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1-30 00:27:42

방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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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 불낙스 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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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소속 선수
<rowcolor=#FFFFFF> 종목 이름 역할 등번호
농구 허재 감독 -
농구 현주엽 해설/코치 -
쇼트트랙 김기훈 선수 7
체조 여홍철 선수 15
유도/격투기 윤동식 선수 11
배구 방신봉 선수 5
축구 안정환 선수 19
테니스 이형택 선수 36
야구 홍성흔 선수 22
야구 김병현 선수 18
축구 이동국 주장/선수 20
격투기 김동현 선수 9
핸드볼 윤경신 선수 77
연예 김용만 선수 10
연예 김성주 중계/선수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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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를 구가했던 현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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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 시절.
파일:방신봉.jpg
이름 방신봉(方信奉)
본관 온양 방씨[1]
출생 1975년 2월 6일[2] ([age(1975-02-06)]세)
충청남도 공주시[3]
학력 공주 봉황초등학교 (전학)대전목동초등학교 (졸업)
대전중앙중학교 (졸업)
대전중앙고등학교 (졸업)
홍익대학교
포지션 센터
신체사이즈 신장 198cm, 체중 87kg
소속팀 현대자동차서비스-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1997~2005)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 (2005~2008)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2009~2017)
국가대표 1996 애틀랜타 올림픽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1999 아시아선수권
1999 월드컵
2000 시드니 올림픽
2001 아시아선수권
2001 월드 그랜드 챔피언스컵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수상 경력 한국배구 슈퍼리그 블로킹상 5회 (98/99/00/01/02)
한국배구 슈퍼리그 베스트 6 4회 (98/99/00/01)
프로배구 V리그 블로킹상 2회 (06-07/10-11)
1999 FIVB 배구 월드컵 베스트 블로커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은메달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
응원가 장미여관 - 오빠라고 불러다오

1. 개요2. 생애
2.1. 선수 시절
3. 여담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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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배구 선수로 포지션은 센터.

'원조거미손', '황금방패' 등의 수식어가 붙을 만큼 블로킹에 있어서는 역대 최고 수준의 탁월한 기량을 발휘했다. 한국배구 슈퍼리그프로배구 V리그에서 도합 7차례 블로킹 왕에 올랐고, 2010년에는 사상 첫 통산 1000 블로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국가대표팀의 센터로 활약했으며, 1999 FIVB 배구 월드컵에서는 블로킹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6-17 시즌을 끝으로 최고령으로 은퇴를 했다.

2021년도 뭉쳐야 쏜다 멤버이다.

2. 생애

1975년 2월 6일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아버지 방문식(方文植, 1947. 12. 2 ~ )과 어머니 나주 나씨(羅州 羅氏, 1951. 5. 21 ~ ) 사이의 두 아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2.1. 선수 시절

홍익대에 재학 중이던 1996년 한국배구 슈퍼리그에서 철벽 블로킹을 과시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 출전할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고, 1997년 배구 명문 현대자동차써비스에 스카우트되어 실업 무대에 첫 발을 들인다. 입단 첫 해부터 당당히 주전 자리를 꿰차 1998년 부터 2002년 까지 5대회 연속 한국배구 슈퍼리그 블로킹 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슈퍼리그 한경기 최다 블로킹 기록을 1위(16개)부터 3위(15개)까지 모두 보유했을 만큼 블로킹 부문에서 당대 No.1으로서 위용을 떨쳤다. 하지만 당시 김세진신진식 등 스타플레이어들이 즐비한 삼성화재의 철옹성에 가로막혀, 단 1차례도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한 채 준우승만 5번을 차지한 불운의 선수이기도 하다.

1996년부터 2002년까지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각종 대회에 출전했다. 1999 FIVB 배구 월드컵에서는 한국선수로서는 처음으로 국제대회에서 블로킹 왕(세트당 0.90개)에 올랐고,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주전 센터로 전경기를 소화했다.

2003년 송만덕 감독에 의해 후인정, 이호 등과 더불어 팀에서 강제로 퇴출될 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잔류했다. 그러나 이선규, 윤봉우 등 젊은 선수들에게 밀려 출전 기회가 점차 줄어들었고, 프로배구 원년이었던 2005년 주로 벤치를 지키다 그를 필요로 하는 LG화재로 트레이드 되었다. 이적 첫 해인 2005-06 시즌에는 명성에 걸맞는 활약을 펼치지 못했지만, 절치부심한 2006-07시즌에는 블로킹 117개(세트당 1.09개)을 잡아내 3년 연속 타이틀을 노리던 이선규를 제치고 생애 6번째 블로킹 상을 수상하였다.

2007-08 시즌을 끝으로 젊은 선수들을 키우기 위한 LIG 구단의 정책에 따라 은퇴를 했다가, 1년 뒤인 2009년 KEPCO 45(現 한국전력 빅스톰) 강만수 감독의 부름을 받고 현역으로 복귀하여 8시즌 동안 한국전력 소속으로 뛰었다. 2010년에는 슈퍼리그 포함 한국 배구 최초의 통산 1000 블로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고, 2010-11 시즌에는 다시 한 번 블로킹 상을 거머쥐며 1990년대·2000년대·2010년대에 모두 블로킹 왕을 차지한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선수가 되었다. 2016-17 시즌에는 역대 3호로 프로 통산 정규리그 블로킹 700개를 달성하기도 했으며, 2016년 소속팀코보컵 우승을 하면서 그나마 선수 경력에 우승 기록을 추가할 수 있게 되었다. 참고로 방신봉의 슈퍼리그(724개)+V리그(718개) 통산 블로킹 개수는 1442개.

2017년 4월 19일 은퇴를 선언했는데, 문제는 이 은퇴가 구단이 사실상 반 강제로 강요한 것이란 뒷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3. 여담

선수 시절 익살스러운 세리머니로 유명세를 떨쳤다. 고희진의 원조라고 볼 수도 있다.

2016-17 시즌에는 만 42세의 나이에 팬투표로 올스타에 뽑혔다.

V리그에서 남자배구 선수 중 점프 서브를 구사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선수이다.

150130 스페셜V 1부에서는 화려한 춤실력과 위아래댄스 미친 입담을 뽐내며 안 그래도 재밌기로 소문난 한전의 스페셜V 시리즈를 더 웃기게 하드캐리했다. 그리고 2016-2017 올스타전 멤버로 뽑히면서 팬들이 붙여준 저지닉네임은 '내가치어리더'였다~!

방신봉의 아들 방준호(2002년생)도 배구선수로 현재 한양대의 레프트이다.

한때 은퇴 후 택시기사로 일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2021년 방영된 JTBC 뭉쳐야 쏜다에 고정으로 출연했다. 첫방 기준 상암 불낙스의 멤버 가운데 최장신이었다보니 장(長)신봉이란 별명이 붙었다.[4] 배구와 농구의 포지션의 개념 자체가 다르지만 공교롭게도 여기서 맡는 포지션도 센터다. 처음에는 신체조건으로 인한 기대치 대비 아쉬운 부분이 있었으나 한두달만에 수비가 진화하고, 개인 훈련을 한 건지 골밑 슈팅 밸런스도 좋아지며 가장 많이 성장한 멤버가 되었다. 가장 중요한 고정 주전 선수이자 이동국, 홍성흔 등 슈팅 담당 라인 다음으로 중요한 득점원이 되었다. 이후 윤경신이 오면서 센터에서는 밀렸지만, 파워포워드를 하기도 하고 플래툰 센터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국민건강보험 사내 동호회인 건보 엔젤스와의 경기에서는 1쿼터에 윤경신+방신봉 조합의 더블 포스트로 선발 출전했는데, 압도적인 윤경신에게 2명의 수비수가 붙을 때, 상대적으로 약체인 방신봉에게 수비가 안붙는 점을 이용해 리바운드하고 득점으로 잇는 활약을 보였다. 현역시절보다는 덜 하지만 2개의 자유투 초구를 넣으면 약간의 춤을 가하는 세레모니도 있었다.

더 스파이크 2022년 1월호 88~91 쪽에 본인과 아들의 이야기가 수록되었다.

4. 관련 문서


[1] 간의공파 38세 병(炳) 항렬. 족보명 방병운(方炳雲).[2] 뭉쳐야 쏜다에서 밝히길 정원초과로 제 나이 때 입학했다고 한다. 그래서 1975년생 현주엽, 1976년 1월생 이형택, 안정환과 모두 친구로 활동한다. 이형택이 처음 만났을때 프로필을 찾아보고 형이라 생각했는데, 방신봉은 반대로 나이 자체를 잘못 알고 이형택을 형으로 대하다가 서로 반존대말을 하며 어색했는데, 결국 그냥 친구로 지내기로 했다. 안정환의 경우도 친분이 없을 때, 빠른 75년생인 걸 의식했는지 처음에는 "신봉씨"라고만 불렀다고 한다. 배구 선배 김세진은 빠른 74로 방신봉과 1살 차이임에도 자신이 2살 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2년 선배가 옳은 표현이겠지만 운동선수들은 그걸 그냥 나이로 간주한다.) 사실 운동선수끼리도 상대가 사적으로 본 적도 없다가, 살면서 처음으로 만나 본 운동 선수라면, 생년월일 자체는 인터넷을 통해 알 수 있어도 학교생활에 대해 어떤 사연이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다. 또한 일반인들이 대학교 학번을 따지거나 하는 것 때문에, 운동선수들도 단순히 그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고졸 운동선수들도 있는 데다가, 의외로 운동부 학생들은 고등학교 때 부상으로 휴학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기 때문에(야구의 이만수가 유명한 케이스이다.) 21살에 졸업하기도 해서 고등학교를 같은 해에 졸업했어도 선배인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고, 그래서 선수끼리 선후배를 학번으로만 따지는 건 아니며, 방신봉이 (실제로는 그 케이스가 아니었지만) 그 케이스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형택이나 안정환도 혹시 방신봉이 부상으로 1년 휴학한 선배이거나 해서 실수할까봐 조심했던 것이다.[3] 초등학생 시절 배구를 시작하면서 대전광역시 중구 중촌동으로 이주해 자랐다. 다만 온 가족이 이주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은퇴 무렵에 더 스파이크에 실린 이야기에 따르면, 배구부 감독의 집에 얹혀살면서 부모님이 종종 택배로 부추김치를 보냈다고 한다. 방신봉이 학창 시절을 보냈던 8-90년대에는 흔한 일이었다.[4] 13회 기점으로 前 핸드볼 선수, 現 핸드볼 감독 윤경신(203cm)이 합류하면서 2등으로 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