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카디오 프란시스코 '토니' 바티스타 에르난데스 Leocadio Francisco 'Tony' Batista Hernandez | |
출생 | 1973년 12월 9일 |
푸에르토 플라타 | |
국적 | 도미니카 공화국 |
포지션 | 3루수, 유격수 |
투타 | 우투우타 |
소속팀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96~1997)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1998~1999) 토론토 블루제이스 (1999~2001) 볼티모어 오리올스 (2001~2003) 몬트리올 엑스포스 (2004)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05) 미네소타 트윈스 (2006) 워싱턴 내셔널스 (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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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이저리그, 일본프로야구에서 뛰었던 타자. 포지션은 3루수, 유격수.2. 커리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1991년 아마추어 자유계약선수로 계약한 뒤, 1996년 메이저리그 베이스볼로 승격돼 2007년까지 11시즌 동안 뛰었다. 2005년에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도 1년 동안 뛴 적이 있다.11시즌 동안 6팀을 옮겨다닌 전형적 저니맨. 통산 타율은 .251, 통산 출루율은 .299로 컨택도 나쁘고 눈도 안좋은 타자지만 통산 홈런 221개, 커리어 하이 41홈런을 기록할 정도로 무시할 수 없는 한 방을 갖춘 타자였다. 올스타에도 2000년, 2002년 두 번 선정됐었다.
2004년 메이저리그에서 30홈런 100타점을 기록했지만 좋지 못한 수비와 타율 0.241 출루율 0.271의 저조한 성적으로 fa가 되어 고액연봉자(04년도 연봉 640만 달러)라 팀찾기가 쉽지 않아보였으나, 2005년 메이저리그가 아닌 일본프로야구 팀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2년 1500만 달러의 고액의 계약을 맺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일본리그에서도 0.263 27홈런 90타점에 OPS .763을 기록하며 고액의 연봉에 비해 아쉬운 활약을 보여[1] 소프트뱅크의 실망만 샀고 시즌 종료 후 상호계약해지를 하게 되면서 1년 만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때 일본 위키에 따르면 2년차 돈까지 호크스에서 다 주었다고 한다.
계약해지 후 미네소타 트윈스와 125만 달러의 계약을 체결하여 스프링 캠프에서 스트라이크 존을 좁히며 선구안이 좋아졌으나 장타와 컨택이 따라 오지 않는 바람에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07 시즌 후 메이저리그에서 사라졌다.
3. 플레이 스타일
장타력이 조금 좋았을 뿐 단점 투성이였던 타자였지만, 기이한 타격폼 등의 이유로 가끔씩 회상되고는 한다.앞에서 보면 이렇다. 아예 시작부터 배터박스에 앞으로 나란히 서 다리를 쩍 벌린 채 무슨 검도 선수처럼 배트로 투수를 겨눈 다음 상체만 오른쪽으로 돌려서 타격자세에 들어간다.
이 기묘한 극단적인 오픈스탠스로 몸쪽공에 대응하는 능력과 파워를 얻었지만, 790:287이라는 극악의 K:BB를 기록하는 막장 선구안으로 공갈포라는 오명을 커리어 내내 벗지 못했다. 그리고, 2019년 도미니카 동향 출신 후배가 이 선수와 비슷한 타격폼과 파워스윙을 보여주며 리그에 데뷔했다. 신시내티 레즈 소속의 아리스티데스 아퀴노.[2]
4. 기타
일본에서 뛰던 시절엔 벤치 클리어링 위협 시도로 개그물을 찍기도 했다. 피해자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167cm 좌완 이시카와 마사노리. 사실 험악한 인상과는 달리 온화한 성격이라 여태까지 난투극에 휘말린 적은 없다고 한다.[1] 사실 연 750만 달러가 아니라 75만 정도를 받는 용병이었으면 그냥저냥 재계약을 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175만 달러 수준의 용병이어도 저 성적이면 재계약을 고민했을 상황이라 얄짤없었다. 심지어 통일구 시절이라면 몰라도 저때는 일본리그가 타고투저였다.(거의 20년 가까이 지난 2023년에 치바 롯데의 그레고리 폴랑코가 딱 저정도 성적을 찍고 연봉 330만 달러 언저리에 재계약을 한다. 근데 폴랑코가 그 해 홈런왕이었을 정도로 리그가 투고였다.)[2] 다만 아키노는 메이저에서 200만 달러도 받지 못한 채 빠르게 밀려나 일본으로 갔고, 성적이 나쁘진 않았으나 돈값을 못한 바티스타와는 다르게 1/2군 통틀어 1할 타율에 1군 1홈런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찍고 100만 달러를 넘게 받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