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5 21:28:03

임창민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315288> 파일:NC_Emblem_Home.png NC 다이노스
2020 시즌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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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민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우리 / 서울 히어로즈 등번호 52번
팀 창단 임창민(2008~2009) 강병우(2010~2011)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46번
김수화(2011) 임창민(2012) 박동원(2013)
NC 다이노스 등번호 45번
조영준(2012) 임창민(2013~)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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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임창민_2020스캠.jpg
NC 다이노스 No.45
임창민(林昶暋 / Lim Chang-Min)
생년월일 1985년 8월 25일 ([age(1985-08-25)]세)
신체 183cm, 85kg
출신 광주광역시 남구
학력 광주대성초 - 광주동성중 - 광주동성고 - 연세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8년 2차 2라운드 (전체 11번, 현대)[1]
소속팀 넥센 히어로즈 (2008~2012)
NC 다이노스 (2013~)
병역 경찰 야구단 (2010~2011)
연봉 1억 6,000만 원 (20%↓, 2020년)
에이전트 리코스포츠에이전시[2]

1. 소개2. 아마추어 선수 시절3. 프로 경력4. 투구 스타일5. 말말말6. 여담7.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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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다이노스 소속의 우완 투수. 2010년대 중반 NC의 필승조 불펜 콰르텟 단디 4의 일원으로 김진성, 원종현, 임정호 등의 투수들과 함께 NC가 창단 이래 빠르게 리그 상위권으로 자리잡는 데 기여한 투수이다.

2. 아마추어 선수 시절

고교 시절 동기생 김주형과 함께 동성고에서 활약하며 고3 시절인 2003년 팀의 청룡기 우승에 한몫했다. 다만 결승에서 그간 던진 피로가 누적되면서 얻어맞기는 했지만, 상대인 순천효천고김수화 역시 혹사로 인한 피로로 무너지면서 팀이 역전승을 거두고 우승할 수 있었다. 어쨌든 이 때는 그리 주목받는 투수는 아니었기 때문에 연세대학교에 입학했다.

연세대학교에서는 2000년대 중반 에이스로 대학무대를 평정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6년 대통령배에서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했고 2007년엔 베이징 올림픽 2차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며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구속은 빠르지 않았지만 낙차 큰 커브에 대한 평가가 좋았다. 연세대 스포츠매거진 시스붐바 인터뷰

3. 프로 경력

그 결과로 2008년 신인 지명을 앞두고 고향 팀인 KIA 타이거즈의 1차 지명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KIA에서는 전태현을 1차 지명했다. 임거전 2차 지명에서 비교적 높은 순번인 2차 2순위(전체 11순위)로 현대 유니콘스의 지명을 받아 계약금 7,000만 원을 받고 입단했다. 2008년 현대의 해체 후 선수단을 인계하여 창단한 히어로즈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3.1. 넥센 히어로즈 시절

그런데, 프로 무대에서는 영 신통치 않았다. 2009년 잠깐 1군 무대에 나와서 1이닝 4차책점을 기록한 것이 전부. 평균자책점은 36.00이다. 2009 시즌을 마치고 경찰청에 입대했는데, 2010년 퓨처스리그 올스타에 뽑히기도 했다.

파일:external/sccdn.chosun.com/2012111901001190200098092.jpg

제대하고 넥센 히어로즈에 복귀했으나, 2012 시즌도 퓨처스리그에서 시작하였다. 2012 시즌 전반기 내내 퓨처스리그에서 선발 투수로 뛰면서 2점대 평균자책점의 준수한 성적을 보여 줬으나, 1군에는 올라가지 못했다. 당시 전반기 마지막에 넥센 1군 투수진이 거의 붕괴 수준이었는데도[3] 계속 2군 붙박이라서 김시진 감독의 소위 쓸놈쓸 야구의 피해자.[4] 시즌 후반기 1군에 콜업됐지만, 패전처리로 고작 4이닝만 던지고 2군으로 다시 내려갔다.

2012 시즌 종료 후 2012년 11월 18일 김태형을 상대로 차화준과 함께 NC 다이노스에 트레이드되었다. 이는 NC의 창단 첫 트레이드다.

3.2. NC 다이노스

3.2.1. 2013 시즌

파일:임창민_2013.jpg

2013 시즌 개막전 엔트리에는 빠지면서 2군에서 출발했지만, 4월 말부터 1군에 합류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 주면서 불펜이 약한 NC에서 가장 안정적인 불펜요원으로 활약했다. 5월 16일 롯데와의 사직 원정 경기에서는 9회에 올라와 2이닝 무실점으로 막으면서 팀의 8:5 승리와 함께 데뷔 첫 승의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기사에 따르면 임창민은 하루에 하체 훈련 200세트를 소화하는 등 이적 후 스프링캠프 때부터 이를 악물었고, 최일언 NC 투수코치도 실밥에 걸치는 손가락 각도까지 조언을 해주는 등 매우 작은 부분까지 교정을 해주었다고 한다.

6월 6일에는 마무리 투수로 첫 등판했다가 한참 흔들린 이재학을 대신하여 마무리로 올라와 9회를 안정적으로 막고 세이브를 기록했다. NC 팬 사이에서는 임창민을 놔두고 왜 이재학을 마무리로 시키냐고 난리난 상황. 이후 이재학이 선발로 복귀하고 이민호가 마무리로 돌아오면서 필승 셋업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후반기 들어서는 기존 마무리였던 바지마무리이민호가 있긴 했지만 손민한과 더불어 1, 2점차의 터프한 상황에서 마무리를 종종 맡았는데, 8월 18일 롯데전 9회말 이민호가 0⅔이닝 3실점으로 블론하고 난 뒤 올라와 승계 주자를 처리하고 1⅔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그 후 롱 릴리프로 보직이 변경된 이민호를 대신해서 손민한, 김진성과 더불어 마무리를 맡게 되었다.

8월 25일 SK전에서는 7회 초 앞서 등판한 이성민손정욱이 순수하게 볼넷으로만 주자를 채운 2사 만루 상황에 올라와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이렇게 불펜에서 에이스급으로 활약한 임창민이었지만 9월 들어서는 등판만 하면 홈런을 맞는 일명 홈런공장장이 되었다. 그래서 혹사로 인해서 힘이 떨어진 것이 아닌가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실제로 엠팍에서 나온 혹사 순위에 따르면 임창민은 10위권 내에 NC 투수 중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을 정도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NC의 불펜 중 2013 시즌 성적이 제일 좋았던 투수였다. NC가 7위를 차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선수 중 한 명이었다.

3.2.2. 2014 시즌

4월 15일 기준으로 6경기 3승 1패 평균자책점 6.43을 기록하였다. 전반적으로 막을 때는 그럭저럭 막지만 연투할 때나 4월 5일 넥센전 같이 털릴 때는 화끈하게 털리는 모습을 보였다. 여담으로 거둔 승만 3승으로 4월 16일 기준 NC다이노스 다승 1위다.

그 뒤로는 주로 털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작년 같은 필승조 역할을 하지는 못했지만, 긴 이닝을 소화하며 서서히 감을 찾아가고 있다. 6월 14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3이닝 세이브를 기록하기도 했다. 후반기 들어서는 작년같이 좋은 공을 던지며 필승조 자리로 올라가고 있고, 실제로 10월 10일을 기준으로 8,9,10월까지 모든 등판을 합해 실점이 단 3점이고, 자책점은 1점에 불과한 좋은 피칭을 하고 있다.

3.2.3. 2015 시즌

독감으로 인해 스프링캠프에서 중도하차해서 시즌 준비에 차질을 빚게 되었다.

4월 22일 첫 등판해 무실점 피칭을 했고, 3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김진성이 부상으로 이탈한 마무리 자리를 꿰차게 되었고, 28일 SK전에서 세이브를 따내며 318일만에 세이브를 기록하게 되었다. 황제 마무리에 이은 세자 마무리

의외로 마무리에서 김진성 못지않은 활약을 펼치며 아예 고정 마무리가 되었고, 김진성이 복귀한 후에도 셋업맨으로 밀어낼 정도로 활약하고 있다.황제 마무리를 계승하는 중입니다

이번 시즌 자신이 각성하게 된 계기가 오승환유리의 열애기사라고 한다. # 거기에 나온 오승환의 투구 폼을 보고 공을 던질 때 허리는 고정돼 있고, 상체는 최대한 늦게 나가더라. 내가 원한 폼이 완벽하게 되어 있었다. 라고 평하며 자신의 문제점을 파악한 이후 공이 잘 들어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땜빵으로 시작된 마무리였지만 예상외의 호투라고 쓰고 변태 투구라고 읽는다를 펼쳐서 8월 15일 현재 24세이브로 세이브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결국 2015년 세이브왕은 1개차로 삼성 라이온즈임창용에게 돌아갔다.

시즌 최종 기록은 61경기 64이닝 1승 5패 31세이브 21볼넷 72K ERA 3.80. 비록 임시 마무리로 시작했지만 그 역할을 기대 이상으로 수행하면서 팀 역사상 최초로 30세이브 투수가 되었다.
3.2.3.1. 2015 WBSC 프리미어 12
윤성환, 안지만, 임창용이 해외 원정 도박 혐의로 조사를 받으면서 낙마하자, 대체 선수로 장원준, 심창민과 함께 프리미어 12 엔트리에 승선하며 첫 국가대표 A팀에 합류했다.

11월 14일 멕시코전에 3이닝을 던지고 조기 강판된 이태양 다음으로 등판하여 1과 1/3이닝을 막고 홀드를 기록하였다.

11월 16일 쿠바전에 4와 2/3이닝을 던진 장원준 다음으로 등판하여 1이닝을 막고 승리 투수가 되었다.

11월 19일 4강 일본전 8회말 2사에 정우람 다음으로 등판하여 타자 1명을 잡고 이닝을 마무리하였고, 9회 초 이대호의 역전타에 이어 정대현이현승이 마무리하며 행운의 승리 투수가 되었다.

11월 21일 결승 미국전 7:0으로 이기고 있던 7회말에 등판하여 1이닝을 막았다.

3.2.4. 2016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임창민/2016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마무리 전업 2년차. 압도적이었던 시즌 초에 비해서는 후반기의 부진이 아쉬웠지만 전체적으로는 더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세이브 기회가 많이 나오지 않아 70이닝을 던지고도 26세이브 밖에 거두지 못한 것이 흠이라면 흠. 최종 성적은 70이닝 1승 3패 6홀드 26세이브 30볼넷 91K ERA 2.57. 한편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3구 던지고 승리 투수가 되면서 포스트시즌 최소 투구 승리 투수라는 기록까지 챙겼다.#

3.2.5. 2017 WBC

임정우의 부상으로 인해 대체 선발 되었다.

본선 1라운드 이스라엘 전 8회 구원 등판했다. 1구로 1아웃을 잡은 이후 볼넷을 허용했고, 2루타 까지 허용하며 1사 2,3루의 위기에 몰렸다. 결국 후속 타자를 고의사구로 걸렀고, 이후 3루 땅볼로 1아웃을 잡아내었다. 하지만 이닝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오승환과 교체되었다. 오승환이 삼진으로 이닝을 끝내며 실점은 없었다.

3.2.6. 2017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임창민/2017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번 시즌에도 29개의 세이브를 올리며 준수한 시즌을 보냈으나 두 시즌 연속으로 후반기에 들어 크게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 시즌 최종 기록은 60경기 66이닝 4승 3패 29세이브 23볼넷 62K ERA 3.68.

3.2.7. 2018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임창민/2018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시즌 초반 구위가 올라오지 않으며 2군으로 내려가게 되는 등 불안한 출발을 했다. 결국 5월 2일 팔꿈치 수술로 인해 시즌 아웃이 확정되었다라는 기사가 올라왔으나 구단에서는 당장 수술이 급하지 않다며 면담 후에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결국 임창민 본인의 뜻에 따라[5]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목표 복귀일자는 2019년 6~7월.

3.2.8. 2019 시즌

토미 존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재활 이후 근 1년 1개월만에 퓨처스리그에 출전하면서 실전 등판을 했다. 6월 9일 삼성 2군과의 경기에서 0.2이닝 동안 2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다. 패스트볼 구속은 138~140km/h가 나왔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1군 등판은 무리일 듯 하다. 이동욱 감독도 좀 더 지켜본 뒤 1군 콜업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6월 15일 이동욱 감독은 임창민의 복귀에 대해 "전반기는 힘들다"고 답했다. 선수 본인의 목표는 6월 말에서 7월 초였지만 감독의 말대로라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릴 전망.


전반기 종료를 앞둔 7월 14일, 정확히 1년 2개월만에 1군 엔트리에 등록되었다. 2군 기록이 8경기 6.2이닝 14피안타 4볼넷 5K ERA 12.15에 불과하나 7월에 등판한 세 경기에서는 2.2이닝 2피안타 2볼넷 3K 1실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당일 kt wiz와의 경기에서 4-1로 뒤진 9회 2사 상황에서 등판했다. 첫 타자 조용호에게 볼넷을 내주고 도루까지 허용하였고, 다음 타자인 송민섭에게 좌전 안타까지 맞았지만 좌익수 이원재의 정확한 홈송구로 실점은 막았다. 복귀 후 첫 기록은 0.1이닝 12구 1피안타 1볼넷 무실점. 최고구속은 142km/h밖에 나오지 않으면서 예전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다. 그냥 1군 복귀 이후 첫 등판이 무실점이었다는 데에 의의를 둬야 할 듯.

이틀 뒤인 7월 16일,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벌어진 한화 이글스와의 원정경기에서 3대 2로 앞서고 있는 8회 1사 상황에서 등판했다. 첫 타자 송광민을 유격수 땅볼로 처리하고 바로 최성영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0.1이닝 6구 무피안타 무사사구 무실점으로 1,019일만에 홀드를 기록했다. 로케이션도 상당히 좋았고, 최고구속은 144km/h까지 찍히면서 이틀 전보다는 컨디션이 올라온 모습을 보였다. 인터뷰에 따르면 팔꿈치 통증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수술한 모든 선수가 마찬가지일 거라며, 적응하겠다고 밝혔다.

[엠스플 인터뷰] ‘1군 복귀’ NC 임창민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7월 18일 경기에서는 7-4로 앞선 8회에 구원 등판했고, 선두타자에게 볼넷을 내줬으나 송광민에게 복귀 첫 탈삼진을 뽑아냈다.총 0.1이닝 무실점.

후반기 첫 경기인 7월 26일 키움 히어로즈전에서는 9회초 박석민의 극적인 쓰리런으로 4-4 동점이 된 9회말에 등판했다. 하지만 선두타자 박동원에게 바로 2루타를 맞더니 상대의 희생번트 때는 1루 송구가 약간 빗나가면서 박민우가 타자 주자와 충돌하게 만들더니 1사 3루 상황에서는 3루 견제가 그대로 빠지면서 끝내기를 헌납했다. 후반기 첫 경기부터 시원하게 말아먹으면서 1패 적립.

8월 1일 두산 베어스전에서는 2-2 동점이던 11회 무사 2, 3루에서 구원 등판했다. 첫 타자 허경민을 얕은 뜬공으로 잡아낸 후 김재호를 고의사구로 걸러내면서 만루 작전을 펼쳤지만 여기서 폭투가 나오면서 허무하게 역전을 내줬다. 다시 볼넷을 내주면서 만루가 되었지만 정수빈의 우익수 뜬공 때 제이크 스몰린스키가 정확한 홈 송구로 3루 주자를 잡아내며 이닝을 끝냈다. 하지만 팀은 3-2로 패배했다.

8월 11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1-9로 앞선 9회에 구원 등판해 삼자범퇴로 경기를 끝냈다.

9월 14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는 1-5로 앞선 8회에 등판해 삼자범퇴로 처리했다.

9월 25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3-2으로 뒤진 9회에 등판해 삼진 - 삼진 - 뜬공으로 삼자범퇴 처리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20경기 1패 2홀드 15이닝 14피안타 1피홈런 8볼넷 10K ERA 2.40. 복귀 초반에는 헤매기도 했으나 조금씩 안정감을 찾았고, 마지막 4경기에서는 4이닝 1피안타 4K 무실점의 좋은 모습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시즌 종료 후 경남CBS 인터뷰

4. 투구 스타일

파일:임창민슬라이더.gif
임창민의 슬라이더

최고 150km/h, 평균 142km/h의 우완 불펜으로서는 특출나지 않은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지만 구위가 뛰어나고 슬라이더와 스플리터의 각도 좋아 통산 K/9가 9.0를 넘어간다. 그러면서 코너 구석을 찌를 수 있는 제구력이 동반되면서 볼넷도 적게 준다. 단 주자를 쌓아놓고 경기를 마무리하는 날이 다수라서 어느 극장마냥 팬들을 쫄깃하게 하는 날이 있는데,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2017년 기준으로 피안타율이 2할대 초반은 정말 미스터리.[6] 이러한 스타일 때문인지 체력저하가 후반기에 빠르게 오는 편인데, 그러다 보니 전반기에 쌓아둔 기록을 후반기에 다 까먹는 경우도 생긴다.[7]

높은 공의 구사비율이 높은 편이며, 헛스윙을 유도하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다. 마무리를 맡기 전까지는 체인지업이나 커브 등 다른 구종들도 이따금씩 던졌으나 본격적으로 마무리를 맡게 된 후부터는 포심과 슬라이더 스플리터를 주로 구사하고 있다.

5. 말말말

세이브는 투수 개인이 아닌 팀 기록이니까요. 투수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승리도 세이브도 팀이 이겨야 주어지는 기록이잖아요. 투수는 팀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기 때문에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목표로 세워야지, 팀에 의존하는 목표는 세우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만약 제가 언젠가 세이브왕을 하더라도 그걸 제 기록인양 말하는 건 잘못된 일일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풀타임을 뛰고, 경기에 나가면 안정적인 피칭을 하는 걸 제가 할 수 있는 목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2016년 6월, 단기적인 목표는 무엇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세이브 갯수보다는 1군 풀타임 시즌을 보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며.
임창민, 늦깎이 1군 투수에서 '특급 마무리'까지
솔직히 그런 생각은 안 들었다. 난 야구를 하기 위해 재활했다. 병원에는 걷기 위해, 두 발로 서기 위해 재활을 하는 분들이 많았다. 작은 행복이 너무도 간절한 분들이 많은데 고작 야구공 던지기 위한 재활을 힘들다고 생각한다면 내 자신이 부끄러울 것 같았다.
2019년 7월, 긴 재활을 거치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돌아온 클로저’ NC 임창민이 재활로 느낀 세 가지
올 시즌에도 나만 잘하면 된다. 블론 세이브를 해도 부담은 없다. 내가 그 순간(세이브)에 나가야 한다면 팀의 최선은 나라는 말이니까 걱정하지 않는다.
2020년 2월, 베테랑으로서 불펜의 중심을 잡아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작년부터 그런 얘기들을 계속 들어왔다고 말하며
[IS 인터뷰] "두려움이 컸다"는 NC 임창민이 돌아왔다

6. 여담

  • NC 팬들이 붙인 별명은 임사장 또는 임변태이다. 전자는 분식회계를 잘해서 분식집 사장이나 하라는 의미였지만 이제는 좋은 의미로 사용 중이다. 후자는 마무리 상황에서 등판시 주자를 채워놓고 세이브를 하는 경우가 자주 벌어져 붙여진 별명이다. 진한 쌍커풀에 더해진 묘하게 에로한 눈빛도 이름값에 한 몫 하는 듯.
파일:임창민nc.jpg
  • 잘 생겼다. 쌍커풀이 있는 진한 눈매를 가지고 있는 미남으로, 총각 시절에는 팬들에게 티벳여우닮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 굉장한 달변가이며, 2016년 6월 장문의 인터뷰 기사, 2019년 부상 공백을 떨치고 복귀전을 치른 뒤 나온 인터뷰 기사 등을 보면 꽤나 진중한 타입인 것을 알 수 있다. 재활과정동안 느꼈던 스트레스를 언급하면서 자신보다 더 간절한[8] 사람들을 얘기하는 부분이라던지, 재활 중에 사직 야구장 원정직관, 홈구장 직관을 다녀왔던 소감들[9]을 얘기하는 부분 등을 보면 다방면으로 생각이 많은 타입으로 보인다. 평소 인터뷰에도 자신의 생각하는 바를 명확히 전달하는 편으로, 엔튜브 영상에서 룸메이트 박광열이 언급하기로는 운동선수 성격같지 않고 모르는게 없어서 정치인 성격 같다고 한다.
  • 재활기간 동안 지역의 불우한 이웃들을 많이 만나면서 느끼는 바가 많았는지, 2019년 12월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삼성창원병원 나눔기금에 천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 팬서비스가 좋다. 히어로즈 2군 시절부터 사인 잘 해주기로 유명했는데,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해 있던 19년도 전반기에도 심심찮게 2군 구장에서 팬들과 셀카를 찍은 사진과 각종 후기가 자주 올라올 정도로 한결같이 팬서비스에 최선을 다한다는 팬들의 평가다. 2017년 후기 2019년 본사 패밀리데이 후기
* 2016년 KBO의 사회공헌사업으로 대한적십자사와 손을 잡고 구단별로 적십자사 홍보대사를 뽑았는데 NC에서는 임창민이 뽑혔다.
  • 온라인 야구게임 마구마구에서는 V슬라이더, 서클체인지업 등의 좋은 변화구와 아웃 카운트를 잡을 때마다 체력이 2씩 회복되는 임사장이라는 사기급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 여러 덱의 계투용병으로 활용도가 높다. 이 임사장이라는 잠재력이 얼마나 사기인가 하면, 잘 하면 퀵후크를 하고도 6~9회 이상을 체력 문제 없이 쌩쌩하게 던질 수 있을 정도이다. 이 흉악한 성능으로 인해 마구마구 국가대항전에서도 맹위를 떨쳤고, 덕분에 KBO에 관심이 없는 대만 마구마구 유저들도 손민한, 임창민은 안다고 한다.
  • 2017년 12월 작곡가 민유경 씨와 결혼하였다. 기사
  • 투구 스타일 및 멘탈 관리 부분에서 손민한 코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궁금한 점이나 멘탈적인 부분에 대해 굉장히 많이 물어봤는데, 그럴 때 마다 손민한이 1시간 넘게 조언을 해 주었다고 한다.

7.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8 우리 1군 기록 없음
2009 히어로즈 2 1 0 0 0 0 0.000 36.00 2 0 3 0 4 4 5.000
2010 넥센 군복무(경찰 야구단)
2011
2012 3 4 0 0 0 0 0.000 4.50 3 0 3 2 2 2 1.500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3 NC 54 64⅔ 6 6 4 9 0.500 3.76 41 10 34 63 29 27 1.129
2014 41 53⅓ 6 3 1 5 0.667 4.39 50 5 31 53 28 26 1.481
2015 61 64 1 5 31
(2위)
0 0.167 3.80 57 7 22 72 28 27 1.22
2016 65 70 1 3 26
(3위)
6 0.250 2.57 61 5 35 91 22 20 1.30
2017 60 66 4 3 29
(2위)
0 0.571 3.68 60 10 24 62 27 27 1.26
2018 8 7 0 1 3 0 - 6.43 8 2 1 9 6 5 1.43
2019 20 15 0 1 0 1 0.000 2.40 14 1 9 10 6 4 1.53
KBO 통산
(9시즌)
314 345 18 22 94 21 0.450 3.70 296 40 163 362 152 142 1.30


[1]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된 이후 선수단을 인계받은 우리 히어로즈에 입단하였다.[2] 팀 동료 양의지, 모창민, 이명기, 이재학 등이 소속되어 있다.[3] 5선발 심수창, 롱 릴리프 이보근의 부진, 3선발 문성현 부상 이탈, 좌완 중간계투 오재영 부상 시즌 아웃, 중간계투 이정훈 체력 방전, 김수경의 구위 저하 2군행 등등. 2012시즌 넥센의 1군 투수진은 선발은 브랜든 나이트, 앤디 밴 헤켄 불펜은 박성훈, 한현희, 손승락 사실상 이 5명이 전부였다.[4] 2군에 충분히 써볼 만한 투수 자원이 있는데도 김시진 감독은 이들을 전혀 활용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게 임창민과 퓨처스리그에서 선발승 10승을 올려도 1군에서 고작 3이닝 던지고 강등된 이태양, 그리고 퓨처스리그 세이브왕 출신인 전유수다. 이 3명 모두 당시 나름 코칭 능력이 좋다고 평가받았던 정명원 2군 투수코치 아래에서 지도를 받으며 구위가 향상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당시 김시진 감독의 무관심과 쓸놈쓸 정책 때문에 1군에는 올라와보지도 못하고 2군에서 방치되다가 NC와 SK로 이적해 이적한 팀의 1군에서 쏠쏠한 활약을 했다.[5] 2019년 12월 인터뷰에 따르면 아직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서, 강력한 시즌을 가져가기 위해서 지금 수술을 하고 이후를 대비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수술을 결정했다고 한다. 팀에 필요한 선수로 남고 싶어서 결정한 것이라고.[6] 이는 후에 임창민 본인이 기사를 통해 사실을 밝혔다. 9회 한 이닝을 3타자로 끝낼지 주자를 내보내더라도 하위 타선까지 승부를 이어갈지 미리 구상을 세우고 마운드에 오른다고. #[7] 2016 시즌 기록을 보면 전반기에는 ERA 1.19, WHIP 0.96, K/BB 6.44로 말 그대로 언터처블이었으나 후반기에는 ERA 4.18, WHIP 1.70, K/BB 1.57로 엄청나게 부진했다. 전반기 37.2이닝 동안 12개의 사사구만 내줬는데 후반기에는 32.1이닝 23사사구로 사사구 비중이 늘어난 것이 결정적. 이러한 이유로 시즌 말과 포스트시즌에서는 원종현이민호에게 마무리 자리를 내줘야만 했다.[8] "걷기 위해, 두 발로 서기 위해 재활을 하는 분이 많았다"고 언급한 부분.[9] 티켓팅의 불편함, 대중교통, 주차의 어려움 등을 얘기하고 있다..