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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헨리 "맷" 머튼 Matthew Henry "Matt" Murton | |
생년월일 | 1981년 10월 3일([age(1981-10-03)]세) |
국적 | 미국 |
출신지 | 플로리다 주 포트로더데일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2003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32번, BOS) |
소속팀 | 보스턴 레드삭스 (2003~2004) 시카고 컵스 (2005~2008)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2008) 콜로라도 로키스 (2009) 한신 타이거스 (2010~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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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과 일본프로야구에서 활약했던 야구 선수.
2022년 현재까지 일본프로야구 단일시즌 가장 많은 안타를 때려낸 우타자이다.[2]
2. 메이저리그 시절
본래 선구안과 컨택 능력이 뛰어나 2003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1라운드에 지명될 정도로 장래성이 뛰어난 선수였다. 하지만 보스턴 시절에는 한번도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지 못했으며 2004 시즌 종료 후 노마 가르시아파라 트레이드에 묶여 시카고 컵스로 이적했다.시카고 컵스로 트레이드 된 후 플래툰 시스템을 적용받으며 주로 좌익수로 뛰었다. 2006 시즌에는 144게임을 뛰며 .297의 타율에 13홈런 62타점을 기록하기도 했다.[3] 허나 2006 시즌 이후 코너 외야수로써 장타력이 부족하다는 코칭스태프의 진단[4]으로 타격폼을 장타 위주의 폼으로 바꿨는데, 그 폼이 맞지 않았는지 특유의 선구안마저 실종되며 한마디로 망했다. 여담인데 이 때 당시 플로리다 말린스 소속이던 랜디 메신저와 맞상대를 벌인 적도 있었다.
결국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콜로라도 로키스를 떠돌다 2009 시즌 종료 후 방출. 빌리 빈이 리치 하든을 시카고 컵스에 트레이드로 보내고 데려온 세 선수 중에서도 핵심적인 선수로 지목할 만큼 머니볼형 타자였지만 결론적으로 메이저리그 정착에는 실패했다.
3. 일본 프로야구 시절
그에게 손을 내민 건 한신 타이거스였다. 마침 부동의 1번/중견수[5]였던 아카호시 노리히로가 중심성척수증후군 진단을 받으며 은퇴를 선언하자, 중견수 자리가 구멍이 나버린 한신은 머튼에게 접촉, 계약을 하게 된다. 등번호는 9번을 받았다.[6]문제는 머튼이 커리어 내내 중견수 수비 경험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메이저리그 및 마이너리그에서도 주로 코너 외야만 보던 것 때문인지 스프링캠프에서는 수비에 대해 평가가 좋지 못했고, 특히 재일교포 출신 야구평론가 가네무라 요시아키[7]에게 심하게 혹평을 당했다.
하지만 시범경기에서 .352의 고타율을 보이며 수비 문제는 싹 들어가고 오랜만에 대형 용병을 얻었다는 기대감을 품게 했고, 시즌 개막 후 5게임 연속 안타와 15게임 연속 출루를 하기도 했으며 그 활약으로 인해 한신 구단 역사상 50년만에 1년차 외국인선수 올스타에 선발되었다. 9월 5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는 1년차 외국인선수 최다안타 기록이었던 174개를 뛰어 넘었으며, 드디어 시즌 10월 5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의 경기에서 이치로의 최다 안타 기록이었던 210안타를 뛰어넘는 대기록을 달성하며 214안타로 시즌을 끝냈다.[8] 시즌 최종 성적은 .349 17홈런 91타점 214안타 11도루. 가끔씩 3번으로 들어가기도 했지만 주로 1번타자로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91타점을 기록하며 한신이 리그 2위를 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결국 시즌 후 전년도 대비 100% 인상된 2억엔에 재계약.
2011년 10월 10일 29시합 연속 안타를 기록. 한신 타이거스 구단 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참고로 일본 내 연속안타 기록 최고은 다카하시 요시히코[9].의 33시합 연속 안타. 2011년 10월 11일에 30시합 연속 안타를 기록. 외국인 선수로는 일본 야구 역사상 최초의 연속 기록을 남겼다.[10]
2012 시즌은 극한의 투고타저와 침체된 팀과 함께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남겼다. 팀의 에이스 투수 노우미 아츠시와 불화설을 일으키기도[11] 하면서 막장이 된 팀 분위기를 잘 보여주었다.
2013 시즌이 시작한지 얼마 안된 4월 7일 경부터는 한신 입단 후 처음으로 4번타자에 배정되어 클러치 히터 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12 시즌을 기대 이하로 성적을 낸 것에 대해서 2013 봄 캠프에서는 많은 연습을 하였으며 그것이 2013 시즌에는 제대로 나오고 있다. 2013년 6월 6일에는 세이부의 언더핸드 에이스 마키타를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쳤으며, 6월 10일에는 롯데를 상대로 역전 끝내기 투런을 쏘아올리며 팀을 세리그 단독선두로 올려놓았다. 노미와 같이 히어로 인터뷰를 하며 '노미상, 아이시테루' 라는 일본어 인터뷰로 노미와 화해했음을 과시하기도 했다. 다만 홈으로 질주하던 도중 미국식으로 포수에게 태클을 거는 플레이를 하다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주전 포수 아이카와 료지와 벤치 클리어링을 일으키기도 했다. 아무튼 시즌동안 쭉 중심타선을 지키며 타율 0.314, 19홈런 85타점 OPS 0.845의 좋은 기록을 남겼다.
한신과의 2년 계약이 끝났기 때문에 다시 빅리그에 도전한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다시 1년 계약을 체결하며 2014년에도 한신에서 뛰게 되었다. 2014년에는 주로 3번 토리타니 타카시-4번 마우로 고메즈를 잇는 5번 타순을 맡으며 안정적인 클린업 트리오의 한 축을 이루었고, 시즌 내내 꾸준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팀의 상승세와 일본시리즈 진출에 공헌했다.[12] 최종성적은 .338 .394 .477 OPS .872 14홈런 87타점으로, 센트럴리그 수위타자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그러나 15시즌은 그냥 답없는 정도로 부진에 빠져 있는 중이다. 첫 홈런이 교류전 때나 나왔으니 말 다 한 셈. 결국 참다 못한 한신에서는 스카우터를 바다 건너로 파견해서 한국판 마쓰이 히데키, 한국산 타격 기계를 관찰하도록 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두 명 모두 머튼과 수비 위치가 겹치는 좌익수고 후자는 중견수나 우익수도 어찌어찌 가능하다 보니 자리가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276 .316 .377 9홈런 59타점.
결국 시즌이 끝나고 11월 11일, 정식으로 계약이 해지되었다고 한다. 머튼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6년간 자신을 성원해준 한신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남겼다. 그가 한신에서 기록한 832경기 출장과 1,020안타는 한신의 역대 외국인 선수들 중 최다 기록이다. 그가 달던 등번호 9는 2016시즌 신인 타카야마 슌이 달게 되었다.[13]
머튼이 한신을 떠난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한국의 야구 커뮤니티에서는 새 외국인 타자를 구하고 있던 넥센 히어로즈에서 머튼을 영입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넥센이 대니 돈을 영입하면서 결국 카더라로 끝났다.
이후 2016년 2월에 시카고 컵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14] 다만 맹장 수술을 받는 바람에 시범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지라 개막 로스터 진입 여부는 불투명하다. 결국 2017년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한 뒤 컵스의 프런트 직원으로 합류했다.
4. 플레이스타일
전형적인 중거리형 교타자로 삼진을 적게 당하는 타입. 2루타 생산 능력도 뛰어나며, 특히 좌투수 상대 타율이 높다. 2010시즌 대 좌투수 타율은 4할 8리. 이는 대 우투수 타율은 3할1푼9리를 크게 상회하는 기록이다.수비는 위에 서술된 대로 주로 코너 외야(좌익수)를 보아왔으나, 한신에서는 중견수 포함 외야 3포지션을 전부 소화했다. 카네모토 토모아키가 부상으로 잠시 결장했을 때는 본 포지션인 좌익수로 들어가기도. 카네모토 토모아키가 은퇴한 이후에는 다시 본 포지션인 좌익수로 출장하고 있다.
홈런은 투수친화 구장인 고시엔을 홈으로 쓰며 10개 중반 정도의 홈런을 기록, 홈런타자는 아닐지라도 쏠쏠한 중장거리포로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한방을 지닌 타자이기도 했다. 도루도 매년 10개 남짓은 기록할 수 있어서 루상에서도 평균 이상의 주자였고.
또한 집중력이 뛰어나 첫 해엔 주로 1번타자로 뛰면서도 90타점을 넘게 쳐냈고, 이후 이 클러치 능력에 주목해 클린업으로 전향한 후에도 결정적인 안타와 홈런을 많이 터트린 찬스에 강한 선수였다.
머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타순 이야기인데, 한신 초기에는 주로 1번을 맡았다. 마유미 아키노부 감독이 도리타니의 부상이나 아라이가 부진하고 있을 때 3번이나 4번 타순에 기용하기도 했지만 다시 1번으로 돌아왔다. 사실 1번보단 클린업에 있을 만한 타자이긴 하지만 2009년 시즌에 은퇴한 아카호시 노리히로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영입했고, 클린업 쪽은 아라이, 가네모토, 크레이그 브라젤 등 상대적으로 자원이 풍족했기 때문에 주로 1번 타순으로 활용되었다. 1번치고는 발이 그렇게 빠르지 않지만 워낙 안타를 잘치고 선구안도 좋은 편이라 출루율은 높은 편.
2011년엔 클린업에 배치되었다. 1번은 잘치고 발 빠른 히라노가 맡고 2번은 세키모토 켄타로, 시바타 코헤이[15], 우에모토 히로키[16] 등 리드오프감인 젊은 타자들이 많이 부상, 머튼은 대신 클린업을 받쳐줄 5-6번 타자로 주로 쓰였다. 이것이 먹혀들면서 올시즌도 센트럴 리그 수위타자는 사실상 확정 페이스.
2013년 이후로는 중심타선에 자주 배치되었다. 아라이 타카히로나 다른 거포형 용병타자 등이 부진하면 4번 타자 자리를 꿰차기도 했고, 리드오프를 볼 수 있는 니시오카 츠요시나 우에모토 히로키, 마에다 야마토 등의 선수들을 활용할 수 있게 된 것도 있고 해서 주로 3번 토리타니 타카시-4번 마우로 고메즈를 잇는 5번 타순을 맡았다.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기본적으로 야구선수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안타를 워낙 잘 쳐서 타율과 출루율이 높고 상술했듯 주력도 빠르지는 않지만 느리지도 않으며, 홈런도 간간히 곁들여줄 수 있는, 못하는 것이 없는 육각형 스타일 플레이어였던지라 팀 사정에 따라 1번부터 6번까지 어디다가 넣어두어도 제 몫을 해냈던 안타머신.
이 정도의 스타 플레이어라면 자신의 루틴에 따라 타순을 고집할 만도 한데, 팀 사정에 따라 리드오프에서 3번타자, 심지어는 클린업을 받치는 6번까지 거의 매년 타순이 바뀌었음에도 불평 한 마디 없이 어느 타순에서나 항상 안타를 쳐내서 팀의 윤활유와 같은 존재로 이렇게 팀에 헌신한 점 또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여러모로 랜디 바스 이후 최고의 한신 외국인 타자라 해도 과언은 아닌 셈.
5. 그 외
상당히 성실한 성격으로, 입단 초기 어정쩡한 폼을 한신 코칭스태프에게 지적받자 코칭스태프들의 조언을 잘 받아들이고 그것을 수용하는 등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는데 노력했다고 한다. 그 성격 때문인지 자신이 상대했던 투수들의 정보를 직접 수집, 파일을 만들어 정리한다고 한다.2011년 5월 26일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치바 롯데 마린즈와의 경기 8회초에 본헤드 플레이를 해서 실점을 허용한 경험이 있다. 이때 타석에 들어온 상대 타자 기요타 이쿠히로는 우익수 플라이로 아웃되었다. 하지만, 머튼의 아웃 카운트 착각으로 인해 2루 주자인 이마에 토시아키가 태그업으로 홈인하는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공수교대때 외야수들이 가끔 팬서비스 차원에서 관중석으로 공을 던지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원 아웃 상황이였는데 투 아웃으로 착각해 버린것.
6. 관련 문서
[1] 2010년 10월 5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의 경기에서 스즈키 이치로가 보유하고 있던 일본프로야구 단일시즌 최다안타 기록을 경신한 직후의 모습.[2] NPB 기록은 아키야마 쇼고가 갱신했지만, 우타자 기록은 아직도 머튼의 것. 또한 외국인이라 외국인타자 최다 안타 기록도 동시에 보유중이다. 반대로 일본인 우타자로 범위를 좁히면 2014년에 193개의 안타를 때려낸 야마다 테츠토가 된다.[3] A.J. 피어진스키가 마이클 바렛을 들이받은 뒤 바렛이 강펀치를 날린 역대급 명장면에서 희생플라이를 잡고 홈으로 송구한 좌익수가 머튼이다.[4] 이는 일본행을 택하는 미국 AAAA급 타자들의 공통적인 성향이기도 하다.[5] 머튼을 영입함으로써 한신은 현재 신조 츠요시-아카호시 노리히로-맷 머튼(-치카모토 코지) 이라는 실로 엄청난 중견수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 셋과 스타일이 비슷한 선수를 굳이 꼽자면 김강민-이용규-김현수(-이정후).[6] 1985년 일본시리즈 우승 멤버이자 가와사키 구장에 두개골을 부딪혀 중상을 입은 걸로도 유명한 사노 노리요시가 달던 번호였다.[7] 한국명 김의명. 1982년 고시엔 우승 투수로 프로 진출 후에는 타자로 오사카 긴테츠 버팔로즈와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활약했다. 여담으로 한신을 매우 싫어하고 오릭스는 반대로 은근히 좋아하는 편. 후지나미 신타로에 대한 찌라시를 퍼트려서 모함한 적도 있다. 일본에서는 큰 반향을 못 일으켰지만 한국에서는 정설인양 받아들여지며 후지나미의 이미지가 심각하게 깎인 사건.[8] 이 기록은 2016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아키야마 쇼고가 216안타를 치며 경신한다.[9] 前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으로, 호타준족의 스위치히터 유격수였다.[10] 2022년 치카모토 코지가 타이 기록을 세웠다.[11] 사실 본인의 실책 때문에 노우미의 승리가 날아간 것에 대해 기자들이 질문하자 예민한 질문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농담성으로 '노우미 씨가 싫어서 그랬어ㅋ' 식으로 받아쳤는데, 이 아메리칸 조크를 일본 기자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 기사화된 일종의 해프닝에 가깝다. 영자신문 The Japan Times의 기사 : "Foreign players' message sometimes lost in translation" 은퇴 후 머튼과 교도통신 야구전문 기자 Jim Allen과의 인터뷰[12] 요미우리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4차전에서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지어 버리는 쓰리런 홈런을 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경기에선 막상 선발 투수 노미 아츠시가 안타를 많이 맞으며 심하게 흔들리다가 겨우겨우 점수를 벌리고 오승환이 헹가래 투수로 나와 시리즈를 끝낼 수 있었다.[13] 타카야마는 2016년 신인왕을 차지하였으나 딱 거기까지. 이후 주전 자리를 잃으며 헤메다가 2023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14] 팀동료였던 오승환은 무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이적해서 트레버 로젠탈을 밀어내고 마무리자리에 올랐다.[15] 이 당시 2라운드에서 지명된 유망주로 상당한 푸쉬를 받았던 외야수. 그러나 2011년에 준주전급으로 나온 후에 더이상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며 땜빵 선수로 추락했다가 2016년 시즌 이후 결국 정리되었다. 이후 롯데에 입단하였으나 거기서 1할 2푼 치는 바람에 1년만에 또 정리되어 은퇴.[16] 시바타랑 동기였던 유망주로 2011년에는 시바타보다 기회를 못 받았으나(시바타는 2라운더, 우에모토는 3라운더였다.) 몇 년 후 주전 2루수를 꿰찼다. 그러나 2018년에는 다시 백업으로 추락 후 2020년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