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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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그레 이글스 등번호 48번 | |||||||||||||||||||||||||||||||||||||||||||||||||||||||||||||||||||||||||||||||||||
결번 | → |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이민호 (1993) | → | 김일훈 (1994~1995) | ||||||||||||||||||||||||||||||||||||||||||||||||||||||||||||||||||||||||||||||||
한화 이글스 등번호 8번 | ||||||||||||||||||||||||||||||||||||||||||||||||||||||||||||||||||||||||||||||||||||
김석연 (1991~1993) | → | 이민호 (1994~1998) | → | (1999~2003.4.18.) | ||||||||||||||||||||||||||||||||||||||||||||||||||||||||||||||||||||||||||||||||
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3번 | ||||||||||||||||||||||||||||||||||||||||||||||||||||||||||||||||||||||||||||||||||||
박철우 (1994~1998) | → | 이민호 (1999) | → | 팀 해체 | ||||||||||||||||||||||||||||||||||||||||||||||||||||||||||||||||||||||||||||||||
SK 와이번스 등번호 3번 | ||||||||||||||||||||||||||||||||||||||||||||||||||||||||||||||||||||||||||||||||||||
팀 창단 | → | 이민호 (2000) | → | 추성건 (2001) |
이민호 李珉浩 | Min-ho Lee | |
출생 | 1969년 9월 2일 ([age(1969-09-02)]세) |
경상북도 영일군 연일면 (現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연일읍)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포항제철중 - 포철공고 - 영남대 |
포지션 | 3루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1993년 2차 3라운드 (전체 25번, 빙그레) |
소속팀 | 빙그레-한화 이글스 (1993~1998) 쌍방울 레이더스 (1999) SK 와이번스 (2000) |
지도자 | 대전 중구 리틀야구단 감독 |
가족 | 아내, 딸, 장남 이성열, 차남 이영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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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빙그레-한화, 쌍방울, SK의 야구 선수.2. 선수 경력
1993년 빙그레의 2차 3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데뷔 첫 해에는 강석천의 백업으로 뛰다가, 1994년 강석천의 부진을 기회삼아 암울했던 1994년 이글스 타선에 박지상과 더불어 힘을 실어 주었다. 이 때가 커리어 하이로, 0.299의 타율과 14홈런 36타점을 기록했다.하지만 1995년 방위병 복무로 홈 경기밖에 뛰지 못했으며, 그 이후 주춤하다가 1998년 주전 3루수가 됐으나 1998년 시즌 후 외야수 동봉철과 함께 투수 임창식을 상대로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됐다. 쌍방울이 해체되고 2000년 SK 와이번스에 이적하여 1시즌을 뛴 후 은퇴했다.
3. 지도자 경력
이후에는 인천에서 유소년 야구 팀을 지도하고 있다고 전해졌다.현재는 대전 중구 리틀야구단 감독이다. 한국리틀야구 사상 최초로 지방팀인 '대전 충청권' 팀으로 한국 예선, 아시아-퍼시픽&중동 월드시리즈 예선을 거쳐 2019년 리틀 월드시리즈에 한국팀 감독으로 본선에 참가했다.
현재 대전 중구리틀팀은 창단 5년만에 우승 뿐 아니라 준우승 다수 등 지방팀이지만 강팀으로 부상하고 있다.
통산 기록은 타율 0.241 51홈런 167타점 168득점 19도루.
4. 여담
- 전준호,[1] 양준혁과는 1969년생 동갑내기이지만 이민호가 동갑내기들보다 대학진학을 1년 늦게 했기 때문에, 전준호의 영남대학교 야구부 2년 후배 겸 양준혁의 영남대학교 야구부 1년 후배가 되었다.[2] 그리고 양준혁과는 사적으로도 절친한 사이로 추측된다.20101025 관련기사.
-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야구 국가대표팀으로 발탁되어 한국이 대회 2위를 차지하는데 공헌을 하였다.[3]
- 아들 이영빈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야구를 하고 있다. 세광고를 졸업했으며 포지션은 내야수. 3학년부터 유격수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2021년 신인 2차지명에서 LG 트윈스의 지명을 받으면서 프로 무대에 입문했다. 2021년 5월 4일 처음 1군에 등록됐으며 어버이날인 5월 8일 한화전, 역사적인 첫 안타를 기록했다. 그리고 아들이 소속된 팀에 자신과 동명이인인 투수가 있다.
- 1995년 한국프로야구에서 선동열에게 유일하게 홈런을 친 타자가 바로 이민호이다. 하나 덧붙이자면, 이민호의 홈런은 선동열 개인이 한국프로야구에서 마지막으로 기록한 피홈런이기도 하다.[5]
5. 관련 문서
[1] 빠른 생일이다.[2] 비슷하게 족보가 꼬인 케이스로는 정민태(한양대 88학번)-구대성(한양대 89학번) 등이 있다.[3] 본 대회에서 야구는 시범종목이었다.[4] 혹사의 대가로 악명높은 김성근이지만, 큰 병이 있을 때는 터치하지 않으며 오히려 많이 부려먹는 만큼 부려먹어야 하는 선수의 건강, 재활에는 크게 신경을 쓰는 편이다. 그 예로 레이노 증후군을 앓은 투수 이한진을 몸소 일본에 데려가서 치료를 받게 한 일이 있다.[5] 1995시즌 종료 후, 선동열은 한국을 떠나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에 입단하게 되며, 1999시즌까지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활약하고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