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2-29 14:14:28

윤경신

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09062401192_0.jpg[1]
이름 윤경신(尹京信, Yoon Kyungshin)
국적 대한민국파일:대한민국 국기.png
출생 1973년 7월 7일, 서울특별시
학력 숭덕초등학교
광운중학교
고려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경희대학교
종목 핸드볼
포지션 라이트백
소속 VfL 굼머스바흐(1996~2006)
HSV 함부르크(2006~2008)
두산 핸드볼선수단(2008~2011)
지도자 두산 핸드볼선수단(2013~)
대한민국 핸드볼 국가대표팀(2015~2016)
신체 202cm, 95kg
1. 소개2. 선수 경력3. 은퇴4. 수상 기록5. 기타

1. 소개

현존하는 대한민국의 구기종목 운동선수 중에서 해외 무대에서 활약이 가장 뛰어났던 선수였다.[2]

2. 선수 경력

1996년 독일 핸드볼 분데스리가의 VfL 굼머스바흐에 진출했다. 2006년 함부르크 SV로 이적할 때까지 여섯 번(1997, 1999, 2000, 2001, 2002, 2004), 함부르크 SV에선 2007년에 한 번으로 총 7번의 득점왕을 차지했다. 통산 득점은 2,908골.

독일 핸드볼 분데스리가 최다 득점왕, 통산 최다 득점 선수다.

참고로 통산 득점 2위 선수는 2,460골, 3위는 2236골이다. 축구로 비교하자면 차범근이 득점왕 7번에 통산 득점이 350골이 넘어가는 수준이다. 그래서, 독일 내에서는 차범근과 비슷할 정도로 유명한 운동선수로 봐도 손색이 없다.

굳이 축구와 비교를 한다면 이 사람과 기록이 비슷하다. 7회 분데스리가 득점왕에 발롱도르도 한 번, 챔피언스 리그 득점왕 4회 기록을 갖고 있다. 분데스리가 통산 득점 1위에 2위와 제법 차이가 난다. 단지 윤경신은 소속 팀이 약하고 소속 국가가 약할 뿐이다.

하지만, 리그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1970~1980년대 최강으로 군림했던 굼머스바흐였지만 1990년대 들어 THW 킬(Kiel)이 거의 매회 우승하다시피하며 콩라인으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윤경신의 활약이 있었기에 그나마 준우승도 여러번 해본 것이다. 한편, 유럽 핸드볼 챔피언스 리그(EHF Champions League)에서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에 득점왕을 차지, 2001년엔 세계 핸드볼 협회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기도 했다.[3]

독일어를 열심히 공부한 덕택에, 그 따기 어렵다는 독일 운전면허를 취득했고 굼머스바흐 5년차에는 주장까지 맡게 된다. 또 함부르크 SV를 떠나 대한민국으로 복귀할 때는 함부르크 팬들이 윤경신을 꼭 잡아야 한다고 집회를 열었으며 상당한 아쉬움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2006년 시즌이 끝나고 함부르크 SV로 이적했다. 여기서 완전히 부활하여 비록 분데스리가 우승은 놓쳤지만 DHB 포칼 우승, DHF 위너스컵 우승, 슈퍼컵까지 트레블을 달성한다.

2007 시즌이 끝나고 2008년 7월에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2011년 6월까지 실업 팀인 두산 핸드볼선수단에서 활동했다. 2008년 두산 베어스 야구단 시구를 맡기도 했다. 홍수아보다 못 던진다는 굴욕을 당했다.

3. 은퇴

2011년 6월 두산과 계약이 만료된 후 계약 조건에 이견을 보여 재계약하지 않았고, 2012 런던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완전히 은퇴할 때까지 올림픽 국가대표팀의 플레잉 코치로 일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 핸드볼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하여,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단의 태극기를 들고 입장하는 기수를 맡기도 했다. 아마도 세계적으로 명성이 가장 높은 한국의 운동선수인데다 올림픽 출전 경력도 길어서 기수를 맡은 듯 하다.

선수 겸 플레잉 코치로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예선에서 대한민국은 전패를 당해 아쉬움 속에 은퇴하게 되었다. 올림픽 이후 2012년 9월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고, 2013년부터 두산 핸드볼 팀의 감독을 맡고 있다. 그리고, 2015년 2월 6일 핸드볼 국가대표팀 감독에 공식적으로 선임되어 두산 핸드볼 팀 감독직과 겸임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남자 핸드볼이 리우올림픽 출전권 획득에 실패하고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6위에 그치자, 2016년 2월에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사임했다. 그럼에도 "나라가 부르면 가야 한다. 대한민국 핸드볼에 힘이 될 수 있다면 국제위원 등 행정 분야를 맡겨도 피하지 않겠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국대 감독을 맡을 때 대표팀 선수들이 체육관에 도착하면 국민의례부터 하도록 했다고 한다.

4. 수상 기록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90 베이징
금메달 1994 히로시마
금메달 1998 방콕
금메달 2002 부산
금메달 2010 광저우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1993 마나마
금메달 2000 구마모토
금메달 2010 베이루트
금메달 2012 지다
은메달 1995 쿠웨이트

5. 기타

  • 유재석이 '천하제일 외인구단'을 진행하던 시절, 윤경신과 6:1로 매치를 가진 적이 있다. 결과는 처참한 패배. 심지어 골대 앞에서 골 넣기를 시전해 외인구단팀을 벙찌게 만들기도 했다.
  • 모 영화감독이 방황하던 중학생 시절, 골목에서 친구들과 몰래 담배를 피다가 선배인 윤경신에게 걸려서 귀뺨을 얻어맞은 적이 있다고 한다. 감독의 회술로는 정신을 잃을 뻔한 충격이었다고 언급했다.

[1] 오른쪽 인물이며, 왼쪽 인물은 동생 윤경민이다.[2] 그와 비벼볼 만한 업적을 가지고 있는 선수로는 여자 배구김연경 정도이다. 두 선수 모두 세계 무대와 최고 수준의 리그에서 장기간 월드 클래스로 인정 받은 선수들이다. 축구차범근야구박찬호 또한 오랫동안 해외 무대에서 인정 받은 선수들이지만 월드 클래스 시점으로 볼 때는 전성기가 짧았다.[3] 한국에선 남자는 1989년 강재원, 2001년 윤경신, 여자는 1989년에 김현미, 1996년에 임오경이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