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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결번/KBO 리그

KBO 영구결번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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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정일 기준으로 KBO 리그 역대 첫 번째, 두 번째 영구 결번은 모두 OB(現 두산)가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김영신,[1] 두 번째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윤동균이다.[2] 세 번째는 선동열이다.기사 2022년 현재 영구 결번은 모두 17명.

대체로 일본프로야구보다는 영구 결번이 약간 후하고, 미국 메이저리그에 비해 영구 결번이 굉장히 엄격한 편이다.[3] 기본적으로 원 클럽 플레이어 혹은 원 클럽의 위상에 준하는 선수들 중 꾸준한 누적 혹은 단기 임팩트로 소속팀에 크게 공헌한 선수들이 대상이 된다. 팀 소속을 떠나 야구 성적 자체로 위대한 대선수들뿐이므로, 영구결번 선수들은 다 KBO 기준으로 레전드라 할 수 있다. 다만 KBO 전체에서 레전드 대우를 받는 위대한 선수라도, FA나 트레이드 등으로 팀을 자의로 옮긴 선수라면 영구결번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KIA에서 FA 제도를 통해 삼성으로 이적했다가 다시 KIA로 돌아온 이강철이 대표적인 사례. 이 선수는 엄청난 임팩트는 없어도 꾸준한 활약으로 역대 다섯 손가락의 누적을 쌓았는데도 영구결번이 안 되었다. 단, 양준혁이나 박경완처럼 자신이 원치 않는데 트레이드의 형태로 강제 이적당한 케이스는 영구결번의 기회를 준다.[4] 일본에서는 영구결번보다는 번호 세습을 선호해서 그렇고 옐카에서도 언급했듯이 아직 리그 차원의 명예의 전당이 없는[5] KBO 특성상 구단 영구결번이 사실상 명예의 전당을 대신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서 미국에 비해 기준이 상당히 높다. 그렇기에 이들은 예외적인 경우인 김영신, 선정 시점에서 아직 현역이라 후보군에서 제외된 이대호를 제외하고 전원이 KBO 40주년 레전드 4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2023년까지 이대호를 마지막으로 하여 총 17명의 선수가 영구결번의 영광을 얻었고, 이후에는 오승환[6], 최정, 김광현, 양현종, 류현진,[7] 양의지[8] 정도가 가장 유력한 영구결번 후보로 꼽힌다.

키움 히어로즈[9], NC 다이노스[10], kt wiz[11]의 경우 아직 구단 역사가 짧은 관계로 영구결번이 없으며, 해체된 구단인 현대 유니콘스, 쌍방울 레이더스도 영구결번이 없다.[12]

2. 일람

KBO 리그 역대 영구 결번 현황
순번 등번호 이름 영구 결번 지정 구단 영구 결번 지정일 소속 구단 변천사 KBO 내 원 클럽 맨 여부 비고
1 54 김영신 OB 베어스 1986년 8월 16일 OB(1985~1986) O 최초이자 유일한 추모 의미의 영구 결번
2 10 윤동균 OB 베어스 1989년 8월 17일 OB(1982~1989) O 1994년 영구 결번에서 해제[13]
2 18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1996년 1월 16일 해태(1985~1995)-주니치(1996~1999) O[A] [15]
3 41 김용수 LG 트윈스 1999년 4월 19일 MBC-LG(1990~2000) O 최초의 영구 결번식 수혜자[16]
4 21 박철순 두산 베어스[17] 2002년 3월 28일[18] MIL 산하 마이너(1980~1981)-OB(1982~1996) O[A] [20]
5 22 이만수 삼성 라이온즈 2003년 6월 16일 삼성(1982~1997) O [21]
6 35 장종훈 한화 이글스 2005년 8월 29일[22] 빙그레-한화(1986~2005) O
7 23 정민철 한화 이글스 2009년 9월 10일[23] 빙그레-한화(1992~1999)-요미우리(2001~2001)-한화(2002~2009) O[A]
8 21 송진우 한화 이글스 2009년 9월 22일[25] 빙그레-한화(1989~2009) O
9 10[26]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2010년 9월 19일 삼성(1993~1998)-해태(1999)-LG(2000~2001)-삼성(2002~2010) X[27]
10 11 최동원 롯데 자이언츠 2011년 9월 21일[28] 롯데(1983~1988)-삼성(1989~1990) X[29] 사망 이후 영구 결번 지정 2호[30]
11 7 이종범 KIA 타이거즈 2012년 4월 4일[31] 해태(1993~1997)-주니치(1998~2001)-KIA(2001~2012) O[A]
12 26 박경완 SK 와이번스 2014년 3월 31일[33] 쌍방울(1991~1997)-현대(1998~2002)-SK(2003~2013) X[34]
13 9 이병규 LG 트윈스 2017년 7월 9일 LG(1997~2006)-주니치(2007~2009)-LG(2010~2016) O[A] 한국시리즈 우승 미경험자[36]
14 36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2017년 10월 3일[37] 삼성(1995~2003)-치바 롯데(2004~2005)-요미우리(2006~2010)-오릭스(2011)-삼성(2012~2017) O[A]
15 52 김태균 한화 이글스 2021년 5월 18일[39] 한화(2001~2009)-치바 롯데(2010~2011)-한화(2012~2020, 2021[C]) O[A] 한국시리즈 우승 미경험자[42]
16 33 박용택 LG 트윈스 2022년 6월 20일[43] LG(2002~2020, 2022[C]) O 한국시리즈 우승 미경험자[45]
17 10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2022년 9월 29일[46] 롯데(2001~2011)-오릭스(2012~2013)-소프트뱅크(2014~2015)-시애틀(2016)-롯데(2017~2022) O[A] 한국시리즈 미경험자[48]

2.1. OB 베어스 - 두산 베어스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131230><tablebgcolor=#131230>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svg두산 베어스
영구 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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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OB베어스 영구결번_김영신.svg파일:OB베어스 영구결번_김영신.svg 파일:OB베어스 영구결번_박철순.svg파일:OB베어스 영구결번_박철순.svg
김영신
(1986.08.16.)
박철순
(2002.04.05.)
선수명 하단 일자: 은퇴식 및 영구 결번식 진행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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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영구 결번
54
김영신
OB 베어스의 유망주 포수였으나, 성적 부진의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친 비운의 선수로 베어스 구단에서 추모의 의미로 영구결번을 지정했다. KBO 리그 최초의 영구 결번 선수이자, 통산 성적이나 활약이 아닌 추모의 이유로 영구 결번된 현재까지 유일한 경우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현재 두산 베어스에서도 54번은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고 있다.[49][50]
두산 베어스 영구 결번

21
박철순
KBO 리그 베어스 원년 우승을 이끌었고, 여러 차례 부상을 입고도 재기에 성공해 '불사조'라는 별명으로 칭해진 베어스의 아이콘. 90년대 중후반까지 김성한, 이만수, 신경식과 함께 원년 멤버 4인방 중 하나로 활약했다. 은퇴식은 1997년에 있었으나 영구결번은 OB에서 두산으로 바뀌고 난 후 약 5년이 지난 2002년이 돼서야 지정되었다. 하지만 박철순의 은퇴 후 구단명이 바뀐 과정에서도 21번은 단 한 명도 달지 않았기 때문에 프로야구 원년부터 베어스의 21번은 사실상 영구 결번 대우를 받았다.

OB-두산 베어스 구단은 KBO 리그의 출범과 함께한 원년 구단임에도 40년이 넘는 팀 역사동안 영구 결번 선수가 단 2명밖에 없으며, 그것도 추모의 의미로 지정된 김영신의 영구 결번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구단 영구 결번은 박철순이 유일하다. 다만 이는 몇몇 다른 구단과는 달리 영구결번을 받을만한 선수가 없어서 안 줬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성적만 보면 받을만한 선수는 있는데 대부분 말년이 좋지 않거나 모종의 이유로 아쉽게 영구결번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80년대 OB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팀의 원년 우승을 함께한 윤동균의 등번호 10번이 1989년 그의 은퇴식과 함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된 적이 있었으나, 1994년 구단 역사상 최악의 흑역사 사건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영구 결번이 해제되고 말았다.[51]

KBO 역대 최고의 3루수이자 베어스 그 자체였던 간판 타자 '두목곰' 김동주는 성적만 놓고 보면 영구 결번을 이미 따놓은 양상이었으며 팬들의 지지도 굳건했음에도, 사생활 문제 및 말년의 구단과의 마찰 등으로 인해 영구 결번은커녕 제대로 된 은퇴식마저도 치르지 못했다. [52] 선수생활 마지막 즈음 여러 문제점이 터져 무산되어 아직까지도 안타까워하는 팬들이 많은데, 박철순 이후 원년 구단인 베어스를 상징하는 원클럽맨이자 슈퍼스타 그 자체였음에도 야구 외적인 문제들로 인해 영구 결번의 수혜자가 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OB - 두산 베어스 팬들로부터 안타깝고 슬프다는 반응이 많이 나온다.

김동주 외에도 영구 결번 후보로 꼽힐 만했던 안경현, 홍성흔, 박명환, 김상진은 타 구단으로의 이적이나 구단과의 마찰 등으로 물건너 가게 되었다.[53] 특히 2011년부터 7년간 두산에서 활약했던 KBO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투수 더스틴 니퍼트가 KBO 최초[54] 외국인 선수 영구결번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마지막 시즌에 kt wiz로 이적하며 두산 원클럽맨으로 남지 못하는 바람에 영구결번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도 2020년 준플레이오프 때 두산 구단의 초청으로 시구를 하긴 했다. 또한 2022년 KBO 개막전때 박철순, 김형석, 홍성흔과 함께 연대별 구단 레전드의 시구로 10년대 대표로 시구하는 등 팀 레전드로서의 대우는 챙겨받고 있는 편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두산이 꾸준히 리그에서 상위권의 성적을 내며 특유의 이천 화수분 야구까지 더해져 슈퍼스타들을 많이 배출하였고 영구결번감도 충분히 있었으나, 하필 당시 열악한 모기업 사정 탓에 이들을 FA 기간에 죄다 놓치는 바람에 영구결번 가능성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김현수는 두말하면 입 아픈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중반 베어스의 상징이었으나 메이저리그를 거쳐 자금난에 빠진 두산과 협상 자체를 못하고[55] LG로 이적하였으며, 종박베어스라 불릴 정도로 두산의 팀컬러인 허슬두를 상징하던 슈퍼스타인 이종욱도 말년에 FA를 통해 NC로 이적하여 NC에서 은퇴하였고, 2010년대 중반부터 또 다른 팀의 프랜차이즈였던 박건우 역시 FA로 NC 다이노스로 이적하여 팀을 떠났다.

그나마 양의지가 NC 다이노스로 이적했다가 4년만에 리턴하면서 급격히 유력한 후보로 부상했다. 타 구단 얘기긴 하지만 비슷하게 잠시 타 구단을 돌아다녔던 양준혁이 영구결번이 된 선례가 있고, 최대 6년 계약으로[56] 사실상 베어스에서의 은퇴가 기정사실화되며 영구결번의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NC 4년동안 대기록을 써내려가며 NC의 첫 우승[57]까지 일궈냈다는 점은 아쉽지만, 두산 박정원 구단주가 4년 전의 아픔을 씻어내고자 직접 발 벗고 나서 거액으로 다시 데려왔으며, 이미 이적 이전에 두산에서 세운 활약으로도 영구 결번을 받기에 손색없는 기록이었다. 하마터면 가장 많이 스타들을 배출한 2010년대에는 열역한 모기업 사정으로 인해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죄다 FA로 떠나보내며 구단 역사에 비해 워낙 프랜차이즈 스타/영구 결번이 적었던 구단인 만큼 두산에서 다시 좋은 성적을 내고 은퇴한다면 가능성은 매우 높다.

두산이 FA로 핵심선수들을 죄다 잃어버렸을 때 유일하게 팀에 남았으며 전성기에 뛰어난 성적을 올린 김재환 영구결번 이야기도 간간히 나오지만 약물 전과가 있는지라 대부분의 두산 팬들도 묵살하고 있다. 물론 데이빗 오티스 같은 약물 전과에도 불구하고 영구 결번을 받은 사례는 있지만 오티스의 경우는 약물 사용에 있어서는 시인을 하고 사과를 빠르게 해서 여론을 잠재웠기 때문에 큰 얘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반면 김재환은 차기 결번 후보로 부상하기 전에 일어난 약물 전과이긴 하지만 사과는 커녕 봉인해제 드립을 치는 등의 좋지 않은 태도로 인해 두산 팬들 사이에서도 김재환의 존재 자체에 호불호를 지닌 팬층이 많다. 그리고 FA 계약 이후 계속 부진하고 있는지라 팬들의 인식도 좋다고 볼 수가 없다.

그 밖으론 팀의 레전드 감독인 김인식[58]과 팀의 최전성기를 이끈 김태형[59]의 영구결번도 이야기 되지만[60] 아직까지 KBO에서 감독 영구결번을 시도조차 했던 팀이 없으며 그 김응용도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는게 맞다.

여러 레전드 선수들이 차기 영구 결번 후보에 언급되었으나 두산 베어스 팬들의 주 의견은 김동주와 니퍼트에 제일 앞서 있었다. 하지만 은퇴한 시기가 점점 지나 영구 결번 가능성이 희박해짐에 따라 현재 제일 가능성이 높은 것은 양의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양의지 이외에는 허경민의 13번이나 정수빈의 31번이 가장 많이 언급되는 번호[61]이나, 두 선수 모두 통산 WAR이 25정도에 불과한 만큼 아직까지도 부정적인 의견 역시 많다.

2.2. 롯데 자이언츠

롯데 자이언츠 영구 결번
(선수명 하단 일자: 영구 결번식 진행일)
파일:롯데 자이언츠 영구결번_최동원.svg
파일:롯데 자이언츠 영구결번_이대호.svg
최동원
(2011.09.30.)
이대호
(2022.10.08.)

롯데 자이언츠 영구 결번
11
최동원
원년 시절부터 현재까지 롯데 하면 팬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상징과도 같은 투수. 최동원은 현역 시절 구단 최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화려한 성적을 남겼음에도, 구단과의 갈등으로 인해 은퇴 당시 영구 결번되지 못했다. 이후 2011년 최동원이 대장암 악화로 인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영구결번이 되지 않자 여론은 급격히 악화되었고, 팬덤의 거센 비판에 부담을 느낀 롯데 구단에서 그의 등번호 1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롯데 자이언츠 영구 결번
10
이대호
KBO 리그의 전무후무한 타격 7관왕과 2회의 트리플 크라운, 거기에 일본프로야구-메이저리그 경력까지 거친 구단 역대 최고의 간판타자. 2022년 예고 은퇴 전부터 영구결번은 사실상 확정적이었고, 9월 29일 구단측에서 영구결번을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10번은 롯데 자이언츠의 두 번째 영구결번이 되었으며, 영구결번식은 10월 8일 이대호의 은퇴 경기 행사에서 진행되었다. 은퇴와 동시에 바로 영구결번이 되는 것은 롯데 자이언츠 구단 역사상 최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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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을 통해 롯데 자이언츠 문단에서 특정 팬덤이나 야구계 인물들이 '롯데가 영구결번을 잘 지정하지 않음'을 언급한 것을 서술하며 특정 롯데 선수가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지 못하는 이유 및 롯데가 은퇴 선수를 영구결번으로 지정하는 정도를 지바 롯데 마린즈 등의 일본 야구 구단과 비교하는 서술을 하지 않는다.로 합의되었습니다. 합의된 부분을 토론 없이 수정할 시 편집권 남용으로 간주되어 제재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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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 합의사항43
토론 - 합의사항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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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 합의사항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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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 합의사항48
토론 - 합의사항49
토론 - 합의사항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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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는 영구결번 기준이 좀 박하다는 얘기가 일부 팬덤이나 야구계 인물들로부터 나오는 편이다.[62] 리그와 역사를 함께한 원년 구단 답게 그동안 많은 프랜차이즈 스타가 배출되었음에도 이들이 모두 은퇴할 때까지 구단에서는 이대호 단 한명의 예외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영구결번 관련 가능성조차 언급되지 않았다. 두산이 구단의 레전드들이 죄다 팀을 떠나는 바람에 원클럽맨이나 그에 준하는 선수조차 없어 영구결번이 2명뿐이라면, 롯데는 반대로 영구결번감인 원클럽맨은 많으나 영결기준이 좀 박해서 등재를 못하고 있다. 심지어 그 최동원조차도 세상을 떠나고서야 여론에 떠밀려 롯데 프런트가 마지못해 영구결번으로 지정할 정도였으며, 만약 최동원이 현재까지 생존해 있었다면 안 그래도 최동원과 롯데구단의 껄끄러운 관계를 고려할 때 영구결번 지정이 지금까지도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있을 정도였다.

특히 롯데팬 입장에서는 10년넘게 팀의 프랜차이즈이자 슈퍼스타였던 강민호손아섭을 FA로 떠나보낸 것이 대단히 아쉽다. 그들이 롯데에 쭉 남아있었다면 영구결번 가능성이 대단히 높았을 것이라는 의견에는 롯데팬 뿐 아니라 대다수 야구팬들이 동의하지만, 다른 팀으로 이적한 이상 기대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물론 최동원이 그렇듯 다른 팀 경력이 조금 있다고 영구결번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63], 그만큼 팀 기여도에 공백기가 생기는 셈이고 프랜차이즈의 이미지가 희석되기 때문에 강민호나 손아섭의 등재 가능성은 대단히 낮아진 상태다. 특히 강민호는 삼성 라이온즈에서 FA 계약만 두 번, 총합 8년의 계약을 체결하며 더 이상 롯데로의 리턴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으며, 손아섭 역시 30대 후반에 NC 다이노스와의 계약이 끝나는 상황이라 영구결번 가능성은 부정적이다. 과거 강민호는 롯데의 영구결번이 목표라 밝힌 바 있고 손아섭도 NC로 떠날 때 롯데의 프랜차이즈를 포기하는 것이 가장 아쉽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 팬들의 안타까움이 더 강하다.

구단의 레전드 중에서 영결감으로 가장 자주 거론되는 선수는 윤학길의 29번으로, 구단 역대 최다승 1위에 리그 전체에서도 통산 100완투(1위), 20완봉(2위)[64]이라는 기록 보유자이자이며 무엇보다 롯데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기에 팬덤에서는 가장 이견이 없는 영구결번 후보로 꼽히고 있다. 윤학길의 29번은 2021년 한승혁을 끝으로 아무도 달고 있지 않아 팬들 사이에서는 영구결번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의견도 있었으나 2024년부터 빅터 레이예스가 새로 달게 되면서 한동안은 영구결번으로 지정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시기 롯데의 주장이자 프랜차이즈였던 박정태는 추후 충분히 영구결번을 노려볼만도 했으나,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으며 코치직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사실상 가능성이 사라졌다. 이 밖에도 염종석이나 주형광 등도 팬덤 내에서 영구결번 후보로 거론은 되지만 윤학길보다는 스탯이 약간 부족한 관계로 이 둘은 아직 가능성이 낮다. 감독으로는 롯데역사상 단 두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모두 이끌어낸 명장 강병철 감독이 거론된다.

현역 원클럽맨으로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전준우의 영구결번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지만, 이대호나 최동원에 비해서는 무게감이 조금 부족한 편이라 팬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치열하다. 2차 FA로 사실상 종신 계약을 맺었으니 남은 4년동안 떨어지지 않는 성적을 기록하거나 주장으로서 팀을 우승시켜야 가능성이 열린다. 전준우가 한국나이 37살까지 통산 WAR* 45를 기록한 만큼, 못해도 55이상은 찍고 은퇴해야 가능성이라도 높아진다. 당장 삼성의 박한이가 숙취운전으로 영구결번이 물건너가긴 했으나, 오히려 전준우보다 스탯은 떨어짐에도 팬덤에서 영결에 긍정적이었던건 수많은 우승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전준우는 우승경력이 없는 탓에 좀 더 나은 누적,통산을 기록해야 가능성이 올라간다. [65]

선수는 아니지만 메이저 리그에서 선수 이외 인물이 몇 명 영결로 지정 받은 사례[66]처럼 조지훈 응원단장의 영구 결번을 바라는 팬도 상당하다. 우리나라 응원단원들의 구조 특성상 야구 한정으로 봐도 원클럽맨은 아니지만 2006년 부임해 어지간한 선수, 코칭스태프, 직원 못지 않게 오래 부임 중인 응원단장으로 이는 2023년 야구계 한정으로는 최장 기간(23시즌 기준 18년 차) 단일 구단 재임이다. 등번호를 'V3'를 계속 달아오고 있는 점은 롯데의 성적 때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중간에 다른 번호[67]를 쓴 적도 없어서 상징성은 있다.

준 영구결번으로 대우하는 사례로 임수혁의 20번이 있다. 2016년 최영환을 마지막으로 아무도 달지 않고 있으며, 특히 진승현이 아버지 진갑용의 번호인 20번을 달려고 했지만 구단 내에서 허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사실상의 비공인 영구 결번으로 대우하고 있음이 알려졌다.[68]

2.3. 삼성 라이온즈

삼성 라이온즈 영구결번
(선수명 하단 날짜는 영구결번식이 진행된 날)
파일:sl22.png 파일:sl10.png 파일:sl36.png
이만수
(2003. 06. 16.)
양준혁
(2010. 09. 19.)
이승엽
(2017. 10. 03.)
삼성 라이온즈 영구 결번
22
이만수
원년부터 삼성의 간판 스타이자 KBO리그 역사상 최고의 포수 중 한 명이며, 1997년까지 원클럽맨으로 활약한 KBO 리그 최후의 원년멤버이기도 하다. 성적도 성적이지만[69] 80년대 당시 이만수의 인기는 당대 최고였으며, 커리어 막바지까지도 훗날 양준혁이승엽의 인기에 비교해 안 밀린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진지하게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 얘기도 나왔을 정도. 기량이 많이 떨어져 선발로 거의 안나오던 90년대 중반에도 경기 내용과는 상관없이 감독은 이만수를 꾸준히 대타 또는 대수비로 기용했는데, 이유는 이만수가 경기에 안나오면 분노하며 맥주캔을 던지던 대구아재들이 통제가 안돼서...[70] 지금은 삼성 구단과의 섭섭한 감정을 어느 정도 털어놓은 상태지만 은퇴 당시에는 은퇴식은 커녕 제대로 된 은퇴 소감도 밝히지 못하고 쓸쓸히 방출됐다. 물론 이만수의 상징성을 감안해 은퇴 이후 삼성 구단 내에서도 등번호 22번을 달았던 선수는 나오지 않았다. 22번이 공식 영구결번으로 결정된 것은 그가 은퇴한 후 6년이 지난 2003년이었다. 다만 훗날에 영구결번된 두 후배들과 달리 은퇴식과 은퇴경기, 영구결번식은 치르지 못했다. 원년에 데뷔했고 은퇴 후 영구결번 되기 전까지 이만수의 22번은 아무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이만수는 삼성 역사에서 22번을 사용했던 유일한 선수다.
삼성 라이온즈 영구 결번
10
양준혁
원래 2011년에 별세한 장효조 코치가 현역 시절 삼성에서 달던 번호였지만, 결국 2010년에 은퇴한 양준혁의 번호로 영구결번 처리되었다. 삼성에 대한 충성심이나, 이미지, 통산 성적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어 이견없이 영구결번이 되었다. 양준혁 본인은 “장효조 선배와 공동 영구결번으로 생각한다.”고 밝혔으며, 팬들도 양준혁의 발언을 지지하며, 장효조 코치의 10번도 결번이 되길 염원한다. 참고로 영구결번 된 선수들 중 최초로 해외팀을 제외한 원 클럽 맨이 아니다.[71]
삼성 라이온즈 영구 결번
36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를 상징하는 구단 최고의 타자. 공식 지정은 이승엽이 은퇴한 2017년에 되었지만, 사실 이승엽이 56홈런을 치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던 2003년 10월 3일김재하 당시 삼성 라이온즈 단장이 "은퇴 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할 예정"이라고 미리 밝힌 바 있다.이후 36번은 준영구 결번 처리가 되어 아무도 36번을 달지 않다가 이승엽이 삼성으로 돌아오면서 다시 36번을 달게 되었고 이승엽의 은퇴경기 당일 은퇴식과 함께 정식으로 영구 결번 처리가 완료되었다.

삼성은 기준이 엄격하다기 보단 앞서 영구결번 된 저 세명의 이름값이 너무나 높아서[72] 꽤나 엄격하게 보이기도 한다. 다만 원년부터 구단 역사를 훑어보면 구단이 선수의 기량이 떨어지면 냉정하게 내치는 경향이 강한 탓도 있다. 양준혁조차도 구단이 진행한 트레이드로 잠시 타팀 생활을 했으며 유력한 영구결번 후보인 장효조김시진은 거의 내쫓기다시피 해서 롯데로 갔다. 그러다보니 삼성에서 꾸준히 성적을 거둔 선수가 많지 않아 자연스럽게 영구 결번 논의도 잘 되지 않았다.

그나마 17년이라는 기간동안 원 클럽 플레이어로 활약하며 무려 7번의 우승에 기여한 박한이의 영구 결번 가능성이 있었다. 이만수, 양준혁, 이승엽과 비교되어 다소 이름값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팬 여론도 구단도 조금씩 긍정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는데 숙취운전으로 불명예 은퇴하며 무산되었다. 만약 다른 팀이었다면 7회 우승이라는 말도 안 되는 커리어[73] 때문에 당연히 영구결번 되었을 거라는 의견이 많긴 하다. 그냥 우승할 때 선수생활을 한 것뿐만이 아니라 누적도 많이 쌓았고 심지어 2013년에는 시리즈 MVP까지 탔다. 비록 공식적으로 영구결번은 되지 않았지만, 박한이의 은퇴 이후에도 아직 33번을 다는 선수는 없고 코치로 복귀한 본인도 33번이 아닌 74번을 달고 있어서 현 시점까지는 비공식 결번으로 남아있다.

향후 영구결번 1순위로 마무리 투수 오승환의 21번이 꼽힌다. 개인 통산 500세이브, KBO 통산 400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삼성을 넘어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서 삼성의 최초 투수 영구결번을 받을 것이라 점쳐진다. 변수는 과거의 도박 전과지만, 국내 복귀 당시 단장이 직접 참석해 성대한 환영 행사를 열어주는 등 구단에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후속 논란이 많았던 다른 동료 투수들과 달리 오승환은 그 이후로 별다른 사건사고를 일으키지 않았으며, 이미 10년가까운 세월이 흐르는동안 해당 사건에 대한 이미지도 과거보다는 많이 희석되어있다. 만약 영구결번이 된다면 타자 영결만 셋이었던 삼성에서 나온 첫번째 투수 영구결번이다.

그 밖의 현역 선수로는 구자욱이 언급된다. 아직 영구결번 여부를 논하기에는 이르지지만 FA 취득 전 시점에 맺은 2022년의 다년계약 후 언급이 되고 있다. 선수 본인이 삼성이라는 구단에 대한 애정이 강하고, 대구 출신이고, 골든글러브를 수상할만큼 실력도 뛰어나기 때문에 삼성 팬덤에선 이대로 삼성에서 커리어를 마무리할 경우 영구 결번이 될 확률이 높을 것으로 추측하는 편이다. 다만 아직 선수 생활이 많이 남았기에 섣부르다는 의견이 아직은 많다.

윤성환은 불법도박 의혹이 있었지만 팀 에이스로 꾸준한 성적을 기록해서 팬들 사이에서 팀 내 투수 최초 영구결번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불법도박에다가 승부조작 사건이 같이 얹히면서 팀 내 투수 최초 영구결번 유력 선수에서 일개 승부조작범으로 전락하여 이제는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다.

삼성 왕조를 이끌었던 최형우박석민의 영구결번이 유력했으나 모두 FA로 팀을 떠나게 되어 가능성이 거의 없어졌다. 팀 레전드인 임창용도 영구결번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은퇴 자체를 KIA에서 한데다 여러 논란이 있어서 가능성이 희박하다.

또한 삼성 왕조를 이끈 류중일 감독과 레전드 투수 김시진의 영구결번도 거론된다.

2.4. 빙그레 이글스 - 한화 이글스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ff6600><tablebgcolor=#ff6600>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svg한화 이글스
영구 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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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35장종훈.png 파일:23정민철1.jpg 파일:21송진우1.jpg 파일:김태균 영결.png
장종훈
(2005.09.15.)
정민철
(2009.09.12.)
송진우
(2009.09.23.)
김태균
(2021.05.29.)
선수명 하단 일자: 은퇴식 및 영구 결번식 진행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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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영구 결번
35
장종훈
빙그레-한화 이글스 구단 역사상 최초의 영구 결번. 리그 최초의 40홈런 시대를 열었던 90년대 홈런타자의 아이콘이자 은퇴 시점 기준에서 통산 최다홈런 1위였던 선수로, KBO리그 최초로 은퇴경기와 영구 결번식을 같은 날 동시에 치른 선수이기도 하다.

장종훈이 한화 코치로 있던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이 번호를 재사용하였다.
한화 이글스 영구 결번
23
정민철
은퇴 시점 기준으로 송진우에 이어 통산 다승 2위 기록을 보유했던 90~00년대 선발에이스. 참고로 이 번호는 과거 빙그레 이글스 시절부터 야구를 본 올드팬이라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인데, 정민철이 전성기 시절에 달던 번호는 55번이었기 때문이다. 23번은 2005년부터 달기 시작했으나 정작 이 번호를 달고 제대로 활약한건 2007년뿐이다. 이를 두고 일부 팬들이 정민철을 모욕하는 구단의 처사라며 반발하기도 했으나, 이후 정민철이 방송에서 밝힌 바로는 정민철 빠돌이(...)이자 초-중-고 후배인 윤규진에게 번호를 물려주고자 일부러 55번의 영구 결번화를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고.

정민철의 은퇴 후 55번은 이후 윤규진이 물려받았고, 윤규진의 군 복무 기간중에는 이태양[74] 달고 있다가 윤규진이 복귀하면서 이태양은 55를 뒤집은 22번으로 변경[75]하고, 윤규진이 다시 55번을 받았다. 윤규진이 은퇴한 뒤에는 강재민이 55번을 이어받았다.
한화 이글스 영구 결번
21
송진우
KBO 리그 최초이자 유일의 통산 200승-2000탈삼진-3000이닝 투수인 레전드로 은퇴 전부터 일찌감치 유력한 영구 결번 후보로 꼽혔으며, 영구 결번 처리 바로 다음날 은퇴경기를 치렀다.

송진우가 한화 코치로 있던 시절 중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잠시 이 번호를 재사용하기도 하였다.
한화 이글스 영구 결번
52
김태균
2000년대 이후 구단 최고의 간판타자로 2020년 시즌 중 은퇴를 선언했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여파로 관중 입장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은퇴식과 영구결번 지정 시점이 2021년으로 연기됐다. KBO 리그의 은퇴경기 특별엔트리 제도의 첫 수혜자로서[76] 은퇴식 당일인 2021년 5월 29일 대전 SSG전 라인업에 4번타자 1루수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다만, 후배들의 자리를 빼앗기 싫다는 본인의 뜻으로 플레이볼이 선언되자마자 노시환과 교체되어 경기 출장 기록만 남기고 실제로 경기에서 뛰지는 않았다.

신용과 의리를 중시하는 모기업 한화그룹의 경영 철학에 따라 구단 출신 레전드에 대한 예우가 매우 각별하며,[77] 이에 따라 현 시점까지 가장 많은 영구결번 선수들을 보유한 구단이기도 하다. 류현진의 99번은 그가 MLB에서 선수 생활을 한 11년 동안 임시 결번으로 남아있었는데 한화에서 은퇴 후 영구결번으로 지정될 것이라는데엔 모든 야구팬들의 이견이 없다. 이로써 결번 하나가 더 늘어난다면 영구결번 선수가 5명이 된다.

이러한 기조에 영구결번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말도 존재하지만, 냉정하게 지금 영구결번을 받은 4명의 선수만 봐도 리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선수들로 다른 팀이었어도 무조건 영구결번인 선수들이다. 일단 최근에 영구결번된 김태균은 저평가가 있어서 그렇지 타자 swar* 통산 5위, 2000안타-300홈런-1000타점-1000득점에 3-4-5 슬래쉬라인을 유지하며 은퇴한 3명 뿐인 선수 중 한 명이며, 장종훈은 은퇴 당시 기준 KBO 최다홈런 1위에 kbo 최초 40홈런, 3년 연속 홈런왕 등을 기록한 선수이며 WAR 60대[78]에 300홈런-1000타점-1000득점을 기록했다. 송진우는 2023년 기준으로 200승 - 3000이닝- 2000K, 통산 WAR 2위, KBO 최다승, 최다패[79]야구 역사상 최고 투수인 사이 영이다.] 최다 탈삼진, 최다 이닝, 최다 피안타, 피홈런, 4사구[80] 선수이며 정민철 역시 골글을 못 받았다 한들 160승-2000이닝-1500K, 통산 WAR, 승 3위, 이닝 2위 등 한획을 그은 선수다. 거기다 이 4명 모두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에도 뽑히는 등 절대로 영구결번을 남발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다 다른 팀이었으면 영구결번이 확정이었던 구대성한용덕이 영구결번이 아니다. 구대성의 경우 통산 WAR 13위에 77승 214세이브로 숫자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선발보다는 불펜으로 주로 나왔던 선수다. 물론 당시에는 보직이라는 개념이 없긴 해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치이다. 사실 당시에도 영구결번감으로 거론되었지만 영구결번이 되지 않았다는 것에 의아심을 느낀 팬들이 많았다. 은퇴 이후 ABL로 넘어가 현역생활을 지속한 것과 더불어 본인의 의지인지 여부는 불분명하였고 결론적으로 후배 선수에게 등번호를 물려주기로 해서 무산되었다.[81]

또한 한용덕 역시 영구결번으로 뽑혀도 이상하지 않을 선수다. 골든글러브도 없고 타이틀 홀더도 없어서 간과하기 쉽지만 한용덕의 통산 기록은 결코 우습지 않다. 120승-2000이닝-1300K에 통산 WAR 9위, 다승 13위, 이닝, 탈삼진 7위로 결코 평범한 수치가 아니며 최동원, 구대성, 정민태, 조계현, 손민한 등의 대투수들보다도 WAR이 높다. 송진우랑 정민철, 구대성에 가려져서 그렇지 충분히 영구결번급의 선수인 셈이다.

현역 선수로는 류현진이 가장 유력하고 이견이 없는 후보다. 미국에 진출한 11년 동안 임시 결번으로 지정되었고, 만약 미국에서 돌아오지 않았어도 영구결번을 줬을 것이라 예상됐던 상황이었기에 큰 논란이 없다면 무조건 영구결번으로 지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2.5. 해태 타이거즈 / KIA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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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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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IA 타이거즈 영구결번 18선동열.svg
파일:KIA 타이거즈 영구결번 7이종범.svg
<rowcolor=#fff> 선동열
(1996.01.16.)
이종범
(2012.04.04.)
※ 선수명 하단 일자는 영구 결번 지정일이다. }}}}}}}}}
KIA 타이거즈 영구 결번
18
선동열
자타공인 KBO 리그 역사상 최고의 투수 레전드. 원래 18번은 선동열이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한 후 해태 타이거즈에서 영구 결번으로 처리했던 번호였으나 2001년 구단이 기아자동차에 매각된 후 해태색 지우기의 일환으로 당시 신인 최고액 계약금을 받았던 김진우에게 줘버리고 말았다. 결국 팬들의 반발로 인해 시즌 시작 전 김진우가 배번을 41번으로 교체하게 되면서 계속 영구 결번으로 남게 되었다. 정작 선동열 본인은 당시 영구 결번 여부에 큰 미련을 두지 않았으며, 김진우가 18번을 달고 타이거즈의 에이스로 성장하길 응원했다고 한다. 이후 그가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복귀할 때 이 번호를 재사용할지 이목이 쏠렸지만 본인은 선수 시절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을 우려해 90번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는 감독 시절 5-8-8을 기록하여 선견지명(?)이 되었다.
KIA 타이거즈 영구 결번
7
이종범
5툴을 모두 갖춘 유격수로 리그를 초토화시키며 야구천재로 불린 한 시대를 풍미한 바람의 아들. 해태 시절 세 차례, KIA 시절 한 차례 등 4차례의 팀 우승을 함께 했으며[82] 은퇴 선언 후 며칠 뒤 바로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영구 결번식을 겸한 은퇴식은 당년 5월 26일에 진행. 더불어 이 번호는 타이거즈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대타자였던 김종모의 현역시절 등번호이기도 하다. 또 KBO 리그 최초의 한 자리 수 등번호 영구결번이다.

삼성 라이온즈처럼 영구 결번 2명이 워낙 쟁쟁한 레전드다 보니 타이거즈의 영결 컷이 높다는 인식이 있다. 영구결번 후보자로 김응용[83], 김봉연[84], 김성한[85], 이강철[86], 이순철[87], 한대화[88], 홍현우[89], 장성호[90], 조계현[91], 이대진[92], 임창용[93]등이 있다. 다만 이 중에 원클럽맨인 김봉연, 김성한을 제외한 나머지는 FA나 트레이드로 인해 타 팀으로 이적해 활약한 이력이 있어서 진지하게 거론되진 못하고 있다.[94]

2024년 현재 현역 선수로는 양현종이 유력하다. 통산 WAR이 50을 넘어 60을 향해가고 있고, 그 WAR을 모두 KIA에서만 쌓았으며, 통산 최다 선발 등판과 선발승이라는 기록에 2017년 한국시리즈 우승, MVP와 골든글러브 및 다승왕과 평균자책점왕 등 수상 실적도 있다. 구설수라 할 만한 것도 없으므로 무사히 은퇴한다면 확정에 가깝다.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반 국가대표 투수이자 투수 4관왕까지 올랐던 윤석민이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으나 부상을 겪으며 단명했다. 타자 중엔 고졸 신인으로 주전에 입성하며 커리어를 쌓은 안치홍이 유력했으나 FA로 이적하게 되며 불투명해졌고, 한국시리즈 7차전 끝내기 홈런을 쳐 MVP 석권과 동시에 우승을 이끌었던 나지완도 갑론을박은 있었지만 그 외의 임팩트는 없던 탓인지 은퇴 후에는 잠잠해졌다.

2.6. MBC 청룡 / LG 트윈스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c30452><tablebgcolor=#c30452> 파일:LG 트윈스 엠블럼.svgLG 트윈스
영구 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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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O_Retired_LG_41_svg.png 파일:KBO Retired LG 9.png 파일:KBO Retired LG 33.png
김용수
(1999.04.19.)
이병규
(2017.07.09.)
박용택
(2022.07.03.)
선수명 하단 일자: 은퇴식 및 영구 결번식 진행일
}}}}}}}}}}}} ||
LG 트윈스 영구 결번
41
김용수
LG의 유이한 한국시리즈 MVP이면서 KBO 리그 역대 최초로 100승과 200세이브 기록을 동시 달성한 LG 구단 역대 최고의 투수로, 한창 활동하던 시기에 일찌감치 영구 결번된 유일한 사례이다. 또한 KBO 리그 최초로 영구 결번식을 치른 선수이기도 하다.
LG 트윈스 영구 결번
9
이병규
90년대-00년대-10년대를 모두 거치며 활약한 구단 역대 최고의 타자 레전드. 영구결번 당사자가 은퇴 후 코치로 팀에 복귀하면서 해당 번호를 다시 재사용하기도 했다. 참고로 사망으로 야구 커리어가 끝난 김영신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KBO 리그의 영구결번 선수 중 KBO 우승 경험이 없는 선수가 되었다. 일본시리즈 우승을 경험해봤기에[96]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이 없을 뿐 우승 경험 자체는 있다.
LG 트윈스 영구 결번
33
박용택
LG에서만 19년을 뛴 원클럽맨이자 프랜차이즈 스타로 은퇴 시점에서 리그 유일의 2500안타 및 통산 최다안타 기록을 보유한 선수. 2020 시즌을 끝내고 은퇴했으나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경기장의 관중동원에 제약이 가해진 관계로 은퇴식 및 영구결번 지정이 바로 이뤄지지 못했다. 차명석 단장이 "박용택의 영구결번식과 은퇴식은 코로나사태 이후 만원관중 앞에서 진행하겠다."라고 일찌감치 언급했고 박용택 본인도 이를 원해 2022년 7월 3일에 이르러서야 만원관중과 함께 은퇴식을 치르며 공식적으로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97][98] 참고로 김영신을 제외하고 선수 커리어 중 클럽 우승이 단 하나도 없는 유일한 영구결번 선수이기도 하다.[99] 그리고 박용택의 33번은 이 날을 계기로 정점을 찍었는데, 야구에 입문할 때부터 은퇴까지 오로지 33번만 달았기 때문이다.[100]

현역 선수로는 어린 나이부터 팀의 주전 유격수를 맡아 꾸준히 누적을 쌓아온 오지환이 후보로 언급된다.[101] 이전에는 아직 영구결번 급까지는 이르다는 의견이 중론이었으나, 비FA 다년계약으로 2029년까지 연장하면서 사실상의 종신 계약을 맺게 된 데다 2023년 한국시리즈에서 LG의 29년 만의 우승을 이끌고 MVP까지 차지하는 활약을 보여주며 여론을 뒤집었다. 그동안 LG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좋은 활약에도 불구하고 끝내 얻지 못했던 한국시리즈 우승 커리어를 단숨에 달성하면서 영구결번의 확률이 급격히 올라간 셈. 선수 생활 한창 때 등번호를 바꾼 것이 좀 치명적이라는 의견이 많으나, 은퇴 직전에 바꾼 것도 아니고 정민철의 사례에서 보이듯 등번호를 바꾼다고 영구결번이 되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세이버매트릭스가 보편화 되면서 오지환에 대한 평가 조금씩 더 오르고 있는 것도 호재다.

이밖에 오랜 기간 임시 결번이었던 이상훈의 47번[102], 유일무이 4할 타자이자 팀의 첫 우승 감독인 백인천과 90년대 최고의 포수로 꼽히는 김동수의 2번, 시대를 대표하는 좌타자였던 김재현[103] 당대의 슈퍼스타로 올드팬들의 많은 지지를 받는 김재박의 7번이 영구결번 후보로 거론 된다.

2.7. SK 와이번스 / SSG 랜더스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ce0e2d><tablebgcolor=#ce0e2d> 파일:SSG 랜더스 엠블럼.svgSSG 랜더스
영구 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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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sg_pkw26_white.png
박경완
(2014.04.05.)
선수명 하단 일자: 은퇴식 및 영구 결번식 진행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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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G 랜더스 영구 결번
26
박경완
이만수의 계보를 이은 KBO 리그 역대 최고의 포수 중 한 명이며, KBO 리그 역사상 원클럽맨이 아닌 선수가 영구 결번을 받게 된 세 번째 사례다. 다만 최동원양준혁은 팀의 연고지에서 자란 프랜차이즈 스타이며, 본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팀을 떠났던거라, 사실상 원클럽맨에 준하는 선수들이다. 반면 박경완은 인천 출신도 아니고 쌍방울 레이더스현대 유니콘스에서도 맹활약했기에 위 두 명과는 다르게 SK 와이번스만의 색깔이 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현대 시절에는 포수 최초의 20-20과 더불어 2000년엔 단일 시즌 40홈런, 정규 시즌 MVP 수상 등 굵직한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박경완 역시 최동원이나 양준혁과 마찬가지로, 현대에 처음 트레이드됐을 때 원치 않는데 강제로 트레이드된 케이스라 참작이 된다.[104]

다만 SK에서도 11년간 뛰면서 한국 시리즈 3회 우승의 주역으로 팀을 이끌었고, WAR이 가장 높았던 시즌 또한 SK 소속이던 2004년이므로 상징적인 측면에서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한 팀의 레전드로 보기에는 살짝 애매할지 몰라도, KBO를 대표하는 포수 계보를 잇는 선수이기도 하며, 이 점도 무시 될 수 없다. 또한 그의 전 소속팀들인 쌍방울과 현대가 모두 해체 수순을 밟으면서 SK 입장에서는 별다른 논란 없이 박경완을 영구결번시킬 명분을 가지게 되었다. 게다가 SK와 인천야구가 각각 쌍방울-현대와 복잡한 관계로 얽혀있는 것도 감안해야한다.[105][106] 그가 쌍방울 시절 현대로 원치 않는 트레이드를 당하지 않았다면 해체 후 자연스럽게 SK 선수가 되었을 것이다.

2021년 1월 26일자로 SK 와이번스의 매각이 공식 발표되었다. 신세계가 인수 예정으로 인해 박경완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SK 와이번스 영구결번으로 남게 되었으며, SK의 역사를 그대로 계승하는것이 확정되어 인수 후에도 영구결번은 이어진다.

향후 영구결번이 매우 유력한 후보로 최정김광현이 있다. 두 사람 모두 팀 내 위치는 말할것도 없고, 지금 당장 은퇴해도 KBO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을 기록을 쌓아올린 선수들이다. 최정은 이미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3루수이자 우타자로 자리잡았고, KBO 우타자 통산 홈런 1위에, 역대 야수 WAR도 전체 1위이다. 김광현은 중간에 미국 진출로 공백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비율은 물론 누적 기록도 역대급으로 쌓아가고 있기에[107] 팀 역사에 먹칠을 할 만한 중대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108] 사실상 영구결번 확정.

그 외에도 김강민이 영구결번 후보로도 거론되기도 한다. 20년 이상 긴 역사를 자랑하는 원 클럽 플레이어라는[109] 점, 가장 오랫동안 0번의 등번호를 달고 있어 상징성이 있다는[110] 점을 들어 영구결번이 되어야한다는 의견과 아무래도 누적 성적이 영구결번급까지는 아니기에 힘들 것으로 보는 의견이 혼재한다. 그러나 2022년 한국시리즈에서 나이를 잊은 대활약으로 팬들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고 평소 타에 귀감이 되는 선수생활로 팬들은 물론 후배선수들도 극찬을 아끼지 않는[111] 선수라는 점에서 영구결번 가능 논란이 조금씩 잦아들고 오히려 점점 영구결번 지정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대안으로는 0번을 상징성 있는 번호로 만들어 후계자에게 물려주자는 의견도 존재하지만, 새로 등장한 주전 중견수 최지훈이 54번을 달고 잘 뛰고 있어 굳이 등번호를 바꿀 가능성은 높지 않다.[112] 그러나 2024년도 2차 드래프트로 한화로 이적하게 되면서 영구 결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졌다. 하술할 다른 후보들과 달리 자발적 이적은 아니라 가능성은 남아있지만 개인 문서에도 나와있듯 다른 사례[113]를 감안하면 이 둘이 누적기록이 압도적이라 전망이 밝지는 않다.

사실 SK 왕조 시절의 주역이자 KBO 역대 최고의 2루수라 칭해졌던 정근우나, 왕조 시절 벌떼야구의 중심으로 여왕벌 이라는 별명을 가지며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과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 헹가래 투수 였던 정대현, 역시 왕조의 핵심 계투이자 이적 후 투수[114] 최다 출장 기록 및 순수 계투 최다 이닝 기록[115] 보유자가 된 정우람, SK 원년 멤버[116]로 SK 최초의 준우승과 우승을 함께 했고 국가대표로도 국민우익수란 별명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이적 후 통산 2000경기 출장과 2000안타를 달성한 이진영, SK에서만 200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했고 왕조 시절 락커룸 리더로서 맏형 역할을 충실히 했던 이호준 등이 타팀 이적 전까지 이적을 안한다면 영구결번될 수 있는 후보들로 간주되었으나, 모두 FA를 통해 타 팀으로 자발적으로 이적하여 불가능하게 되었다.

3. 임시 결번

영구 결번 외에도 일시적으로 번호를 비워 놓는 임시 결번 제도가 암묵적으로 존재하는데 이는 해외 리그 진출로 인해 팀을 떠난 선수의 번호를 비워 놓는 것을 비롯해 여러 가지 사례가 있다. 거의 준영구 결번 대우를 받지만 임시 결번이 반드시 영구 결번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고 금방 해제되는 경우도 있다.[117][118][119][120]
키움 히어로즈 임시 결번
7
김하성
키움 히어로즈 임시 결번
16
강정호
키움 히어로즈 임시 결번
51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임시 결번
52
박병호

2020 시즌이 끝나고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떠나면서 임시 결번으로 남게 되었다. 강정호처럼 중대한 사고를 치는 일 없이 키움에 복귀해서 은퇴한다면 영구결번이 될 가능성도 꽤 높으나, 박병호의 선례 때문에 키움 구단이 김하성을 키움에서 은퇴시킬 의지가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상당히 제기되는 편.

2021 시즌이 끝나고 조상우가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했고, 그의 등번호 11번을 임시결번처리했다. 이후 그가 복무를 마치고 복귀하자 다시 11번을 가져갔다.

2023시즌 이원석키움 히어로즈로 트레이드되면서 기존의 자신의 번호인 16번이 아닌, 트레이드 대상이었던 김태훈의 17번을 달았는데, 이는 구단 차원에서 해외로 진출했던 7번, 16번, 52번[121]을 관리중이라고 밝혔다.[122]

2023 시즌이 끝나고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떠나면서 임시 결번으로 남게 되었다.

2024 시즌부터 군복무를 시작하는 안우진의 등번호를 군복무가 끝날 때까지 임시결번을 할 예정이다.

현재로서는 김하성과 이정후가 키움에서의 선수생활을 은퇴할 경우 영구결번의 가능성이 있다.

롯데 자이언츠 임시 결번
20
임수혁

2016년 최영환이 20번을 사용한 것을 마지막으로 롯데 자이언츠 어느 선수도 20번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진승현아버지의 현역 전성기 시절 등번호를 이어쓰고자 20번을 쓰겠다는 뜻을 표했지만 구단에서 20번 요청을 반려하며 구단 차원에서 비공식 결번으로 관리중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3.1. 비공식 임시 결번

구단에서 공식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KBO 리그를 알고 있으면 그 선수를 위해 비워둔 번호인 걸 알 수 있는 번호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박한이의 33번이다.
삼성 라이온즈 비공식 임시 결번
33
박한이
20년 가까이 '꾸준함의 대명사'로 불리면서 삼성에서 활약하여 영구 결번 직전까지 갔으나 2019년 숙취운전으로 인한 불명예 은퇴로 은퇴식을 비롯한 행사가 열리지 않아 쓸쓸한 황혼기의 끝을 맞았다. 하지만 그 이후로 3년 넘게 박한이의 33번은 아무도 달지 않고 있으며 선수 본인이 코치로서 복귀해서도 33번을 쓰지 않고 74번을 쓰고 있다. 그래서 33번은 현재 삼성에서 사실상 준영구 결번 대우를 받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4. 여담

영구결번은 팬들이 해당 선수를 기릴 수 있고 선수들에게는 동기부여가 된다는 장점도 있지만 영구결번이 너무 많아지면 현역 선수들이 사용할 수 있는 등번호가 없어진다는 문제점이 있다.[123] 물론 KBO 리그 기준으로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약 몇백년 뒤의 일이기는 하지만, 결국 번호 부족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124] 물론 세자리수 등번호를 사용하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125]

다만 영구결번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MLB의 경우도 구단별 명예의 전당이 존재하지만 영구결번까지 되는 선수와 관련자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팀의 최상위 레전드들에게 주어지는 영광이기에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것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며, 선수들에게도 보다 큰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다른 얘기로, 팀이 해체된 쌍방울 레이더스현대 유니콘스가 존속했다면 영구 결번을 받았을 선수로 김기태[126]정민태[127], 정명원[128] 혹은 감독으로 김재박 등을 꼽기도 한다.

[1] 성적이나 공헌도가 아닌 추모의 의미로 영구적으로 결번한 유일한 예외 경우다.[2] 영구 결번이 해제된 이유로 1994년 OB 베어스 항명파동으로 구단의 명예에 먹칠을 하고 불명예 퇴진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대중적으로 유명하다. 다만 1993년 입단식을 한 강혁에게 주기 위해 10번을 해제했다는 말도 있다. 어떤 이유든지 간에 윤동균의 10번은 영구 결번에서 완전히 해제되었고, 2023년 기준으로는 박지훈이 달고 있다.[3] 참고로 롯데와 같은 모기업을 둔 자매 구단 치바 롯데 마린스의 경우 아예 영구 결번이 단 한 명도 없다. 한 평생을 치바 롯데에서만 뛰며 2000안타까지 달성한 원클럽맨이자 출신지도 치바현이라 치바의 긍지라고까지 불리는 후쿠우라 카즈야, 역시 원클럽맨으로 '미스터 롯데'로 불린 아리토 미치요마저도 영구결번을 부여받지 못했는데, 이는 팀의 레전드들이 남기고 간 상징적인 번호를 결번하는 대신 팀내 에이스들에게 물려주는 일본프로야구의 등번호 문화와 관련이 있다. 이는 퍼시픽리그 쪽이 특히 심한데, 구단에서 뛰었던 선수의 등번호를 공식적으로 영구결번한 구단은 세이부와 지금은 없어진 킨테츠뿐이다. 소프트뱅크, 치바 롯데, 오릭스는 공식적인 영구결번 자체가 없고 준영구결번으로만 기념하며, 라쿠텐은 구단 역사가 짧긴 하지만 선수가 아닌 감독 호시노 센이치의 등번호만 영구결번 되어있고, 닛폰햄은 선수들은 어지간하면 달지 않을 100번을 구단주 몫으로 영구결번한게 유일하다.[4] 박경완의 경우 쌍방울과 현대라는 옛 소속팀 자체가 아예 없어진 케이스라 해준 것이 크기도 하며, 쌍방울 해체 직후 SK가 쌍방울의 선수단을 인수했기 때문에 현대로 트레이드되지 않았다면 그대로 SK 선수가 되었을 것이라는 점도 크다. 또한 이종범이나 이승엽처럼 해외 진출 경력자도 자의로 간 것이지만 해외 구단은 KBO 리그와 별개의 리그이기도 하고 구단도 자팀의 에이스가 더 큰 물로 진출하는 것을 선수와 구단의 명예로 생각해서 이적을 도와주므로 타 팀으로 이적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5] 없는 건 아니고 부산에 2026년 완공 예정인 명예의 전당이 지어지는 중이다.[6]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이라는 흑역사가 있지만 국내 리턴 당시 구단 측에서 성대한 환영 행사를 열어준 것을 보아 구단 내에서는 크게 신경쓰진 않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삼성에서 투수 영구결번이 없기도 하고 마무리인데도 WAR이 삼성 역대 투수들 중 1위로 압도적인지라 영구결번에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7] 상술한 5명 중 최정 제외 전부 미국에 다녀왔다.[8] 중간 4시즌 NC 다이노스로 이적을 했지만 기존의 두산에서 남긴 커리어도 충분히 뛰어날 뿐더러 두산팬들의 여론과 두산에서의 양의지가 가지는 파급력이 크기때문에 계속 좋은 성적을 유지한다면 영구결번도 가능할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두산에서 양의지를 거액에 컴백시킨 이유 중 하나도 영구결번을 주기 위해서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9] 2008년 창단. 후보로는 강정호, 서건창, 박병호 정도가 있었으나 강정호는 거듭된 음주운전으로 야구 커리어가 불명예스럽게 끝나버렸고, 서건창은 LG에 트레이드 됐으며, 박병호는 FA로 kt로 이적해버렸다. 그러나 박병호도 이후 다시 히어로즈로 복귀한다면 구단 첫 영구결번이 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이외에 가능성이 남아 있는 선수라면 김하성이정후, 안우진 정도다. 특히 메이저 진출에 성공한 김하성, 이정후가 복귀 후 이적없이 히어로즈에서 은퇴한다면 영구결번이 확정적이다. 다만, 구단의 공식 답변에 의하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세 명이 사용했던 7번, 16번, 52번은 그들의 노력을 존중하기 위해 비공식 영구결번 처리 중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원석이 키움에 트레이드로 입단할 때 삼성에서 사용했던 16번을 사용하지 못하고 17번을 달게되었다. 또한 이숭용도 계보는 이어지지 않았어도 사실상 원클럽맨인 상징성으로 구단측이 영구 결번을 제안했지만 이숭용은 본인이 거절하면서 무산됐다.[10] 2011년 창단. 창단 멤버들 중 후보로는 나성범, 박민우, 구창모 정도가 있었으나 박민우는 SNS를 비롯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여론이 나빠졌고, 나성범은 FA를 통해 KIA로 이적하며 가능성이 거의 없어졌다. 다만 박민우는 나성범을 비롯한 다른 프랜차이즈 선수들이 이런저런 루트로 팀에서 사라지는 와중에 NC와 장기계약을 맺고 잔류하면서 팬들에게 이미지가 많이 회복되었고 2023시즌 성적도 어느정도 반등에 성공하면서 가장 유력한 영구결번 후보로 꼽힌다. 구창모 역시 창단 멤버로 다년 계약을 맺어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 역할을 하고 있으나 거듭되는 부상이 커리어에 걸림돌로 작용하기에 부상 없이 좋은 성적을 거두어야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이재학이 100승을 채우고, 팀의 우승을 이끈다면 가능성이 있다.[11] 2013년 창단. 강백호가 2021 시즌 이전의 성적을 커리어 내내 kt에서만 기록한다면 영구결번 가능성이 높으며 그 밖에 초창기부터 함께한 원클럽맨 고영표가 언급되기도 한다. 김재윤도 고려대상으로 적혀 있었으나, FA로 삼성으로 이적해버렸다.[12] 다만 현대는 정명원의 28번이 해체 전까지 비공식 영구결번이었다. 그 외에 두 팀이 해체되지 않았다면 현대는 정민태전준호(1969)[129], 이숭용, 왕조의 감독 김재박 등이 영구결번으로 지정됐을 것으로 꼽힌다. 쌍방울은 팀의 굳건한 지주였던 김기태조규제, 김원형이 영구결번으로 지정될 만한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볼 수 있다.[13] 자세한 사항은 이 문서 참조.[A] KBO 리그 한정[15] 은퇴식과 영구 결번식에 대한 개념이 불분명하던 시절이었고 일본에서 현역 생활을 유지하기로 했기에 별도의 은퇴식이나 영구 결번식이 없었다. 아울러 후술하겠지만 구단이 해태에서 KIA로 넘어가면서 스리슬쩍 영구 결번이 해제될 뻔 했다.[16] 다만, 은퇴식은 경험하지 못했다.[17] OB 시절인 1997년 은퇴했으나, 영구 결번 지정식은 2002년에 열려 두산으로의 구단명 변경 후에 이루어졌다.[18] 은퇴식을 먼저 하고 나중에 영구 결번 지정식이 열렸다. 은퇴식은 1997년 4월 29일에 열렸고 영구 결번 지정식은 2002년 4월 5일에 열렸다.[A] [20] 베어스의 창단 원년부터 21번을 달고 뛰었고, 은퇴 후 영구결번 지정 전까지도 21번은 공번 상태였기 때문에 베어스 역사상 유일하게 21번을 단 선수로 남게 됐다.[21] 후술하겠지만 삼성에서 쫓겨나다시피 현역 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결국 삼성과의 관계 개선이 이뤄지지 못한 상황에서 은퇴식과 영구 결번식 없이 팬들의 요구로 영구 결번에 지정됐다. 다만 라이온즈 구단 역사상 22번을 달았던 선수는 이만수가 유일하다.[22] 영구 결번 지정식은 2005년 9월 15일에 열렸다.[23] 영구 결번 지정식은 2009년 9월 12일에 열렸다.[A] [25] 영구 결번 지정식은 2009년 9월 23일에 열렸다.[26] 양준혁의 영구 결번이기도 하지만 삼성의 레전드 타자이자 양준혁의 대구상고 선배인 장효조의 삼성 시절 등번호이기도 했다. 양준혁은 "장효조 선배님과 공동 영구 결번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여러 번 밝힌 바 있다.[27] 다만 선수 생활의 80% 이상을 삼성에서 했고 대구 출신의 슈퍼스타인데다 타 팀으로의 이적도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진행됐기 때문에 저니맨보다는 삼성맨 이미지가 매우 강하다.[28] 최동원의 사망 이후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서야 영구 결번 지정 계획이 확정됐는데 후술하겠지만 이 과정에서도 롯데 구단이 미온적으로 움직이는 바람에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영구 결번 지정식은 2011년 9월 30일에 열렸다. 참고로 이 날은 최동원이 한국시리즈 역사상 최초로 9이닝 완봉승을 거둔 날이기도 하다.[29] 익히 알려진 것처럼 최동원은 트레이드 통보 직후 "롯데는 떠나도 부산은 못 떠난다"며 삼성으로의 합류를 거부하다시피 했고 우여곡절 끝에 삼성 유니폼을 입었던 최동원의 말년은 사실상 흑역사에 가깝다.[30] 영구 결번으로 지정된 선수 중 김영신을 제외하고, 영구 결번 지정 구단에서 가장 짧은 기간(6시즌) 동안 활약한 선수다. 다만 프로야구가 탄생하기 전에 이미 실업야구 선수 생활을 했고 롯데에서 뛴 6시즌 동안 최종우승을 포함한 불멸의 기록을 숱하게 쌓으며 부산=롯데=최동원이라는 이미지를 충분히 심어줬기 때문에 팬들은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년에 최동원과 사이가 나빴던 구단이 결번을 안 하려는 태도를 보여 팬들이 비난을 날릴 정도였다.[31] 영구 결번 지정식은 2012년 5월 26일에 열렸다.[A] [33] 영구 결번 지정식은 2014년 4월 5일에 열렸다.[34] 1998년 현대로의 이적은 박경완 본인의 의사와 무관한 이적이었다. 당시 구단 경영난이 극에 달했던 쌍방울이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박경완을 팔았고 졸지에 고향을 떠나야 했던 박경완도 "현대에 가기 싫다"며 오열했다고 방송(OBS 불타는 그라운드)에서 스스로 밝혔었다. 2003년 SK로의 이적은 은사 조범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본인이 스스로 SK 유니폼을 찾아 입은 케이스다. 따지고 보면 쌍방울은 SK와, 현대는 인천과 연관성을 가지기에 소속팀들이 다 인천 연고의 SK와의 연관이 있기도 하다. 인천이나 SK와 무관한 팀은 가지 않았던 것. SK는 옛 쌍방울 선수단을 기반으로 재창단한 팀이기에 박경완 입장에서 낯설지 않은 팀이었다. 특히 이적 당시에는 평생 친구 김원형을 비롯해 김기태, 조원우, 최태원 등 옛 쌍방울 출신들이 많았다.[A] [36] 2007년 일본시리즈 우승 경험은 있고 한국시리즈도 1997년 한국시리즈, 1998년 한국시리즈, 2002년 한국시리즈 출전 경험이 있다.[37] 2003년 시즌 종료 후 이승엽이 해외 진출을 도모할 때 김재하 당시 삼성 단장이 "은퇴하면 무조건 영구 결번을 시켜주겠다"고 공언했고, 꼬박 14년이 지난 2017년 10월 3일에 영구 결번이 공식 지정되었으며, 당일 은퇴경기 및 은퇴식이 함께 열렸다.[A] [39] 영구 결번 지정식은 2021년 5월 29일에 열렸다.[C] 은퇴경기 특별엔트리 적용[A] [42] 한국시리즈 출전 경험은 2006년 한국시리즈가 유일. 2010년 일본시리즈 우승 경험이 있다.[43] 영구 결번 지정식은 2022년 7월 3일에 열렸다.[C] 은퇴경기 특별엔트리 적용[45] 한국시리즈 출전 경험은 있다. 2002년 한국시리즈가 유일. 김영신을 제외하면 영구결번 중 유일하게 리그 우승 경험이 없다. 한국시리즈 우승이 없는 이병규, 김태균, 이대호는 모두 일본시리즈 우승이 있다.[46] 영구 결번 지정식은 2022년 10월 8일에 열렸다.[A] [48] 한국시리즈 출전 경험이 있는 이병규, 김태균, 박용택과 달리 이대호는 소속팀 롯데의 약한 전력 탓에 한국시리즈 출전 경험조차도 없다. 한국에서 가장 높게 올라갔던 포스트시즌 스테이지는 2011년 플레이오프. 다만 2014년 일본시리즈2015년 일본시리즈에 출전해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2015년에는 일본시리즈 MVP까지 수상했다.[49] 다만, 추모의 이유라는 점에서 다른 영구 결번 선수와는 약간 다르게 취급되는 편이다. 홈구장인 잠실야구장에도 구단 2호 결번인 박철순만 영구결번 깃발이 걸려 있고, 1호 결번인 김영신은 깃발이 따로 걸려 있지 않다.[50] 또한 매년 올라오는 선수단 등번호 명단에도 박철순은 표기를 하지만 김영신은 따로 표기가 되어 있지 않고 공란으로 있다.[51] 윤동균 이후 처음으로 10번을 달게 된 선수는 1998 시즌의 문희성이다. 이후 두산으로 이름이 바뀐 1999년부터 은퇴한 2006년까지는 43번을 달았다.[52] 그나마 소수의 팬들이 조촐하게 호프집에서 비공식 은퇴식을 열어준 것이 고작이었으며, 본인이 KBO와 국가대표팀에서 남긴 족적을 생각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이후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에 선정되면서 시상을 위해 은퇴후 9년만에 잠실구장 그라운드를 방문해 팬들 앞에 섰다.[53] 홍성흔은 FA로 이적한 롯데에서 커리어하이를 맞았으며, 다시 복귀한 두산에서의 말년이 매우 초라했음에도 두산에서 은퇴하였고 두산 구단 측에서 성대한 은퇴식을 열어줬으나, 나머지 3명은 모두 다른 팀에서 은퇴하여 두산에서 은퇴식조차 치르지 못했다.[54] 여기가 중요한데, 대한민국 스포츠계 모든 종목의 외국인 선수 최초의 영결은 HL 안양패트릭 마르티넥이 있다.[55] 당시 두산 프런트쪽도 오퍼를 하고 싶었으나, 모기업 측에서 자금난을 이유로 받아들이지를 못했다고 한다.[56] 보장은 4년이지만, 나머지 2년은 선수 옵션이기 때문에 건강하게만 뛴다면 굳이 이 옵션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57] 심지어 2020년 한국시리즈 상대가 친정팀 두산으로, 양의지는 친정팀을 상대로 비수를 꽂으며 눈앞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58] 1995년, 2001년 우승을 안겼으며 2000년에는 준우승을 기록했다.[59] 2015년, 2016년, 2019년 우승을 안겼으며 KBO 사상 최초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이라는 대기록도 작성했다. 각각 2017년, 2018년, 2020년, 2021년은 준우승을 기록했다.[60] 2023시즌 기준으로 김인식 감독의 81번은 정수성 코치가, 김태형 감독의 88번은 정진호 코치가 사용중이다.[61] 물론 정수빈은 데뷔 시즌부터 내리 31번을 달았지만 허경민은 데뷔 시즌엔 40번, 군 제대 이후 6번을 달았고 13번을 달게된것은 기존 주인이었던 손시헌이 팀을 떠난 2014년이다.[62] 대표적으로 김형준 기자 겸 해설위원도 롯데의 영구결번 기준이 박하다고 직접 언급하고 이에 진행자들이 동조하기도 했다.#[63] 단, 최동원은 롯데역사상 단 두번뿐인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궈냈으며, 그 우승은 본인이 말 그대로 선수생명을 갉아가며 투혼으로 만든 원맨쇼 그 자체였다.[64] 선동열의 29완봉에 이어 정민철과 함께 공동 2위다.[65] 엘지 그 자체였던 이병규의 통산이 wRC+ 119에 WAR* 55다. 이병규도 엘지에서 우승을 못해봤으나, 이병규는 국가대표에서 맹활약을 했던 선수였고 무엇보다 저쪽은 수비력이 넘사벽이라서...[66] 수백, 수천 경기 연속으로 중계한 구장 아나운서나 해설자 등의 인물, 심지어는 연속 좌석 매진을 기념하기 위해 팬들에게 영구 결번을 만들어 준 경우도 있다.[67] 일반 선수들처럼 숫자 등번호나 타 구단 일부 단장처럼 한자로 된 등번호.[68] 이후 진승현은 0에 획을 하나 더 붙인 26번으로 등번호를 바꿨다. 마침 진승현보다 먼저 26번을 사용했던 DJ 피터스가 방출되면서 자리가 비어 있었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26번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69] 단순히 잘했다 수준이 아니라, 당시 KBO의 리그수준을 감안하더라도 그가 쌓은 통산 성적이 어마무시하다. 전성기 시절인 10년간은 말 그대로 리그를 폭격했으며, 말년에 스탯을 깎아먹었어도 통산 wRC+가 159다![70] 심지어 경기를 대패하고 있는 와중에 이만수가 대타로 나오기만 하면 방금까지 감독 선수 골고루 욕하던 아재들은 어디가고 우리 만수 나온다며 좋아하며 일어서서 경기를 지켜보았다.[71] 삼성(1993~1998)-해태(1999)-LG(2000~2001)-삼성(2002~2010)[72] 모두 리그 최정상 수준의 실력을 가진 전국구 슈퍼스타였고 KBO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수많은 기록들을 가지고 있다. 세명 모두 야수 통산 WAR 10위권 안쪽에 있는데, 양준혁은 1위에, 전성기 대부분을 일본에서 보냈던 이승엽은 3위에, 당시 경기수도 적고 주전 생활을 비교적 오래하지 못했던 포수 출신 이만수는 원년선수 출신임에도 아직 9위에 위치해있다. 삼성의 기준이 지나치게 높은게 아니라 리그 수준에서 봐도 높은 수준이다. 심지어 통산 war이 제일 낮은 이만수가 무려 65다![73] 박한이의 은퇴 전까지 삼성은 8번 우승했는데 박한이의 우승 반지가 7개다. 심지어 나머지 1회인 1985년은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한국시리즈가 개최되지 않았기 때문에 삼성의 모든 한국시리즈 승리에 기여한 것이다.[74] 이태양도 윤규진 못지 않은 정민철 빠돌이이다.[75] 이후 이태양은 트레이드로 잠시 팀을 떠났다가, 2023년에 FA로 복귀하면서 현재 정민철의 영구 결번인 23에 2를 곱한 46번을 쓰고 있다. 22번은 하루 먼저 FA로 이적한 채은성이 LG 시절 사용하던 55번을 뒤집어 사용하는 중.[76] 은퇴경기를 위해서 1군에 등록할 때 정원을 초과해도 등록이 가능한 제도. 등록된 선수는 다음 날 자동으로 등록이 말소되며, 남은 시즌동안 엔트리 등록이 불가능해진다.[77] 실제 영구결번이 되지 않았더라도 구단에 기여도가 높은 이들에 대한 대우는 타구단보다 매우 확실한 편이다. 롯데 출신 최동원도 한화 이글스 코치로 부임하면서 류현진을 탄생 시키는데 기여했는데 이러한 공과 한화 코치 경력을 고려해 사후 임직원 상에 준하는 장례식과 발생한 모든 비용을 한화그룹에서 지원했다.[78] 이정도 WAR이면 MLB에서도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는 수준이다.[79] 패가 많다고 부끄러운 기록이 아니다. 오히려 이 기록은 꾸준히 선수생활을 했다는 증거로 자랑스러워해도 된다. 실제로 미국의 최다 패 투수가[80] 이 역시 꾸준히 선수생활을 하다보니 생긴 기록이며 절대로 부끄러운 기록이 아니다. 최다 패전이던 최다 4사구던 기회를 받지 못 하면 얻을수 없는 기록이며 정말로 못해서 기록을 세울 정도라면 그 전에 쫓겨나고도 남는다.[81] 다만 최근 발언으로 프런트가 결정할 일이라 하는 것으로 보아 프런트와 충돌이 있는 듯.[82] 1993, 1996, 1997, 2009년. 이 중에서 1993년과 1997년은 한국시리즈 MVP를 받았다.[83] 타이거즈에서만 9번의 우승, 삼성 시절까지 포함하면 10차례나 우승을 이끈 감독으로 타이거즈 시절 등번호였던 39번과 70번 양 번호 결번도 이야기된다.[84] 누적 성적은 부족하지만, 원년의 슈퍼스타이자 초기 해태를 상징한다는 상징성이 있다.[85] 해태 왕조의 4번타자이자 김봉연 다음 1980년대 KBO 홈런왕 계보를 잇는 슈퍼스타였다.[86] 1989년에 데뷔하여 1996년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는 등 해태 왕조의 최전성기부터 마지막까지 함께했던 투수 KBO 유일의 10년 연속 10승 + 100탈삼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87] 이종범 이전까지 해태왕조의 1번타자이자 2021년 이의리 이전까지 타이거즈 최초이자 최후의 신인왕이었다.[88]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KBO의 최고의 3루수이자 클러치 히터로서 해태왕조의 한 축으로 활약했다.[89] 이종범과 함께 1990년대 해태 왕조를 이끌었던 선수이자 한대화 이후 KBO 3루수 계보를 이었던 선수이다.[90] 1990년대 말 해태와 2000년대 초반 KIA 타이거즈의 중심타자로 활약하며 9년 연속 3할을 기록했다.[91] 이강철, 이대진과 함께 1990년대 해태 마운드를 책임지며 선동열을 이은 해태의 에이스로 활약했다.[92] 해태 타이거즈의 후기 왕조 에이스로 활약했으며 이후 부상으로 하락세를 겪고 타자 전향을 시도하는 등 고난을 겪었으나 다시 마운드로 복귀하여 통산 100승과 함께 2009년 V10에 기여했다.[93] 이쪽은 해태 출신이기도 하고 통산 성적으로 봤을때는 손색이 없으나 사생활 논란이 있으며 중간에 삼성에서 활동했던 이력도 있어서 가능성은 낮다.[94] 원클럽맨이나 원클럽맨에 준하는 프랜차이즈 플레이어가 영구결번의 1순위 요건인데, 후자쪽이라면 이순철, 이대진 정도까지는 고려가 가능하지만 삼성 선수로서의 이미지도 강한 임창용이나 자의로 FA로 또는 트레이드로 이적한 이강철, 홍현우, 한대화, 장성호 등은 가능성이 그만큼 낮아진다. 개중에 이강철홍현우는 친정팀으로 다시 돌아와 선수생활을 마무리했으므로 두산 양의지의 결번 여부에 따라 다시 재평가될 여지는 있다.[95] 원래는 등번호 9번에 알맞게 9월 9일에 영구결번식을 가지려고 했으나 이때는 한창 팀이 순위싸움에 집중할 수 있으니 시기를 앞당겨달라는 이병규의 요청이 있었다.[96] 그것도 1954년이후 무려 53년만에 차지한 우승반지이기에 더 의미가 있다.[97] 언제까지 미룰 셈이냐, 적당히 타협하자는 팬들의 의견도 많았지만 마침 거리두기 완화로 4월부터 육성응원이 가능해졌고, 응원가와 등장곡 모두 이 날 사용 허가를 받아 어마어마한 떼창을 연출해냈다.[98] 그리고, 구단 유튜브에 올라온 박용택의 은퇴식에서 차명석 단장이 박용택에게 '너무 날씨가 좋다. 너무 늦었다.'라고 미안함을 표현했고, 이병규와 김용수 역시 참석하여 LG의 영구결번이 모두 모이는 풍경을 보여주었다.[99] 같은 해 은퇴한 김태균2010년 일본시리즈를 우승해봤고, 비슷한 처지의 이대호는 아예 일본시리즈 2연패에 일본시리즈 MVP까지 경험해봤다.[100] 프로 이후 방송계를 포함하면 2022년부터 방영 및 출연중인 최강야구 최강 몬스터즈에서도 33번을 계속 달고있다.[101] 실제로 박용택이 인터뷰에서도 차기 영구결번 후보로 오지환을 언급하기도 하였다.[102] LG 측에서 비공식 영구결번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2023시즌과 함께 김윤식이 이상훈에게 직접 번호 변경 여부를 허가받고 47번으로 바꾸게 되었다.[103] 그러나 김재현은 선수 생활 후반부를 SK 와이번스에서 보냈고, 2010 시즌을 끝으로 SK 와이번스에서 은퇴했기 때문에 영구결번을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104] 실제로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살림이 어려워진 쌍방울 구단이 조규제, 박경완, 김기태, 김현욱 등 팀의 주축 선수들을 불가피하게 타팀에 팔아야 했을 때 선수 당사자는 물론 선수단 전체가 매우 슬퍼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박경완 본인도 불타는 그라운드에서 부상 후 수술을 받아 선수생활을 함께 한 2년 선배 조웅천의 병문안으로 대화할 때 "형 그때 기억 나? 나 그때 현대 가기 싫다고 울고불고 난리치고 그랬잖아"라고 말했다. 조웅천은 당시 쌍방울 선수가 아니고 태평양 선수였다가 자연스럽게 바뀐 현대 선수였지만 박경완의 호남지역 선배라서인지 어릴때부터 고교 야구로 친분이 있었기에 두 사람이 통화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저 대화 후 "은퇴하면 형이랑 나랑 같이 코치해야지. 형 투수코치, 나 배터리코치."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말은 현실이 되면서 조웅천은 SSG에서, 박경완은 SK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가 염경엽 감독의 요청에 따라 LG로 이적하게 되었다.[105] SK는 공식적으로 쌍방울의 역사를 승계하지 않는다. SK가 쌍방울 레이더스를 인수하지 않았고 쌍방울 레이더스는 공식적으로 해체되었기 때문이다. 연고지 승계도 하지 않았다. 다만 쌍방울 구단 프런트는 그대로 승계받았고, 쌍방울이 해체되며 소속 구단이 없어지고 웨이버 공시된 선수들을 개별 계약으로 데려왔다. 즉 프런트는 이전 쌍방울 레이더스 직원이었던 것인데 박경완은 구단 재정상태 때문에 원치 않는 트레이드를 당했으므로 프런트에서 박경완에게 앙금이 남아있을리 없다. 쌍방울에서 그대로 SK로 건너온 팬들 역시 박경완에게는 좋은 감정과 미안한 감정만 남아있었다.[106] 현대는 SK 와이번스가 들어오기 전 인천 연고지를 맡았던 팀인데 인천 연고지를 버리고 떠나버렸다. 박경완의 경우 현대가 아직 인천 연고지였던 1998 시즌부터 현대에서 뛰었다. 그리고 이적 첫 시즌부터 포수 골든글러브를 받고 인천 연고지 팀 첫 우승을 이끄는 등 활약했다. 박경완이 현대 인천 연고지 시절에 뛴 것은 2년뿐이지만 인천 팬들에게는 좋은 인상을 심어놨다. 이후 박경완과 현대와 잡음이 있었다는 썰은 있지만 어디까지나 썰에 불과하고 애초에 현대가 인천 연고지를 떠난 이후라서 인천 야구팬들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게다가 인천 야구 팬들은 연고지 야반도주 사건으로 현대에 대한 적개심이 강하므로 더더욱 상관이 없는 상황. 그리고 현대가 인천을 떠나고 2년만에 박경완은 FA 자격을 얻어 SK로 이적하며 인천으로 돌아온 모양새가 되었으므로 인천 야구팬들에게는 많은 지지를 받을법도 하다.[107] 첫 FA 직전 시즌에 방송 인터뷰에서 "메이저리그 진출도 하고 싶고, 한국에 남아서 SK 레전드도 되고 싶어 고민이다"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한국에 있을 경우 다른 팀을 갈까말까하는 고민 자체가 없었다는 것.[108] 최정과 김광현은 리그 내 선수들 중에서도 품행이 가장 모범적인 선수로 꼽힌다. 심지어 둘 모두 겜덕후로 알려져 있어 술을 먹고 사고를 친다든가 음주운전을 한다든가 할 가능성도 낮다. 최정은 팬 폭행 사건이 있었으나 바로 해당 팬과 합의했고 이후에는 그럭저럭 묻히게 되어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광현은 2023년 WBC 대표팀 음주 논란이 일어나며 위기를 맞았으나 원래 알려진 것과 달리 경기에 지장을 줄 일은 없는 날 선수들끼리만 음주와 식사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마찬가지로 큰 지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109] 2001년 SK에 입단해서 [age(2001-01-01)]년째 같은 팀에서 뛰면서 2000년 SK 창단 이후 최장수 현역 선수로 활약 중이다. 선수단 전체로 폭을 넓혀도 김강민보다 1년 먼저 들어와서 선수로 18년, 코치로 4년째 근속 중인 조동화에 이어 근속기간 2위에 속한다.[110] 1990년대를 풍미했던 공필성과 함께 KBO 리그 역대 선수 중 등번호 '0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다.[111] 영구결번 후보들인 최정과 김광현도 한결같이 김강민에게 영구결번을 줘야한다는 언급을 했다.[112] 만약 김강민의 0번이 영구결번이 되지 않고 최지훈한테 물려준다고 하면 최지훈의 부담감은 막대할 것이다. 사실상 은퇴할 때까지 0번을 달고 뛰어야 하며 만약 바꾸었다가는 신인 시절 박재홍의 62번을 낼름 가져갔던 한유섬처럼 팬들한테 한 소리 들을지도 모른다.(한유섬이 박재홍이 물려준 62번을 개명과 함께 35번으로 바꾸자 팬들은 그 번호를 왜 바꾸냐며 불만을 표했고 박재홍 또한 한유섬이 자신에게 말을 하지 않고 바꾸었다며 아쉽다고 하였다.)[113] 최동원, 선동열. 타 종목을 포함하면 농구 이상민도 비슷하다.[114] KBO가 아니라 개인 기록으로 하면 한국 선수로는 일본과 미국 프로야구에서도 활동한 임창용이 1004경기로 타이를 이루고 있다.[115] 이쪽도 최고는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동한 오승환이 1000이닝을 넘겨서 독보적이지만, KBO만 치면 700이닝도 안 돼서 정우람이 더 많다.[116] 쌍방울 최후의 시즌이었던 1999년 데뷔했고 1년 후 선수단의 고용을 승계한 SK의 선수가 되었다.[117] 대표적으로 나성범이 FA가 되어 타 구단으로 이적하자 이전 소속팀 NC에서 예우의 뜻으로 2022 시즌 한정으로 나성범의 47번을 결번으로 둔다고 공식 발표했고# 처음부터 기간 한정 결번이었던 만큼 1년 후 바로 해제된 적이 있다.[118] 또 다른 예시로 LG 트윈스의 47번은 팀 레전드 이상훈이 선수 및 코치 재직시절 사용한 번호로, 이상훈이 SK로 트레이드된 이후에는 이형종, 서승화, 조윤준 등이 사용하는 등 임시 결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상훈이 코치로 복귀한 후 다시 47번을 사용했고, 코치직을 사임하자 차명석 단장이 비공식적으로 임시 결번 처리하며 이상훈이 다시 구단에 복귀할 때 47번을 부여할 예정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이후 실제로 꽤 오랫동안 임시 결번 상태가 유지되었으나 결국 2023년부터 김윤식이 47번을 달게 되면서 임시 결번에서 해제되었다.[119] 또한, KIA 타이거즈의 김선빈안치홍이 각각 상무 피닉스 야구단경찰 야구단에서 군복무를 하였는데 이 둘을 위해 군 입대 기간동안 둘의 번호인 3번과 8번을 임시 결번으로 처리했다. #[120] 이 외에 조금 특이한 예시로 롯데 자이언츠의 29번은 레전드 윤학길의 등번호였기에 2022년부터 준영구결번으로 대접받기 시작하며 비워두기 시작했지만, 2년만에 해제되어버렸다. 사유는 아직 선수 방출작업이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영입된 2024년 새 외국인 타자 빅터 레이예스가 당장 사용할 수 있던 등번호가 20번과 29번밖에 남지 않자 어쩔 수 없이 29번의 임시결번을 해제하고 레이예스에게 준 것.[121] 여기서 52번을 사용한 박병호는 현재 kt wiz 소속이다.[122] 해당 기사[123] 실제로 이런 이유로 스스로 영구결번을 거절한 선수도 있는데 바로 넥센 히어로즈이숭용이다. 후배들에게 자신의 번호를 주고 싶다는 이유로 구단측의 영구결번 제안을 사양했다.[124] 뉴욕 양키스의 경우는 120년 가까이의 역사를 보유했고,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선수가 많이 등장한 탓에 2022년 현재 영구결번으로 인해 한 자리수 등번호가 0번 빼고 남아있지 않다.[125] 이 방법을 사용하면 이론적으로 약 9천~1만년이 지나서야 번호 부족 문제가 발생하게 되니 그때까지 KBO리그가 유지되지 않는 한 번호 부족 사태는 생기지 않는다.[126] 삼성으로 이적하긴 했으나, 이는 재정악화로 인한 선수팔이였다는 점에서 쌍방울이 건재했으면 이적은 없었을 것임에 이견은 없다. 이후 김기태는 쌍방울의 후신인 SK로 이적해 은퇴했다.[127] 히어로즈에서 은퇴식을 한 후, 코치로 뛴 09~12년 동안은 비공식 결번이었다. 마지막에 싸우고 나간 탓에 해제[128] 은퇴 후 해체 전까지 실제로 비공식 결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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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현대에서 데뷔하진 않았지만 뛴 기간이 워낙 긴데다 역대 최다 도루를 기록하면서 은퇴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