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9 10:15:17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fff><tablebgcolor=#fff> 파일:KBO 리그 로고(1982~2012).svgKBO 리그
해외 진출 선수
특별 드래프트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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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2001~2009).svg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2003~2008).svg 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6~2019).svg 파일:LG 트윈스 엠블럼(2006~2014).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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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권 없음
한화 이글스
[A] 추신수의 지명권은 2021년 신세계그룹이 SK 와이번스를 인수하면서 후신 SSG 랜더스로 승계되었다.
[B] 김병현의 지명권은 현대 유니콘스 해체 후 2008년 창단된 히어로즈에 승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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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도입 배경 및 진행 과정3. 드래프트 결과4. 선수별 총평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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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BO 리그에서 2007년 4월 2일에 있었던 특별 드래프트.

2. 도입 배경 및 진행 과정

KBO박찬호의 등장 이후 메이저리그대한민국 야구에 관심을 가지고 선수들을 스카우트하려고 하자, 1998년에 아마추어 유망주들의 무분별한 해외 진출을 막기 위해 해외파 복귀 2년 유예 제도를 만들었다. 이는 1999년 1월 이후부터 해외에 진출한 선수들이 국내 복귀를 원할 경우, 최종 소속 팀과의 계약이 완전히 종료된 시점[1]으로부터 2년의 유예 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내용이다.[2] 그 전에는 김병현최희섭 등이 해외 진출을 이유로 대한야구협회로부터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 알다시피 (주로) 미국으로 떠난 선수들이 모두 성공한 것이 아닌지라 메이저리그에 안착하지 못하고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 돌아온 대한민국의 (지명 당시) A급 유망주 대우를 받던 선수들의 대한민국 복귀를 위해서, 그리고 조금 더 한국프로야구의 중흥[3]을 위해 특별히 KBO에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회의를 갖고 결론을 낸 것이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 때마침 국내 복귀 의사를 밝혔던 이승학이 군 면제[4]라는 것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어 꼼짝없이 2년을 날릴 위기에 처했던 상태였기에, 결정은 비교적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미국으로 떠난 지 5년 이상 된 선수들이 대상이 되었으며, 이 중에서 연고지 내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를 여러 명 보유한 롯데 자이언츠KIA 타이거즈가 복수의 대상자들 중 한 명을 우선 지명할 수 있었고, 이후 4월 2일에 열렸던 드래프트에 지명을 받지 못한 선수와 류제국, 그리고 3월 중에 뒤늦게 명단에 추가된 채태인[5]을 포함하여 최종 5명의 대상자를 영입할 의사가 있는 6개 구단이 지명하도록 했다. 6개 구단이 추첨을 통해 지명 순서를 정하였고, '6'번을 뽑은 한화 이글스는 지명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이에 한화의 김인식 감독은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후 한화는 이 드래프트 이후 4년 뒤인 2011년, 박찬호를 특별지명으로 데려가게 되는데, 박찬호의 애향심을 생각한다면 한화로 가지 못할시 주저없이 은퇴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국내에서 뛰는 박찬호의 모습을 볼 수 없었을 것이기에, 이 때 한화가 지명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 것이 결과론적으론 다행이었다는 게 현재 시점에서의 중론이다.

해당 선수들은 야구규약 107조 1항에서 3항까지 규정된 복귀 해외파들에게 주어지는 제약을 받지 않으며 입단 시점부터 1년 동안 트레이드가 불가능하고 지명권을 다른 구단에 양도할 수 없다.[6] 해당 구단이 해체되어 선수단 인계 후 재창단하거나, 구단 운영 주체가 바뀌는 과정에서 해당 지명권이 넘어가는 경우는 무관하다.

3. 드래프트 결과

순서 KBO 구단 선수 MLB 경력[7] 계약 KBO 리그 경력
우선 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2001~2009).svg 최희섭
(광주일고-고려대 중퇴,
내야수)
CHC (2002~2003)
FLA (2004)
LAD (2004~2005)
BOS (2006)[산하]
2007년 (KIA) KIA (2007~2015)
우선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2003~2008).svg 송승준
(경남고,
투수)
BOS (1999~2002)[산하]
MON (2002~2004)[산하]
TOR (2005)[산하]
SF (2005)[산하]
KC (2006)[산하]
2007년 (롯데) 롯데 (2007~2021)
1 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6~2019).svg[14] 추신수
(부산고,
외야수)
SEA (2001~2006)[산하]
CLE (2006~)[16]
2021년 (SSG) SSG (2021~2024)
2 파일:LG 트윈스 엠블럼(2006~2014).svg 류제국
(덕수정보고 중퇴,
투수)
CHC (2001~2006)
TB (2007~)[17]
2013년 (LG) LG (2013~2019)
3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1999~2009).svg 이승학
(부산공고-단국대,
투수)
PHI (2001~2006)[산하] 2007년 (두산) 두산 (2007~2009)
4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 채태인
(부산상고[19],
내야수)
BOS (2001~2005)[산하] 2007년 (삼성) 삼성 (2007~2015)
넥센 (2016~2017)
롯데 (2018~2019)
SK (2020)
5 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21] 김병현
(광주일고-성균관대 중퇴,
투수)
ARI (1999~2003)
BOS (2003~2004)
COL (2005~2007)
ARI (2007)
FLA (2007)[22]
2012년 (넥센) 넥센 (2012~2014)
KIA (2014~2016)[23]
6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svg 지명권 없음[24]

4. 선수별 총평

  • 최희섭: KBO 리그 3년차인 2009 시즌에 득점 1위, 홈런 2위, 타점 3위, 장타율 4위를 기록하며 KIA의 페넌트레이스 1위에 힘을 보탰다.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KIA는 최종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최희섭은 이 시즌에 골든글러브까지 탔다. 이후 잦은 부상으로 2011 시즌부터는 80경기를 넘기지 못했으며 이후 2015 시즌 종료 이후 은퇴하였다.
  • 송승준: 비록 우승 경력은 없지만, 현재까지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로 KBO 리그에 데뷔한 투수 중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다. 당초 걸림돌로 예상했던 병역 문제는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로 깔끔하게 해결했다. 2018 시즌에 불펜투수로 전업하기 전까지 주로 선발투수로 뛰었으며 2007 시즌부터 총 15시즌 동안에 109승 85패 2홀드 평균자책점 4.48을 기록했다. 2015 시즌 종료 이후에는 FA를 선언하며 4년 40억으로 비교적 고액에 계약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1 시즌 이후 약물 의혹으로 다소 불명예스럽게 은퇴했다.
  • 추신수: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로 KBO 리그에 데뷔한 선수 중에서 가장 화려한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가진 선수다. 2021 시즌에 21홈런 25도루로 역대 최고령 선수로서 20-20 클럽에 가입하였으며, 볼넷을 103개를 골라내며 강백호와 함께 리그 공동 3위에 올랐다.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리그 상위권 수준의 타격을 보여주면서 좋은 활약을 펼쳤고 2022 시즌에 드디어 프로 커리어 첫 우승을 경험했다. 2023 시즌에는 3년 연속 리그 볼넷, 사사구 부문 상위 순위권과 3년 연속 리그 순출루율 1위를 비롯, 팀 내 타자들 중 주요 스탯에서 상위권을 차지했으며 2024 시즌에는 현역 야구선수로서의 마지막 시즌임을 밝히고 최저 연봉 계약과 더불어 그 연봉까지 전액을 기부했으며 팀의 주장까지 맡게 되었다. 참고로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 지명 선수들 중 뛴 기간 대비 가장 높은 WAR(대체 수준 대비 승리 기여)를 기록하고 있다.
  • 류제국: 2013 시즌에 데뷔하여 12승 2패 평균자책점 3.87을 기록하며 10년 만에 소속팀 LG 트윈스를 포스트시즌으로 이끄는 데 힘을 보탰다. 이후 2016 시즌에 한 차례 두 자릿 수 승수를 거두었으며 개인 최다 시즌 승리인 13승(11패)을 거두게 되었다. 이후 사생활 논란이 터지며 2019 시즌을 마치고 조용히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였다.
  • 이승학: 2007 시즌부터 단 3년 간 활약하였다. 이는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로 KBO 리그에 데뷔한 선수 중에서 가장 빠른 은퇴이다. 데뷔 시즌엔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7승 1패 평균자책점 2.17의 준수한 활약을 펼쳤고, 이 시즌에 소속 팀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쾌거를 거두며 자신은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승선하게 되었다. 단 준우승으로 개인적으로는 아쉽게 되었다. 이후 고질적인 허리 부상이 재발하여 2009 시즌에는 아예 1군에서 자취를 감췄으며 시즌 종료 후 소속팀에서 방출당하며 프로 커리어를 마무리하였다.
  • 채태인: 삼성 라이온즈의 황금기를 함께한 멤버로 무려 3개의 우승반지(2011, 2013, 2014)를 가지고 있다. 거구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중장거리형 타자이며, 준수한 1루 수비로 채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16 시즌을 앞두고 시범경기가 치러지는 3월 말에 트레이드로 넥센 히어로즈로 이적하였고, 2018 시즌에는 사인 앤 트레이드로 고향 팀인 롯데 자이언츠로 옮겼다. 이후 2020 KBO 리그 2차 드래프트로 SK 와이번스로 다시 이적하였으며 시즌 종료 후 방출되며 은퇴를 선언하였다. 통산 1241 경기, 1162 안타(127 홈런), 678 타점, 481 득점, 타율 .298을 기록하였다. 송승준이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로 KBO 리그에 데뷔한 선수 중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투수라면, 채태인은 타자 중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다.
  • 김병현: KBO 리그에선 메이저리그처럼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다. 넥센 히어로즈KIA 타이거즈에서 각각 2시즌을 뛰었다. 2014년에 고향 팀인 KIA로 트레이드될 때 루키 시즌을 보내고 있었던 김영광과 맞트레이드되었다. 과거 메이저 리그에서 걸출한 모습을 보인 투수를 선수 여러 명과 맞바꾸는 트레이드가 아닌 한 사람과 바꿨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충격적인 이적이었다. 게다가 후에 이 트레이드엔 뒷돈 5억원이 포함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충격이다. 이후 KIA에서 폭락한 모습을 보였지만 팀에 언더투수가 많이 없는 이유로 살아남았다. 그러나 2016 시즌에는 아예 1군에서 뛰지도 못했고 시즌 종료 이후 방출되며 팀을 떠났다. KBO 리그를 떠난 이후로 도미니카 윈터리그에 진출하였으나 실제 경기에 나서진 않았다. 이후 현역에서 은퇴하나 싶었지만 호주 리그에 진출하여 불펜투수로 활약하며 9경기 1세이브 평균자책점 0.93을 기록하고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였다. KBO 커리어 상으론 이승학과 더불어 제일 실패한 케이스지만 이름값 덕분에 당시 넥센의 이미지 재고와 관중흥행에 도움이 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때문인지 넥센은 김병현의 연봉을 성적과 관계없이 5억원-6억원-2억원으로 고액연봉을 2년차까지 유지시켜줬다. 그 와중에 첫 해 연봉인 5억원과 2014년 연봉은 뒷돈이 포함된 트레이드로 세이브해 결과적으로 넥센은 6억원만 쓰고 단물을 제대로 빨아먹었다(...).

5. 여담

지속적으로 이러한 예외를 인정해 주면 유예 제도가 무력화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지만, 이 2007년 단 한 번의 예외를 제외하고 2년 유예 제도는 잘 준수되고 있다. 심지어 제 9구단, 10구단이 생겨서 선수들이 더 필요한데도 해외파를 다시 불러오자는 여론이 없었다. 이제 엄청나게 대단한 명분이 생기지 않는 이상 예외는 없을 듯 하다. 해외로 바로 진출했다가 실패한 선수들의 경우 2년의 공백을 이용하여 병역 문제를 그 기간 내 해결하는 추세다. 2016년까지 외국 리그에서 활동하면서 군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이대은의 병역 유예 기한이 거의 한도까지 도달하여 다시 예외 인정 문제가 조심스럽게 나오기는 했지만 2년의 유예 제도는 유지하되 올림픽, WBC, 아시안 게임, 프리미어12 등의 국제대회에 참가하여 국가대표로 활동했던 선수는 KBO 리그를 거치지 않았더라도 국내 복귀 의사가 있다면 군경팀에 합격시 2군 출장이 가능하도록 절충을 했다.[25] 이 문제는 차후 최지만의 국내 복귀시에 다시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최지만은 이미 연령 초과로 상무 입대는 불가능하고 아직 정식으로 국가대표에 발탁된 적이 없으며 약물 적발 이력과 잦은 언플질이 문제가 되기는 하지만 메이저리그 경력 때문에 국내 복귀시 최지만을 위한 특별 드래프트를 도입하자는 움직임이 나올 가능성이 남아 있다.[26] 여기에 2021년에는 박효준이 어렵게나마 MLB 데뷔에 성공했다. 그러나 관련 규정까지 뜯어 고치면서 국내에 복귀했던 이대은이 세 시즌 동안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을 보이고 2022년 1월 13일 전격 은퇴를 선언한 것을 계기로 관련 논의는 수그러들 가능성이 높다.

유일하게 지명권을 행사하지 못했던 한화 이글스는 2007년 당시 강한 불만을 표출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2시즌을 앞두고 박찬호가 국내 복귀를 추진하자, KBO와 여타 구단들은 별도의 드래프트 없이 박찬호의 고향팀한화 이글스박찬호를 영입하는 데 동의했다. 한화가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 지명권을 행사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보상 차원으로 보인다. 유일하게 지명권을 행사하지 못했던 팀이 공주고 출신 박찬호의 지역 연고 구단인 한화 이글스였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지, 만일 다른 팀이었다면 큰 분쟁이 일어났을 것이다.[27]

2021년 신세계그룹SK 와이번스를 인수하면서 SK가 보유한 추신수의 지명권이 SSG 랜더스로 넘어갔고, 때마침 2020 시즌 후 텍사스와 계약이 만료된 추신수가 2021년 2월 23일에 SSG와 계약을 확정하면서 지명자들의 계약이 모두 완료, 이 드래프트에 지명된 모든 해외파 선수들이 KBO 리그 무대를 밟게 됐다.[28] 2021시즌이 종료된 시점에서 남은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 출신 선수는 추신수 한 명뿐이다[29].

결과적으로 해외파 지명선수들은 모두 팀에 큰 도움이 되었다. 채태인은 2011, 2013~2014년 삼성의 통합우승에 기여했으며, 최희섭 역시 2009년 기아의 통합우승을 이끌며 골든글러버가 되었다. 또한 이승학은 2007년 임태훈, 이용찬과 더불어 필승조로 두산의 준우승을 이끌었으며 류제국과 송승준도 각각 팀의 비밀번호를 끊어냈다. 특히 송승준은 윤학길에 이어 롯데 투수 통산 최다승 2위를 기록하며 팀 역사에 남을 정도. 김병현은 팀 성적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당시 넥센의 관중흥행 및 선수팔이로 망가진 이미지를 회복하는데 도움을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떠나면서도 팀에 돈을 안겨줬다. 가장 늦게 합류한 추신수는 화려한 커리어에 걸맞게 김병현의 티켓파워와 전성기 최희섭의 성적을 합친 완전체의 모습을 보여주며 직전까지 성적이 추락했던 SSG의 2022년 성적과 흥행 모두에 큰 도움을 주었다.


[1] 임의탈퇴는 기산점이 아니다. 계약을 완전히 해지하거나 완전히 방출되어야 기산점이 시작된다. 이러했던 케이스가 채태인, 김진영, 신진호다. 그러나 사실 KBO 규약 107조는 계약 종료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었다. 신진호의 신인드래프트 참가 가처분 신청에 대해 규약 107조에 한하여 구단과 선수가 계약을 종료할 의사를 분명히 하였을 경우, 임의탈퇴도 계약 종료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판례가 나오면서 해당 규약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법원이 규약 107조에 한해 이러한 해석을 내린 이유는 임의탈퇴를 계약종료로 간주할 경우 FA 및 해외이적 체계가 근본적으로 흔들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판례의 요지에 관해서는 해당 링크 참조. 이를 계기로 유예 기간 산정 기준을 조정한다는 얘기가 나왔으나, 이사회에서는 아직 논의가 되지 않고 있다.[2] 1994년에 미국으로 진출한 박찬호는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1999년 이전에 미국으로 건너갔던 서재응김선우 역시 기존 1996년 고졸우선 지명권(각각 당시 해태/OB)이 그대로 유지되어 있어서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에 해당되지 않았으며, 두 선수 모두 지명권을 보유한 구단으로 이 지명권을 행사하면서 2008년에 대한민국으로 복귀했다. 1997년에 미국으로 떠났던 봉중근도 마찬가지로 이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았지만, 대신 이쪽은 귀국한 후 드래프트에 나섰다는 게 차이점이다. 이 유예 기간 규정은 2005년 12월 26일에 국가대표로 활약한 선수에게, 2009년 2월 5일에는 추가적으로 지명받지 못하고 나간 선수에게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바뀌었으나 고교 졸업 예정 선수들의 미국행이 잇따르면서 두 조항 모두 2009년 4월 28일 규약에서 삭제되고 도리어 규제가 강화되었다. KBO 리그를 거치지 않고 나간 선수들은 돌아오더라도 1차 지명 대상에서 제외되며, 입단하더라도 계약금은 받지 못하고 첫 시즌은 최저 연봉(2021시즌 기준 3,000만 원)만 받고 뛰어야 한다. 곧 유예 기간이 지났다고 바로 지명에 참가할 수 있는 게 아니라, 2차 지명 회의가 있기 전에 지명 참가 신청을 하고 KBO에서 주최하는 트라이아웃에 참가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러나 이 트라이아웃이 규약에 없는 임의행사라는 지적이 있었으며 이는 2015년도 2차 지명을 앞두고 몇몇 구단들이 사전 접촉 의혹을 받는 정도에 이르렀다.[3] 1997년 외환 위기 때부터 시작된 한국프로야구의 침체기는 1999년을 제외하고 관중 수 300만 명 미만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2005년에 338만 7843명으로 1999년의 기록(322만 624명)을 넘었다가, 2006년에는 다시 304만 254명으로 하락.[4] 고질적으로 허리 부상을 달고 살았고, 실제로 2007년 좋은 활약을 보여줬으나 결국 부상 후유증이 원인이 되어 2008, 2009년은 기대에 못미쳤고 2009 시즌을 끝으로 방출되어 은퇴했다. 팬들에게는 2007년 양준혁에게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초 개인 통산 2,000안타를 허용한 선수로 많이 알려져 있다.[5] 2005년 9월에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임의탈퇴 해지가 되면서 완전히 방출되었으므로, 원래 대로라면 2008년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해야 했다. 뒤늦게 명단에 추가된 이유는, 채태인은 방출 전에 이미 군 문제를 해결한 상황이라 방출 이후 이곳저곳에서 훈련을 했는데, 그 중에서 삼성 라이온즈 2군에서 테스트를 겸해서 훈련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 삼성 라이온즈의 사장인 김응용이 채태인을 보고는 마음에 들어했기 때문에, 아직 유예기간이 지나지 않은 채태인도 특별 드래프트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 차례에 김병현이 남아 있었음에도 채태인을 뽑는다.[6] 2020년부터 지명권 트레이드가 가능하도록 규약이 개정되었지만,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와는 상관이 없다.[7] 드래프트 당시 기준, MiLB 경력 포함[산하] 마이너 팀[산하] 마이너 팀[산하] 마이너 팀[산하] 마이너 팀[산하] 마이너 팀[산하] 마이너 팀[14] 추신수의 지명권은 신세계그룹이 SK 와이번스를 인수하면서 SSG 랜더스로 승계되었다.[산하] 마이너 팀[16] 이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2012년까지 뛰었다. 2013년에 신시내티 레즈에서 잠시 1시즌을 뛰었다가, 텍사스 레인저스와 7년 장기계약으로 FA 계약을 체결하고 2020년까지 뛰었다.[17] 이후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2008년까지 뛰었다. 2008년에 탬파베이를 떠난 이후 영구 귀국하여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했다.[산하] 마이너 팀[19] 現, 개성고[산하] 마이너 팀[21] 김병현의 지명권은 현대 유니콘스 해체 후 재창단된 히어로즈에 승계되었다.[22] 이후 2008년에 피츠버그 파이리츠 산하 마이너 팀에 잠시 있었다가, 2009년은 무적으로 지냈고, 2010년 미국 독립리그, 2011년 일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있었다.[23] 2016 시즌 후 KIA에서 방출된 이후에 KBO 리그를 떠나 도미니카 공화국 프로야구 리그 (2017)와 호주 야구 리그 (2018~19)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하다가 2019년에 완전히 은퇴했다.[24] 이 때문에 2012년 박찬호가 복귀할 때 별도의 드래프트 없이 한화로 직행할 명분을 얻었다.[25] 그러나 이 조치도 사실상 이대은 1명만을 위한 특혜였다. 국가대표로 뽑히기 전에 바꾼 것도 아니고 대회 끝나고 엠스플뉴스 기자들이 공론화 시켜서 여론몰이를 했던 것. 실제로 이대은 외에 이 조치를 충족할 선수는 없었다. 문제는 다시 해외 진출을 할 경우 어떻게 한다는 조항이 없어서 이대은이 혜택만 받고 해외로 갈 수 있는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 이대은이 결국 신인 드래프트 참가를 결정하고 kt에 지명받으면서 일단 기우가 되기는 했지만 언제든지 논란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기에 규정을 보다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26] 이대은과 관련한 논란에서 드러났듯이 최지만 역시 계약금 못 받고 첫 시즌을 최저 연봉으로 뛰고 싶은 생각은 없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27] 박찬호는 충청도 사람이고 애향심이 있었고 과거 빙그레 이글스 유니폼에 대한 향수가 있었다. 이러한 이유인지 은퇴식이 있었던 2014 올스타전에서 박찬호는 빙그레 올드 유니폼을 착용하고 은퇴식을 치렀다. 그런데 한화가 아닌 다른 팀으로 가야 한다면 한국 무대에 돌아오지 않고 은퇴할 수도 있었으니 꼭 한화로 데려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만약 한화가 해외파 특별 지명 때 1명을 받고, 나중에 또 박찬호를 데려가려고 했다면 다른 팀이 허락하지 않았을 수 있다.[28] 추신수는 롯데가 아니면 한국행이 의미가 없다고 인터뷰에서 말할 정도로 고향팀에 애착을 드러내 훗날 한국에서 은퇴하고자 해도 이 문제가 걸림돌이 되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이후 본인이 다른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마무리한다고 했지 롯데에서 마무리한다고 한 적은 없다'며 부정했고 SSG에 입단했다. 롯데와 유통계 라이벌 관계에 있는 SSG가 추신수 트레이드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기도 했으며 이후 류선규 전 단장이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롯데로의 트레이드는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고 추신수 본인이 SSG에서 2024년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하여 롯데에서 뛰는 추신수의 모습은 볼 수 없게 되었다.[29] 하지만 추신수가 2024 시즌 종료후 은퇴를 예고 하며 2024시즌이 끝나면 해외파 특별드래프트선수가 더이상 남지 않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