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3 21:21:42

고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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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삼성 블루윙즈 20주년 베스트 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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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삼성 블루윙즈 20주년 레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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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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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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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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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 S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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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2264a><colcolor=#ffffff> 이름 고종수
高宗秀 | Ko Jongsu
출생 1978년 10월 30일[1] ([age(1978-10-30)]세)
전라남도 여수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75cm
직업 축구 선수 (미드필더[2] / 은퇴)
축구 감독
축구 경영인
소속 <colbgcolor=#02264a><colcolor=#ffffff> 선수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6~2004)
교토 퍼플 상가 (2003 / 임대)
전남 드래곤즈 (2005)
대전 시티즌 (2007~2008)
감독 매탄고등학교 (2011 / 코치)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1~2012 / 트레이너)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3~2017 / 코치)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7 / 스카우트)
대전 시티즌 (2018~2019)[3]
기타 KH 스포츠 (2021~ / 부사장)
국가대표 38경기 6골 (대한민국 / 1997~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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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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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2264a><colcolor=#ffffff> 학력 여수서초등학교
여수구봉중학교
금호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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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경력3. 플레이 스타일 및 평가4. 기록
4.1. 선수
4.1.1. 대회 기록4.1.2. 개인 기록4.1.3. 개인 수상
4.2. 국가대표
5. 고종수에 대한 말, 말, 말6. 출연작7. 좆레머니(?)8. 악성 루머9. 논란10. 여담11.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파일:IE002250732_STD.jpg

대한민국축구 선수 출신 감독, 기업인으로 현재는 KH스포츠의 부사장직을 맡고 있다.

선수 시절 축구 천재로 불릴만큼 대한민국 축구를 이끌어 갈 인재로 평가받았었으나 부상과 언론, 각종 악성 루머 등으로 고생한 비운의 축구천재로도 유명하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 김호의 아이들의 일원으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나 선수 생활의 말년을 보냈던 대전 시티즌에서는 후술할 선수단 무단 이탈 등의 사건 사고들로 대전 구단과 불협화음을 내다가 결국 무책임하게 도망치듯이 은퇴를 하면서 선수로서의 마무리를 안 좋게 끝냈다.

이후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코치를 거쳐 2018년 대전 시티즌 감독으로 부임하였는데, 과거 선수 시절 안 좋은 사건과 그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로 팬들의 반발을 샀지만 이후 감독으로서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준수한 성과를 거두면서 자신에 대한 좋지 않은 여론을 어느 정도 잠재웠다.[4]

그러나 2019년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됨과 동시에 성적까지 계속 부진하여 결국 경질을 피할 수 없게 되면서 과거 선수 시절과 마찬가지로 지도자로서도 결국 대전 시티즌에서 불명예 퇴진하게 되고, 축구인으로서 이미지가 망가진 것은 물론 범죄자라는 오명까지 쓰게 되었다.

2. 경력

2.1. 선수 경력

파일:수원삼성_고종수.jpg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고종수/선수 경력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2.2. 지도자 경력

파일:20181010124745890181.jpg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고종수/지도자 경력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2.3. 경영인 경력

파일:2022022401001127300082621.jpg

2022년 신생팀 K4리그 고양 KH FC의 운영주체인 KH스포츠의 부사장으로 부임하며 경영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5]

3. 플레이 스타일 및 평가



파일:external/blogfiles.naver.net/IYT789.gif

한때 K리그에서 '아크 정면'의 '고종수 존'이 있을 정도로 고종수의 왼발 프리킥은 국내 최고 수준이었으며링크, 경기를 읽는 시야가 좋아서 중앙에서 투톱 공격수들에게 공을 배달해 주는 능력이 좋았다.# 지금도 K리그 팬들은 '아크 정면' 위치를 '고종수 존'이라고 부를 정도다. 한 때 고-- 트리오는 국내를 넘어서 전 아시아 최강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었을 정도로 무서운 팀이었다.


특히 2000년에 열린 2002 한일 월드컵 성공기원 한일 올스타와 세계 올스타의 친선경기에서 칠라베르트를 상대로 프리킥 골을 넣은건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은퇴한 지 2년이 지난 2011년에도, 고종수와 같이 왼발을 매우 잘 쓰는 염기훈과 코치 대 현역 선수로 프리킥 대결을 했는데 고종수가 10번을 차서 5번을 넣고 5:2로 이겼을 정도다.

다른 테크니션들과 비교해보면 선배 테크니션 최문식윤정환, 후배 이관우보다는, 어디까지나 그들보다는 신체적으로 강인했고 몸싸움을 피하지 않는 성향이었다. 또한 패스와 조율이 제1옵션이었던 윤정환, 이관우와 달리 적극적으로 슈팅을 가져가며 득점에 주력하고, 패스와 조율은 그 다음이었다. 거칠게 요약하면 최문식에 비하면 기술, 윤정환에 비하면 패스를 좀 뺀 다음에 경합 능력과 슈팅을 더한 선수였다. 이런 면에서 일반적인 플레이 메이커는 아니었다. 하지만 히딩크가 자서전에서 지적했듯이 활동량이나 수비가담이 많은 선수는 아니었고, 공미로 쓰자니 스태미너와 경합 능력이 어디까지나 최문식, 윤정환, 이관우들보다 나을 뿐[6] 유상철처럼 유럽 선수들과 대등하게 맞대결이 가능한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 점은 설사 부상을 안당했더라도 홍명보를 데려와 빌드업을 맡기고, 중원은 유상철과 김남일로 완성한 히딩크호[7]에서 과연 계속 중용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점을 던져준다.

다만, 이에 대해 반론도 있다. 당시 히딩크호의 가장 큰 문제는 플레이메이커의 부재와 확실한 득점원의 부재였다. 히딩크가 부임한 후 10개월간 펼쳐진 17차례의 평가전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는 3골을 넣은 고종수와 유상철이었고 최용수와 김도훈이 2골을 기록했다. 그만큼 대표팀에서 고종수는 주요 득점 선수로 각광을 받았고 히딩크 역시 적극 활용하던 선수였다.

히딩크는 대표팀 첫 평가전부터 고종수를 가장 눈여겨보았고 무엇보다 다양한 포지션에 고종수를 실험해 스트라이커로 배치해 보기도 했다. 전원 공격 전원 수비를 지향하는 '토털 축구'를 대표팀 스타일로 정착시키고 있던 히딩크는 체력적으로 부족했던 고종수에게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고종수가 가진 재능과 파괴력을 선호하며 계속 중용하게 된다. 반면에 고종수 대신 뽑힌 윤정환의 경우 당시 언론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 패스에 강점이 있었을 뿐 고종수보다 모든 면에서 저평가 받았고 히딩크호에 배제되던 선수 중 하나였다. 그러던 와중에 고종수가 십자인대 부상으로 낙마하자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할만한 선수를 찾던 중 '그럼 윤정환이라도 써보면 어떨까'라는 여론이 형성되며 뒤늦게 엔트리 후보에 들게 됐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듯 애초에 히딩크가 중용하던 고종수였기에 대타로 뽑힌 윤정환이 월드컵 본선에서 1경기도 못 뛰었다고 고종수도 본선에서 못 뛰었을 것이다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세트 플레이를 비롯한 전술적인 히든 카드로 어떻게든 써먹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또한 고종수에 대해 측면에서 활약을 하지 못하고 경합 능력이 떨어진다는 오해가 있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히딩크가 추구하던 수비 가담을 하기에 체력적인 부족이 지적받았을 뿐이지 당시 국가대표 경기를 본 사람은 알 수 있듯 고종수의 활약은 분명 발군이었다. 고종수 본인이 중앙을 선호하고 히딩크에게도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써달라 말하기도 했지만 소속 팀이나 대표팀에서 측면을 돌파하며 크로스를 올리거나 위협적인 슈팅을 날리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 선수였다. 히딩크 역시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왼쪽 윙 자리에 고종수를 점찍어 놓고 오른쪽 윙을 누구로 쓸지 고민하여 2001년의 경우 한동안 고종수는 소속팀 경기에 매진하도록 엔트리에서 제외하고 오른쪽 윙 자리를 소화할 수 있는 자원을 테스트하던 시기도 있었다. 여담으로 이 기간에 오른쪽 윙으로 좋은 평가를 받던 선수가 설기현으로 히딩크도 좌우 윙 어디에서도 활약할 인재라는 만족감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경합 능력 역시 떨어지는 편은 아니었는데 애초에 경합능력이 떨어지면 '파괴력 있다'라는 평가를 받지 못한다. 특히 피지컬적인 능력이 플레이메이커에게 필수 조건이 아니기도 하지만 충분한 경합 능력을 평가전마다 보여주었고 몸싸움에서 픽픽 쓰러지던 선수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에겐 늘 그라운드의 악동, 풍운아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고, 자유분방한 발언과 행동으로 구설에 오르기 일쑤였다. 선수 시절 그는 외부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인터뷰할 때도 솔직하게 다 말하던 성향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행동이 후회된다며 조금만 성질을 죽였으면 선수 생활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자조섞인 심경도 털어놓을 정도다.

그리고 스무살이 되기도 전인 어린 나이부터 너무 빠르게 스타가 되었고, 축구 선수임에도 이례적으로 방송 출연을 많이 하며 연예인들과 노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인터뷰에서도 그때 방송 출연을 많이 했던 이유로 프로선수로서 자신의 상품성을 높이고 싶어서였다는데, 2001년 부상으로 인해 갑작스레 몰락하는 모습에서 축구 선수로서 기본기와 내실을 다지는데 소홀히 하고 인기에 물들여져 겉멋과 외적인 부분에만 치중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가 몰락할 때에는 잘 나갈 때 친한 척하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그를 잡아줄 만한 사람이 없어서 방황의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후문도 있다.

하지만 2001년 십자인대 파열 부상이 있기 전 고종수는 리그에서 가장 많은 경기수를 소화하던 선수였다. 특히 히딩크 호의 황태자로 불리며 컨페더레이션스컵 전경기 출장 중이었고, 고종수의 소속팀이던 수원 선수들은(고종수 포함) 아시아 클럽 대항전 출전으로 타 팀 대비 7경기 이상 더 출전하던 상황이었다. 대략 그 당시 고종수 선수의 국대 및 소속팀 경기수를 취합해본 결과 타 국가대표 선수들에 비해 10경기 이상은 더 뛴 시즌이었다. 이정도 경기수를 과연 게으른 훈련량으로 가능 했을까? 그에 대한 상당한 오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프리킥 능력이 향상 된 것도 후배 골키퍼의 훈련을 도와주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은사 김호 감독이나 안정환이 대놓고 언급했을 정도니 자기 관리에 문제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고 20대 중반에 당한 무릎 연골 부상 이후의 행보는 분명히 자기 관리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고종수의 자기 관리가 문제없었다는 주장은 지나친 팬심이다. 다만 한창 잘나가던 그의 부상 자체는 훈련량과 상관 없었다. 그의 주 부상 부위는 왼쪽 무릎 연골 부상으로 고종수 선수 커리어 끝까지 고질적으로 괴롭혔던 부위인데 무릎 연골 부상은 훈련량이 많고 적고와는 큰 상관이 없으며, 2001년의 게임 수는 체력 훈련을 게을리 한 선수가 뛸 수 있는 경기 수가 아니었다.

본래 잘 놀긴 했으나 할건 하고 노는 선수였는데 가장 실력이 물 올랐을 때 불시에 들이닥친 무릎 십자인대 부상, 그 무릎 십자인대 파열 이후 몸이 완전히 올라오기 전 일본 진출, 일본 진출 이후 핌 베어벡과의 불화라는 악재가 겹치는 가운데 사생활과 선수생활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나락에 떨어졌다는게 정확한 분석이다.

사실 그의 잦은 TV 출연이나 자유분방한 인터뷰 자체가 커리어를 망쳤다고는 볼 수 없다. 은퇴한지 한참 지난 시점임에도 사람들이 그를 잊지 못하는 것은 안정환과 마찬가지로 역시 전파를 탔기 때문이다. 또한 수많은 종목의 스타들은 CF나 TV 프로에 출연하는 일이 흔하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스포츠스타를 운동기계로 취급하고 연애 결혼 휴식시간의 간단한 오락, 비시즌 기간 방송 출연 등을 악플의 명분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미디어에서 특정 스포츠가 등장, 대두될 때는 본래 그 곳에서 마스코트 역할을 했던 선수가 존재했고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외유를 한 경우가 많다. 고종수의 문제점은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바깥으로 새어버렸다는 점이다. 어차피 프로 선수가 잘하면 미디어에 노출 될 수 밖에 없다. 프로이기 때문에 팬의 관심을 끌고 기사거리를 제공하는건 오히려 의무에 가까운 일이다. 되는 사람은 뭘 해도 된다. 똑같이 전파를 탄 안정환도 페루자 이적 사건으로 클럽 경력이 완전히 꼬인거지, 방송 타서 포텐을 망가트리진 않았다. 또 이동국 역시 방송을 타면서 현역 생활을 했지만 은퇴 전까지 좋은 모습을 유지했다. 또 아무리 방송 안타고 묵묵히 훈련만 하는 선수라고 해도 부상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4. 기록

4.1. 선수

4.1.1. 대회 기록

4.1.2. 개인 기록

4.1.3. 개인 수상

  • 1994년 백록기 축구대회 올해의 선수
  • 1997년 아디다스컵 어시스트왕 수상
  • 1998년 스포츠서울 최고의 인기선수상 수상
  • 1998년 K리그 MVP 수상
  • 1998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 1999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 2000년 아디다스 컵 득점왕 수상
  • 2000년 험멜-스투 인기상 수상
  • 2001년 AFC 선정 '2월의 골'
  • 2001년 AFC 선정 '3월의 선수'
  • 2005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창단 10주년 역대 베스트 11
  • 2007년 윈저어워즈 올해의 재기상 수상
  • 2015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창단 20주년 역대 베스트 11
  • 2015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창단 20주년 레전드 10인

4.2. 국가대표

연령 출전
U-17 0 0
U-20 0 0
U-23 10 2
A대표 38 6
종합 48 8

5. 고종수에 대한 말, 말, 말

한국팀에서 유일하게 브라질식 플레이를 하는 선수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멕시코전 이후 프랑스 언론 평가
고종수처럼만 해라. 고종수처럼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가 되어야 대표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거스 히딩크, 2002년 한일 월드컵 준비 당시 대표팀 선수들에게 당부할 이야기를 묻는 언론 인터뷰에 대한 답
놀라운 개인기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선수
거스 히딩크, 2002년 한일 월드컵 최종 엔트리 발표 당시 부상으로 탈락한 고종수 관련 인터뷰
"나는 고종수를 무척 좋아했다. 그의 프리킥은 한국 선수들 가운데서 가장 탁월하다. 하지만 축구는 발 재간 하나만으로 하는 게 아니다. 공격도 해야 하고 수비도 해야 한다. 체력도 있어야 한다. 스타 플레이어는 운동장 밖이 아닌 그라운드 안에서 그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나는 고종수에게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하려면 자신에게 투자하라고 여러 차례 당부했다. 하지만 고종수는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도 내 기대에 못 미쳤고, 그러다 부상이라는 불운을 겪었다."
거스 히딩크, 자서전 마이웨이 223P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천재.
일본 축구전문지 사커 다이제스트.
국가대표 팀에는 예상하지 못한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창조적인 선수가 필요하다.
차범근,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 명단에 고종수 발탁 관련 인터뷰에서.
"고종수는 어린 나이에 안정환이동국과 K리그에서 트리오를 이루면서 K리그를 이끌어 나간 선수였다. 안정환과 이동국은 K리그에서 자리를 잘 잡았는데 고종수는 그렇지 못했다. 고종수를 보면 안타까운 심정이다."
김병지
"지금은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코치로 있지만, 이 분은 (고종수는) 지금 시대에 태어났어야 한다. 너무 일찍 태어났다. 그로 인해 사람들의 선입관과 색안경 속에서 생활했다. 만약에, 종수 형이 지금 시대에 축구선수로 활약했다면 스페인의 이승우는 명함도 못 내민다. 왼발 하나로 모든 걸 끝낼 수 있는 선수였다. 이런 선수를 ‘축구천재’라고 불러야 한다."
이동국[15]
"고종수는 정말 천재 선수였다. 축구 아이큐가 200은 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축구를 위해 타고난 것처럼 열정적이었고, 축구를 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가끔 엉뚱한 짓을 해서 문제가 됐는데, 그래도 축구 훈련과 경기에는 지장을 주지 않았다. 다만 축구장 밖에서 친구를 잘못 사귄 것 때문에 더 큰 선수가 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종수는 천부적 재질을 가졌어. 그런데 절제하는 면이 부족했지. 사춘기 때는 무조건 튀려고 했다고. 물론 스타플레이어의 기질이 있었기에 조금만 변화했다면 더 큰 선수로 성장했을 거야.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돈과 인기가 많아져 힘든 삶을 산 게 아닌가 싶어. 선수 때의 그 같은 경험이 지도자 생활하는 데 큰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
김호
"평소에 훌륭한 기량을 갖춘 선수라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다. 고종수는 좋은 선수다. 창조력이 뛰어난 선수이며 K리그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선수이다."
셰놀 귀네슈, 2007년 대전과의 경기 후 언론사 인터뷰에서.

6. 출연작

  • 홍경민 - 내 남은 사랑을 위해
  • MBC 남자 셋 여자 셋



1998년 가수 홍경민의 2집 타이틀곡 '내게 남은 사랑을 위해'의 뮤직비디오에 주연으로 전격 캐스팅 된다. 가수 조성모를 필두로 엄청난 붐이 일기 시작한 드라마 타이즈 뮤직비디오에 이례적으로 인기 축구스타가 주연으로 캐스팅 된 것이 엄청난 화제가 되며, 무명이었던 가수 홍경민의 인지도도 함께 올라가게 된다.[16] 이에 질세라 그 다음해인 1999년에 안정환이 록그룹 야다의 데뷔곡 '이미 슬픈 사랑'의 뮤직비디오에 주연으로 출연한다. 하지만 고종수의 뮤직비디오 캐스팅은 축구선수로서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게, 안정환의 경우 수려한 외모 덕분에 주연이긴 해도 뮤직비디오에서 가공된 캐릭터로 일반적인 배우의 조건 하에 캐스팅 된 것이지만, 고종수의 경우 단순히 주연 캐스팅을 넘어서 당대 최고의 축구스타인 고종수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뮤직비디오 각본까지도 만들어 지는 등 사실상 축구선수 고종수를 위한 뮤직비디오였다고 봐도 된다. 그만큼 고종수가 당시에 축구선수로서는 전국구급으로 정말 잘 나갔다.

뮤직비디오 외에도 당시 인기 시트콤이었던 MBC 남자셋 여자셋"떳다! 고종수" 에피소드에서는 실제 고종수 선수 본인 역으로 출연해서, 우희진에게 홀딱 반해 신동엽을 똥줄타게 만드는 스토리로도 출연한 적이 있다. 친구인 소지섭이 이를 알고 "쟤(우희진) 남자친구 있다"며 포기하라고 만류하자 고종수가 하는 대사는 "야, 괜찮아.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냐?"였다.[17]

7. 좆레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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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고종수가 세레머니를 펼치다가 쥐가 난 탓에 은퇴한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데, 그건 결코 사실이 아니고 그저 타이밍이 절묘했을 뿐이며, 2019년 대전 시티즌 출정식에서 고종수는 절대 이 세레머니 탓에 은퇴한 것이 아니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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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움짤은 온라인 상에서 좆레머니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8년 뒤 구자철이 만들어낸 좆레머니 2탄이 나왔다. 11년 뒤 대전 시티즌에서 박인혁이 만들어닌 좆레머니 3탄도 나왔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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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각종 합성 사진을 비롯해서 수많은 고종수의 좆레머니 짤들이 생겨졌다.

이 짤이 워낙 유명했어서 그런지 고종수 감독은 대전 시티즌 감독을 맡은 뒤 출정식에서 팀이 승격하면 이 세레모니를 다시 보여주겠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8. 악성 루머

오랫동안 고종수는 악성 루머와 헛소문으로 고생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리니지설이 있다[19]. 리니지에 빠져 훈련을 게을리하고 연봉도 아덴으로 달라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는 부상으로 쉴 때 동료 선수가 한번 해보라고 권해서 몇번 한 게 다였는데 기자들의 왜곡을 거쳐 오랫동안 그의 이미지를 좀 먹었다. 말도 안되는 것인데 이걸 같이 퍼뜨린 누리꾼들도 공범이다. 그래서 고종수는 "연봉을 아덴으로 받으면 나는 뭘 먹고 살겠냐?"라면서 굉장히 억울해했다. 현실적으로, 아무리 부상을 당했어도 프로 스포츠 선수들의 스케쥴은 비시즌이라고 해도 늘상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온라인 게임만 붙잡고 있을 수는 없다.

여담으로, 이거 말고도 은퇴한 뒤 이야기한 걸 봐도 갑자기 경기장에 나타나 처음 보는데 반말까던 사람이 나 기자인데 재수없게 잘 부탁한다느니 시건방 떨면서 잘 해보자구 이래서 "저 알아요? 반말부터 하시고." 이랬더니 다음 날 그 기자가 아무개 신문 1면기사로 "고종수 나에게 반말하지 마라, 건방진 뭐시기"라고 왜곡으로 갈겨대서 기자보면 패고 싶은 마음을 참아야 했다고 회상했을 지경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악동" 이미지가 고착화되고 그 때문에 고종수 이름이 신문에 뜨기만 하면 대중들에겐 고종수가 또 사고쳤겠거니 정도로 인식되곤 했다. 대표적인 것이 가수 조성모와 술자리에서 시비가 붙었다는 사건 기사# 그런데 기사 내용상으로 먼저 욕설을 한 것도 먼저 주먹을 휘두른 것도 조성모였고 고종수는 일이 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금방 자리를 떴을 뿐인데 욕은 고종수가 다 먹었다. 하필이면 기나긴 재활과 슬럼프를 반복하던 기간이다 보니 "축구 선수가 경기는 안 뛰고 술만 마시냐" 라고 더 까인 것도 있었다.

다만 이 사건에 대해 2007년 이영미 기자와 했던 한 인터뷰에서 고종수가 직접 밝히기를, 본인은 술 한 잔도 안 마신 상태에서 술을 좀 마신 상태의 조성모랑 인사를 나눴는데 아는 형이 둘이 나이가 같으니까 친구 먹으라고 해서 친구하자며 반갑다고 주먹으로 퉁퉁 치고 약간의 장난기 있는 액션을 취한 것 뿐인데 다음날 스포츠 신문 1면에 '고종수, 조성모랑 난투극' 운운하는 기사가 뜬 거라고 황당하고 "왜 기자들은 자기한테만 이럴까?"하는 생각에 정말 많이 서러웠다면서 상황을 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기레기의 농간임을 주장했다.

애초에 시비가 붙어서 주먹다짐을 했다던 기사 내용도 진짜인지 소설인지는 모르겠지만 구체적인 대화 내용과 상황 설명이 꽤 디테일하게 나와있다보니 정확한 진실은 당사자와 당시 함께 있었던 목격자들만이 안다. 조성모가 당시 최고의 인기 스타였고 직접 싸웠다는 증언이 없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기레기가 헛소문을 퍼뜨린 것이라 사실이 아닌 듯 하다.

9.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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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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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년 1월 28일, 튀르키예 안탈리아에서 열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몰도바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관중석에 앉아 있는 장면이 중계에 포착되었는데,[20] 해설위원이었던 이영표가 '하마터면 종수라고 부를 뻔했다. 친한 친구이기도 한 고종수 감독이 새롭게 부임한 대전의 축구가 궁금하다”라고 말하였으며, # 또 같이 중계하고 있었던 이재후 캐스터는 대전 팬들이 고종수 감독에 대한 밝히기도 했다.
  • 1997년 과학소년이란 잡지에 '2002 월드컵을 노리는 복제인간'이란 만화가 실린 적이 있었는데[21] 고종수를 모티브로 한 고정수란 인물이 등장한다.[22] 작중에서 묘사는 그야말로 2010년대의 리오넬 메시 또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급의 실력을 갖춘 선수. 2002 월드컵에서 한국팀을 우승시킨다.
  • K리그 중흥기 트로이카 중 안정환, 이동국은 성공적인 방송 예능 생활을 보내고 있었던거에 반해, 오히려 선수 시절 가장 방송계와 가까웠던 고종수가 현재는 본업인 축구에 전념하고 있다는 것이 약간 아이러니한데, 이는 지도자의 무게감을 지키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대전 시티즌 감독으로 선임되었을 당시 P급 라이센스를 취득하지는 않았지만, 대한축구협회 1급 자격증을 취득했기 때문에 대전 감독을 맡는데는 지장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2019년부터는 P급 라이센스가 있어야만 프로팀 감독을 맡을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뀐다고 한다.[23]
  • 2018년 11월 24일, 의외로 상당히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다.
  • 2019년 출정식에서 만일 대전 시티즌이 리그 우승을 하거나 승격을 하거나 선수 시절 전설의 세레머니와 덤블링을 펼치겠다고 했었다.#
  • 대전 시티즌 감독을 맡으면서 정장을 입고 나온 적이 한번도 없었으며, 언제나 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경기를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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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관련 문서



[1] 이 나이는 호적상 또는 축구상 나이라는 말이 있다. 77년생인 이영표가 대표팀에서 처음으로 고종수를 맞닥뜨렸을 때 후배인 줄 알고 바로 말을 놨다가 포크를 맞을 뻔 했던 유명한 일화가 있었고, 예전 금호고 출신 사람들의 의하면 실제 나이는 77년생이라는 말도 있고 76년생이라는 말이 있기도 하였는데, 일단 빠른 76년생인 안정환한테는 확실히 형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5월 28일 따봉월드컵에서 이 얘기가 잠시 나왔었는데, 76년생이었던 조우종이 고종수가 자신보다 형인 줄 알았다며 당시 출연자였던 김남일에게 밝히기를 정작 77년생인 김남일은 고종수가 이때까지 79년생인 걸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2]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3] 시즌 도중 경질.[4] 하지만 성적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데, 당시 대전이 1부 리그에서 2위를 거둔 경남이나 FA컵에서 우승한 대구 같은 왠만한 1부 리그 시민 구단들보다도 더 예산이 많았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주관적으로 따지면 대전이 2018시즌 2부 리그에서 4위를 차지한 게 결코 잘한 게 아니라는 주장 역시 상당하다.[5] 처음에는 그저 동명이인인 다른 사람인 걸로 알려졌다가 김현회 기자가 진짜 고종수가 부사장을 맡고 있다고 밝히며 알려졌다.[6] 참고로 최문식과 윤정환 모두 90년대 K리그에서조차 탈압박이 안돼서 고생했던 선수들이다.[7] 월드컵에서 단 한 경기도 못뛴 윤정환이 따지고보면 고종수 대타였다.[8] 준우승: 1996[9] 준우승: 1996[10] 당시는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이었다[11] 나이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공식 기록 상 최연소 기록으로 등재되어 있다.[12] K리그 역대 최단 경기 가입 3위: 88경기[13] 2021년 기준 K리그 역대 최단 경기 가입 4위에 해당하지만 2부 리그가 생긴 이후 통산 기록에 2부 리그 기록까지 포함시키거나 여타 기록에 컵 대회 기록의 포함 유무가 뒤죽박죽이라 논란이 되고 있다.[14] K리그 최장거리 골 역대 5위[15] 특히, 이동국과 고종수는 같은 시기에 K리그에서 함께 경쟁을 했던 사이였기에 더욱이 큰 의미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16] 참고로 1998년 당시 MBC 드라마 해바라기에서 삭발투혼으로 열연하며 각광받던 신예 탤런트 김정은이 고종수의 오랜 여자친구 역으로 나온다.[17] 결국 에피스도 결말은 고종수 키커와 신동엽 골키퍼의 승부차기 대결이었다. 하나라도 막아내면 고종수가 깨끗이 물러나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승부차기로 난타당하던 중 우희진이 오고, 둘 사이의 사랑이 진심임을 알게 된 고종수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일부러 공을 허공으로 높이 차 노골시켜버린다. 나름 간지나던 결말이었다.[18] 2021년엔 김민우도 이 대열에 동참한다.[19] 종목은 다르지만 이걸로 피해본 사람이 있다. 김동주. 특히 본인은 안하는데 왜 자꾸 나랑 리니지를 엮냐고 억울하다고 토로 했는데 그걸 본 어떤 용자가 궁금해서 조회했는데 결과는 없었다고 한다.[20] 이 당시 대전 시티즌도 튀르키예 안탈리아에서 전지 훈련을 하고 있었다.[21] 독일이 복제기술로 히틀러를 부활시킨 다음 펠레, 마라도나, 베켄바우어, 크루이프 등의 유전자를 섞어 베를린이란 이름의 공격수와 보탄이란 이름의 수비수를 만들어 월드컵 제패를 노린다는 내용이다. 이 사실을 한국 어린이 신문기자가 밝혀내어 베를린과 보탄은 체포되고 복제인간 연구소는 폭파된다. 개연성 같은건 없으니 묻지말자.[22] 물론 선배인 고정운의 설정도 섞여 있다.[23] 최문식이영익은 P급 라이센스가 있었음에도 부진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