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0 17:25:34

데니스(축구)

데니스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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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삼성 블루윙즈 10주년 베스트 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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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리타스 클로라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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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락티오노프
Дени́с Лактио́нов | Denis Laktionov
<colbgcolor=#000000> 이름 라티노프데니스 블라디미로비치[1]
Лактио́нов Дени́с Влади́мирович
Laktionov Denis Vladimirovich
K리그 등록명 데니스 (1996~2003, 2006~2007, 2012~2013)
이성남 (2003~2005, 2024~)
출생 1977년 9월 4일 ([age(1977-09-04)]세)
소련 러시아 SFSR 노보시비르스크주 노보시비르스크
국적
[[러시아|]][[틀:국기|]][[틀:국기|]] |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직업 축구선수 (공격수[2], 미드필더[3] / 은퇴)
축구 감독
신체 179cm, 74kg
프로 입단 1994년 FC 사할린 홀름스크
소속 <colbgcolor=#000000> 선수 FC 사할린 홀름스크 (1994~1995)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6~2002)
성남 일화 천마 (2003~2005)
부산 아이파크 (2005 / 임대)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6~2007)
FC 시비리 노보시비르스크 (2008~2009)
FC 톰 톰스크 (2011)
강원 FC (2012~2013)
지도자 FC 톰 톰스크 (2011 / 플레잉 코치)
FC 톰 톰스크 (2011~2012 / 수석 코치)
FC 시비리 노보시비르스크 (2012 / 수석 코치)
매탄중학교 (2013 / 코치)
수원 삼성 블루윙즈 U-12 (2014 / 코치)
마스테르 사투른 예고리옙스크[4] (2015)
FShM 모스크바 U-17 (2018~2019)
FC 로디나 모스크바 (2019~2020)
FC 리가 (2021)
FShM 모스크바 U-16 (2022)
FC 로디나 2 모스크바 (2022)
아크리타스 클로라카스 (2023 / 감독대행)
아크리타스 클로라카스 (2023~)
국가대표 2경기 0골 (러시아 / 2002)
7경기 2골 (러시아 U-20)

1. 개요2. 선수 경력
2.1. 수원 시절2.2. 전설의 . . 라인2.3. 성남으로 이적2.4. 부산으로 임대, 그리고 수원으로 복귀2.5. 러시아 리그에서의 활약2.6. 강원 입단, K리그로의 복귀2.7. 국가대표 경력
3. 지도자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기타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러시아)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 선수 경력

2.1. 수원 시절

파일:최용수와 데니스.png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 왼쪽은 안양 LG 시절의 최용수.

1994년 FC 사할린 홀름스크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고, 1995 시즌에 32경기에서 12골을 넣으며 팀내 최다득점자에 올랐으나 팀의 강등으로 인해서 팀을 떠나게 되었다. 이 당시 러시아는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서 좋은 선수들이 많이 해외로 나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당시 수원의 창단 감독이던 김호 감독은 아직은 나이가 적은 편인 데니스를 데려와서 흔히 말하는 '육성형 용병'으로 써 보려 영입을 시도하였다. 당시 나이가 아직 19세에 불과했고, 그 당시 K리그에서 고졸 선수들을 보기 힘든 상황이었기에[5] 이 선수가 과연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일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1996년 첫 시즌부터 20경기 출장 3골의 활약을 보이며 팬들에게 좋은 기대감을 품게 만들어주었고, 1997년에는 20경기 출장 3골 6어시스트를 남기며 K리그 도움왕 타이틀을 먹으며 수원의 외국인선수 중 장수용병 전설을 남기게 되었다.

다만 1998년에 흑역사가 하나 있는데, 바로 '김주성 목 밟기 사건'. 부산의 레전드였고 말년에 수비수로 전업한 김주성이 경기 중 수원 이병근 선수를 걷어찼고 이 광경을 본 데니스가 흥분해 김주성과 몸싸움을 벌였다. 결국 심판은 데니스에게 레드카드를 꺼냈고 이때 더 흥분해버린 데니스가 몸싸움 후 그라운드에 누워있던 김주성의 목을 밟아버렸다. 하필이면 이 경기가 TV 중계로 전국에 송출됐고[6] 성난 부산 팬들의 오물 투척으로 경기가 10여분간 중단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데니스 선수는 출장정지 3개월에 벌금 500만원의 중징계를 받으며[7] 시즌을 접게 된다. 이해 성적은 18경기 5골 4어시스트.KBS 생중계 자료화면

이 사건으로 거친 이미지가 되었지만 저게 유일한 K리그 퇴장이다. 더욱이 이날 경기에서 김주성이 저지른 더티 플레이는 데니스가 아니라 누구라도 화날만큼 심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2.2. 전설의 . . 라인

1998년부터는 팀내에 고종수가 가세하고, 이때부터 슬슬 활약이 더욱 폭발하며 1999년, 2000년 K리그 올스타를 수상하게 되고, 2000년 시즌에는 산드로가 가세하게 되면서 데니스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활약하게 된다. 바로 K리그 리즈 시절의 상징 고-데-로 라인의 형성이다. 플레이메이커이자 측면에서 정확한 크로스를 날리는 고종수와 왕성한 활동량과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돌파력, 정확한 짧은 패스로 골과 어시에서 맹활약하는 데니스, J리그 가기 전까지만 해도 골넣는 기계였던 산드로의 조합은 K리그 수비수들에게 있어서는 공포 그 자체였고, 2001년에는 그 결과가 다음과 같을 정도였다.

고종수 - 20경기 출장, 10골 6어시
데니스 - 36경기 출장, 7골 3어시 리그 통산 13번째 30-30 작성.
산드로 - 33경기 출장, 17골 3어시

2.3. 성남으로 이적

그러나 2002 시즌 중반 이후부터는 수원과 연봉 협상 문제로 트러블을 보이게 되며 팀을 떠날 기미를 보였고, 마침 지름신이 강림하신 성남 일화에서 이적 제의가 들어오게 되자 2003년 1월 4일 수원은 데니스를 이적료 150만 달러(약 18억원), 계약금 50만 달러에 성남으로 이적시키게 된다.[8]

성남으로 이적한 후 성남 구단에서는 데니스에게 한국 국적으로의 귀화를 권했다. 이미 수원에서 5년 이상 뛰어서 자격조건을 갖춘 상황이었고, 한국어도 어느 정도 구사가 가능하였기에 데니스를 귀화시켜서 외국인 슬롯을 한 명 아낄 계획이었는데 그 당시까지만 해도 개인으로서도 러시아 국적보다 대한민국 국적이 더 유용하였기에 귀화 공부를 한 후 2003년 7월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게 된다. 이 때 이름을 지을 때 성은 자신의 에이전트인 이영중 이반스포츠 대표의 성인 이氏 에서 따고, 이름은 자신의 현 소속팀인 성남 일화에서 따서 이성남으로 이름을 짓게 된다고 알려져 있으나 민증으로 인증한 결과 그냥 데니스였다. 이성남은 당시 애칭으로 등록명이었다고 한다.

2003~2004년 2년간 이성남은 물 만난 고기마냥 활약이 좋았다. 윤정환, 신태용, 김상식, 김대의, 이싸빅, 샤샤 등 K리그 사기유닛만 모아놓은 상황의 성남에서 부담없이 공격을 하며 38경기 출장 9골 10어시, 20경기 출장 5골 7어시 등의 활약을 보이게 된다.[9]

특히 합류한 첫 해인 2003년 리그 통산 6번째이자 외국인 출신으로는 최초, 역대 최단기간 40-40 클럽에 가입했다. 이후 7년 뒤에 에닝요가 약 50경기를 당겨 신기록을 세운다.

2.4. 부산으로 임대, 그리고 수원으로 복귀

그러나 2005년부터 팀내에서 자리를 잃게 되고 결국 2005년에 예전 악연의 팀이었던 부산 아이파크로 한 시즌 임대이적하며 부활을 노리게 되나 실패, 결국 2006년 시즌을 앞두고 안효연과 트레이드되며 다시 수원 삼성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때부터 등록명을 다시 데니스라고 바꿨다.

수원 복귀 첫 해인 2006년에는 그럭저럭 활약했지만 잔부상 덕분에 예전의 좋은 폼을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설상가상으로 2007년에는 인대 부상을 당하여 6개월 동안 재활 운동을 하였으나 극복하지 못하며 단 한 경기에도 출전하지 못하였고, 결국 방출당하며 팀을 떠나게 되었다.

2.5. 러시아 리그에서의 활약

2008시즌 후부터는 러시아 2부 리그에 해당되는 러시아 퍼스트 디비전, FC 시비리 노보시비르스크로 이적하여 러시아 무대로 복귀하였으나, 두 시즌동안 27경기 출전에 그치며 재계약에 실패하였다. 러시아 리그에서 활약했고, 후에 아니라고 밝혀졌지만 당시 카더라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용병으로 취급받지 않기 위해서 다시 러시아 국적을 회복하며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였다라는 이야기가 있었다.[10]

2011년에는 톰 톰스크에서 플레잉 코치로 활약했다.[11] 이후 시비리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수석코치로 활약하기도 했다.

2.6. 강원 입단, K리그로의 복귀

파일:external/pds.joins.com/201209221700771065_1.jpg

허나 2012년 강원 FC에 입단함으로써 약 5년만에 K리그에 복귀했다. 인터뷰에 의하면 러시아 톰 톰스크에서 플레잉 코치로 활동했었지만 국적은 여전히 대한민국 국적이여서 외국인 선수로 등록되어 있었다고. 2012년 강원의 외국인 스쿼드가 지쿠, 자크미치, 웨슬리, 시마다로 아시아 쿼터까지 꽉꽉 차 있는 걸 볼 때 여전히 한국인이 맞다. 2012년 나름대로 경험을 살려서 로테이션 자원 정도로 잘 활약했다.

그러나 2013년 시즌 들어 주전 경쟁을 이기지 못했고, 강등이 코앞이라 허덕이던 강원에서도 기회를 줄 수 없었는지 여름 이후 팀에서 방출되었다.

2.7. 국가대표 경력

일찌감치 K리그에 들어왔지만, 20대 초반에 K리그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발돋움했던 터라 러시아에서도 그를 주목했었다. 그가 수원에서 전성기로 접어들던 1998년, 러시아 U-23 대표로 처음 뽑혔고, 1998년~1999년 동안 꾸준히 러시아 올대에 뽑히며 7경기 2골을 기록했다.[12]

특히 2002년 월드컵이 데니스가 뛰던 바로 그 한국에서 열리는 터라, 월드컵 본선진출에 성공한 러시아로써도 데니스는 매우 매력적인 선수임에 틀림이 없었다. 러시아의 조 편성 결과 또다른 공동 개최국인 일본과 한 조에서 맞붙게 되었고, 자연스레 아시아 무대를 누비면서 일본 프로팀과 수차례 맞붙어본 경험이 있는 데니스가 깜짝 발탁 물망에 올랐다. 2002년 5월, 월드컵을 1달 앞두고 펼쳐진 친선 대회에서 데니스는 생애 최초로 러시아 A대표팀에 선발되어 벨라루스와의 평가전에서 러시아 대표로 데뷔전을 가졌다. 하지만 당시 올레크 로만체프 감독의 마음에 들진 못했는지 최종명단에는 승선하지 못했다. 그래도 데니스는 2002년 9월, 발레리 가자예프 신임 감독 체제에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어 스웨덴과의 평가전에서 두 번째 A매치 출장을 기록했다.

이후 상술한대로 2003년 데니스가 대한민국으로 귀화하면서 자연스레 그의 러시아 대표팀 커리어는 끝났다. 또한 당시 FIFA 국적 룰에 의거해 친선경기만 뛰어도 타 국가의 A대표팀으로 국적을 변경하는 것이 불가했던 시기라 귀화를 한 뒤에도 러시아 A대표팀 경력 때문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는 선발될 수 없었다.

3. 지도자 경력

강원에서 방출된 이후 뭐하고 사는지 알 수가 없다가, 현재는 은퇴하고 친정팀 수원의 제의를 받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유스팀인 매탄중학교 축구부 코치로 부임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자신뿐 아니라 온 가족이 다 한국에 와서 살기로 결정했다고 해서, 그의 한국 사랑이 레알임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2014년에는 수원 U-12팀 리틀윙스에서 코치로 일하는 중. 2015년에는 러시아 유스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마스테르 사투른 축구학교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2018년에는 러시아 모스크바의 지역 유소년 축구팀인 FShM[13]에서 유소년 축구팀의 감독을 역임하였다. ##

3.1. FC 로디나 모스크바

2019-2020 시즌 러시아 프로축구 3부리그 중부지구[14] FC 로디나 모스크바의 감독으로 부임하였으며, 팀은 현재 중위권에 위치해있다.#

2020-2021 시즌에도 그룹 2에 배정된 로디나의 감독으로서 팀을 이끌고 있다. 2월 26일 현재 리그 5위를 마크하고 있어 승격이 아주 불가능한 위치는 아니다. 여담으로 자신의 아들 니키타도 로디나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었다. 현재 아들은 방출된거 같다. 여담으로 그가 한국인이므로 아들에게도 한국 이중국적이 있다.

로디나를 시즌 전반기인 2020년까지만 이끌고, 수석코치이자 사촌인 알렉산드르 락티오노프에게 감독직을 넘겨주었다. 팀은 새로운 감독 하에도 꾸준히 중위권을 유지하였다.

3.2. FC 리가

이후, 로디나와 같은 구단주가 운영하고 있는 라트비아 비르스리가의 FC 리가의 감독으로 부임한다. 2021시즌의 첫 7경기를 맡고 4승 1무 2패를 기록하였지만 다시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이를 두고, 2021-22시즌에 다시 로디나 모스크바 감독 복귀를 한다는 말이 돌고 있다.

이후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 FShM U-16 감독, 로디나 모스크바 2군 감독직을 역임하였다.

3.3. 아크리타스 클로라카스

그리고 2023년, 키프로스 2부리그 팀인 아크리타스 클로라카스에 감독대행으로 부임, 이후 팀을 잠시 떠났으나 23/24 시즌 정식감독으로 부임하였다.

4. 플레이 스타일

주 포지션은 측면 공격수이나 중앙 공격수 역할 및 셰도우 스트라이커 역할도 소화할 수 있는 자원이었다. 스피드가 좋고 몸싸움을 즐겨서 측면에 공간이 마련되면 언제든지 치고 들어가며 골문 앞에서의 짧은 패스나 슈팅 능력이 좋아서 문전 앞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다만 볼달고 펼치는 개인기 자체는 썩 좋은편이 못돼서 드리볼 돌파로 수비수를 벗겨내는 식의 플레이는 보여주지 못했고 클래식 윙어라기보단 측면에서 활동하는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까웠다. 축구 아이큐가 유달리 뛰어난 것도 아니라서 피지컬에 의지하는 경향이 컸고 때문에 노쇠화가 시작된 2005시즌부터는 전처럼 빠른 스피드로 측면을 유린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수비수들에게 막히는 경우가 급증했다.

그래서 5년만에 K리그에 복귀했던 강원 시절에는 플레이스타일이 확 바뀌어 드리블과 바디 페인팅으로 수비를 벗겨내고 공을 지키는 식의 플레이를 구사했다. 20대 시절 좋지 못했다고 평가되었던 축구 센스 측면에서도 역시 베테랑의 경험은 무시못한다는 것을 방증하듯 매우 지능적인 플레이로 짧은 출전 시간에도 팀에 도움이 되는 플레이를 했다.

90년대 그를 상대했던 수비수들이 술회한 바에 따르면 매우 무서운 공격수였지만 쉽게 흥분하는 성격이라 거칠게 마크하며 건드려주면 흥분하다가 자멸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함께 전성기를 보냈던 고종수가 한방을 쓸때 밤에 홀로 엉엉우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회상한걸 보면 단순히 거친게 아니라 꽤 섬세하고 감상적인 성격인듯 하다.

5. 기타

  • 이반 스포츠 에이전시 소속이었으나 현재는 계약해지 된 것으로 보인다.
  • 상술되어 있듯이 아들도 축구선수이고 수원 매탄중 축구부 선수로 활동했었다.출처 카자흐스탄 1부리그에서도 뛰었다.
  • 딸은 한국에서 리듬체조를 하였고뉴스, 러시아로 돌아가서는 발레를 전공한 것으로 보인다.

6. 관련 문서



[1] 본래 이성남(李城南)이라는 이름으로 귀화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신의손과 마찬가지로 선수 등록명이다. 주민등록상으로는 '라티노프데니스' 라고 되어있다고 한다.[2] 스트라이커[3]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4] 모스크바 주 연고의 유명한 유소년 축구학교이다.[5] 고종수나 이동국과 같은 천재 소리 드는 선수가 아니면 대부분 대학에 진학한 후 K리그를 밟는 것이 1990년대 중후반의 K리그 분위기였다. 당시만 해도 고졸 선수는 즉시전력감이 되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하여 영입에 소극적인 분위기였다.[6] 지상파 생중계는 아니었고 이 당시 지상파 프로그램 재송출과 스포츠 중계를 맡았던 KBS 위성2TV를 통해 생중계됐다. 오늘날로 비유한다면 스포츠채널을 통해 전국에 생방송됐다고 보면 된다.[7] 원래는 1년 출장정지였다.[8] 계약기간 2년, 매년 연봉 18만 달러, 출전수당 경기당 2,500달러라는 옵션이 있었다고 한다.[9] 그래서 그런지 오래 뛴 선수가 아니었음에도 성남 팬들의 여론은 상당히 호의적이다. 축구 웹툰작가&성남빠 샤다라빠는 자기를 성남으로 끌어들인(2003년 포항 김병지 상대로 넣은 골이 계기)이성남이 이적한 후 꿈에서 그를 보고 울었던 적이 있다고.2015년 성남팟캐스트 방송에서 이성남의 열혈 팬이었음을 인증[10] 대한민국은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국가이다. 대한민국 국적을 생후적으로 얻으려면 원국적을 포기해야한다(다만 국적법에는 대한민국에 지대한 공헌을 하여 특별히 한국국적을 부여받은 특별귀화자의 경후 생후적으로도 복수국적을 인정받으면서 대한민국 시민권자가 될 길은 있다). 러시아는(의외로) 복수국적 허용국가이다(복수국적 문서 참조). 실제로 많은 러시아계가 러시아국적을 유지한채로 유럽, 북미국적을 갖고 해당지역에 거주하고있다.[11] 당시 김남일이 이 팀에 있었는데, 데니스가 딱 한 경기 교체로 뛰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경기에 김남일도 뛰었다[12] 지금이야 K리그에도 각국의 현역 A대표팀 선수들을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이때만 해도 K리그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가 타국의 대표팀에 선발되었다는 소식은 정말 큰 뉴스가 되던 시절이다. 데니스의 스타성을 한 층 더 높여준 사건이다.[13] 팀 이름 자체가 모스크바 축구 학교라는 뜻이다[14] 2019-20시즌까지 러시아 3부리그는 5개의 지구로 나뉘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