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와그너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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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리 와그너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파일:2010 MLB 올스타전 로고.svg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 |||||||||||||||||||||||||||||||||||||||||||||||||||||||||||||||||||||||||||||||||||||||||||||||
1999 | 2001 | 2003 | 2005 | |||||||||||||||||||||||||||||||||||||||||||||||||||||||||||||||||||||||||||||||||||||||||||||
2007 | 2008 | 2010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bordercolor=#002d62> | 휴스턴 애스트로스 명예의 전당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91919,#ffffff | 밥 아스프로몬테 | 제프 배그웰 | 크레이그 비지오 | 호세 크루즈 | 래리 디어커 |
진 엘스턴 | 밀로 해밀턴 | 조 모건 | 조 니크로 | 셰인 레이놀즈 | |
J.R. 리차드 | 놀란 라이언 | 마이크 스캇 | 짐 움브리히트 | 돈 윌슨 | |
지미 윈 | 랜스 버크먼 | 세자르 세데뇨 | 로이 호핀츠 | 로이 오스왈트 | |
빌리 와그너 | 밥 왓슨 | 테리 풀 | 탈 스미스 | 빌 브라운 | |
빌 도란 | 르네 카데나스 | 켄 캐미니티 |
1999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롤레이즈 구원 투수 상 | ||||
트레버 호프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 → | 빌리 와그너 (휴스턴 애스트로스) | → | 안토니오 알폰세카 (플로리다 말린스) |
휴스턴 애스트로스 등번호 13번 | ||||
어니 라일스 (1992) | → | 빌리 와그너 (1995~2003) | → | 에릭 먼슨 (2006~2007) |
필라델피아 필리스 등번호 13번 | ||||
터크 웬델 (2001~2003) | → | <colcolor=#ffffff> 빌리 와그너 (2004~2005) | → | 살 파사노 (2006) |
뉴욕 메츠 등번호 13번 | ||||
브라이언 다우바치 (2005) | → | 빌리 와그너 (2006~2009) | → | 알렉스 코라 (2010) |
보스턴 레드삭스 등번호 13번 | ||||
알렉스 곤잘레스 (2009) | → | 빌리 와그너 (2009) | → | 니우먼 로메로 (2010)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등번호 13번 | ||||
네이트 맥라우스 (2009) | → | 빌리 와그너 (2010) | → | 네이트 맥라우스 (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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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와그너 Billy Wagner | |
본명 | 윌리엄 에드워드 와그너 William Edward Wagner |
출생 | 1971년 7월 25일 ([age(1971-07-25)]세) |
버지니아 주 매리언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테이즈웰 고등학교 - 페르럼 칼리지 |
신체 | 178cm / 81kg |
포지션 | 마무리 투수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입단 | 1993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2번, HOU) |
소속팀 | 휴스턴 애스트로스 (1995~2003) 필라델피아 필리스 (2004~2005) 뉴욕 메츠 (2006~2009) 보스턴 레드삭스 (2009)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010) |
가족 | 아들 윌 와그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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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마무리 투수로 별명은 빌리 더 키드.2. 선수 경력
2.1. 휴스턴 애스트로스
학창 시절에는 원래 우완 투수였지만 좌완 투수로 전향했다. 오른팔이 두 번이나 부러지고 난 뒤 바꿔봤는데 오른손으로 던질 때보다 오히려 구속이 더 좋았다고 하니 전화위복인 된 셈.[1] 대학 시절부터 ERA 1.88에 K/9이 19개가 넘어갈 정도로 뛰어난 탈삼진 능력을 보이며 1993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입단하여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선발 투수로 활동하면서 탈삼진 1위를 차지하며 팀의 기대를 한몫에 샀다.1996년 콜업 후 마이너리그 때와 달리 구원 투수[2]로 활동하였고 1997년부터 본격적인 마무리로 보직을 변경해 가공할 만한 탈삼진 능력을 앞세워 휴스턴의 뒷문을 단단하게 지킨다. 2000년에는 부상으로 6점대의 자책점을 기록하며 부진했으나 다음해 다시 부활, 1점대~2점대 초반을 넘나드는 ERA을 기록하며 다시금 솔리드한 마무리로 돌아왔다. 2003 시즌 후 마무리의 자리를 셋업맨인 브래드 릿지에게 물려주고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된다.
2.2. 필라델피아 필리스
필리스로 트레이드된 후에도 여전히 강력한 면모를 보였으나 와그너 자신은 '필리스에서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기회가 없다' 라고 공개적으로 팀에게 험담을 했으며 이를 들은 팀 동료인 팻 버렐은 와그너를 쥐라고 부르며 대놓고 깠다. 당연히 와그너는 FA로 2005 시즌 후 뉴욕 메츠로 이적했다.[3]2.3. 뉴욕 메츠
메츠에 이적한 이후에도 2년 연속으로 올스타에 선정되는 등 여전히 꾸준한 활약을 보였으나 2009년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의 이적과 부상으로 신음하다가 결국 시즌 중반 웨이버 형식으로 방출되었다.2.4. 보스턴 레드삭스
2009년 8월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그를 영입했으며 셋업맨으로 매우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이미 레드삭스에는 조나단 파펠본이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2.5.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010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1년 계약으로 입단해 통산 400세이브를 달성하고 7승 2패 37세이브, ERA 1.43, K/9 13.5개라는 뛰어난 성적을 올렸지만[4]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시즌 종료 후 쿨하게 은퇴했다.통산 400세이브 달성 영상. 마지막 공의 구속이 98마일(157km)을 찍었다.
3. 평가
통산 422세이브로 메이저리그 역대 좌완 마무리 중 2위이며[5] 역대 마무리 투수 중에서는 6위이다. 통산 WHIP은 0.998로 1이 채 안되며 이는 1.0인 마리아노 리베라보다도 좋은 수치다. 동시대 마리아노 리베라와 트레버 호프먼에 가려져서 그렇지 통산 기록을 보더라도 이미 레전드급 마무리 투수 중 한 명이다.4.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
연도 | 득표율(%) |
2016 | 10.5 |
2017 | 10.2 |
2018 | 11.1 |
2019 | 16.7 |
2020 | 31.7 |
2021 | 46.4 |
2022 | 51.0 |
2023 | 68.1 |
2024 | 73.8 |
2025 | 미정[6] |
반면 와그너의 명전행의 지지하는 쪽에서는 스미스보다 압도적으로 좋은 방어율을 제시한다. 또 부상에 시달린 2000년 한 시즌 이외에는 항상 꾸준한 성적을 내왔으며, 그가 기량이 부족해서 은퇴한 것이 아니기에 좀 더 뛰었으면 상당한 누적스탯까지 확보됐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최근의 투표 경향은 마무리투수들에게 호의적으로 바뀐 상황인데, 결정적으로 마리아노 리베라가 만장일치로 명전 입성에 성공했다. 이로 인해, "그 리베라와 몇 년 정도는 비교될 만한 시즌을 보냈고 한 단계 아랫급 정도 되는 와그너 역시 충분히 입성할 만한 거 아냐?" 라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이에 몇 년간 10%대 득표율만 나오다가 2021년 46.4%, 2022년 51.0%로 급상승한 상황. 게다가 2022년에 애매한 득표율을 보이던 배리 본즈, 커트 실링, 로저 클레멘스 등 장수생들이 대거 탈락하면서 이후 스캇 롤렌과 함께 입성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그리고 2023년에는 68.1%를 기록해 토드 헬튼과 함께 2024년 입성이 매우 유력한 상황이었지만 막상 그때 딱 들어간 헬튼과는 달리 73.8%로 아쉽게 실패[9]하며 마지막 기회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9년차 신규 입후보자들 중 첫 턴 입성 확정자인 아드리안 벨트레 외에는 강력한 경쟁 상대가 없어보였다는 점이 호재였지만, 정작 와그너처럼 입성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예상되던 조 마우어도 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호평을 받으며 턱걸이로 첫 턴 입성에 성공하며 표에서 손해를 본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작 5표 차이로 떨어진 이상 적어도 2025년에는 스즈키 이치로, CC 사바시아가 자격을 얻음에도 큰 이변이 없는 이상 들어갈 확률이 매우 높아졌다는 점이 위안이다.
명예의 전당 입성에 성공할 경우 가장 오랜 기간 동안 활약한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모자를 쓰고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4.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 | 그레이잉크 | HOF 모니터 | HOF 스탠다드 | |
빌리 와그너 | 0 | 31 | 107 | 24 |
HOF 입성자 평균 | 40 | 185 | 100 | 50 |
- JAWS - Relief Pitcher (6th)
career WAR | 7yr-peak WAR | JAWS | |
빌리 와그너 | 27.7 | 19.8 | 23.7 |
릴리프 HOF 입성자 평균 | 39.1 | 26.0 | 32.5 |
5. 피칭 스타일
와그너의 주무기는 180cm가 안되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유연한 손목과 탄탄한 하체에서 나오는 평균 90마일 후반대에 최고 102마일까지 나오는 강력한 패스트볼이었으며 국내외의 팬들은 그를 보고 '좌완 파이어볼러', '불꽃을 던지는 사나이', 'Billy The Kid'라고 불렀다.80마일 후반대의 브레이킹볼 역시 대단히 위력적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휴스턴 애스트로스 시절 랜디 존슨에게 전수 받은 하드 슬라이더였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와그너 본인은 슬라이더가 아닌 커브를 던지며 존슨과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나이가 들어선 전성기 때만큼 100마일이 자주 찍히지는 않았지만 꾸준한 자기관리 덕분에 말년까지도 패스트볼의 구속을 90마일 중반대로 유지했다.
6. 연도별 성적
빌리 와그너의 역대 MLB 기록 | |||||||||||||||||
<rowcolor=#d2c295> 연도 | 팀 | G | W | L | S | HLD | IP | ERA | H | HR | BB | HBP | SO | WHIP | ERA+ | fWAR | bWAR |
1995 | HOU | 1 | 0 | 0 | 0 | 0 | ⅓ | 0.00 | 0 | 0 | 0 | 0 | 0 | 0.000 | - | 0.0 | 0.0 |
1996 | 37 | 2 | 2 | 9 | 3 | 51⅔ | 2.44 | 28 | 6 | 30 | 3 | 67 | 1.123 | 159 | 0.1 | 1.0 | |
1997 | 62 | 7 | 8 | 23 | 1 | 66⅓ | 2.85 | 49 | 5 | 30 | 3 | 106 | 1.191 | 141 | 2.2 | 1.2 | |
1998 | 58 | 4 | 3 | 30 | 1 | 60 | 2.70 | 46 | 6 | 25 | 0 | 97 | 1.183 | 153 | 1.8 | 1.7 | |
1999 | 66 | 4 | 1 | 39 | 1 | 74⅔ | 1.57 | 35 | 5 | 23 | 1 | 124 | 0.777 | 287 | 3.6 | 3.8 | |
2000 | 28 | 2 | 4 | 6 | 0 | 27⅔ | 6.18 | 28 | 6 | 18 | 1 | 28 | 1.663 | 81 | -0.4 | -0.2 | |
2001 | 64 | 2 | 5 | 39 | 0 | 62⅔ | 2.73 | 44 | 5 | 20 | 5 | 79 | 1.021 | 170 | 2.0 | 2.4 | |
2002 | 70 | 4 | 2 | 35 | 0 | 75 | 2.52 | 51 | 7 | 22 | 2 | 88 | 0.973 | 172 | 1.6 | 2.8 | |
2003 | 78 | 1 | 4 | 44 | 0 | 86 | 1.78 | 52 | 8 | 23 | 3 | 105 | 0.872 | 247 | 2.3 | 3.5 |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W | L | S | HLD | IP | ERA | H | HR | BB | HBP | SO | WHIP | ERA+ | fWAR | bWAR |
2004 | PHI | 45 | 4 | 0 | 21 | 1 | 48⅓ | 2.42 | 31 | 5 | 6 | 2 | 59 | 0.766 | 187 | 1.5 | 1.2 |
2005 | 75 | 4 | 3 | 38 | 0 | 77⅔ | 1.51 | 45 | 6 | 20 | 3 | 87 | 0.837 | 293 | 2.1 | 2.7 |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W | L | S | HLD | IP | ERA | H | HR | BB | HBP | SO | WHIP | ERA+ | fWAR | bWAR |
2006 | NYM | 70 | 3 | 2 | 40 | 0 | 72⅓ | 2.24 | 59 | 7 | 21 | 4 | 94 | 1.106 | 196 | 1.9 | 2.2 |
2007 | 66 | 2 | 2 | 34 | 0 | 68⅓ | 2.63 | 55 | 6 | 22 | 2 | 80 | 1.127 | 164 | 1.6 | 1.7 | |
2008 | 45 | 0 | 1 | 27 | 0 | 47 | 2.30 | 32 | 4 | 10 | 0 | 52 | 0.894 | 185 | 1.2 | 1.0 |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W | L | S | HLD | IP | ERA | H | HR | BB | HBP | SO | WHIP | ERA+ | fWAR | bWAR |
2009 | NYM/BOS | 17 | 1 | 1 | 0 | 6 | 15⅔ | 1.72 | 8 | 1 | 8 | 1 | 26 | 1.021 | 277 | 0.3 | 0.3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W | L | S | HLD | IP | ERA | H | HR | BB | HBP | SO | WHIP | ERA+ | fWAR | bWAR |
2010 | ATL | 71 | 7 | 2 | 37 | 0 | 69⅓ | 1.43 | 38 | 5 | 22 | 3 | 104 | 0.865 | 268 | 2.0 | 2.5 |
MLB 통산 (16시즌) | 853 | 47 | 40 | 422 | 13 | 903 | 2.31 | 601 | 82 | 300 | 33 | 1196 | 0.998 | 187 | 23.9 | 27.7 |
7. 기타
- 1998년 정규시즌 중 對 애리조나 원정 경기에서 토니 바티스타가 친 라인 드라이브 타구를 맞아 두개골 골절 부상을 입어 한 달간 부상자 명단에 오르기도 했었다. 평균적인 투수들의 신체조건에 비하면 다소 언더사이즈라 시즌중 잔부상도 꽤 있었고 3~4년마다 한 번씩 부상으로 부진한 시즌을 보이기도 했는데, 와그너의 플옵 마지막 등판인 샌프란시스코와의 2010 내셔널 리그 디비전 시리즈 2차전은 연장 10회에 등판해 ⅓이닝을 잘 틀어막고도 허리부상으로 내려간 것이 마지막이다.
- 전설급 마무리 투수지만 가을야구에서는 유독 성적이 좋지 못했다. 통산 포스트시즌에서 14경기 출장 1승 1패 10.03의 방어율에 WHIP은 1.971로 커리어 성적에 비교하면 WHIP은 두 배 수준이고 방어율은 4배가 넘는다.
휴스턴 시절에는 팀이 디비전 시리즈에서부터 밀리면서 출장이 많지 않았고, 2006년 뉴욕 메츠 시절엔 2006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상대로 1차전엔 세이브를 따냈지만 2차전에 3실점으로 패전, 4:0으로 앞선 경기에 등판한 6차전에는 2실점 하며 간신히 경기를 마무리하며 크게 흔들렸다. 결국 7차전 동점 상황에서 비교적 잘 던지던 애론 하일만이 오래 던졌고 그 결과 몰리나에게 홈런을 맞았으니 메츠가 탈락하게 된 원흉이 된 인물 중 한 명인 셈이다. 그나마 2010년에는 NLDS 2차전 연장 10회에 나와서 ⅓이닝을 잘 막았지만 직후 부상을 당했고, 애틀랜타도 결국 디비전 시리즈 4차전에 와그너의 부재로 인해 7회부터 불펜이 터지면서 역전당해 탈락하였으며 그것이 와그너에겐 마지막 가을야구였다.
8. 관련 문서
[1] 이런 케이스로 조규제가 있다. 구대성은 알려진 바와 달리 원래 좌완이다.[2] 불펜 투수로 바뀐 가장 큰 이유는 180cm가 안되는 그의 작은 키 때문이다. 작은 키에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의 내구력을 구단이 믿을 수 없어서 와그너를 불펜 투수로 전향시켰고, 이는 충분히 성공적이었다.[3] 공교롭게도 그가 필리스를 떠난 뒤 마무리로 온 선수가 바로 브래드 릿지다.[4] ERA 1.43은 와그너의 커리어하이 기록이었다. 여러모로 은퇴가 아쉬운 부분이다.[5] 1위는 존 프랑코의 424세이브[6] 마지막 기회[7] 결국 스미스는 베테랑 위원회를 통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8]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리베라, 호프먼 등 역대 최고의 마무리투수들과 경쟁했기 때문이다.[9] 5표 부족으로 입성 실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