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스캇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마이크 스캇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1986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 | ||||||||||||||||||||||||||||||||||||||||||||||||||||||||||||||||||||||||||
드와이트 구든 (뉴욕 메츠) | → | 마이크 스캇 (휴스턴 애스트로스) | → | 스티브 베드로시안 (필라델피아 필리스) |
1986년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MVP | ||||
아지 스미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 | 마이크 스캇 (휴스턴 애스트로스) | → | 제프리 레너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1989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다승왕 | ||||
오렐 허샤이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대니 잭슨 (신시내티 레즈) | → | 마이크 스캇 (휴스턴 애스트로스) | → | 더그 드레이벡 (피츠버그 파이리츠) |
1986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평균자책점왕 | ||||
드와이트 구든 (뉴욕 메츠) | → | 마이크 스캇 (휴스턴 애스트로스) | → | 놀란 라이언 (휴스턴 애스트로스) |
1986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탈삼진왕 | ||||
드와이트 구든 (뉴욕 메츠) | → | 마이크 스캇 (휴스턴 애스트로스) | → | 놀란 라이언 (휴스턴 애스트로스) |
뉴욕 메츠 등번호 30번 | ||||
독 엘리스 (1979) | → | 마이크 스캇 (1979~1982) | → | 마이크 토레즈 (1983~1984) |
휴스턴 애스트로스 등번호 33번 | ||||
고디 플라데슨 (1980) | → | 마이크 스캇 (1983~1991) | → | 영구결번 |
}}} ||
<colbgcolor=#002d62><colcolor=#ffffff> 휴스턴 애스트로스 No. 33 | |
마이클 워런 "마이크" 스캇 Michael Warren "Mike" Scott | |
생년월일 | 1955년 4월 26일 ([age(1955-04-26)]세)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출신지 | 캘리포니아 주 산타 모니카 |
학력 | 페퍼다인 대학교 |
신체 | 188cm / 95kg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76년 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37번 (NYM) |
소속팀 | 뉴욕 메츠 (1979~1982) 휴스턴 애스트로스 (1983~1991) |
기록 | 노히트 노런 (1986.09.25) |
[clearfix]
1. 개요
전 메이저리그 투수로 스플리터가 장기였다.2. 뉴욕 메츠 시절
1976년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에 뉴욕 메츠의 지명을 받고 입단하고, 1979년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한다. 그러나 메츠에서의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메츠에서 있었던 4년 동안의 성적은 14승 27패 ERA 4.64. 메츠에서 그는 그냥저냥 성적을 내는 5선발에 불과했던 선수였고, 결국 그는 1982년 12월 휴스턴의 외야수 대니 힙과 트레이드된다.3. 휴스턴 애스트로스 시절 초기
휴스턴으로 트레이드된 후 맞은 첫 시즌, 그는 10승 6패 ERA 3.72라는 괜찮은 성적을 내었지만, 이듬해 5승 11패 ERA 4.68의 성적을 내며 원래대로 롤백했다. 이대로라면 그는 소리소문없이 묻힐 선수였다. 그런데 1984시즌이 끝나고, 한 투수코치를 만나게 되면서, 그의 야구 인생이 뒤바뀌게 된다.4. 애스트로스의 에이스
1984 시즌이 끝나고, 그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투수코치였던 로저 크레이그[1]를 만난다. 로저 크레이그는 스플리터를 잘 가르치는 것으로 유명했고, 1984년 월드 시리즈 우승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는 스플리터를 주무기로 하는 선수[2]들이 많았다. 또한 크레이그 코치는 자팀 타팀 선수를 가리지 않고 스플리터를 가르쳤고, 마이크 스캇도 그 중 하나였다.이렇게 스플리터를 배우고 나서 맞이한 1985 시즌. 그는 30세의 나이로 18승 8패 3.29의 성적을 거두며 휴스턴의 에이스로 거듭나게 된다. 이 성적을 토대로 그는 3년 200만 달러의 연장계약을 맺게 된다.
1986 시즌, 내셔널리그의 최강 투수가 된다. 275.1이닝(MLB 전체 1위) 18승(NL 공동 3위) 10패 ERA 2.22(MLB 전체 1위) 306K(MLB 전체 1위)의 성적을 찍으며 사이 영 상을 수상하고, 9월 25일 경기에서 노히트 노런까지 달성한다. 그리고 이후 열린 NLCS에서도 MVP를 차지한다. 다만 팀은 NLCS에서 뉴욕 메츠에게 패해 월드 시리즈에는 진출하지 못한다.[3] 30세 이전까지 정말 별 볼일 없던 선수였던 그는,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인생역전에 성공하게 된다.
그 뒤로도 3년간 휴스턴의 에이스로 활약하면서, 89년에는 20승 투수가 되기도 하지만, 91년 부상을 견디지 못하고 은퇴한다. 사실 그의 포텐이 터지기 시작한 1985년부터 6년 연속 200이닝을 초과하여 1398이닝을 투구한 결과가 그를 계속 괴롭힌 것. 거기다가 그렇게 던진 때가 전부 30대 때이니.
5. 플레이 스타일
1986년 노히트노런 영상역대 최고의 스플리터를 던진 투수 중 한명이다.[4] 패스트볼과 스플리터의 투 피치 투수다. 엄청난 회전수의 포심 패스트볼의 위력도 어마어마 하지만, 역시 그의 상징은 큰 키에서 내리꽂는 압도적인 낙차와 무브먼트를 자랑하는 스플리터였다.
6. 은퇴 이후
1992년 휴스턴은 그의 등번호 33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7. 관련 문서
[1] 1985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감독으로 부임한다.[2] 잭 모리스 등[3] 그런데 이를 다시 생각해보면, 팀이 졌는데도 시리즈 MVP를 획득했다는 것이다. 마이크 스캇의 NLCS 성적은 2게임 18이닝 2승 ERA 0.50.[4] MLB 역대 최고의 스플리터를 꼽는다면 마이크 스캇 아니면 브루스 수터의 것을 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