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07 12:31:37

이와쿠마 히사시

파일:Iwakuma.jpg
요미우리 자이언츠 No. 21
이와쿠마 히사시
(岩隈 久志 / Hisashi Iwakuma)
생년월일 1981년 4월 12일 ([age(1981-04-12)]세)
국적 파일:일본 국기.png 일본
출신지 도쿄도 히가시야마토시
신체조건 190cm / 95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9년 드래프트 전체 5번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
소속구단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 (2000~2004)
오릭스 버팔로즈 (2005)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05~2011)
시애틀 매리너스 (2012~2018)
요미우리 자이언츠 (2019~)
계약 1yr(s) / ¥50,000,000
연봉 2019 / ¥50,000,000
수상 1x All Star (2013)
기록 Pitched a no-hitter (2015.8.15)
WBC 우승 반지
2009
2008년 일본프로야구 사와무라상
다르빗슈 유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이와쿠마 히사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와쿠이 히데아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008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MVP
다르빗슈 유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이와쿠마 히사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다르빗슈 유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1. 소개2. 경력
2.1. 킨테츠 버팔로즈 시절2.2.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시절2.3. 실패로 끝난 포스팅 이적 시도2.4. 시애틀 매리너스 시절2.5. 일본 복귀2.6.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3. 피칭 스타일4. 기타사항
4.1. 가족관계4.2. 외모4.3. 불륜소동4.4. 일본 야구에 대한 시각
5. 연도별 성적

1. 소개

파일:IwakumaNoHitter.jpg
시애틀 매리너스 통산 5번째 노히트 노런 달성
일본의 현 프로야구 선수. NPB 시절에는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의 마지막 에이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원년 에이스였고 2012년부터는 MLB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 팀 에이스 킹 펠릭스의 뒤를 받치는 2선발로서 bwar 리그1위도 기록하고 노히트게임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라쿠텐 시절에는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 중 하나였고 2009 WBC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으며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뒤에도 수준급 선발투수로 활약하고 있기에 조국인 일본이나 한국에서나 관심이 많을 법도 한데, 양국 모두 일본인 투수하면 언론이든 팬들이든 다르빗슈 유에게만 관심이 쏠리는 바람에 그 이후에는 마군, 오타니마에다에 묻혔다 실력에 비하면 인지도가 낮은 비운의 투수.

2019년 기준으로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 출신 중 현역으로 뛰고 있는 최후의 3인 중 1명[1]이며 이들 중 유일하게 긴테츠의 마지막 리그 우승과 일본시리즈 진출인 2001년 시즌의 경험자이다. 현역 최후의 라쿠텐 원년 멤버이기도 하다.

2. 경력

2.1. 킨테츠 버팔로즈 시절


특유의 이중키킹 투구폼을 볼 수 있는 2004년의 투구 영상. 후술하듯 규정 변화로 투구폼을 교정하면서 지금은 볼 수 없게 되었다. 이중 키킹도 그렇지만 더 특이한 것은 투구 시작과 동시에 오른팔을 몸에 바짝 붙여서 디셉션을 시도하는 것.

처음 야구를 시작한 구단은 지금은 합병되고 없는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 1999년에 드래프트 5위로 지명되어 2000년부터 착실히 기본기를 쌓으면서 2002년에 본격적으로 개화하기 시작한 투수이다. 2017년 종료 시점에서 긴테쓰의 마지막 리그 우승과 일본시리즈 진출인 2001년 시즌을 경험한 현역 유일의 선수이다.[2] 이 해 일본시리즈 2차전에 선발 등판하기도 했지만, 2와 1/3이닝동안 3실점하며 조기강판되었다. 다만 긴테쓰의 타선이 터져 팀이 승리하면서 패전은 면했다.[3]

2004년부터는 완전히 궤도에 올라 2004 아테네 올림픽 대표로 거의 2달을 비우고도 15승 2패, 평균자책점 3.01의 최고의 활약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 해 오릭스 블루웨이브와 킨테츠 버팔로즈의 합병에 격렬히 반대하면서 구계의 높으신 분들에게 살짝 찍혀버리게 된다. 결국 합병 구단인 오릭스 버팔로즈의 계약갱신과 연봉협상에 불응하면서, 나는 오릭스 외에 어느 구단이라도 가겠다! 라고 선언하면서 사태는 악화일로였다. 그것도 네임밸류가 없는 선수도 아니고 시즌 최다승 투수가 저러니 파문이 일파만파.

이 이후 거의 3개월 가깝게 오릭스와 이와쿠마의 신경전이 이어졌었다. 이와쿠마가 오릭스에 남기 싫어했던 것 과는 반대로, 오릭스는 처음에는 이와쿠마에 대한 보유 의지가 굉장히 강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라쿠텐에 보낼 생각이었으면 애초에 25인 우선 지명에 넣을 이유가 없었다. 처음에는 별로 심각성을 못 느꼈는지, 오릭스쪽은 연봉협상에서도 잘 쳐주겠다고 언플도 했으며, 합병후 오릭스 홈페이지에는 당연히 등번호 21번란을 만들어둘 정도였다. 당연하지만 서류상으로는 오릭스 보유선수이니... 하지만 연봉협상도 걷어차고 선수 등록용 사진찍기조차 거부하여, 오릭스 홈페이지의 이와쿠마 칸은 04년 해를 넘길때까지 Now Printing 상태로, 다른 선수들 사진이 다 채워질때까지 비어있었다(...).

결국 3개월넘게 줄다기리를 한 끝에 오릭스 구단측은 합병 후에 숫자 채우기로 새로 창단된 구단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즈에 현금 트레이드를 성사시킴으로 끝을 맺는다. 이와쿠마 본인도 매우 만족한 결과였다는 듯.

2.2.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시절

팀의 창단 첫 해인 2005년, 어깨 부상에 시달렸으나 팀내 투수진 중 유일하게 제대로 된 투수라는 점 때문에 몸에 무리가 오는 것을 알면서도 풀 시즌을 뛰며 9승 15패 평균자책점 4.99의 부진한 성적을 거둔다. 거기에다가 시즌 후에는 2006년부터 일본프로야구에 도입된 이중모션 금지로 투구폼까지 교정해야만 했다. 그 여파로 2006~2007년 동안 올린 승수는 단 6승. 그래도 라쿠텐의 첫 시즌인 2005년에 거둔 9승은 그 해 팀 승수의 약 1/4[4]에 해당하는 엄청난 비중으로, 그 해 라쿠텐 투수진 중에 최다승 투수였다. 그래서 이와쿠마가 등판해도 이기기 힘든것을 알면서도 팀 사정상 무리하게 등판해서 얻은 부상이라는 점 때문에 센다이의 팬들로부터는 비난보다는 안타까움이 더해져서 오히려 동정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2008년, 어깨와 허벅지 수술까지 마치고 이중모션투구까지 다 수정한 이와쿠마는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정도가 아니라 더욱 진화된 모습으로 등장했다. 결국 2008년에 대폭발한 이와쿠마는 21승 4패 평균자책점 1.87이라는 후덜덜한 성적으로 시즌 종료. 참고로 2008년 라쿠텐이 거둔 승수가 65승. 그러니까 혼자서 팀 승리의 1/3을 책임 진 셈이다(...). 더불어 퍼시픽 리그에서 21승을 달성한 것은 23년만의 일이라고 한다.[5] 선발 예고제가 시행된 요즘 21승을 기록한 것은 그야말로 괴물급 활약...

특히 2007년 사와무라상 수상자인 다르빗슈 유 투수와의 사와무라상 쟁탈전이 초유의 관심사였는데, 다르빗슈가 북경 올림픽에 가 있던 사이에 승수를 추월한 사실 등이 정상 참작되어 다르빗슈의 2년 연속 수상을 점친 사람들이 많았으나 결론은 투수 3관왕을 한 이와쿠마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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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WBC ALL-WORLD TEAM A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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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도 대표로 선발되어 결승 직전까지 한국전에서의 1실점 외에는 실점이 없었으나 저 1실점 때문에 평균자책점 0점대의 패전투수가 되었다. 안습(...) 결승전에도 선발로 등판하여 7⅓이닝 2실점으로 한국타선을 묶었지만 뒤이어 등판한 다르빗슈가 블론하는 바람에 승리를 건지지 못했다.

일본에서 뛸 때는 다르빗슈 유보다 뛰어나다는 평가가 있기도 했지만 08년의 이와쿠마 성적을 5년간 찍은게 다르빗슈 유다. 일본 현지에서도 다르빗슈 유에 대한 평가가 더 높고 적어도 메이저리그 성적을 제외한다면 두 투수는 비교 대상이 아니다.[6]

2.3. 실패로 끝난 포스팅 이적 시도

2010년 시즌을 마친 후,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했었고 그 결과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낙찰됐으나 협상은 결렬되었다. 이와쿠마의 에이전트가 재협상은 없을것이라고 선언하여 2011년에도 라쿠텐 잔류확정.

이적이 실패로 돌아간 이유는 오클랜드가 처음부터 이와쿠마에게 제시한 연봉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아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얘기도 있고 이와쿠마 본인이 오클랜드 구단을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미국 언론에서 이와쿠마가 배리 지토급의 연봉을 요구했다는 루머도 있었다. 정작 일본발 보도에선 이런 얘기가 없었고 오클랜드가 마지막까지 일본에 있었을 때의 연봉과 거의 차이가 없는 수준인 4년 $15M 정도의 오퍼를 고수했는데 이는 미국의 세율까지 감안하면 오히려 연봉이 삭감이 되는 셈이어서 1년에 최소 $8M 이상을 원한 이와쿠마가 강한 불만을 가졌다는 얘기가 있었다.

한편으로 오클랜드의 입장에서 보면, 머니볼의 마왕 빌리 빈포스팅 시스템의 구조를 교묘하게 악용하여 고춧가루 입찰에 성공했다는 음모론이 있다. 같은 시기 니시오카 츠요시에 대한 교섭권을 따낸 미네소타 트윈스 등을 포함하여 많은 팀들이 이와쿠마를 노리고 있었는데, 스몰마켓 팀인 오클랜드는 $16M이라는 굉장한 거금을 베팅한 것으로 알려졌다.[7]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일단 포스팅 시스템에서는 입찰가를 많이 적어내는 팀이 독점 교섭권을 얻는데 만약에 협상이 파토나면 입찰금은 전액 보전된다. 2010년에 일본에서 돌아와 대성공한 같은 서부지구의 텍사스 투수인 콜비 루이스의 사례를 보고 충격과 공포를 느낀 빌리 빈이 다른 팀을 [8]견제하기 위해 왕창 입찰금을 질러서 교섭권만 따놓고 정작 이와쿠마에게는 일본에서의 연봉과 비슷한 금액에 4년 노예계약을 제시하였다는 것. 당연히 이와쿠마는 거절할 수밖에.[9]

그리고 오클랜드는 이와쿠마가 당장 필요 없었다(!) 선발 로테이션에선 좌완 영건 브렛 앤더슨, 2010년 올스타 우완 트레버 케이힐[10], 깜짝 200이닝 + 평균자책점 3.23 + 15승을 찍은 좌완 유망주 지오 곤잘레스, 역사상 19번째 퍼펙트 게임을 이뤄내고 190이닝 이상을 소화하며 11승을 달성한 댈러스 브레이든이 버티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선발투수가 급한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빌리 빈이 이런 똥배짱을 부릴거라 예상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쓸만한 선발인 이와쿠마를 영입한다면 바로 타선보강 트레이드로 써버릴 것이라 예상했던 만큼 이와쿠마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불리하기만 한 이런 계약을 체결할 필요는 없었다. 1년 후면 FA라서 자기 맘대로 골라서 갈 수 있기도 하고.

하지만 오클랜드도 선발진 상황이 굳이 이와쿠마가 급히 필요가 없었다지만 빡빡한 재정에 최대한 줄 수 있는 돈을 제시한 건 분명하다. 그리고 중요한 건 다른 AL 서부팀들은 오클랜드의 포스팅 입찰가 1600만 달러보다 적게 입찰했거나 아예 입찰을 안 했으니 오클랜드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을 거라고 무조건 단정할 수도 없다.

$16M의 이적료를 고스란히 돌려주고 아무런 보상도 못받게 생긴 라쿠텐은 그냥 울자.

2.4. 시애틀 매리너스 시절

2011년 시즌 종료 이후 라쿠텐이 챙기는 포스팅비는 한푼도 없는 완전한 FA로서 MLB의 문을 다시 두드렸고, 작년에 오클랜드 에이스에게 가로막혔던 시애틀 매리너스가 1년간 150만불[11]의 계약을 제시하였고 이와쿠마도 이에 동의하여 입단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계약을 통해 일본프로야구 선수들의 몸값 거품이 많이 빠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이중모션이 MLB에서 다시 태클을 받을 수도 있어서 성공에 있어 위험요소라 할 수 있다는 평도 있었지...만 이 몸값은 매리너스 입장에서는 어차피 로또 비용이다.[12] 그리고 제대로 당첨되었다!!!

그러나 입단 시의 예상과는 달리 매리너스 스프링캠프가 진행되면서 헤수스 몬테로 트레이드로 온 헥터 노에시나, 마이너 계약한 케빈 밀우드 등과의 선발 경쟁에서 밀려나 2012시즌을 일단 불펜 롱릴리프로 시작하게 되었다.

2012년 시즌 초중반까진 빠른 볼 구속도 평속이 90마일을 겨우 넘기는 등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며 패전조에서 벗어나질 못했고, 결국 매리너스가 지른 로또는 역시 로또로 끝나는 모양새...로 보였다. 그러나 선발로 전환하기 시작한 7월부터 무섭게 반등하여 결국 시즌 최종 성적은 125⅓이닝 투구, 9승5패2세이브, ERA 3.16, 탈삼진 101을 기록했다. 그 중 선발로 등판한 16경기의 평균자책점은 2.65였다. 시애틀이 일찌감치 하위권으로 쳐져 주목을 못 받아서 그렇지 시즌 중반부터 선발로 전환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매우 준수한 성적. 이로써 일단 메이저리그에 대한 적응을 순조롭게 끝내고 풀타임 선발을 맡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2013시즌이 기대되었다. 팀에서도 그 점을 높이 사서 시즌 종료 후 2년간 $14M[13]이라는 여전히 매우 싸지만 그래도 전 보다는 대우를 받는 재계약을 체결했다.[14]

지난 대회에 이어 2013 WBC에 합류할 것을 요청받았지만 대표팀 합류를 고사했다. 일본 야구팬들은 지난 시즌 내내 부상으로 고생한 그를 이해한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었다. 2013시즌엔 완전히 메이저리그에 적응했음을 과시하듯 전반기까지 20경기동안 ERA 3.02 131⅓이닝을 소화하며 펠릭스 에르난데스와 더불어 팀 선발진의 쌍두마차로 맹활약했다. 이 때문에 다시금 과거 일본에 있었을 때처럼 다르빗슈가 더 낫냐, 이와쿠마가 더 낫냐 논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또한 올스타에도 선발되었으나, 올스타전 직전에 선발등판을 했기 때문에 규정상 출전하지는 못했다.

다만 전반기 활약에 대해 마냥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지 않는 이도 많았는데, 이는 전반기 동안 홈런을 21개를 맞으면서 제대로 된 홈런공장장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BABIP도 .235에 불과하고 잔루율도 높아서 전반기 FIP는 ERA에 비해 높은 3.87. 시즌 초만 해도 ERA가 1점대 ~ 2점대 초반에서 놀았으나 전반기 막판에 털렸다. 아무래도 어깨부상 전력으로 한계 투구수가 많지 않다보니 홈런을 맞을지언정 볼넷을 주지 않으려고 존에 쑤셔박는 투구를 했던 것이 원인이라는 분석. 하지만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키듯 후반기에 다시 반등하여 시즌이 끝났을 땐 14승 6패에 219.2 이닝 ERA 2.66 bWAR는 7.2로 메이저리그 투수 전체 1위라는 흠좀무한 성적을 올렸다.[15] 아메리칸리그 평균자책점 3위로 시즌 최종 등판을 마치고 나서 경쟁자였던 바톨로 콜론아니발 산체스의 마지막 등판의 결과에 따라서는 사상 최초로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획득한 아시아 출신 투수의 가능성까지 있었다. 결국은 평균자책점 타이틀은 아니발 산체스가 가져가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노모박찬호, 구로다도 하지 못한 2자리 승수 + 2점대 평균자책점 + 200이닝 소화[16] 아시아 투수 최초로 이루어 냈으며 무엇보다 이런 성적을 유지하면서 거의 220이닝을 소화에 냈다는 것도 놀랍다. 국내에서의 관심은 다르빗슈[17]에게 밀려 완전히 묻혀버렸다. 다만 FIP는 ERA보다 상당히 높게나와서 아이큐피쳐스러움을 과시했다. 시즌 종료 후 진행된 AL 사이영 상 득표에서 3위표 12개를 받는 등 선전하여, 사이영 상 최종 순위 3위를 기록했으며 MVP 투표에서도 20위내에 들었다. MLB 진출 당시의 회의적인 시선들을 생각해보면, 정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고 할 수 있다.

2014년에는 손 인대에 갑작스러운 염좌 증상이 생겨 시즌 초반부터 결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이는 일본에서도 겪었던 부상이라서 염려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한차례 마이너 등판을 거친 후 5월 3일 휴스턴전에서 복귀. 6과 2/3 이닝동안 4실점했지만 타선의 도움도 받으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5월 8일 로얄스와의 경기에서는 8이닝 무실점의 깔끔한 피칭으로 2승째를 수확했다. 5월14일 경기에선 8이닐 무실점을 했으나 내려가자마자 마무리가 2실점을 하는바람에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6월 5일 승을 거두면서 4승 2패 2.66을 기록.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특히 이닝당 평균 공 13개로 효율적인 피칭을 하고 있다.

한편, 시애틀 마리너스의 시즌 티겟 CM에 이와쿠마가 나왔는데, 내용이 상당히 약을 빨았다...

2014년에도 소리없이 강한 피칭을 보여주며 8월까지 12승 6패, ERA 2.57 을 기록하고 있다. 놀라운 점은 9이닝당 볼넷 허용률이 0.7이라는 경악스러운 수치로 메이져리그 전체 1위이다. (NL 1위 커쇼 1.2) ESPN에서는 '역대 아메리칸리그 투수중 단 2명만이 그보다 적은 단일 시즌 9이닝당 볼넷을 기록했는데 2005년 카를로스 실바(0.43개) 1904년 사이 영(0.69개)'이라며 이와쿠마의 위대함을 설명했다. 또한 이닝당 투구수 순위에서도 ML 전체 1위를 차지했는데, (1위. 이와쿠마 히사시 : 13.5 // 2위. 클레이튼 커쇼 : 13.6) 제구력면에서는 ML에서 손꼽히는 피쳐임이 분명해보인다. 다만 9월에는 페이스가 다소 흐트러지며 시즌 최종 성적은 15승 9패 ERA 3.52 로 시즌을 마감했다. 관심 못받는 투수치고는 상당히 준수한 성적으로 시즌 마감.

2015년에는 초반 3경기에 선발 등판해 16 1/3이닝을 던지며 0승 1패 평균자책점 6.61에 그쳤고, 허리부상을 당하며 전열에서 이탈했다. 7월 복귀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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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간 2015년 8월 13일, 볼티모어전에서 9이닝 3BB 7K로 노히터를 달성하였다. 아시아 출신으로는 노모 히데오에 이어 두번째의 기록이며(노모가 노히터를 2번 기록해 횟수로는 세번째) 랜디 존슨이 2004년 만 41세의 나이로 달성한 퍼팩트게임 이후 만 34세에 달성한 최고령 노히트경기였다. 또한 노히트 게임을 달성한 공으로 메이저리그 이주의 선수로서 선정되기도 했다.

시즌 후 FA 자격을 얻어 시애틀과 우선 협상하지만 뜻이 틀어져 갈라섰다. 이와쿠마 본인은 메이저리그 처음이자 마지막 FA 기회고, 시애틀은 하락세가 뚜렷한 이와쿠마를 장기 고액을 주면서까지 잡는 건 위험하다고 봤기에 나온 결과.

2015년 12월 7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는 FA로 떠난 잭 그레인키을 대신해 이와쿠마를 영입했다고 美언론에서 발표했다. 3년 4500만 달러 계약.# 이에 대해 시애틀의 신임 단장 제리 디포토는 우린 애초에 이와쿠마에게 3년 계약을 줄 생각이 없었다며 딱히 유감스러워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12월 17일 메디컬에서 탈락하면서 다저스와의 계약이 무효가 되자 다시 접근, 2017년과 2018년에 베스팅 옵션이 있는 단년 (1+2년) 재계약을 체결했다.[18]

2016 시즌에는 평균자책이 예전에 비해 좀 올라갔지만 꾸준히 로테이션을 지키고 있다. 한국시간으로 7월 17일 휴스턴전에서 7이닝 무실점으로 2년만에 10승을 기록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33경기 199이닝 16승 12패 평균자책점 4.12으로 자책점은 상당히 상승했지만 많은 이닝을 소화해주며 시애틀의 마운드를 책임지는 에이스 노릇을 했다. 이 해 시애틀에서 유일하게 규정이닝을 달성한 투수였으며[19] 계약에 따라1400만 달러의 베스팅 옵션도 자동으로 실행되었다.

지난 대회에 이어 2017 WBC에서 조국의 부름을 받았지만 시즌준비를 이유로 합류를 고사했다.

2017년에는 하지만 우려했던 부상이 다시 터지면서 5월 등판을 마지막으로 시즌 자체를 그대로 날리게 됐다. 시즌은 총 31이닝만 소화.

결국 2017 시즌 후에 1M을 받고 바이아웃으로 풀리게 됐다. 대신 시애틀은 10M의 배스팅 옵션을 시행하지 않는것과 별개로 마이너 계약을 제시했고 이와쿠마는 무리하지 않겠단 생각인지 이를 수용했다. 메이저 로스터 등록 시 2.5M을 받게되고 선발 등판 횟수에 따라 최대 6M을 받게 되는 최고금액 8.5M짜리 단년 계약이다. 이후 제리 디포토 단장의 발언에 따르면 2017년 9월 오른쪽 어깨 수술을 받아 2018년 6월달까진 공을 던지지 못한다고 했는데 아무리 하락세라도 마이너 계약을 제시받을 급이 아니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후 재활을 했지만 통증 재발로 8월 말이 돼서야 마이너에서 2경기에 등판했다. 그러나 현지 시각 2018년 9월 11일 일본 복귀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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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시애틀 측은 그간 공로를 인정해 9월 26일 경기 전 시구자로 초청했고 시포자로 스즈키 이치로가 나섰다.

그동안 시애틀에서 이와쿠마는 총 63승, BWAR 17.2, 3점대 초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으며 올스타는 물론이고 사이영 상 투표 TOP3에도 선정된것을 보듯이 적은 돈을 받고도 매우 가성비 좋은 활약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사사키 가즈히로-스즈키 이치로를 잇는 시애틀 일본인 혜자 계약 사례 중 하나가 되었다.

2.5. 일본 복귀

시애틀에서 풀린 이후 일본 복귀를 알렸고 오프시즌동안 팀을 알아본 끝에 12월 6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계약하며 일본 무대로 복귀했다.# 의외라면 의외고 아니라면 아닌 이 선택의 가장 큰 이유는 돈. 라쿠텐에 애정이 강한 선수라 친정팀행을 원했으나, 스몰마켓인 라쿠텐이 FA로 풀린 아사무라를 20억엔에 잡으며 이와쿠마까지 잡을 돈이 없었고, 차선책으로 택한 것이 고향인 도쿄 연고에 연봉도 맞춰줄 수 있는 교진이었던 것. #

정식 계약 이후 입단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 일본 무대로 복귀한 소감부터 오랜 친정팀이었던 라쿠텐이 아닌 요미우리를 선택한 배경 등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본인의 블로그에 밝히기로는 고향인 도쿄에서 야구를 하는 날이 오게될 줄은 몰랐다고 하며, 자신의 마음을 존중하고 결정을 기다려준 요미우리 구단에 감사를 표시했다. # ## 애초에 본인은 어릴때 노골적인 요미우리팬이기도 했다.

2.6.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안정적인것 같아 보이면서도 스가노 도모유키 빼고는 의외로 실속 없던 요미우리의 선발진을 채워 줄 것으로 기대 됐었다. 하라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힌바로는 포지션은 1선발 스가노 도모유키, 2선발 야마구치 슌에 이어 3선발정도를 생각했다던 듯.

그러나 수술 이후 거의 1년 반동안 실전을 치루지 못한 여파로 아직 몸이 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전지훈련은 1군에 포함되었으나 결국 개막 1군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코지친은 5~6월의 교류전정도에 올라와 주는게 베스트라고 하면서 기대감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몸상태를 보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실제로 전지훈련중에 불펜 투구도 거의 하지 않았고 일정 후반에 들어서야 30-40구정도로 가볍게 던지는정도밖에 하지 못했다고 한다.

2019년 5월 인터뷰를 보면 2군에서 몸을 만들고 있으며 시즌 중후반 복귀를 목표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즌 복귀후 대략 10번 정도의 선발등판이 있을 것으로 추측되었으나, 8월에 잠깐 2군에서 등판한 것 외에는 시즌 끝날때까지 별다른 소식 없이 흘러 보냈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1군 등판이 없는 시즌을 맞이했는데 몸 상태가 여전히 좋지 않은듯 보인다.

이 영향으로 무려 60%가 깎인 2천만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내년에는 꼭 1군에서 뛰고 싶다고는 하는데 아직도 재활치료중이라는 것을 보면 쉽지 않아 보인다.

3. 피칭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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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구인 스플리터맥도날드

일본투수 하면 생각나는 기교파 포크볼투수의 전형.

라쿠텐에서 에이스 노릇을 할 때는 패스트볼의 최고구속이 150km 초반대까지 나올 때도 있었지만, 2012년 시애틀 매리너스로 이적한 후에는 구속이 대부분 140km 초반대에서 형성된다. 대신 공끝이 지저분한 투심 패스트볼을 포심과 섞어 던지며 땅볼을 양산하고, 결정구로는 MLB에서 가장 낙폭이 큰 스플리터를 던져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하며, 커브를 간간히 던진다. 구종들의 구속은 느리지만 볼넷을 내주기보다는 홈런을 맞겠다는 각오로 스트라이크존에 공격적으로 공을 쑤셔넣기 때문에 MLB 통산 K/BB는 3.86개이지만 HR/9은 1.17개에 달한다.# MLB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찬가지로 투심과 스플리터로 타자들을 상대했던 선배 구로다 히로키와 유사한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신 구로다는 이와쿠마보다 구속도 더 빨랐고 홈런도 덜 맞았다.

공의 구위는 평범한 편이고 구속은 평범 이하지만, 컨트롤이 좋으며 포심뿐만 아니라 투심에 포크, 커브 등 다양한 변화구를 던질 수 있으며 무브먼트도 만만치 않고, 무엇보다 결정구인 포크볼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던 투수. 일본산 피네스 피처 하면 떠오르는 모습 그대로다. 또한 리그 환경의 차이도 이와쿠마의 호성적에 영향을 끼쳤는데, 포크볼 투수가 많았던 일본에서는 라이벌로 불렸던 다르빗슈 유에 비하면 확연히 차이가 나는 성적을 냈지만, 상대적으로 포크볼이 드문 변화구인 미국에서는 그 희소성을 무기로 다르빗슈와 거의 동급의 성적을 낼 수 있었다.

볼넷이 적으니 이닝당 투구수도 MLB 전체에서 손에 꼽을만큼 적어서 등판할 때마다 6~7이닝은 꾸준히 소화하는 편. 하지만 본인의 한계 투구수를 칼같이 지키다 보니 완투를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경기에서도 8이닝까지만 던지고 마운드에서 내려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다 보니 2015년 8월 13일에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상대로 달성한 이와쿠마의 커리어 첫번째 노히트 노런 경기가 그의 MLB 처음이자 마지막 완투경기였다.

4. 기타사항

4.1. 가족관계

일본 야구계에서 알아주는 딸내미바보, 이와쿠마의 미니홈피를 들어가보면 태반이 딸과 노는 사진이다. 실제로도 프로필에 취미가 딸과 함께 놀아주기.

4.2. 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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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뛰던 시절만 해도 다르빗슈와 비견될 정도로 미남이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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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만 안 열면 꽃미남이란 말이 이중적인 의미로 이만큼 어울릴 수가 없다.특히 막짤은 도박묵시록 카이지같다

요미우리 입단식때는 완전히 영락없는 아저씨로 외모가 망가지기 시작하면서 딸은 중딩입갤했다.

4.3. 불륜소동

평소 애처가에다 딸내미바보의 이미지로 알려져 있지만 2011년 11월 일본 주간지 <주간포스트>가 이와쿠마가 갈색 장발의 여인과 밀회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포착했다고 보도해 불륜 스캔들로 홍역을 치뤘다(...) 여기다 불륜의 저지른 상대가 처남댁이라는 보도까지 나온 상황.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처남댁은 아니었다고 한다.

“아내로부터 FA 선언”…이와쿠마 불륜 스캔들에 日열도 ‘발칵’약빨고 쓴 기사제목

그래도 어떻게 잘 넘겼는지 이혼까지는 가지 않았다. 2013년에 올스타 퍼레이드를 할 때, 가족 5인의 나름대로 화목해보이는 모습이 찍히기도 했다.

4.4. 일본 야구에 대한 시각

일본의 야구 시스템이나 문화, 선배들에 대해 직설적인 발언을 서슴치 않고 하는 다르빗슈 유 정도는 아니지만, 이와쿠마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 이후 완곡하게 일본의 야구 시스템과 훈련 방법에 대한 비판을 한 적이 있다. 링크 잘 읽어보면 알겠지만 표현이 완곡하고 본인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라고 말했을 뿐이지 일본 야구에 대해 상당한 비판을 하고 있다. 일본 야구 특유의 웨이트 트레이닝에 대한 거부감과 런닝 위주의 비과학적인 훈련, 선발 투수에게 한 경기 너무 많은 짐을 지우는 운영, 투수진과 야수진이 갈리며 나타나는 팀웍의 결여 등을 지적하고 있다.

5.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NPB)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탈삼진 WHIP ERA+ WAR
2001 긴테쓰 9 4 2 0 0 43.2 4.53 25 1.35 92 1.1
2002 23 8 7 0 0 141.1 3.69 131 1.23 97 4.0
2003 27 15 10 0 0 195.2 3.45 201 1.28 133 5.5
2004 21 15 2 0 0 158.2 3.01 123 1.13 161 5.4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탈삼진 WHIP ERA+ WAR
2005 라쿠텐 27 9 15 0 0 182.1 4.99 124 1.41 85 4.3
2006 6 1 2 0 0 38.2 3.72 16 1.42 101 0.3
2007 16 5 5 0 0 90 3.40 84 1.31 105 2.6
2008 28 21 4 0 0 201.2 1.87 159 0.98 213 8.3
2009 24 13 6 0 0 169 3.25 121 1.31 127 3.8
2010 28 10 9 0 0 201 2.82 153 1.10 145 6.0
2011 17 6 7 0 0 119 2.42 90 1.05 127 2.9
NPB 통산
(11시즌)
226 107 69 0 0 1541 3.25 1175 1.20 123 44.2
역대 기록(MLB)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탈삼진 WHIP ERA+ bWAR
2012 SEA 30 9 5 2 0 125.1 3.16 101 1.28 121 2.0
2013 33 14 6 0 0 219.2 2.66 185 1.01 138 7.0
2014 28 15 9 0 0 179 3.52 154 1.05 103 2.5
2015 20 9 5 0 0 129.2 3.54 111 1.06 108 2.4
2016 33 16 12 0 0 199 4.12 147 1.33 98 2.6
2017 6 0 2 0 0 31 4.35 16 1.26 99 0.3
MLB 통산
(6시즌)
150 63 39 0 0 883.2 3.42 714 1.14 112 16.8

[1] 남은 2명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소속의 콘도 카즈키와 사카구치 토모타카. 이와쿠마가 2019년 요미우리로 가면서 셋이 센트럴리그에서 만나게되었다...[2] 상술한 콘도와 사카구치는 각각 2001, 2002년에 드래프트되어 2001년 시즌을 경험하지 못했다. 2015~16년에는 또다른 01년 경험자인 터피 로즈베이스볼 챌린지 리그의 토야마 GRN 선더버즈에서 현역 복귀했으나 현재는 다시 선수 생활을 그만둔 상태.[3] 그리고 이 2차전이 킨테츠가 마지막으로 승리한 일본시리즈 경기이자 킨테츠의 홈구장에서 열린 마지막 일본시리즈 경기였다.[4] 저 해 라쿠텐의 승수가 38승이었다! 승률은 당연히 2할대 중후반. 백인천 시절 롯데와 승률이 비슷했을 지경.[5] 1985년 한큐 브레이브스사토 요시노리가 21승을 찍은 바 있다.[6] 단, 커맨드에 관해선 이와쿠마를 더 높이 쳐주는 경우가 많다.[7] 참고로 브렛 앤더슨이 오클랜드와 4년간 $12.5M에 사인했다.[8] 특히 시애틀을 비롯한 AL 서부지구 팀들.[9] 생활비, 통역비, 일본과 비교도 안되는 이동거리와 빡빡한 일정 등 메이저리그로 간 일본 투수들에겐 여러 제약이 따르는데, 이런 것을 견뎌내려면 일단 페이가 빵빵해야 하는 법이거늘 빌리 빈은 일본에서 받는 연간 3억엔의 금액과 비슷하고 오히려 기간만 왕창 긴 4년 $15.5M의 노예계약을 제시하시었다(...)[10] 데이빗 데헤수스 트레이드에서 로열스로 간 빈 마자로와 함께 2000년대 중반 빌리 빈의''' 고딩 드래프트의 성공작이다.[11] 성적에 따라 $3.4M으로 인센티브가 추가될 수 있다.[12] 준수한 3~4선발급 선수들의 몸값이 못해도 연간 $5M을 호가하는 것을 생각하면...[13] 2013년 $6.5M, 2014년 $6.5M, 2015년 클럽 옵션 $7M, 바이아웃 $1M[14] 보통 5선발급 투수가 이정도 계약을 받는다.[15] 당연히 역대 아시아 투수 중 단일 시즌 bWAR 1위[16] 아쉽게 200 탈삼진은 달성하지 못했다.(다만 같은해에 다르빗슈가 이를 전부 달성해 냈다)[17] 같은해에 다르빗슈도 13승 ERA 2.83, 209.2이닝, 277탈삼진으로 양대리그에서 압도적 최다 탈삼진을 기록했다.[18] 결과적으로 이 당시 다저스는 포기 당시에는 욕을 좀 먹었지만 현 시점에선 1라운드 픽의 손실을 막고 그 픽으로 지명한 유망주를 쏠쏠하게 잘 키웠다. 이 픽으로 지명한 선수가 가빈 럭스.[19]펠릭스 에르난데스 규정이닝을 소화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