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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73180>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No.19 | |
이시카와 마사노리 石川雅規 | Ishikawa Masanori | |
생년월일 | 1980년 1월 22일 ([age(1980-01-22)]세)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출신지 | 아키타현 아키타시 |
출신학교 | 아키타상업고등학교 - 아오야마가쿠인대학 |
신체 | 167cm[1], 73kg |
포지션 | 선발 투수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입단 | 2001년 자유획득 제도 |
소속팀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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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프랜차이즈 좌완 투수. 타테야마 쇼헤이와 함께 야쿠르트의 좌우 에이스로 활약했으며, 167cm의 작은 체구 탓에 작은 거인이라 불리기도 한다.[2] 등번호는 19번.2. 활동
2023년 시즌 현재 NPB 현역 통산 최다승 투수이다.[3]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역 내내 주목도가 낮은 비인기 팀 소속이라는 점과 선수로 활동하는 기간 동안 소속 팀이 전성기를 지나 부침이 심한 롤러코스터 양상을 보이면서 그다지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는 점[4] , 승수 못지않게 패수도 많은 등[5] 다른 팀들의 에이스급 투수들만큼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못한 점[6] 등 때문에 통산 승수만큼의 인지도는 없는 편이다. 실제 웬만한 NPB 팬들이라도 현재 NPB 현역 최다승 투수가 누구냐고 질문할 때 이 선수 이름이 바로 나오는 경우는 별로 없으며 답을 가르쳐 주면 의외라는 반응이 많다. 다만 누구보다도 오래, 큰 부상없이 꾸준히 기량을 유지하면서 잘 버텼다[7]는 점이 이 선수의 가치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3. 아마추어 시절
아키타 상고 시절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에서 와다 츠요시와의 투수전으로 주목받았다.1998년 아오야마가쿠인 대학에 진학하여 싱커를 장착. 도토 대학 리그에서 에이스로서 활약했는데 소카 대학전에서는 연장 18회까지 완투를 했다. 대학 3학년 때 시드니 올림픽의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어 출전해 예선에서 후에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팀 동료이자 감독이 되는 후루타 아츠야와 함께 배터리를 짰다. 대학 시절의 통산 기록은 51경기에 출전하여 23승 8패, 평균 자책점 1.63, 탈삼진 284개를 남겼고 최고 수훈 선수 1회(2학년 춘계), 최우수 투수 3회(2학년 춘계·추계, 4학년 춘계), 베스트 나인 3차례(2학년 춘계·추계, 4학년 춘계)를 수상했다.4. 프로 입단 이후
2010년대 초반의 야쿠르트 좌우 에이스. 오른쪽은 다테야마 쇼헤이.
2002년 팀내 로테이션에 합류하며 29경기(28선발)에 등판, 178⅓이닝을 던지면서 12승 9패, 3.33의 방어율의 신인답지 않은 성적으로 신인왕을 수상했다. 하지만 이 해 보크를 3개나 범하며 보크 1위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그래도 이 해의 호성적으로 인해 팬들은 팀내 에이스가 될 선수라고 생각하며 기대를 품게 됐다. 전년도에 대졸 2년차로서 15승을 차지하며 최다승 타이틀을 획득한 좌완 후지이 슈고와 함께 야쿠르트의 신진 왼손 에이스 듀오로 주목받았다.
이듬해인 2003년 30경기에 등판, 190이닝을 책임지면서 작년과 같은 12승을 거뒀다. 이닝이팅 부분에서는 확실한 선수로 사람들에게 각인됐지만 방어율도 소폭 상승한 3.79로 마쳤고, 최다 피안타와 자책점 1위라는 불명예 또한 안았다.이후 2004~2006년 동안 팀 선발진에서 두 자릿수 승수와 규정이닝 이상의 투구로 꾸준한 성적을 보여줬지만 데뷔때와 같은 임팩트를 주지 못하고, 방어율은 4점대로 상승했다. 2005년에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용병타자 토니 바티스타[8]에게 데드볼을 맞춘 뒤 뛰쳐나오는
2007년에는 본인 최초 완봉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좋지 못한 투구로 인해 2군 강등이 잦았고, 방어율도 7점대까지 올랐다가 시즌 중반 이후 역투하며 4점대로 낮췄다. 이 해의 부진으로 인해 6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 달성과 규정 이닝 달성에 실패.
2008년에는 전해의 부진을 계기로 각성했는지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교류전 기간에 1.12의 방어율로 전체 1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며, 시즌 막판에 ⅓이닝 무실점 홀드를 챙기며 콜비 루이스를 제치고 방어율 1위를 달성한다. 이 해 성적은 30경기(29선발) 12승 10패 1홀드 195이닝, 방어율 2.68로 본인의 커리어 하이 시즌을 달성했으며 야쿠르트 스왈로즈 소속로써는 사상 첫 골든글러브까지 차지했다. 이 시즌부터 두각을 드러낸 다테야마 쇼헤이와 좌우 에이스를 결성.
2009년에는 방어율이 3.54로 상승했지만 본인 커리어에서 최다 이닝 달성(198.1이닝), 그리고 최다승(13승)과 최고승률(0.650)을 기록했다. 이닝은 리그 1위.
2010년에는 초반 6연패로 부진했고, 7월까지 2승 8패로 암울한 시즌이 예상됐지만 7월부터 호투하며 월간 MVP에 선정됐다. 또한 11연승을 하며 최종적으로 13승으로 커리어 최다승 타이를 기록했다.
2011년에도 로테이션을 꾸준히 지키며 본인 커리어 두 번째 2점대 방어율(2.73, 리그 11위) 달성에 성공. 이 해 팀내 5번째로 통산 100승에 성공했으며, 팀내에서 100승 달성 속도는 가네다 마사이치 다음으로 두 번째로 빨랐다.
2012년에 통산 1000K를 기록했지만
2013년 좌우에이스를 이루던 다테야마의 시즌아웃으로 인해 신인 오가와 야스히로에 이은 2선발을 맡고 있다. 팀이 워낙 막장이 돼버려서 좋은 투구를 하고도 승리를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8월말까지 전적은 4승 7패, 승률 0.364의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평균자책점은 3.46으로 전체 10위에 랭크. 요미우리의 사와무라 히로카즈 다음으로 승률이 낮다. [10] 아이러니 한 건 승률 1위와 다승 1위는 같은 팀의 오가와 야스히로(12승 3패, 승률 0.800)
9월 22일 기준으로 22경기 5승 7패, 승률 0.385와 평균자책점 3.77을 기록 중. 한때 경쟁자(?)였던 사와무라 히로카즈는 3.29의 평균자책점으로 4승 10패(...), 승률 0.286의 더 낮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팀내에서는 야기 료스케가 시즌 후반부에 패를 쌓으며 5승 11패 0.313의 부진한 승률을 기록중.
시즌 최종성적은 24경기 6승 9패, 149⅓이닝 149피안타 85탈삼진/33볼넷 ERA 3.52(리그 12위) 73실점 58자책점으로 15점차이난다. 다테야마가 빠지면서 부실해진 선발진을
2014년에는 망했다(...) 야쿠르트에서 그나마 로테이션을 제대로 지킨 선발이긴 하지만 커리어 로우의 성적을 찍었다. 최종성적은 27경기 10승 10패 165이닝 181피안타(2위) 101삼진/55볼넷 ERA 4.75[11]. 피홈런도 20개(리그 1위)로 증가했고, 볼넷 비율이 9이닝 당 3.33개로 본인 커리어와 걸맞지 않은 성적을 찍었다.
2015년에는 13승 9패 평균자책점 3.31의 성적을 기록했다. 시즌 초반 컨디션 난조로 로테이션을 몇번 거르는 바람에 이닝을 많이 소화하지 못한 게(146.2이닝) 흠이지만, 그래도 팀 내 최다승을 거두며 팀의 센트럴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2016년에는 시즌 중반 왼쪽 종아리 부상으로 한동안 로테이션에서 이탈했고, 결국 2007년 이후 처음으로 규정이닝 달성에 실패했다. 시즌 성적은 20경기 116.2이닝 8승 8패 평균자책점 4.47. 그래도 통산 150승이라는 업적을 달성한 시즌이기도 했는데, 이는 야쿠르트 프랜차이즈에 있어 가네다 마사이치(353승), 마츠오카 히로무(191승)에 이은 세 번째 기록이다.
2017년은 추락한 팀과 함께 커리어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말았다. 시즌 최종 성적은 23경기 123.1이닝 4승 14패 ERA 5.11.
2018년은 데이비드 뷰캐넌에 이은 팀 내 2선발로 여전히 활약했지만, 작년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며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다. 9월 10일 2군으로 강등되었다. 시즌 성적은 20경기 100.2이닝 6승 6패 방어율 5.10.
2019년에 드디어 부활에 성공했다. 최종 성적은 23경기 124.1이닝 8승 6패 ERA 3.84를 기록했고 2015년 이후 4년만에 3점대 ERA를 기록했다. 이게 만 39살의 나이인 선수의 성적이라는게 놀라울 따름. 다음 시즌 연봉 역시 9500만엔에서 500만엔 오른 1억엔으로 소폭 상승했다. 나이 40에 1억엔의 연봉을 받는것 만으로도 대단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2020년엔 나이가 나이인지라 전시즌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이닝을 소화했으나 등판할때마다 나이를 감안하면 준수한 피칭을 선보였다. 평균자책점은 4.48로 투타 모두 폭망한 팀치곤 무난했지만 2승 8패라는 극악의 승운이 문제였다.
2021년엔 4승 5패 82이닝으로 소화한 이닝은 적지만 3.07이라는 좋은 평균자책점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스팟 스타터로서는 상당히 훌륭한 성적. 그리고 2021년 일본시리즈 4차전에서 선발로 등판해 오릭스 타선을 6이닝 1실점으로 막아내며 무려 71년만에 40대의 나이로 일본시리즈 선발승을 기록했다.[12] 그리고 6차전에서 야쿠르트가 4승 2패로 승리하면서 데뷔 20년 만에 우승반지를 껴보게 되었다.
- [ 2022년 등판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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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엔 42살의 나이에도 준수한 투구를 하고 있고 통산 3000이닝을 돌파했다.
44세가 된 2024년, 6월 2일 데뷔 년도부터 23년 연속 승리를 달성해 사상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5. 플레이 스타일
쓰리쿼터 투구폼에서 나오는 슬라이더, 싱커, 커터, 투심, 커브와 체인지업 등 다양한 변화구로 맞춰잡는 피칭을 주로 한다. 구속이 느린 편이기에 변화구의 볼끝과 발군의 제구력으로 커버. 통산 사사구 허용 비율이 현역 센트럴리그 투수 중 1위인 1.41을 마크하고 있다. 퍼시픽 리그까지 포함해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다케다 마사루 바로 다음. 다만 구속이 그렇게 높지 않은 탓인지[13] 피안타가 상당히 많은 편에 속한다. 팬들이 말하는 볼질 할 거면 차라리 얻어 맞아라 유형의 투수. 데뷔 2년차인 2003년 201피안타로 피안타 1위를 기록한 이후 커리어 11년(2012년 기준)동안 5번의 피안타 1위, 4번의 200피안타 이상을 기록했다. 이처럼 많은 피안타 때문에 볼넷 비율이 상당히 낮음에도 불구하고 통산 WHIP은 1.24로 낮은 편이 아니다. 2015년 이후에는 그나마 기존의 구위마저 노쇠화로 더 약해지면서 부진하지만 야쿠르트의 투수진 뎁스가 워낙 습자지라 아직도 팀 내에서는 3선발 정도로 꾸역꾸역 로테이션을 지키고 있다. 팀 내 젊은 선발투수들이 약진하기 시작한 2021년에서야 비로소 선발 로테이션을 벗어나 스팟 스타터 역할을 맡게 되었다.
2008년 일본시리즈에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키시 타카유키의 활약에 고무되어, 오프시즌에 평균 90km/h 전후의 슬로우커브를 개발해 '가다랑어 커브'라고 이름 붙였다. 가다랑어는 자신의 별명[14]이기도 하며 시속 80km의 속도로 헤엄친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카츠오 커브
6. 둘러보기
[1] 주니치의 야마모토 타쿠미, 타니모토 케이스케와 함께 공동 최단신 투수.[2] 같은 팀에 후베로 들어온 우완 오가와 야스히로 역시 단신이라 이렇게 불리기도 한다.[3] 2023년 기준 통산 185승 185패다. 현재 NPB 공식 홈페이지에는 현역 최다승 투수 부문 제일 윗자리에 이 선수의 이름이 올라와 있으며 2위와도 무려 20승 이상 차이가 난다. 현역 최다승 2위는 와쿠이 히데아키로 통산 159승. 즉 은퇴할 때까지는 NPB 현역 통산 최다승 자리를 지킬 것이 거의 확실하다. 2019년에는 18년까지 일본선수 현역 통산 최다승(NPB+MLB) 기록을 갖고 있던 170승의 마쓰자카 다이스케(NPB 114+MLB 56), 이와쿠마 히사시(NPB 107+MLB 63)의 기록도 넘어섰다. 마쓰자카의 경우 일본 복귀 후 3년 동안 단 1번 등판한 먹튀짓 때문에 그렇기는 하다. 다만 2019년에 물 건너 미국에서 이 기록을 넘긴 이가 또 있었으니, 바로 174승의 다나카 마사히로(NPB 99+MLB 75).[4] 실제로 입단 바로 직전 해가 팀의 마지막 일본시리즈 우승 연도였고 입단 이후 팀 성적으로는 리그 우승 1번(2015년, 그것도 시리즈에서 패배---- 2021년-2022년 연속으로 리그 우승에 21년도에는 일본시리즈 우승까지 달성했다.)이 최고 성적.[5] 2023 시즌까지 통산 185패. 현역 통산 최다패 투수이기도 하다. 현역 중에 NPB에서 150승과 150패를 모두 기록한 유일한 선수이다. 참고로 통산 최다패 2위는 통산 156패의 와쿠이 히데아키(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쪽도 2위와 20패 이상 차이가 난다.[6] 현역기간 내내 한번도 시즌 13승을 넘어본 적이 없다.[7] 시즌 10승 이상을 무려 11번을 기록 했으며 현역 생활 17년 동안 100이닝 이하를 기록한 시즌은 딱 1번, 규정 투구이닝수를 채운 시즌만 13시즌이다.[8] 영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극단적인 오픈스탠스 타격폼으로 유명한쩍벌남 선수였다.[9] 일본리그가 저반발 공인구 영향으로 투신고타병저라 좋은 기록이 아니다. 센트럴 리그 전체 18위였으며, 이 해 센트럴리그 평균자책점은 2.85[10] 8월 22일까지는 3승 7패 승률 3할로 승률 꼴찌였다가 이 날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꼴찌에서 탈출. 사와무라는 3.18의 평균자책점으로 전체 7위에 랭크돼있는데 4승 8패, 승률 0.333의 낮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게다가 사와무라는 리그 1위 요미우리 소속이다.[11] 규정이닝 채운 선수 중 최하위[12] 1950년 일본시리즈 1차전에서 와카바야시 타다시가 승리투수가 된 것이 마지막 기록. 참고로 1950년은 양대리그가 처음 시작된 시즌. 즉 최초의 일본시리즈가 개최된 연도이다.[13] 딱 한번 145km/h를 찍어본 2010년을 제외하곤 한 시즌 최고 구속이 대부분 142~143km/h에서 놀았다. 나이가 45세가 된 2024년의 최고 구속은 134km/h.[14] 아오키 노리치카와 함께 개인 연습을 할 때, 사자에상에 나오는 이소노 카츠오를 닮았다는 이유로 '카츠오군'(가다랑어)라는 별명이 붙었고, 이를 계기로 구단에서도 가다랑어 캐릭터 상품 발매 등의 마케팅을 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