을 물려받았기에 그렇게 빠른 공을 던질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 2011년 2군에 내려가 있을 무렵 2군 야구선수를 취재하던 다큐멘터리 3일에 출연한 적이 있다. 이 당시 취재진이 보는 앞에서 2군 경기에 출장했는데, 무려 163km/h이라는 구속을 기록하는 모습이 방송에 탔다. 2023년 현재까지 전 세계 리그를 통틀어 비공인 포함 기록으로 남은 구속 중에서는 한국인 최고구속.[20] 아쉬운 것은 2군에서 기록하여 비공인으로 남았으나 방송으로 기록이라도 남아있다는 부분은 그나마 위안거리.
  • 박정권에 의하면 말이 많은 편은 아니라는데 前 kt wiz의 외야수 유한준과 거의 비슷한[21] 스타일이라고 한다.

6.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2000 SK 4 5⅔ 0 0 0 0 6.35 6 1 5 0 6 1.94
2001 1군 기록 없음
2002 5 6 0 0 0 0 1.50 1 0 7 2 9 1.33
2003 16 25 1 2 0 0 5.40 19 2 17 3 29 1.44
2004 22 105⅓ 7 5 1 1 3.76 88 5 50 11 119 1.31
2005 8 14⅔ 1 0 1 0 0.61 8 0 9 1 18 1.16
2006 2 1⅔ 0 0 0 1 10.80 2 0 3 0 3 3.00
2007 1군 기록 없음
2008
2009 6 7 0 0 0 0 10.29 10 4 5 0 8 2.14
2010 34 66 4 3 0 0 6.27 62 6 40 3 67 1.55
2011 20 50⅔ 3 2 6 0 2.13 33 4 19 1 64 1.03
2012 49 56⅓ 4 5 3 12 3.20 46 5 24 4 44 1.24
2013 1군 기록 없음
2014 5 3 0 1 0 0 9.00 4 1 4 0 3 2.67
2015 1군 기록 없음
KBO 통산
(11시즌)
171 341⅓ 20 18 11 14 4.11 279 28 183 25 370 1.35

7. 관련 문서



[1] 쌍방울 레이더스에 지명되었다가 신인 지명권이 넘어간 SK에 입단했다.[2] 부상 및 재활을 이유로 2007 시즌 1년간 임의탈퇴 신분이었다.[3] 하지만 팬들은 아무래도 은퇴식까지 치른 외야수 박재상이 최초 타이틀을 가져갔다고 생각하고[22] 있다. 아무래도 엄정욱의 임팩트가 박재상보다[23] 크지는 않았고, 왕조 시절 지분이 워낙 적었던 탓[24]도 있다. 그래도 전성기였던 2004년과 2011, 2012년의 활약으로 인해 SK 팬들이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선수 중 한명이기도 하다.[4] 영화 메이저리그 OST인 'Wild Thing'이 그의 등장곡이다.[5] 심지어 원조도 아니다. 원조는 메이저리그의 미치 윌리엄스[6] 같은 동기들인 이대수이승호는 각각 다른 팀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후 이 둘은 현역 은퇴를 하고 친정팀으로 돌아와서 코치 생활을 하고 있다.[7] FIP의 경우 ERA보다도 훨씬 뛰어난 3.02를 기록했고, sWAR*은 2.95를 기록했다. 부상 없이 시즌을 완주했다면 아마 WAR 3~4는 족히 기록했을 것이다.[8] 그래도 급히 올라운 신승현이 후속 타자들을 잘 처리한 후 5이닝 동안 무실점 호투를 했고, 팀은 최종 4:3으로 이기면서 2위권 굳히기와 1위권 탈환을 목표로 투혼을 보였다. 아쉽게도 시즌 마지막 날에 최종 3위가 되면서 준플레이오프 직행에 만족해야 했지만.[9] 하지만 잦은 어깨 부상과 손가락 물집도 자주 잡히던 투수에게 당시 감독이 자행한 캠프 2천구 투구는 잠깐은 몰라도 선수생활 전체로 봤을 때는 롱런은 할 수 없었던 운명이었다. 실제로 2012년을 끝으로 엄정욱은 또 다시 부상 재발로 1군에서 보기 힘들어졌고 결국 은퇴 수순 까지 밟았다는 점을 보면 더욱 안타까운 부분. 어떤 양반은 스프링캠프때 이보다도 많은 3천구 투구 드립을 친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의 철학으로 피칭을 시킨 투수들 몇몇이 있었는데 졸딱 망했다. 대표적으로 첫 희생자는 이정호가 있다.[10] ERA는 리그 평균을 많이 밑돌지만 FIP는 의외로 4.39로 리그 평균보다 조금 나았으며, sWAR*도 0.76으로 전형적인 추격조 투수의 성적 정도는 올렸다. ERA가 폭증한 부분도 몇 경기는 잘 던지다가 특정 경기에 대량 실점하면서 방어율 관리가 영 안된 부분도 있었다.[11] 50구 이상 던질 경우 손에 물집이 자주 잡혀서 등판간격이 길다.[12] 이 2실점은 채태인투런포로 인해 실점한 것인데 그 유명한 홈런을 얻어맞고도 좋아하는 일부 몰지각한 팬들의 어처구니 없는 장면이 방송을 타면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을 암시했고, 결국 경기 직후 대난장판이 열리고 말았다.[13] 대신 정대현이 롱 릴리프로 전환되었다.[14] 문제는 이런 상황이 부상이 아닌 다음에야 타이트한 상황에서는 무조건 저 두 명이었다. 특히나 중간계투인 박희수는 3점 이내 접전이면 거의 무조건이고 심지어는 주자가 있으면 5점차 이상인 상황에도 올라오는지라 의미가 없기는 했다.[15] 비슷하게 LG 트윈스 투수 정현욱도 같은해에 위암 수술로 이듬해 복귀를 했지만 얼마안가서 은퇴했다.[16] 엄정욱과 중앙고등학교 야구부 동문. 김환이 엄정욱보다 1년 선배다.[17] 다큐 3일에 그 기록이 남아있다.[18] 그래서 "국내 투수로 한정"하면 당시 롯데 자이언츠 소속이었던 최대성이 2012년 9월 7일 사직에서 열린 한화와의 경기에 장성호를 상대로 158.7km/h을 던지면서 공인 최고 구속을 보유했었다가, 2023년 4월 12일 한화 이글스 소속의 문동주가 드디어 공인 160km/h를 찍으면서 국내 투수 160km/h 시대를 열었다.[19] 이런 유형이 우투우타로 데뷔한 이종범 같은 레전드나 그래도 한 시즌 반짝하고 이후 평범해진 김세현 등등 선천적인 왼손잡이 이라고 한다.[20] 2위는 임창용의 일본시절 161km/h, 3위는 원래 박찬호의 99마일이었으나 안우진문동주가 공인 160km/h를 기록하면서 공동 3위로 올라섰다. 참고로 KBO리그 외인 포함 전체 1군 최고 구속 공인기록은 레다메스 리즈의 162.1km/h.[21] 박정권과 유한준은 동국대 동기이자 프로입단 동기이다.


[22] 팀 이름이 SK라는 이름에서 쓰일때 프로 지명 받았기에 오히려 박재상을 프랜차이즈로 더 띄어주고 있다.[23] 박재상은 김성근 부임 이후로 어느정도 임팩트를 내는가 했더니 갑작스러운 부진으로 더 이상 성장하지를 못했다.[24] 김성근 부임 초기에 임의탈퇴 라는 것도 한몫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