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1 17:24:51

이동수(야구선수)

이동수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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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rowcolor=#373a3c,#dddddd> 문승훈
해태 / 6개
이종옥
롯데 / 6개
이민호
1명(A)
5개
이동수
삼성 / 5개
김재덕
해태 / 7개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rowcolor=#373a3c,#dddddd> 최희창 외
1명(B)
5개
최희창
해태 / 8개
김광현
삼성 / 9개
김무성 외
2명(C)
8개
조효상
1명(D)
11개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rowcolor=#373a3c,#dddddd> 김상현
KIA / 13개
이재주
KIA / 9개
김승관
롯데 / 13개
곽용섭
삼성 / 13개
김승관
롯데 / 8개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rowcolor=#373a3c,#dddddd> 권희석
KIA / 12개
김승관
롯데 / 12개
모상기
삼성 / 12개
오장훈
롯데 / 14개
김강
한화 / 14개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rowcolor=#373a3c,#dddddd> 모상기
삼성 / 21개
나성범
NC / 16개
안태영
넥센 / 14개
박노민
1명(E)
11개
한동민
상무 / 21개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rowcolor=#373a3c,#dddddd> 한동민
상무 / 22개
문상철
상무 / 36개
문상철
상무 / 22개
양석환
상무 / 13개
강민성
kt / 12개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2025년
<rowcolor=#373a3c,#dddddd> 이태훈
삼성 / 12개
오장한
NC / 17개
김석환
KIA / 18개
A: 이민호(해태), 김정수(쌍방울)
B: 최희창(해태), 이지환(롯데)
C: 김무성, 이동욱(롯데), 김승관(삼성)
D: 조효상, 이상현(한화)
E: 박노민(한화), 조평호(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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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KBO 퓨처스 남부리그 타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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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1984 1985 1986 1987
박종훈
OB 베어스 / 외야수
윤석환
OB 베어스 / 투수
이순철
해태 타이거즈 / 내야수
김건우
MBC 청룡 / 투수
이정훈
빙그레 이글스 / 외야수
1988 1989 1990 1991 1992
이용철
MBC 청룡 / 투수
박정현
태평양 돌핀스 / 투수
김동수
LG 트윈스 / 포수
조규제
쌍방울 레이더스 / 투수
염종석
롯데 자이언츠 / 투수
1993 1994 1995 1996 1997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류지현
LG 트윈스 / 내야수
이동수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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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규
LG 트윈스 / 외야수
1998 1999 2000 200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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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 /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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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 포수
이승호
SK 와이번스 / 투수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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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 / 투수
2003 2004 2005 200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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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 /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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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 / 투수
오승환
삼성 라이온즈 /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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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찬
두산 베어스 / 투수
양의지
두산 베어스 / 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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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다이노스 / 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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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
넥센 히어로즈 / 외야수
2018 2019 2020 2021 2022
강백호
kt wiz / 외야수
정우영
LG 트윈스 / 투수
소형준
kt wiz / 투수
이의리
KIA 타이거즈 / 투수
정철원
두산 베어스 / 투수
2023
문동주
한화 이글스 /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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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삼성 라이온즈|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7번}}}
김성준
(1989~1990)
이동수
(1992~1995)
이상달
(1996~1997)
{{{#fff [[삼성 라이온즈|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번}}}
최찬욱
(1994~1995)
이동수
(1996~1997.6.26.)
김종훈
(1997.6.27.~2007)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44번
양종성
(1995~1996)
<colbgcolor=#000> 이동수
(1997.6.27.~1998.6.4.)
박경진
(1999~2006)
{{{#000000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12번}}}
김실
(1996~1997)
이동수
(1998.6.5.~1999)
팀 해체
SK 와이번스 등번호 12번
팀 창단 이동수
(2000~2001.5.30.)
강성우
(2002~2005)
해태/KIA 타이거즈 등번호 60번
최근혁
(1998)
이동수
(2001.5.31.~2003.5.6.)
김원섭
(2003.5.7.~2004)
두산 베어스 등번호 7번
김원섭
(2001~2003.5.6.)
이동수
(2003.5.7.~2003)
윤상무
(2004)
SK 와이번스 등번호 73번
성준
(2012~2014)
이동수
(2016~2017)
이종운
(2018~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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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image/117/2016/04/27/201604271402422228_1_99_20160427140504.jpg
이동수
李東洙 | Dong-Soo Lee
출생 1973년 3월 24일 ([age(1973-03-24)]세)
경상북도 영천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칠성초 - 경상중 - 대구고
포지션 1루수, 3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2년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1992~1997)
롯데 자이언츠 (1997~1998)
쌍방울 레이더스 (1998~1999)
SK 와이번스 (2000~2001)
해태-KIA 타이거즈 (2001~2003)
두산 베어스 (2003)
지도자 영남대학교 야구부 타격코치 (2004~2006)
계명대학교 야구부 타격코치 (2014~2015)
SK 와이번스 2군 타격코치 (2016~2017)[1]
경북고등학교 야구부 타격코치 (2020~2021)
대구고등학교 야구부 타격코치 (2022~)
해설위원 TBC 라디오 야구 해설위원 (2006~2012)

1. 개요2. 선수 경력3. 은퇴 후4. 연도별 성적5.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3천만 원짜리 선수든 3억짜리 선수든 경기장에선 모두 똑같은 야구선수다.[2]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 쌍방울 레이더스, SK 와이번스, 해태 - KIA 타이거즈, 두산 베어스에서 활약했던 KBO 리그의 대표적인 저니맨이자 前 SK 와이번스 2군 타격코치.

2. 선수 경력

파일:/image/295/2010/01/10/18.jpg
신인 시절

대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삼성 라이온즈곽채진과 함께 지역 연고 우선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입단 첫해와 두번째 해까지는 2군에만 머물렀으나, 3년차인 1994년 2군 홈런왕, 타점왕에 올랐고, 1군에도 잠깐 얼굴을 비추면서 기대주로 떠올랐다.
파일:external/image.ohmynews.com/punctum_287885_12%5B510344%5D.jpg
1995년 신인왕 수상 후
이듬해인 1995년, 주전을 차지하면서 타율 2할 8푼 8리, 22홈런(2위)[3], 81타점으로 입단 4년차에 중고 신인왕에 등극하여 삼성의 미래를 짊어질 오른손 거포로 주목받았다. 당시 신인왕 경쟁자가 이승엽, 마해영이었기 때문에 더욱 돋보였다.[4] 1995년 7월 25일 vs 한화전 9회말 2사에서 구대성에게 역전 끝내기 그랜드 슬램을 날린 적이 있는데, 이는 국내 최초로 3점차를 뒤집은 역전 끝내기 만루 홈런이었다.[5]

하지만 이후 좋은 성적을 이어가지 못하고 1997년 롯데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된다. 1998년엔 쌍방울 레이더스, 2001년엔 KIA 타이거즈, 2003년엔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 되며 저니맨으로 떠돌다가 은퇴했다.
파일:external/image.ohmynews.com/punctum_287885_12%5B510343%5D.jpg
KIA 타이거즈 현역 시절

신인왕을 차지한 1995년 이후에도 1999년, 2000년, 2001년에 각각 19홈런, 14홈런, 15홈런을 기록할 정도로[6] 밀어치는 힘이 좋은 타자였다. 물론 프로에 좋은 잠재력을 지닌 선수가 많고 이들 중 여러 이유로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거나 활약을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그들 중 대표격인 선수 중 하나라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다.

1996년의 이야길 하자면, 전년도에 주전 3루수로 뛰었지만 수비 불안의 이유로 3루에 자리잡지 못하였고, 지명타자나 1루수로 출전해야했지만[7][8] 1루에 이미 붙박이 주전으로 자리 잡으며 많은 기대를 받고 있던 이승엽이라는 존재가 있었다. 그나마 전년도의 두드러진 활약 덕에 이만수와 번갈아 지명타자로 기용되거나 이승엽을 좌익수로 밀어내고 1루수로 기회를 받기도 했지만, 8홈런에 그치며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게 된다. 결국 1997년 6월 27일 박석진과 함께 김종훈, 박동희를 상대로 롯데 자이언츠에 트레이드된다. 이동수 본인도 고향 팀을 떠나야 했던 아픈 기억이긴 하겠지만 당시 감독이 이동수 대신 다른 선수를 택한 것이 큰 원인이었다는 일설도 있으며,[9][10] 이는 결과적으로 매우 좋았던 선택이 되었다.[11]

롯데로 간 후에도 부상과 부진으로 별 활약을 못하다가[12] 1998년 6월 5일 쌍방울 레이더스박계원과 함께 또 다시 트레이드된다. 이후 김성근 감독 밑에서 재기에 성공하나[13][14] 기대만큼의 활약을 펼치진 못하고 2001년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되는데, 주로 1루수로 나오며 장성호, 산토스와 함께 클린업을 구축하였다. 그 해에는 적은 경기에 출전하고도 .274에 15홈런을 기록하며 기대에 부응했으나, 노쇠화가 왔는지 그 다음해부터는 주특기였던 홈런을 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2003년 시즌 도중 두산 베어스김원섭을 상대로 트레이드되며 그 시즌 후, 방출되며 현역에서 은퇴하게 된다.

위에 서술된 대로 타격에 재능이 있었음에도 수비에서 문제를 보이며 꾸준히 자리잡지 못하였고, 여러 팀을 다녔기 때문에 외야수였던 최익성이나 동봉철 못지 않은 저니맨으로 살아야 했다.[15] 처음 입단한 삼성에서 그나마 가장 오래 뛰었고, 삼성의 미래를 짊어질 오른손 거포의 잠재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타급으로 성장하지 못한건 아쉬운 결말이다. 일각에선 1996년 시즌에서의 부진은 자신의 은사인 김충 2군 감독의 해임과 1군에서의 부담감으로 인한 심리적인 문제가 컸다고 하며, 이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 크기 때문에, 조금만 더 잘 풀렸더라면 팀을 이끌었을 선수 중 한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평가하기도 한다.[16] 결국 좋은 잠재력으로 신인왕까지 차지했지만, 프랜차이즈 스타로 성장하지 못하였고, 그 영광은 김한수, 이승엽 등 팀 레전드로까지 성장한 당시의 경쟁자들에게 돌아갔다.

3. 은퇴 후

파일:이동수 & 김대진.jpg
2012년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김대진 캐스터와 함께.

은퇴한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영남대학교에서 코치를 맡아오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7년간 대구방송(TBC)에서 프로야구 라디오 중계 해설 위원으로 활동했다.[17] 해설 스타일은 정말 차분하고 경기흐름을 잘 읽는 스타일. 그러나 배영섭이 호수비를 보일 때는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 중계했다(...). 2012년에는 해설 중 류중일 감독과 김상수를 계속해서 디스하기도 했다. 그리고 차우찬이 만루홈런을 맞은 다음에는 방송사고로 오해할 정도로 침묵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실황녹음 으어

2013년에는 TBC를 떠나 대구 중/남구 케이블TV SO인 TCN에서 대구지역 유명 MC인 이도현 씨와 함께 삼성 홈 전경기를 중계방송했다. 다만, 현장 중계가 아니라 스튜디오에서 화면을 보며 중계하는 방식이었다. TCN의 야구중계방송은 2013년 단 1년만 하고 폐지되면서 해설에서도 물러났고, 계명대학교 코치로 부임하였다.[18]

2016년 SK 와이번스 2군 퓨쳐스팀의 타격코치로 다시 프로야구계에 복귀하였는데, 구단 측에서는 중장기적인 신인 육성을 위해 영입했다고 한다.[19] SK 팬들은 2016 시즌에 돌아온 짠물타선과 변비야구로 인해 김무관솩무원 정경배를 좀 밀어내 달라고 기원하는 중. 하지만 17시즌 종료 후 코칭스태프 개편과 동시에 계약이 해지되었다.

2020년부터 2년간 경북고등학교의 코치로 있다가 2022년에 모교로 자리를 옮겼다.

4.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2 삼성 1군 경기 없음
1993
1994 6 14 .214 3 0 0 1 1 2 0 1 .429 .267
1995 125 420 .288 121 17 3 22
(2위)
81
(4위)
70 2 54 .500
(5위)
.368
1996 94 241 .266 64 13 2 8 38 25 1 33 .436 .351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7 삼성 / 롯데 39 96 .156 15 1 0 1 7 2 0 7 .198 .214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8 롯데 / 쌍방울 82 186 .247 46 8 0 9 30 21 1 27 .435 .341
1999 쌍방울 86 291 .320 93 19 2 19 68 56 2 60 .595 .431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0 SK 96 224 .259 58 11 1 14 40 34 1 44 .504 .374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1 SK / KIA 84 241 .274 66 11 1 15 49 39 0 50 .515 .395
2002 KIA 28 48 .229 11 1 0 0 8 3 0 8 .250 .339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3 KIA / 두산 34 52 .192 10 1 0 0 6 5 1 7 .212 .288
KBO 통산
(10시즌)
674 1813 .269 487 82 9 89 328 257 8 291 .471 .367

5. 관련 문서


[1] 4월 27일~[2] 연봉에 연연하지 않고 경기에만 집중하겠다는 의지가 돋보이는 말이다.[3] 1위는 김상호로 마지막 22호 홈런을 칠 때까지만해도 이동수가 1위였지만 OB 베어스김상호에게 시즌 막판에 역전 당하며 2위가 되었다.[4] 이동수가 중고 신인왕에 오르며 두각을 보이게 건 은사인 김충 2군 감독의 가르침과 백인천 타격 인스트럭터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근데 이듬해 감독으로 정식 부임한 백인천은 이승엽을 더 중용하였다..[5] 참고로 이 이색 기록은 이동수와 김응국만이 유이하게 가지고 있다.[6] 규정 타석을 채우지도 못했는데 두자리수 홈런을 기록한 것이다.[7] 사실 원래 포지션은 1루수였다. 신인왕 시즌도 1군에서 뛰기 위해 여의치 않지만 3루수로 전향했다고 봐야 할 듯.[8] 그리고 3루수로 수비범위도 좁고 포구도 좋지 못했어도 기용된 이유로는 팀의 주포인 양준혁이 좌타자이고 이동수는 당시 장타력 있는 우타 유망주라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9] 당시 현장에선 둘의 타격 포텐셜이 동일하다는 전제 하에 수비력으로 이승엽이 우세했기에 1루수로는 이승엽 고정이 낫다는 계산을 했던 듯하다. 실제 이 해 이동수는 94경기 중 1루수 35경기, 3루수 23경기 출장으로 1루수 출장이 생각보다 적다. 다만 당시 이동수(+이만수) 기용을 위해 이승엽을 좌익수로 이동시켰던 것이나, 3루수로도 내보낸 것을 봐서는 그래도 백인천 감독이 어떻게든 이동수에게 기회를 줘보려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이 해 이동수는 94경기 277타석 출전으로 기회를 결코 못 받은 건 아니었다.[10] 오히려 이후 삼성의 상황으로 볼 때 이동수가 터지면 1루수보다는 지명타자로 기용되었을 확률이 높다. 수비로는 이미 1루에 이승엽, 3루에 김한수가 있고 이 둘은 KBO 내에서 정상급 수비수(+이동수만큼 한방이 있는 타자)기에 이동수를 기용할 이유가 없다. 반면 기존 지타였던 이만수가 노쇠화를 띄고 있었기에 지명타자 자리는 비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동수가 이후에도 95년과 같은 활약을 이어갔다면 지명타자 주전이 거의 확실한 상황이었고 때문에 96년 시즌은 특히 중요했음에도 불구, 이 때 부진한 것이 커리어에 매우 큰 악재가 되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더불어 만약 이동수가 이후에도 95년과 같은 활약을 펼친다고 가정할 시 삼성은 외야 신동주-최익성(강동우)-양준혁, 1루 이승엽에 지타 이동수로 더욱 공격적인 라인업 구성이 가능했다. 이미 현실의 97삼성 라인업도 역대급 파괴타선이라고 프로야구사에 이름을 올렸는데 말이다.[11] 여담으로 삼성은 이동수가 1군에 있었던 1995년과 1996년에는 부진했고[20] 오히려 이동수가 없었던 1997년부터 2008년까지는 항상 좋은 성적을 내며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기록을 세웠다.[21] 재미있는 사실은 삼성 시절 3루수 경쟁을 했던 김한수에게 나중에 부인의 후배를 소개해 주기까지도 했다는 것이다...?[12] 이동수에게 롯데는 삼성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았던 것이, 1루엔 마해영, 3루엔 공필성, 지타로는 임수혁이 있었다. 그나마 임수혁은 포수 겸업이니 이동수가 잘 했다면 지명타자로 어느 정도 기용도 가능했겠지만...[13] 1999년에 시즌 전의 손목 부상으로 6월부터 출장하기 시작해 규정타석은 미달이었으나 86경기 타율 0.320 출루율 0.431 장타율 0.595 19홈런을 기록하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실제로 이 해에 스탯티즈 기준으로 WAR 4.56을 기록하였다. 다만 이는 당시 주로 지명타자와 1루수로 출전했음에도 3루수로 출전한 걸로 집계된 결과라 재평가되면 수치가 하락할 소지가 농후하긴 하다. 다만 타격으로만 봐도 인상적인 활약을 한 건 사실이다. 특히나 1999년 쌍방울의 타선은 KBO 역대 팀 타선 중 최악의 wRC+를 기록한 타선이라 더더욱.[14] 1999년에 친정 삼성과의 전주 홈경기에서 3홈런(8월 5일 더블헤더 1차전에서 1개, 2차전에서 2개)을 기록하기도 했다.[15] 그들은 모두 해태 타이거즈 선수였었다는 공통점이 있다.[16] 사실 수비력이 좋지 않아 1루와 지명타자를 제외하고는 맡을 수 있는 포지션이 마땅치 않았던데다가 결정적으로 부상이 잦았다는게 제일 큰 요인이었을 것이다. 신인왕을 탄 시즌을 제외하고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했던 쌍방울 레이더스시절인 1999년에도 부상으로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했다. 1999년은 IMF의 직격탄을 맞은 모기업이 부도나서 소속 선수들을 현금 트레이드로 연명하던 후유증으로 쌍방울 레이더스의 선수층이 극단적으로 얇아져 특별한 경쟁자도 없었던 시즌이었다.[17] 비시즌에는 대구고등학교 야구부의 타격 인스트럭터로 활동했다고 한다. 이 때 길러낸 선수가 구자욱.[18] 검색해 보면 신일중학교 코치 또는 서울중구리틀야구단 감독도 이동수로 되어 있지만 동명이인이다.[19] 공교롭게도, 복귀 날짜에 한때 몸담았던 두산 베어스와 SK 와이번스의 1군 경기가 있었다.


[20] 그러나 이 시기는 오랫동안 팀을 이끌었던 삼성의 주축 선수들의 노쇠화와 부상이 있었음을 감안해야 할 필요가 있다.[21] 하지만 그 1995년과 1996년은 오히려 관중몰이를 동원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그 시기는 한국프로야구의 인기가 절정기에 달하는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